어느 순간부터 화려한 문투와 과장된 어법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많이 젊었을 때는 비유법도 많이 썼고, 소위 오그라드는 표현들도 즐겼다. 어느 시점까지는 미문이나 꾸밈이 과한 글에 혹하기 쉽다. 서정성을 담보한 그런 글은 영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그조차 거추장스러워 마구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자연스레 더 담백하고 더 건조한 쪽으로 문장을 내몰고 조인다. 문맥에 살을 붙이거나 색조 화장을 하는 걸 놔두질 않는다. 글쓰기 책들의 요지는 한결 같다. `문장의 나뭇가지를 흔들어라. 그리하여 나목 상태로 탈탈 털리거든 그것만 제대로 묘사해라. 아직까지는 이런 글쓰기 형식을 고수하는 이들의 방식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에 보면 문장 수련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스승은 한참 정신을 못 차리게 야단치시더니, 이렇게 고쳐주셨다.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처음에 22글자였던 것이 11글자로 줄었다. 딱 절반만 남았다.” 줄이면 풍경이 보인다. 말을 아껴라. 설명하려 들지 마라. 보여주기만 해라. 스승을 잘 만난 정민 선생은 이런 깨달음을 빨리 얻었다. 문체미학의 경제성 안에 온 우주적 글쓰기가 다 담겼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