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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포트럭 파티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1-26 02:01 게재일 2014-11-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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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다섯 개, 감 세 개, 배 두 개, 바나나 한 송이, 파인애플 한 개, 드레스코드는 선글라스와 머플러. 친구 둘과 내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공원에서 번개팅을 하자고 해놓고, 이렇게 두루뭉술하고 애매모호한 준비물을 가져오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지. 이대로는 점심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도 뭔가를 준비해오겠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 것 같았다. 해서 우리는 파티를 기획한 친구가 내준 미션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파인애플을 빼는 대신 어묵탕을 준비했고, 무거운 바나나도 배를 채울 수 있는 빵으로 대체했다. 실용적인 걸로 미션 품목을 바꾼 것에 대해 내심 뿌듯해할 정도였다.

파티 장소인 공원에 도착하고, 각자 준비한 먹거리를 내놓았을 때야 미션 수행에 실패했음을 깨달았다. 공원 테이블을 세팅해 서양식 파티 상을 차릴 참이었던 기획자 친구의 센스를 우리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리하여 같은 차를 탄 우리 셋만 미션에 실패했다. 파인애플 빠지고 바나나 없는 비주얼로도 근사한 야외 테이블을 차릴 수 있었다. 카나페 안주가 곁들인 와인, 케이크에 김밥, 과일과 빵까지 만족할만한 런치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야생 들꽃으로 장식한 꽃병이 차림새 한 가운데 놓이자 모두 탄성을 질렀다.

선글라스와 머플러로 한껏 멋 낸 `아지매`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티를 즐기는 그 시간만큼은 각 왕국에서 모여든 왕녀가 되어도 좋았다. 여담이지만 미션에 없었던, 모 여사가 끓여간 어묵탕이야말로 그날의 인기아이템이었다. 쌀쌀한 야외에서는 뜨끈한 국물이 통할 수밖에. 눈치 없는 자의적 해석이 반전의 즐거움을 낳는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게 깜짝 야외 포트럭potluck 파티를 생각해낸 친구 덕분이었다.

연말이 다가오고 각종 모임 자리도 늘어난다. 기왕 즐겨야한다면 이런 센스 있는 자리라면 어떨까. 그런 뜻에서 친구들과 나를 위해 포트럭 파티의 깜짝 기획자가 되어보고도 싶다. 장소는 어디로 할까. 드레스 코드는 뭐로 하지. 이런 상상만으로도 입 꼬리가 올라간다. 벌써 파티의 반은 성공한 거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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