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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는 어디로 갔을까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2-04 02:01 게재일 2014-12-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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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주제와 관련된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앤톨리니 선생이 주인공 홀든 콜필드에게 성추행을 하는 장면,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콜필드의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 센트럴 파크 연못의 겨울 오리를 걱정하는 콜필드의 유머 깃든 순정이 깃든 장면 등이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학교 선생의 성추행 장면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묘사로 작동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하는 콜필드의 대사 장면은 그 장면 자체를 작가가 책 제목으로 뽑았을 만큼 순수에 대한 동경을 의미한다.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센트럴 파크의 겨울 오리를 걱정하는 콜필드의 마음이다.

“센트럴 파크에 있는 연못을 지나가 본 적이 있으세요? 센트럴 파크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연못이요. 아주 작은 연못이 있어요. 오리들이 살고 있는 곳 말이에요. 오리들이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있잖아요. 봄에 말이에요. 그럼 겨울이 되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스쳐 지나는 인연에 지나지 않는 택시 기사 호이트 아저씨에게 콜필드가 한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저런 엉뚱한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런 의문은 동심이 풍부한 어릴 때나 그것을 잃어버린 어른이 되었을 때나 별 차이 없이 생겨난다. 살다보면 아주 익숙한 풍경인데 그 풍경이 느닷없이 낯설게 보이고 그 `낯섬`에 급기야 한 점 재기발랄한 의문이 생길 때가 온다.

아주 작은 연못에 오리들이 복작댄다. 봄의 기지개를 시작으로 조금씩 발길질하던 오리는 한여름의 풍성해진 자맥질을 지나 소요 없는 겨울을 맞이한다. 겨울을 맞이한 오리는 더 이상 연못에 머물 이유가 없다. 헤엄칠 물이 다 얼었기 때문이다. 그 많던 오리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제비처럼 따뜻한 남쪽나라로 간 것일까, 스님처럼 동안거에 든 걸까. 아주 작은 연못의 겨울 오리떼는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숨은 오리떼를 찾아 나목의 숲을 헤매는 담담한 풍경, 그것이 겨울이란 계절의 존재이유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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