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심적 상처는 강력한 트라우마가 되어 세상은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해 적게는 말문을 닫고 크게는 삶을 마감하기까지 한다. 이 모든 것은 한 순간, 한 호흡에 일어난다. 우연한 찰나의 시간, 그 짧고도 짧은 시간에 내재되어 있던 참을 수 없는 감정이 피를 토하듯 일순간에 터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봐도 잘못 보게 되고, 만져도 허투루 만지는 것이 된다. 마음을 열고 닫는 건 객관적인 시선을 요하지 않는다. 이성이 배제된 그 마음은 상황이나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상황이나 환경이라는 것도 반드시 개인과 개인의 화학적 결합 또는 관계망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 그 결합 또는 연대라는 마음의 교감은 참으로 개별적이고도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생겨난다. 따라서 마음이 통했다 또는 그렇지 않았다의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개별자의 이익과 관계망의 연대의식이 맞아 떨어지냐 아니냐의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러니 때리고 돌아서 제 연명을 구하는 흔들리는 눈빛은 평범한 인간들이 지닐 수 있는 이기심의 전형적인 면이다. 불가해한 시를 만났을 때, 자의적으로 풀이하는 것만큼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유희도 없다.“오! 폐가 불탄다. 관자놀이가 울부짖는다! 밤이 이 태양을 통해 내 눈에서 굴러다닌다!” 이런 극단적인 시는 천재시인 랭보에게나 어울리지 평범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소시민에게는 너무 과격하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