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그의 자전 에세이 `말하라, 기억이여`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가 새로운 잔재미까지 발견했다. 내용에만 치중했을 때는 지나쳤던 나보코프의 소설가적 감수성이 잘도 보였다. 책 중간에 수록된 가족사진에 주석을 단 나보코프의 표현이 솔직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페테르부르크의 집 정원에서 찍은 가족사진에는 자신을 비롯해 여덟 명이 등장한다. 부모 외에도 동생 세 명과 친할머니와 이모할머니가 보인다. “친할머니는 내 두 여동생들을 장식용으로 불안정하게 안고 있는데, 실제로 사는 중엔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었다. (….) 이모는 부모님이 여행을 간 동안 우리를 돌보아 주었고 조언자가 되어 주었다. 남동생이 이모의 왼쪽 팔꿈치에 달라붙어 있고, 이모의 다른 쪽 팔은 나를 안고 있다. 나는 내 칼라와 스트레사를 미워하면서 벤치의 팔걸이에 올라 앉아 있다.”
한 장의 사진으로도 그려낼 수 있는 한 집안의 미시적 가계사라니. 작가 덕에 독자는 그의 친할머니는 인정이 메마르고, 이모할머니는 다정다감하며, 엄마는 두 어른에게 자식을 양보(?)한 채 가족과 동떨어져 카메라를 무서워하는 개나 보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달갑지 않은 차림새로 카메라를 응시해야 했던 어린 작가의 심사도 이해하게 된다. 나보코프 같은 당사자이자 해설자를 만나야 가능한 일이다. 사진 속 생명력은 포장되고 과장된 낭만이 아니라, 진솔하고 적나라한 기억으로 작동한다. 천상 소설가인 나보코프에게 그런 `찌름`을 전하는 일은 눈 비비고 책상에 앉는 일처럼 습관화된 쉬운 일이었으리라.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