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1달러는 어디서건 유효하다. 호텔 매너 팁은 당연한 거고, 급할 때 도움을 주던 현지 보조 가이드에게도 1달러,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꼬마 악동에게도 1달러, 수상가옥촌 배 위에서 앵벌이하던 아기에게도 1달러. 그렇지, 전신 마사지하던 안마사에게는 고마운 나머지 5달러의 팁을 건네기도 했구나. 그러고 보니 입국 심사 때만 강제적 팁이지 나머지는 스스로 우러난 팁의 행렬이었다. 단 며칠간의 씨엠립 여정은 그렇게 1달러에서 시작해 1달러로 끝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버릇 되는데다 자생력을 잃게 하니 팁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과연 그럴까. 자생력은 정치적 여건이 만든다.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을 다그칠 수는 없다.`기브미 초콜릿`을 외치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때도 초콜릿을 건네는 쪽이 옳았지, 자생력 운운하며 때 묻은 고사리 손을 외면한 쪽이 옳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구조적 가난과 부패 앞에서 백성은 언제나 무죄이다. 오직 정치에 그 죄를 물을 일이다. 애절하게 구걸하든 교묘하게 강탈하든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니다. 단죄의 제일 대상은 백성을 방치하거나 그 상황을 즐기는 정치세력일 뿐이다. 잠시 본 캄보디아는 1달러의 힘에 갇혀 있는, 아직은 가난한 나라였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