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용 양날 칼이 있다. 어렸을 땐 흔히 상표명인 `도루코`로 불렸다. 전기면도기가 보편화된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도루코 하나씩은 거울 선반에 놓여 있곤 했다. 눈에 잘 띄었기에 급하면 연필깎이용으로도 쓰였다. 필통 안에 있어야 할 학용품용 칼이 없으면 별 생각 없이 도루코를 집어 들곤 했다. 손잡이도 없는데다 얇고 양날인 칼은 어린아이가 만지기에는 위험했다. 예쁘게 연필을 돌려 깎을 욕심에 무리하다가 손끝이 베이고 손톱 끝을 날리곤 했다. 두렵고 진저리를 치면서도 아쉬우니 자꾸 손이 가곤 했다.
그 와중에도 의아했던 것. 손잡이가 없어도, 칼날이 얇아도 참을 수 있는데 왜 도루코 칼날이 아래위로 양면일까. 홑 날이면 손가락을 안 다칠 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면도를 하기에 나름 최적화된 효율적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기까지 그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크면서 자연스레 그 의문은 해소되면서 덤으로 이런 단상 하나를 얻었다.
칼이 제대로 칼로서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칼등이 받쳐 줘야 한다는 생각. 즉 칼은 칼등이 있기 때문에 제 칼날을 빛낼 수 있다. 아무리 잘 드는 칼이라도 칼등이 없으면 위험하다. 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칼등이라는 보호대가 있기 때문에 맘 놓고 칼 손잡이를 쥘 수 있다. 한쪽 날마저 잘 드는데 등마저 날렵한 칼날로 이루어져 있다면 아무래도 잡기가 저어된다. 양날 도루코로 연필 깎다 손끝 베던 것처럼 움찔하게 된다. 필요악인 칼날은 칼등이 있기 때문에 칼잡이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양날 달린 시퍼런 칼날로 옳고 마땅한 이야기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뭉툭하고 덤덤한 칼등이 감싸는, 좋고 그러려니 한 이야기도 나쁠 것은 없다. 칼날이 바른 이야기라면 칼등은 좋은 이야기이다. 칼날이 이성이라면 칼등은 감성이다. 칼날에 칼등이 따르는 이유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설날이다. 바르고 이성적인 것도 괜찮지만 좋고 감성적인 보따리들을 더 많이 펼치는 명절 연휴가 되기를 바라본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