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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앨리스 먼로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5-03-05 02:01 게재일 2015-03-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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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가 점점 힘듭니다. 게으름과 한 통속인 잡념이란 밥상을 쉬 물리지 못하는 탓이 제일 크지요. 늘 그렇듯 읽는 속도가 새 책 쌓이는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는 나날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당신의 대표작 `디어 라이프`는 자주 제 손길 가까이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앨리스 먼로냐고 누가 묻는다면 여성적 시각에서 품어 안은, 서늘하면서도 아프고 따뜻한 이야기가 모두 내 것 같기 때문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열 네 개의 단편 중 공감가지 않은 것은 두어 개 뿐, 나머지 모두는 내 맘을 알고 쓴 작품 같았습니다. 오늘은 그 중 사랑과 트라우마, 두 주제에 관한 소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에 관한 한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변한 게 없습니다. 첫사랑을 잊었다거나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건 사랑이 변해서가 아닙니다. 변하지 않은 그 사랑을 현실 속에서 마주쳤을 때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우연히 번화한 거리에서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만난다면 사랑에 관한 한 변한 게 없다는 진실만을 확인하게 될 뿐이지요. 당신 말대로 마구 솟구치는 심장박동 소리와 부자연스런 손동작이 그걸 증명해주니까요.

사람마다 죽을 때까지 넘을 수 없는 트라우마 한두 개쯤은 지니고 있지요. 이 또한 당신은 작품을 통해 증명하고 있군요. 심리상담가를 찾아가도, 누군가를 만나봐도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 슬픔이자 고통인 그 무엇. 누가 대신 넘어줄 수 없는 그 옹벽은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식탁과 함께, 시간이라는 치료제가 더해질 때 어느 정도 넘을 수 있다는 걸 당신은 말하고 있군요. 하지만 모든 걸 받아들이려는 노력에도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실체 없는 헛것의 실체 또한 트라우마라는 걸 보여주기도 하는군요.

착실하게 살아왔고, 착실하게 살 것만을 주문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어울리지도 않고 큰 감흥을 주지 못할 거라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회한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왔더라도 그 삶이 가치 있고,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담담하게 지켜낼 수 있는 사람에게 맞춤한 책이라고 당신의 이름을 빌려 권하겠습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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