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한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변한 게 없습니다. 첫사랑을 잊었다거나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건 사랑이 변해서가 아닙니다. 변하지 않은 그 사랑을 현실 속에서 마주쳤을 때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우연히 번화한 거리에서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만난다면 사랑에 관한 한 변한 게 없다는 진실만을 확인하게 될 뿐이지요. 당신 말대로 마구 솟구치는 심장박동 소리와 부자연스런 손동작이 그걸 증명해주니까요.
사람마다 죽을 때까지 넘을 수 없는 트라우마 한두 개쯤은 지니고 있지요. 이 또한 당신은 작품을 통해 증명하고 있군요. 심리상담가를 찾아가도, 누군가를 만나봐도 해결되지 않는 근원적 슬픔이자 고통인 그 무엇. 누가 대신 넘어줄 수 없는 그 옹벽은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식탁과 함께, 시간이라는 치료제가 더해질 때 어느 정도 넘을 수 있다는 걸 당신은 말하고 있군요. 하지만 모든 걸 받아들이려는 노력에도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실체 없는 헛것의 실체 또한 트라우마라는 걸 보여주기도 하는군요.
착실하게 살아왔고, 착실하게 살 것만을 주문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어울리지도 않고 큰 감흥을 주지 못할 거라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회한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왔더라도 그 삶이 가치 있고,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진행되더라도 담담하게 지켜낼 수 있는 사람에게 맞춤한 책이라고 당신의 이름을 빌려 권하겠습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