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강의 시간을 주체 못하고, 식사메뉴를 혼자서 결정하는 일도 금방 걱정거리가 되던 스무 살 그들에겐 기류변화가 극심했다. 가족과 집을 떠나와 룸메이트도 과동기생을 사귀는 일도 치러내야 하는 일이었다. 먼저 다가가고 인사 건네고 그것이 설령 사랑일지라도 풍덩 빠지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도서관에서부터 영역을 확보하길 무엇보다 꼭 새겨주고 싶었다. 4년 후 혹은 10년 또 30년 후 어디에 있고 싶은지, 누구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가끔씩 혹은 자주 생각해보며 그곳으로 다가가는 하루하루를 살기를 그래서 그 길을 도서관에서 찾아내기를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다.
동아리방도 학과 사무실도 지도교수 연구실까지도 어려워하지 말기를, 분위기 좋은 카페도 찾아내기를, 어느 구석에선가 분명 어머니를 느끼게 하는 단골 밥집도 개척하기를, 캠퍼스 으슥한 산책로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끊임없이 말해주고 싶었다.
장학금을 향한 비장한 각오를 숨기지 않던 여학생이 깨알같은 글씨로 가득 메운 답안지를 내고 돌아선다. 문득 그 작은 어깨를 안아주고 싶어진다. 굳이 괄호를 열고 밝히지 않아도 필자는 여선생이다. 남학생이라 하더라도 어깨 두드리며 가볍게 허그해주는 일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장성한 아들도 있음을 독자 제위께서는 알아주셨으면 한다.
저들은 내일쯤 방을 빼리라. 별것 없을 줄 알지만 꺼내놓으면 결코 적지 않은 물건들, 자신을 따라다니는 소유들이 소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더하여 어떻게 자신을 증명해 낼 것인지 여름볕 아래서 더 단단히 여물어 왔으면 좋겠다. 하늘이 높아지고 가을빛이 선연할 때쯤 다시 만날 기대로 벌써 설렌다.
/윤은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