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도 반한 `錦繡江山(금수강산)`<br>높푸른 산이 물 만나네
지난 금요일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열린 `맥베스` 연극 관람을 마치고 토요일 서울에 갔다가 한밤중에 대구에 도착해 새벽같이 일어나 떠난 등산이 바로 제천의 금수산이다.
금수산은 재작년 8월에 대문산악회원들과 함께 다녀와서 9월 6일 자 경북매일신문에 연재했는데, 그 코스는 금수산 정상 등정이 아니라 힐링 제3코스 `금수산 얼음골 트레킹`이었다.
충주호변에 있는 능강교에서 만당암과 망덕봉 직전에 있는 얼음골까지 다녀오는 것이었으니 그 때는 한여름이라 금수산과 망덕봉에 오르지 못했는데 이번 등산은 그 두 곳을 산행하는 코스였고, 미리 예약해둔 상태라 빠질 수도 없어 바삐 움직였던 것이다.
평소에 산을 좋아하고 산행을 정례적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산은 좋은 반려이자 찾아내어 실현하고자 하는 의욕이 담긴 일거리다.
요즘 문화계 소식을 알아보니 6월 18일 개봉한 영화`극비수사`가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서 최단기간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고 순항중이라고 한다. 지난 1978년 부산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했는데 김중산 도사로 나오는 배우 유해진씨의 연기가 일품이라고 한다.
유해진씨는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는 배우로 알고 있다. 그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산을 오르고 등산을 즐기는 이유는 등산이 힘드니까 잡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육체적 건강에도 도움을 주지만 정신적으로 사람을 맑게 한다는 그 말에 필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금이 여름철인데, 여름 등산은 정말 힘들다. 배낭에 여벌의 옷가지, 간단한 의약품과 먹을 거리, 자료 등을 채우고 나면 상당한 무게를 차지한다. 배낭을 그냥 짊어지고 있어도 무거운 판에 그것을 지고서 먼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무거운 배낭이 등산길에서 필자의 몸을 균형되게 지탱해주는 것이므로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만 여름철에 산을 오르다보면 특히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는데, 힘이 들어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런 경험을 자주 해본 까닭에 “등산하는 동안 잡생각을 다 떨쳐낼 수 있어서 등산이 좋다”는 유해진씨의 말은 매우 인간적인 말로 필자의 마음에 와 닿는다. 지금까지 필자가 등산을 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날들의 힘듦을 자연과의 대화에서 묻었던가.
금수산 등산 들머리인 상학주차장으로 오는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산행은 고생을 사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어나는 고뇌를 잠시나마 잊고 다시금 생활의 활력소를 되찾기 위한 좋은 방편으로써 산을 찾는 것이니 그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라 공통사이다.
금수산과 망덕봉 등산의 들머리는 상천휴게소와 능강교 주차장, 상학주차장을 주로 이용한다. 상천리 휴게소에서 금수산, 망덕봉을 올랐다가 원대복귀하는 코스가 있고, 능강교에서 얼음골생태길로 올라 망덕봉과 금수산을 오르는 코스도 있다.
우리 일행들은 적성면 상학 주차장에서 출발해 금수산에 올랐다가 망덕봉을 거쳐 충주호변에 자리한 능강리로 내려오는 코스다. 오전 10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해 오후 5시 30분에 능강리에 집합하는 총 7시간의 산행 시간을 산악회로부터 부여받았다.
상학주차장에서 등산을 준비하면서 금수산 유래가 적힌 안내석을 본다. `금수산은 원래 백암산으로 불리었으나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로 재임시 가을단풍의 경치가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하여 비단 금(錦)자에 수놓을 수(繡)자를 써서 금수산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이하 생략)` 끝까지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여기까지 읽어봐도 그 유래를 알 수 있는데, 이 안내석은 1999년 10월 17일, 제1회 금수산 감골 단풍축제를 기념해 세웠다고 적혀있다.
산행을 시작해 금수산으로 먼저 오른다. 정상까지 거리는 2.3km이다. 능선을 치고 올라가 30분쯤 걸어가니 서괭이고개(서피고개)가 나오고 그 고개에서 보니 금수산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실 산이 묵묵히 그대로 있을 뿐 뽐내겠나마는 그 표현은 그만큼 금수산이 멋있다는 필자 나름대로의 표현이다.
여기서 오른편 길을 계속 올라가서 삼거리에 당도했다. 금수산삼거리는 왼편 아래쪽 상천리 마을에서 올라오면 합쳐지는 길이다. 이곳에서 보면 눈앞에 금수산이 있는데 거리는 어림잡아 500m 정도로 단번에 도착할 것 같지만 산 군데군데에서 암릉이 도사리고 있는 산길이라서 30~40분은 좋게 걸리는 거리다.
철계단을 타고 재를 넘어 금수산으로 향한다. 금수산 정상 직전의 고개에 도착해 정상을 바라보고 또 저 아래에서 펼쳐지는 충주호변을 내려다보니 전망이 정말 좋다. 쉬면서 빼어난 풍광을 배경삼아 사진도 찍고 잠시간의 여유를 가져본다.
삼거리에서 다시 걸음을 옮겨 도중에 입석바위를 보고 금수산 정상에 도착했다.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더 걸렸는데, 정상부분의 알릉을 조심조심 타고 올라와서 줍녀의 전망을 살펴본다.
정상부근은 바위로 이뤄져 있고, 장소가 협소해 동시에 여럿사람이 모여 사진을 찍거나 전망을 볼 때에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낙상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행들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곁들이고 필자는 서둘러 안전한 지역으로 잠시 내려서 주변을 관망한다.
충주호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월악산 정상인 영봉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재작년 필자가 갔던 망덕봉 밑의 능강계곡과 그 위를 달리고 있는 바위군들을 잠시 살펴보다가 금수산이 연결된 신성봉 등 산능선을 보며 여름산의 풍경을 가슴에 담는다.
백운산으로 불리던 이 산이 금수산으로 바뀐 것이 조선시대의 이야기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듯이 금수산은 저 아래에 있는 충주호(단양에서는 청풍호라 부른다)와 그 인근의 산과 계곡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장관들과 함께 돋보이는 산이다.
“우뚝 솟은 산/ 아름다운 능선을/ 멀리서 바라보면/ 미녀가 우아하게 누워있는/ 영낙없는 그 모습이라/ `미인봉`으로 불리었다는/ 제천의 금수산을 오른다.// 가을단풍이 곱고/ 겨울설경이 멋진데다가/ 봄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녹음마저 잘 어울려/ 사계절 산객이 찾아드는/ 아름다운 금수산에서/ 암릉의 절경을 맛본다”(자작시 `아름다운 금수산` 전문)
정상에서 금수산의 진면목을 새기다가 하산하기 위해 철계단을 내려서서 살개바위고개로 향한다. 바로 앞에서 뻔히 보이는 고개까지 거리는 300m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우리 일행들은 살개바위고개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망덕봉으로 향했고, 계속되는 능선길을 따라 소나무 사잇길과 암릉길을 걸어 얼음골재에 도착했다. 등산 들머리인 상학주차장에서 3.8km 거리인데, 3시간가량 걸렸다.
망덕봉이 저 앞에 있다. 망덕봉은 금수산에서 능강계곡으로 가거나 또는 망덕봉 아래에 있는 백운동가는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충주호 능강교 주차장에서 망덕봉에 올랐다가 원점 회귀하는 등산객들도 많은데 이들은 망덕봉과 능강계곡 밑까지 이어지는 소용아릉의 온갖 형상의 바위 형상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빠른 걸음으로 10분쯤 걸어 망덕봉에 도착했다. 나무숲으로 들러 쌓인 평지 같은 곳인 이 산봉우리는 금수산에서 능강리 충주호 사이에 솟아난 산봉으로 여기서 하산하는 코스가 여러 갈래지만 소용아릉 코스가 단연 인기다.
망덕봉 아래로 펼쳐지는 일부 능선이 설악산 용아장성을 닮았다고 해서 소(小)용아릉으로 불린다. 직벽 70m 구간으로 이어지는 소용아릉은 암릉미가 단연 돋보이는 곳으로 금수산 등산에서 백미(白眉)와 같은 곳이다.
위에서 내려다봐도 암릉들이 산에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동안 암릉지대가 많은 산들을 등산하면서 항상 느끼지만 산에 암반이 없었더라면 산행하는 재미가 반감되고 무료했으리라는 생각인데, 그처럼 암릉의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도 풍부해진다.
망덕봉 아래 갈림길을 지나 오른쪽 길 공룡능선길로 접어든다. 대단한 암봉들이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770m 암봉을 지나는데 암릉에 걸쳐진 로프를 벌써 두 개나 타고 지나왔고, 거대한 암봉을 우회해 지나니 또 로프가 매어져 있다.
조심조심 소용아롱지대를 넘어서고 너럭바위 암릉을 지나 산부인과바위라는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그 아래로 난 굴문을 어렵게 통과해 다시 길을 나서는데, 바위이름이 어떻게 해서 산부인과바위가 된 것인지 유래를 찾아봐도 나타나지 않는다.
산부인과바위를 지나서 산길이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서는 곳에 비석바위가 있다. 금수산 등산에서 공룡능선길은 모양도 빼어나지만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주변의 조망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설악산 용아산장에 견주어 `소용아릉`이라 불릴만하다.
암릉지대를 지나니 일렬로 선 돌탑군이 필자의 눈길을 끈다. 아마도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한 두 개씩 돌을 더해 상당히 늘어난 것 같다. 돌탑군을 빠져나와 능강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 30분경이 다되었다. 여름날 7시간에 걸친 강행군이었으니 그야말로 힘든 산행이었다.
서두에서 밝혔지만 힘들게 산행하는 내내 산세나 암릉, 그리고 흘러가는 구름 등 자연을 헤아렸으니 잡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것이 산행을 즐기고 좋아하는 나름대로의 이유인 것이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