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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폭락 직격탄에 마지노선 붙든 채 힘든 나날

김명득기자
등록일 2015-10-05 02:01 게재일 2015-10-0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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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철강공단 강관 3사 현장 가보니
▲ 그동안 불황을 모르던 세아제강은 올 상반기 동안 매출실적이 반토막 났다.

포항철강공단내 주력 강관업체 3개사는 요즘 그 어느해보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30일과 1일 이틀동안 세아제강, 넥스틸, 아주베스틸을 차례로 찾았다. 이들 업체의 정문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으나 예전의 모습이 사라진 활기 잃은 분위기였다. 

세아제강대미 수출물량 급감으로 주력공장 가동 정지

근무체제 2교대로… 근로자 450명 유급교육 돌입

지난 1일 오전 11시께 세아제강 정문. 마당 저 멀리 잔뜩 쌓인 강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느때 같으면 시끄럽게 돌아가야 할 공장들이 문을 굳게 닫은 채 무거운 침묵만 흘러 최근의 경영난을 실감케 했다. 당초 이날 이 회사 관리담당 L이사를 만나기로 했으나 그는 올 상반기에 명예퇴직하고 없었다. 경비실을 통해 관리담당 K팀장 면회를 요청했으나 그는 비상대책 회의에 참석한 관계로 지금 만날 수 없다고 회신해 왔다. 오후에 어렵게 K팀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올 연초부터 미국발 수출 주문량이 급감하자 유정용 강관 생산 주력공장에 대해 기존 4조3교대 근무체제를 1교대를 축소시킨 변형된 2교대 형태로 긴급 조정했다고 한다. 500여명에 달하던 근로자들 가운데 문덕공장으로 27명을 파견시키고 자체 감소인원(정년, 명퇴 등)을 제외시키고 나니 현재 남은 인원은 450여명 정도. 이들도 주력공장 가동을 멈춘 상태여서 당장 현장으로 투입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회사측은 현재 이들을 대상으로 궁여지책으로 유급교육(월 급여는 지급하고 근무대신 교육으로 대체)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육도 언제까지 해야할지 아무도 모른다. 국제유가가 올라 수출여건이 조금 나아지면 다행이지만 저유가 기조가 지속될 경우 회사측은 또다른 `극약처방`을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내수 의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관리담당 K팀장은 “현재로서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틸 수밖에요…”라며 “직원들의 유급교육도 언제까지 할지, 그 이후에 진행될 사항은 경영진만이 알고 있겠죠”라고 말끝을 흐렸다.

▲ 북미지역 셰일가스 특수를 노렸던 넥스틸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 북미지역 셰일가스 특수를 노렸던 넥스틸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넥스틸셰일가스 특수 노려 세운 2개 공장 결국 문닫아

직원 절반 가까이 줄이고 야간근무마저 없애

지난 1일 오전 10시 넥스틸 정문에서 관리담당 H전무의 면회를 요청하고, 2층 접견실로 향했다. 불 꺼진 2층 연결 계단은 예전의 환하던 분위기와는 사뭇다른 느낌이었다. 접견실의 불도 꺼져 있었고,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도 어두컴컴해 보였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여직원이 다가 와 “지금 H전무님이 긴급 회의중이셔서 나올 수 없다고 하네요…어쩌죠”라며 안쓰럽게 말했다. 강관을 실은 트레일러가 수시로 들락거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유정용 강관을 생산하는 주력공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오후에 H전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미국발 셰일가스 특수를 노리고 지난 2012년 5월 사업비 370여억원을 투입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경주 강동일반산단의 열처리 2개공장(넥스틸큐엔티)도 지난해말부터 결국 가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 당시 `위기가 곧 기회다`라며 위험부담을 떨치고 과감하게 투자를 강행했던 이 회사 B사장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이 회사는 요즘 2개조 편성, 야간 근무를 폐쇄하고 주간 근무만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350여명에 달하던 직원수도 그동안 절반 가까이 추려내 현재 사무직을 포함해 160여명만 근무하고 있다.

관리담당 H전무는 “매일 생존전략 회의를 합니다.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 남아야 내보냈던 직원들을 다시 부르지 않겠습니까”라며 “국제유가가 더 떨어지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지금이 마지노선이라고 보면 됩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 지난해까지만해도 잘 나가던 아주베스틸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 신청중이다.
▲ 지난해까지만해도 잘 나가던 아주베스틸은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 신청중이다.
아주베스틸
수출에만 의존하던 구조, 결국 `법정관리` 화 불러

회생절차 개시신청 최종결정 기다리며 애타는 나날

지난 30일 오전 10시 30분 아주베스틸 정문. 법정관리중이어서 그런지 경비원들의 외부인 출입통제가 종전보다 훨씬 엄격해졌다. 출입명부에 이름과 전화, 차량번호를 기재한 뒤 관리담당 K부사장의 면회를 신청하고 1층 접견실로 향했다. 예전에는 2층 K부사장실로 직접 찾아 갔으나 법정관리중이라서 거절당했다. 한참 후 K부사장이 아닌 J관리팀장이 대신 내려왔다. “부사장님이 지금 회의중이라서 제가 대신 내려 왔습니다”라며 커피 한잔을 건넸다.

작년까지만해도 공단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잘 나가던 이 회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재무구조도 비교적 탄탄하던 회사였는데…. 이 회사의 법정관리 신청은 국제 유가하락에 따른 미국발 셰일가스 유정용 강관 수출이 급감한데 따른 것이다. 내수가 전무한 상태였고 거의 수출에만 의존하던 구조가 결국 화를 부른 것이라고 J팀장이 전했다.

이 회사도 주력 공장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텅빈 마당은 한적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지난 연초부터 구조조정을 통해 300여명(협력사 포함)에 달하던 직원수를 3분의 2 이상 줄여 현재 100여명만 근무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대구지방법원으로부터 포괄적 금지명령을 받은 이 회사는 앞으로 회생절차 개시신청에 대한 최종결정이 있을 때까지 모든 회생채권자 및 회생담보권자에 대해 회생채권 또는 회생담보권에 기한 강제집행, 가압류, 가처분 또는 담보권실행을 위한 경매절차가 금지된다.

K부사장은 “답답할 뿐입니다. 그 놈의 국제유가 폭락 때문에…”라며 긴 한숨을 내 쉰뒤 “현재로서는 법원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국내 강관산업 이대로 주저앉나

對美수출 반토막 동반몰락 공포로

국내 강관업계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WTI)가 좀처럼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내수 경기마저 시들해 그야말로 앞이 안보이는 상황이다. 그동안 불황을 모르던 강관업계 맏형 세아제강이 흔들리고 있고, 여기에다 중견 강관업체인 아주베스틸의 법정관리 신청은 그야말로 충격으로 와 닿았다.

이 문제는 비단 포항철강공단 내 강관업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내 전체 강관업체에 주어진 생존문제다. 주력 강관업체들의 파국은 곧 중소형 영세 강관업체에까지 그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여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업계 전문가들조차 이러다가 국내 강관업계가 동반 몰락하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에너지용 강관 수출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39.3% 감소했고, 특히 대미(對美) 에너지용 강관 수출은 무려 46.4% 급감해 반토막이 났다. 국제유가 급락에 따른 수출 급감이 그 원인이었다.

더 큰 문제는 올 하반기에도 국제유가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배럴당 45달러인 현 수준에서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발 셰일가스 유정용 강관수출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결국 국제유가가 오르지 않는 이상 미국발 셰일가스 유정용 강관 수출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수출에만 의존하는 업체들의 연쇄도산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내수경기 또한 나아질 기미도 안보여 이래저래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 업에 종사하는 현장 근로자들도 절반 가까이 회사를 떠났다. 자금력이 나은 대형 업체들은 어느정도 버틸 여력이 있는지 몰라도 중소형 업체들은 이제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 보인다.

강관업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가 고비다. 연말이후 강관 수출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으면 최악의 사태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단순히 생산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아 남느냐의 생존 문제”라고 말했다.

/김명득기자 m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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