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푸른 영덕 앞바다… 그리운 유년의 엄마 품이어라
산 길 걸으며 옛일을 떠올려봅니다. 소싯적이었을 적, 동네 앞산이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린 나는 무서워 엄마 품으로 안겨들었지요. 그 때마다 “찬아, 괜찮아 바람소리야”하고 엄마가 달래주었지만 그 소리는 아직도 가끔 기억이 나지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쳐다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산은 동해바다에 떠오른 햇살을 받고 반짝거리면서 푸른빛을 보여주었지요.
엄마를 따라 영해로 이사와서 유년기를 보냈고, 홀로 청소년기를 맞으면서 외로울 때는 대진바다 앞쪽에 솟아난 관어대나 상대산이 큰 위로가 되었지요. 힘들고 고독할 때면 혼자 올라서 설움을 산에다 대고 쏟아 붓곤 하였지요. 그래서 내게는 상대산이 그리움의 화신으로 남아 있는 게지요. 청년기를 지나 사회생활을 하며 바쁘게 살다보니 한동안은 산을 잊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인연이 되어 2012년경에 등산동호회 지인들을 따라 산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게 됐답니다. 그 후 경북매일신문과의 인연으로 2013년 3월부터 부산 연대봉을 시작으로 산행기를 연재해 왔고, 지난주 팔공산 산행기 132회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산행기 마지막회를 장식하기 위해 내 고향 영덕의 자랑, `블루로드 길`을 걸으며 지나온 산행의 자취를 찾아보기로 하고 고향땅을 밟았지요.
`블루로드 길`은 영덕군이 지정한 동해안 걷기코스로 명 코스랍니다. 이 길을 걸으며 만나는 풍경들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해안선과 해송, 바다를 끼고 곳곳에 솟아난 기암괴석의 갯바위와 함께 전국에서 유일한 명사 20리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블루로드(BLUE ROAD)`라는 이름에서 얼핏 `푸른 길`로 오해할 수 있으나, Beach(맑고 푸른 바다), Light(새로운 빛), Utopia(언젠가 가보고 싶은 관광목적지), Exit(일상생활의 탈출구)의 머리문자를 따서 합성한 게 바로 `블루 로드`입니다.
이 길이 만들어지고부터 이곳을 찾아 트레킹한 사람들의 입소문이 타면서 2009년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7선`에 올랐고, 2010년 `명품 녹색길 33`에 들었으며, 2012년 한국관광광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99`에 포함되었지요.
전체 길이 50km나 되는 세 코스 구간 가운데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까지 15㎞까지 B코스 구간, 바다와 하늘이 함께 걷는 길 `푸른 대게의 길`이 블루로드에서도 백미로 꼽히고 있지요.
영덕군 지정 `동해안 걷기 코스`
백사장·해송·기암괴석 볼거리 가득
소비자 선정 최고 브랜드 대상 수상
전체길이 50km 3코스 사계절 인기
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강구 항에 도착해 바닷가로 난 918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올라가면 풍력발전소가 있는 곳에 위치한 해맞이공원에 닿게 되지요. 그곳에서 블루로드길 B코스가 시작되는데, 겨울철에는 해풍이 불어 다소 추운지라 봄부터 늦가을까지 산행객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많은 곳이지요. 해맞이공원은 해안도로변에 자리한 해안형 자연공원이랍니다. 전망 데크와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고, 이 일대에는 부채꽃과 패랭이꽃 등 야생화 2만 3000여 포기가 심어져 봄철에서 가을철까지 꽃들이 피어나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데, 특히 이름 그대로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돋이를 관람할 수 있는 장소로도 유명하답니다.
블루로드 B코스의 시발점인 해맞이 공원, 이 위쪽은 풍력발전기가 있는 곳이고, 이 산 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동쪽은 끝없이 이어지는 동해바다가 맞닿아 있고, 남쪽을 보면 포항 장기곶의 호랑이 꼬리 부분이 보이고 북쪽 위로는 바다기슭에 기암절벽이 들쭉날쭉 이어져 있으며 파도가 치거나 혹은 잔잔한 해변은 한 폭의 그림으로 비쳐나고 있지요.
가까이 남쪽에는 둥근 작은 산봉우리가 솟아나 있는데, 이 산이 바로 고불봉이랍니다.
동해의 붉은 해가 떠오를 때 구름에 휩싸여 있는 고불봉의 모습을 `불봉조운(佛峰朝雲)`이라 하는데, 영덕팔경의 하나이지요. 그 경치가 워낙 아름다워서 영덕으로 유배 온 고산 윤선도 선생이 고불봉 밑에 유배소를 정하고 `고불봉`이란 시를 남긴 유명한 곳이지요.
산행기를 마감하는 오늘은 해맞이공원에서 출발해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과 자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정리해봅니다. 대탄리·오보리 해변, 석리 해안초소 길을 걸어 경정 차유마을의 원조대게마을 지나 죽도산, 축산항에서 의미 있는 산행을 마치려 합니다.
시야가 탁 터진 해변 길을 걷다보면 어촌마을이 오순도순 나타나지요. 대탄리, 오보리 해수욕장을 지나 노물리 방파제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보이는 것은 동해의 시원한 바다풍경이랍니다. 석리 마을에서 어촌체험을 하는 것도 재미나지요. 해수풀장 체험, 맨발 콩자갈걷기, 갯바위낚시, 해풍산림욕 등 각종 체험 및 관광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 재미난 일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비해놓았답니다. 석리 어촌마을 지나 계속 길을 걷다보면 경정해수욕장과 차유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은 영덕대게의 원조마을이지요. `차유마을`의 유래를 살펴보면 고려 29대 충목왕 때, 정방필 초대 영해부사 일행이 수레를 타고 언덕을 넘어왔다고 하여 `차유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죽도산 너머 차유마을 앞바다는 매년 11월이 되면 대게잡이를 할 수 있지만 설날 직후에 잡히는 대게가 가장 맛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맘때부터 이 원조마을에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진답니다.
`동해안 영덕 바닷가에/ `블루로드` 명품길이 있네./ 푸른 바다에 잘 어울리는/ 갖가지 전설이 숨쉬고/ 누구라도 거닐고 싶은 곳,/ 여기 명품 길을 걸으면/ 상쾌한 기분이 절로 든다.//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 그 모습이 선연해 멋지구나./ 저만치에서 달려와서는/ 바위에 부딪혀 흩어지는/ 파도의 모습이 아름다우니/ 오늘도 탄성을 자아내며/ 고향의 명품 길을 걷는다.`(자작시 `동해안 명품 길` 전문)
다시 걸음을 옮겨 말미산을 돌아 강어귀에 세워진 블루로드 다리를 지나 죽도산에 도착했지요. 여기서 바라보는 동해바다 경치는 정말 명품이지요. 블루로드 `푸른 대게의 길` 구간 시발지, 해맞이공원을 출발해 4시간동안 시원하면서도 넉넉한 풍경화 감상을 하면서 트레킹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답니다. 그 종착지인 축산항에 도착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곳에서 제가 군의원과 도의원을 지냈고, 정이 유달리 많으신 큰 형님 내외가 살고 있는 곳이니 객지에 떠나 있어도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지요. 축산항은 내 젊은 패기가 묻혀있는 곳이니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하답니다. 그래서 축산항에 대한 나의 끓어오르는 애정의 증표로 `동양의 나폴리, 축산항` 제목의 시를 써 정열의 불꽃을 띄우기도 했답니다.
`축산항을 여기에 두고/ 누가 미항(美港)을 말하려 드는가.//저 멀리 수평선 위로/ 힘차게 떠오른 아침 해의/ 은혜로운 햇살과/ 한낮을 간질이는 바람/해질녘 갈매기의 울음까지/ 그리움 되어 가득 묻어나는 곳,//가까이 푸른 바다에서/ 뱃고동 나직이 울려오면/ 한 배 가득 풍요를 기다려온/ 마을사람들이 우르르/ 부둣가로 달려와서는/ 인정의 꽃을 흠뻑 피워내는 곳,//동양의 나폴리, 축산항을 두고/ 누가 미항(美港)을 말하려 드는가.`(자작시, 전문)
다시 젊음의 꿈이 무르익던 곳, 축산항에서 항구에서 끼룩끼룩 대는 갈매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 인생의 지나온 길과 현재의 존재 가치,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길목을 조용히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무언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때로 멀리 떠나야 한다. 보물이 존재함을, 그리고 우리 생이 기적임을 믿는 것이야말로 생을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파울로 코엘료의 심상과 같이 내 마음 속의 보물상자, 정감어린 회억의 길 영덕 블루로드를 완주하고 나서도 필자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건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산사랑이었지요.
그것은 본지에 연재해왔던 3년간의 산행기를 정리해보는 입장에서 아쉬움과 보람이 교차되는 여정이기도 하지요.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더불어 우리의 생을 흥미롭게 할 기적을 믿기에 코엘료의 말대로 무언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나는 때로 멀리 떠날 것이리라….
그동안 본 산행기에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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