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공분양부터 후분양제 단계적 도입 추진<bR>분양가·대출이자 상승 등 소비자에 부담 지적도
“근본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후분양제 도입이 시급합니다.”
주택 후분양제 도입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본질적인 방안으로 거론됐다. 지난주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소비자가 승용차를 살 때도 꼼꼼히 확인해보고 구입하는데 주택은 덜컥 계약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와 청약제도 조정 등 6월과 8월 잇달아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후분양제 도입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날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은 “공공부문 후분양제 로드맵을 만들어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민간주택에 대해서는 인센티브 강화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정부의 후분양제 도입의지를 명확히 밝힌 셈이다.
□ 선분양제, 주택공급 활성화에 기여
후분양제는 건설사가 주택을 어느 정도 지은 뒤 입주자를 모집하는 주택공급방식이다. 분양 후 주택 건설을 시작하는 선분양제와는 반대되는 제도로 소비자들은 실제 아파트를 보고 분양을 결정할 수 있고 분양 후 1년 안팎이면 입주 가능하다.
입주 시점에 가격 프리미엄이 크지 않고 분양권 전매가 어려워 투기적 거래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시공사의 부도 위험도 낮다. 부실시공을 예방하고 소비자의 선택권도 보장하는 효과가 있어 부동산 시장 안정과 주택 부실공사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평가된다.
주택이 부족했던 1970년대에 정부가 건설사의 자금 부담을 덜고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도입한 선분양제는 건설사가 대지소유권 확보, 분양보증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착공과 동시에 입주자를 모집할 수 있다.
건설업계는 건설자금 대부분을 분양자로부터 미리 공급받기 때문에 자금 부담이 덜하다는 이유로 선분양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자재 바꿔치기를 비롯한 부실공사, 분양권 투기 등 선분양으로 인한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후분양제 적용 시 분양가 3.0~7.8% 인상
주택시장 후분양제 적용을 두고 여러 우려도 나온다. 우선 소비자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계약금, 중도금, 잔금 형태로 집값을 2~3년간 나눠내던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에서는 계약부터 입주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내 한꺼번에 수억 원의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분양가 상승 가능성도 있다. 소비자의 분양대금을 대신해 금융기관에서 공사비를 조달하면 그 이자비용이 분양가에 전가돼 선분양 때보다 분양가가 3.0~7.8%가량 인상될 것으로 추정된다. 분양가 2억9천만원짜리 아파트의 경우 후분양을 하면 선분양을 할 때보다 분양가가 870만원에서 최대 2천260만원이 오르는 것이다.
소비자 신용이 낮을 경우 대출 이자까지 높아져 주택마련에 필요한 비용 부담이 커진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60%를 가정하면 이자 부담이 900만~1천100만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대출받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후분양제를 하면 개인 신용 상태에 따라 대출 가능 금액이나 금리가 크게 차이가 날 것”이라며 “지금은 건설사 신용으로 분양가의 40~60%에 이르는 중도금 대출을 연 2~3%대의 저리로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 개인이 직접 대출을 받으면 이보다 높은 금리가 적용돼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건설사 추가자금 연 40조원 필요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건설사들은 완공 때까지 계약금이나 중도금 등을 받을 수 없어 건설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선분양과 비교해 추가로 조달해야 하는 주택건설자금이 연평균 4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최근 수행한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주택금융시스템 발전방안` 연구보고서에서는 “후분양제 시행이 민간 공급 물량 중 76.3%를 맡아온 중소 건설사의 사업 추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연평균 최소 8만6천~13만5천가구의 주택공급이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 아파트로까지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건설사의 재무 능력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선분양제에서는 건설사나 재건축 조합 등의 시행사가 일반 분양자의 계약금, 중도금을 통해 공사비를 조달할 수 있었다. 후분양제가 시행되면 공사비를 나중에 받아야 하므로 시행사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신용도가 높은 대형 건설사는 아파트 사업이 가능하지만 자금조달 능력이 부족한 중견 건설사들은 사업 추진이 어려워진다. 공사비를 모두 자체 조달해야 하므로 금융비용이 많이 늘어나 사업성이 악화된다고 판단되면 사업을 미룰 가능성도 있다.
/김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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