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기자 공무원과 동행취재<BR>6개팀 하루조사 100건 그쳐<BR>피해조사할 건수 2만건 달해<BR>이런식이면 200일 더 걸릴듯
`지진 피해조사하다가 올겨울 넘기게 생겼습니다`
`11.15지진` 발생 10여일이 훌쩍 지났지만 피해 등급을 판정하는 인력이 태부족이어서 신속한 복구와 이재민들의 귀가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응급복구는 대부분 마쳤지만 피해 정도가 행정적으로 확정되지 않아 근본적인 복구와 수리 작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피해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힘든 이재민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처지다.
주 피해지역인 흥해읍은 수십 년이 지난 낡은 건물들이 많아 `또 지진이 오면 집이 언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인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극히 꺼리고 있다. 이재민들의 수용소 생활이 장기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재민 수 역시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기 전날인 지난 21일(1천71명)보다 오히려 200여명이 증가한 1천285명(26일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신속한 복구를 위한 중앙정부나 경북도 차원의 인력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지부진한 조사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23일 공무원과 동행취재에 나섰다. 1차 피해 조사에 이어 최종적인 피해 등급을 보기 위해 북구청 건축허가과 박상구(57·건축학 박사) 건축지도팀장과 김병규(52·건축사) 복합민원 팀장이 현장확인에 나선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장리에서 이런 사실을 쉽게 알수 있었다.
이날 오후 피해 확인을 위해 이 마을 김정화(70·여)씨 가정을 방문한 박팀장 등은 김씨의 설명을 들어가며 서류에 기재된 사항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김씨의 집은 앞서 읍면동의 1차 피해 조사 결과 피해 3단계 중 가장 양호한 단계인 `소파(小破)`로 판정받았다. 가장 양호한 상황임에도 피해 정도 파악에 15분이 걸렸다. 1차 조사와 마찬가지로 현 상태로만 봤을 때 거주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30년이 넘은 집이라 잦은 수리와 증축 탓에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가로재이자 횡력을 견디는 인방(引防)이 없어 근본적으로 지진과 같은 충격에 약한 구조였다. 조사팀은 이를 김씨에게 알려주며 수리에 대한 각종 조언을 전하는 것으로 조사를 끝마쳤다. 김정화씨는 “구청에서 이렇게 와서 봐주고 수리에 대한 조언도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라면서도 “거주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지진이 또 언제 올지도 몰라 지금은 마을회관서 잠을 청하고 있다”고 불안해했다.
같은 마을 최정임(61·여)씨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2명의 자녀를 포함해 세 가족이 생활하고 있는 최씨는 지진 이후 농장 컨테이너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조사팀이 다녀가자 최씨는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를 떠나 지금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무섭다”며 “오늘 조사가 끝났으니 이제 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반면 집이 전파가 됐지만 수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딱한 처지도 있었다. 이상돈(88)씨는 이번 지진 피해로 인해 평생 살아왔던 집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집을 그대로 두면 내려앉으니 일단 대피소로 가서 생활하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조사팀의 조언을 듣던 이씨는 “혼자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며 “돈도 없고 걱정이 많아 당장 내일이 막막하다”며 생계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24일 흥해읍 중성리를 대상으로 한 동행취재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게걸음 상태를 보이고 있는 피해조사로 인해 이재민 대다수가 수용소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뾰족한 수단이 없어 답답하기는 포항시도 마찬가지다. 이날 1시간 30분가량에 걸쳐 2인 1조의 조사팀이 방문한 곳은 총 4가구. 많게는 1팀당 하루 18가구 정도를 소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북구청이 운영하고 있는 6개 팀 전부가 수행할 수 있는 조사는 하루 총 100여건에 불과하다. 포항 지진피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북구의 피해조사 접수건수가 총 2만여건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속도라면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도 200일이 넘게 걸리게 된다.
각 지역에서 300여명의 전문가가 업무를 돕고는 있지만, 이들은 급한 대로 거주 여부만 판단해주고 있는 상황이라 모든 업무를 오롯이 포항시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오는 29일까지 일주일 안에 모든 조사를 끝내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어, 이 상태라면 부실 조사라는 비판과 함께 이재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상황이다.
이와 관련, 포항시 피해조사팀 관계자는 “온종일 피해조사를 마치고 와서 기존 민원 업무까지 처리하다 보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상황”이라며 “인력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주어진 인원으로 업무처리에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