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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대로 가는 길

등록일 2021-09-22 19:47 게재일 2021-09-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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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삼척군 황지읍 전경. /광물자원공사 제공
1960∼70년대 삼척군 황지읍 전경. /광물자원공사 제공

“아빠, 오늘도 무사히!”

갱도 입구에 안전을 기원하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갱도로 한참 들어가면 탄맥을 따라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갈래마다 더는 들어갈 수 없이 막힌 곳이 있는데, 바로 막장이었다. 광부들은 삽과 곡괭이로 석탄을 캐며 더 깊이 길을 냈다.

 

덕대 - 남의 광산에서 계약을 맺고 채굴권을 얻어 광물을 캐는 사람.

간드레 - 광산의 갱 안에서 불을 켜서 들고 다니는 카바이드를 연료로 하는 등.

선산부 -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

후산부 - 석탄을 갱 밖으로 운반하는 광부.

동바리 - 갱도를 떠받치는 통나무.

쫄딱구덩이 - ‘작은 구멍’이란 뜻으로 영세탄광 또는 하청탄광을 일컫는 은어. ‘쫄딱’은 규모가 작고 망하기 쉽다는 의미.

개청부 - 하청탄광 광부들을 비하해 부르는 표현.

스데바 - 난장 잡부.

햇돼지 - 신입 광부.

열갱이 - 일에 능하지 못하고 둔한 광부.

선탄장 - 석탄 더미에서 돌을 골라내는 작업장.

 

“검은 황금을 찾아 팔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던 시대, 탄광촌에는 들도 길도 온통 까맸다. 송사리, 버들치가 유유히 노니는 강은 그림책에나 나오는 풍경이며, 금모래가 반짝이는 강은 동요로나 부르는 노래였다. 개울도 까맣게 흘러 아이들이 풍경화를 그릴 때면 검정 크레파스도 초록만큼 닳았다. 산하를 뒤덮은 석탄이 해맑은 동심까지 까맣게 물들였던 것이다.”- 김이랑 수필 ‘검은 강’ 중

석탄이 있는 곳은 고생대 지층이다. 광부들은 하루에 한 번 고생대와 현생대를 오갔다. 고생대 지층 막장에서 갱 바깥 현생대로 나오면 광부들은 먼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연기 한 모금 길게 뿜어낼 때, 살아서 나왔다고 안도했다. 그래서 광산촌 사람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 금기도 많았다.

 

- 출근할 때 다녀오겠다고 인사하지 않는다.

- 출근하려고 집을 떠날 때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 꿈자리가 사나우면 출근하지 않는다.

- 탄광일 나가기 전 까지는 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 여자가 그릇을 깨면 출근하지 않는다.

- 출근할 때 머리 위로 까마귀가 지나가면 재수가 없다.

- 부부싸움 후 갱내에 들어가지 않는다.

- 아침을 먹을 때 밥그릇이 엎어지면 출근하지 않는다.

- 광부가 출근할 때 여자가 앞길을 가로지르지 않는다.

 

출근할 때 인사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집을 나선 뒤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두려움을 이겨냈다. 흉몽을 꾼 날이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일당을 주었는데, 이를 ‘마른공수’라고 했다. 나쁜 꿈자리도 공식 결근 사유로 인정했다.

금기를 잘 지켜도 사고는 자주 터졌다. 갱내 곳곳에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가 도사리고 있어 언제 어디서 누가 다치고 목숨을 잃을지 몰랐다. 발파하거나 갱도가 붕괴되거나 지하수가 터지거나 유독가스가 폭발해 많은 광부가 갱내에 갇혔다. 바깥 동료들은 며칠 밤을 새면서 구조작업을 했고 동료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럴 때면 온 동네가 한꺼번에 초상을 치렀다.

갱내가 정비되면 다시 채굴에 들어갔는데, 광부들은 갱내에 죽은 동료의 영혼이 떠돈다는 것을 느꼈다. 발파할 때, “○○야, ○○야, ○○야, 나가자, 발파다, 나가자”며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른 뒤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렸다. 이는 자신이 죽은지 모르고 갱내를 떠도는 영혼을 갱 밖으로 인도하는 진혼의식이었다.

순직한 광부의 아내는 보상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딱히 갈 곳이 없는 여성은 그대로 남았는데, 어린 새끼들 데리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해서 탄광에서 특별히 배려했다. 갱에서 올라온 석탄 더미에서 석탄과 잡석을 가려내는 일을 주었다. 이러한 여성 광부를 ‘선탄부(選炭婦)’라고 불렀다.

개발독재 시절, 국가는 광부들을 국가의 동력을 캐는 ‘산업전사’라며 한껏 치켜올렸다. 하지만 그 말로는 좋지 않았다. 늙은 광부에게 남는 것은 폐 속에 탄광 한 구덩이었다. 숱한 광부가 진폐로 가쁜 숨을 쉬다가 삶을 마감했고, 석탄밥을 먹고 자란 아들딸이 검은 기억을 잊지 못하고 지금 우리 사회에 살고 있다.

그 자리는 이제 흔적만 남았다, 갱도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던 자리에 지금은 카지노와 위락시설이 밤이면 불야성을 이룬다. 카지노가 문을 열면 일확천금 눈먼 돈을 캐려는 광부들이 줄지어 들어간다. 또 다른 막장이다.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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