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어느 나라 말보다 감각적이다. 동작, 모양, 상태 등을 음으로 나타내는 소리글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자음과 모음의 음운 체계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한글 자모의 결합으로 표현하지 못할 음이 없을 정도이다. 우리말은 보이는 모습은 물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까지 가장 닮은 음으로 나타낼 수 있다.
미쁘다, 미덥다, 살갑다, 얄궂다, 퀭하다, 애틋하다, 아련하다, 아스라하다, 시큰둥하다, 뾰루퉁하다, 아늑하다, 청승맞다, 달짝지근하다, 살뜰하다, 얼큰하다, 거나하다, 허우룩하다, 푼푼하다. 진득하다, 삼삼하다, 함초롬하다, 새초롬하다, 늙수그레하다 등, 우리말 형용사는 다른 언어가 흉내조차 못 내는 표현이 수두룩하다.
몽총하다 - 융통성 없이 새침하고 냉정하다.
- 박력이 없고 대가 약하다.
- 부피나 길이가 좀 모자라다.
‘몽총’이라는 어감을 음미해보자. ‘몽’에서 ‘몽땅하다’가 연상되고 ‘총’은 사물에서 튀어나온 오라기로 꼬리 또는 ‘짧다’가 연상된다. 또한 ‘시치미’가 연상된다. 그래서 시치미 떼듯 새침하게 굴거나 길게 이어가지 못하거나 좀 모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얼마나 기가 막힌 표현인가.
가다, 오다, 먹다, 뛰다 같은 동사는 동작을 나타내므로 외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형용사는 다르다. 우리말은 상태를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 비유를 곱씹어보면 참 재미있다.
- 눈 : 눈이 높다, 낮다. 눈 밖에 나다, 눈 코 뜰새 없다, 눈에 익다, 눈에 밟힌다, 눈 빠지게, 눈 뜨고 코 베간다.
- 코 : 큰코 다친다, 코를 납작하게, 콧방귀, 콧대가 높다, 코 꿰다, 콧대를 꺽다.
- 귀 : 귀가 얇다, 귀 따갑게, 귀가 뚫린다.
- 입 : 입이 걸다, 입이 야물다, 입을 맞춰두다, 입안에 혀처럼 감긴다, 입방정을 떨다.
- 목 : 목 잘린다, 목 빠지게 기다린다, 목구멍에 거미줄치랴,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 간 : 간이 크다, 작다, 간이 부었다, 간이 떨린다, 간을 빼준다.
- 손 : 손이 크다, 손이 작다, 손이 검다, 손 털다.
- 발 : 발이 짧다, 발이 길다, 발이 넓다. 손발이 맞다, 발이 빠지다, 발목 잡히다.
- 다리 : 양다리 걸치다, 남의 다리 긁는다, 한 다리 건넌다.
- 어깨 : 어깨에 힘 주다, 어깨 너머로 배우다, 어깨(깡패).
- 머리 : 머리 꼭대기에 앉아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
이러한 표현은 문장에서 주어의 상태를 나타내지 않는다. ‘눈이 높다’는 수준이 높은 것에만 관심을 두고 여간한 것은 시시하게 여길 만큼 거만하다는 뜻이다. ‘콧대가 높다’도 비슷한 뜻이다. ‘귀가 얇다’는 속는 줄도 모르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는 뜻이다. ‘발이 길다’는 음식 먹는 자리에 우연히 가게 되어 먹을 복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말을 곱씹어보면 표현이 매우 직접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목이 빠지게 기다렸으니 얼마나 간절했다는 말인가. 배 터지게 먹다, 박 터지게 싸우다, 목 터지게 부르다, 눈 빠지게 보다, 쌔 빠지게 일하다, 배꼽 빠지게 웃다, 뼛골 빠지게 고생하다, 등이 이런 갈래의 말이다.
이러한 말은 비유의 묘를 잘 살린다. 상태를 사람의 실제 행위로 표현해 본뜻 이외의 뜻을 은유로 나타낸다. ‘간이 크다’는 간의 크기만 말하는 게 아니다. ‘대담(大膽)하다’라는 형용사를 실제 사물로 비유한 문장이다. ‘애(창자)가 끓다’, ‘염통에 털이 나다’,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간이 떨어질 뻔하다’, ‘손끝이 맵다’, ‘입이 야물다’라는 표현도 이와 같은 비유이다.
쌀쌀한 가을 이맘때면, 외롭고 허전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을 우리는 ‘옆구리가 시리다’로 간단하게 표현한다. 잘 먹고 마음 편하게 사는 상태를 우리는 ‘배부르고 등 따시다’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우리말 관용어에는 직유가 풍성하고 은유가 넘친다.
우리말은 우리 민족성의 보고이다. 은근, 풍자, 해학 같은 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말에 실려 속담이 되고 관용어가 되었다. 다채로운 정서 또한 형용사와 부사의 발달로 나타났다. 우리말은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