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 중생(衆生)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중생의 뜻은 두 갈래로 분화되었는데, 하나는 끊임없이 죄를 지으며 해탈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또 하나는 발음이 ‘짐승’으로 변해 사람을 제외한 동물만을 가리킨다.
하늘을 나는 짐승은 ‘날짐승’, 땅 위를 기는 짐승은 ‘길짐승’이다. 들에 사는 짐승은 ‘들짐승’이며 물에 사는 짐승은 ‘물짐승’, 산에 사는 짐승은 ‘산짐승’이다. 집에서 키우는 짐승은 ‘집짐승’이며 한자어로는 가축(家畜)이다. 이들을 통틀어 금수(禽獸)라고 하는데, ‘禽’은 날짐승이며 ‘獸’는 길짐승이다.
우리말은 짐승뿐만 아니라 그것의 새끼도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였다. 사람으로 치면 ‘어린이’라고나 할까,
풀치 : 갈치 새끼.
강아지 : 개 새끼.
망아지 : 말 새끼.
고도리 : 고등어 새끼.
간자미 : 가오리 새끼.
꽝다리 : 조기 새끼.
능소니 : 곰 새끼.
개호주 : 호랑이 새끼.
꺼병이 : 꿩 새끼.
애소리 : 날짐승의 어린 새끼.
초고리 : 매 새끼.
병아리 : 닭 새끼.
솜병아리 : 알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솜털 같은 병아리.
서리병아리 : 서리가 내릴 즈음 알에서 나온 병아리.
숭어/모쟁이, 조기/깡다리, 농어/껄떼기, 멸치/잔사리, 명태/노가리, 노래미/노래기, 누치/대갈장군, 방어/마래미, 웅어/모롱이, 잉어/발강이, 민어/암치, 상어/전데미, 전어/전어사리
암소의 배에 있는 송아지를 ‘송치’라고 불렀다. 길짐승에게 사람처럼 태명을 붙인 이유는 소를 가족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밭을 갈고 수레를 끌고, 농사에 가장 큰 노동을 담당하는 소는 사람과 가장 밀착된 교감이 있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소를 사람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동부레기 : 뿔이 날 만한 나이가 된 송아지.
부룩소 : 아직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 엇부루기.
하릅송아지 : 태어난 지 1년 된 송아지.
불강아지 : 몹시 여윈 강아지.
찌러기 : 성질이 몹시 사나운 황소.
푿소 : 여름에 생풀만 먹고 자라 힘을 잘 못 쓰는 소.
애돝 : 한 살 정도 된 돼지.
햇돝 : 그 해에 태어난 돼지.
짐승은 새끼를 여러 마리 낳는다. 한 태에서 낳은 새끼 가운데 제인 먼저 나온 놈을 ‘무녀리’라고 불렀다. ‘門열이(문+열+이)’ 즉 문을 열고 나왔다는 뜻으로 발음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무녀리는 산도를 연다고 안간힘을 써서 그런지 다른 새끼들에 비해 몸이 약하다고 한다. 그래서 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을 빗대어 비유하는 말로도 쓴다.
날짐승도 아니고 들짐승도 아닌 짐승이 있다. 닭과 오리인데, 둘은 멀리 높이 날지 못하거니와 걷거나 뛰는 동작도 서툴기 그지없다. 저리 굼떠서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은데, 멸종되지 않고 종족을 보전하고 있다. 사람에 의해 길러진 ‘길짐승’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사람이 짐승의 생태에 개입한 건 개가 처음이라고 한다. 집짐승화되면서 개는 야성을 버리고 주인에게 아양을 떠는 동물이 되었다. 천적이 우글거리는 야생에 비하면 집은 먹이와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니, 주인에게 충성을 표시하는 습성이 길러진 것이다.
개들은 주인을 보면 배를 발랑 드러낸다. 포유류는 신체에서 배가 가장 약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강자에게 배를 드러내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매우 위험한 행위이다. 주인은 나를 죽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행위이다.
애완견은 야생에서 살지 않아도 되니, 죽어라 뜀박질할 일도 없다. 천적의 눈을 피해 숨거나 몸을 움츠릴 일도 없다. 사람에게 재롱을 떨면 되고 예쁘게 보이면 된다. 그래서 사람과 함께 사는 개는 새끼를 낳을수록 예쁘고 귀엽게 진화한다. 요즘 반려동물을 보면 다 그렇다.
야생에서 살 자유를 포기한 집짐승과 야생에서 마음껏 살아가는 들짐승, 둘 중 누가 행복할까.
생뚱맞은 말 같지만, 이는 인간에게 근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교칙, 규칙, 윤리, 도덕에 길들여진 존재인 인간, 밥줄을 쥔 ‘센놈’에게 아양을 떨어야 하고 잘 보여야 하고 더러는 충성을 서약해야 한다. 이렇게 살라고 태어난 목숨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모든 속박을 끊고 산들바다로 떠나 원시의 자유를 누린다.
어느 바닷가에서 닿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속이 탁 트인다.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날짐승을 보면 시원하고 유려한 날갯짓을 카메라에 담는다. 자유를 향한 동경 한 컷이다.
/수필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