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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등록일 2022-02-15 20:28 게재일 2022-02-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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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수

떨리는 먹물 한 방울로 내 미망을 점안하였습니다.

 

삼라만상엔 없는 형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미망의 불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표적이 없는 내 마음을 향하여 불의 활을 당겼습니다.

 

드디어 강물은 흐르고 불길은 타오릅니다.

 

배는 떠나고 끊어진 밧줄도 먼 바다로 떠나고

 

내가 찍은 먹물 한 점에서 불의 날개가 퍼덕거립니다.

 

내가 그린 바위는 깨지고 물소리는 부서집니다.

 

내가 쓴 글씨는 목청을 떨고 있습니다.

 

마음 한 자리엔 시퍼렇게 서슬이 피어 오릅니다.

 

어둠 속에 버렸던 개울 물 소리가 돌아와 빛납니다.

 

아 버렸던 내 마음이 무명에서 돌아와

 

흐느끼고 있습니다.

 

미망의 불 한 점, 점안 하나를 통해 모든 것이 불타오르지만 결국 고요 속의 개울물 소리만 남는다. 어떤 미지의 형상 하나―점안 하나―의 발견은, 저 무명 세계로의 추락을 통해 튀어 오르는 불꽃들을 만들 것이다. 그 불꽃들은 모든 현상들을 휩쓸어갈 터, 시의 위력은 이렇듯 막강하다! 하지만 타고 있는 그 불꽃들이 다 소진될 땐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울물 소리만 들릴 것이다. 그리고 흐느끼는 마음.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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