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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역사

등록일 2022-05-02 18:07 게재일 2022-05-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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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우리 집안 남자들은 난생설화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배꼽이 없다

그러니 탯줄 없는 남자들을 무슨 수로 잡아매나

밤하늘엔 연줄 끊어진 연들처럼 별들이 떠돌고

우리집 나그네,라는 우리 친척 여자들의 말 속에는

모계사회의 전통가옥과 거미줄과 삐걱거리는 툇마루뿐

(중략)

배꼽이 없는,

그래서 세상에 아무 인연도 까닭도 없이

엄마는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피똥 싸듯 나를 낳았다

어서어서 자라서 훨훨 날아가라고 서둘러

날개옷 같은 하얀 배냇옷 한 벌을 지어놓았다

서른일곱에 정착도 못하고 나는 지금도 어딜 싸돌아다닌다

 

“우리 집안 남자들은” 난생이어서 탯줄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싸돌아다니며 사는 운명을 갖는다. ‘엄마’가 “피똥 싸듯” 낳은 ‘나’는 운명적으로 “연줄 끊어진 연들처럼” 떠돌아야 한다. “세상에 아무 인연도 까닭도 없이” 태어난 ‘나’도 새처럼 날아다녀야 하는 운명, ‘배냇옷’ 자체가 날개와 같았다고. 이 새는 비상(飛翔)과 해방의 이미지와는 무관하며, 정착지 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남자들의 운명을 상징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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