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도를 넘지 마라”고 했다.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조작 여부를 수사하는 데 대해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불만을 표시했다. 언뜻 보기에 문 전 대통령이 부하를 보호하고,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대인배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그런 첫인상에 의심이 생긴다.
2020년 9월 21일 실종된 어업지도원, 이대준 씨를 하루 뒤 북한군이 사살, 소각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 씨가 월북했다가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발표대로라면 그는 대한민국이 싫어서 달아났고, 우리와 대치 중인 북한에 귀순했다. 죽었어도 동정의 여지가 없다. 자기 의지로 죽을 곳을 찾아갔다. 이 씨 가족도 죄인이다. 연좌제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월북자 가족이 겪는 고통은 여전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국방부가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라고 발표했다. 해경도 “수사했지만,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라고 뒤집었다. 간단한 문제 같지만, 당사자에게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적국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많은 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부역자로 낙인이 찍힐뻔한 이 씨가 정부의 부실 대응 탓에 희생된 억울한 국민이라고 인정받는다. 가족도 손가락질이 아니라 사과와 위로, 보호와 보상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정쟁의 대상이면서 인권 문제다. 두 가지 성격을 다 담고 있다. 하지만 국가 공권력과 힘없는 개인이 얽혀 있다면, 국민의 인권, 생명 문제를 먼저 살펴보는 게 순서다. 국민 옆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이 이 씨와 그 가족에게 사과부터 하지 않고, “도를 넘지 말라”며 정치적 반격을 한 것은 실망스럽다.
문 전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실을 추정”했다고 한다. 이 씨가 월북했는지, 표류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단정할 수 없다면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게 하는 게 형사법의 원칙이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보도를 보면 단순히 부족한 정보로 추정만 한 것인지도 의문이 생긴다. 조작 가능성이다. 당시 조사 당국은 이 씨가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정보를 애써 무시했다. 자진 월북이 아니라는 다른 정황들도 모두 외면했다. 관련 첩보를 삭제한 흔적도 있다. 채무 등 이 씨 형편도 과장됐다.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의심된다. 국가 공권력이 힘없는 하위 공무원이 살해되도록 방치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범죄자를 만들었다면 중대한 인권 범죄다.
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월북’이라는 판단을 ‘최종승인’, ‘수용했다’라고 밝혔다. 판단을 잘못하고, 조작했다면 자기 책임이라는 말인가. 아니다. 교묘한 말장난이 숨어 있다. 그는 자신이 ‘판단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보고와 판단을 ‘수용했다’라고 했다. 조작이나 오판은 부하들 책임이라는 말이다. 자신은 잘못된 보고를 받고 ‘수용’한 책임밖에 없다.
문 전 대통령은 “다른 가능성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발표가 조작되었다는 비난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가능성이나, 다른 증거를 확인하려면 수사가 필요하다. 그 증거가 어디 있나. 문 대통령은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볼 수 없게 봉인했다. 유족에게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해놓고, 확인조차 못 하게 만들었다. 풀어줄 수 있는 건 본인이다. 그런데 감사원의 서명 조사 요구에도 그는 “무례하다”라고 발끈했다.
문 전 대통령은 “오랜 세월 국가 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는다”라고 비난했다. 증거를 조작하고, 불가능한 판단을 억지로 내려 인권을 짓밟은 ‘공직자의 자부심’은 강조하면서, 확인하지도 못한 혐의를 씌워 고통받은 피해자에게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무례하고, 도를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감히 전직 대통령을 건드린다는 말인가.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 황제라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는 게 민주국가다. 국민의 편, 인권의 눈으로 이 사안을 바라볼 때 국민도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할 것이다. /본사 고문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중앙SUNDAY 고문,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