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경주 표심 여론조사<br/>경주, 역대 선거판 예상밖 결과 적잖아 ‘천년고도의 자존심’ 변수… 타 지역보다 총선분위기 조기 과열 <br/>김석기, 이승환·박진철 양자대결서 ‘1강 구도’ 뚜렷… 의정활동 긍정적 평가 52.5%·부정평가도 30.5% <br/>이, 단시간 다수 지지층 확보·박, 얼굴알리기 등 국힘 후보 3명 선거운동 채비… 민주 후보 한영태 거론
경주는 선거판이 조금 독특하다. 역대 선거를 보면 민주당 의원이 탄생하기도 했고, 무소속 후보가 여권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되는 등 예상외 결과가 나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실제 경주 유권자들은 아무리 유력한 후보라도 한번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입방아에 오르면 단칼에 정리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천년고도의 자존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6월 현재 경주의 22대 총선 분위기는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빨리 달아오르는 조짐이다. 여권 공천을 바라고 뛰는 예비후보들이 이미 사무실을 마련하는가 하면 조직 구축에 나서면서 벌써 장이 서기 시작했다.
경주는 21대 총선에선 유독 ‘부침’이 많았던 지역으로 꼽힌다. 박병훈 후보 경선 승리→최고위원 재심→김원길 후보 공천→김석기 VS 김원기 경선→김석기 공천 등 반전의 연속이었다. 당 안팎에서조차 ‘호떡 공천이냐’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였다. 김석기 의원은 당시 지옥과 천당을 오르내리며 우여곡절 끝에 공천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내년 22대 총선에서 당선되면 지역 최초 연속 3선에 성공한 국회의원으로 기록된다. 김일윤 전 의원이 4선(13·14·16·18대) 고지에 올랐지만 그는 15·17대 총선에서 낙선한 탓에 연속 3선 의원이라는 타이틀은 갖지 못했다.
경주는 또 도시와 농촌이 복합된 도농복합도시다. 정치 성향은 과거엔 야권 기질이 있었으나 근래 들어서는 ‘보수 중의 보수’ 지역으로 분류된다. 1995년 이후엔 보수 계열 의원들을 계속 당선시켜왔다. 경주에서 22대 총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김 의원의 수성 여부다.
김 의원은 본지가 에브리씨앤알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의힘 경선 다자대결 조사에선 38.6%를 받아, 일단은 경쟁자들을 여유롭게 따돌렸다. 이 설문에선 이승환 전 기무사령부 방첩처장이 11.9%, 박진철 변호사가 5.6% 지지를 얻었다. 김 의원은 이 전 방첩처장과 박 변호사와의 양자대결에서도 큰 격차로 앞섰다. 이 전 방첩처장과의 양자대결에서 김 의원은 43.2%, 이 전 방첩처장 17.6%였고, 박 변호사와의 양자대결에선 김 의원 44.6%, 박 변호사 9.8%를 기록했다.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김 의원이 오차범위를 넘어 1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사카 총영사를 역임한 김 의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관계가 정상화되는 과정에 가교 역할을 맡는 등 위상도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할 당시 김 의원은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여권 내 인정받는 일본통이기도 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일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 김 의원이 득을 볼 것이란 시각이 적잖다.
다만, 부동층이 30% 이상인 상태에서 김 의원의 의정활동 평가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정당 지지도보다 낮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또 21대 총선 당시 호떡공천 논란을 일으켰던 점과 서울경찰청장 재직시절의 용산참사 사태, 선거공약 이행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 등은 마이너스 요소로 꼽힌다. 현재 국민의힘 내에서 21대 선거 당시 막장 공천으로 당선된 의원들은 내년 22대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한 만큼 호떡공천이 그 안에 포함될지 여부도 김 의원에게는 부담이다.
초·중·고와 대학까지 경주에서 나와 일명 ‘경주 토박이’로 불리는 이승환 전 기무사령부 방첩처장은 첫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등 선전하고 있다. 다자대결에서 11.9%를 기록한 이 전 방첩처장은 김 의원과의 양자대결에서도 17.6%를 얻어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보여줬다. 정치 신인이자 낮은 인지도로 인해 고전이 예상됐으나 짧은 기간 안에 지지층을 상당히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전 방첩처장은 현재 수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ROTC 1기로 육군본부 기무부대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5월에는 경주발전정책 연구소를 열어 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현안을 챙기는 등 시민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지역밀착형 행보를 통해 외연확장에 나설 경우 존재감이 커질 소지가 적잖아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육군대장 이력의 정수성 전 의원이 경주에서 두 번 당선된 적이 있어 또 군 출신인가 하는 점은 극복 과제다.
박진철 변호사는 다자대결에선 5.6%, 김 의원과의 양자대결에서는 9.8%를 받아 불씨를 살렸다. 그는 지난 20대 총선에 신인으로 출마했지만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공천을 받지 못했었다. 이번 조사결과만 놓고 볼 때 지역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
박 변호사는 현재 공천 실패를 재연하지 않기 위해 얼굴 알리기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경주 선거 홍보의 상징적 장소인 중앙시장 사거리에 ‘법정책연구소’를 열어 지역민들과 소통 중이다. 특히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는 신평 변호사와의 관계가 밀접하다. 신 변호사는 지난 17일 박 변호사의 법정책연구소 개소식에 참석, 경주를 바꿀 새 인물로 그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이 다가올 총선에서 변수가 될지는 미지수지만 경주는 윤 대통령 지지도가 높다는 점에서 신 변호사의 지원이 이어진다면 박 변호사로선 예상밖의 이득을 챙길 수도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선 빠졌지만 지난 총선 당시 공천 피해 당사자로 불렸던 박병훈 전 경북도의원의 재등판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 전 도의원은 경북매일과의 통화에서 출마 여부를 “고민 중”이라며 일단은 말을 아꼈다. 박 전 도의원은 오랜 기간 정치판에서 성장, 고정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출마를 결심할 경우 선거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 전 도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조직통합본부 경북본부장, 정책총괄본부 농어촌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통합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어 여전히 출마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번 경주 조사에서 나타난 지지후보가 ‘없음·잘모르겠다’는 30% 안팎의 부동층이 향후 국민의힘 경주 경선 판도를 뒤흔들 요인으로 꼽힌다. 얼마든지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의원의 의정평가가 국민의힘 지지도와 비교했을 때 경주시민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놓고 향후 공방이 예상된다. 김 의원은 의정활동 설문에서 52.5%의 긍정평가를 받았으나(부정평가 30.5%, 잘 모름 17%), 국민의힘 지지도 61.6%보다는 9.1%포인트 낮았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와 비교했을 때에도 김 의원 평가는 10.3%포인트 낮게 나왔다. 경쟁 후보들은 김 의원의 불안요소를 부각시키며 집요하게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진보진영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한영태 경주시당협위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제8대 경주시의회 의원을 지낸 한 위원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주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당세 확장을 위해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결의문 채택 등으로 매우 분주하다. 특히 경주는 감포와 양남 등 동해안을 끼고 있어 후쿠시마 오염수에 민감한데, 한 위원장은 이점을 파고들며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잰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조사는 경북매일신문이 에브리씨앤알에 의뢰해 지난 24∼25일 양일간에 걸쳐 경주시민 만 18세 이상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무선 100% ARS 전화조사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p다. 응답률은 5.7%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사개요 = 이번 여론조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 100% ARS 전화조사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응답률은 5.7%다. 피조사자 선정은 통신사로부터 무작위 추출 제공받아 휴대전화 가상번호 2만4천명(SKT: 7천200명 KT: 1만 4천400명 LGU+: 2천400명) 사용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참조하면 된다.
/황성호·박형남·고세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