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도 박도 못한다”는 우리말은 일이 난처하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의미의 관용어다. 한자 말로는 진퇴유곡 혹은 진퇴양난에 비유된다. 한때 인터넷상에는 이 말을 줄여 ‘빼박’이라 부르기도 했고, “할 수 없다”는 뜻의 영어 can’t를 붙여 ‘빼박캔트’라고도 불렀다.
국민연금 개혁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금개혁을 차일피일 미루다 끝내 개혁을 거부했다. 국민 눈치보기 내지 인기영합적 태도다. 누가 보더라도 고갈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이 인기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 그룹이 연금개혁 시안을 내놓았다. 보험료를 더 내고 시기는 늦춘다는 것이 골자다. 2055년 예상되는 연금 고갈 시기를 최장 2093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이다. 현재 20세 청년이 90세가 될 때까지 연금이 소진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는 데 초점을 두었다.
문제는 소득대체율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이 인상되지 않으면 연금소득 자체가 초라해지기 십상이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연금 보험료 인상의 효과가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안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이 오가고 있다.
그야말로 빼박도 못하는 개혁안이지만 그래도 여론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밀어붙여라고 하는 쪽이 우세하다. 복지부 산하 16명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싸매고 안을 내놓았으니 지금부터라도 후퇴없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의 70%가 거세게 반대한 프랑스 연금 개혁안을 강력히 밀어붙인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우정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