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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답은 듬뿍듬뿍

등록일 2023-09-19 18:08 게재일 2023-09-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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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키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언스플래쉬

최근 나를 골치 아프게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다름 아닌 작업실에서 돌보는 식물에 관한 것. 이 생명력 넘치는 푸릇푸릇한 존재는 작업실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다. 보고만 있어도 숲에 온 것처럼 충만해지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매일 부지런해진다. 작업실에 들르지 않는 날이면 화분들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무엇보다 역동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인초는 하룻밤에 거대한 잎을 피워 내고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잎이 다음 날이면 누렇게 변해 우수수 떨어지기도 한다. 너희들, 정말 묘하게 예민하고 조용히 강인하구나. 여린 잎사귀를 매만지면서 생각한다. 식물 키우기는 정말이지 어렵다고.

작업실에는 꽤 많은 식물이 있다. 키가 나를 훌쩍 넘어서는 여인초부터 고무나무, 홍콩야자와 크로톤, 고려담쟁이, 선인장, 다육식물까지. 작업실을 함께 꾸려가는 시인과 의기투합하여 하나씩 들여놓은 것이다. 식물에 대해 잘 알아서 들였다기보다 앞으로 알아가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뭔가를 키우는데 능한 사람은 아니다. 혼자 산 지 십 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나 자신을 돌보는 것에도 서투르다. 나의 반려견도 제대로 살피는 건지 알 수 없다. 식물도 내버려두면 알아서 큰다고 생각했다. 생명과 공생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관심과 관찰이 필요한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혀를 쯧쯧 찰지도 모른다. 뭔가를 키울 자격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해피트리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한쪽 구석에 놓여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자라던 녀석이라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컸다. 나는 해피트리를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에 놓아도 보고, 통풍을 위해 창가에 두고, 비 오는 날 밖에 내어놓아도 딱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식물 고수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해피트리가 갑자기 이렇게 시들시들해졌는데, 이유가 뭔지 아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였다. ‘과습인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 식물을 키우는데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물의 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의 작업실에서 키우는 율마가 시들시들하다고 했을 때, 나는 ‘비 오는 날 내어 놓아라’는 답을 준 적이 있었다. 나의 식물들도 그렇게 해서 몇 번 살려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조언대로 동생의 율마는 비를 흠뻑 맞았고, 다음 날 완전히 죽어버렸다고 했다. 뿌리까지 모조리 썩었다는 것이었다. 너무 신경 써서 물을 줬던 것이 문제였던 걸까. 해피트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녀석은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한 식물을 보내고, 나는 다른 식물들에 물을 주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흙을 만져서 완전히 마르지 않으면 절대 물을 주지 않았고 분무도 조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크로톤이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번 주 비 오는 날에 밖에 내어놓았던 게 문제였나. 작업실의 공기가 너무 습한 걸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돌 하나를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토요일 아침, 작업실 문을 여니 내가 그렇게나 고민했던 크로톤이 잎을 활짝 펴고 살아나 있었다. 함께 작업실을 쓰는 친애하는 시인이 간밤 다녀간 모양이었다. 살펴보니 작업실 모든 식물에 듬뿍듬뿍 물을 준 흔적이 있었다. 식물들은 파릇파릇해졌고 잎사귀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답은 물이었다. 물을 아끼는 게 아니라 더 줘야 했다. 그간 엉뚱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허무했다. 물을 넘치게 주면 죽는다. 그러나 물을 주는 것을 두려워해도 안 된다. 식물을 키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그것은 비단 식물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나를 지나쳐 간 무수한 관계들을 떠올렸다. 사랑을 아끼고 상대가 메마르지 않을 정도만 관심을 표했던 지난날의 나를 상기했다. 마음을 모두 쏟아 부으면 상대가 떠나갈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서로가 시들해진 것을 발견하면 당황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듬뿍듬뿍 물을 주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나는 상대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여전히 나는 식물을 키우는 것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잘하지 못한다. 실패할까 봐 쉽게 겁을 먹고 해결 방식이랍시고 엉뚱한 대책을 내어놓는다. 어떤 순간은 일상적이지만 새삼스럽다. 식물로 인해 골치가 아프고 거기에서 뭔가를 배운다. 햇볕과 물과 바람을 듬뿍듬뿍 맞고 나도 식물들도 자라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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