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김호령과 함평 타이거즈의 감동

2016년 10월 11일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프로야구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 0대 0으로 팽팽한 9회말 트윈스가 원아웃 주자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3루 주자가 홈을 밟으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상황. 김용의가 좌중간으로 날린 타구는 의심할 여지없이 끝내기 안타로 보였다. 혹 외야수가 잡는다 하더라도 3루 주자의 태그업 득점을 막을 가능성은 없다. 보통 이런 경우 외야수들은 공을 포기한다. 잡아봤자 경기는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거즈 중견수 김호령은 수십 미터를 전력질주한 끝에 공을 잡았다. 그러고는 혼신을 다해 송구했다. 타이거즈는 탈락했지만 김호령의 눈물겨운 투혼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꼴찌로 지명된 김호령의 선수 경력은 보잘 것 없다. 규정타석을 채운 게 단 한 시즌에 불과하며 통산 타율도 2할4푼밖에 되지 않는다. 뛰어난 외야 수비와 주루 능력을 가졌음에도 공격력이 약해 만년 후보다. 나이가 들며 경쟁력을 점차 잃어 2군에서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불성실하고 거들먹거리기라도 하면 차라리 미워할 텐데 누구보다 성실하고 묵묵하며 바른 인품을 가진 선수라 팬들에겐 아픈 손가락이다. 죽어라 공부하는데 고시에서 매번 낙방하는 막내아들 보는 마음이랄까. 150억원의 사나이 나성범, 경기 출장이 언제나 보장된 최원준, 2024년 우승에 역할을 한 이우성, 백업 선수로 나름의 팬덤을 거느린 박정우 등이 외야를 점거하는 사이 김호령은 자리를 잃었다. 점차 팬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지던 중 기회가 왔다. 나성범이 올해도 부상으로 ‘유리몸’이라는 오명을 쓴 채 이탈했고, 이우성과 최원준은 ‘철밥통’이라 할 만큼 감독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았음에도 처참한 부진을 거듭하다 2군으로 내려갔다. 이들 외에도 김도영, 김선빈, 윤도현, 이의리, 곽도규, 황동하 등 주전들의 부상이 겹치면서 2군 선수들이 1군에 대거 콜업될 때 오선우, 김석환, 고종욱, 박민 등과 함께 김호령도 올라왔다. 타이거즈의 2군 경기장이 전남 함평에 있는 관계로 팬들은 이들을 ‘함평 타이거즈’라고 부른다. 주전들이 뛸 때 10개 팀 중 9위로 추락해 있던 팀은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의 믿을 수 없는 선전에 힘입어 6월 승률 1위를 기록하며 단독 2위로 올라 왔다. 이 기간 동안 ‘함평 타이거즈’는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장면을 연일 보여줬다.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뗀 오선우의 꾸준한 활약은 물론 중요한 경기 막판 승부처에 대타 역전 홈런을 친 김석환, 타석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어떻게든 출루해내는 이창진 등이 그랬다. 고종욱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매 경기 매 타석마다 간절함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6월 29일 경기에서 634일만에 3안타를 친 그는 수훈선수 인터뷰 도중 임신한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가장 뭉클한 건 역시 김호령이다. 7월 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첫 타석에서 올 시즌 첫 홈런을 치더니 다음 타석에서는 프로 데뷔 첫 만루홈런을 치며 생애 처음 한 경기 두 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두 번의 홈런 장면에서 다른 선수들이 다 하는 그 흔한 ‘빠던(타격 후 배트를 요란하게 던지는 쇼맨십 행위)’이나 화려한 세리머니도 없었다. 늘 그렇듯 열심히 베이스를 돌다가 타구가 담장을 넘는 걸 확인한 순간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수줍게 기쁨을 표현했다. MVP로 선정돼 인터뷰를 하면서도 달변은 아니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과 겸손함을 눌러 담아 소감을 말했다. 그날 많은 타이거즈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가족이나 친구도 아닌 남이 잘 되기를 이처럼 바란 적이 없다고들 했다. 착하고 성실하고 겸손하고 묵묵하고 헌신적인 사람이 오랜 시간을 견뎌 마침내 빛을 보는 서사를 김호령은 우리에게 보여줬다. 주전 선수들이 돌아오면 김호령을 비롯한 ‘함평 타이거즈’는 다시 2군으로 내려갈지 모른다. 하지만 2025년 여름, 이들이 보여준 절실함과 감동의 야구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별 감흥 없이 함부로 흘려보낸 한 경기가 그들에겐 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소중히 생각지 않고 마땅한 권리인양 여겼던 한 타석이 그들에겐 평생 꿈꿔 온 순간이었다. 김호령의 수줍은 미소를 계속 보고 싶다. 야구 앞에 진실하고 노력 앞에 정직하며 기회 앞에 간절한 사람이 잘 되는 걸 계속 보고 싶다. /이병철(시인)

2025-07-20

미지의 행성에서

요즘 나는 ‘플래닛 크래프트’라는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다. 게임은 단순하다. 지구에서 무거운 죄를 저지른 게임 속 주인공은 자신의 형량을 없애기 위해 이름도 없는 외계 행성으로 떠나야만 한다. 형량을 없애는 대신 주어진 주인공의 임무는 외계 행성을 사람이 살 수 있는 지구의 환경을 만드는 것, 그리고 머지않아 외딴 행성에 홀로 떨어진다. 주인공은 미지의 행성을 떠돌며 맵을 넓히는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물과 음식, 공기 등의 자원을 끊임없이 모아야만 한다. 홀로 외롭게 떨어진 행성은 때론 아름답기도, 또 때로는 빛 한줌 없는 어둠속에 잠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도 한다. 그럴 때마다 통신 기기에 ‘라일리’라는 사람이 말을 걸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약간의 팁을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어둠을 더듬어 나가며, 결국 이 행성을 지구처럼 테라포밍 후 탈출해야 하는 게임이다. 게임 속 아이템은 꽤나 디테일하다. 철, 마그네슘, 규소, 티타늄, 코발트를 모아 약한 인간의 피부를 보호할 수 있는 우주복을 만들고 일정 시간 버틸 수 있는 산소통도 만든다. 희귀 광물인 알루미늄으로 각종 추가 장비나 실험 공간 등을 건설하고, 우라늄을 캐서 로켓이나 제트백을 만들기도 한다. 각 광물은 특정 구간에서만 만날 수 있고, 또는 시간에 따라 캘 수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꽤나 오랜 기간 맵을 직접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혀야만 한다. 이 게임의 묘미는 어둠 속에 잠긴 지형이라던가 붉은 색으로 뒤덮인 기괴한 지형, 나무가 거꾸로 자라는 지형 등 실제 외계 행성을 탐험하는 듯한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모래 먼지로 뒤덮인 장소는 한치 앞도 안 보이기 때문에 지나치기 쉽고 때론 무섭기 때문에 피하곤 하지만 호기심으로 그 지형을 점차 파고들다 보면 결국 가장 한가운데에 가장 값어치 있는 광물이 있는 이벤트가 숨어 있는 등, 실제 모험을 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안겨 준다. 게임은 위협을 가하는 악당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스러운 요소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에게 쫓기듯 바삐 움직여야 한다. 광물이나 씨앗을 캐서 꽃과 나무를 자라게 하고, 미생물을 연구해서 물 속 식물과 물고기를 만들어 내고, 유전자를 연구해서 동물을 탄생시키는 등등, 말 그대로 황무지였던 외계 행성 속의 창조주가 되어 꽤나 집중해서 플레이하게 된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겨우 집 근처만 맴돌던 나는 점차 행성 곳곳을 누비며 다니게 된다. 두려움으로 내딛던 유난히 공포스럽던 땅도 게임의 막바지에 이르면 텔레포트를 타고 앞마당을 거닐 듯 가볍게 날아다닌다. 결국 모든 것은 처음과 시작이 어려울 뿐, 거듭 반복된다면 결국 익숙해질 것이고 또 다른 나만의 노하우가 생길 것이며 그러다보면 결국 모든 행동은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를 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근래의 나는 조금 불안했다. 이직한 회사 내 조직에서 빠르게 적응해야 할 것만 같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충분히 어필하면서 성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면 참 좋으련만, 이상하게도 나는 시선과 관심이 압박감처럼 느껴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경직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까지 움츠러들 필요는 없을 텐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거듭 속상해졌다. 고민만 늘어가는 나날들 속에서 결국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답을 내려준 것은 게임 속 미지의 우주였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멈춰 있는 대신 계속해서 행동하며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게임은 중반부부터 아주 놀랍게도 지루해진다. 같은 자원을 캐고 같은 일을 하며, 배가 고프다는 알림이 울리면 밥을 먹고, 산소가 떨어졌다는 경보음이 울리면 산소를 흡입한다. 점차 필요한 자원은 많아지지만 해야 하는 일은 대부분 매우 비슷하기에 지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을 잃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 출퇴근 하는 일상의 루틴처럼, 게임 속에서도 일정한 일을 견디고 행동하지만 결국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다음 챕터로 넘어가게 되는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새로운 행성에서도 나의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 그러기 위해선 그저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수밖엔 없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결국 해내고 있다 보면 결국 이 모든 고민에 더욱 능숙히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윤여진(소설가)

2025-07-20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아들의 첫 번째 생일이 지났다. 이맘때쯤 되니까 육아에 있어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온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어떻게 놀아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까꿍까꿍만 해줘도 꺄르르 웃던 아들은 이제 자꾸만 새로운 것을 원한다. 집이 비좁아질 정도로 새로운 장난감을 구해다 바쳐도 한계가 있다. 이럴 때 찾아오는 것이 미디어의 유혹. 새로운 것이야 휴대폰에 깔려 있는 유튜브 어플에 무궁무진하게 있지 않은가. 돌쟁이 아기를 홀릴만한 신나는 콘텐츠들은 차고 넘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아직 이러한 유혹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기껏 조성해 놓은 TV 없는 거실이 아깝기도 하고, 뭔가 이제 와서 항복을 선언하기에는 자존심도 조금 상한다. 아기에게 미디어를 보여주는 시기를 미룰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지겹게 들었다. 그 이유도 여러 가지 들었지만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노는 방법을 터특하는 일이 아이의 지능과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손쉽게 자극이 주어지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아이가 새로운 놀이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없어지는데, 그렇게 되는 것이 아이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문득 이러한 이야기가 단지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변변한 취미도 없고 사람들과 소통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세상에 널려있는 소박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 반면에 참 잘 노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저기 관심도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품고 사는 사람들.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은 사람들. 이것은 삶이 얼마나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가와 직결되지 않는다. 돈도 시간도 많은데 ‘노잼’인 사람들이 있고, 분주한 일상 틈틈이 재미를 감춰두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구분은 뻔한 이야기이지만 얼마나 놀아봤는가, 그 경험의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고 어른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나중에 놀라고 조언한다. 지금 놀면 나중에 실패하게 되지만 지금 인내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고 성공 이후에 더 풍요롭게 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이 꼭 옳은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기들이 미디어를 비롯한 손쉬운 자극 없이 놀아 봐야 노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듯이 어른들도 성공과 풍요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젊은 시절에 없는 살림 속에서 어떻게든 노는 연습을 해야 나중에 더 잘 노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달에 삼십 만원 생활비로 살던 대학시절, 단돈 만원 한 장으로 데이트를 해 보았다면 함께 김밥 한 줄 씩 사 들고 공원을 거닐며 끝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편의점 앞에서 과자 한 봉지에 작은 캔 맥주 한 캔씩을 아껴 먹으려면 여름밤의 정취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기차 입석에 올라 힘들게 도착한 낯선 고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던 여행은 그 시절이 아니면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뒤늦게 성공해서 경제적 풍요를 얻게 된 다음 놀아보려 애쓰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비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환상적인 야경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할 수 있겠지만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밤새도록 서로의 사이를 오갈 수 있을까. 분위기 좋은 루프탑 바에서 비싼 위스키를 시켜 먹으면 맛이야 있겠지만 진짜 여름밤 냄새를 맡을 수는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낯선 대륙으로 떠나서 호화로운 여행을 즐기며 그곳의 풍경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기억 속에 담아낼 수 있을까. 물론 풍요로운 삶은 좋은 삶이지만 그 이전에 실컷 놀아본 사람이라면 그 풍요를 훨씬 낭만적이고 알차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단지 풍요롭기만 하다면 그 풍요를 탕진하며 놀더라도 어딘가 공허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마주하는 씁쓸한 소식들이 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던 사람이 도박, 마약, 아니면 그 어떤 부도덕한 행동을 통해 무너져버리고 마는 소식.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본질은 어쩌면 삶의 진정한 쾌락을 얻는 방법을 몰라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부정한 쾌락을 향해 손을 뻗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노랫가락 차차차’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 황정자가 1962년 발표한 곡인데, 제목이 낯설어도 노래의 첫 소절 가사만큼은 널리 알려져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우리의 풍요가 완성되기 전부터, 한 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노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7-13

의자의 목적

의자에 앉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근육이 필요하다. 엉덩이의 대둔근부터 시작해서 척주기립근, 허벅지를 지탱하는 햄스트링과 대퇴사두근까지. 특히 나처럼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겐 착석이야말로 고강도 근력 운동이나 마찬가지다. 어찌나 하기 싫은지. 의자에 앉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근육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 늘 이런 식이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먼저 반기를 든다. 다리를 이리저리 꼬았다가 풀기 일쑤다. 몸을 비틀고 자세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쉽게 끝나지 않는다. 결국 침대 위에 누워서 앉기에 편안한 의자를 검색해 본다. 서울대 학생들이 사용한다는 의자, 인체공학적인 곡선으로 설계된 의자, 독일의 기술자가 만들었다는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싼 명품 의자…. 사실은 알고 있다. 의자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의자에 묵묵히 앉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전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회사원들이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시간은 8시간 남짓. 이들에게 존경심이 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앉아 있음’이 아니라, 굳건히 ‘버티고 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의 감탄에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뭐 대단할 게 있나. 다들 그렇게 사는걸. 마음은 풍선보다 가볍다. 굉장한 근력을 자랑하는 사람도 마음이 붕 뜨는 것은 도무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도망치고 싶고, 내 자리는 이게 아닌 것 같고, 오늘 하루가 괜히 억울해지고… 그런데도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느껴진다. 오래 앉아 있다는 건 근육의 힘보다는 마음의 싸움에 더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업무와 마주하고 떠나고 싶은 충동과 타협하며 더 편안한 자리로 가고 싶다는 유혹을 견디는 일.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야지만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것이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앉아 있음’이 언제나 책임감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자를 지키는 일과 의자에만 집착하는 일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지만, 후자는 그 자리가 곧 자기 자신인 줄 아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앉아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견제하고 눈치를 살핀다. 한 번 앉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이제 이것은 ‘버티고 있음’의 영역이 아니라 ‘붙들려 있음’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근육이 굳어버린 사람을 상상하면 예민하고 경직된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손에 땀을 쥐고 움켜쥐며, 이 의자에서 밀려나는 순간 존재가 증발할 것처럼 여기는 모습 말이다. 의자에 앉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고 그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존재의 증명이 된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자기 자신도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눈빛은 덤이다. 재미있는 것은 눈앞의 의자가 영영 자신의 것이 아니라잠시 빌려 앉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떠나면서도 거기에 무언가를 남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다음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의 흔적을 느낀다. 등받이에 남은 체온, 미세하게 기울어진 방향, 소음 절감을 위해 바퀴에 덧댄 고무 패드까지. 순식간에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의 흔적은 나의 자세를 되묻게 한다. 사실 나는 삶의 불편에도 너무나 쉽게 엉덩이를 떼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리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너무 빨리 자리를 옮겨버리지는 않았는지. 혹은 너무 쉽게 자리를 고정해 버리고 거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언가를 다 한 것처럼 착각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근육을 늘리기 위해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간단하다. 앉았다가 일어나고 다시 앉는 것. 그 반복이 곧 힘이 된다. 그러니까 의자에 앉는다는 건 몸을 단련하는 일. 의자의 목적은 결국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힘들게 버틴 몸이 제자리에서 단단해졌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한껏 솟아오른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면서 다음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 문장을 매만지는 일을 회피하고 싶은 필자의 변을 늘어놓았다. 의자의 목적은 오래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일어서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으니. 이제 나는 당당하게 일어나 냉장고로 향할 예정이다. 운동 후엔 단백질 보충이 필수이므로! /문은강(소설가)

2025-07-13

치킨 마이크와 해병대원

“1945년 미국 콜로라도 양계장에서 대가리가 잘린 닭이 살고 있었다. 주인 로이드가 도끼로 닭 모가지를 내리친 뒤 몸뚱이만 살아서 대가리 없는 닭, 마이크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 목으로 모이를 먹고 2년을 살다간 마이크는 기네스북에 올라 주인에게 돈방석을 선물했다”(안창섭 시, ‘치킨 마이크’ 부분) 대가리가 잘린 채 “목으로 모이를 먹고 2년을 살다간 마이크”는 “기네스북에 올라 주인에게 돈방석을 선물했”다.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제2의 ‘마이크’를 꿈꾸며 멀쩡한 닭의 대가리를 도끼로 내리쳤다. 일확천금의 희박한 확률을 위해, 인간의 쾌락과 유희를 위해 수천마리의 닭이 비참하게 죽임 당한 것이다. 돈벌이 서커스의 목적으로 닭의 대가리를 자른 인간의 잔인함은 밀렵으로 멸종된 북부흰코뿔소와 절멸 위기에 놓인 호랑이, 마운틴고릴라, 향유고래, 마구잡이로 도살된 소와 돼지에게도 뻗쳤다. 인간은 다른 종들은 물론 인간까지 타자화해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키고, 전쟁을 일으켜 인간끼리 죽이고, 조화롭던 자연을 파헤친 폐허에 혐오와 갈등, 전염병과 집단학살, 그리고 방사능 오염수와 플라스틱 쓰레기만을 남겨두었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면서 시작된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인류세’라고 한다. 대개 지능이 낮은 사람을 가리켜 ‘닭대가리’라고 부르는데, 탐욕을 위해 전 지구의 황폐화와 생명체의 멸종을 초래한 인간은 스스로 제 대가리를 도끼로 내리친 “겁 대가리 없는 닭”이다. ‘치킨 마이크’는 곧 인간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의 근대적 이성에 대한 회의와 반성에서부터 출발한다. 기술문명과 산업화, 자본에의 탐욕으로 망가진 이 세계를 인간의 손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근대주의는 자연스럽게 생태, 환경 담론과 이어진다. 근래 들어 전 세계의 관심사는 신유물론이다. 신유물론은 인간이 더 이상 세계의 주체가 아니라고 선언한다. 동물, 식물, 유기물은 물론 인공지능과 사이보그 등 비인간존재들이 새로운 주체가 되어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준엄하게 꾸짖는 영화와 문학 작품들은 신유물론의 구체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은 이처럼 근대 너머로 나아가려하는데 아직까지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근대적 지배논리에 뇌가 절여진 인간들이 있다. 전근대 아니 원시시대보다 더 끔찍한 그들의 야만적 행위는 인신공양에 미쳐 있던 중세 아즈텍인들의 학살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달 경남 거제의 한 식당 마당에 있던 개들을 향해 한 시간 동안 비비탄 총을 난사한 20대 해병대원들과 그 일행 이야기다. 목줄에 매여 도망도 갈 수 없는 개들에게 수천 발의 비비탄을 쏴 결국 한 마리가 죽고 나머지 두 마리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하나? CCTV에 촬영된 학살 장면을 보며 치가 떨렸다.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한다. 그들은 예비 살인마다. 그런 짓을 해놓고는 “개들이 물어서 정당방위를 위해 비비탄총을 쐈다”며 비겁하고 졸렬한 핑계를 대는 걸 보니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알만 하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그 부모도 가관이다. “개값을 물어주겠다”는 망발은 제대로 된 인간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부모나 자식이나 다 ‘닭대가리’다. 아니다. ‘닭대가리’는 물론 “개보다 못하다”거나 “짐승 같다”는 말은 닭과 개와 짐승에게 실례다. 그 자식들과 부모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없으며 나아가 지구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서도 안 될 악마적 존재들이다. 때로 공동체는 집단의 안전과 이익에 위협이 되는 이질적 존재들을 추방, 격리시킴으로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들의 악마 같은 학살 행위는 현대적 법 제도에서는 물론 비인간존재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포스트모던 신유물론의 담론에서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저 재미로 동물을 죽인 학살자이자 훗날 사람한테도 똑같이 할 예비 살인마들에게는 입대 무효처리, 징역형, 신상공개, 공공기관 취업제한 같은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마땅하다. 사건이 발생하자 그들의 소속 부대는 피해자에게 “공론화시키지 말아달라”며 은폐를 시도했다. 국민들은 지금 철저한 처벌이 이루어지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군과 사법부를 지켜보고 있다. /이병철(시인)

2025-07-06

여름날의 마음가짐

요즘 자기 전 매일 취침 명상을 하고 있다. 정말 졸리더라도 하루에 한 번은 꼭 하고 자려고 하는 편인데, 오늘도 치열하게 산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순간이자 내일을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다 잡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자기 전에 유독 생각이 많은 걱정거리를 잠시 미뤄두기 위해, 또는 하루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도망친다면 오히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면을 보게 된다거나 오히려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잠이 들면 어쩐지 다음날 아침까지 피곤해지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정신과 몸 상태에 집중할 수 있는 명상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몸이 뒤척일 때마다 나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한한 어둠의 세계, 나는 두 눈을 감고서 내 방의 넓이를 가늠할 수 있고 동시에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내면의 깊이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 시선을 돌려 이마의 한 가운데에 머무른다거나, 엄지발가락과 두 번째 발가락의 사이, 배꼽, 오른쪽 허벅지에 있던 시선의 무게를 왼쪽으로 옮겨가 잠시 머물러 볼 수도 있다. 생각을 몸에 집중하는 동안은 신기하게도 온갖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며 편안함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럴 땐 꼭 7년 전 여름, 더위를 피하려 찾은 경주 불국사가 떠오른다. 나는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불자들 사이, 기둥 옆에 몸을 숨겨 가만히 앉아 있었고 시원한 나무 바닥을 손으로 쓸며, 지금 내가 감내하고 있는 마음의 고통에서 조금 물러날 수 있게 도와달라며 한참 빌었다. 그 시간은 마치 전생이나 희미한 꿈결 같았고, 한참을 앉아 있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예약해둔 경주 시내의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그곳에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단 대학생 3명과 퇴사 후 홀로 경주를 찾았단 언니가 있는 6인실 방을 배정받았다. 우리는 주로 그때 각자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나누었고, 앞다투어 그간 숨겨두었던 비밀을 구덩이에 발설하듯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 아침이 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마음은 가볍지만 어쩐지 묘한 오래전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 나는 무척 방황하던 시기였기에 그때의 힘듦을 눈을 감고 떠올리라고 한다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시큰시큰 아릿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 나는 또 다른 걱정과 새로운 불안으로 또다시 잠 못 들고 있다. 이 모든 게 다 잘 지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덜 상처받고, 덜 노력하고, 덜 힘들지 않기 위해 나는 무척 애쓴다.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대도, 아니 어쩌면 더 열심히 하려고 할수록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리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내가 힘을 내어 할 수 있는 것이 명상인 것이다. 호흡에 집중하고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결국 스스로 찾은 적막 속에서 평안에 다다르게 된다. 순간을 알아차리고 편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동시에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에 대한 알아차림을 더욱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정리하면 드디어 하루의 스위치를 끌 수 있게 된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도 생각의 조절이 조금 더 유연하고 자유로워지며, 결국 일상에서 크고 작은 선택들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될 수 있게 된다. 내가 내 정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긴박한 상황이 오더라도 한 발자국 멀리 벗어나 사건으 바라보게 되고, 집에 돌아와선 온전한 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쉼에 집중할수록 오히려 회사에서 내가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들, 하루에 끝내야 하는 일과등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이 시간들이 내게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저번주 주말엔 현재 내 마음가짐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여름의 경주로 향하는 기차를 끊었다. 하루 종일 더위에 시달리다 편히 몸을 뉘일 한옥 숙소도 마련해두고, 그곳에서 어떤 것을 먹을지 어떤 길을 걸을지 찾아보며 또다시 시작되는 한 주의 시작을 기다린다. 억지로 편안함을 이끌고 행복에 다가가기보단, 그저 힘을 빼고 현재 할 수 있는 것들에게서 조금씩 노력하며 집중한다면 결국 내가 하려 했던 목표는 이루어지고 결국 편안함과 행복이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여름날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윤여진(소설가)

2025-07-06

훌륭한 노인 되기

조금 불쾌한 일이 있었다. 프로듀싱 하고 있는 음원이 있어서 처음 가 보는 스튜디오에 방문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스튜디오 사장님께 주차를 문의드렸고, 사장님은 건물 앞에 공간이 비어있다면 주차를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건물 앞에는 내 차가 겨우 들어갈 만 한 협소한 공간이 있었고 나는 여러 번 차를 왔다 갔다 하며 힘겹게 주차를 마쳤다. 그런데 내 차가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노인이 한 명 있었다. 차에서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풀자마자 노인은 다가와 짜증스럽게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왜 여기다가 차를 대, 차 빼(요).” 내가 ‘요’라는 글자를 괄호 안에 넣은 이유는 그 ‘요’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하게 반말과 존댓말 사이를 가로지르는 그 퉁명스러운 말에 나도 기분이 상했다. 스튜디오 사장님이 여기 대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거기는 세입자고, 내가 건물주요. 빨리 차 빼(요).” 건물주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것도 짜증났고 저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명령조의 말도 짜증났는데 거기에 노인은 다시 왔다 갔다 하며 차를 빼고 있는 내게 혼잣말을 가장한 훈계와 재촉을 뱉어대고 있었다.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고 돌아와 여전히 거기서 짜증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노인에게 선생님께서 건물주건 하느님이건 내가 반말과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으니 예의를 갖추어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말을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내 뒤통수를 향해 노인은 뭐라 뭐라 소리를 질러 댔는데 굳이 귀기울여 듣지는 않았고, 해프닝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아마 그 노인은 내가 스튜디오를 떠난 뒤 스튜디오 사장님을 찾아가 내 이야기를 하며 버르장머리니 싹수니 하는 말을 꺼내며 욕을 해댔을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장유유서’라는 말이 존재하고 연장자에 대한 공경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많은 연장자들이 공경을 복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공경이라 함은 존경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공손한 태도일 것이다. 연장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존경하기 힘든 언행 앞에서마저 깍듯이 대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공경이라는 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좀 더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면 상대의 무례마저 너그러이 품어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은 되지 못한다. 내가 갖고 있는 아량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베풀 것들을 아끼고 아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좀 더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처지이다. 하필 그런 내가 예의 없는 노인을 만났고, 노인 입장에서는 하필 간장종지 정도의 그릇을 가진 나를 만나는 바람에 서로가 그 날의 상당부분을 불쾌한 마음으로 보내게 된 것이다. 여러모로 못난 구석이 많은 나이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 먼저 와서 나보다 먼저 삶을 일구고 산 사람들을 공경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일군 세상이 비록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어쨌거나 그곳에서 내가 자랐고 그들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 속에서 가르침을 얻으며 부족하게나마 성장하여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가급적이면 앞선 세대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어린이들에게 그런 마음들이 가치 있는 것이라 가르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게 존경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태도를 받아내기가 비교적 쉬운 나라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영웅이 되어야 하고 산업역군이 되어야 하며 거기다 고매한 인품과 현재의 훌륭한 사회적 지위까지 갖추어야 받아낼 수 있는 것들을 이 나라에서는 아주 약간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 아니 그저 무례하지 않게 대하는 것 정도로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어려서부터 훌륭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만 배웠지, 어른이 된 다음에도 훌륭한 노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은 배워본 적이 없었다.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는 말은 있는데 착하고 건강하게 잘 늙으라는 말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노인을 규정하는 연령대를 상향시키는 논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쨌거나 사회는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평균수명은 늘어나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아마 인생의 순간순간 좋은 인간인 상태를 유지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나이와 관계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6-29

좋은 사람들

당신은 당신을 기꺼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흔한 수사적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은 것. 그것으로 충분할까? 더 적극적인 선의는 대체 무엇일까? 이렇듯 막상 좋은 사람의 기준을 정하려면 막막해진다. ‘좋음’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 보려는 순간, 자신을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이 어쩐지 민망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쁜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당신은 머리에 뿔이 돋았거나 사악한 웃음을 짓는 만화 속 악당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혹은 등 뒤로 욕망을 감춘 음흉한 얼굴, 삐딱하게 구부러진 자세 같은 것들을 조합하며 어디서 본 듯한 악인의 상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것은 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 매일 마주치는 동료 모습 속에서 그 단서를 발견하는 날이 생긴다. 점심 메뉴를 독단적으로 정하는 직장 상사에게서 ‘사실은 이 사람이 진짜 나쁜 사람은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되는 순간도 찾아온다. 재밌는 것은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일도 꽤 어렵다는 점이다. 타인을 선악의 기준에 두는 것보다 나 자신을 그 안에 놓는 것이 훨씬 더 껄끄럽다. 선과 악의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고 상황과 입장에 따라 흔들리기 마련이다. 나는 나의 서사와 당위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므로, 나 자신을 정의하는 일은 언제나 유보되고 만다. 미국 문학의 거장 코맥 매카시는 이러한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다. 그의 대표작 ‘로드’는 문명이 붕괴한 세계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남쪽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을 그린다. 실제로 매카시에게는 늦은 나이에 낳은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아홉 살이던 해 그는 아들과 여행을 떠났다. 호텔 방에서 아이는 곁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그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떠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 순간 그가 본 세계는 폐허였다. 치솟는 불길에 모든 것이 전소된 세상과 자신의 옆에서 잠든 아들. 소설 ‘로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 내부에서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는 ‘불’이다. 그들이 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설정을 넘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지점으로 작동한다. 추위와 어둠 속을 걷는 이들에게 불은 실제로도 생존의 수단이다. 동시에 이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들”이라는 남자의 말은 단순한 생존 의지를 넘어서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어떠한 신념에 가깝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고 약탈하며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그들을 마주할 때면 남자는 망설이지 않는다. “내 일은 널 지키는 거야. 하나님이 나한테 시킨 일이야. 너한테 손을 대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죽일 거야.” 그러자 소년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도 좋은 사람들인가요?” 그러한 질문에 남자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그래. 우린 지금도 좋은 사람들이야.” 소년에게 남자가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은 실제로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증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소년은 계속 질문한다. 이유는 하나다. 그 말이 진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다. 선함은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어야만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끔찍한 소식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선언은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게 어디 있어, 하고 냉소하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먹구름에 가려져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때에도,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건 각자의 마음속에 남은 작은 불이다. 그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야. 그것은 불을 최초로 발견한 인간이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을지도 모를, 인류가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최후의 주문인지도 모른다. 분노와 단죄가 팽팽하게 맞서며 서로를 잠식하는 시대에 그 말은 더 이상 증명되지 않는 가치이며 동시에 증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 당신은 기꺼이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그 머뭇거림이야말로 당신을 선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만든다. 어렵지만 간절히 바라는 일이지 않은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을 꿈꾸었다(안희연, ‘불이 있었다’)”라는 시인의 문장처럼. /문은강(소설가)

2025-06-29

어떤 탈선의 추억

대부분 낚시인들이 그렇듯 나도 아버지께 낚시를 배웠다. 아버지와의 낚시는 내 유년의 가장 큰 행복이었으나, 그것은 IMF 사태로 부서졌다. 사업 망한 아버지는 지방을 전전하는 행상이 되어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뵙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낚시는 흘러간 추억이 되고 말았다. 벌써 25년 전 일이다. 문득 낚시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낚시터로 향했다. 책가방 대신 낚시 가방을 메고 교복 입은 학생들을 피해 터벅터벅 걸었다. 사당역에서 777번을 탔다. “학생이요”라고 안 하고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요금통에 넣었다. 수원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는 화성 봉담읍 해병대사령부까지 왔다. 도로변에는 애기똥풀이 가득 피어 있고, 화물차 매연 아지랑이 너머로 휴가 나가는 군인들이 신나 보였다. ‘화성’ 하면 사람들은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지만 내게는 ‘탈선의 추억’이 깃든 도시다. 아버지와 이따금 찾던 낚시터, 먼저 매점부터 들렀다. 혼자 왔느냐는 관리인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장료 만이천 원을 냈다. 돌아갈 차비 말고는 한 푼도 없었으므로 빵 한 개조차 살 수 없었다. 낚싯대를 부채꼴로 펼쳐 놓고 내 키만큼 찌를 맞춰 채비를 던졌다. 아버지께 배운 낚시 방법들을 몸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한 주 전 내린 장맛비 때문인지 수심이 깊어 찌가 자꾸만 가라앉았다. 찌고무를 30센티미터쯤 올리자 그제야 어느 정도 수심이 맞았다. 저 물에 빠지면 나도 머리끝까지 잠기겠지, 그러면 나도 세상도 다 사라질 텐데… 낭만적 우울은 그 나이 때 감기 같은 것이었다. 붉은 노을을 되비추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저 속에는 온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밥 먹던 저녁의 웃음소리가, 온갖 그리운 얼굴들이, 그리고 아버지가 있지는 않을까? 교복 대신 조숙한 쓸쓸함을 입고 찌를 바라보는 동안 산새 소리, 황소개구리 우는 소리, 트럭들이 지나가는 소리, 저쪽 저수지 건너에서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지는 소리가 귓가에 글썽거리며 저녁이 왔다. 수면 위로 어둠이 내려앉자 야광찌 불빛들이 어릴 적 내 방 천장에 붙여놓았던 형광별 스티커처럼 반짝였다. 모기가 성가시게 굴어도, 이른 열대야가 목덜미에 땀을 흐르게 해도 그저 물과 하늘 사이의 허공만 바라보았다. 때때로 멍해질 때마다 찌가 올라오는 바람에, 붕어 몇 마리 놓치고는 씩씩, 욕이나 내뱉으면서 밤낚시는 깊어졌다. 옆자리에서 어른들 몇이 술판을 벌였다. 한 아저씨가 “이리 와서 소주 한 잔 해요”하며 손짓했다. 하루 종일 굶어 배가 고팠다. 가스버너에 올린 코펠 속에서 라면이 끓고 있고, 신문지 위에는 편육과 치킨이 펼쳐져 있었다. 맛있는 냄새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스무 살이에요” 거짓말을 하고는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종이컵에 소주를 받아 마셨다. 허겁지겁 라면을 집어 먹었다. 어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불콰하게 취해 자리로 돌아와 떡밥을 새로 갈아 던졌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면서 캄캄한 물을 바라보니 입질은 없는데 야광찌 불이 춤을 췄다. 꼭 빠가사리나 메기가 찌를 끌고 난리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나는 돌아갈 곳이 없는데, 만이천원짜리 결석이 끝나면 어디로 가야할까?’ 지쳐버린 내 그림자가 나를 붙잡고는 어디로도 못 가게 하는 밤이었다. 술을 마신 탓인지 가슴 속에 불덩이가 얹힌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우스운 것은, 밤 깊은 저수지에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소주에 취해서는 한숨 푹푹 쉬며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노래를 부른 일이다. 나는 여태까지 아버지가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는 것을 딱 한 번 봤는데, 내가 어릴 때 할머니 환갑잔치에서 아버지가 부른 노래가 ‘울고 넘는 박달재’다. 가슴이 터지도록 소리치고 싶었던 질풍노도의 밤, 그러지 못하고 나지막이 노래를 중얼거린 것은 “밤낚시 할 때는 절대 조용해야 한다”던 아버지의 가르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의자에 앉아 잠깐 졸았더니 아침이었다. 나는 지금도 낚시를 할 때면 ‘울고 넘는 박달재’를 흥얼거리곤 한다. /이병철(시인)

2025-06-15

러브 이즈 본

초여름으로 향해 가는 계절,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주 미약한 우울감을 함께 느끼는데, 그럴 때엔 초록으로 물든 강변을 약간의 땀이 날 때 까지 빠르게 걷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찬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나는 얇고 부드러운 여름 잠옷으로 환복을 한 뒤, 냉장고 앞에 선다. 오늘을 위해 약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청량감이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과 마트 직원의 추천을 받은 프랑스산 치즈를 사왔기 때문. 주황빛으로 저무는 커다란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선 자연풍을 맞으며 와인을 따면 묵은 고민이 씻겨가듯 기분이 나아진다. 치즈와 햄도 먹기 좋게 그릇에 놓은 뒤 계절이 바뀔 때에 생각 나는 영화, <스타이즈본>을 튼다. 외모 콤플렉스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 엘리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지만, 노래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낮에는 식당 주방에 일하고 밤엔 공연을 하던 와중, 우연히 톱스타 잭슨 메인을 만난다. 남주인공 잭슨 메인은 당시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알린 유명 가수이지만, 어쩐지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길거리를 방황한다. 그런 잭슨은 앨리가 일하는 바에서 우연히 방문하고, 앨리를 만나 점차 사랑이 깊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동시에 앨리는 잭슨을 만나면서 유명한 가수로 데뷔하여 점차 성공하지만 오히려 앨리와는 반대로 잭슨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예술가적 고뇌 속에서 점차 병들어 가며, 영화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스타이즈본>은 국내에서 2018년 10월쯤 개봉했으며, 나는 그때 실연에 대한 고뇌로 하루하루 생각에 깊게 잠겨 있던 때였다. 사랑은 대체 언제 돌보아야 하는지, 돌봄과 동시에 어느 타이밍에 어느 정도의 크기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몰랐고, 그 정답을 알고 싶었기에 무척이나 괴로웠다. 하지만 점차 외로운 의문 속에 빠졌고, 그 상황이 너무나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날도 무작정 걷다 영화관에 도착하게 되었고, 우연히 스타이즈본을 관람하게 되었다. 목이 탄 사람처럼 어딘가 불편해진 채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사랑과 동반되는 온갖 상처와 허무함, 조급함과 괴로움, 상대보다 내가 더 우선시되는 알량함과 이기적임 같은 수많은 감정을 모조리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감정이 폭발하면서 결국 상황이 최악으로 악화된다. 잭슨의 추모 현장에서 앨리는 잭슨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결국 이야기를 끝내게 된다.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어쩐지 눈물이 났다. 허탈감이 몸을 감싸며, 결국 사랑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다 소진될 때 까지 가쁘게 걸었던 그날의 기억이, 실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랑은 연인 관계가 끝나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다. 미련과 집착에서부터 멀리 벗어날 지라도, 이따금 한 번씩 수면 아래서 떠오른다. 멍하니 누워 있을 때, 소란스럽던 공간에서 빠져나와 조용히 적막에 잠길 때, 무언가 무력하다고 느낄 때에 종종 그 시기의 내가 생각난다. 지난 인연과 시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아니다. 처음 겪었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맞았던 그 때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스타 이즈 본>은 사랑 이야기다. 앨리와 잭슨은 비록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지만, 앨리는 영화의 막바지에서 잭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금 처음부터 보지만, 앨리는 이야기 끝 너머에서 잭슨을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으며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사랑의 끝은 계속해서 비참할 수 있지만 우린 늘 애써 노력한다. 애써 고민하고, 애써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애써 표현하고 존중한다. 그 애씀이 내게 더 많은 감정의 풍요를 가져다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하며 결국 더 행복해지게 한다. 사랑이 죽어가는 만큼, 내게도 하루하루 수많은 사랑이 태어난다. 나날이 깊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동생과 친구들과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편안함과 존경과 애정 같은 감정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하며 많은 것을 체화하고 있다. 동시에 이미 종지부를 내린 사랑들도 많이 생각한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무언가 시작하기도 전에 저물었던 수많은 아쉬움의 형태들. 이따금 생각하며 사랑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지난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확신이 생기므로 외려 감사하다. 어찌됐든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윤여진(시인)

2025-06-15

정면 돌파!

요즘 이상할 정도로 자주 중얼거린다. 정면 돌파! 마침표로 끝나선 안 된다. 느낌표까지 꼭 넣어야 제맛이다. 단호한 어조로 짧고 굵게, 주먹까지 쥐고 흔들어주면 훨씬 좋다. ‘정면’과 ‘돌파’를 연달아 발음하면 한층 더 씩씩해진 기분이 든다. 장애물을 격파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태권 소녀의 앙다문 입술이 생각난달까. 물론 나는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발만 동동 구르는 쪽에 더 가깝지만. 뭐, 엄밀히 말하면 돌파해야만 하는 대단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다. 답신이 껄끄러워 뒤로 미뤄놓았던 메일이나 옷장 한편에 수북하게 쌓인 옷가지처럼, 별일 아닌데 왠지 자꾸만 피하게 되는 일들. 은근히 마음의 짐이 되는 청구서며 세금 처리, 원고 마감까지… 물론 고작 이 정도를 앞에 두고 돌파를 운운하는 것이 퍽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 나약한 인간의 조악한 외침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오늘도 외친다. 정면 돌파! 어쩌면 미루는 방식은 내가 가장 능숙하게 익힌 생존 기술일지도 모른다. ‘안 읽음’으로 표시된 채 쌓여가는 메시지, 몇 번이고 넘기며 무시하는 아침 알람, 내일의 내가 처리해 줄 것이라는 허울로 덮어둔 일들. 때때로 나를 마주하는 일은 거대한 벽을 넘는 것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간단한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면에서 정면 돌파는 불편하다. 가끔은 낯 뜨겁기까지 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무대 한가운데에 나 혼자 덜컥 올라선 장면처럼 느껴진다. 어설픈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야만 하는 심정이랄까. 정면으로 돌파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믿겠다는 선언인데 나는 나 자신을 누구보다 신뢰하지 않는다. 방문을 닫고서 몸을 웅크리는 쪽이 훨씬 편하다. 아직 아니야. 더 완벽한 때가 올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시간은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어렸을 때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조른 적이 있었다. 울고 떼쓰고 길거리에 드러눕기 신공까지 펼쳤건만, 끝내 등록은 하지 못했다. 아마 엄마는 태권도가 여자아이가 하기에 과격한 운동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나는 도복을 입고 놀이터를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질투와 시기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유년에 힘차게 뛰어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워. 술자리에서 푸념처럼 늘어놓던 말에 언젠가 한 친구가 너무나도 맑고 천진한 얼굴로 답을 내어놓았다. 지금부터라도 배우면 되잖아?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겐 어떤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과거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작년 새해 목표에 태권도 학원 등록하기도 슬쩍 넣어두었다. 물론 미루고 미루다 해가 바뀌어 버렸지만. 이따금 녹슨 관절을 이끌고 스트레칭하며 변명한다. 괜히 다치기라도 하면 이제 뼈도 잘 안 붙어. 암, 그렇고말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목소리는 해가 갈수록 강해지는 것 같다. 언제나 그럴듯한 도피처를 만들어낸다. 내가 뭔가를 피하고 있다는 자각이 들면 육상경기 도중 허들이 무서워 되돌아서는 선수를 떠올려 본다. 연습이 부족해 허들을 넘지 못하는 것은 괜찮다. 경기 도중 허들을 피하는 것이 더 문제다. 그런 면에서 정면 돌파는 해결의 기술이 아니라 회피하지 않겠다는 자세에 가깝다. 나는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측면을 노리거나 슬쩍 방향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가성비와 효율성을 따지는 세상에서 정면으로만 돌진하는 태도는 오히려 바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삶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순간은 외면하면 얼굴을 바꿔 다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다. 정면으로 부딪치는 순간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타협의 영역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세련된 기술이다. 나 자신을 덜 다치게 하고 타인을 더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는 사실 또한 이해한다.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며 나와 주변을 돌보는 것이 인생의 과업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러나저러나 발은 한 번 디뎌보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본다. 거기가 푹신한 잔디밭이든 낭떠러지든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주먹을 쥐고 외쳐보는 것이다. 그래, 까짓것 한번 해보지 뭐. 쉼표 뒤에는 느낌표. 느낌표 뒤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쁘지 않을 것이다. 부딪치고 깨지고 산산이 부서진 모양 또한 나름의 멋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에. /문은강(소설가)

2025-06-08

빠른 생일의 비애

나는 1987년 2월 18일에 태어났다. 2월 18일이라는 날짜를 생일로 갖는다는 것은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몇 년이 흘러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취학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1일에 다 같이 한 살을 먹는 세는 나이를 흔히 사용하는데, 초등학교의 입학 대상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3월 1일부터 2월 29일까지를 한 학년으로 정의하는 3월 학기제를 사용하는 대한민국 교육부는 학기의 시작인 3월 1일을 기준으로 만 6세에 해당하는 아이들에게 취학통지서를 발송했다. 그러다보니 3월부터 12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세는 나이로 8세에 학교에 입학을 하고, 1월부터 2월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7세에 입학을 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2009년에 해소되었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지만 어쨌거나 1987년에 태어난 나는 1986년에 태어난 형, 누나들과 동창이 된 것이다. 내가 원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나로서도 1993년에 입학하는 것보다 1994년에 입학하는 편이 더 행복했을 것이 분명했다. 성인이 된 지금이야 몇 달 일찍 태어나고 늦게 태어나고 하는 문제가 신체적인 차이로 나타나지 않지만, 빠르게 성장할 시기인 만 6세 아이들에게 몇 달은 어마어마한 신체적 차이를 발생시키는 기간일 수 있다.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1993년 입학 어린이들 중 막내 축에 들에 되었다. 1986년 3월에 태어난 친구들과는 11개월이나 차이가 났으니 당연히 그들보다 키도 작고 머리도 덜 여물었을 터였다. 실제로 나는 지금 내 나이 대 남성의 평균 신장을 아주 조금 넘는 키를 가지고 있지만 초등학교때는 내내 스무 명 남짓한 남학생 중 키 순서로 3번에서 6번 사이를 왔다 갔다 했으니 상당히 왜소한 편이었다. 가장 늦게 태어난 아이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키가 작다고 걱정할 이유는 없었는데 학교를 한 해 일찍 가는 바람에 키 걱정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선택할 수 있었다면 1994년에 입학해서 1987년 생 중 맏이 노릇을 하는 것이 학교생활에 있어 여러모로 유리했을 것이 분명하다. 어릴 때 겪었던 성장 속도의 문제는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해결이 되었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가끔씩 느끼곤 했었던 소외감이었다. 비록 한 살이 어리지만 함께 학교생활을 하는 동창들과는 친구로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가끔 나이 이야기가 나올 때 나만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사실을 꺼내 놓으면 누군가는 나더러 왜 자기한테 형이라고 부르지 않냐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더군다나 나는 입춘마저 지나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부여되는 12간지, 다시 말해 띠는 입춘을 기준으로 한다. 1987년 1,2월에 태어났더라도 입춘이었던 2월 4일 이전에 태어난 친구들은 1986년생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호랑이띠가 된다. 그러나 2월 중에서도 뒤쪽에 해당하는 18일에 태어난 나는 그 호랑이들 사이에서 홀로 토끼로 지내야만 했다. 하필 또 호랑이랑 토끼였다.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학교 다닐 때야 ‘몇 살이야?’보다 ‘몇 학년이야?’를 물어보니 문제가 적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위아래를 가리기 위해 꼭 ‘몇 년 생이십니까?’ 혹은 ‘몇 살이십니까?’를 묻게 되니 간혹 난감해진다. 2025년 현재 세는나이로 1986년생은 마흔 살이고 1987년생은 서른아홉 살이다. 사실대로 1987년생, 서른아홉 살이라고 하면 ‘기어이 삼십 대에 붙어 있으려고 한 살을 깎느냐’고 핀잔을 주는 이들과 굳이 나에게 형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1986년생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1986년생 마흔 살이라고 하면 나중에 내가 1987년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치사하게 나이를 속였다’며 파렴치한으로 몰리기도 한다. 이러나 저러나 족보가 꼬인다며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빠른 87년생입니다’고 하면 굳이 ‘빠른’을 챙겨먹으려고 한다고 비웃는 이가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는 내가 서른아홉이어도 상관없고 마흔 살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단지 일관성 있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 가서는 서른아홉으로 살고 어디 가서는 마흔으로 사는 것은 내가 피곤해서 싫다. 차라리 누가 정해주면 좋겠다. “당신은 1987년생이니 이제부터 1986년생을 만나거든 형님, 누님으로 대하세요.”, 혹은 “당신은 오늘부터 1986년생과 다름없이 마흔 살로 살아야 합니다.” 하고 말이다. /강백수(시인)

2025-06-08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했다/ 먼 옛날 먼 바다에 누가 빠져죽을 때 태어난 파도가/ 그제야 발치에 닿기 시작했다// 너는 뭐라 말을 하는데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했다/ 서로 등을 돌린 채 잠이 들었던 밤에/ 진작에 닿았어야 했을 말들은 여정을 떠났다// 숨막힐듯 느리고 낮게 말이 기어오는 동안/ 등과 등의 간격은 은근하게 멀어지고/ 그 사이로 낯선 바람이 불었다// (중략) 한참을 멍하다가 한 시절이 지나다가/ 그제야 나는 문득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시각 먼 바다에는 또 누가 빠져 죽고/ 어느 별은 유서를 쓰고 있었다” -(강백수, ‘레이턴시’, 시집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문학수첩, 2020) 레이턴시(latency)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 생기기까지의 시간, 흔히 ‘지연속도’라고 일컬어지는 통신용어다. 주로 음향 녹음 시 오디오 인터페이스에서 실제 소리의 발화보다 녹음이 늦게 되거나 영상 송출 과정에서 비디오 화면과 음향 싱크가 맞지 않는 것을 레이턴시라고 한다. 시인인 동시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 중인 강백수에게 레이턴시는 무척 익숙한 현상일 테다. 위 시에서 시인은 레이턴시를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라는 천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사실 수억 광년 전에 소멸한 별들의 잔상이다. 그것은 실시간으로 빛나는 현재적 광채 같이 보여도 이미 죽어버린 과거의 빛일 뿐이다.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에 빛이 은하계에서 지구까지 아득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에는 영원처럼 캄캄한 레이턴시가 늘 발생하게 된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세계의 물상들에도 레이턴시가 작용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들은 과거의 모습이다. 가까이 있는 물상의 경우 레이턴시의 시차가 매우 짧을 뿐이다. 다시, “그날 하늘에 떠 있던 건/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별들의 유서”에 불과하다. 현재를 구성하는 불행의 요소들, 지금, 여기에 작용하는 온갖 불평등과 부조리들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린 기성의 관습일 뿐이다. 강백수는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해요. 너희 잘못이 아니라고, 지금의 절망은 곧 사라질 허깨비라고, 그러니 쫄지 마, 주눅 들지 마, 위의 시가 수록된 시집 제목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키스를 하”자고!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 월터 미티는 일상을 벗어나는 어떤 모험도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LIFE’ 잡지사의 사진인화기사로 일하는 그는 표지 사진으로 쓰일 필름이 분실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필름을 찾으러 그린란드로 날아간다. 그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것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애 가장 특별한 모험에 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세상은 그런 그의 순정한 노력과 열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는 이미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곧 회사에서 쫓겨날 월터가 출장 가방을 들고 달려가는 동안 영화는 라이프지 과년호들, 공항 전광판 문구와 활주로 표지 등을 통해 인상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라는. 대선이 열리는 초여름에 이 시를 다시 읽는다.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따르라고 굴종을 강요하면서, 후속 세대가 정형화된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면 바로 길을 폐쇄해버리는 기성세대의 지독한 탐욕으로 인해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계층의 양극화와 청년 세대의 절망이 극에 달한 디스토피아가 되어가고 있다. 제 자식에겐 아프지 말라고 하면서 남의 자식에겐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자들의 천 마디 ‘명언’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쓰러지고 소리 내어 울며, 그럼에도 일어나서 바보처럼 웃고 키스하고 다시 노래하는 시인의 시야말로 격의 없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우리와 무관한 어제로부터 비롯된 오늘의 우울과 학습된 패배감에 함몰되는 대신 너와 나, 우리,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면서 키스를 하자고, 주어진 순간들을 그저 살아내자고,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병철(시인)

2025-06-01

적당한 크기의 사랑

최근 물고기를 키우게 됐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영상을 보게 되었고, 점점 영상 속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언젠가 물고기를 키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회사 근처에서 물고기를 파는 가게를 발견하였고, 나는 그곳에 입장하자마자 홀린 듯이 암수 한 쌍의 구피 두 마리를 구입하게 됐다. 초보자들이 가장 키우기 쉽다는 알비노 구피는 암컷 약 6cm, 수컷 약 3cm로 가늘고 긴 몸통을 가졌다. 수컷은 몸통이 화려한 푸른색을 띠고 있고, 암컷은 수컷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밝은 개나리 색을 띠고 있어 구분이 쉽고, 관상용으로도 훌륭하다. 처음엔 단순히 물고기 두 마리와 어항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단 두 마리를 키울 뿐인데도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물고기들이 지낼 충분한 넓이와 높이의 어항, 자동 히터기, 온도계, 여과기, 수질 정화제, 필터, 조명 등이 꼭 필요했고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어항을 놓은 공간은 물고기 들을 위한 용품으로 가득 마련되어 있었다. 이 작은 존재들은 참 신기하다. 25cm 남짓한 작은 크기의 어항이 자신들이 살던 바닷속으로 생각하며 유유자적 헤엄친다. 열대어이기 때문에 온도는 늘 26도로 맞춰주어야 하고 적당한 빛의 세기와 필요한 만큼의 산소도 챙겨주어야 한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더니 어느덧 암컷의 배가 눈에 띄게 부풀어 있다. 수컷의 배지느러미를 통해 교미를 한 것인데, 신기하게도 단 한 번의 교미 만으로도 암컷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다. 한 달에 한 번씩 임신을 하고 새끼를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굉장히 강하지만, 현재 어항 속 남아있는 새끼들은 다섯 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자신이 낳은 새끼를 몰라보고 먹이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새끼를 모조리 먹어 치우기에, 애써 작은 치어통에 치어들을 분리해 놓아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사소한 것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물고기들을 보살피다 보며 어느덧 작은 어항 속 세계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게 확장되어 있다. 두 마리의 구피와 한 인간이 이룬 어항 속 세계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눈꺼풀이 없기 때문에 인간처럼 눈을 깜빡이지 않고도 하루 온종일 까만 눈을 부릅 뜬채로 헤엄치는데, 그 모습이 기이하면서도 무언가 평화로운 마음이 들게끔 한다. 밥은 하루에 한 번, 출근 전에 전용 스쿱으로 작게 한 스푼을 떠서 수면 위로 뿌린다. 밥이 수면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면 기다렸다는 듯 주둥이를 빠르게 휘저으며 밥을 먹는다. 수면 위의 먹이가 어항 아래 깔아둔 투명한 돌 조각 사이사이에 가라앉게 되면, 물고기들은 돌 속을 파고들며 남은 먹이를 찾기 시작한다. 온 몸을 사용해서 먹이를 먹는 동안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의 돌덩어리가 들썩이고, 저런 작은 몸집을 가진 생명체가 아주 바쁘게 움직일 수 있단 사실에 감탄하며 출근을 잊을 정도로 멍하니 보게 된다. 먹이를 주는 날을 까먹었다거나 집을 며칠 비울 때면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매시간 구피들이 사는 물을 들여다보고, 온도계를 체크하고, 먹이를 조절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온도는 26도로 잘 맞춰져 있는지, 먹이는 손톱의 흰 반달부분 만큼만, 아주 작은 크기의 치어들을 잡아먹지 않았는지 체크한다. 그렇게 익숙히 사랑을 돌보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같은 온도로 비슷한 사랑의 크기를 주는 것, 너무 과하면 상대가 괴로워하고, 너무 부족하다면 미동도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드는 무력감을 보여주는 작은 물고기들처럼. 이유를 알 수 없어 사랑이 괴롭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이 덥거나 추운건지, 공기가 나쁜 건지, 또는 괜찮은 건지, 배가 부른 건지, 고픈 건지도 모르게 그저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탈이 나곤 했던 날들이. 마음 속 돌멩이를 들추는 수많은 밤들 사이에서 나는 잠 못드는 아이처럼 난처하게 울먹였지만 이젠 적당한 크기의 사랑을 잊지 않고 주어야 하는 때를 안다. 몇 종의 물고기가 어항을 떠났고, 또 새로운 생물들이 채워지고 있다. 적당한 정도의 관심과 사랑. 어렵지만 나날이 배우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5-06-01

자동차 키 실종 사건

이것은 지난주에 벌어진 사건이다. 비공식 사건기록, 일명 ‘차 키 실종 사건’. 출근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자동차 키를 찾아 거실을 헤매는 중이었다. 차 키를 책상 위에 올려둔 사실에 대한 기억은 명확하다. 위증할 이유도 없다. 무릎을 바닥에 대고 기어다니는 모습은 흡사 나의 반려견 보리의 포즈와 비슷했다. 고개를 숙이고 코끝을 들이밀며 테이블 밑, 가방 안, 옷더미 속을 거의 킁킁대다시피 하며 뒤지던 찰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네 짓이야?” 나는 기억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보리를 향해 쏘아붙였다. 그러나 보리의 눈빛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이 집에서 가장 무고한 존재라는 걸 기억하라!’ 그제야 나는 사태의 심각함을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분실이 아니라 존재론적 혼란에 가깝다. 그 순간 나는 차 키도, 존엄도 잃은 인간이 되어 있었다. 결국 차 키는 이불 밑에서 발견되었다. 도대체 왜 거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쿨쿨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차 키를 손에 쥐고 다시 누운 것도 아닐 텐데.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바로 인간이라는 종의 불가사의인 것이다. 비단 차 키만이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꽤 중요한 것들을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해야 할 일을 깜빡하고, 약속을 놓치고, 심지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어째서 그러한 말을 했는지조차 잊는다. 기억은 언제나 정교하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 기억을 선택하고 있다고 믿는 건 사실상 착각에 가깝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뇌 안에는 기억을 지우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며 이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를테면 수업 시간에 분명 열심히 들었던 내용이 하루만 지나도 흐릿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24시간 이내에 학습한 정보의 70%가 사라진다는 망각 곡선은 뇌가 불필요한 정보를 선별적으로 지워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그러니 ‘내 머리는 왜 이리 좋지 않은가?’ 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뇌가 만든 아주 정교한 생존 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찾는 행위나,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고 외출하는 일, 눈앞의 사람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 민망한 웃음으로 위기를 넘기는 순간 같은 행위를 뇌의 합리적 메커니즘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 종종 엉뚱한 일을 벌이는 우리 뇌를 두고 자연스럽다고 여기며 삶의 허점을 덮는 건 어쩐지 위험해 보인다. 마치 사고를 쳐도 당당한 사춘기 자녀를 보는 기분. 형편없는 시험 성적을 보고서 “왜 열심히 암기하지 않았느냐”고 혼내도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쏘아붙이는 것이다. “이건 제 문제가 아닙니다. 저의 뇌가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이라고요.” 문제는 이러한 영역이 아니다. ‘실종 사건’의 본질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칠 때가 잦다.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 미처 전하지 못한 말, 놓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어떤 마음들. 그럴 때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한탄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을 허술하게 다루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붙잡으려 애쓰지 않으면 모든 것은 아주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 존재는 기억을 기록하고 감정을 박제하기 위해 애쓴다. 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문장을 쓰는 일도 분투의 과정 중 하나다.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고민하는 나를 보고 보리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손에 쥐지 못할 것을 붙잡으려 애쓰는군. 참으로 안타까운 존재로다….’ 그렇다. 이토록 애처로운 노력 덕분에 우리는 사라지는 마음을 한순간이라도 더 붙잡을 수 있고 흐릿한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차 키를 아무 곳에나 두는 나의 뇌를 더는 탓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이것은 정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려는 보리의 은밀한 소행일지도 모르니. 내가 정말 오래 기억하고 싶은 건 녀석의 쫑긋거리는 귀와 움찔대는 작은 콧구멍,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 같은 것. 차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아는 것보다 이 장면을 자주 떠올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것이 바로 차 키 실종 사건을 해결하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문은강(소설가)

2025-05-25

통통족의 패션, 그리고 스페셜리스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내가 아주 신경 써서 옷을 입는 편이라는 사실. 실제로 옷을 잘 입거나 못 입거나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내 딴에는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뚱뚱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어서 옷 태가 안 나서 그렇지, 그리고 추구하는 방향이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여서 그렇지, 나름 옷을 구입하는 과정부터 매칭 하는 과정까지 허투루 하지 않는 편이다. 이십대 때는 패션 매거진도 정기구독해서 꼬박꼬박 챙겨 봤고, 요즘도 여러 쇼핑몰이나 인터넷 사이트들을 살피며 트렌드를 파악하고 그 안에서 내 스타일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패션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본다. 그런데 대부분의 채널들은 모델 같은 핏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적어도 표준 정도의 체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기에 다소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들에게 어울리는 옷이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저들이 추천하는 브랜드에 내 사이즈가 없기도 하기 때문에. 그래도 그 중에 나 같은 체형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나마 유용한 채널이 종종 있기는 한데, 그 중에 하나가 어느 배우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통통한 체구를 가진 그는 우리 같은 체형을 가진 이들을 ‘통통족’이라고 칭하며 우리에게 유용한 패션 정보를 제공한다. 얼마 전, 그 채널의 콘텐츠들을 탐독하다가 재미난 기획 하나를 발견했다. 통통하거나 그 이상의 체형을 가진 패셔니스타 두 명을 초대하여 세 남자가 자신들의 패션 노하우를 공유하는 기획이었다. 내용 중에는 다른 유튜버들이 통통족 남성들에게 패션 지식을 설파하는 콘텐츠들에 대해 실제 통통족들이 의견을 내는 코너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재미난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되었다. 많은 패션 유튜버들이 통통족들을 위한 패션 조언을 할 때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바로 ‘뚱뚱하지 않게 보이기’였다. 이를테면 몸을 작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어두운 컬러를 선택한다거나, 세로로 된 줄무늬 옷을 입는다거나, 셔츠의 윗 단추를 몇 개 풀어 목을 길어보이게 하는 것 등. 그런데 이들은 여기에 대해 다른 의견들을 냈다. 꼭 뚱뚱하지 않게 보이는 것만이 멋이 아니라는 것이다. 뚱뚱해 보이건 말건 밝은 색상의 옷을 입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고, 예쁘지 않으면 세로 줄무늬 옷을 기피하기도 하고, 셔츠의 단추를 끝까지 채워 단정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뚱뚱하지 않게 보이는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예쁜 옷을 예쁘게 입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안 뚱뚱하면 좋겠지만, 당장 뚱뚱한 것을 어쩌겠나. 단점을 가리는데 급급해서 예쁜 옷을 입지 못하고 칙칙하고 일관된 것들만 선택해야 한다면 센스 있는 패션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차라리 자신의 단점은 시원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장점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옷을 입는 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빠른 발이 장점인 축구선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대신 그는 몸싸움이 약하다. 그래서 체중을 비약적으로 불려서 보통 수준의 몸싸움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빨랐던 발 역시 보통 수준이 된다면 감독이 그를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필요한 만큼의 웨이트 트레이닝과 더불어 자신의 빠른 발을 살려 단점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닐까? 반대로 홈런을 펑펑 때리는 거대한 체구의 야구선수가 있다. 그는 발이 느려서 도루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래서 그가 체중을 확 줄이고 리그 평균 수준의 주력을 갖게 된다면? 홈런을 때리던 그 힘을 잃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지만 특출난 점도 없는 선수가 된다는 것. 그것이 과연 긍정적인 일일까? 한 때 모두에게 모든 면에서 능력을 갖춘 제네럴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페셜리스트도 필요한 시대이다. 부족한 점은 또 새로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극복하고,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물론 단점도 극복하고 장점도 개발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 중에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무엇을 앞세워야 할 것인가? 나는 당연히 장점을 개발하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단점을 가리는데 급급해서 다른 장점들을 챙기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강백수(시인)

2025-05-25

광주라는 ‘지금 시간’

어느덧 다시 오월이다. 1980년 오월에 일어난 일을 누구도 말할 수 없던 시절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이성복, ‘그날’)던 무통의 기억을 날카롭게 갈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장 아픈 숨골을 쑤셔댄다. 입이 있지만 침묵함으로써 혀를 썩혔던 죄의식을 기형도는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은유했다. 며칠 전 포항 ‘책방 수북’에서 열린 장석남 시인의 북토크에서 시인은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이 오월 광주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운 공포의 기록이라 말했다. “찌르레기 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장석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던 시인에게 오월은 여전히 “유골함을 받아 안듯 오는, 봄”(장석남, ‘서울, 2023 봄’)이다. 문학은 오래전 그 일에 관하여 스스로를 ‘입 속의 검은 잎’이라 정죄했지만 그래도 문학만큼 진실된 목소리도 없다. 지금까지 문학은 왜곡된 기록을 생생한 기억으로 바꾸고 또 개인들의 기억을 공동체적 기록으로 바꾸면서 바늘의 역할을 해왔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인선’은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는데, 간병인은 3분마다 한 번씩 주삿바늘로 수술 부위를 찌른다. 그래야만 신경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 고통이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 통각이 진실을 기억하게 한다. 우리가 4.3을, 5.18을, 세월호를 잊지 않도록 문학은 계속 바늘이 돼야 한다. 4.3과 보도연맹학살사건, 그리고 5.18 등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적 진실을 재현하는 한강의 소설 작업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목젖과 옆구리가 총검에 절개되고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된 시신의 묘사는 끔찍하지만 독자에게 강렬한 충격을 입힌다. 그리고 그때 단순히 ‘기록’된 과거로서 문헌과 통계와 명단에만 박제돼 있던 ‘기억’이 비로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감각에 생동하기 시작한다. 한강의 문학은 망각이라는 두터운 무덤 아래서부터 진실을 끌어올려, 겉땅에 오른 그가 비와 바람과 햇살로 흙에 파묻힌 얼굴을 씻고 직접 말하게 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에게 역사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흘러 사라지는 장면들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강렬한 의미로 멈춘 정지화면들의 연속이다. 그 정지화면이 바로 ‘지금 시간(Jetztzeit)’이다. 스크린에 상영되던 영화가 갑자기 멈추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화면 속 인물의 표정과 빛의 질감과 배경의 아주 작은 소품까지 모든 게 더 생생히, 자세히,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때 영화에는 이전과 다른 의미가 나타나게 된다. 영화처럼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어느 특정한 순간이 새로운 의미를 갖고 멈추었으나 생동하며 우리에게 온다. 교과서에서 무심히 보고 넘겼던 4.3과 5.18을 소설로 읽고 나니 1948년과 1980년에 죽어간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지금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흘러간 역사를 다시 보게 하고, 오늘에 어제를 겹쳐 새롭게 살게 하는 신비한 시간 체험이다. 한 온라인쇼핑몰에서 전두환의 얼굴과 “THE SOUTH FACE”라는 영어 문구가 프린팅된 가방을 판매해 논란이 됐다. 5.18 기념재단의 항의로 판매가 중단됐는데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에는 “지겹다”, “시체 팔이 그만해라”라는 비아냥과 함께 전두환을 칭송하거나 광주를 비하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런 걸 만들어 파는 이와 그걸 옹호하며 학살자를 찬양하는 이들이 다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게 역겹다. 악은 평범해서 언제 어디에나 악마가 널려 있다. 지난 수십 년 그러했듯 악마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신나게 왜곡하고 은폐하고 조롱하며 낄낄대겠지만, 상관없다. 그 악마들이 무의미한 생을 멍청하고 한심하게 흘려보낼 동안 문학을 읽는 젊은 독자들은 글자 하나 하나를 바늘 삼아 스스로를 찌르면서 ‘지금 시간’을 체험하는, 깨어 있는 의식이자 사유하는 주체가 된다. 지난주 수업에서 학생들과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독후감을 발표하고 듣는 서로가 서로의 바늘이 되었다. 한 학생이 외쳤다. “어떻게 그런 가방을 만들어 팔 수가 있어요?”라고. ‘소년이 온다’에서 도청 앞 분수대가 물줄기를 뿜는 것에 분노하며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항의전화를 건 ‘은숙’처럼. /이병철(시인)

2025-05-18

저녁 퇴근길에 생각한 것

요즘 회사를 출퇴근할 때 지하철을 타는 대신 열심히 걸어 다니고 있다. 이직하면서 회사가 집 근처로 아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집과 회사 사이에는 도림천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높은 건물 없이 푸르른 하늘이 잘 보이고, 나무나 풀이 많아서 초여름의 연두를 눈에 실컷 담을 수 있어 좋다. 하루 온종일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 보면서 업무를 하나씩 해치우고,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에 갇혀 있었다면 자연 속에서 걸을 때는 모든 복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무념무상 상태로 걸을 수 있다. 왼쪽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지면에 내딛으며 발바닥의 감각, 힘이 들어가는 발목과 허벅지, 허리와 배에 중심을 잘 잡고선 걷는 명상에 빠져 들다보면 하루에 시달렸던 온갖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렇게 자유롭게 삼십여분 정도를 걸으면 익숙한 동네가 나온다. 대학교를 졸업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서울로 상경했을 때부터 쭉 살고 있는 작은 동네, 이곳의 초입부터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불필요한 힘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날이 좋은 날이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쉬워서 근처를 배회한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는 사람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 아이 유모차를 끌다 꽃을 따는 내 또래의 젊은 여자를 본다. 그 광경이 너무나 평화로워서 어느 꿈결 속에 앉아 있는 듯 하고, 나는 실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든다.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이 극에 다다를 때쯤 기다렸다는 듯이 잡념이 따라온다. 하루 중 상대가 나에게 했던 말들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그 말을 들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건 왜 그랬던 것인지, 업무를 내가 잘해내고 있는 건지, 실수가 있었다면 그 실수를 왜 했던 것인지 차례대로 온갖 생각이 따라 붙어 생각에 빠져 들기 바쁘다. 대체로 유쾌하지 않은 불편한 생각들이고 나는 또 울상이 되어 또 피곤해진 채로 어깨를 한껏 안쪽으로 말게 된다. 그럴수록 사람은 왜 현재의 행복에 안주하지 못하는지 생각한다. 동시에 행복이란 무엇인지도. 이토록 평화롭다가도 왜 불행의 편에 고개를 향하는지. 단순한 일도 어려운 문제로 만들어 생각하는 나의 피곤한 성격 때문이겠지, 그렇게 고개를 휙휙 젓다가 다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은 다시금 현실을 바라보는 일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편에 서서 마음을 앞서 걱정 한다기보단. 현재 나를 이루고 있는 것에 다시금 감사함을 느낀다. 집에 돌아가는 집이 있다는 것, 이사간 집은 하루 온종일 햇빛이 들어 시시각각 변하는 해의 밝기와 세기를 누려볼 수 있다는 것, 동생과 함께 건강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은 지 한 달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운동을 도와주는 선생님이 있고, 나는 전보다 더 건강해 지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이 노력의 방향과 힘이 너무 지나치지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딱 적당한 정도라는 점과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큰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떠올린다. 내가 아주 어릴 적 번개가 심하게 치던 날에, 창문 가까이 위태롭게 앉아 있던 어린 나를 엄마는 발견했다고 한다. 잠시 화장실을 갔을 뿐인데, 어느 사이엔가 어린 나는 창문가에 붙어 있었고 엄마는 그런 나를 발견하고선 황급히 낚아채어 거실 한가운데서 품에 안고 한참을 있었다고 했다. 어린 너는 참 겁도 없었다면서 나를 나무라는 엄마는 지금도 아주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낸다. 실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어렸고 그 이야기를 엄마의 입에서만 들은 것뿐이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어떤 확신을 느꼈다. 이따금씩 자꾸만 삶에 혼자 있는 것만 같다고 느껴질 때, 그 품과 손아귀의 힘을 기억할 것이라고.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할 때면 목에 커다란 체리 씨앗이 걸린 듯이 막막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나는 이런 나의 연약함이 정말 싫었지만 이젠 이것을 말할 수 있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 이젠 안도한다. 사랑은 멀지 않고 이렇게 내 몸 속에 있다. 생각만 해도 느낄 수 있고 걸을 땐 자연스레 떠올리고 그럴 땐 주체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상대가 있다. 전화를 끊고선 내 곁에 이루는 사람들을 생각하다, 다시금 뚜벅뚜벅 걸어가 사무실 책상에 앉아 다시 씩씩한 모습을 한 나를 꺼낼 수 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하루하루를, 일년을, 몇 년을 살다보면 나는 좀 더 사랑의 언어를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더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윤여진(시인)

2025-05-18

수염 기를 권리, 수염 안 기를 권리

나는 수염을 기른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어느 정도 길어지면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니 정확히 말하면 마냥 기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완전히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10년에 나온 EP의 커버에는 수염이 없고 2013년에 나온 1집 앨범의 커버에는 수염을 기른 내 모습이 있으니 그 사이 언제쯤부터 십 년 넘는 세월동안 수염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수염을 민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번 쯤은 수염을 다듬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염을 밀어야 했고, 어느 기간 동안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수염을 밀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아내와 결혼을 하기 위해 장인어른, 장모님을 처음 뵙던 날도 수염을 밀었다. 그런 날들을 제외하고 수염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거의 모든 무대에서, 심지어 내 결혼식장에서도. 예술인이라는 직업의 고충이야 많지만 특권은 드문데, 그 몇 안되는 특권 중에 하나가 수염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 없이 누리고 싶었다. 수염은 당연히 남성호르몬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래서 풍성한 수염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탈모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것 없이도 부족하지 않게 수염이 난다. 이 역시 내가 누려야 할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얼굴을 조금이나마 덜 커보이게 하는 기능도 있고, 옷에 힘을 주지 않아도 나의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요즘 ‘추구미’라는 말이 유행인데, 나의 추구미는 수염을 빼 놓고 상상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함께 해왔기 때문일까, 나는 정말로 나의 수염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수염 기른 사람은 별로 이성에게 인기가 없지만 다행히 나의 아내는 나의 수염을 존중해준다. 이 존중이라는 것이 내게는 참 중요한 것이다. 싫어한다고 밀어버리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좋아해서 기르라고 떠밀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이의 수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는 모든 이들이 다른 사람의 수염에 대해서 이러한 존중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니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기르건 말건 신경이나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수염에 대한 박해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각종 참견은 물론이고 더럽다느니 게을러보인다느니 하는 혐오적인 발언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수염 기른 사람은 정말 더럽고 게으를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수염을 모두 제거하는 면도보다 일정한 모양과 길이를 유지하는 수염 관리가 훨씬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관리를 해야 하므로 더럽거나 게으르다는 것은 분명 편견이다. 실제로 더럽고 게으른 사람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수염에 대한 박해는 단정치 못하고 불량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남성 중 수염 없는 남성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터 잡으신 단군할아버지도, 만주 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도, 말 목 자른 김유신장군도 모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가 되는데 이 분들을 두고도 불량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굳이 역사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대 다른 국가를 향해서만 시선을 돌려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직자나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수염을 허용하지 않는 풍토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밴스 부통령부터 멋드러진 수염을 기르고 있고, 일본에서는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체육부(스포츠청)장관 무로후시 고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수염 미는 문화가 서구권을 통해서, 혹은 주변국가를 통해서 양장과 함께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허용되는 것이 우리에게만 허용되지 않는 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수염에 대한 박해, 차별, 탄압을 멈출 것을 제안한다. 공직자에게 존재하는 품위유지의 의무를 수염과 연관 짓지 않기를 부탁한다. 기업에서 수염 기른 사람에게 눈치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채용할 때 수염이 있다고 해서 배제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위생이 중요한 업장에서 수염의 유무가 아니라 청결하게 관리되었는가의 여부를 체크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 ‘수염 안 기를 권리’가 생겨난 것이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수염 기를 권리’, ‘수염 기르고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5-11

사랑과 글쓰기, 기억과 해석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필립 빌랭이 실제 연인 사이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대학 시절,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 매료되어 팬레터를 보낸 것을 계기로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된다. 에르노가 쉰넷, 빌랭이 스물넷이던 시절의 일이다. 필립 빌랭은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포옹’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세월이 흐른 뒤, 에르노는 같은 관계를 ‘젊은 남자’라는 작품으로 다시 써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시선으로 쓴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언어로―그러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기록한 문학적 대화다. 내가 필립 빌랭의 ‘포옹’을 처음 읽은 건, 열다섯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전학생 신분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나름 우등생 소리를 들었지만, 새 학교에서 나는 어설프고 소심한 학생일 뿐이었다. 다들 나의 진가를 몰라주고 있다. 모두가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내게 조언을 건네는 문학 선생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도서관 책장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아무도 모르게 나를 건드려줄 문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은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프랑스 문학 코너는 언제나 사람이 적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책을 고르곤 했다. ‘포옹’은 매우 얇았다. 완독하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표지에서 설명하듯 외설스럽고 자극적인 소설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은 확실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랑에 관한 글쓰기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너머 작가가 끊임없이 발화하고자 했던 것. 그가 끝내 포기하지 못했던 선명한 욕망.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제 나는 삼십 대를 지나고 있고 어쩌다 보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니 에르노에 관한 글을 준비하다가 자연스럽게 필립 빌랭의 ‘포옹’을 펼쳐 들었고 순간 열다섯 어느 날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낯선 세계를 손끝으로 매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읽은 이 책은 어설프고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대목은 나의 미숙함과 똑 닮아 있어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아니 에르노는 ‘젊은 남자’에서 말한다. 그와의 관계는 단지 열정의 시간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과 조우하는 계기였다고. 그녀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권력을 체험하기도 한다. 아니 에르노가 천착해 온 주제―여성의 몸, 욕망, 권력에 관한 문제―가 짧은 기록 속에서도 집요하게 고개를 든다. 그것은 ‘포옹’에서 보이는 감정의 분출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영역이며 어떤 면에서는 모종의 쓸쓸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열다섯의 나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젊은 남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과거의 자신을 응시하는 중이다. 그때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 이제는 언어의 테두리 안에 천천히 포착된다. 세상과의 불화, 분투, 질투와 수치…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반드시 가질 수밖에 없는 시선. 자연스레 재해석되는 세계. 그러니까 결국 하나의 사건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점과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는 해석의 집합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그것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고 그 변화 자체가 또 하나의 진실이 된다. 모든 사건은 다층적인 얼굴을 가진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연쇄다. 그런 면에서 두 작품은 텍스트 그 자체로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이며 해석이 얼마나 복수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활자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바라본다는 것. 내가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렌즈가 흐려지고 선명해진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물론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자리에서 나만의 속도로 활자를 읽어가는 경험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것. 사랑과 글쓰기는 여전히 내 삶에서 두고두고 풀어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 /문은강(소설가)

202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