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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부분)

등록일 2024-05-16 19:32 게재일 2024-05-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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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하룻밤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들어온 것들의 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小邑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宿醉는 몇 장 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시인은 어떤 소읍에서 풀어헤쳐진 표정(“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을 가진 이들을 본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을 안고 사는 저들에게 이젠 떠오르는 것은 “내용물 없는 추억”이고, 그들은 “습관적으로 눈물을 흘릴 뿐”이다. 속절없이 가는 봄날에, 그들은 “생을 계산하지 못”하고 취한 채 이리저리 어딘가로, 자꾸 떠오르는 추억만 파리 쫓듯 손으로 쫓아내며, 힘없이 흐물흐물하게 흘러 다니고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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