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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처럼 꽃피다 사라진

등록일 2024-05-19 17:05 게재일 2024-05-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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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주

우린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버려진 상처의 속도만 기억할 뿐

출발선에서 신발을 챙기고

오래된 지도를 꺼내 보았는데

발자국으로 표시된 자리마다 파도가 출렁인다

 

외로운 물고기들이 서로 몸 비빌 때

잃어버린 부표가 떠오른다

 

지구 어딘가 찍힌 발자국으로

아무가 아무에게 아무를 아물게 하는 저녁

모퉁이는 잡히지 않고

낙서 가득한 얼굴들만 가득하다

읽어내지 못한 감정에

다시,

발밑에서

꽃들이 진다

출발선에 선 ‘우리’가 있다.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버려진 상처의 속도만 기억”하는 우리. 그 상처는 ‘오래된 지도’에 “발자국으로 표시”되어 있고, 그 자리엔 “파도가 출렁”인다. 이 발자국이 우리 중 “아무를 아물게” 해준다. 우리 모두 상처를 앓아본 일이 있어서. ‘아무’의 상처에 공감하기에. 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부표가 떠”오르는 것이다. 하나, 언제나 “다시,/발밑에서/꽃들이” 지는 건 삶의 법칙인 것.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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