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주
우린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버려진 상처의 속도만 기억할 뿐
출발선에서 신발을 챙기고
오래된 지도를 꺼내 보았는데
발자국으로 표시된 자리마다 파도가 출렁인다
외로운 물고기들이 서로 몸 비빌 때
잃어버린 부표가 떠오른다
지구 어딘가 찍힌 발자국으로
아무가 아무에게 아무를 아물게 하는 저녁
모퉁이는 잡히지 않고
낙서 가득한 얼굴들만 가득하다
읽어내지 못한 감정에
다시,
발밑에서
꽃들이 진다
출발선에 선 ‘우리’가 있다. “서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버려진 상처의 속도만 기억”하는 우리. 그 상처는 ‘오래된 지도’에 “발자국으로 표시”되어 있고, 그 자리엔 “파도가 출렁”인다. 이 발자국이 우리 중 “아무를 아물게” 해준다. 우리 모두 상처를 앓아본 일이 있어서. ‘아무’의 상처에 공감하기에. 하여, 우리가 “잃어버린 부표가 떠”오르는 것이다. 하나, 언제나 “다시,/발밑에서/꽃들이” 지는 건 삶의 법칙인 것.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