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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다

등록일 2024-06-09 18:49 게재일 2024-06-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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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맥켄드릭(이종숙 번역)

오늘 가던 길 멈추고 왜가리 한 마리가

후들후들 떨며 한겨울 넘기라고 물도 빼지 않고 버려둔 -

동네 수영장 가 구명대 위에 웅크리고 서서

정나미 다 떨어졌다는 눈초리로

텅 빈 물을 둘러보는 걸 지켜보았다. 살아 움직이는 건

피라미 한 마리도 없는데 이데 도대체 무슨 물이라는 거냐?

물처럼 보이지만 물이 아닌

물. 저리 뭐가 없으니 공기라고 해도 되겠다.

나는 그 느낌을 안다. 나는 왜가리의 그 앎을

느낀다. 세상은 협잡이다.

내 앞머리가 떨린다. 내 어깨가 웅크러진다. 내 부리는

쇠못처럼, 손도끼 날처럼, 날카롭다.

그러나 헤엄치는 것도, 번뜩이는 것도, 날 노려보는 것도 없다.

내가 살펴보는 연못의 수면 아래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시인 맥켄드릭의 시. 시인은 세상을 겨울에 “물도 빼지 않고 버려둔” 수영장으로 본다. 그것도 ‘왜가리’의 눈으로. 왜가리 눈엔 수영장 물은 물로 보이지 않는다. 그 물에는 살아 있는 그 무엇도 없기에. 연못으로 제유된 세상에도, 헤엄치거나 번뜩이거나 노려보는 것 같은 살아 있는 것이 없다. 오직 협잡만이 있을 뿐. 하여, 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인의 입은 왜가리의 부리처럼 날카로워진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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