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 로세티(김군 옮김)
나를 기억해 줘요 내가 사라지면,
저 고요한 땅속으로 멀리멀리 가버리면 말이에요
당신이 더는 내 손을 잡을 수 없고,
나 반쯤 가버려 조금도 머물 수 없게 되면.
나를 기억해 줘요 더 이상, 날이면 날마다,
당신이 짠 우리의 미래를 내게 말해 줄 수 없게 되면 말이에요.
다만 나를 기억해 줘요 당신은 잘 알 거예요
이제 도움말을 주거나 기도하기엔 늦었다는 걸.
그래도 얼마간 당신이 나를 잊는다 해도
훗날에라도 기억해 줘요, 그리고 슬픔으로 마음 아파하지 말아요
어둠에 휩싸인 내 부패한 몸이
한때 나 간직한 기억의 자취만을 남긴다면,
차라리 나를 잊고 미소 지어요
나를 기억한 채 슬퍼하지 말고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낭만주의 시인 로세티의 시. 반복되는 “나를 기억해줘요”라는 문장은 절실함이 증폭되면서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시인은 알고 있다. “내가 사라지면” 당신의 기억은 점차 사라지리라는 것을. 그래서 더욱 ‘당신’의 기억을 요구하는 것. 하나 시인은 당신이 “슬픔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견딜 수 없기에, 그땐 “나를 잊고 미소 지”으라고 말한다. 죽어도 여전히 당신을 사랑할 것이기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