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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암 시인의 우주에 모아놓은 꽃, 별, 총

등록일 2024-07-01 18:43 게재일 2024-07-0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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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경북 청도 출신 이종암 시인의 시집 ‘꽃과 별과 총’(시와반시, 2024)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꽃과 별과 총’인데 내용 배열은 제1부 꽃, 제2부 총(塚), 제3부 별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대지는 세상 만물의 어머니이고 대지에 꽃이 뿌리를 박고 있다. 그 대지의 무덤에는 사람이 묻혀있고 그리고 하늘에는 별이 떠 있다. 하이데거는 우주 만물의 존재론적 상징으로 꽃과 나무, 그리고 하늘의 새와 인간을 얘기했다.

이종암 시인은 하이데거를 인식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존재의 무덤을 ‘총(塚)’으로 상징화하였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꿈을 묻어놓은 곳이 무덤이다. 이 시집을 해설한 신상조 평론가는 한 마디로 이종암의 시를 “무구의 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라고 정리하였다. “사월 산길을 걷다, 엉겁결에/한 소식 받아 적는다/저마다, 꽃!”이라는 이 시인의 인식은 사람이 저마다 다 꽃이라는 말이다. 그의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 시인은 ‘별’을 상징하는 ‘꿈’이라는 시에서 “병든 여든일곱 우리 어머니/어저께 우리 내외 앉혀놓고 하시는 말씀//너거 아버지 세상 버린 지 십칠 년 만에 처음 내 꿈에 왔다 아이가, 집을 새로 다 지어놓았다 하더라, 거기서도 좋은 볏짚은 큰집에다 갖다준 것인지 반쯤 상한 짚으로 지붕을 엮어놓았다고 내가 또 잔소리를 막 하지 않았나, 이 꿈이 뭔공?// (중략) //안돼요, 아버지! 그곳에/ 어머니는 아직 가실 때가 아닙니다.” 이종암의 ‘꿈’에서 아름다운 이 지상의 꽃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이다. 그 한정된 “저마다 꽃인 사람, 연로하신 어머님이 꾸신 꿈에서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어머니의 방언 육성으로 전해준다.

“입 주변까지 번진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는/ 여든 일곱의 우리 엄마, 손순연/ 37도 무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꿋꿋하다// 오랜만에 안부 전화드리니/“우리 선상님, 어데 멀리 외국 나가셨든게?”// 이리 무더운데 요새 뭘 드시느냐 하니/ “내사 하늘의 별 따다 안 묵는게.” 하신다// 면구스러움에 앞서, 그것 참!/ 초등학교도 못 나와 한글도 모르는 분이/ 외국 유람은 어찌 알고/ 하늘의 별 따다 먹는 것은 또 어찌 알까?//시인이랍시고 까불락대는/ 헐거워진 내 언어가 다시 탱탱해진다/”. 이종암의 ‘시인의 엄마’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비유와 상징이 시시한 시인보다 더 싱싱한 상상력을 지닌 시인 엄마의 아들이다. ‘시인의 엄마’는 시인보다 더 시적 창조력이 탁월한 ‘시인 엄마’가 아닌가?

“내사 하늘의 별 따다 안 묵는게.”, 자주 전화도 안하는 자식에게 “우리 선상님, 어데 멀리 외국 나가셨든게?”는 참 엄중하다. 방언시의 문학적 장치로서 직접화법이 가진 위력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요사이 방언시가 제법 유행을 타자 아무렇게나 사투리로 쓴 하찮은 시들이 얼마나 나도는가? 오만과 독선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폐적 사유를 하는 시인들,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깨닫지 못한 언어의 창조라고 나불락거리는 시인을 질책하신다.

시인들이 쉽게 스스로 갇혀버리는 환영의 틀을 초등학교도 나오시지 않은 엄마가 따끔하게 일깨워주신다. 시인은 천상으로 가는 연도에 선 언어의 마술사나 되는 것처럼 “배터리 닳아가는 자동차에게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시인은 위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시라는 건 세상에 말 걸기이다. 수업 끝”이라는 자신의 ‘시론’이라는 작품에서 아주 해학적인 자조로 자신을 관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종암 시인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는 ‘숙살지다’(청도에 가서), ‘댕강무디’(이총, 댕가무디), ‘우짜든동’(하늘예금), ‘하늘예금’(하늘예금), ‘선상님’(시인의 엄마), ‘안 묵는다’(시인의 엄마), ‘그름감별사’(그름감별사), ‘구름관찰사’(구름감별사)에서처럼 방언도 살짝 빌려오고 새로운 낱말도 창조하는 우주를 관통하는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청정하고 순수하고 맑고 깨끗해서 살갑다.

이 시인의 시의 내면에는 인간 존재의 빈자리들 곧 꽃과 별이 총총한 이 우주 공간에서 적멸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삼인해’라는 시에서는 그 심연의 우주에 빈자리 “허공의 옆자리가 그토록 시리고 아프다”라며 꽃과 별의 시인의 인식의 깊이를 가늠케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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