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方言 이야기’를 통해서 1920년대와 1940년대 그리고 현대의 시와 소설이 담아내는 언어들이 생물의 종 다양성이 중요하듯이 한국어라는 언어를 구성하는 다양한 지역 방언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기회였기를 희망해왔다. 문학과 언어에 대한 본질이 지니고 있던 기본적인 시각이 사대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 세상과 불화할 목적으로 문학 창작을 하는 작가들은 없겠지만 극한적 위기의 시대를 만나면 평범했던 얼굴을 했던 악인들이 나타나고 거칠고 앙칼진 목소리도 나타난다. 좀 더 관대해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토착의 목소리를 동원하듯 민낯의 얼굴을 한 살아 있는 방언이 현실적 소통 세계로 더 활발하게 걸어 나온다면 우리들의 모국어는 훨씬 다양해지고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연환경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발전해 온 토착 언어 속에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 정보가 담겨 있다. 이 토착 지식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우리 모두가 의존하는 자원을 관리하는데 유용한 통찰력을 줄 수 있다. 생약 의약품의 4분의 1이 세계의 열대 우림에서 생산된다. 태평양 연안의 주목 나무껍질을 이용하여 난소암 치료제인 택솔을 생산할 수 있다. 과학 발전을 위한 다음 단계의 정보가 오지의 삼림 속에 있는 어느 이름 없는 토착 언어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북극 이누이트족은 얼음과 눈을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오고 있다. 에반 티 프리처드가 쓰고 강자모가 옮긴‘시계가 없는 나라(No Word for Time)’(2006)에 따르면 미국 원주민 언어인 미크맥어에는 가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로 나무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양 생물학자 R. E. 요하네스가 1894년 만난 팔라우 어부는 컴퓨터와 관련된 어휘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3백 가지 이상의 물고기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독특한 문화적 요소들이 언어의 절멸과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언어 다양성과 생물 다양성이 상실되는 과정 간에는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과거에는 생물 다양성의 상실은 인간의 개입 없이 진행되었으나 최근에는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 놓은 탓에 유례없는 대규모의 멸종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소멸해가는 토착 언어 속에도 새롭게 찾아내어 유용하게 활용할 자원이 엄청나게 숨어 있다는 말이다.
언어의 붕괴 현상도 전 세계적 생태계의 붕괴 현상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인위적인 언어 정책이 언어의 절멸을 더욱 가속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15세기 유럽의 해외 진출, 18세기 산업혁명, 19세기 도시화된 국가, 20세기 과학 혁명과 같은 인류 역사의 대변혁이 환경 변화와 함께 인간의 삶의 방식을 획일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언어 절멸의 문제가 중요한 주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언어가 많이 있으면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이나 현대화에 장애가 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인도가 다중 언어로 인해 분열되었고 영어권은 단일 언어여서 단합을 이루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공통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도 정치적 단합이나 통합을 이루지 못한 북아일랜드나 소말리아, 구소련 공화국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예루살렘의 거리 표지판은 다중 언어로 되어 있는데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영어, 아랍어, 히브리어가 위아래의 순서가 달리 배치되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보인다. 1919년부터 1948년 사이 팔레스타인이 영국 통치 하에 있을 때에는‘영어-아랍어-히브리어’의 순서였지만 요르단 사람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에는‘아랍어-영어-히브리어’의 순으로, 196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에는‘히브리어-영어-아랍어’의 순위로 재배열되었다. 이처럼 언어는 전 세계에 걸쳐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언어와 방언 역시 정치나 문화적 힘에 따라 우열의 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
문학에 나타나는 방언의 중요성에 대한 칼럼 연재를 이제 마무리하려고 한다. 언어의 변종은 생태적 경쟁의 상태에서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루살렘의 거리 표지판처럼 상생적인 힘을 갖기도 한다. 문학 언어로서의 방언의 소중함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방언 사용이 지역 문화와 관광에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확장되기를 바란다. 방언을 지역사회의 각종 안내간판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인식이 확대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