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임우기는 그의 비평문집인 ‘문학과 예술의 다시 개벽’(솔, 2024)에서 “방언은 삶의 살아있는 현장의 목소시를 직접 가져오는 것일 테니까 그야말로 삶의 내부에서 우러나온 자재 연원의 언어이고, 그것이 여러 현장의 구체성을 확보할 테니까 인위적 공교함을 앞서는 언어”라며 방언문학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소외된 삶을 사는 자들의 방언 복권으로 아버지의 삶의 승리로 이끌어 주기 때문에 문학적 승리라는 해독은 매우 난해하다. 시인의 눈에 비친 여항의 사람들의 삶을 방언으로 그려내면서 여항인들이 과연 무슨 변화가 있을까? 햇볕이 자주 다가서지 못하는 세계의 모든 소리들 그 가운데 기거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태양의 밝은 햇살에 조명된 표준어로 쓴 시에 가까이 다가서게 해준다는 자율적 시론을 확대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게 문학방언이 놓여야 할 자리”라고 방언문학론을 펼쳤다. 그가 대표적 방언 시인으로 꼽은 시인 육근상은 충청 방언으로 온전한 시를 창작한 많지 않은 시인 중의 한 분이다.
육근상의 시집 ‘동백’(솔, 2024)에 실린 ‘해나무팅이’라는 작품을 보자. “해나무팅이라는 곳은/다 헐 수 웂는 말 빈 마당 휘돌먼/천장 내려온 먹구렝이 문지방 넘어 대숲 아래 똬리 틀고 있다는거다//새벽밥 준비허던 엄니/투거리 들고 장 뜨러 나왔다/아달아 오짠일여 언능 들어가자/아니다아니다 정짓간 들어가/주먹밥 쥐여주며 잽히먼 안 된다/엄니는 암시랑토 않응게 호따고니 넘어가그라/지푸재 새앙바위 뜬 그믐달인 거다/뒤안길 달음박질치다 넘어져/손톱 빠지고 이마빡 깨고/옆구리 터져 돌아와 보니/뚜껑이 개터래기 땅개 모르는 척이다/아무 말 허지 않는다/그슨새 지나간 자리 않고서야/숨죽이고 핀 꽃들 펀던 달려나갔겠는가/돌아보도 않고 피반령 넘어 갔겠는가“
그는 왜 이 시를 방언으로 썼을까? 햇살이 내리는 마을의 한 모퉁이 자리인 ‘해나무팅이’는 시인의 고향집이다. 운동권 수배자 신분의 시적 화자가 꼭 시인과 일치하는가의 문제는 중요치 않다. 수배자 신분으로 숨어든 고향집 ‘엄니’와 동네 친구들과 문 앞에 매인 개도 이 시의 서사의 핵심이다. 이 시의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부 토박이의 말로 표현함으로써 현장감과 서사를 더 견고하게 다져 준다. ‘암시랑토 않응기 호따고니 넘어가그라’가 이 시의 핵심행이다.‘나는 아무렇지 않으니까 경찰에 잡히지 말고 빨리 산을 넘어가 피신하라’는 ‘엄니’의 말은 캄캄한 밤하늘에 뿌린 핏빛별이 된다.
반정부 시국 사건에 연루된 자의 실화사건이 문학장치에 올려져 엄청난 확대 재생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독재의 강압조치가 부풀어오른다. 문제는 이런 민중성을 이용한 작품의 상투성의 문제나 허구성의 한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거칠 사이가 없었다.
부들부들 먹기좋게 잘 부풀어 오른 빵에 요기조기 보기 좋고 맛있게도 박혀있는 콩과 같이 친근한 방언 ‘그슨새’ ‘호따고나’, ‘펀들’은 독자들의 식감을 한층 더 높여 준다. 육근상 시인의 ‘화엄장작’, ‘꿀벌’, ‘가을’과 같은 뛰어난 시에 펼쳐진 시의 말씨를 보면 그는 고향지명과 토박인 말씨의 청각적 인상을 매우 중시하며, 문학방언으로 진지하게 시작하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꿀벌’이라는 시에서 “엄니가 생을 하다여/사경을 헤매고 있던 날/마당 가득하게 작약은 피어있었네/뜰팡에 벌통 몇 개 놓고/꿀 따곤 하셨는데/겨울날이면/늬덜두 목숨인디 먹구살으야지/아나 아나/벌통에 설탕물 부어주곤 하셨네(중략)/허리에 상복 무늬 하고/끝없이 걸어나오던 꿀벌들/밀랍을 먹감나무 가지에 발라놓아도/영영 돌아오지 않았네.”‘꿀벌’의 묘사를 엄니 장례에 면한 상복으로 처리한 점도 대단하지만 그 이전 수배자 신분으로 엄니 곁을 지키지 못한 시적 화자를 대신한다는 상상력도 뛰어나다. 엄니는 아들 대신 벌들을 자정으로 키웠고, 벌은 아들 대신한 상주 역할로 보답하는 것이다. 육 시인과 같은 민주운동의 세력을 배출한 것은 세상일과 아무 관계없는 듯한 무지랭이 농사꾼의 아내요 육시인과 같은 아들을 키운 ‘엄니’들이다. 민주화의 주류 레짐의 밑에는 한국의 어머니가 ‘지령의 기화’(임우기, 329)임에 틀림이 없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노동에 시달린 못난 대한민국의 어머니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류를 키워내었기에 그들의 시골 방언은 그들의 심회를 그대로 전달하는 강력한 힘의 언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