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에 너도나도 ‘허리띠’<br/>가구당 소비성향 9분기만에 최저<br/>당근마켓 올 거래액 6조 돌파 전망 <br/>백화점 등 고가 소비시장은 주춤<br/>전문가 “내수 경기 활성화 필요”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고, 필요한 생활용품은 중고 거래 앱에서 싸게 삽니다”
중소기업 직장인 박모 씨(35·대흥동)는 “혼자 자취를 하고 있어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하다”며 “기존에는 잘 신경 쓰지 않던 소소한 지출까지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인 정모 씨(22·죽도동)도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중고 거래 앱에서 판매하며 용돈을 마련한다. “집에 방치된 물건들을 판매했더니 생각보다 수익이 쏠쏠했다”며 “필요한 물건도 가급적 새 제품 대신 중고 거래 앱을 통해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침체와 고물가의 영향으로 박 씨와 정 씨처럼 최대한 가성비를 추구하고 소비를 절제하는 ‘짠물소비’가 경제적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짠물소비는 ‘짠물(인색함)’과 ‘소비’를 결합한 신조어다.
일반인이 소비를 절제하고 있다는 것은 구체적인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2024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가구당 평균소비성향은 69.4%로, 작년 같은 분기(70.7%)보다 1.3%포인트 낮아졌다. 평균소비성향이 낮을수록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이 적다는 뜻이다. 평균소비성향이 전년 대비 하락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2분기 이후 아홉 분기 만이다. 평균소비성향은 지난해 1분기부터 줄곧 70%대를 유지하다가 이번에 처음 60%대로 떨어졌다.
짠물소비 트렌드에 힘입어 중고 거래 앱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당근마켓의 중고 거래 건수는 2021년 5100만 건에서 2023년 6400만 건으로 늘어났다. 거래 금액은 같은 기간 2조9000억 원에서 5조1000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올해는 9월까지만 해도 4900만 건 이상이 거래돼, 연말까지 6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편의점 업계에서도 ‘짠물소비’ 트렌드가 두드러진다. CU에 따르면, 1000원 이하 초저가 상품의 매출 신장률은 매년 급격히 증가했다. 2021년 10.4%에 불과했던 상승률은 2022년 23.3%로 두 배 넘게 증가하더니, 올해는 전년 대비 28.1%까지 뛰어올랐다. 경쟁사 세븐일레븐은 2900원짜리 최저가 도시락을 선보이며 저가 상품 경쟁에 가세했다.
저가형 오프라인 매장 다이소도 경기 불황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다이소는 5000원을 초과하지 않는 ‘균일가’ 정책으로 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다이소의 매출은 매년 상승세를 기록하며 올해는 4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고가 소비 시장은 주춤하고 있다. 백화점 명품 매출 성장률은 확연히 둔화됐다. 롯데백화점의 명품 매출 신장률은 2021년 35%에서 올해 5%로 크게 줄었고, 현대백화점도 같은 기간 38.4%에서 11.5%로 하락했다. 이는 사치성 지출을 줄이려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심지어 명품시장에서도 짠물소비 영향으로 중고 명품 거래와 이월상품 구매가 늘어나고 있다. 중고명품 플랫폼 구구스에 의하면 중고명품거래액이 2150억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대비 19.7% 성장한 수치로 역대 최고치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짠물소비’ 트렌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 대비 소비 여력이 줄어들면서 서민과 중산층은 적은 금액도 전략적으로 관리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내수 경기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이러한 소비 패턴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단정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