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국론을 모으는 과정이다. 후보들의 차이점을 부각하면서도, 결국 수렴하게 만든다. 분명하지 않던 의견 차이가 경쟁 후보와 비교할 면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렇지만 유권자를 의식해 점점 경쟁 후보와 닮아간다.
왼쪽에 있는 후보는 조금 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오른쪽에 있는 후보는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특히 양당제 구도를 가진 나라에서는 누 가 중도층을 더 많이 확보하느냐를 두고 경쟁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공을 들이는 게 그런 노력의 하나다.
이렇게 국론을 하나로 모으면 바람직하다. 하지만 늘 그런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비슷해져 가면서도, 진영 대결의 감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깊은 편 가르기가 병이 되는 경우도 많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일도 허다하다. 선거 때만 사탕발림하는 거짓말이다.
특히 이런 과정을 방해하는 것이 극단 세력이다. 도식적으로 극우와 극좌에 있는 집단이다. 오른쪽에 있는 후보가 중간 지대를 공략하려 해도 극우세력이 견제하면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 자칫 중간에서 얻는 표보다 오른쪽에서 빼앗 기는 표가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광훈 목사가 “아직도 계엄이 잘못됐다고 하는 40%는 북한으로 가라”라고 주장하는 게 그런 사례다. 왼쪽도 마찬가 지다.
6·3 대선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당해 치른다. 비상계엄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심판했다. ‘찬탄’(탄핵 찬성)과 ‘반탄’으로 갈라져 세 대결을 펼쳤지만,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반탄’ 세력조차 쉽게 지지하지 못한다. 이런 국면에서 대선을 ‘찬탄’ 대 ‘반탄’ 대결로 몰아가면 ‘반탄’ 후보가 백전백패다. YTN 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한 지난주 여론조사를 보면 ‘정권 교체’ 여론이 54% 로 ‘정권 연장’ 36%보다 크게 앞섰다.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는 정권 교체 의견이 갑절로 많았다. 국민의힘이 탄핵에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은 영향이 크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은 24일 정강· 정책 방송 연설에서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계엄과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다”라면서 “국민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의 반민주적 정치에 순응한 것을 조목조목 반성했다.
처음, 이 연설을 들을 때 당내 분란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의외로 국민의힘 지도부가 공감을 표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전반적인 취지에 동의한다”라면서 “건강한 당정 관계를 구축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말했다. “차마 말 못 하고 있었는데…”라는 느낌이다. 대신 물꼬를 터준 셈이다. 대선 경쟁에 의욕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정권 연장을 포기하고, 차기 당권이나 잡자는 분위기에서는 탄핵 반대가 유리하다. 다음 총선 공천을 걱정하는 의원도 함부로 ‘찬탄’ 목소리를 못 낸다.
당장 대선 당내 경선 후보들도 자세를 바꾸고 있다. 가장 탄핵에 반대했던 김문수 후보도 윤 원장의 발언을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간절한 목소리”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6일 ‘4강 토론회’에서 김 후보는 “사과는 당연히 할 때가 되면 하겠다”라면서 “민주당은 하나도 반성·사과하지 않고, 우리만 계속 사 과하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홍준표 후보는 “제가 최종 후보가 되면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기회를 보고 있을 뿐 사과할 뜻은 있다는 말이다. 이미 계엄 반대와 사과를 밝혔던 한동훈 후보는 “절대로 겪으셔서는 안 되는 일을 겪게 해드려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당 대표였던 사람으로서 국민께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거듭 사과했다. 안 후보는 “우리 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29일 국민의힘은 4강 대결 결과를 발표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5월3일 최종 후보를 발표한다. 그 가운데 한덕수 총리와 단일화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 누가 후보가 되건 경쟁 후보들의 힘도 끌어모아야 한다. 그러려면 탄핵에 대한 의견부터 먼저 하나로 모아야 한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