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
엄마가 아파트 문 앞에
정물처럼 서 있다
열쇠 번호가 생각이 안 나
못 들어갔다고 한다
평생을 살았던 집
왜 엄마는 갑자기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텅, 텅, 잠깐씩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 들리고
고요한 세상의 정적 속에서
엄마는 얼마나, 이 세상이
막막했을까
…….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억은 이젠 비밀번호다. 아파트 문 비밀번호, 핸드폰, 은행 비밀번호…. 그 번호를 잊은 ‘엄마’는 “평생을 살았던” 자신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세상, 엄마는 “정물처럼 서”서 막막해한다. 그 막막함은 이 세상이 번호로 닫혀 있는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년은 이 관문을 열 수 없다는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