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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의 문(부분)

경북매일
등록일 2025-05-12 18:19 게재일 2025-05-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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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훈

엄마가 아파트 문 앞에

정물처럼 서 있다

열쇠 번호가 생각이 안 나

못 들어갔다고 한다

평생을 살았던 집

왜 엄마는 갑자기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텅, 텅, 잠깐씩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 들리고

고요한 세상의 정적 속에서

엄마는 얼마나, 이 세상이

막막했을까

…….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억은 이젠 비밀번호다. 아파트 문 비밀번호, 핸드폰, 은행 비밀번호…. 그 번호를 잊은 ‘엄마’는 “평생을 살았던” 자신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세상, 엄마는 “정물처럼 서”서 막막해한다. 그 막막함은 이 세상이 번호로 닫혀 있는 관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년은 이 관문을 열 수 없다는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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