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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생일의 비애

경북매일
등록일 2025-06-08 19:42 게재일 2025-06-0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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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들 사이에서 홀로 토끼로 지내야만 했다…/챗gpt

나는 1987년 2월 18일에 태어났다. 2월 18일이라는 날짜를 생일로 갖는다는 것은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몇 년이 흘러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취학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1일에 다 같이 한 살을 먹는 세는 나이를 흔히 사용하는데, 초등학교의 입학 대상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3월 1일부터 2월 29일까지를 한 학년으로 정의하는 3월 학기제를 사용하는 대한민국 교육부는 학기의 시작인 3월 1일을 기준으로 만 6세에 해당하는 아이들에게 취학통지서를 발송했다. 그러다보니 3월부터 12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세는 나이로 8세에 학교에 입학을 하고, 1월부터 2월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7세에 입학을 하는 기이한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2009년에 해소되었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지만 어쨌거나 1987년에 태어난 나는 1986년에 태어난 형, 누나들과 동창이 된 것이다.

내가 원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나로서도 1993년에 입학하는 것보다 1994년에 입학하는 편이 더 행복했을 것이 분명했다. 성인이 된 지금이야 몇 달 일찍 태어나고 늦게 태어나고 하는 문제가 신체적인 차이로 나타나지 않지만, 빠르게 성장할 시기인 만 6세 아이들에게 몇 달은 어마어마한 신체적 차이를 발생시키는 기간일 수 있다.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1993년 입학 어린이들 중 막내 축에 들에 되었다. 1986년 3월에 태어난 친구들과는 11개월이나 차이가 났으니 당연히 그들보다 키도 작고 머리도 덜 여물었을 터였다. 실제로 나는 지금 내 나이 대 남성의 평균 신장을 아주 조금 넘는 키를 가지고 있지만 초등학교때는 내내 스무 명 남짓한 남학생 중 키 순서로 3번에서 6번 사이를 왔다 갔다 했으니 상당히 왜소한 편이었다. 가장 늦게 태어난 아이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키가 작다고 걱정할 이유는 없었는데 학교를 한 해 일찍 가는 바람에 키 걱정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 선택할 수 있었다면 1994년에 입학해서 1987년 생 중 맏이 노릇을 하는 것이 학교생활에 있어 여러모로 유리했을 것이 분명하다.

어릴 때 겪었던 성장 속도의 문제는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해결이 되었지만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가끔씩 느끼곤 했었던 소외감이었다. 비록 한 살이 어리지만 함께 학교생활을 하는 동창들과는 친구로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가끔 나이 이야기가 나올 때 나만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사실을 꺼내 놓으면 누군가는 나더러 왜 자기한테 형이라고 부르지 않냐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더군다나 나는 입춘마저 지나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 모두에게 부여되는 12간지, 다시 말해 띠는 입춘을 기준으로 한다. 1987년 1,2월에 태어났더라도 입춘이었던 2월 4일 이전에 태어난 친구들은 1986년생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호랑이띠가 된다. 그러나 2월 중에서도 뒤쪽에 해당하는 18일에 태어난 나는 그 호랑이들 사이에서 홀로 토끼로 지내야만 했다. 하필 또 호랑이랑 토끼였다.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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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학교 다닐 때야 ‘몇 살이야?’보다 ‘몇 학년이야?’를 물어보니 문제가 적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위아래를 가리기 위해 꼭 ‘몇 년 생이십니까?’ 혹은 ‘몇 살이십니까?’를 묻게 되니 간혹 난감해진다. 2025년 현재 세는나이로 1986년생은 마흔 살이고 1987년생은 서른아홉 살이다. 사실대로 1987년생, 서른아홉 살이라고 하면 ‘기어이 삼십 대에 붙어 있으려고 한 살을 깎느냐’고 핀잔을 주는 이들과 굳이 나에게 형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1986년생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1986년생 마흔 살이라고 하면 나중에 내가 1987년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치사하게 나이를 속였다’며 파렴치한으로 몰리기도 한다. 이러나 저러나 족보가 꼬인다며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빠른 87년생입니다’고 하면 굳이 ‘빠른’을 챙겨먹으려고 한다고 비웃는 이가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는 내가 서른아홉이어도 상관없고 마흔 살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단지 일관성 있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 가서는 서른아홉으로 살고 어디 가서는 마흔으로 사는 것은 내가 피곤해서 싫다. 차라리 누가 정해주면 좋겠다. 

 

“당신은 1987년생이니 이제부터 1986년생을 만나거든 형님, 누님으로 대하세요.”, 혹은 “당신은 오늘부터 1986년생과 다름없이 마흔 살로 살아야 합니다.” 하고 말이다.

/강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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