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기 침수, 가축 폐사에 물가 폭등 ‘이중고’
최근 전국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농업 분야가 심각한 피해를 입으며, 농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기고 있다. 정부는 긴급 복구와 피해 지원에 나섰지만, 피해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집중호우로 인해 전국 농지 2만7094ha(농경지 침수 2만6893ha, 유실·매몰 161.3ha, 낙과 39.7ha 등)가 피해를 입었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93.4배에 달하는 규모다.
지역별로는 전북 1만4569ha, 충남 7832ha, 충북 1802ha, 경북 1636ha, 전남 1195ha 등에 피해가 집중됐으며, 작물별로는 벼와 콩이 각각 1만9465ha와 5198ha로 큰 침수피해를 입었고, 수박 333ha, 멜론 259ha, 사과 130ha 등 과실 피해도 잇따랐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밭 전체가 물에 잠겨 수확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시설하우스 피해도 1727ha에 달해 고부가가치 작물 생산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가축 피해도 심각하다. 이번 집중 호우로 18일 기준 가축 57만9000(닭 53만3000마리, 오리 4만3000마리, 돼지 3000마리)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 중 닭이 전체 폐사 가축의 93%를 차지한다. 특히 육계 중심의 양계장이 집중된 중남부 지역에 피해가 이어지면서 닭고기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일주일 여 동안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농작물 피해는 지난해 피해 규모보다 6배 이상 높다. 가축 피해는 12배에 달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현재도 피해 규모를 집계하고 있어 앞으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폭우로 인한 출하량 급감은 곧바로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쳤다. 시금치 도매가격은 한 달 전 대비 219% 상승했으며, 상추는 195%, 얼갈이배추는 113% 급등했다. 오이, 애호박, 토마토 등도 30~60% 이상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런 급등이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추석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침수 피해를 본 농경지 작물 상당 부분은 폐기가 불가피해 가뜩이나 가파르게 오르고 있던 농산물 가격에 큰 여파를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농산물 가격 급등은 단순한 농가 피해를 넘어 ‘애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면서 외식비 상승, 소비자 부담 증가는 물론, 정부의 물가 관리에도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포항 죽도시장의 한 농산물 가게 대표는 “얼마 전까지는 가뭄으로, 이번에는 폭우로 농산물 수확에 차질이 발생한 상태”라며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전반적으로 상승이 불가피하며 일부 품목은 폭등도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신속한 손해평가와 피해조사를 통해 보험금 및 복구비를 지급할 계획”이라며 “농촌진흥청·농협·지자체와 협력해 응급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배수 조치, 병해충 예방, 축사 환기 등 현장 기술지도를 강화하고 있다”며 “생육 지원을 위한 예비묘 250만주 확보, 농자재 할인 공급, 소비자 대상 할인 행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