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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공조로 본 남북문제의 향방

등록일 2025-08-27 18:05 게재일 2025-08-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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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본사 고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첫 라운드는 예상보다 무난히 마무리됐다. 회담 시작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SNS에 쏟아낸 도발적 언사가 긴장을 고조시키며 국민을 불안하게 했지만, 막이 오르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관세 압박과 안보 위협도 없었다. 대신, 노벨평화상과 북미대화라는 상징적 의제가 회담장을 채웠다. 우리 대통령은 유연한 언어와 특유의 재치로 트럼프를 추켜세우며 회담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정상회담의 중요한 함의는 따로 있었다. 대한민국 외교 전략의 핵심으로 강조해 온 ‘한반도 운전자론’이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수차 등장했던 구상은,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 중재자’로서 판을 이끌어간다는 비전이었다. 이번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운전자’가 아닌 조력자 즉 ‘페이스메이커(Pace Maker)’로 규정했다. 주도권을 쥐지 않고 보조자의 위치, 즉 트럼프라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만들어내는 흐름을 측면에서 지원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수사적 표현을 넘어 나라의 외교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미중 간 전략경쟁이 격화되고 대북제재가 장기화되며 한미동맹의 비대칭성이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독자적 판을 짜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판이다. ‘운전자론’이 자주성의 상징이었다면, 이번 회담에서 드러낸 태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판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수순, 세 갈래가 보인다. 첫째, 김정은의 반응이다. 트럼프가 노벨평화상과 북미대화 재개를 거론한 만큼, 북한이 어떤 신호를 내놓을지가 곧 국면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긍정적 화답이 온다면 대화 재개의 문이 열리겠지만, 침묵이나 부정적 메시지가 이어진다 해도 회담의 효과는 삭제되지 않는다. 둘째, 미국의 전향적인 접근이다. 북한이 호응한다 해도 미국은 “조건없는 양보” 대신 “실질적 비핵화조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북측의 상응행동이 있어야 대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미국외교 관료 집단의 일관된 입장이다. 트럼프가 환영 제스처를 보였더라도 국무부와 안보 라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셋째는 한국의 준비다. 한국이 직접 판을 짜고 남북대화를 통해 북미협상을 견인하지는 않는다. 정상회담의 메시지는 다르다. 한국이 독자적 의제를 내세우기보다 미국이 만드는 흐름에 발맞추어 가겠다는 태도다. 이 선택이 단기적으로는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한국 외교의 주체적 기반을 좁히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한미 정상회담은 ‘작은 성공’을 낚았다. 분위기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운전자론’ 대신 ‘보조자론’이 떠올랐다. 스스로 판을 짜기보다, 트럼프의 관심사인 노벨평화상과 북미대화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우리는 더이상 운전석에 앉지 않는다. 외교의 주체성을 양보하고 강대국의 정책 흐름에 올라타는 방식이 장기적 안정과 항구적 평화를 담보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안도를 넘어, 또 다른 긴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장규열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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