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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옥수수를 먹으며

등록일 2025-09-10 13:41 게재일 2025-09-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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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여름이 되면 먹거리들이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찐 옥수수다. 요즘이야 사철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간식거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쫀득쫀득하고 부드럽고 찰진 옥수수는 아무래도 여름에 나는 제철 옥수수다. 남편도 좋아해서 한 봉다리씩 사서 자주 먹곤 한다. 옥수수를 좋아한다는 내 말을 듣고 유 선생님께서는 풍각장에서 파는 찐 옥수수가 참 맛있던데 하시며 사다 줄 걸 하셨다. 그러고 한참이 지난 며칠 전 저녁 유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 내일 풍각장날인데 찐 옥수수 사다 드릴게요.“ 아이고 언뜻 지나가는 말처럼 했던 내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새기셨던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장터까지 가서 사오신 뜨거운 찐 옥수수를 넘치게 가져다 주셨다. 선생님의 뜨거운 사랑같은 찐 옥수수를 먹으며 옥수수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을 소환해 낸다.

초등학교 땐 학교급식으로 옥수수죽, 옥수수빵을 나눠주었다. 요즘같이 모든 학생들이 먹는 급식이 아니라 가난해서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에게만 주는 급식이었다. 나는 무슨 연유인진 모르겠는데,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줄곧 급식당번을 했다. 4학년 때는 옥수수죽이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양호실로 달려가 큰 양동이에 받아온 옥수수죽을 빈 도시락을 들고 온 아이들에게 펴 담아 주었다. 가난했던 시절, 70명이 넘는 학생 중 유독 더 가난하여 도시락도 챙겨오지 못한 아이들이 꽤 되었다. 제법 커다란 양동이 가득 받아온 옥수수죽을 한 도시락씩 담아 주면 금세 바닥을 보이곤 했다. 옥수수죽을 배급하는 사이 도시락을 싸온 아이들은 이미 거의 도시락을 먹은 상태였고, 그동안 이 아이들은 쫄쫄 굶은 배를 움켜쥐고 밥 먹는 아이들을 지켜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싸온 도시락을 먹지 못한 채 급식 배급이라는 중요한 임무 수행 중이었다. 그 당시 내가 맡은 일이 하나는 더 있었다. 소소한 학급 일상을 적는 학습일지를 쓰는 것이었다. 매일의 학급일지에는 ‘착한 일 한 사람’, ‘나쁜 짓 한 사람’을 적는 난도 있었다. 이따금 나는 ‘착한 일 한 사람’ 난에 내 이름을 적고 싶어,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친구에게 내 도시락을 주고, 대신 나는 옥수수죽을 떠먹기도 하는 앙큼한 짓을 하곤 했다. 가끔은 친한 친구에게 도시락과 옥수수죽을 바꿔 먹으면 이름을 올려주겠다며 꼬드기기도 했다.

옥수수 급식은 해마다 바뀌었다. 5학년 때는 옥수수로 만든 찐빵이었고, 6학년 때는 빵틀에 구운 옥수수빵이었다. 해마다 조금씩 나아진 것 같기도 하지만 가장 맛있었던 것은 옥수수죽이었고, 찐빵은 별로였다. 내가 3년을 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양호실 선생님과 꽤나 친해졌나 보았다. 가끔 양호 선생님께서는 수업 후에 양호실에 들르라고 말씀하셨고, 집에 가지고 가 식구들과 나눠 먹으라시며 남은 빵을 가득 싸 주시기도 했다. 따로 넣을 곳이 마땅찮으면 책가방의 책을 빼내 신발주머니에 넣거나 끈으로 묶어 주시고, 가방 가득 빵을 넣어주셨다. 이렇게 받아온 빵은 엄마에겐 좋은 요깃거리였다며 엄마는 회상하곤 했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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