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대응 패러다임 전환] ‘산불을 견디는 마을’을 만드는 법⑤
경북 산불의 주요 원인은 성묘객의 실화로 인한 불씨 발생으로 확인됐다. 2025년 3월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은 성묘객이 묘지 정리 중 라이터와 술병 뚜껑을 사용해 불을 붙인 것이 최초 발화로 추정되며,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소나무 밀집 지형 등이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사소한 부주의가 대형 피해로 이어졌기에 산림 내 화기 사용과 안전수칙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산불 예방에 대한 주민 의식들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주민 참여와 예방 교육이 핵심으로, 산불 위험 인식을 높이고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데 중점을 둔 캐나다의 ‘파이어 스마트(Fire Smart)’ 프로그램은 한국 산불 관리 정책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마을단위 방위선 ‘파이어 스마트’
주 정부가 펀딩자금 등 지원하고
규제·개발 등 문제 해결 역할 도맡아
산불피해 완화 전문가들은 조직적으로
직거래 시장·축제장 등 ‘다중시설’이나
가정집 등 찾아다니며 예방 교육 실시
‘지역사회 공동체 인증제도’는
인식 변화·참여도 제고 ‘일등공신’
파이어 스마트는 캐나다 전역 산불 위험을 줄이고 지역사회 산불 탄력성읖 높이고자 고안된 국가 프로그램이다. 지역 사회·정부·주민이 협력해 취약 지점을 개선하고 마을 단위 방어선을 구축하는 종합 정책으로, 단순한 불 끄기가 아닌 ‘불이 번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파이어 스마트는 △교육 △식생 관리 △법률 및 계획 수립 △개발 시 고려사항 관리 △주택과 기반시설 생존 가능성을 높일 개발 규제 도입 △기관 간 협력 △교차 훈련 △비상계획 수립 등의 7가지 핵심 원칙으로 운영된다. 이는 각 지역 파이어스마트 코디네이터와 지역 대표 등에 의해 실행된다.
지난 7월 방문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파이어스마트 BC’에서는 80여 명에 이르는 코디네이터들에 의해 프로그램이 기획·운영되고 있다. ‘파이어 스마트 BC’는 단순한 산불 대응 교육을 넘어 예방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 주 산불방지(FireSmart) 프로그램 책임자는 “‘파이어 스마트 BC’ 는 사후 대응에서 벗어나 예방 위주로 옮겨갔다. 실제로 바람 등으로 인해 산불을 대응하는 데 굉장히 한계가 있다 보고, 지금은 예방 중심으로 지역 사회 사람들에 대한 교육 훈련 위주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다”며 “집을 조성하거나 나무를 심고 꾸몄을 때 주민들의 행동이 변화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산불은 ‘정부만이 아니라 주민들과의 공동 책임’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본지는 파이어 스마트 프로그램 책임인 한나스위프트를 통해 주민 중심 예방 활동, 실행 과정 등 파이어 스마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를 살펴봤다.
-파이어 스마트 BC는 산불을 단순한 재난이 아닌 ‘공존해야 할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는 전환의 한 축으로 여겨진다. 이런 인식은 기관의 전략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고 있는가.
=산불은 불가피한 자연 현상이다. 굉장히 나쁜 것이 아닌 생태계에서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며 실제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불이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을 억제한다는 차원이 아니고 불에 대해서 ‘불이 났을 때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능력, 불이 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적응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로 옮겨갔다. 그래서 불이라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관리는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주민들도 무조건 불을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불이 난 후 대응을 해야 된다 등의 자세에 벗어나 불이 난 다음에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와 더불어 주민들도 공동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산불 대응은 전통적으로 주정부, 연방정부의 역할로 여겨졌다. 특히 주민들은 ‘피난 대상’이 아닌 ‘대응 주체’로서 주민을 포지셔닝하는 접근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파이어 스마트 BC가 예방의 주체로 나서게 된 계기는.
=산불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완화하는 데 있어 지역 사회가 굉장히 중요하다. 파이어 스마트라는 게 원래는 정부가 아니라 주민들이 먼저 시작한 움직임이다.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위험을 경감시키기 위해 시작했던 움직이고, 주 정부가 이를 인정하고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펀딩 자금 지원도 하고 있다. 지역 정부에 지원한다든지, 원주민들 공동체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규제 개발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그 정책을 받아들이고, 실천 했을 때 주민들에게 리베이트를 줘서 행동을 유도하거나 인증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주민들이 모여 공동 대응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파이어 스마트 7대 원칙은 각기 다른 지역 여건과 적용 방식이 있다. 이 원칙들이 어떻게 현실에 맞게 조정되고 적용됐는가.
=각각의 지역사회가 자기 특성에 맞게 해결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산불을 한 번 경험했던 지역과 경험하지 않았던 지역의 주민들의 행동과 대응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산불을 경험하지 않은 쪽은 산불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다. 이 경우 교육 위주로 접근한다. 그래서 직거래 농민 시장 등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 중심으로 교육을 한다. 즉, 산불 위험이 별로 없었던 지역이 산불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바뀌었을 때 주민들이 준비가 되어 있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산불을 이미 경험했던 지역은 저희가 가지고 있는 7가지 원칙을 가지고 접근해보면 주민들이 더 적극적으로 저희들의 교육이나 정책을 수용한다. 일례로 자신들의 집을 산불에 훨씬 잘 대응할 수 있는 집으로 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불 예방 프로그램이 지역 정부나 커뮤니티 입장에서 ‘매력적인 유인’이 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쓰는가.
=예를 들어 산불 피해 완화 전문가들을 조직해 활동한다. 이들은 각 집을 방문해 집들이 산불에 대해 얼마나 취약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평가해주고 집 주인들에게 권고한다. 또 지역 정부와 협력해 각종 주택 규제 기준들에 조언을 해준다. 공원 같은 경우 연료 저감이라고 해서 불에 탈 수 있는 것들을 사전에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각종 안내판을 붙여 공원에 오는 사람들에게 산불에 대해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을 알려주면서 교육 효과도 누린다. 이 외에도 지역사회 축제 등에 참석해 부스를 설치해 주민들을 만나 적극적인 교육을 진행하는 ‘레프리젠터티브’(representative)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일종의 지역사회 챔피언이라 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아주 모범적이고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파이어 스마트는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주민 인식을 바꾸는 데 노력해 왔다.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었는가.
=‘지역사회 공동체에 대한 인증 제도’다. 이런 인증 제도를 받은 공동체에서는 공동으로 자기들이 산불 위험을 감수하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한다. 자기 집 정원에 탈 수 있는 연료를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한 번 화재가 난 뒤 어떤 집이 더 잘타는지를 연구했는데, 대체적으로 파이어 스마트에서 제시했던 권고 사항을 지킨 집들은 화재를 덜 당했다는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역사회 공동체 인증하고도 연결이 된다.
-파이어 스마트 인증 제도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2021년 시작한 프로그램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판매자들과 협약을 맺어 구매자들로 하여금 산불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를 테면 식물판매자와 파트너십을 맺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식물 판매시 태그를 붙여 구매자가 구매 단계부터 어떤 식물이 산불에 대해 강한지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해당 식물은 어느 종이어도 상관없고 구매자들은 어느 구획이든 심을 수 있다. 식물판매처 뿐 아니라 건설 자재를 판매하는 숍, 철물소 등과도 파트너를 맺어 주민들이 집을 짓거나 보수하는 과정에서도 산불 취약 자재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65군데와 파트너십을 맺었고 이 중에는 캐나다의 유명 체인점들도 있다.
-파이어 스마트 BC는 향후 어떤 분야에 가장 역량을 집중할 계획인가.
=도시 설계를 하고 건축물 규제를 하고 있어 새로 집을 짓거나 기존 건물이라고 하더라도 산불에 대응하는 원칙들이 정책이나 규제를 통해서 파이어 스마트가 적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한다. 또 보험 산업과 연계하려 노력하고 있다. 주택 소유자가 파이어 스마트에서 얘기한 권장 사항들을 실천했을 때 실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 산불에 대응하는 행동들을 집주인들이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이 외에 산불이 일어나 피해를 입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다시 집을 짓는데 산불에 취약한 자재를 쓰는 등 행동에 대해서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행동 변화를 가져오는지, 사람들의 행동을 어떤 방식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려고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