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토 쓰루가 플로트 홀(Minato Tsuruga Float Hall). 쓰루가 산차회관(山車會館)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여기엔 화려하고 거대하며, 독특한 수레 3대가 전시돼 있다. 그걸 ‘산차(山車)’라고 부른다. 5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높이가 10m에 가까운 산차가 앞뒤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가을 초입 쓰루가 6개 마을의 자존심을 건 ‘야마’들 귀한 재료로 장식한 ‘야마막’ 두르고 퍼레이드 장관 도야마 시내 한복판을 순환하는 노면전차(트램)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모습 그 자체로 구경거리 ‘역에서 파는 도시락’ 에키벤, 장식부터 맛까지 일품 포항 ‘물회’, 영덕과 울진‘대게’, 겨울 강릉 ‘도루묵’ 등 동해선 특산물 도시락 상상만으로도 입맛 다시게해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만약 가을이 시작될 때 쓰루가를 여행하게 된다면… 산차의 윗부분엔 중세시대 일본의 유명 장수를 형상화한 인형이 놓인다. 내가 유심히 본 산차엔 화려한 갑옷을 입고 긴 칼을 든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의 인형이 올라있었다. 이시다는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조선을 침공한 병사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 한국인이 볼 땐 ‘우리 조상들을 욕보인 악당’이지만, 일본에선 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은 학자(學者) 스타일 장수였다고 한다. 가을의 초입인 매년 9월 4일이 되면 쓰루가의 6개 마을이 자존심을 걸고 ‘산차’를 장식해 일본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게히신궁(氣比神宮) 앞에 모인다. 이어서 장관이라 부를 만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 도시 최고의 마츠리(祭·축제)다. 쓰루가 시민들은 물론, 많은 외국인이 행렬을 보려 몰려든다고. 산차의 앞뒤와 좌우를 장식하는 ‘산차막(山車幕)’은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십 명의 사람이 짧게는 보름, 길게는 3개월에 걸쳐 10~15자(3~4.5m) 크기의 천에 수를 놓는다. 금과 은, 희귀한 염료가 다량 사용될뿐더러, 일본의 신화(神話)와 구전(口傳)을 한 폭의 막(幕) 속에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라 가격이 한국 돈 1~2억 원을 넘는 것도 있다고. 그렇기에 오랜 시간 ‘산차막’을 만들어온 사람은 한국의 무형문화재급 대접을 받는 장인(匠人)들이다. 만약 당신이 오사카나 나고야에서 기차를 타고 축제가 열리는 9월 초순 쓰루가를 방문한다면 위에 열거한 정보를 염두에 두고 ‘산차 행렬’을 지켜보면 어떨까? 세상 무엇이건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조용하고 한산해서 평화로운 여행지 도야마(富山) 도야마는 오사카, 교토, 나라, 쓰루가와 함께 이번 취재에서 기차를 타고 돌아본 도시들 중 하나다. 언급된 다섯 개의 여행지 중 가장 조용하고 한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또한 평화롭게 보였다. 한자로는 ‘富山(부산)’이라 쓰는, 먹을거리와 볼거리 많은 관광지 도야마는 어떤 내력을 가진 곳일까? 이 궁금증에 ‘나무위키’가 답한다. “남쪽에는 일본 알프스 중 하나인 히다 산맥이 위치하고 있다.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고카야마의 갓쇼즈쿠리 마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히다 산맥과 가미이치마치와 다테야마마치에 걸친 쓰루기다케(劔岳)는 해발 2999m에 달한다. 일반 등산객이 오를 경우 위험도가 가장 높은 산이다.” 신오사카역을 출발해 쓰루가역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도야마역에 도착하려면 3시간이 걸린다. 포항역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시간보다 조금 더 길다. 오전 11시경 오사카를 출발했으니 점심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큰 기대 없이 신오사카역 상점가에서 도시락을 하나 구입해 기차에 올랐다. 일본인들은 이 도시락을 에키벤(えきべん)이라 부른다고. 도야마를 찾았던 때는 6월 중순. 그럼에도 햇살은 눈이 부셨고, 날씨는 한국의 7월 같았다. 도야마역 주변은 밝고 환하면서도, 괴괴한 정적이 맴돌고 있었다.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느닷없는 무더위를 피해 숙소에 잠시 누웠다가 이른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섰다. 도야마는 메밀국수(soba)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했다. 마침 역 지척에 이른바 ‘도야마 메밀국수 맛집’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도야마 시내를 돌아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때 눈에 띈 게 트램(tram)이다.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다른 여러 대의 노면전차(路面電車)가 자동차, 버스와 나란히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구경거리였다. 도야마역 관광안내소로 들어가 트램 티켓을 판매하는 곳을 물었다. 그리고, 5분 후엔 도심 번화가를 30분가량 순환한 후 출발지인 도야마역으로 돌아오는 트램에 올라섰다. 쓰루가에 도시의 주요 관광지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빙글빙글 쓰루가 버스’가 있다면, 도야마엔 백화점·대형 마트·관공서·은행·우체국 등이 밀집한 시내 한복판을 순환하는 노면전차(트램)가 있었다. 폭염 속에 땀을 흘리면서라도 ‘걸어서 낯선 도시의 곳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여행자는 그렇게 하면 된다. 반면 ‘나는 편하고 빠르게 도시를 파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관광객이 있다면 도야마에선 ‘순환선 트램’ 탑승을 권한다. 도야마엔 비단 도심 순환선만 있는 건 아니다. 또 다른 2~3개의 노선에서 트램이 운행 중이니, 어느 노선을 선택하건 한국에서라면 경험해보기 쉽지 않은 ‘노면전차 타기’를 즐기시길. ▲일본 기차여행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준 ‘에키벤’ ‘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의미하는 에키벤을 처음 맛본 건 신오사카역에서 쓰루가역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였다. ‘소고기덮밥’이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도시락 아래 달린 실을 잡아당기면 발열제가 작동해 데워 먹도록 해뒀으니, 따끈하게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몇 번의 일본여행에서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자들처럼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곤 했다. 그것들도 가격에 비해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에키벤은 편의점 도시락과는 레벨이 달랐다. 에키벤은 보통 한국 돈 1만5000원에서 2만5000원 정도로 값이 형성돼 있는데,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지만, 먹다보면 그런 생각이 눈 녹듯 사라진다. 또 먹고 싶어지는 것. 에키벤에 매료된 기자는 도야마역에서 오사카역으로 돌아올 때도 ‘새우튀김 에키벤’을 샀고, 심지어 쓰루가에 머물 땐 일부러 역까지 걸어가서 ‘장어구이 에키벤’을 사와 숙소에서 먹기도 했다. 하나하나의 도시락 모두가 장식에서부터 맛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본 6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조그만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주던 ‘대전역 가락국수’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추억은 향기와 맛으로부터 온다. 일본인들에겐 기차여행의 즐거움이 에키벤에 있다면, 20세기 한국 기차여행의 행복감 속엔 사이다와 삶은 계란, 맥주와 훈제 소시지가 있었다. 세기가 바뀌었고, 젊은 세대의 입맛도 변했다. 20세기의 운영 방식으로 한국 기차여행의 먹을거리가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없다. 동해선 기차여행의 인프라 확장과 프로그램 개선 방안 가운데 하나가 ‘지역 특산물을 재로로 만든 도시락 개발’이 돼야 마땅한 이유다. 울산-포항-영덕-울진-삼척-동해-강릉. 동해선 기차가 달리는 도시엔 갖가지 물고기와 벌건 등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대게 등 싱싱한 해산물이 얼마나 많은가. 포항역에선 ‘물회 도시락’, 영덕역과 울진역에선 ‘대게 도시락’, 겨울의 강릉역에선 ‘도루묵 도시락’을 사서 동해선 기차에 올라타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기자 하나만일까?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7-22
높은 파도, 급한 경사의 해안선, 영양염류(질소, 인)의 부족, 계절에 따른 극심한 수온 변화까지…. 동해는 김 양식장이 들어서기에 불편한 조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갯벌에서 공급되는 풍부한 유기물질과 다도해 섬들이 천연 방파제를 형성해 파도에서 자유로운 환경을 배경으로 일찍이 양식장이 번창한 서해, 남해와는 대조를 이룬다. 그렇다고 동해에서 김 재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 편엔 2세기 경 김(해조류) 채취와 관련한 기록이 보이고,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구룡포에서 암해태(岩海苔)를 장려했다는 문헌도 나온다. 울릉도 죽암리에서 겨울철 한철 생산되는 돌김은 이미 식도락가들의 ‘Must Eat’ 필수템이 되어 있기도 하다. 김 양식업 위기가 현실화되는 가운데서도 어민 고소득 품목에 돌김 등 해조류들이 부상함에 따라 경북도에서도 지역 특성에 맞는 돌김 종(種)을 규명하고 양식 시설을 구축해 소득 작목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024년 ‘육상김양식 개발연구’ 수립 포항·영덕등 자생 김 품종 종묘 육성 흥해 자생 ‘둥근돌김’ 유력 후보 중 하나 연안 양식 보다 스마트양식장에 무게 김양식 기술 성공 땐 민간·식품사 이전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 2024년 ‘육상 김양식 연구 계획’ 수립… 첫걸음 경북도는 스마트 양식장 등 김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반영해 2024년 ‘육상 김양식 기술개발 연구 계획’을 수립했다. 또 5억 원을 들여 지역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 시스템 구축에도 나섰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경북도수산자원연구원은 지역 특성에 맞는 종자를 채취한 후 배양 테스트를 거쳐 양식장 활성화 및 기술 표준화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수산자원연구원은 국립수산과학원과 전북도, 전남도, 삼척시 등 자치단체와 풀무원, 대상 등 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김 양식 현장 조사를 벌이며 세부 전략을 다듬고 있다. 경북도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울진, 영덕, 포항, 경주, 울릉 등 경북 동해안 지역에 서식, 자생하는 돌김의 품종을 분석하는 일이다. 옛날 문헌에 동해안 지역에 돌김이 다수 자생했다는 기록이 보이고, 실제로 지역별로 독특한 품종들이 많이 관찰되고 있는 만큼 종자를 복원시켜 이를 숙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도는 현재 해안가의 자생 김 채취는 ‘가내(家內) 어업’ 형태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전통어업’에서 경북도 김 양식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 현지답사 외에도 해조류와 관련된 고문헌들을 조사하며 지역 돌김 양식의 채취지역, 품종, 유통 등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 동해안 환경, 영양 수온, 식생에 맞는 품종 개발 그동안 서, 남해안의 김 샘플에 집중해 온 경북도는 최근 들어서는 경기도와 경북 동해 지역의 돌김 종자를 주목하고 있다. 남해안과 동해안의 해수 온도와 영양, 여건 등이 차이가 나 서 남해안의 종자를 무조건 들여오는 것은 다소 위험 요소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경북도가 선호하는 종(種)은 ‘긴잎돌김’과 ‘둥근돌김’종자다. 특히 둥근돌김은 포항시 흥해읍 오도리에서 채취된 것이어서 관심도가 더 높다. ‘돌김속’에 속하는 홍조류 일종인 둥근돌김은 이름처럼 둥근 주름이 많고 모란꽃처럼 포개진 형태를 하고 있다. 짙은 보라색을 띠며 크기는 3~10cm 안팎이며 깨끗한 바위 표면에 부착하여 자라는 특성이 있다. 경북도는 위의 두 종(種) 외에도 동해안 환경, 수온, 식생에 맞는 자연산 돌김 종자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재 ‘해삼먹이생물동(棟)’을 일부 개조해 배양 시스템을 구축하고 종자 배양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들어갔다. □ 원근해 양식서 육상 김양식장으로 방향 전환 경북도는 2년 여 연구 과제를 수행해오면서 시행착오도 여러 번 겪었다. 처음 입안(立案) 단계에선 동해안 연안 및 외해(外海) 양식을 구상했었지만 여러 한계에 부딪혀 계획을 일부 수정했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 연근해 양식장을 설치하려면 ‘지주식(支柱式)’이나 ‘부류식(浮流式)’을 선택해야 하는데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 장대를 꽂아 그물망을 설치하는 지주식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스치로폼이나 부표로 그물을 띄우는 부류식도 동해의 파도, 수온 상황에서는 역시 많은 약점이 있다. 경북도는 이런 동해안의자연적인 한계상황 때문에 여러 번 노선을 변경했다. 김 양식 업계와 경북 동해안 어민들 사이에선 그간 다소 에너지가 소모되긴 했어도 매우 적절한 판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북도의 돌김양식은 육상 김양식, 스마트 양식에 무게가 쏠린다. 이에 따른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난 회에서 소개한 부안의 ‘지평선 김양식장’같은 스마트양식장이고, 다른 하나는 풀무원처럼 대형 수조에서 김을 생산하는 ‘중성포자방식’이다. 전자(前者)의 경우 바다양식장을 육상으로 옮겨 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형시설을 갖춰야 한다. 고집적, 고밀도 방식으로, 상당한 시설 투자는 필수적이다. 수온, 광량(光量), 영양염류 등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줘야 하기 때문에 AI, IoT 등 스마트 시설도 갖춰야 한다. 지주식, 부류식의 경우 유묘(幼苗) 확보를 위해 배양을 해야 하며, 이 경우 육묘를 위한 조개류나 굴 껍질을 활용한 패각(貝殼) 배양시설을 따로 갖춰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풀무원의 예처럼 ‘중성포자방식’을 택할 경우도 육묘 배양을 위한 실험실과 성장 재배를 위한 대형 수조는 필수적이다. 이곳 역시 실내 김 양식을 위한 스마트, IT 환경 설치는 불가결 요소다. 다만, ‘중성포자방식’은 유묘들이 중성(中性)상태에서 스스로 자기 복제를 통해 번식, 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유리사상체 배양실이 따로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 돌김계획 완성되면 민간, 식품회사에 이전 현재 경북도수산자연연구원에서는 유리사상체 배양실을 마련하고 종묘 육성을 위한 패각(貝殼)사상체 시설 설치를 서두르고 있다. 미래양식팀 이영준 팀장은 “내년부터 경북도는 본격적으로 육상 김양식 배양기술 개발과 적합한 모델 확립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도의 자체 개발 돌김 품종의 사업화 여부는 2030년 이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경북도의 3단계에 걸친 프로젝트가 모두 끝나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면 경북도에서 개발한 김양식 기술을 민간에 이전 하고 확보된 돌김 종자를 어가(漁家)나 원하는 식품사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100년 동해 어민들을 먹여 살릴’ 우수 김 종자가 개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상국 원장도 “웰빙시대를 맞아 남해의 김이 K-푸드 시대를 열어갔다면 동해의 돌김은 거친 입자를 바탕으로 한 ‘조미(調味) 김’으로 슈퍼푸드의 새 장을 열어갈 것”이라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 정상원 경북도 해양수산국장 고대사 ‘김 자료’ 첫 등장 지역이 동해 지역 해양에 적합한 종자 육성으로 승부 “우리나라 고문헌에서 김(해조류) 채취에 대한 최초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 경북도입니다. 국제 해양산업의 트렌드도 어획 일변도에서 벗어나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김 역사, 인문학의 태동지인 경북도에서 김 양식에 나선 것은 어쩌면 역사적으로 필연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김 양식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상원 경북도 해양수산국장을 만나 현 상황과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많은 해조류 어업자원 중 왜 돌김인가? △한반도 역사에서 김에 대한 자료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포항이다. 2세기 연오랑세오녀가 바위에서 채취한 돌김, 미역 등 해조류는 근기국에서 널리 유통되고 일본에까지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역사, 인문학적 상징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는 김에 대한 역 연구가 소극적이었다. 그 이유는 동해에서 김양식을 추진하는데 많은 핸디캡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침 스마트 김 양식에 대한 연구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경북도에서도 돌김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 -경북도가 육상 김양식 사업에 나선 이유는? △지금 지구촌 해양산업의 트렌드는 어획 중심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해수온 상승과 산성화로 상당수 해역에서 어류 자원이 감소하거나 어장이 이동하고 있다 사물 인터넷(IoT), AI, 로봇 등 스마트 양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흐름을 가속시켰다. 동해는 남해보다 수온이 차고 한·난류가 교차해 양식에 불리한 요인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저온성 어종이나 해조류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결국 사업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동해에 적합한 김 종자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2012년에 국립수산과학원이 ‘김 21호’를 개발했다. 생육이 빠르고 고(高) 영양가인데다 병 저항성까지 강해 김산업 확대와 어민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했다. 경북도도 이번 프로젝트의 승부 포인트를 우수한 종자 확보로 보고 있다. 현재 지역에 자생(自生)하는 돌김은 물론 서, 남해안의 종자들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스마트 김양식, 육상 김 양식에만 집중할 것인가? △동해안의 여러 지형, 생태, 기후, 환경적 요인 탓에 원근해 양식장 설치는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외해(外海) 양식장 설치를 포기한다는 건 아니다. 동해와 환경이 비슷한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 앞바다에서 ‘명지 김’(일명 낙동김)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고, 동해안에도 후포나 구룡포, 영일만 등에 파도, 풍랑에서 안전한 곳들이 일부 있어 양식장 설치도 여러 대안 중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20
지난 6월 중순. ‘선더버드(thunderbird)19호’ 기차에 올랐다. 신오사카역에서 쓰루가(敦賀)로 달렸다. 1시간 20여 분이 소요됐다. 한국도 한때, 또는 지금도 새마을호, 무궁화호, 통일호 등으로 기차를 호칭했었지. 선더버드도 마찬가지다. 헌데, 조금 더 재밌다. 기차 이름이 ‘천둥새’라니.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선더버드’를 고귀한 영혼을 지낸 새로 숭배했다고 한다. 어쨌건. 일본인 특유의 ‘철저한 질서 지키기’ 탓이었을까? 달리는 기차 객실 안에선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도, 통로를 뛰어다니는 아이도, 사소한 이유로 시시콜콜 다투는 승객도 없었다. 깊은 산 속 절처럼 조용한 기차 내부. ‘호쿠리쿠 패스’로 하루 전 미리 예약을 하고 좌석을 배정받았으니, 신오사카역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길지 않았던 기차 여행은 더없이 쾌적했다. 한국의 ITX나 KTX처럼 객실과 화장실 청소 상태도 좋았다. 드문드문 도시락을 먹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얼핏 보기에도 향과 맛이 다 괜찮아 보였다. 한자로 ‘돈하(敦賀)’라 읽는 일본의 떠오르는 관광지 쓰루가. 거긴 어떤 도시일까? 짤막한 소개를 ‘위키백과’를 통해 들어보자. “쓰루가시(敦賀市)는 일본 후쿠이현에 있는 도시다. 고대부터 항구가 번성했다. 호쿠리쿠 지방과 간사이 지방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메이지시대 이후엔 철도를 비롯한 육상 운송수단의 발달로 교통 요지가 됐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고, 다시마가 특산물이다.” ▲나이 지긋한 일본인들 “느린 기차가 낭만적이었지” 선더버드19호 기차는 늦은 오후 쓰루가역에 기자를 내려놓았다. 사전에 파악한 정보가 있으니, 항구 도시의 싱싱한 생선으로 만든 요리와 다시마를 우려내 갓 지은 솥밥을 먹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없다. 여행자의 즐거움 중 최고는 여행지의 맛집을 찾아가는 게 아니던가. 쓰루가역 앞에 늘어선 식당 가운데 하나를 골라 출입문을 열었다. 70대로 보이는 오너 셰프의 능숙한 칼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가게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업력이 반세기에 가깝다고 했다. 운이 좋았다. 도미 뱃살을 번철에 굽고, 따끈한 일본식 된장국에 찜통에서 요리한 새우, 거기에 생강 줄기까지 갖춘 저녁 정식을 청했다. 한국 돈으로 1만6000원 정도였으니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맛? 주절주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곳에서 식당 주인과 어린 시절부터 친구라는 일본 노인 하나를 만났다. 70대 중반인 그도 혼자서 저녁을 먹으러 온 터였다. 이름은 도토가와 유우지(都外川 勇二). 젊은 시절부터 쓰루가항구를 오가는 배를 수리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기자는 일본어를 하지 못한다. 다행히 식당 주인의 딸이 중간에서 소통을 도와줬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가 뒤죽박죽 섞인 독특하고 해괴한(?) 인터뷰였다. “나이가 적지 않으신데 독한 일본 소주를 잘 드시네요.” “뭐 그렇지. 험한 일 하는 사람이라 그래. 자네는 어디서 뭘 하러 쓰루가에 왔나?” “한국에서 왔습니다. 일본 철도여행에 관해 궁금해서요.” “그렇군. 나도 어린 시절엔 오사카나 나고야로 아주 느리고 낡은 기차를 타고 다녔지.” “아, 그래요? 그때 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무슨 옛날이야기를... 짧게 오사카 처녀와 연애를 했는데, 50년 전엔 기차가 너무 느렸어. 마음은 벌써 그 여자가 사는 오사카에 가있는데, 이놈의 기차는 더디게만 달리지…. 그래도, 그때가 낭만적이었어. 그나저나 멀리 한국에서 왔으니, 내 술 한 잔 받아.” 오사카에서 쓰루가로 가기 전 또 한 명의 나이 지긋한 일본인을 만났다. 미조하타 히로시(溝畑宏·65). 그는 한국을 수백 번 오고간 일본 내 대표적인 한국통(韓國通) 가운데 한 사람이다. 현재는 ‘공익 재단법인 오사카관광국’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기자가 일본을 찾았던 때는 ‘2025 오사카 엑스포’가 열리고 있던 시기.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문어 인형을 머리에 쓰고 인터뷰에 나섰던 그는 “엑스포 기간에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음식이 맛있으며, 사람들도 친절한 오사카로 많은 한국인이 와주길 바란다”고 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을 보자면 당연한 부탁이었다. 그런 뻔한 이야기보다 정작 기자의 마음을 찡하게 했던 건 미조하타 이시장의 마지막 말. “일본의 신칸센이나 한국의 KTX처럼 빠른 기차로 오사카 주변의 매력적인 도시를 돌아보는 것 참 좋지요…. 근데, 난 창문을 통해 바깥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느린 기차가 더 좋아요”라는. ▲빠르게 달리는 기차를 타더라도, 여행은 여유롭게 어떤 인간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마찬가지. 그러니 몇몇 노인들이 ‘느린 기차의 서정(抒情)’을 그리워한다고, 일본의 신칸센과 선더버드, 한국의 KTX와 ITX를 멈춰 세우고, 20세기 기차를 가져와 동해선 철로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 바뀐 환경에선 적응이 중요하다. 그러니, 시속 300km의 현란한 속도로 달리는 고속철을 타더라도, 마음만은 관광객 특유의 느긋함을 가지는 게 21세기형 기차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자세가 아닐지. 그런 차원에서 권하고픈 쓰루가의 유용한 여행 아이템이 ‘빙글빙글 쓰루가 버스(くるくる敦賀バス)’다. 한국식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쓰루가 투어 버스’쯤 되겠다. 역 바로 코앞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엔 쓰루가시(市) 곳곳의 인기 좋은 관광지만을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한국 돈 5000원가량을 운전기사에게 지불하면 ‘1일 자유티켓’을 사는 게 가능하다. 그것만 가지고 있다면 추가 요금 없이 하루에 100번도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다. 1회 승차는 2000원을 받으니, 2~3군데 관광지만 오가도 본전은 뽑는다. 게다가 자유티켓엔 40대 이상 한국 관광객의 추억을 소환하는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메텔’과 ‘철이’가 프린팅 돼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자는 일본 사람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 그 티켓엔 ‘기차로 우리 도시에 와서 흥미로운 장소를 여유롭게 돌아보라’는 여행자를 향한 일종의 은유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두툼한 참다랑어 회를 얹은 초밥과 어른 손바닥보다 큰 가리비 구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쓰루가 수산시장과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해변, 호쿠리쿠 지역을 수호하기 위해 축조된 게히신궁(氣比神宮) 등이 이름도 재밌는 ‘빙글빙글 쓰루가 버스’를 타고 돌아본 곳들. 쓰루가가 ‘떠오르는 일본의 신흥 관광지’로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물론, 숙소 공동목욕탕에선 인도 첸나이에서 온 단체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었고, 늦은 밤 주점에선 저 먼 동유럽의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왔다는 청년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앞서 언급한 쓰루가의 유명 관광지는 이제 더 이상 ‘나만의 추억’을 머리와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어느 곳을 가도 여행자들로 북적이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디를 가봐야 할까?”라는 물음이 이어질 듯하다. 추천한다. 쓰루가 투어 버스를 타고 다소 고적(孤寂)한 동네에 내려 5~10분쯤 걸으면 만나볼 수 있는 ‘미나토 쓰루가 산차회관(山車會館)’이다. 거기가 어떤 곳이냐고? 궁금증이 증폭되면 답을 얻었을 때 만족감이 더 커진다. ‘산차회관’에 대한 소개는 다음 회에.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15
‘전지적 김의 시점에서’ 세노수산 홈페이지에 등장하는 금언(金言)이다. ‘한길 물속은 알아도•••.’ 로 시작하는 한국 속담도 있지만 양식업자들에게 이 ‘한길 물속’은 각자의 수십 년 지식과 경험이 투영되는 공간이다. 수온과 광량(光量), 영양, 염도에 따라 천양지차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육묘 배양에서 수확에 이르는 약 6개월 기간 이 시기 세노수산 직원들의 모든 주파수는 김과 맞춰진다. 김처럼 생각하고 해초처럼 느껴야 대상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9월 본격 육묘 작업, 패각에서 어린묘 배양 매년 2000여장 김발 설치, 연간 10t 수확 수확한 돌김 원형 그대로 건조, 식감·향 일품 양념김·김밥용 김 등 20여가지 가공김 생산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이렇게 10년을 거듭하면서 세노수산은 자신들 만의 독특한 김양식법을 완성했다. 현재 세노수산의 선진 양식 법은 가와현 뿐만 아니라 인근 혼슈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세노 수산 ‘환자채’(幻紫菜)는 이런 공로를 인정 받아 가사오카시, JR오카야마가 2015년 11월 실시한 ‘제3회 고향 우수식품’에서 ‘고향 살리기 프로젝트 우수상’ 을 받았다. □ 김밥용 ‘스사비놀리’와 돌김 ‘환자채’ 생산 ‘스사비놀리’와 돌김 ‘환자채’ . 세노수산은 두 종류의 김을 생산한다. 스사비놀리는 우리가 ‘판(板)김’이라고 부르는 김밥용 김이고, 환자채(幻紫菜, 뿌려 먹는 김 종류)는 세노수산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돌김이다. 이 두 김은 생육시기가 한 달 정도 어긋나 있어 작업에 여유를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공정이 겹칠 때는 양식과 가공을 동시에 할 때도 해야 할 때도 있어 심야까지 작업이 이어질 때도 있다. 세노수산에서 본격적인 작업은 5월에서 9월에 이르는 약 5개월에 집중된다. 먼저 5월이 되면 김망 세척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마당에 김망이 쌓이기 시작하면 본격 어기(漁期)의 시작을 의미한다. 취재진이 현지를 방문했을 때 세노수산 앞 방파제엔 김망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세노 유키(妹尾祐輝) 씨는 “깨끗이 씻겨진 김망은 그물에 달린 이물질들을 모두 제거한 후 9월 쯤 인공 채종(採種)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세척이 끝난 김망은 다시 중첩망(重疊網) 작업에 들어간다. 그물의 전체 구조를 살피며 차곡차곡 질서 있게 중첩, 배열해 흔들림이 없도록 단단히 살피는 과정이다. 김망 준비가 끝나고 9월이 되면 본격 육묘작업에 들어간다. 보통 김 씨앗은 패각(貝殼)에서 키운다. 배양된 유엽(幼葉)은 수조로 옮긴 후 양식그물에 활착 시킨다. 김망(그물)이 감긴 수차를 회전시켜 접목 시키는 방식이다. 물레방아가 수류를 일으키면 물결을 따라 씨앗들이 그물에 달라붙게 된다. 유엽 정착이 확인되면 바다로 싣고 나가 그물을 양식장에 펼친다. 수온이 21도 이하가 되면 김망을 해상(海上)에 노출시켜 유엽(幼葉)의 싹을 크게 키운다. 김은 햇빛, 건조에도 강하기 때문에 그물을 오랜 시간 해면 위로 올려도 생장에 지장이 없다. 이 작업을 ‘건출’(乾出)이라고 부른다. 세노수산에서는 매일 새벽 6시부터 이 작업을 계속한다. □ 2000여채 그물에서 연간 10t 이상 김 생산 육묘가 끝난 그물은 일단 냉동 보관했다가 수온이 18도 이하로 내려가면 김망을 해상에 펴는 데 이 작업을 하리코미(Harikomi)라고 부른다. 10월 하순이 되면 ‘단장’(單張)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단장이란 포자가 붙은 김 그물을 한 장씩 낱장으로 바다에 설치하는 과정을 말한다. 세노수산에서는 매년 2000장 정도의 그물을 해상에 펴고 있다. 단장을 끝낸 김망은 약 한 달 후 수확에 들어간다. 육묘, 단장을 끝낸 김망이 성체로 자라 수확을 하는데 1~2개월이 걸리는 셈이다. 완전히 자란 김은 약 10~20cm 정도인데 이것들은 모구리선이라는 전용 선박을 이용해 수확한다. 첫 수확 한 김은 전체 김 중 색채도 좋고 맛이 부드러워 최상의 품질을 자랑한다. 세노수산에서는 이 ‘첫 따기’로 수확한 김을 활용해 각종 가공식품을 생산한다. 타카유키 씨는 “세토내해에서 자란 돌김은 단맛과 씹는 맛이 뛰어나고 특유의 향기와 세토 우치의 풍부한 맛이 꽉 채워져 있다”고 설명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식감도 일품이라, 여러가지 요리에 뿌려 먹으면 음식의 풍미를 좋게 해준다는 것. 11월부터는 수확기의 연속이다. 작황이 좋은 때는 3월 초까지 수확에 이어져 소득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수온이 올라가거나 해류, 영양, PH 등 악조건에 노출되면 12월에 모든 작업이 끝날 때도 있다. 수확한 돌김(환자채)는 원형 그대로 건조시킨다. 그래야 채취 당시 본래의 맛과 향기가 그대로 응축되기 때문이다. 김밥용 김 ‘수사비놀리’는 양식장 근처에 공장으로 직행한다. 가공 목적에 따라 절단된 후 깨끗이 씻어 기계로 탈수, 건조, 박리(剝離) 공정을 거치면 김밥용 김인 판김이 완성된다. 2000여 채 그물에서 생산되는 김(연간 10t)이 워낙 많아 11월부터 3월까지는 가공 공장이 24시간 동안 풀가동을 한다고 한다. 현재 세노수산에서는 판김(김밥용 김), 환자채, 양념김 등 20여가지 가공 김을 판매하고 있다. 맛과 풍미가 워낙 뛰어나 한번 맛을 본 손님들은 대부분 재구매로 이어진다고 한다. [인터뷰] 세노수산 세노유키(妹尾祐輝) 대표 고온 해수에 강한 돌김 개발 특허 준비 최근 열대 어류 급증 양식장 파괴 심각 “옛날에는 그물만 쳐 놓아도 바다가 다 알아서 키워줬지만 환경이 변했습니다. 이젠 어부가 바다에게 묻고 답을 구해야 합니다. ‘어부와 바다의 지혜로운 상생(相生)’, 바로 세노수산이 추구하는 영업 전략입니다.” 조부, 부친 세노 타카유키(妹尾孝之)에 이어 3대째 세노수산을 운영하고 있는 세노유키씨를 만나 그의 김양식 성공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고온의 해수에서도 생육이 가능한 김 종자를 개발했는데 앞으로 계획은? △현재 변리사를 통해 특허 출연 중에 있다. 올해 내로 라이센스를 확보하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종묘 상업화, 생산 확대 등 사업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해수 온난화를 극복할 수 있는 종묘로 주목 받으면서 각계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 20 여년 사이 세토내해 김 양식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들었다. △옛날 카사오카 앞바다는지주, 부표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김 양식이 성업했었다. 10여년 사이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폐어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몇 곳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해수 온난화 외에 김 양식을 위협하는 변수는 없나?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열대어 같은 열대성 어류가 급증하고 있다. 바다 생태계 변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니 어쩔 수 없다쳐도 문제는 열대어들이 김을 먹이로 삼으면서 어장이 황폐화되고 있다. 단순히 유엽(幼葉)을 뜯어먹는 차원이 아니라 성체(成體)까지 사냥에 나서며 전체 생산량의 30~40%를 먹어 치우고 있다. 현재 세노수산의 가장 큰 적은 해수 온난화보다 열대어종의 급증으로 인한 양식장 파괴다. -연간 김 생산량은 얼마나 되나? △돌김과 판김(김밥용 김) 전체 생산량은 약 10t 정도 된다.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양도 줄고 상품성도 떨어져 걱정이다. 아직은 판김 생산이 80%고 돌김(이와노오리)은 20% 정도다. 자체 생산 공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전량 가공식품으로 활용해 사업성이 어느 정도 담보 되는 편이다. -김 생산도 중요하지만 판로 확보도 중요할 것 같다. 환자채(幻紫菜)를 시식해 보았는데 조미를 한 것처럼 맛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산, 가공된 김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한 번 먹어본 사람은 상당수 단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도쿄나 오사카에 있는 온라인 단골들이 휴가나 여행 중에 일부러 가게를 찾아오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김양식장은 해수온난화로 조업 일수가 20~30% 줄어들고 있다. 일본도 난류로 인한 양식장 피해가 심각하다고 들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우리는 조부 때부터 50년 가까이 김 양식장을 경영해왔다. 솔직히 2대까지는 자연이 주는 대로 거두어도 창고가 늘 가득 찼다. 세토내해에도 10여년 전부터 온난화라는 자연 재앙이 일상화 되었다. 다행히 부친 때부터 쌓아온 노하우가 있어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종자를 조금씩 개량해서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 특허등록이 완료되면 해외에 종자 수출, 분양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카사오카시에서 한상갑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13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오사카(大阪)는 메트로폴리탄이다. 한국이라면 부산, 인도라면 뭄바이, 중국이라면 상해, 미국이라면 뉴욕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야기. 메트로폴리탄의 특성 중 하나는 인근 중소도시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변 지역의 정치·경제·사회적 흐름까지 주도한다는 것이다. “일본 혼슈(개개의 일본 섬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섬)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상업과 공업이 발달했으며 오래전부터 긴키(오사카, 교토, 나라 등 7개 지역) 지방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는 백과사전의 설명은 오사카가 가진 위상을 간략하게 이해하게 해준다. 일본의 철도 교통망을 보더라도 오사카는 크고 작은 인근 도시와 멀리 수도인 도쿄, 또 하나 일본의 주요 고도(古都)인 나고야 등을 신칸센과 선더버드(Thunderbird·일정 구역을 운행하는 일본의 열차명)를 비롯한 각종 형태의 기차로 연결하고 있다. 혼슈 중서부 위치한 긴키지방의 중심지 ‘오사카’ 도쿄~오사카 고속철도 110년 전부터 이미 계획 신칸센·선더버드 등 각종 기차들로 전국과 연결 ‘오사카∼나라’ ‘오사카∼교토’ 오가는 철도 노선 신칸센 15분·전철 40∼50분 등 당일치기로 충분 역 앞에는 각각의 관광지행 버스들 줄지어 대기 목적지 팻말 든 안내원이 처음 찾는 여행자 도와 외국여권 소지자 전용 ‘호쿠리쿠 패스’ 구입하면 별도 비용 들지 않아 장기여행자들에 ‘안성맞춤’ 일본은 이미 110년 전부터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고속철도를 고민하고 계획했다. 한국의 고속열차 KTX가 2004년 4월 첫 운행을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한 세기가 더 빨랐다. 이에 관해 쓴 샬롬엔지니어링 최경수 고문의 논문 ‘일본 新幹線(신칸센)의 歷史(역사)와 고속철도 차량’의 서두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1910년대에는 도쿄~오사카간 고속신선 ‘일본 전기철도’를 부설하는 계획이 민간으로부터 나왔지만 허가를 받지 못해 실현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현실적인 고속열차 개발은 만주를 횡단하는 남만주 철도(滿鐵)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만철(滿鐵)은 전철화 이전 철도에 증기기관차가 견인하였지만 1435mm 국제 표준궤간(일본은 광궤라고 부름)을 사용한 고규격 노선이었으며, 보수적인 일본 철도성(鐵道省)과는 한 선을 그은 선진적인 시도였다.” ▲도톤보리의 관광객들 “여길 왔으니 교토와 나라는 가야죠” 포항에서 김해국제공항을 거쳐 오사카에 도착한 첫날. 계절 무관하게 관광객들로 축제장을 방불케 하는 ‘핫 스폿’ 도톤보리를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1km 남짓의 오사카 운하 양쪽으로 수백 개의 기념품점과 식당, 주점이 밀집해 있는 곳. 누군가가 농담처럼 “도톤보리 글리코 간판 앞에서 들리는 언어는 절반이 한국어, 절반은 중국어”라고 말한다. 가보면 알게 된다. 그건 농담이 아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글리코 간판’ 앞에서 글리코를 흉내 내는 여행자들이 친구나 식구의 사진을 찍어주기에 바쁘다. 나 홀로 여행자는 카메라 렌즈를 제 얼굴 쪽으로 돌려 기어코 ‘셀프 컷’이라도 찍어야 오사카에 왔다는 실감이 나는 모양. 그렇다면 수만 명 관광객들에게 도톤보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글리코 간판은 대체 뭘까? AI에게 물었다.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글리코상(글리코 간판)은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의 상징적인 조형물로 1935년 설치된 마라토너 형상의 간판입니다. 일본 제과회사 글리코의 광고판으로 90년간 6번의 변화를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철제 부족으로 철거된 후 1955년 재설치되며 현재까지 이어졌습니다. 2014년 6대 글리코상은 LED조명과 이벤트 영상 송출기능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글리코 간판 아래 늘어선 수십 개의 야외 주점엔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막 시작된 더위를 식히며 일본식 어묵과 타코야키(문어풀빵)를 안주로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거기서 만난 프랑스인 커플과 친구 사이라는 영국인 남녀에게 물었다. “내일은 뭘 할 생각이야?” 구운 가지와 소고기 꼬치를 먹던 그들에게선 입이라도 맞춘 듯 동일한 답변이 돌아왔다. “교토와 나라에 가야지.” 아마 한국과 중국 관광객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라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을 게 분명하다. 기자 역시 2년 전 짧았던 3박4일의 오사카 여행에서 두 도시를 갔었고, 거기로 가는 기차와 버스 안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봤으니까. 그렇다면, 두 도시의 어떤 매력이 오사카를 찾은 외국인을 매혹하는 것일까? 신오사카역에서 JR 서일본이나 킨키 일본철도를 타고 40분가량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나라는 과거엔 야마토(大和)로 불렸다. 여기에 ‘나무위키’의 부연이 따라 붙는다. “794년 수도가 교토로 옮겨질 때까지 고대 일본의 중심지로서 발전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호류지가 있다. 시내엔 사슴을 풀어놓은 나라공원이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사슴공원 인근엔 세계에서 가장 큰 실내 불상이 있는 도다이지(東大寺)가 있다.” 교토는 그 도시 사람들이 가진 자긍심으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고대 일본의 도읍이었던 교토는 1천 년 이상의 시간 동안 일본의 정치·경제 중심지였다. 또한, 청수사를 필두로 금각사와 은각사 등이 가진 매력이 여행자에게 높은 만족감을 선물하는 도시. 그러니, 교토는 때때로 천년왕국 신라의 중심지이자 예술적 완성도가 빼어난 미려한 사찰 불국사를 가진 한국의 경주와 비교되기도 한다. ▲오사카-교토·오사카-나라, 빠르고 편안한 기차로 일본에 도착한 둘째 날과 셋째 날. 각각 나라와 교토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두 도시 모두 기차로 왕복했다. 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일본어나 영어를 못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한국어 안내판이 역과 주요 관광지 곳곳에 있으니 나 홀로 여행자도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신오사카역에서 교토로 가는 기차의 종류는 고속열차 신칸센부터 작은 간이역까지 모두 정차하는 낡은 전철까지 다양하다. 15분 만에 빠르게 교토에 도착하고 싶다면 신칸센을 타면 되고, 5000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으로 느리게 달리는 기차에서 오사카 교외 경치를 감상하고픈 사람은 전철을 선택하면 된다. 전철도 40~50분이면 교토역과 나라역에 이른다. 만약 일주일 이상의 여행을 계획하고 오사카에 갔다면 서일본 여객철도주식회사가 판매하는 ‘호쿠리쿠 패스’를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사카를 출발해 교토와 나라를 오가는 쾌속열차는 물론, 오사카에서 1시간 30분~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쓰루가, 도야마 등의 신흥 관광지로 가는 기차까지 약정된 기간 안이라면 별도의 비용 지불 없이 이용이 가능하니까. 호쿠리쿠 패스는 외국 여권 소지자만 살 수 있고, 한국에서 미리 구입해 일본에서 실물 티켓을 받는 게 가능하다. 나라역에 내리면 동대사와 사슴공원 등으로 가는 버스가 질서정연하게 정차해 있다. 일본인 특유의 빈틈없는 친절함(?)은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도 발휘된다. 관광객이 몰리는 휴일이나 휴가철이면 각각의 버스 목적지를 알려주는 팻말을 든 안내원이 처음으로 나라를 찾아온 여행자를 돕는다. 그들 중 일부는 한국말도 제법 잘한다. 팻말에 영어와 중국어가 쓰인 건 불문가지. 교토행 기차에서 내려 청수사나 금각사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것도 나라에서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저 팻말을 든 안내원을 따라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서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서고 탑승 순서를 기다리면 끝이다. 오사카 외곽의 풍광을 즐기며 덜컹이는 기차로 짧은 시간을 달려가 역에서 내린다. 바로 코앞에서 관광객을 기다리는 버스로 유명 관광지를 돌아본다. 공원에서 귀여운 사슴에게 먹이도 주고, 교토 청수사 아래 일본식 가옥에서 시원한 녹차빙수를 먹으며 일상 탈출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오사카로 돌아갈 때는 역순으로 ‘관광지-버스-기차’를 이용하면 당일치기 교토 여행과 나라 여행이 마무리된다. 오전 11시쯤 신오사카역을 출발해 교토와 나라의 주요 여행지 1~2곳을 돌아보고,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만든 점심을 먹은 후, 오후 5시 이전에 오사카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선 흠 잡을 걸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관광객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축적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시스템과 노하우의 차이 탓인지, 올해 초 방문했던 동해선 울진역과 삼척역에선 일본 철도여행이 준 만족감을 맛보기 힘들었다. ‘오사카-나라·오사카 교토 기차여행’에서 확인한 이용자 위주의 서비스와 물 흐르듯 자연스런 환승 동선은 동해선 철로가 지나는 지자체가 향후 철도관광 인프라를 조성할 때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08
갑작스런 해양 환경 변화와 김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경북도도 ‘돌김 양식’으로 컨셉을 잡고 사업화를 시도하며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영양류가 풍부하고 파도에서 비교적 안전한 남해안이 김양식으로 특화된 반면 파고(波高)가 높고 물이 맑은 동해안에서는 돌김 양식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경북도는 ‘돌김 양식장 사업 공모’에 나서며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은 발걸음이 더디다. 돌김 자체가 해류(海流)나 파고 등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직은 지역 자치단체별로 해안 지형 특성과 과거 채취 사례를 들여다보며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취재진의 검색망에 돌김 양식으로 특화된 일본의 한 양식장이 포착되었다. 일제 강점기 총독부는 구룡포 일대에 김 양식을 장려했던 사실이 있기 때문에 이 일과도 묘한 연결성이 감지되었다. 일본 오카야마현 카사오카시의 ‘세노수산’(妹尾水産)이란 김 양식장이었다. 작목 부문도 경북도가 육성하려고 하는 ‘돌김’ 이었고 대규모 양식장으로 사업화에 성공한 것은 물론 자체 생산 라인까지 갖추고 있어 경북도의 선도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다. 세토내해의 돌김 양식장을 직접 방문해 동해안의 돌김 양식장 프로젝트가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세토내해 한복판 위치 양식장 최적 50년 간 3대 걸쳐 독자적 종묘 개발 “김맛은 씨앗이 결정” 종자로 승부 난류에도 끄떡 없는 우량 씨앗 특허 독자 개발 ‘환자채’ 전국서 주문 쇄도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 최적의 양식장 조건을 갖춘 세토내해 대표적 해양국가인 일본도 일찍부터 김 산업에 나서 전국 각지에서 김 양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큐슈 아리아케해(有明海)를 중심으로 한 사가현이나 치바현의 이스미시 등에서 현재 대량생산이 이뤄지며 최고의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기후현 야마가타시에서는 강에서 자라는 민물김 ‘카와노리’의 양식이 성업해 독특한 식감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 김 양식은 연안 해역 정화라는 환경 차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바다 물속 이산화탄소와 영양염을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해 생태계에 유익을 끼치기 때문이다. 취재진이 방문한 오카야마현의 카사오카시는 세토내해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의 조수 흐름이 부딪치는 위치인데다 영양이 풍부해 양식장으로써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세토내해 물빛은 보통 흐린 녹색을 띠고 있는데 이는 플랑크톤이 풍부하기 때문 이라고 한다. 김은 플랑크톤과 수중에 녹아있는 질소, 인, 규소 등을 흡수하며 성장한다. 오카야마현의 앞바다도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폐수로 인한 적조현상이 크게 사회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수질 개선을 위해 1973년 ‘세토우치법’을 제정했다. 배수총량 규제, 하수처리장 증설 등이 추진되며 겨우 수질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 50년 역사 세노수산 독자적인 종묘 개발 카사오카시의 세노수산은 50여 년 전에 세노 타카유키(妹尾孝之)씨가 이곳에 정착한 후 가업을 일으켰고 현재는 3대 가힘을 모아 양식장과 식품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세노수산은 일본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돌김(일본에서는 岩海苔) 양식에 성공해 화제가 된 회사다. 무려 10여 년의 각고의 노력 끝에 거둔 결실이었다. 세노수산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돌김 종자는 ‘환자채’(幻紫菜 )라는 종묘다. 이 김은 가루나 조각으로 만들어 음식 위에 뿌려 먹는 ‘아오노리김’의 재료로 쓰인다. 야키소바나 센베이(전병)에 들어가는 김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세노수산의 주력 상품인데다 지명도가 높아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 든다고 한다. 이 돌김 종자인 환자채는 일반 양식 김 종자인 ‘수사비놀리’에 비해 종묘 과정이 훨씬 까다롭다. 기후나 수온에 따라 종묘의 관리가 힘들고 유묘(幼苗) 활착률도 낮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온의 조절이 힘든 양식장 환경에서는 종(種)의 부착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종자들의 활착 여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김의 포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너무 미세해 관찰에 큰 애를 먹는다. 세노수산은 이런 힘든 과정을 10년 넘게 반복하며 이곳 환경에 맞는 최적의 종자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카사오카시에는 많은 김 양식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독자적인 종묘를 개발해 양식에 응용한 곳은 세노수산이 유일하다. 종묘와 관련된 기술은 세노수산의 ‘영업비밀’ 영역이어서 접근이 까다롭다. 취재 전에 회사 측은 양식 전반에 걸친 개론(槪論)적인 영역은 협조해줄 수 있지만 ‘특허’와 관련된 전문 영역은 공개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해왔다. 다만 매년 종묘를 채취할 때 종자 중 난류에 강한 품종을 정교하게 블렌딩 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노 만의 특별한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오늘의 세노수산을 만들지 않았나 한다. □ ‘김은 씨앗에서’ 우량종자 개발 ‘김맛은 씨앗에서 결정된다’ 세노수산이 금언처럼 여기고 있는 말이다. 10~15μm 미만인 김의 씨앗은 육안으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이크로 영역인 씨앗들을 다루는 작업이 쉽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세노수산에서 쓰는 김 씨앗은 모두 혼합종이다. 결실(結實)한 씨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개량해서 쓰기 때문이다. 양식장에서 가장 활성화된 포인트에서 우량 종자를 채취하고 여기에 맛이 좋은 품종을 혼합해 개량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매년 블렌딩을 거듭하면서 최적 조합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타카유키 씨는 “매년 검증된 같은 종을 사용하면 수확은 안정되겠지만 바다의 환경도 매년 바뀜으로 그때마다 종자를 개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통 김의 씨앗은 굴 껍질 속에서 배양한다. 패각에서 배양된 유엽(幼葉)은 수조에 담겨진 후 김망에 감긴 수차를 회전시켜 활착을 시도한다. 물레방아가 수류(水流)를 일으키면 물결을 따라 씨앗들이 그물에 달라붙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작업자들은 중간중간 회전을 멈추고 그물에 씨앗이 잘 달라붙는지 확인해야 한다. 유엽들이 망(網)과 그물에 정착 된 것이 확인되면 양식장으로 싣고 나가 정식으로 그물에 부착한다. 이렇게 3주가 지나면 세노수산은 비로소 수확철을 맞는다. 양식장에 김이 본격적으로 자라는 과정, 직원들은 이 과정을 ‘김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때’라고 말한다. 매일 새벽 바다에 나가 생육을 관찰하고 성장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부가 김을 사육하고, 재배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라 인간이 김에 눈을 맞춰 다가가는 양방향 소통 과정이라는 것. 김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오늘의 세노수산을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세토내해와 포항의 인연은? 3세기 근기국 유민 세토 진출 일제땐 內海 어민 구룡포 이주 규슈, 시코쿠, 혼슈 세 섬에 둘러 쌓인 세토내해는 한반도 특히 포항과도 많은 인연이 닿아 있다. 육지 속의 바다(內海) 특성과 리아스식 해안 지형 탓에 세토 내해에는 옛날부터 해적들이 들끓었다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조정의 골칫거리로 등장하는 ‘왜구’(倭寇)는 대부분 세토내해의 출신들이었다. 임진왜란 때 이곳의 해적들을 해군에 편재해 조선 침략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개화기 대한제국에 한일 양국의 문물을 교환하던 통신사의 주 항로도 부산-대마도-세토내해를 거쳐 오사카-도쿄로 이어지는 라인이었다. 세토내해와 포항과의 인연은 3세기 근기국(勤耆國) 연오랑세오녀 설화 때부터 시작된다. 근기국 멸망 이후 망명길에 나선 이주민들은 주로 시마네현, 돗토리현에 정착했다. 이들은 다시 본토 동쪽으로 진출하였는데 이들 중 한 갈래가 내륙의 산맥을 너머 오카야마(岡山), 카사오카 지방에 정착했다. 이 근처엔 4000여 개의 고대 고분이 산재해 있는데 이 무덤의 출토 유물들은 신라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원삼국 시대 이후 뜸해졌던 포항과 세토내해와의 인연은 일제강점기 이후 다시 이어지게 된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뱃길이 열리면서 구룡포엔 일본 어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구룡포 이주민들은 대부분 세토내해 지방의 어민들이었다. 당시 내해의 연안 어장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공동어장이 좁고 열악한 데다 조합들이 특권을 독점해 핵심 어업권을 모두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런 어민들에게 구룡포는 신천지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그물만 드리우면 정어리, 삼치, 오징어, 고등어가 산더미처럼 잡혀 그물이 찢길 정도였다고 한다. 1908년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구룡포에 세토내해 어민들을 위한 거주촌이 본격적으로 형성 되었다. 그중 특히 가와현 출신 어민들이 많았는데 이는 초기부터 어민 이주를 주도해 온 하시모토 겐기치(橋本善吉)가 그곳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룡포는 물론 포항시 중앙동, 동빈정 등에 일본인 상가, 가옥 거리를 형성하며 포항 경제의 큰 축을 형성했다. 1945년 패전 이후 이들의 대부분이 고향 으로 떠나면서 포항과 세토내해와의 1500년에 걸친 긴 인연도 끝나게 된다. /일본 카사오카시에서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07-06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인간과 인프라(INFRA)가 크게 다를 바 없다. 벤치마킹과 반면교사는 부정할 수 없는 발전과 발달의 토대다. 잘된 것은 기꺼이 배우고, 허술하거나 모자란 부분이 있다면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야 목적한 바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아니, 사실 그게 변화·발전해온 인류의 역사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월. 한국 철도 발전 역사에 주요하게 기록될 사건이 있었다. 다름 아닌 동해선의 완전 개통. 동해선은 우리 땅 남쪽 끝 항구도시 부산을 출발해 저 먼 동북쪽 강원도까지 이어지는 철로다. 철도가 지나는 곳엔 당연지사 역이 생기고, 그 역 주변 관광지는 기차를 타고 찾아올 사람들이 지역 경제에 불러올 훈풍 효과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동해선이라고 다를 수 없다. 울산-포항-영덕-울진-삼척-강릉 등 기존에 잘 알려진 지역 외에도 고래불, 매화, 흥부, 묵호 등 여행지로서 비교적 생소했던 곳의 소상공인들도 말끔하게 업장을 정비하고 앞으로 찾아들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완전 개통된 동해선의 인기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현재까진 ‘폭발적’이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주말에는 기차표를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 “주중에도 이용하는 승객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라는 게 한국철도공사의 즐거운 비명. 개통 직후엔 한 달 이용객이 18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신규 철도 노선 최다라는 게 한국철도공사의 부연이다. 그러나, 여기서 미래를 마냥 낙관한다면 곤란하다는 게 관광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주제의식 결여된 문학과 메시지 전달력 약한 영화가 팬들에게 외면 받을 수밖에 없듯, 알찬 콘텐츠 없는 동해선 관련 여행은 밝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을 터. 부산 출발 강원도까지 이어지는 동해선 ‘완전 개통’ 현재 이용승객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 ‘폭발적’ 인기 역 주변은 관광객들이 불러올 지역 경제 ‘훈풍’ 기대 일본, 한국보다 몇 세대 앞서 철도가 보편화된 나라 물류 운송은 물론이고 관광객들의 유용한 발 역할 첫날 오사카 간사이공항서 마주한 JR·난카이철도 우리를 숙소와 맛집 밀집한 도톤보리까지 안내할 특급열차 ‘라피트’서 일본 기차 관광을 시작해 본다 ▲‘동해선 K관광의 앞날’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배울 것인가 과거엔 한국과 일본을 ‘사이좋은 국가’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그러나, 가혹한 식민 통치와 식민지 국민으로서의 서러운 기억을 바뀐 세기에도 굳이 가져갈 필요가 있을까? 20세기와 달리 21세기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두 나라간 협력과 교류의 발걸음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서울과 부산 등의 대도시는 물론, 한국 지방 작은 도시 곳곳에서 젊은 일본인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을 통해서만 한 해에 66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 여행을 시작하는 게 2025년 오늘의 현실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몇 세대 앞서 철도를 통한 관광이 보편화된 나라다. 일본 전역을 실핏줄처럼 잇는 철로는 물류 운송은 물론이고, 특정 지역을 출발해 특정 지역을 돌아보며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의 유용한 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방윤형은 ‘일본은 철도의 나라’(글로벌 정보 일본)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일본의 철도 시스템은 한국과는 달라, 철도의 운영 주체에 따라 JR그룹, 사철, 지하철, 제3섹터로 나눌 수 있다. JR은 일본의 간선철도망을 운영하는 회사로 1987년 국유철도 에서 분리된 후 총 6개의 여객철도 회사와 1개의 화물철도 회사가 각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JR은 홋카이도에서 큐슈까지 특급열차와 신칸센을 운영하고 있으며, 토쿄나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수십 개의 광역철도 노선이 하루에도 수천만 명의 일본인을 실어 나르고 있다.” 자, 현실이 이렇다면 동해선 K관광의 청사진을 그려 가는데 일본 철도 관련 관광 인프라와 안착된 노하우를 벤치마킹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오사카-나라-교토-도야마-쓰루가를 기차로 오가다 최근 경북, 울산, 강원도에 본사를 둔 3개 신문사 기자들이 함께 오사카(大阪), 나라(奈良), 교토(京都), 도야마(富山), 쓰루가(敦賀) 등 일본의 유명 관광지 혹은, 신흥 여행지로 떠오르는 도시를 기차로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포항과 울산, 강원도는 모두 동해선이 통과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지자체장은 물론, 관광업 종사자, 식당과 주점 운영자들은 동해선 완전 개통이 불러올 지역 발전과 경제 활성화, 도시 위상 높이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상북도, 울산광역시, 강원도는 공통적으로 지역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묶어내 동해선 개통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K관광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고심을 거듭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심과 고심이 동해선 철로가 지나는 도시 주변 관광 인프라 확충과 여행자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 프로그램으로 현실화하기 위해선 ‘잘하고 있는 도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지금까지 다소 장황하게 향후 8주간 계속될 ‘동해선 K관광의 미래-로컬 매력을 잇다’라는 연재기사의 기획 의도와 필요성에 관한 설명을 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일본 기차 관광의 출발지 오사카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니… 지난 6월 8일 아침. 김해국제공항발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시간. 도착하면서부터 시작하게 될 8박9일의 ‘일본 기차 여행’ 사전 정보를 몇 가지 방식으로 검색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앞서 언급한 방윤형의 논문을 다시 짤막하게 인용한다. “오사카에는 주요 국제공항으로 간사이공항이 있다. 간사이공항을 연결하는 철도는 JR과 난카이 전기철도가 있다. 우선 JR에는 일본 오사카부 이즈미사노(泉佐野)시 히네노(日根野)역과 간사이공항역을 잇는 JR 서일본의 철도노선이다. 일본 간사이 지방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인 간사이국제공항과 오사카, 교토를 연결하는 공항철도 노선으로 간사이국제공항이 문을 연 1994년에 처음 개통되었다.” 2년 전 가을. 대구공항에서 일본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스튜어디스에게 음료수 한 잔을 청해 그걸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우리 비행기는 곧 후쿠오카공항에 착륙합니다”라는 기장의 안내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겨우 50분 남짓의 시간이었다. 맞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은 마음의 거리만이 가까워진 게 아니다. 두 국가는 물리적으로도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오사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국을 위한 대기 시간과 면세점에서 보내는 시간을 합한 것보다 김해공항에서 오사카 간사이공항까지의 비행시간이 더 짧았다. 고작 1시간 10여 분이었으니. 비행기에서의 짤막한 상념 끝에 한국을 출발한 항공기는 일본 오사카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기차를 타고, 혹은 버스를 타고, 형편이 넉넉하다면 비싸기로 이름 높은 일본 택시를 이용해도 좋다. 방윤형의 ‘일본은 철도의 나라’가 가장 효율적으로 간사이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로 가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런 것이다. “난카이 전철에는 특급열차인 ‘라피트’가 유명하다. 린쿠(臨空)타운역에서 간사이공항역까지는 JR과 난카이 공항선이 선로를 공유하며, 해당 구간은 JR 서일본, 난카이가 아닌 신간사이(新関西)국제공항 소유로 JR 서일본과 난카이는 신칸사이 국제공항 측에 선로사용료를 지불한다.” 간사이공항에서 여행자들의 숙소와 그들이 좋아하는 맛집이 밀집한 도톤보리까지 1시간 내에 달려갈 수 있는 기차 ‘라피트’는 한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예매와 발권이 가능하다. 이젠 굳이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할 필요가 없어졌다. 많은 수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알고 있는 ‘비지트 재팬(Visit Japan)'을 이용했기에 일본 입국 수속은 20분 만에 끝났다. 걸음을 빨리해 간사이공항역으로 가니 기자를 도톤보리로 싣고 갈 ‘라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7-01
미국 뉴저지엔 ‘에어로팜’(AeroFarms)이라는 스마트 농장이 있다. 세계 최대 아파트형 농장인 이 회사는 IoT 센서를 이용 작물의 생산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AI,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작물의 생육 상태를 최적화한다. 수십만 평의 농지가 스마트 팜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 회사는 생산성을 390배나 향상시킬 수 있었다.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의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오늘 소개할 ‘스마트 김 양식장’은 에어로팜의 스마트 농장이 ‘바다 버전’으로 응용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치단체나 식품회사들이 스마트 김 양식에 뛰어드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급격한 해수온의 상승 탓이다. 전문가들은 김 생육의 적당한 해수온(5~15도)이 50년 이내 50일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갯병, 황백화 같은 질병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바다김 양식, 전문가들은 그 대안을 육상 양식장에서 찾는다. 한 번 대규모 시설 투자와 재배 시스템이 정비되면 계절, 수온의 제약에서 벗어나 연중무휴로 재배,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북도도 ‘육상 김양식’ 기술개발 연구계획을 수립하고 스마트 양식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2030년까지 ‘동해형 돌김 종자’를 개발하고 대량 생산기술을 확립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전국 육상 김 양식장, 자치단체, 연구소, 식품회사를 방문, 견학하며 기초자료를 수집해 연구에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김 양식 패러다임의 변화시대를 맞아 스마트 김 양식에 뛰어든 기업체와 연구소를 둘러보았다. 충북 오송 ‘풀무원기술원’ 대형 수조 ‘바이오리액터’에 양식장 환경 재현, AI로 제어 연간 24회 이상 김 수확 가능 ◆풀무원, 바이오리액터 수조로 특화 풀무원은 2021년부토 육상 김 양식 개발에 나서 양식 김을 초기 상품화 단계까지 끌어 올렸다. 2014년부터 해조류 종자 연구를 시작해 해양 양식 전반에 걸친 데이터베이스를 이미 구축하며, 이 분야 선두주자로 자리 잡고 있다. 풀무원의 가장 특화된 기술은 바이오리액터로 분리는 대형 수조(水曹)다. 작은 드럼통 만한 이 생물반응조에 바다 환경을 그대로 재연해 해초를 생산하는 구조다. 풀무원 관계자는 “수조 안에는 바다와 동일한 김 생육 환경이 조성되었다”며 “AI, IOT(사물 인터넷) 등 스마트 시스템을 통해 빛과 수온, 염도, 수소이온농도(PH)가 자동으로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전체 시스템의 정교한 설계는 물론 조명의 종류, 배치 간격, 수조의 재질과 용량 등도 최적화해야 된다는 것. 건물에 들어서자 연구실 한 켠에서는 수백 개의 플라스크에서 종자를 배양하고 있었다. 채묘(採苗)된 종자를 어린 묘로 양성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자란 유묘(幼苗)는 바이오리액터에 옮겨진 후 성체가 될 때까지 자라게 된다. 수조에서 바로 성체(成體)로 성장시키기 때문에 양식장 같은 거치대, 지주(支柱), 그물이 필요 없다. 생물반응조에 유엽(幼葉)을 넣어 성체를 수확하는데 약 2주 기간이 소요된다. 이런 진척도라면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24회 이상의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풀무원 측은 3년 이내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육상에서 생산한 김이 식탁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김 양식 기술이 축적되면 어민들에게 종자 분양, 보급 등 양식 기술을 이전하고 이를 통해 어민들은 소득 향상을 도모하고 회사 측은 안정적인 원재료 확보가 가능해 상생 구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김제시 진봉면 ‘지평선육상김’ 200평 공장에 스마트 시설 갖춰 온도·습도·광량·살균 원격 제어 국내 최초로 양식장 특허 등록 ◆대한민국 최초 특허 등록 ‘지평선육상김’ 김제시 진봉면에 2022년 설립된 ‘지평선육상김’은 200평 공장에 자동화 기계와 스마트 온실 제어 장비를 갖추고 있다. 이 곳은 국내 최초로 김 양식장 특허를 취득한 곳으로 유명하다. 김 양식의 방식, 시설, 일부 공정을 특허 낸 것이 아니고 양식장 시스템 자체를 등록했다. 이 외에도 수질정화장치를 이용한 수질관리와 살균처리 시스템, 온도와 습도를 자동 조절하는 공조 시스템, 김발 자동 이송 및 수확 시스템 등 최신 자동화 기술을 도입했다. 지평선육상김은 김양식 방식의 주요 방식인 ‘지주식’(支柱式)’과 ‘부류식(浮流式)’의 장단점을 보완해서 만든 일석이조, 친환경 방식을 갖추고 있다. 지평선이 자랑하는 방식은 적층(積層)식 거치대 구조. 스마트 팜의 다단계, 수직구조처럼 거치대를 다단(多段)으로 집적해서 배치하는 구조다. 좁은 면적에 시설들을 밀집해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양식장 공간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다. 3000평의 바다 양식장엔 1.8×40m 그물이 70~80책이 설치되지만 이 곳에서는 동일 면적 기준 600책 이상의 세팅이 가능하다. 연간 5개월만 생산이 가능한 바다와 달리 연중 생산이 가능해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10배 이상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지평선육상김 이정민 부대표는 “(집적화)덕분에 면적 축소, 수온유지, 사계절 생산, 최적의 광량(光量), 고품질 유기농 김생산 등 많은 장점을 도모할 수 있다”며 “이런 스마트 시스템을 통해 김 생산 기간을 기존의 3분의 1로 단축시키고, 성장률을 40배 이상 높이는 기술을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실험 과정 거쳐 곧 상용화 단계 진입” 풀무원기술원 이다정 연구원 “하루 종일 김을 들여다보고 퇴근하면 거실 TV 화면이 김으로 보여요.” 풀무원이 국내 스마트 김 양식 분야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데는 연구원, 직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운명처럼 시작한 해조류와의 만남, 연구원들은 김과의 교류(?)를 위해 하루에 수십 장, 연간 수천 장의 김을 시식하고 있다고 한다. “5년을 공들인 김 연구인데 ‘김 새면’ 안되죠.” 불철주야 김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풀무원의 이다정 연구원을 만나 보았다. △바이오리액터는 풀무원의 독자 기술인가? 바이오리액터는 원래 미세조류나 미생물 배양에 활용되는 일반적인 기술이다. 풀무원은 이러한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김의 생육 특성에 맞춘 맞춤형 제어 기술을 접목해 김 양식에 최적화된 바이오리액터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 해상 양식과 달리, 육상 환경에서는 수온, 광량(光量), 영양염, 유속(流速) 등 주요 생장 조건을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풀무원은 이를 활용해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생장을 유도하고, 고품질의 김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 김 양식은 단순 양식의 성공에 이어 궁극적으로 고부가가치 김 생산에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본다. 풀무원은 육상양식 기술을 바탕으로 김의 품종 다양화, 기능성 성분 강화, 유해물질 저감 등 고품질생산을 위한 기술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김을 단순 식재료를 넘어 건강식품, 간편식, 화장품, 의약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활용 가능한 고부가가치 소재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CJ, 대상, 풀무원 등 식품회사들과 중소기업들이 육상 김 양식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내의 스마트 양식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와있나 국내 해조류 스마트 양식 기술은 이제 막 실증 단계를 거쳐, 상용화 기술 개발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스마트 양식은 기존 해상 양식과 달리, 데이터 기반의 생산 관리와 자동화 기술이 핵심이며, 수산업과 IT 기술의 융합이 필수적이다. 풀무원은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통해 연속 양식과 수질 제어의 안정성을 확보해 왔으며, 현재는 영상 기반 생육 모니터링과 품질 분석 기법을 단계적으로 적용해 나가고 있다. △스마트 김 양식이 대규모 시설 투자 대비 경제성,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량 생산을 거쳐 상용화 단계로 연착륙할 수 있을까? 스마트 김 양식은 안정적인 생산환경, 품질 균일성, 연중생산, 위생관리, 기후변화 대응 등에서 기존 해상양식 대비 뚜렷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강점은 특히 해외 수출 및 프리미엄 시장 진출 시 일관된 품질을 기반으로 한 제품 차별화를 가능하게 하며, 중장기적인 경제성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 어업인과의 협력을 통해 생산 규모의 단계적 확대와 경제성과 지속성을 겸비한 상용화 모델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29
바다의 로또, 해양 반도체로 불리는 김이 산업 대전환 시대를 맞았다. 해양 오염, 해수 온난화라는 복병을 만나 김 산업 전반이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 양식업자들은 전통적 바다 양식에서 벗어나 스마트 양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점을 모색하는 ‘바다의 반도체 김, 스마트 양식 시대를 열다’ 시리즈를 준비했다. 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부터 국내 김 산업의 변화, 일본의 양식장 탐방기까지 5회에 걸쳐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웰빙시대 맞아 힐링푸드 새롭게 주목 ‘바다의 반도체’ 불리며 작년 수출 1조 K-컬처 열기 타고 미·일·유럽서 인기 최근 해수온 상승·해양 오염 ‘복병’ 등장 바다 양식장 황폐화로 어민 수입 급감 전통적 양식 한계 극복 육상 재배 시도 정부 350억 투입 스마트 김산업 장려 지자체·식품업계 ‘육상김’ 본격 경쟁 투자대비 경제성 확보 사업 성패 좌우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의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흰 쌀밥에 김 한 장 얹어서 먹는 맛이란...’ 김은 오랫동안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미식(味食) 코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수많은 음식 중에 김이 이렇게 ‘국민 푸드’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우리 민족과 정서적 공감을 함께해 왔음을 뜻한다 하겠다. 그렇다고 인류사 측면에서 김이 항상 양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국에서 김은 한때 해양 쓰레기, 가축 사료 취급을 받으며 식탁에서 멀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ESG, 웰빙 요리시대를 맞아 김은 ‘힐링푸드 아이콘’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우리 식탁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경제, 산업적 가치도 뛰어나다. 현재 한국에서 김은 ‘바다의 반도체’로 불리며 작년 수출 1조 원(7억 8000만 달러)을 돌파하며 코리아 슈퍼푸드의 대명사인 라면을 앞질렀다. 이처럼 꽃길을 걷던 김 산업에도 그림자가 드리웠으니 바로 해양 오염과 해수 온난화다. 현재 한국 김의 주산 생산지인 남해안에서는 수온 상승으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미세 플라스틱 등 오염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각 자치단체는 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육상 김 양식장’이다. 경북도도 돌김 양식장 개발, 동해안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에 나서고 있다. 게장과 함께 밥도둑으로 유명한 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자. ◆K푸드 김밥, 세계의 소울푸드로 등장 2023년 미(美)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모녀가 김밥을 먹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음식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세라 안(安)씨가 올린 이 영상은 조회 수 1100만회를 넘기며 K푸드 김밥의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세라 안씨가 김밥을 즐기는 장면이 방영된 후 미국 ‘트레이더조’ 냉동 김밥은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다. 트레이더 조는 미국 전역에 500개 매장을 둔 식료품점. 당시 매진 사태로 식재료를 공급하느라 한바탕 소란을 떨어야 했다. 이 덕에 이곳 냉동 김밥을 납품하던 구미의 식품업체 ‘올곧’이 초대박을 터트렸다. 올곧은 김밥 250톤 초도 물량을 순식간에 완판 시킨 이 사건 때문에 주문 물량을 맞추느라 한 달 넘게 철야 근무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한국 김밥이 갑자기 미국에서 터져(?)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그 전조(前兆)를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났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김 사재기’를 든다. 당시 TV에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시장에서 ‘김매장 털이’를 하는 장면은 사실은 K-푸드 김의 데뷔를 알리는 서막 이었던 것이다. 거친 방사형(放射形)에 두꺼워 식감이 질겼던 일본 김에 비해 얇고 감칠맛이 나는(가격도 30% 수준인) 한국 김에 관광객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불을 지핀 한국 김 열기는 K-컬처 인기에 힘입어 미국,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스낵을 먹는 듯한 바삭한 식감과 환상의 조미(調味)는 단숨에 세계인들의 입맛을 빼앗아 버렸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해조류 열풍과 건강식에 대한 열기도 단숨에 한국 김을 판매고 최상위에 랭크시키는 데 기여했다. 김 요리와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2021년 한국 김 스낵을 950만 달러나 수입했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53%나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물량 공세를 앞세우는 중국산 제품의 추격에 맞서 아직도 ‘아마존 프랑스’ 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수온 상승으로 바다-스마트양식장 전환 120여국에 수출되며 K푸드 위상을 떨쳤던 한국의 김 산업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며 주춤하게 되는데 바로 온난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이다. 보통 김은 5~15도 수온에서 생육되는데 1년 중 이 온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10월부터 다음에 4월까지 약 150일 정도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해수온이 상승하면서 채묘(採苗) 시기가 9월 초에서 9월 말로 2~3주 늦춰졌다. 이는 김 생산 시기가 한 달 가량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해 어가(漁家) 수입도 20% 가량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기후 변화로 인한 해양 재해가 발생함에 따라 김을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재배, 양식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 김 양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바다 양식이 기후, 수온 등에서 제어가 불가능한 데에 비해 육상에서는 수온은 물론 염도, PH, 영양분 등 재배 환경을 자유롭게 콘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해양수산부가 2024년부터 5년간 350억 예산을 투자해김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김 육상 양식은 황색화, 갯병 등 감염을 예방할 수 있고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100배 이상 높일 수 있어 경제성에서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불붙은 육상 김 양식 전쟁, 대기업들도 앞다퉈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먼저 CJ제일제당은 2018년부터 육상 김 양식 개발에 참여해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 전용 배지를 개발했다. 대상(주)도 2023년부터 고흥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5년간 20억 원을 투자한다. 바이오리액터로 불리는 수조를 이용해 김양식에 나선 풀무원도 이미 월 10kg의 실험용 물김을 생산하고 있다. 풀무원의 이다정 연구원은 “양식장에 AI, IOT(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스마트 기술이 접목되면서 생산 효율화를 앞당겼고 스마트 센서 기반 모니터링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실험실 환경에서 많은 진척을 이루고 있는 스마트 김 양식이 과연 대량 생산을 거쳐 상용화로 이어질지가 앞으로 과제로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생산량을 늘리려면 대규모 공간이 필요하고 초기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어갈텐 데, 과연 투자 대비 아웃-풋(경제성)이 나와줄 지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한 김 유럽 고대 인골서 해조류 흔적 일본 조몬시대 패총서 김 발견 ‘연오랑세오녀’ 설화에도 등장 해조류의 일종인 김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우리 식탁을 지켜왔다. 2023년 영국 요크대학은 유럽 전역의 28개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된 74명 유골의 치아를 분석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이 유골 치석(齒石) 분석에서 이들 대부분이 선사시대부터 이미 해조류를 섭취해왔음이 밝혀졌다. 이는 이제까지 김 소비의 주축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극동지역보다 3000년 이상 앞선 것이어서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일본 조몬(繩文)시대 패총 유적지에서도 해조류의 흔적이 발견돼 기원전 1만3000년 무렵 일본에서도 김이 식용으로 이용됐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인류들이 강가, 해안가에 거주하며 어로, 채집 생활을 했다고 볼 때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인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에도 ‘고대 중국인들이 해조류를 식용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우리 사서(史書)에 김이 처음 등장하는 건 삼국유사. 제1권 ‘연오랑세오녀’편에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초를 따던 중 갑자기 바위가 그를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물론 김을 뜻하는 ‘해의’(海衣) ‘해태’(海苔)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이 ‘해초’(海草)가 전후 문맥으로 김, 미역 등을 지칭한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서기 157년 경 동해안 에서는 김이 식용으로 채취되었고 원시적 형태이지만 일본과 무역, 상업적 유통도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22
◇ 뜨리마 까시, 포스코“저는 포스코가 도와 달라고 하면 어떻게든 힘을 보탤 겁니다.”지난달 30일 찔레곤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에서 약 2㎞ 떨어진 꾸방사리(Kubangsari) 마을.납시아씨(Napsiah·55·여)는 거실과 방 2개가 딸린 집에서 자식 내외, 손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찔레곤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집 안은 맞바람이 들어 시원했다. 글 싣는 순서1. 포항 영일만의 기적, 인도네시아에 닿다2. 이차전지 날개 단 인도네시아, 포항시 기회 찾으려면3. 인도네시아와 포항 기업 간의 교류 현 주소4. K기업문화, 인도네시아에 퍼진 한국기업 저력5. 탄소중립 시대,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떻게납시아씨의 집은 포스코가 ‘스틸빌리지’ 사업의 일환으로 새로 지은 집이다. 포스코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포스코1%나눔재단, 포스코 비욘드 봉사단 등 포스코 사회공헌 역량을 총 동원해 찔레곤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 인근 저개발 지역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펼쳤다.봉사자들이 직접 지은 집이라 다소 투박하지만 깨끗한 하얀 벽, 하얀 타일이 깔린 납시아씨의 집은 이 동네 집 중 비교적 신식이다. 납시아씨는 집을 찾아온 취재진을 반기며 포스코 덕분에 편안한 집에서 잘 수 있게 됐다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그는 “포스코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자고 가도 좋다”며 “포스코가 도와 달라고 하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꾸방사리 마을에 거주하는 마스투아(Mastuah·55·여)씨도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마스투아 씨가 살던 집은 빗물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몇 달 씩 매일같이 비가 쏟아지는 우기(雨期) 동안엔 마스투아씨와 가족들은 비에 젖은 축축한 바닥을 닦고, 또 닦아야 했다. 포스코는 2018년 마스투아씨 집에 방 두개와 거실이 있는 새 집을 선물했다. 마스투아 씨는 “불편하기도 했지만 집이 무너질까봐 늘 불안했는데 새 집이 생긴 뒤로 편하게 잘 수 있다”고 밝혔다.찔레곤 현지에서 포스코가 받는 사랑을 한 눈에 체감할 수 있었다.스틸빌리지 사업으로 포스코는 주택 25세대 외에도 화장실 30개소, 학교 건물 3개소, 쓰레기 처리시설 1개소를 새로 지었다. 3년이 넘게 진행된 프로젝트에는 포스코그룹 임직원들, 포스코 비욘드 봉사단, 해비타트 봉사단 등이 개인 시간을 쪼개 참여했다.마을에는 스틸빌리지 사업을 통해 시설을 보수한 초등학교도 있다. 하교를 하던 아이들이 취재진과 포스코 직원들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며, 졸졸 따라다녔다. 익숙한 듯 크라카타우 포스코 직원들이 아이들에게 인사를 나누자,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뜨리마 까시’(terima kasih·감사합니다)를 외쳤다.크라카타우 포스코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빈부격차가 심해 찔레곤 제철소 인근 저개발 지역은 사람들이 흙바닥에 나무 판자로 지은 집에 거주하는 등 주거 환경이 좋지 않다”며 “특히 학교, 유치원, 보육시설 등 교육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아, 스틸빌리지 프로젝트를 할 때도 미래세대 아이들이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교육시설 개선도 함께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공헌 프로그램포스코는 크라카타우 포스코를 건설한 직후부터 제철소가 위치한 찔레곤의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해왔다. 2013년 인도네시아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2015년, 포스코는 크라카타우 포스코 사회적 기업, PT.KPSE (Krakatau POSCO Social Enterprise)를 설립했다. PT.KPSE는 포스코 1%나눔재단 기금 7억원과 KOICA 기금 7억원을 투입해 설립된 포스코의 자회사형 사회적 기업이다.PT.KPSE는 특별한 설립 배경이 있다.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 가동 초기, 인근 마을 청년들이 생계를 이유로 자재를 훔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돈을 벌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생긴 일이었다. 포스코는 지역 빈곤층에게 드리운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민들이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고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 ‘PT.KPSE’다.PT.KPSE의 사업은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주민들이 역량 개발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PT.KPSE는 6개월 단위로 30명씩 인성 교육, 직업역량 강화 교육 등을 실시한 후 교육을 이수한 지역민을 공장 환경 정비 요원 등으로 채용해 지속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다. 마을 주민 대상으로 소규모 창업 지원 교육도 실시하고, 제철소가 위치한 인근 공단에 취업할 수 있도록 컴퓨터, 워드 등 기본 직무 능력 교육도 제공한다. 사회적 기업 운영으로 발생하는 이윤의 70%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사회공헌기금으로 재환원해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2015년 설립 이후 2023년 상반기까지 총 378명이 교육을 이수했고, 2022년까지 237명이 취업에 성공했다.포스코만의 특별한 사회공헌 활동의 정점은 포스코 커뮤니티 러닝센터(P-CLC, Community Learning Center)다. 2022년 스틸빌리지 사업 일환으로 개관한 찔레곤의 다목적 시설인 CLC는 현재 PT.KPSE에서 운영하고 있다. 시 정부에서 제공한 연면적 약 661.16㎡(200여 평) 규모의 부지에 세워진 지상 2층의 ‘스틸’ 건물은 낮은 목재주택들이 즐비한 찔레곤 마을에서도 단연 눈에 띈다. 지역 주민들의 교육시설이자 문화 공간인 CLC에는 강의실, 컴퓨터실, 도서관 등 지역민들의 역량 개발을 위한 시설들이 자리해 있다. 인근 지역에서 드물게 에어컨이 있는 이 건물은 지역 주민들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P-CLC에 들어서자 한국에서 온 포스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포항과 광양제철소에서 근무하다 인도네시아로 파견을 간 직원들이었다. 현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포스코 주재원, 현지 직원들은 ‘아요 스망앗’(Ayo Semangat·파이팅합시다)이라는 봉사단을 구성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포항제철소에서 하고 있는 재능봉사활동과 유사하다. 이날 직원들은 P-CLC에 조만간 들어설 한국어 학교 개관을 준비하고 있었다.크라카타우 포스코는 제철소 인근 지역사회 청년 및 보육시설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위한 ‘K-Dream 한글학당’을 지난 7일 개원했다. 크라카타우 포스코의 한국인 임직원과 통역사 직원이 학생들에게 직접 한글을 가르치며, 약 1년간의 교육과정 운영 후 우수학생은 크라카타우 포스코 및 협력사로 직원으로 채용을 추진할 계획이다.포스코 생산기술전략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지난해 9월부터 크라카타우 포스코 열연 공장장을 맡고 있는 이정희 부장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포스코 직원들답게 인도네시아에서도 주재원들이 봉사활동에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며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은 게 눈에 보이니 봉사하는 직원들의 의욕도 함께 올라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지역 주민들이 교육 프로그램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PT.KPSE 아리(Mr. Arie) 대표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했다.그는 “PT.KPSE가 들어서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다”며 “PT.KPSE는 지역민들에게는 ‘희망’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공헌 프로그램들 보다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업시민’ 글로벌 임팩트, 그 원류는찔레곤을 감동시킨 포스코 커뮤니티 러닝 센터, 재능봉사단 아요 스망앗을 보면 포항의 ‘포스코 나눔스쿨’, ‘포스코 재능봉사단’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자회사형 사회적 기업 PT.KPSE는 장애인 고용 사업장인 ‘포스코 휴먼스’를 닮았다. 포스코가 국내에서 펼치고 있는 기업시민 활동이 이들의 원류이기 때문이다.기업의 사회 공헌 개념이 낯설었던 창립 초반부터 포스코는 사회환원과 지역상생에 매진해 왔다. 창립 후 광양제철소 건설이 완료될 때까지 포스코는 작은 어촌이었던 포항의 인프라 건설에 중점을 두고 사회공헌 활동을 개진했다. 문화시설인 효자아트홀 개관, 실내체육관 건립 지원이 대표적인 사례다.주목할 점은 미래세대 육성에 중점을 둔 것이다.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986년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을 설립, 산학연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포스코의 선견지명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수도권 중심 주의가 강화되면서 지역 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며, 지역 대학들의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포스텍은 굳건히 국내 최정상 이공계 대학의 아성을 지키고 있다.연이어 설립한 실용화 기술 전문연구기관인 RIST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은 포스코, 포스텍과 시너지 효과를 내어 포항이 산업 연구 도시로 발전하는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포스텍-RIST-포스코로 이어지는 산학연 협력 체계는 지방 소멸 시대 포항이 지닌 주요 자산이다. 든든한 산학연 협력 체제가 있기에 비수도권 지역으로서는 드물게 벤처기업들도 포항을 주목하고 있다. 체인지업그라운드 등 포스코의 벤처 지원 사업과 맞물려 미국 CES에서 주목한 유망스타트업 그래핀스퀘어는 수도권에서 포항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전기차 배터리 플랫폼 기업 피엠그로우, 협동로봇 전문기업 뉴로메카 등은 포항에 공장을 신설했다.조업이 안정된 90년대 이후에는 더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했다. 포항테크노파크, 환호해맞이공원 건립을 지원하고, 프로축구단 스틸러스를 설립해 지역 문화 발전의 후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 사업도 꾸준히 개진했다. 실직자를 위한 실업기금, 연말 불우이웃돕기, 수재의연금 등으로 900여 억원을 출연했다.포스코의 사회공헌활동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임직원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1991년부터 포스코는 각 부서와 포항의 마을, 단체, 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어 봉사활동, 교류활동을 펼쳤다. 2003년부터는 포스코봉사단을 창단해 더욱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직원들이 휴일을 활용해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22년 1월부터 9월까지 봉사활동에 참여한 인원만 누적 5천55명으로, 누적 봉사시간은 11만 시간이 넘는다.나눔과 봉사 문화가 있었기에, 1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크라카타우 포스코 역시 기업시민 활동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임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든든한 뒷받침이 됐다.포스코 관계자는 “한국 최초 일관제철소를 만들며 포항과 강건한 상생관계를 만들어낸 사례가 있듯, 인도네시아에서도 모범적인 지역 상생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인도네시아에서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9-17
◇ 이차전지 날개 단 인도네시아, 글로벌 전기차 허브 도약 꿈꾸다인도네시아가 전기차에 주목하고 있다. 배터리 필수 원료인 니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약 2천100만t의 니켈을 보유하고 있는 니켈 세계 최대 매장국이다. 2019년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전기차산업 글로벌허브 국가 발전전략을 제시했다. 2030년까지 전기차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기자동차 생산·수출 기지로 도약하겠다는 그림이다. 아세안 국가 중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허브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자국 전기차·이차전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인도네시아가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은 ‘무역장벽’이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배터리 필수 원료인 니켈 원광 수출을 금지했고, 현지 가공품 수출만 허용했다. 자원을 무기로 삼은 셈이다.기술력을 가진 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현지화율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도 마련했다.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생산 회사의 현지화율을 2030년 이후 80%까지 끌어올리고자 계획하고 있다.아세안 국가 사이의 국제 협력도 탄탄하기 때문에 전기차 관련 기업들은 인도네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2018년 맺은 아세안무역협정(AFTA)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한 차량은 아세안 회원국에 무관세로 출국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면 인근 국가인 태국, 베트남 등 다른 아세안 국가들로 진출이 용이한 것이다.국내 기업들도 빠르게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고 있다. 공공시설에서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연산 15만대 규모의 아세안 지역 첫 완성차 생산공장을 인도네시아에 준공한 뒤,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 5~7일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현대자동차는 아이오닉5, 아이오닉6, 제네시스 G80 전동화모델 등 전기차 3종으로 특별제작한 아트카 23대를 운행하며 2023부산국제박람회와 자사 전기차 라인을 홍보했다. 현대자동차는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배터리셀 공장도 건설하고 있다. 2024년 상반기 중 배터리셀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합작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성능 NCMA리튬이온 배터리셀은 2024년부터 생산되는 현대차와 기아 전기차량에 탑재될 예정이다. 글 싣는 순서1. 포항 영일만의 기적, 인도네시아에 닿다2. 이차전지 날개 단 인도네시아, 포항시 기회 찾으려면3. 인도네시아와 포항 기업 간의 교류 현 주소4. K기업문화, 인도네시아에 퍼진 한국기업 저력5. 탄소중립 시대,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떻게◇‘전기차’ 블루오션에서 먹거리 찾는 포스코그룹지난달 29일 방문한 포스코 가공공장은 훈훈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자카르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까라왕에 있는 포스코 IJPC 인근에는 최근 전기차 공장이 들어섰다. 포스코 IJPC는 도요타, 혼다를 비롯한 자동차 기업들이 다수 포진한 KIIC(Karawang International Industry City) 공단 내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새로 준공된 현대자동차 완성차 공장과는 차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고, 2021년 5월 준공한 3공장 인근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자동차의 합작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자동차 밸류체인 한 가운데 자리잡은 것이다.포스코 IJPC는 포스코로부터 철강 제품을 수입해 고객사가 요구하는 규격으로 절단, 가공해 판매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단연 자동차용 철강재다. 자동차 외판부터, 부품에 쓰이는 소재까지 다양한 철강재를 이곳에서 공급하고 있다. 늘어나는 철강 수요에 발맞춰 지난해 포스코 IJPC는 3공장을 신설했고, 2010년 연간 5만t이었던 판매량은 지난해 27만t을 돌파했다.포스코 IJPC 관계자는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 2기투자가 성공적으로 완수되고, 인도네시아 내에서 냉연, 도금, 자동차 강판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생산부터 가공, 유통까지 포스코그룹이 수행하는 밸류체인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전기차 확대 정책에 따라 현대자동차의 인도네시아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일본 기업이 장악해왔던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을 한국 기업이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포스코 IJPC는 판매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4공장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포스코그룹은 이차전지소재 분야에서도 인도네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니켈 생산 사업 2건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최초로 이차전지용 니켈 생산에 도전한 것이다.하나는 중국 닝보리친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 니켈 함유량 기준 연산 12만t 규모의 니켈 중간재(MHP 이Mixed Hydroxide Precipitate)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먼저 1단계로 니켈 함유량 기준 6만t 규모의 생산공장을 연내 착공해 2025년에 생산을 개시할 예정이다. 닝보리친은 니켈 광산에서부터 제련, 트레이딩까지 밸류체인 전반에 대한 사업을 한다. 이미 2021년 인도네시아 최초로 이차전지용 니켈 습식제련공장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선도기업이다. 이번 협력을 통해 포스코그룹은 니켈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신흥국과의 경쟁, 포항시의 강점 찾으려면정부 주도의 강력한 전기차 산업 육성 계획에 따라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투자 국가로 주목받고 있다. 테슬라 주요 배터리 공급업체인 중국 CATL은 인도네시아에 59억 6천800만달러(약 7조 3천346억원) 규모의 원자재 포함 배터리 생산 단지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요타와 미쓰비시사도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전기차 생산공장 설립을 선언했다. 전세계를 ‘투자 유치 전쟁’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테슬라 기가팩토리의 유력 후보지도 인도네시아다.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유수의 이차전지 소재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포항도 최근 이차전지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되면서 ‘전기차 산업의 허브’로 발돋움하고자 힘쓰고 있다. 경북도는 포항시가 이차전지 양극재 산업 특화단지로 최종 선정됨에 따라 인근 구미, 김천, 경산, 영천, 경주 등과 함께 이차전지 산업벨트를 구축해 새로운 도약을 꾀하고 있다. 포항시는 2030년까지 양극재 100만t 생산, 매출액 70조원, 고용창출 인원 1만 5천명을 목표로 경북도와 이차전지 특화단지 추진단을 꾸리고 국내 이차전지분야 전문가, 선도기업들로 구성된 전지보국 전문가 자문단(TF) 가동 계획을 밝혔다. 관련 기업의 동반 성장과 협력 체제 구축을 위한 이차진저 기업 협의체도 오는 10월 발족 예정이다.포항시가 이차전지 특화단지의 성공적인 운영에 이토록 간절한 이유는 이차전지 사업 활성화가 지역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를 통해 생산 유발효과 23조 3천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9조 5천억원, 취업유발효과 5만 6천여 명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실제로 긍정적인 신호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CNGR사와 화유코발트가 포스코그룹 및 LG화학과 손잡고 각각 1조원 가량의 포항 투자를 약속했다. 이차전지 소재 기업들의 집적효과로 한국 기업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파격적인 규제개혁을 위한 포항시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지난 4일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구·경북 정책간담회에서 규제개혁추진단 위원장인 홍석준 국회의원과 김병욱·한무경 국회의원,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교육부 등 7개 정부 부처와 포항시, 대구상공회의소, 기업인들은 규제개혁 안건에 대해 토론했다.포항시는 원활한 기업경영과 국가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산업단지계획과 관리기본계획을 조기에 변경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의 협의기간을 단축하고 우선 처리하는 ‘패스트트랙’ 처리를 건의했다.김병욱 의원은 “차세대 주력산업인 이차전지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 뿐만 아니라 관련 규제 완화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포항이 글로벌 이차전지 산업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규제 완화 방안을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그러나 글로벌 보호무역 주의 기조와 해외 국가들의 파격적인 투자 인센티브로 기업들의 탈(脫) 한국 기조가 강해지고 있는 것은 유의해야할 신호다. 반도체 분야의 경우 TSMC,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 등 기업이 올해 잇따라 일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일본에 300억엔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보조금은 100억엔 이상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주는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이미 2021년 9월 10년간 재산세의 92.5%, 이후 10년은 90%, 추가 10년은 85%를 돌려받는 인센티브를 적용받았으나, 텍사스 기업프로젝트의 ‘트리플 점보 기업 프로젝트’로 선정해 고용에 따른 지원금을 추가로 제시했다. 파격적인 투자유치책, 안정적인 노사환경 등을 내세우는 해외국가들 사이에서 투자처로서 포항의 매력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대목이다. 인터뷰자카르타 사무소 문홍부 경북도소장인도네시아 시장이 성장하면서 지역 강소기업들의 진출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포항에는 금속 가공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어, 포스코를 비롯한 한국 철강기업들의 강세는 지역기업들에게도 호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경북도는 2015년부터 경상북도 자카르타사무소를 개소해 경북도 지역 중소기업의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인도네시아와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자카르타 사무소 문홍부사진 경북도소장을 만나 지역 기업의 진출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경북도 자카르타 사무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지역중소기업 인도네시아 진출 지원이 가장 큰 업무다. 도내 수출 중소기업과 인도네시아 내 바이어를 찾아서 연결하고, 수출 상담을 지원한다. 인도네시아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에게 현지 정보를 제공하고, 행정 절차를 도와 성공적으로 현지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요 목표이다. 지역 기업의 제품 홍보를 위해 각종 박람회와 행사에도 참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내에서 한국 관광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경북도는 K-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에게 관광지로서의 매력도 높다. 포항의 경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킹더랜드’ 등이 흥행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발맞춰 경북 주요 관광지, 음식 등을 여행박람회에서 홍보하고, 인스타그램을 운영해 경북도 관광지를 알리고 있다.-인도네시아 내 경북도 기업들의 활약상이 궁금하다.△중소기업들도 인도네시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산시에 위치한 기남금속은 지난해 31만 달러 규모의 맨홀뚜껑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인도네시아 진출 전 과정을 함께 했기 때문에 더욱 뜻깊은 성과였다. 포항에 본사가 있는 제일연마공업도 인도네시아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다. 제일연마공업은 2002년 인도네시아 현지생산법인을 설립한 선구자다. 인도네시아에서만 공장 2곳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최대 연마석 제조기업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장기간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새롭게 인도네시아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다른 지역 기업들에게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경북 농산물도 진출하고 있다. 경북도 사무소는 도내 농가의 해외수출 판로를 확보해 농가 수입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에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청송사과 수입 쿼터 300t을 확보했고, 청도 네이처팜 반건시, 상주 복숭아와 배 등을 수입했다. 올해에는 판매처를 다양화하고, 샤인머스켓 등 수입품목도 추가하고자 한다.-인도네시아 진출을 꿈꾸는 지역 기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의 성장 잠재력은 단연 주목할 만하다. 경제 성장률 또한 가파르기 때문에 지역 기업도 주시해야 할 시장이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다. 초창기 낮은 인건비가 강점이었지만 최근들어 최저임금이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있는 추세다. 산업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이슬람 인구가 대다수인 만큼 식품, 화장품 같은 경우에는 할랄인증을 받아야 하고, 한국과 다른 행정 절차도 신규 진출의 장벽이 될 수 있다. 어려움을 감수할 가치와 매력이 있는 시장이지만, 충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지역기업들이 진출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북도 자카르타 사무소는 최선의 지원을 다하겠다. 지역기업들이 인도네시아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궁극적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부용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9-10
산업의 기초가 돼 ‘산업의 쌀’ 이라 불리는 철강. 철강 패권을 거머쥐는 것은 곧 제조업의 근간을 다진다는 뜻. 철강은 제조업 전반에 소재로 쓰이고 있기에, 제조업 발달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철강 소재 확보가 필수적이다.한국은 일찌감치 ‘철’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하면 후발주자지만 철강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열정은 뒤지지 않았다. 전후 최빈국이었던 1960년대 대한민국은 일관제철소 건설에 사활을 걸었다.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겠다는 ‘깡다구’로 만들어진 포항의 한국 최초 일관 제철소는 이후 반세기 동안 산업 성장의 기수가 돼 ‘산업의 쌀’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철강이라는 토대 위에서 한국 산업은 꽃을 피웠다.포스코가 이룬 ‘영일만의 기적’은 한국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50년 역사 속에서 어느덧 아시아 철강 산업의 희망이 됐다. 포스코는 동남아시아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인도네시아에 건설했다.글 싣는 순서1. 포항 영일만의 기적, 인도네시아에 닿다2. 이차전지 날개 단 인도네시아, 포항시 기회 찾으려면3. 인도네시아와 포항 기업 간의 교류 현 주소4. K기업문화, 인도네시아에 퍼진 한국기업 저력5. 탄소중립 시대, 인도네시아에서는 어떻게 ◇ 영일만 신화, 인도네시아에 닿다인도네시아는 포스코의 첫 해외 일관제철소 건설 기지였다. 포스코는 2008년 인도네시아에 제철소 건설을 결정했다. 2008년 인도네시아와 한국 정부가 맺은 기본 합의를 바탕으로 포스코는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사인 크라카타우 스틸(Krakatau Steel)과 손잡고 연산 300만t 규모의 제철소 ‘크라카타우 포스코’ 를 건설했다.2000년대에 들어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는 빠른 경제 성장을 겪으며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망한 시장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5~6%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했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확충과 조선업육성정책을 추진하면서 건설, 조선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그러나 인도네시아 철강 산업의 성장은 더뎠다. 2008년까지 인도네시아의 철강 수입 의존도는 52%. 철강 수입 증가율도 해마다 13.6% 가량 높아졌다. 철강 수요는 높은데, 철강 생산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인도네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본 포스코는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일관 제철소를 인도네시아에 짓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철강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하공정 설비만 해외에 건설해 반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전략을 세워오고 있었기에 상·하공정을 모두 해외에 짓겠다는 포스코의 발표는 이례적이었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 내 하공정 공장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일본 철강사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로 건설을 결정했다.야심찬 해외 시장 진출이었던 만큼, 건설 초기 인도네시아로 가던 포스코 직원들의 마음가짐은 비장했다. 한국과 다른 기후환경, 철강 시장 악화 등의 악재가 겹쳐 준공 이후 제철소가 안정화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영일만 신화를 만들어낸 특유의 집념으로 포스코는 포기하지 않았다.약 10년간 이어진 고군분투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21년 크라카타우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5억200만 달러로 창립 이래 최고점을 찍었다. 다음해인 2022년에도 2억2천1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영업이익률에서 큰 성과를 냈다. 크라카타우 포스코의 2021년, 2022년 영업이익률은 각각 20%와 10%로, 같은 해 포스코 본사의 영업이익률을 상회했다.모두가 기피하는 일관제철소를 건설한 ‘뚝심’도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내에 고로부터 제품 공장까지, 상·하공정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포스코가 유일하다. 하공정만 보유한 기업의 경우, 반제품을 수입해 가공해야하기 때문에 무역 리스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에 반해 자체 고로를 보유하고 있는 포스코는 비교적 외풍으로 인한 영향이 적어 안정적인 철강 생산이 가능하다. 향후 자동차 강판 생산라인까지 구축되면 인도네시아 철강 산업의 패권도 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자동차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지만, 일관제철소를 보유한 것은 크라카타우 포스코 뿐이다.실제로 ‘영일만의 기적’을 넘어 ‘찔레곤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포스코는 크라카타우포스코 제철소에 고로 1기를 추가 건설해 연간 조강량을 600만t 이상으로 확대하고, 자동차 강판을 비롯한 냉연 설비를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는 향후 2030년까지 1천만t 철강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야심찬 포부를 품고 있다. 포스코만의 K-기업 신화가 인도네시아에까지 널리 뻗어나간 셈이다. ◇ 포항 영일만, 역사의 시작한국 제조업을 견인한 철강 산업의 원류는 바로 포항이다. 한국 최초의 일관제철소,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탄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생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1964년 12월 4일 제102차 경제장관회의에서 박정희 정부는 철강공업 육성계획을 의결했다. 종합제철 건설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 뿐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뒷받침돼야하기 때문에 당시 철강 선진국이었던 미국, 유럽, 일본 등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선진 우방국조차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아시아의 빈곤하고 작은 나라’가 추진하는 종합제철 건설에 선뜻 힘을 보태려 하지 않았다.그럼에도 정부는 종합제철 건설계획안을 수립하고 국제차관단 구성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1966년에는 미국, 서독, 영국, 이탈리아 4개국 7개사와 한국에 종합제철을 건설하기 위한 기본사항에 합의하고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을 발족했다. 1967년 1월 프랑스가 추가로 참여해 구성원은 5개국 8개사로 늘어났으며, 1967년 10월 종합제철 건설에 관한 기본협정을 체결했다.이후 1967년 7월 포항을 종합제철 건설을 위한 최종 입지로 선정하고,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공식 출범했다.그러나 KISA 출범으로 빠른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KISA를 통한 차관 교섭이 여의치 않자, 1969년 1월 31일 정부와 박태준 사장 일행은 KISA 대표단과의 담판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경제적 타당성 부족을 이유로 KISA를 통한 차관 조달은 결국 실패했고, 1969년 9월 2일 시효가 만료됨에 따라 KISA와의 기본협정은 자동적으로 해지됐다.종합제철 사업의 좌초를 막기 위해 새로운 자금 공여처와 기술 제휴처를 확보해야만 했다. 한일 양국이 농림수산 부문에 주로 투자하기로 합의한 대일청구권자금 일부를 종합제철 건설 자금으로 전용하고 일본 철강업계의 기술지원을 받는 것만이 제철소 건설사업 실현을 위한 마지막 대안이었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민관 합동 노력에 나섰다. 일본 정부를 설득해 자금을 제철소 설립에 유용하는 것에 합의했다. 일본 철강업체들의 기술협력 분위기를 조성해 극적으로 제철소 건설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다.정부 수립에서부터 한일 간의 기본협약이 체결되기까지는 무려 여섯 차례의 종합제철 건설 시도가 있었다. 결국 그 결실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자금이 마련되고 제철소 건설은 빠르게 진행됐다. 창립 2주년을 맞은 1970년 4월 1일 경북도 영일군 대송면 동촌동 건설 현장에서 포항 1기 설비 종합 착공식을 거행했다. ◇ 한국 최초 일관제철소 만든 집념, ‘아시아 철강’ 시대 이끌다포항 1기 사업은 조강 연산 103만t(톤) 규모, 1973년 7월 완공을 목표로 계획됐다. 당시 언론은 종합 착공 관련 보도를 통해 포항제철소 건설사업이 유사 이래 최대 규모 단일투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철강재 자급 촉진, 국제 수지 개선 및 고용 증대, 자주국방 능력 강화 등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평가했다.제철소 건설이 시작되자 박태준 사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건설현장을 시찰하며 모든 건설요원들에게 “민족의 숙원사업에 동참한다는 긍지와 사명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특히 “선조들의 피값인 대일청구권자금으로 건설하는 만큼 실패하면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우향우해 영일만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는 남다른 각오를 요구했다.이러한 각오는 곧 빠른 제철소 건설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열연 비상’ 사건이다. 생산설비 중 가장 앞서 1970년 10월 1일 착공했던 열연공장은 1971년 4월 콘크리트 타설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계획이 여러 번 변경되면서 설계가 지연됐다. 건설업체의 자재와 인원 부족에 여름 장마까지 겹치면서 공기지연 문제가 표면에 떠올랐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포항종합제철은 전사적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관리, 행정 직원까지 모두 투입돼 24시간 ‘돌관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밤낮없이 공사에 참여했다. 그 결과 2개월만에 5개월 분의 콘크리트를 타설할 수 있었다. 심지어 건설 공기를 예정보다 1개월 단축할 수 있었다.산업 역군을 자처하고 나선 직원들의 곧 한국 최초 일관제철소 완공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1973년 7월 3일 포항제철소는 1기 종합 준공을 무사히 완수했다.박태준 사장은 종합 준공에 대해 “종합제철의 탄생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온 국민의 열의의 소산”이라며 “우리나라 철강공업의 기틀이 되고 중화학공업의 핵심적인 위치를 점해 더욱 비약적인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할 것”이라고 밝혔다.박정희 대통령은 치사에서 “초현실적인 제철소를 준공하게 된 데 대해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다”고 회고하며, “조강 연산 103만 톤의 종합제철공장을 완공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의 문턱을 넘어서 훨씬 더 깊은 곳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포항제철소가 국가 경제 발전에 공헌할 것이라던 박태준 사장의 말은 곧 현실이 됐다. 포항 1기 설비 건설은 국내 철강산업 성장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조선, 전자, 건설 등 국내 수요산업에 소재를 공급할 수 있게 됨으로써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비약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다. 역으로 이를 통해 성장한 국내 수요산업 또한 철강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든든한 수요 기반이 되며,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게 됐다. 계속/인도네시아에서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9-03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호안끼엠(還劍) 호수’를 찾게 된다. 서울이라면 광화문, 대구라면 두류공원, 포항이라면 영일대해수욕장처럼 외국인은 물론 그 지역 주민들까지 산책과 휴식을 즐기는 공간. 기자 또한 지난 5월 두 차례에 걸쳐 그곳을 돌아봤다.호안끼엠 호수 산책로엔 거대한 조형물이 서있다. ‘리 왕조’의 태조 이공온(李公蘊·974~1028)의 동상이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처럼 우뚝하다. 이공온은 어떤 인물일까? 이 궁금증에 ‘리브레위키’가 답한다.“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지금의 하노이를 수도로 정한 황제다. 974년 박린성 뜨선에서 태어났다. 1009년 나라가 내란에 휩싸이자 학식과 인품 모두에서 존경받던 이공온이 차기 황제로 추대된다. 수도를 옮긴 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각 계층간의 화합에도 힘을 기울였다. 불교를 국교로 삼아 문화를 발전시켰고, 주변 국가의 침탈도 막아내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한 나라 수도 한복판에 동상을 만들어 그 업적을 기릴 정도라면 ‘리 왕조’와 이공온이 베트남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리 왕조’는 216년간 지속되다가 사라진다.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이란 세상에 없는 법. 차오른 달은 때가 되면 기운다. 왕국 통치자의 성(姓)이 ‘이씨’에서 ‘진씨’로 바뀐 것. 이어 ‘리 왕조’ 혈족들에 대한 살육이 시작된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봉화 충효당의 주인공 이장발은 베트남 ‘리 왕조’ 태조의 후손이공온의 7대손인 왕자 이용상은 목숨이 백척간두에 선 상황을 피해 먼 고려로 몸을 피한다. 망명이었다. 고려의 왕은 이용상을 내치지 않고 예를 갖춰 맞았다.그가 처음으로 밟은 고려의 땅이 황해도 화산이기에 ‘화산 이씨’라는 성(姓)도 사용하게 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 년 전인 1226년이다.몰락한 ‘리 왕조’의 왕족들은 이후 고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세월은 흘러 1392년 왕국의 이름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었다. 화산 이씨 역시 고려의 백성에서 조선의 백성으로 살게 됐다.1592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섰다. 봉화도 다르지 않았다. 봉화가 고향인 화산 이씨 가문의 장발(長發)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문경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나선다. 홀어머니를 두고 이장발이 전사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열여덟이었다.‘베트남마을 조성 예정지’ 가운데 들어서 있는 봉화 충효당은 이장발의 기개와 애국심을 높이 평가한 조선의 유림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만들었다. 자그마치 8세기 가까이 이어진 ‘화산 이씨’와 ‘봉화군’의 인연은 위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그간 한국과 베트남은 두 나라 모두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변했고, 수없이 많은 통치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양국이 오래 이어온 인연의 끈은 그것들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60년 전 베트남전쟁에서의 비극을 떨치고,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우방국으로 서로를 인식하며 경제와 문화 교류를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과 베트남.봉화군이 전력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이 21세기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역사와 문화를 잇는 교류의 다리될 것”인터뷰 박현국 봉화군수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교류의 다리가 되고, 미래세대에겐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할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박현국 봉화군수의 역점 추진사업 중 하나다.베트남마을 조성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박 군수는 지난 5월 초 17명의 봉화군대표단을 구성해 ‘리 왕조’의 태동지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를 방문하기도 했다.본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마을 조성과 관련해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을 묻고, 박 군수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구체적인 봉화군 베트남마을의 모습을 들어봤다.-봉화군에 ‘베트남마을’이 조성돼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뭔지.△나라가 서구열강에서 독립해 부강해지면 많은 국가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반드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베트남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 중국에서 독립해 독립된 국가를 이뤘던 베트남 ‘리 왕조’에 대한 문화나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아닐까. 봉화군은 베트남 리 왕조의 역사가 이어지는 국내 유일의 유적지로서 다른 어떤 지역보다 한국-베트남 교류와 협력의 상징이 될 베트남마을 조성의 최적지라고 믿는다.-베트남마을 조성은 봉화군이 추진할 주요사업 중 하나다. 어떤 이유에서 이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인가.△봉화는 현재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인구 3만의 농촌지역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된 킬링 콘텐츠가 절실하다. 나는 우리 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인연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베트남마을 조성, 즉 베트남 콘텐츠 선점은 농촌 일자리, 농산물 판로 확대, 문화교류와 관광 활성화, 인구 증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봉화군에 활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추진 중이다.-올해 새롭게 추진될 베트남마을 조성 관련 사업은 어떤 것이 있을까.△우선 하드웨어적으로는 봉화 충효당과 재실을 잇는 ‘교류의 길’과 연꽃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특별교부세 20억 원을 신청해 놓았다. 대규모 사업 전 기초 인프라를 닦기 위해서다.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올 하반기 베트남 뜨선시 우호대표단 초청과 국제 자매결연 체결을 통한 지속적인 문화 교류를 진행할 예정이다.-지난 5월 초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를 찾았다. 베트남마을 조성에 관해 어떤 구체적인 협조와 지원을 약속 받았는지 궁금하다.△이번 방문에서 많은 성과를 얻었다. 항 바 위 뜨선시장은 베트남 건축양식에 대한 자문을 약속했고, 꾸억 투언 박린성 부성장은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사업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하반기 봉화군 우호교류단 초청과 국제 자매결연 체결 요청에 흔쾌히 응하며 실무단 구성을 지시했다.-예상되는 고용 창출 효과, 인구 증가 효과,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 등을 포함한 베트남마을의 대략적인 모습은.△베트남을 생각할 때 우선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붕화군이 만들 베트남마을도 현지 주민과 베트남 다문화인, 다양한 관광객이 공존하는 역동적인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고용 창출 및 인구 증가 등의 효과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 보완용역에 반영해 연말에 가시화 시키려고 한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대를 부탁하고 싶다.끝/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6-06
“현재 경북 봉화군은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그곳 봉성면 창평리엔 당신들의 조상인 ‘리 왕조’ 후손 이장발의 애국심을 기려 세운 충효당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일대에 역사와 문화, 휴양을 동시에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베트남역사관, 공연장, 연수·숙박 시설, 잘 꾸며진 정원까지 들어설 예정이다.”기자의 말을 들은 주한 베트남관광청 리 쓰엉 깐(65) 대사는 “그 소식은 들어서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가 이어졌다.“이미 천 년 전부터 활발하게 교류했던 두 나라의 관계가 재정립되고, 지금 진행되는 한국과 베트남의 협력이 보다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기에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36년, 베트남에서 29년을 살았다. 두 나라는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는 점과 충효를 중시하는 정서 등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리 쓰엉 깐 대사는 13세기 초반 베트남에서 고려로 ‘정치적 망명’을 감행한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의 후손이다. 1994년 베트남으로 귀화하기 전엔 이창근이란 이름의 한국인으로 생활했다. 그러니, 누구보다 양국의 국민성과 지향점을 잘 알고 있을 터.비단 이창근 대사만이 아니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과 베트남 모두가 과거 식민지였던 경험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식민지 경험과 뜨거웠던 독립 의지라는 공통점한국은 20세기 초반 팽창하던 제국주의 국가 일본에게 국토와 국권을 빼앗긴다.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자신의 땅에서 생산된 각종 재화를 일본에게 수탈당했다. 국민의 거의 전부가 일본의 종살이를 한 형국이었다.베트남은 이보다 먼저 19세기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제국주의의 착취 양상은 유사하다. 프랑스도 베트남 노동자들을 강제 징발했고, ‘아편의 원료를 재배하라’는 부도덕한 명령까지 내리는 등 베트남 국민의 일상을 파괴했다.억압이 심해질수록 한국과 베트남의 독립의지는 뜨겁게 불붙었다. 이민족으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독립투사들’이 생겨난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유관순은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옥사(獄死)한다. 고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그녀의 나이 겨우 열여덟이었다. 윤봉길은 자신의 나라를 탄압하던 일본의 고위관료와 장성을 처단하기 위해 폭탄을 품고 중국 상해로 떠난다. 당시 그의 나이도 겨우 스물넷.한국에 유관순과 윤봉길이 있다면, 베트남엔 ‘보 티 사우’가 있다. 150㎝ 남짓의 조그만 소녀는 자신의 민족을 배반하고 프랑스의 주구(走狗)로 살던 베트남 관료를 폭사시킨다. 보 티 사우가 던진 폭탄에 프랑스 군인 20명도 부상당한다.식민지 베트남에서 열린 프랑스의 법정. 법관은 그 조그만 소녀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총살이 집행되던 날. “내 나라의 강과 산을 보며 죽겠으니 눈가리개를 풀어라”고 당당하게 일갈하며 순국한 보 티 사우는 유관순보다 한 살 어린 열일곱이었다. ◆나라 위해 기꺼이 생명 버린 베트남계 조선인 이장발한국과 베트남 청년들의 순정한 애국심은 비단 20세기 전후에만 발휘된 게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에도 봉화 출신의 열여덟 살 청년 하나가 문경새재에서 일본군과의 교전 중 사망한다. 이장발(1574~1592)이다.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던 그는 ‘더 큰 어머니’인 조국을 위해 주저함 없이 생명을 바친다. 그는 ‘리 왕조’의 혈통인 화산 이씨. 그러니, 말하자면 베트남계 조선인이다.1750년 조선 유림들은 이 어린 청년의 기개와 용기를 높이 평가해 ‘충효당 화산 이공 유허비’를 세우고, 충효각을 지어 그의 정신을 기렸다. 이장발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남겼다는 시는 이런 내용이다. ‘두산백과’를 인용한다.百年存社稷·백년사직을 구할 계획을 가지고六月着戎衣·유월에 갑옷을 입었다憂國身空死·나라를 위해 몸은 죽지만思親魂獨歸·어머니 못잊은 혼백은 돌아가네이장발은 1226년 베트남에서 고려로 이주한 이용상의 후손이다. 이용상 역시 몰락한 외국의 망명객을 따스하게 맞아주며 ‘화산 이씨’라는 성(姓)까지 선물한 고려를 위해 몽골군과의 전투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이창근 대사와 ‘리 왕조’ 건국 기념행사 덴도 축제가 열린 박린성 뜨선시에 동행한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은 입을 모아 말했다.“아무리 강한 외세일지라도 굴복하지 않고, 부모를 섬기는 걸 높은 가치로 평가하며, 무엇보다 자녀들의 교육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국과 베트남은 닮았다”고. 여기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한국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반면, 베트남은 그렇지 않다. 인구의 대다수가 30대 이하인 젊은 국가다. 한국의 경제개발 노하우와 베트남 젊은이들의 열정이 효과적으로 결합된다면 두 나라는 더불어 커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사실 1960~1970년대에 걸쳐 벌어진 베트남-미국간 전쟁에 한국이 참전한 시기를 제외하면 양국의 우애는 나빴던 때가 거의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한국-베트남간 우호적 교류 전통 이어갈 봉화 ‘베트남마을’‘동북아문화연구 제26집’에 실린 강은해(계명대학 인문대)의 논문 ‘한국 귀화 베트남 왕자의 역사와 전설’의 서두는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는 일찍이 서로 동경하고 소통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이나 몽골, 일본 등 주변 국가와 달리 양국의 관계는 침략으로 얼룩지지 않았다…(중략) 우리나라 고려시대 황해도 옹진현에는 베트남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李龍祥)이 망명해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전설과 문헌 사료가 전해오고 있다…(중략) 조선시대 1598년 정유왜란 때 진주에 살았던 선비 조완벽은 왜구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교토의 상인에게 팔려 문자를 안다는 이유로 상선을 타고 베트남을 세 차례나 오갔다. 베트남 사람들은 그에게 이수광의 시를 보여 주며 고아(高雅)한 시를 쓴 조선 선비에 대한 존경과 호의를 표시하기도 하였다…(하략).”위의 논문을 통해 알 수 있듯 2023년 현재 한국과 베트남의 활발한 경제·문화 교류와 양국 사람들이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나, 관광을 하러 서로의 나라를 찾는 건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이미 수백 년 전, 아니 1천여 년 전부터 두 나라가 밀접하고 호의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왔다는 건 여러 고문헌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위에 언급한 논문엔 ‘망명객 이용상’이 정치적 박해 탓에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고향 땅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에 관한 구전도 인용된다. 이런 대목이다.“高麗(고려) 때, 安南國(안남국·베트남)의 왕자 李龍祥(이용상)이라는 이가 우리나라에 망명을 해왔는데, 그는 고국 생각을 잊을 수 없어, 항상 이 바위 위에 올라서서 고국이 있는 남쪽 하늘 끝을 바라보고는 방성통곡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로 인하여 뒷날 이 바위를 越聲岩(월성암)이라 불러온다는 것이다.”고려와 대한민국, 13세기와 21세기가 무엇이 다를까?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인간 보편의 감정이다. 오죽하면 미물인 여우조차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했을까.봉화군이 추진 중인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한국인에겐 오랜 친구인 베트남과의 교류 역사를 떠올리게 하고, 한국으로 이주한 베트남인들에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30
한국 기업의 현지 생산 공장이 다수 들어서 있고, 한 해 평균 200만 명에 가까운 한국인 관광객이 드나드는 베트남은 우리와 가장 친숙한 국가 중 하나다.갈수록 ‘국경’이란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21세기. 서로 다른 정치·이념 체계로 인해 갈등하고 반목했던 20세기 중반과 달리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떼어놓기 힘든 우방국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 사회와 학교, 가정에 유교적 전통이 남아 있는 국가라는 공통점까지 가졌다.봉화군은 이런 시대적 추세와 유사한 민족성에 주목해 몇 해 전부터 베트남마을 조성에 진력하는 중이다.2017년 11월 당시 대통령이던 문재인이 고려로 망명한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을 언급한 이후 2018년 초엔 응웬 부 투 주한 베트남 대사가 봉화군 충효당(임진왜란 때 순국한 화산 이씨 이장발의 애국심을 기려 지은 사당)을 찾았다.이어 같은 해 봄에는 봉화군 대표단이 베트남을 방문해 우호·교류의향서를 전달했다. 베트남 ‘리 왕조’의 태동지인 박린성 뜨선시에서 열리는 덴도 축제에 참가한 것도 이때부터.베트남마을 조성을 위한 양국의 협력과 교류는 2019년에도 이어져 봉화군 대표단이 거듭해 덴도 축제를 찾았고, 지난해 12월엔 박현국 군수가 베트남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인 주석을 만나 MOU를 체결했다.지난 5월 초순 역시 군수와 군의회 의장을 포함한 17명의 봉화군 관계자들이 하노이와 뜨선시를 찾아 두 나라가 함께 만들어갈 봉화 베트남마을에 관해 진지한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베트남 현지 분위기 또한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에 호의적5월 1일부터 5일까지 취재를 위해 베트남 하노이와 박린성 뜨선시를 돌아봤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와 유럽까지 뒤흔들고 있는 ‘K-팝’과 ‘K-드라마’의 열풍은 베트남에서도 그 위력을 과시 중이었다. 베트남 젊은이들이 모이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선 어렵지 않게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고, 기자가 탑승한 버스에 오른 몇몇 청년들은 핸드폰을 통해 베트남어 자막이 달린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그들은 원체 많은 한국 여행자를 봐 온 터라 낯선 외국인에게 가질 수 있는 경계심도 거의 없어 보였다. 수많은 고층 건물이 들어선 하노이 중심가엔 한국 물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적지 않았다. 불고기와 비빔밥 등 ‘K-푸드’의 위세도 대단했다.통역을 맡아준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에 따르면 “베트남 10~20대가 한국 문화와 음식에 열광한다면,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지식인 계층에선 한국과 베트남간의 교류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차츰 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베트남 박린성과 뜨선시 인민위원회 고위급 간부들이 봉화군이 추진하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인다는 건 현재 취재를 통해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그 배경엔 제갈공명에게 일곱 번이나 사로잡혔으나 결코 항복하지 않았던 베트남 장수 맹획에 관한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故事)가 있고, 초강대국 프랑스와 미국에게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베트남 현대사가 있다.자존심이라면 한국인도 이에 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당당한 태도가 없었다면 5천 년 내내 지속됐던 숱한 외침과 내환을 견뎌내고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터.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 역시 양국의 모범적 협력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은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에 주목하고 있다.이를 반영하듯 이달 초 오영주 주베트남 대사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인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을 위해서라도 이 사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계속) “베트남과 한국 잇는 가교 역할에 보람”인터뷰 주한 베트남관광청 이창근 대사 지난 5월 1일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현지 취재를 위해 하노이에 갔다. 그날은 마침 주한 베트남관광청 리 쓰엉 깐(65) 대사가 업무를 위해 하노이를 찾았던 때. 급하게 연락해 리 대사의 하노이 사무실을 찾았다.그는 800여 년 전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의 31대손으로 1994년 베트남으로 귀화했다. 한국 이름은 이창근. 인터뷰 자리엔 ‘리 왕조’ 탄생 축제 참석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도 동석했다.-베트남을 여행하는 한국 관광객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주한 베트남관광청 대사를 맡은 건 언제부터인지.△2017년이다. 3년 임기인데 현재 연임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임명을 받았다. 나는 화산 이가(花山 李家)고, 1958년 한국에서 태어났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거기서 살았다. 조상의 땅인 베트남과 30대 중후반까지 살아온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음에 보람을 느낀다.-어린 시절에도 당신의 뿌리가 베트남에 있음을 알고 있었는지.△숙부가 혈통에 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그에게 1천 년 전 베트남 왕족이었던 우리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보니 학생 때도 베트남 관련 기사가 나오면 신문을 꼼꼼하게 읽었고, 대학 땐 화산 이씨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숙부는 1975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단절되면서 세상을 떠났다.-1990년대 한국-베트남 수교가 재개된 후 귀화했다고 들었다.△내 중시조(中始祖)는 1226년 고려 고종 13년에 망명한 이용상이다. 그는 고려와 베트남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 나 역시 미력하나마 그런 삶을 살고 싶어 1994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베트남에 정착했다. ‘리 왕조’를 기억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가 여기서 자리 잡는데 큰 힘이 됐다.-현재 경북 봉화군이 베트남마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는데.△환영할 일이다. 베트남마을 조성은 한국과 베트남이 보다 친숙한 나라가 되는데 작지 않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화산 이씨들은 ‘한국에 세종대왕이 있다면, 베트남엔 리 왕조가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봉화군이 관련된 조언과 도움을 요청할 때면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응한다. 게다가 봉화엔 우리 조상을 모신 충효당도 있지 않나. 마음 같아서는 조성에 필요한 자금도 보태고 싶다.-한국에 거주하는 ‘화산 이씨’는 어느 정도 되는가.△대략 2천여 명 정도다. 적은 숫자이니 종친회 활동이 다른 가문 같지 않지만, 소수라 결속력은 더 강하다. 베트남마을 조성 등의 계기가 생긴다면 더 잘 뭉치지 않겠는가.(웃음)-한국과 베트남에서 인생의 절반씩을 살았는데.△두 나라는 유사한 측면이 많다. 애국심과 효심을 높이 받드는 것이 특히 그렇다. 그러니, 이질적인 민족성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다.-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리 왕조’가 존중의 대상인 듯하다.△왕조가 생겨난 것을 기념해 해마다 ‘덴도(DO-temple) 축제’를 열고, 수도인 하노이 한복판에 ‘리 왕조’ 태조의 동상도 서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베트남인들이 내 조상이 다스렸던 시기를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향후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지.△내겐 태어난 한국과 뿌리가 있는 베트남 모두 중요하다. 두 나라는 오래 전부터 교류를 해오던 사이였다. 그런 역사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 베트남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섰다. 베트남은 30대 이하 인구가 다수인 젊은 국가다. 교육열과 발전가능성 또한 높다. 한국과 베트남이 윈윈(win-win)하는 사이로 동반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23
불과 50~60년 전엔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적과 적으로 만났다. 하지만 엄혹했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국가들 사이에 실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보편화되면서 한국과 베트남은 이제 ‘친구 이상의 나라’가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다.짙푸른 바다가 유혹하는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 다낭(Da Nang)을 찾는 한국 여행자는 한 해에 100만 명. 그중엔 경북도민도 수없이 많다.허니, 베트남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들리는 그곳을 ‘경상북도 다낭시(市)’ 혹은 ‘경상북도 다낭군(郡)’이라 부르는 농담까지 나오는 상황.뿐 아니다. 근래에 들어 국제결혼이 늘어나면서 베트남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노동 가능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한국 농촌에서 노인들을 대신해 각종 농작물의 파종과 수확을 도와주는 베트남 계절근로자 역시 봉화군을 포함한 경북 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봉화군이 진행하고 있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는 이런 흐름 속에서 기획됐다. 여기에 봉화군은 베트남과 관련된 주요한 유적지까지 가졌으니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를 상징할 공간을 우리 고장에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명분이 충분하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봉화 충효당(奉化 忠孝堂)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의미800여 년 전. 베트남 북부를 통치하던 리 왕조의 직계 후손 중 일부가 정치적 박해를 피해 고려로 망명한다. 고려 왕실은 이들을 깍듯한 예법으로 받아들여 우리 땅의 일원으로 살게 했다. 그들이 바로 ‘화산 이씨(花山 李氏)’다.봉화엔 화산 이씨 장발(長發)의 강직한 품성과 애국심을 기려 세운 유적이 있다. 이름하여 충효당. ‘두산백과’는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자리한 이곳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경상북도 기념물로 1750년경 후손과 유림에서 조선 선조 때 사람인 이장발(1574~1592)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했다. 이장발의 자는 영백(榮伯)으로, 어려서부터 재질과 의지가 굳어 배움에 부지런했고 효성이 지극했다.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열아홉 어린 나이에 편모슬하의 가장이면서도 망설임 없이 전장으로 달려가 문경새재에서 혈전 끝에 전사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못다 한 충효의 마음을 읊은 시를 남겨 후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됐다. 나라에서 순국의 공을 치하하고자 공조참의의 직위를 추증하고 출생지인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 화산 이공 유허비’를 세우고 충효각을 지었다. 충효각은 정자 뒤편에 있다.”사선을 넘어 베트남에서 고려로 왔을 때 따스하게 맞아준 은혜를 잊지 않고, 목숨을 걸어 ‘제2의 고향’이라 할 고려와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화산 이씨’는 이장발만이 아니었다.리 왕조의 직계손이자 ‘화산 이씨’ 시조인 이용상(李龍祥·리 왕조 6대 왕의 일곱 번째 아들) 역시 고려를 침탈한 몽골 군대에 용맹하게 맞섰다. 다시 ‘두산백과’를 인용한다. 이런 내용이다.“1253년 12월.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이 정착해 살던 웅진성 동쪽 화산에 몽골군이 침입하자 토성과 목책을 쌓아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이에 고려 고종은 이용상에게 관직을 내리고, 옹진 화산 지역 30리 인근과 식읍 2천호를 선사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제수를 내리고, 화산관(花山館)의 문미에 수강문(受降門)이란 글자를 써주기도 했다.” ◆봉화군과 리 왕조의 태동지 박린성 뜨선시의 공통점충효의 정신과 인간 사이의 예법을 중시하는 건 긍정적 측면에서의 유교적 전통이다. 봉화군은 아직 그런 전통이 남아있는 고장. 이는 베트남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기자는 지난 4월에 봉화 충효당을, 5월 초순엔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市)를 찾았다.충효당 앞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말과 뜨선시 덴도((DO-temple)축제 현장에서 만난 ‘화산 이씨 종친회’ 이훈 회장의 이야기는 그 뜻이 서로 통했다. 요약해 전달하자면 이런 내용이다.“한국과 베트남은 어른을 공경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걸 높은 가치로 여긴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섰던 선열을 존중하고, 부모를 극진히 모신 효자, 효녀에 얽힌 설화가 흔한 건 두 나라가 비슷하다.”그런 소프트웨어의 동질성 때문일까? 충효당이 위치한 봉화군 봉선면과 리 왕조가 시작을 알린 뜨선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외부적 환경, 즉 하드웨어까지 닮아있었다.2023년 초여름 현재. 봉화군은 충효당 일원에 베트남마을을 조성하는 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실증하듯 지난 1일엔 5일간의 일정으로 박현국 봉화군수를 단장으로 한 ‘봉화군 교류단’이 리 왕조의 발원 지역인 뜨선시를 방문했다.여기엔 봉화군의회 김상희 의장과 박동교 부의장 등도 동행했다. 올해 봉화군의 주요 시책 중 하나인 베트남마을 조성사업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고, 베트남 정부와 박린성, 뜨선시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방문 일정을 리 왕조 건국을 기념하는 덴도축제 기간에 맞춘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 이 일정을 취재하며 직접 확인한 뜨선시의 환대는 800년 전 이용상을 받아들인 고려 왕실의 그것처럼 살가웠다.지난 5월 3일 저녁. 맛깔스런 베트남 전통요리로 차려진 환영 만찬을 준비한 뜨선시 측에선 건축을 전공한 황 바 휘 시장이 봉화 베트남마을에 들어설 건축물에 관한 자문을 약속했고, 부엉 꾸억 투언 박린성 부성장(한국의 부지사격)은 한국-베트남 문화교류를 위해 올 하반기 공연단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한 결과물로 만들어질 베트남마을이날 봉화군 교류단은 베트남 리 왕조의 후손 ‘화산 이씨’와 관련된 유적지인 충효당 일대에 베트남마을이 만들어져야 하는 당위성을 박린성과 뜨선시 관계자들에게 설명했다.“역사·문화·휴양을 테마로 한 베트남역사관, 전통공연장, 연수·숙박·교육시설, 정원 등을 조성하기 위해 국비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에 만찬에 참석한 베트남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했다.사실 이번 자리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봉화군과 박린성, 봉화군과 뜨선시 간의 교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지난 2018년엔 봉화군 관계자들이 응웬 티 킴 응언 베트남 국회의장을 만나 베트남마을 조성에 협조를 부탁했고, 2019년에는 응구옌 투 꾸인 박린성 인민위원장(한국의 도지사격)을 단장으로 하는 우호교류단이 봉화군을 찾아 충효당을 둘러봤다. 베트남마을 조성 예정지를 미리 살핀 것.설화 또는, 전설처럼 전해오는 인연을 귀하게 여겨 그 끈을 놓치지 않은 베트남 리 왕조와의 교류는 8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봉화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의 구체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박순교 경북대 특임연구원의 논문 ‘花山君 李龍祥(화산군 이용상)에 관한 연구’는 한국과 베트남, 미시적으로 봉화군과 뜨선시 사이 우호의 출발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전승에 의하면 대월(리 왕조) 출신 이용상은 고려 고종 치세에 송나라를 거쳐 고려로 이거했다. 황해도 웅진 화산에 정착한 그는 얼마 뒤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고려 조정으로부터 화산군에 책봉되었고,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리 왕조의 혈손인 그의 존재는 한국과 베트남 양국 선린의 가교이자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3-05-16
국가와 국가 간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우호도 없고, 불화도 없다.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 역시 그랬다.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기록된 베트남전쟁. 한국군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군대와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였다.1992년 수교가 이뤄지기까지 19년 동안 베트남은 한국 대중들에게 적성국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그런 불화가 있기 1천여 년 전 한국과 베트남은 호의적 관심을 가지고 교류하던 사이였다. 이런 사실은 그 당시를 연구한 여러 논문을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고려의 왕이 위기에 처한 베트남 왕족 이용상의 정치적 망명을 흔쾌히 받아들여 작위를 주고, 화산 이씨(花山 李氏) 성을 사용하게 해 우리나라로의 정착을 적극 도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지금의 베트남 북부 박린성(省) 뜨선시(市)에서 태동한 ‘리 왕조’는 216년 동안 지속되며 8명의 왕을 탄생시켰다. 1대 왕인 태조 이공온은 베트남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 수도인 하노이 한복판에 동상을 세울 정도의 역사적 위상을 가진다.바로 이 태조 이공온의 후손이 고려로 망명한 이용상이고, 그들의 후손인 이장발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맞서다 목숨을 잃었다. 그 공로가 인정돼 세워진 것이 봉화군 봉성면의 충효당.21세기에 들어서며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협력은 여러 부문에서 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두 나라의 우호적 관계는 해마다 200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베트남을 찾는 것에서 확인된다.봉화군은 이런 흐름에 주목하고 몇 해 전부터 충효당 일대에 베트남마을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베트남 주석과 박린성장, 뜨선시장 등도 이 사업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본지는 매주 수요일 5회에 걸쳐 기획기사 ‘봉화군과 베트남 리 왕조의 연결고리를 찾아’를 연재할 예정이다. 고대 베트남 리 왕조의 역사와 봉화군 베트남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관련기사 16면/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3-05-09
1960~1970년대에 걸쳐 진행된 베트남전쟁의 비극은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냉전체제가 해체된 1990년대 이후 베트남은 한국의 주요한 우방국 중 하나가 됐다.양국 사이 교류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 돼 이제 한국과 베트남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봉화군은 베트남마을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는 중이다.봉화엔 베트남 리 왕조의 왕족 출신 화산 이씨(花山 李氏) 이장발(李長發·1574~1592)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충효당(忠孝堂)이 자리해 있다.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겨우 열여덟 어린 나이에 홀어머니를 두고 전장에 뛰어들어 전사한 이장발은 1226년 고려에 정착한 베트남 왕족 이용상(李龍祥)의 후손.본지는 5회에 걸친 연재기사를 통해 리 왕조의 흥망성쇠와 현재 베트남인들이 평가하는 리 왕조, 베트남 박닌성 뜨선시와의 교류·협력 속에서 베트남마을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봉화군의 오늘을 면밀하게 점검하고자 한다.글 싣는 순서1. 한국과 베트남 교류 역사의 시작2. 동반 성장의 파트너가 된 베트남3. 봉화군이 조성할 베트남마을4. 베트남인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봉화군5. 봉화군과 베트남이 함께 꿈꾸는 내일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설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한국에선 고려가 태동해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던 1009년. 지금의 베트남 북부에 독립된 왕국이 건설된다. 탕롱(현재 명칭 하노이)을 도읍으로 한 ‘리 왕조’다.1대 왕 태조 이공온은 당시 강위력한 힘을 가졌던 중국의 군대를 격퇴한 문무겸비(文武兼備)의 인물. 베트남인들은 ‘리 태조’를 기리며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산책로 중앙에 그의 동상을 세워놓았다.‘환검’(還劍·칼을 돌려받다)이란 뜻을 가진 호안끼엠은 국가적 재난이 닥칠 때면 거북이가 칼을 물고 나와 나라를 구하게 했다는 설화가 전하는 호수다. 베트남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공간.그런 곳에 리 태조를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었다는 건 베트남인들이 리 왕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케 해준다.◆베트남 리 왕조 후손 이용상은 왜 고려에 왔을까리 왕조는 216년 동안 베트남을 지배했다. 과거제도를 도입하고, 국립대학을 만들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베트남이 안남(安南)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한 것도 리 왕조였다. 알다시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수확되는 쌀을 ‘안남미(安南米)’라고 부른다.그러나, 어떤 왕조도 흥할 때가 있으면 필연적으로 쇠락의 시기가 있는 법. 리 왕조의 고종 이용한 시대에 들어서며 이반된 민심이 백성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리 왕조의 마지막 왕 혜종(惠宗)을 폐위시키고, 자신의 딸을 왕으로 세우면서 2세기에 걸친 리 왕조의 시대가 저문다.오늘날과 같은 선거의 형식이 아닌 무력을 통해 정권이 바뀌면 무자비한 학살과 숙청이 잇따르는 게 고대 왕국들의 특징. 리 왕조의 혈족들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이용상(李龍祥)은 리 왕조 태조의 7대손. 그는 주변에서 친인척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1226년 일이다. 리 왕조를 주제로 다룬 여러 논문에 따르면 소수의 측근들만을 데리고 망망대해를 떠돌던 이용상이 도착한 곳이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이다.당시 고려의 왕 고종(高宗)은 이용상 일행을 내치지 않고 따스하게 맞이했다. 화산군(花山君)이란 작위(爵位)까지 내렸다.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망명객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은 이용상은 몽골군이 고려를 침탈했을 때 앞장서 싸움으로써 은혜를 깊이 새기고 살았음을 보여주었다. ◆800년 전에도 베트남과의 교류는 빈발했다인하대학교 전임연구원 허인욱은 ‘高宗代 花山 李氏 李龍祥(고종대 화산 이씨 이용상)의 高麗(고려) 정착 관련 기록 검토’라는 논문을 통해 이미 800여 년 전부터 베트남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이와 동시에 이용상에 관한 보다 상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다.“베트남 왕족 출신으로 고려에 정착한 이용상에 관한 이야기는 화산 이씨 집안의 족보에 전한다. 현재 전하는 화산 이씨 집안의 가장 오래된 족보는 1921년에 해주에서 이승재가 간행한 ‘花山李氏世譜’(화산이씨세보)다. 화산 이씨의 시조인 이용상의 베트남 리 왕조 탈출과 고려 정착 등의 내용은 ‘花山君本傳’(화산군본전)에 기재돼 있다. 이용상과 관련한 사실은 1925년의 ‘개벽’과 1928년의 동아일보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일찌감치 알려져 있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이 내용은 고려시대에 베트남과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이와 관련해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조흥국 교수는 한국인과 베트남 사람들의 유사성과 동질성을 언급하며, 다시 한 번 고려로 이주한 리 왕조의 망명객 이용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전략)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유교적 전통에 입각해 가정에 충실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효심이 지극하다.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 이주는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인 13세기 초 베트남의 왕족이 한국에 와서 花山 李氏(화산 이씨)를 창건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화산 이씨의 始祖(시조)인 李龍祥(이용상)이 베트남인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한국과 베트남의 언론과 학계는 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후략)”매우 적은 숫자가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을 피해 타국으로의 이주를 결행했던 이용상을 포함한 리 왕조 사람들.화산 이씨 종친회 이부영 부회장에 따르면 “지금도 한국에 거주하는 화산 이씨는 1천700여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그럼에도 이용상이 고려의 군사들과 함께 원나라 기병대의 말발굽 앞에서도 당당하게 저항했듯, 리 태조와 화산군 이용상의 후예인 이장발도 일본군의 조총과 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봉화 충효당’을 세워줄 정도의 기개였다. ◆이장발의 충효정신 서린 봉화에 베트남마을 조성을충효당이 자리한 봉화는 베트남에 뿌리를 둔 화산 이씨,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베트남과 쉽게 떼놓을 수 없는 고장이다. 그렇기에 ‘베트남마을 조성’은 봉화군의 주요한 숙원사업 가운데 하나였다.이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박현국 봉화군수는 지난해 12월 리 왕조의 태동지인 베트남 박린성 뜨선시와 ‘우호협력 강화 협약서’를 체결했다.이미 몇 년 전부터 봉화군과 뜨선시는 베트남마을 건설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함께 고민해왔다.체결식이 열린 날 항 바 위 뜨선시 인민위원장(한국의 시장격)은 “봉화 베트남마을이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역사적 뿌리를 공감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는 희망을 전했다. 물론 앞으로 전폭적인 협력도 약속했다.이에 박현국 군수는 “베트남마을의 성공적인 조성은 봉화군과 뜨선시의 우의를 다지는 것을 넘어 한국과 베트남의 동반 성장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2020년 이전엔 한 해 200만 명을 넘나드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을 오갔다.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하노이를 여행할 때 리 왕조를 떠올렸을 듯하다.‘코로나19 바이러스’가 꼬리를 감추기 시작한 2023년 봄. 베트남으로 향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늘고 있다.이를 감안해 지난 3일엔 베트남관광총국 응우엔 쭝 칸 총국장이 주한 베트남관광청을 찾았다. 베트남관광청 대표부 관광대사는 화산 이씨 31대손 이창근(베트남 이름 리 쓰엉 깐)씨. 두 사람은 베트남 관광 홍보 활성화 방안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한국과 베트남의 교류는 역사와 관광 외의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봉화군 역시 지난 3월 국내 각지에 거주하는 베트남 다문화인들을 충효당으로 초청했고, 거기서 베트남마을 조성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계속)/홍성식기자 hss@kbmae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에어포항, 우여곡절 겪으며 포항공항에서 사라지다포항의 하늘길 관문인 ‘포항공항’은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활주로 재포장공사 이후 취항 항공사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다.이에 포항시·포항시의회·포항상공회의소·포항지역발전협의회가 국토교통부와 아시아나항공을 방문해 35만여 명이 참가한 경북 동남권 주민들의 서명부를 전달하는 등 항공기 재취항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김포행 대한항공의 재취항에는 성공했지만, 기존 아시아나가 운영하던 제주노선이 없어져 ‘절반의 성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운항횟수 축소, 노선의 단일화, 지속적인 재정지원부담 문제가 매번 발목을 잡자 아예 민자 유치를 통한 지역 저가 항공사 설립으로 돌아섰다.설립 초기, 한중 합자사업 형태로 추진되기로 했으나 당시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관계 악화로 인해 무산된 후, 동화전자가 초기 자금 100억 원을 들여 지난해 2월 7일 포항∼김포 노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항에 나섰다.포항∼제주 노선과 김포∼포항 노선에 편도 총액 1만원이라는 파격적 할인도 운항 초기에 실시하며 이용률이 최고 85.5%에 달하는 등 인기를 얻기도 했다.하지만, 할인기간 이후 책정된 정상 가격이 KTX 요금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고, 사우스웨스트 항공사가 ‘박리다매’정책을 펼치며 잠재 고객들을 발굴하고 유지시켜온 행보와는 달리 에어포항은 그자리에만 머물렀다. 점차적으로 승객이 줄어들었고 최저 이용률이 40.4%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이에 에어포항은 매달 4억∼5억원 가량 적자가 계속적으로 발생했고, 경영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더욱이 에어포항이 보유한 항공기 2대 운행에 적합한 인력 수준이 많아야 90명으로 업계가 분석했지만, 무려 120명을 고용하며 자금압박을 가중시켰다.또한 외부 투자자와 합리적인 회사 경영을 진두지휘할 임원진들의 절반 가량이 군 출신으로 배치돼 있어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할만한 대책도 성사시키지 못했다.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경우, 군 출신들은 대부분이 비행기 조종사에 그쳤고, 경영진과 임원진들은 모두 타 항공업계에서 주목할 만한 실적을 낸 바 있는 ‘검증된 전문경영인’으로 구성됐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이러한 문제점이 중첩되다보니 결국에는 ‘매각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지난해 10월 기존 동화전자에서 신설 소형항공사 법인인 베스트에어라인으로 대주주가 바뀌게 됐다.동화전자 투자분의 15% 정도를 인정하는 조건과 동화전자의 기존 채무 50억 정도를 상환하기로 했고, 직원 고용도 보장해주기로 한 것으로 당시 알려졌다.그러나 이미 ‘곪아있던’ 에어포항의 기존 채무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고 베스트에어라인 측도 결국 기존 직원들을 대거 권고사직 등의 형태로 해고하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급여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직원들이 노동청 등에 소송을 내는 사태로 악화되는 등 회사의 명운이 더욱 암울해져만 갔다.이어 보다못한 경북도와 포항시가 출자지원금 40억원을 에어포항에 지원하려고 했으나 ‘이미 포항공항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은’것으로 알려진 에어포항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끝내, 지난해 12월 1일부터 포항∼김포 노선, 12월 10일부터 포항∼제주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당시 에어포항을 이용하던 시민들의 불편함과 실망감은 컸다.에어포항을 회사 출장용으로 자주 이용하던 한 시민은 “회사와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고 무엇보다도 업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어 자주 애용했다”며 “하지만 무턱대고 이리 운항을 중단해버리는 것은 이용객들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운항 중단 당시, 에어포항(베스트에어라인)은 중단 이유로 비행하던 CRJ-200기종이 지난 2007년부터 생산이 중단돼 정비부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서라고 설명했고, 이후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식기자회견에서 ‘포항 본사 사무실을 철수해 서울로 직원을 집중시키겠다’고 말한 뒤, 보잉 기종의 도입과 새 노선을 준비 중이라며 ‘장밋빛 계획’을 내세웠지만 끝내 실현하지 못했다.에어포항의 재기가 어렵다고 본 포항시도 ‘새로운 지역항공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추가 투자자 등의 확보가 어려워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시는 이에 포항공항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대한항공의 포항∼제주 노선 재운항에 초점을 맞췄고, 지난 9월 16일 이 노선이 운항을 시작했다.그러나 대한항공이 기존에 수익을 내지 못해 시의 재정지원금을 받아온 김포∼포항 노선의 운항을 중단하면서, 포항공항의 온전한 하늘길이 또다시 무산돼 버렸다.□ 포항 지역항공사 다시 취항하나세계 3대 항공사 사우스웨스트(South West)가 자리잡고 있는 미국 텍사스 댈러스는 요즘들어 가장 급부상하고 있는 ‘핫’한 도시다.미 연방 인구조사국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7월부터 2017년 7월 사이 텍사스 주 댈러스 대도시권(댈러스-포트워스-알링턴) 인구는 14만6천238명이 증가하며 전체 인구 740만여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신생아 수(10만 2천423명)가 사망자 수(4만5천826명)을 크게 상회했고, 국내 전입자 수가 전출자보다 5만8천829명 많아 미국내 최고를 기록했으며, 해외 유입 인구도 3만798명에 달했다.댈러스의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교통’편의가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교통 인프라 구축이 뛰어나 기업들이 사업하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기업들이 사업 정착을 하면서 일자리가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고 이에 뒤따른 부가사업도 증가하고 있다.실제로 최근 삼성전자 공장이 댈러스에 위치하면서 한인사회가 떠들썩하기도 했다. 10만명이 웃돈다고 추산되는 한인사회의 규모가 3만명 이상 더욱 늘 것으로 한인사회는 전망하고 있다.한인 김모(43)씨는 “삼성전자 공장이 댈러스에 들어오면서 한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입지 선정에 까다롭기로 알려진 삼성전자의 선택은, 타 유수기업들에서도 반영되는 만큼 댈러스의 발전이 더더욱 기대된다”고 말했다.러브필드 공항의 터줏대감인 ‘사우스웨스트’항공사는 우리나라 포항공항 격인 러브필드 공항에서 오랜 시간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국내 노선을 확장시켜 왔다.‘10분 턴’ 등 빠른 회전율로 특히, 시간이 촉박한 비즈니스맨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이러한 신뢰가 결국 기업들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평가다.댈러스 주민인 KIM(50·여)씨는 “대학생 때부터 사우스웨스트를 애용해왔다”며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노선이 구축돼 지역 교통의 자랑거리이다”고 말했다.사우스웨스트 기장 출신인 빌 콜씨는 ‘에어포항’의 좌초에 대한 얘기를 듣자마자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낭비적인 운영’이었다고 일갈했다.우선, 전문 경영인들과 회계사 등이 구성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최소 노선을 구비하고, 최소 인력으로 ‘여러번’ 운항하는 실리적인 운영방식을 보여야 흑자운영에 접어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흑자운영이 전제돼야 투자자들이 수익을 기대해 추가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선순환’구조가 형성된다고도 했다.빌 콜씨는 “포항 지역항공사가 재부활하려면 우선 시민들 중에서 사업자 등이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나 지자체가 이러한 과정을 도우며 머리를 맞대 작지만 강한 항공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라고 첨언했다.에어부산 측도 마찬가지다.에어부산 관계자는 “우리 에어부산도 초기에 일정부분 자금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황금노선이라 지칭되는 서울∼부산 노선의 성공을 위해 집중했고 이를 토대로 오늘날의 에어부산이 자리잡게 되는 큰 힘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런 가운데, 울릉공항도 올해 말까지 설계공모를 마친 뒤 오는 2023년 공사에 돌입, 2025년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울릉도의 관광 수요는 물론이거니와, 포항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세운 새로운 ‘지역항공사’가 이를 통해 국내 노선 확장을 시도할 수 있어 그 존재 필요성이 다시금 부각된다는 것이 업계 전현직 관계자들의 평가다.특히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비행시간이 1시간 정도로 짧고, 최소 6∼7시간이 걸리는 등 육지와 연결되기 위한 시간과 비용 모두 단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어 ‘황금노선’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2019-11-13
□ 12년간 에어부산이 걸어온 길에어부산은 지난 2007년 8월, 부산시와 부산 지역 상공계가 힘을 합쳐 부산국제항공으로 처음 출범했다. 이후 2008년 2월,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 참여를 통해 에어부산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재출범했다. 에어부산은 지역의 항공교통 편의 증진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지역 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2008년 10월 27일, 부산∼김포 노선으로 첫 취항했다. 당시 항공기 2대, 임직원 수는 100명이 채 되지 않는 항공사였다. 포항의 지역항공사였던 에어포항과 비슷한 규모였다. 하지만 취항 초부터 일관되게 회사의 핵심가치인 안전성·편리성·경제성을 잘 지켜가며 운영해온 결과, 2019년 현재 26대의 항공기, 국내외 39개 노선, 1천400명이 넘는 임직원이 근무하는 LCC 대표 항공사로 거듭났다. 특히 취항 첫해인 2008년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 점유율이 1.4%에 불과했지만 6년 만인 2014년에 점유율 34.5%를 기록하며 대형 항공사를 제치고 김해국제공항 이용객 1위 항공사로 등극했다. 현재는 김해공항과 대구공항에서 총 32%의 이용객 점유율을 차지해 명실상부 영남권 제1항공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 하늘길 확장의 일등공신, 에어부산지역의 항공 교통 편의 증진을 사명으로 출범한 에어부산은 2008년 부산∼김포 노선 취항 후 지속적으로 지역의 하늘길을 넓혀왔으며, 현재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승객 중 가장 많은 승객이 에어부산을 이용하고 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는 가까운 해외 지역의 직항 노선이 없어 인천공항까지 가서 항공편을 이용해야만 했다. 일반대중교통수단은 수도권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유독 항공편만은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에 비해 노선 수나 운항횟수가 매우 적었다. 이러한 열세는 지역민들이 인천공항까지 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 가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에어부산의 설립 목적 중 또다른 한 가지였다.에어부산은 현재 국내 7개, 국제 32개 등 총 39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초창기 당시에는 인기 노선이 아니었던 부산∼타이베이, 부산∼마카오 노선 등 신규 노선을 발굴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현재와 같은 인기 노선으로 만들었다. 또한 기존 대형항공사의 인천발 독점 노선이었던 몽골 울란바토르 노선에 어렵게 진입해 승객들의 선택폭을 넓혔으며, 대만 가오슝, 중국 시안 노선 등 부산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노선도 적극적으로 개발·취항해 새로운 여행 수요를 창출했다.한국공항공사의 항공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은 약 1천700만 명으로 본격적으로 이용객 수가 증가한 2010년과 비교해 약 900만 명이 증가했다. 지난해 에어부산의 이용객은 600만여 명으로 2010년 대비 약 400만 명 증가했다. 김해공항 이용객 증가분의 절반 수준인 44% 이상을 담당하며 김해공항 전체 이용객 증가를 이끈 것이다.특히 에어부산이 국제선을 첫 취항한 2010년 이후의 전체 이용객 수 증가 추이와 김해국제공항 전체 이용객 수의 증가 추이가 같은 증가폭을 보이는 점을 감안해보면, 김해국제공항의 이용객 및 항공수요 증대의 일등공신이 바로 에어부산임을 알 수 있다.□ 에어부산의 성공 비결에어부산에는 독특한 이벤트도 있다. 7년째 ‘웃음 전용기’행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 이는 사우스웨스트의 직원 및 고객들의 웃음 유도 이벤트와도 흡사 닮아있다.올해는 코미디언 변기수와 오나미가 일일 승무원으로서 참여해 기내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이 행사는 매년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에어부산의 대표적인 행사이기도 하다. 코미디언들의 유쾌한 입담과 기내방송을 진행하며 이용객들의 웃음을 자아내 ‘타면 즐거운’ 에어부산의 이미지 창출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음료 제공과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공연 관람 티켓 증정, 에어부산 굿즈 등 경품 추첨 이벤트도 에어부산에서만 이뤄지는 진풍경이다. 에어부산의 승무원들이 직접 야구장에 등장해 시구를 하는 행사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야구 경기 관람시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평소 기내 안전방송을 하듯이 안내하는 색다른 장면도 연출됐다.지역민들과 소통하는 퍼포먼스의 개발을 통해 에어부산을 알림과 동시에, 향후 국내외 노선 개척시 잠재 이용고객을 미리 선점하는 기대효과도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마케팅 효과가 에어부산의 탑승 자체의 매력을 전달해 이용객들로부터의 좋은 반응도 얻고 있다.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의 ‘2018년 항공교통서비스 평가’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에어부산은 ‘예약 및 발권의 용이성’과 ‘탑승 수속의 용이성’, ‘정보제공의 적절성’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이며 이용자 만족도 1위에 올라섰다.이러한 성과와 더불어, 에어부산은 부산지역 사람들의 애향심을 크게 자극하는 이미지인 ‘부산 갈매기’모양을 로고로 사용해 일명 ‘끼룩이네’라는 애칭으로도 불리고 있다.“항공사 규모·조건 맞는 틈새노선 발굴 중요해”인터뷰 ▶▶ 박진우 에어부산 홍보팀 과장-에어부산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에어부산은 지난 2007년 부산국제항공으로 창립됐다. 부산시와 부산상공계 기업체들이 십시일반해 투자금을 모아 시작했다. 특히 신정택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 에어부산의 산파 역할을 함과 동시에 부산시와의 가교 역할, 아시아나 기업 유치 등 혁혁한 도움을 주셨다. 사우스웨스트의 ‘허브 켈러허’와 비슷한 역할을 하셨다. 이후 2008년 2월 아시아나가 대주주로 참여했고 이때 ‘에어부산’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같은해 10월 비행기 2대로 부산∼김포 노선을 취항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LCC 항공사 운영의 애로사항은.△LCC가 안전하지 않다는 막연한 인식을 타파하는 것이 선행 과제였다. 이에 안전 관련 투자에 초기 역량을 집중했다. 기존 대형항공사로부터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영업과 계약부분 등 지역 여행사들이 에어부산과의 관계를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하는 ‘텃세’가 존재했다. 또한 운항승무원을 채용해 양성하면 일부를 대형항공사에서 빼가기도 했다.-에어부산을 자랑한다면.△가장 안전한 항공사이자 정부로부터도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LCC 항공사가 ‘에어부산’이라고 자부한다. 국내 3대 서비스 평가기관에서도 LCC 중 유일하게 최고 7년 연속 등 1위를 계속 선점하고 있다. 안전에서도 검증됐고 지역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항공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특히 부산지역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일반사무직 인원의 70%가 지역 출신으로 구성돼 있고 올해로 12년째인 에어부산은 직원수 기준으로 부산 기업 중 6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포항 거점 LCC 항공사 설립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에어부산은 2014년부터 대한항공을 제치고 김해공항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이 과정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우리 역시 대형항공사뿐만 아니라 KTX·SRT 등과도 경쟁해야 했다. 이에 출장 수요가 많은 점에 착안해 신속하면서도 안전에 대한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에 주력했다.항공사는 또한 자본금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하는데, 포항에서도 주요 대기업·중소기업들이 십시일반해 지역 하늘길 창출에 도움을 주는 방식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넉넉한 자본금은 곧 안전과 서비스로의 투자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토부에서도 최근 신규 LCC 항공사 면허 발급시에도 자본금 헤드라인을 따로 정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지역항공사 설립을 준비하는 포항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각 지역에 맞는 항공사는 그 존재가치가 분명하다. 유럽의 경우, 소형항공기를 운항하는 지역항공사가 많이 있다. 포항지역에 맞는 노선을 우선 검토해야 하고, 울릉공항이 신설되는 것을 대비해 울릉 노선도 고려해 볼만하다. 무조건 특정 노선을 고집하기보단 항공사 규모와 조건에 맞는 틈새노선을 발굴해 특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2019-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