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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기어의 필요성

등록일 2025-12-17 14:27 게재일 2025-12-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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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고…/챗GPT

마피아게임이라는 놀이가 있다. 사회자가 참가 인원 중 몇 명을 마피아로 지목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선량한 시민들 사이에 숨어든다. 선량한 시민들은 회의를 통해 의심 가는 사람을 마피아로 지목하고 투표로 그의 생사를 결정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피아를 모두 색출해내면 선량한 시민이 승리하고, 마피아는 잡지 못한 채 선량한 시민만 죽이다 보면 마피아가 승리하는 놀이다. 

 

이 놀이에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다. 선량한 시민들이 누군가를 마피아로 지목하면 투표 이전에 최후의 변론 시간을 준다는 점이다. 지목된 사람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선량한 시민임을 주장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선량한 시민들의 판단은 반드시 그 변론이 끝난 뒤에 이루어진다. 선량한 시민이 선량한 시민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행여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억울함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 지목된 사람의 주장 또한 귀 기울여 듣는 것. 시민의 선량함은 거기서 나온다.

한 해가 다 끝나가는 이 시점에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학교폭력, 갑질, 연애스캔들 등등 다양한 이유로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매체들은 보통 톱스타 A씨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거나, 그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그것이 모두 사실인지, 아니면 일부만 사실이거나 아예 사실무근인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유보된다. 그러나 일단 그런 기사가 올라오면 당사자는 대중들의 강력한 비난과 질타를 마주해야 한다. 

 

많은 대중들이 그러한 기사 속 의혹과 제보, 주장 같은 것들을 빠르게 사실로 받아들이는 탓이다. 물론 정말로 그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흔하기는 하다. 그러나 때로는 최초의 의혹 중 일부 혹은 전부가 왜곡된 것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사실을 바로 잡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고 작성되더라도 의혹을 제기했던 그 기사에 비하면 훨씬 주목을 덜 받게 되곤 한다. 당사자의 억울함이나 손해는 끝내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 대중은 다소 섣부르게 의혹과 주장을 받아들이고 비난부터 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향해 비난의 스탠스를 취하고 그러한 의도를 담아 댓글 하나 달고 게시물 하나 올리는 것이 별로 심각한 것이라고 인지하지 않는 탓이 있을 것이다. 내가 쓴 몇 마디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질 리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하나가 다른 비난을 부르고 또 그것이 다른 비난을 불러 결국 당사자는 눈덩이처럼 커다란 비난을 마주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태도 탓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글을 다시 게시하거나 자신이 던진 비난의 화살을 거두어들이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비난은 그대로 거기 남아있게 된다.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는 우리가 누군가가 스캔들에 휘말리고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보며 묘한 쾌감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것이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떤 유명인이나, 심지어 별 관심도 없었던 누군가가 그렇게 되는 과정을 보며 알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던 적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한 경험은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사실이기를 바라게 만들고, 또 끝내 그것이 사실이라 믿게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가끔 요즘 언어로 ‘일단 중립기어 박는다’는 댓글을 마주하면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 말은 아직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우니 중립의 태도를 취하겠다는 뜻이다. 득달같이 달라들어 재빠르게 비난의 화살을 쏘지 않아도 언론이 움직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것이다. 법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면 그 결론을 기다린 뒤에 나의 의견을 정리해도 늦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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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시인

무엇보다 우리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고, 그 중에는 당연히 당사자의 이야기도 포함된다.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지, 아니면 억울함을 호소하는지 들어보고 그 이야기의 신빙성을 따져보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마피아게임 같은 걸 할 때도 최후의 변론을 할 기회를 주는데,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면 그 정도 시간은 할애할 수 있지 않을까.

죄 지은 모든 이들이 그에 합당한 벌을 받기를 바란다.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은 비난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적절한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억울한 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수천 명의 죄를 밝혀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선량한 시민이기에.
/강백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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