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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떴다방

등록일 2026-01-15 16:23 게재일 2026-01-1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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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연일 올라오는 ChatGPT교육, 사전 상품 홍보가 예정된 교육이었지만 수준 있는 강의를 기대하며 행사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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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tGPT 교육 홍보 이미지. 

SNS를 살피다 요즘 부쩍 눈에 띄는 교육 광고를 만났다. 망설임 끝에 상세 내용을 클릭하니, 본 교육에 앞서 상품 홍보가 진행된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오래전 비슷한 강의에서 홍보 뒤에 이어졌던 훌륭한 강연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만 정신 차리면 된다’라는 다짐을 방패 삼아 참가 신청을 했다.

교육 당일, 넓은 교육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다들 나처럼 ChatGPT에 관심이 있어 모인 모양이었다. 연령층은 다양했고 차림새들도 말끔했다.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늘씬한 몸매에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아나운서가 무대로 나오더니, 본 교육에 앞서 70분간 상조 상품 홍보를 시작했다. 호기로웠던 나의 다짐은 유명 브랜드의 특전과 크루즈 여행이라는 달콤한 유혹 앞에 이내 무너졌다. 홀린 듯 세 계좌를 계약하며 가입서를 쓰던 찰나, 잊고 있던 친정엄마의 얼굴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엄마의 칠십 대 후반, 동네마다 ‘홍보관’이 유행이었다. 노인들을 불러 모아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우고 생필품을 나눠주던 그곳에 시어머니와 엄마도 매일 얼굴도장을 찍으셨다. 시어머니는 어쩌다 휴지 한 묶음을 받아오는 것에 만족하셨지만, 엄마는 달랐다. 인덕션과 세라믹 주방용품 등 고가의 제품과 건강식품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가족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쓰지도 않을 물건이 방 한쪽에 잔뜩 쌓여가는 것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쓰지도 않을 걸 왜 자꾸 사 모으냐고 엄마를 다그쳤다.

엄마는 그 사람들이 살뜰히 챙겨주는 게 고마워서 사 주는 것이라 했다. 홍보관에 들어서면 “엄마, 엄마”라고 반갑게 맞아주고, 안아주고 업어주기까지 하는데 너희가 언제 나한테 그래봤느냐고 되물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의 외로움을 살피지 못했던 자식들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이름도 생소한 업체에 120만 원이라는 목돈을 내고 상조까지 가입하셨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연락해 보았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즉시 찾아간 홍보관은 이미 철수한 상태였다. 인터넷 어디에도 그런 회사는 없었다. 사기였다. 그동안 사 모은 물건값이 천만 원을 훌쩍 넘긴 데다 상조 사기까지 당한 엄마에게, 나는 어른이 어떻게 그런 사기를 당하느냐고 몰아세웠다. 어린 동생을 나무라듯 소리치는 내 옆에서 엄마는 소리 없이 울기만 하셨다. 믿었던 그들에 대한 엄마의 배신감과 상실감을 나는 차마 살피지 못했다.

이른바 ‘떴다방’이라 불리는 수법은 지금도 여전히 노인들의 외로움과 친절에 대한 갈망을 미끼 삼아 물건을 팔고 가족 사이를 갈라놓는다. 교육을 빌미로 상품을 홍보하는 지금의 방식이 그때의 떴다방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현장 특전을 강조하며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부추기는 진행자의 말에 휩쓸려 세 계좌나 가입한 나처럼, 엄마 역시 그 순간 가입하지 않으면 큰 손해라고 믿었을 것이다.

자신의 가입으로 그 사람에게 조금의 이익이라도 돌아가기를 바랐을 엄마의 심정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뻔한 속임수에 넘어갔다고 기어코 울음을 터뜨릴 때까지 마구 다그치던 그때가 후회스럽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맡기고도 쥐꼬리만 한 용돈만 쥐여주던 못난 딸. 이제 혼자 있는 날이면 나도 엄마처럼 외로움에 몸을 떤다. 엄마의 당혹스러웠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홀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서 좌중을 휘어잡는 진행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상조 가입신청서를 쓰고 있는 지금에야 나는 자식들의 무관심에 쓸쓸했을 그때의 엄마를 다시 만난다.

/손정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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