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성기라는 이름이 남긴 것

등록일 2026-01-15 16:24 게재일 2026-01-16 12면
스크랩버튼
Second alt text
서울 명동성당.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며 한국 천주교회의 상징인 이곳에서 안성기 배우는 장례미사를 마치고 영면에 들었다.

안성기라는 이름 앞에서 문득 하던 일을 멈춘다. 그의 빈소가 마련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나본 적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지인을 떠나보내는 듯 마음 한켠에 먹먹함이 인다. 영화 ‘겨울나그네’ 속 현태(안성기 분) 얼굴이 불현 듯 스쳐 지나간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고 나설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하게 정리되곤 했다. 그것은 영화의 결말이나 연기의 기교 때문이라기보다 그 배우가 지닌 삶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묘한 안도감을 주던 그 편안함이 그를 ‘국민배우’로 만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 들어 유년 시절부터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통해 친숙한 이들의 부고가 잦다. 그들이 스크린에서 울고 웃던 시간은 우리가 숨 고르기 하며 살아 온 삶의 시간과 겹쳐있다. 함께한 세월 속에서 이들은 대중의 삶에 배경음악 같은 존재들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음에도 이들의 이름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넘어 살아 온 시간의 일부가 말없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게 한다. 안성기의 소식이 특히 그러하다.

한 연예인의 소식이 이토록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개인에 대한 애도를 넘어 오랫동안 믿어왔던 묵직한 안정감이 사라지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전쟁과 분열, 경제의 흔들림 그리고 서로를 향한 날 선 말들. 오르지 않은 것이 없는 물가 앞에서 마트 카트에 물건 하나 담는 일조차 망설여지는 요즘이다. 평안함보다 불안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믿음을 주는 얼굴을 찾는다. 안성기는 그런 존재였다.

영웅을 연기해도 요란하지 않았고 평범한 인물을 연기해도 초라하지 않았던 배우.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은 늘 ‘그래도 세상은 아직 견딜만하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이웃처럼 편안했던 사람. 그는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물다 떠났다.

대중의 삶에 또 하나의 배경음악 같은 존재, 가수 조용필은 죽마고우였던 그가 영면에 든 날도 콘서트 무대에 오른다. 고인의 애창곡이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며 세상과의 약속을 지킨다. 요란한 애도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60년 우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그래서 더 먹먹하다.

스크린 밖에서의 그의 모습은 생전 아들에게 쓴 편지글에서 드러난다.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넓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이 글은 아들에게만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남긴 말이 되었다. 그 가르침이 헛되지 않아 그가 남긴 적지 않은 재산을 유족들이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했다는 놀라운 소식은 훈훈함 속에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렀다는 서울 명동성당. ‘겨울나그네’의 현태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장례미사는 이미 끝났지만 그의 온기가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만 같아 그곳을 찾는다. 한참을 그렇게 서성거려 본다. 요란하지 않게 책임을 다하고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가장 필요한 자리에 머무는 것. 우리가 안성기라는 이름에서 배워 온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어쩌면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국민배우 안성기. 그의 이름 앞에서 조용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귀상 시민기자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이미지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