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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는 잉카의 삶을 노래한다

등록일 2026-02-04 08:56 게재일 2026-02-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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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계곡 유적지. /필자 제공

쿠스코에 머무는 동안, 나는 거의 매일같이 아르마스 광장을 찾았다. 여행자의 발길이 이곳으로 향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 광장은 잉카와 스페인 시대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쿠스코의 심장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관광객들의 활기찬 이야기가 넘실대고, 해가 저물면 돌바닥 위로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광장 주변에는 수많은 여행사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뒤섞인 활발한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마추픽추행 교통편, 가격, 일정을 꼼꼼히 비교한다. 정보는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선택지는 다양하다. 하지만 여행은 정보만으로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랬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던 중, 우연히 아르마스 광장 근처의 한인 민박을 소개받았다.

숙소 주인장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녀는 어쩌다 이 먼 타국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곳 사람들과 삶을 나누게 되었을까? 그녀의 이야기는 잉카의 돌담처럼 견고하고, 안데스의 바람처럼 끈질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분명한 것은 마추픽추를 향한 여정에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사실이었다. 지도보다 정확한 것은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이었고, 검색보다 깊은 것은 그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나는 광장에서 출발하여 12인승 밴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성스러운 계곡’과 ‘모라이’였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한 차에 함께 탔다. 서로 다른 언어와 삶의 궤적을 지닌 그들이었지만, 좁은 길 위에서 우리는 금세 하나가 되었다. 더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무엇보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은 모두 같았기 때문이리라.

밴이 안데스의 굽이진 산길을 따라 힘겹게 오르는 동안,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모건 하우절의 저서 ‘불변의 법칙(Same as Ever)’에서 언급했듯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다. 시대는 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서 끊임없이 자문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에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해답을 제시하는 듯했다. 잉카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강의 흐름을 존중하며, 산의 능선을 따라 건축물을 지었다. 이곳의 유적은 화려함보다는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웅변하고 있었다. 정교한 석축 기술은 예술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리고 정복이 아닌 공존, 속도가 아닌 지속 가능한 발전. 수백 년 전의 현명한 선택이 오늘날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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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이 원형 식물 경작 실험장. /필자 제공 

마라스 염전을 지나 도착한 모라이(Moray)는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거대한 원형 계단식 구조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잉카 시대의 첨단 농업 실험장이었다고 한다. 고도와 기온, 바람의 미묘한 차이를 층층이 계산하여 다양한 작물을 시험 재배했던 혁신적인 장소였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장면 앞에서 오랫동안 발길을 멈추었다. 이 놀라운 유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찰과 수많은 실험의 숭고한 결과물이었다. 인간은 시대를 초월하여, 결국 동일한 방식으로 배우고 성장한다는 심오한 진리를 이곳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모라이의 거대한 원형 계단 앞에 서 있노라면, 종종 로마의 웅장한 원형 경기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닮은 점은 단지 원형이라는 형태뿐이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 권력과 통제, 그리고 대중의 맹목적인 열광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모라이는 침묵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미래를 차분히 준비하던 지혜로운 성찰의 공간이었다. 겉모습은 같을지라도,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정반대였다.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유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메시지다. 문명은 과연 무엇을 위해 공간을 창조하는가? 이 묵직한 질문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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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국 세종대 명예교수

해 질 무렵 다시 쿠스코로 돌아온 나는, 익숙한 아르마스 광장을 천천히 거닐었다. 아침의 설렘으로 가득했던 출발점은, 이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부드러운 바람은 속삭이는 듯했다. 덧없이 사라지는 문명 속에서도, 삶의 지혜로운 방식은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이제 나의 다음 여정은 신비로운 티티카카 호수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성스러운 호수, 신화와 현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그곳에서, 잉카 문명은 또 어떤 심오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줄까? 다시 한번, 단순한 유적 ‘관람’이 아닌 깊은 사색을 즐기는 특별한 여행이 시작될 것이다.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찬 가슴으로, 다가올 여정을 간절히 기다린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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