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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이슈) “평당 30만원 산골 땅값, 귀농은 꿈인가”… 경자유전의 칼날, 농촌을 흔들다

임창희 기자
등록일 2026-03-03 17:14 게재일 2026-03-0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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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농촌의 한 산골짜기. 농로조차 변변히 나지 않은 비탈 밭이 최근 평당 20만~30만 원에 거래됐다는 소식에 인근 농민들은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이 값에 땅 사서 콩 심고 고추 심으면 평생 원금도 못 뽑습니다. 농지가 아니라 그냥 돈이죠.” 30년째 밭을 일궈온 60대 농민의 말은 지금 농촌의 왜곡된 현실을 압축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농지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산골짜기에 버려지다시피 한 땅값조차 귀농을 막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농지 전수조사와 강제 매각명령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농지를 더 이상 투기의 안전지대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번 전수조사는 농지 투기를 차단하고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하도록 하겠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3월 중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과거 일부 필지를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와 달리, 사상 처음으로 전국 모든 농지를 대상으로 하는 종합 실태조사라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대통령이 국무회의 등에서 농지 투기 방지를 위한 관리 강화와 위법 행위에 대한 엄정 처분을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정부가 근거로 내세운 것은 헌법 제121조의 경자유전 원칙이다. 농사는 짓는 사람이 땅을 가져야 한다는 대원칙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외지인이 형식적인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 농지를 취득한 뒤 실제 경작은 하지 않고 지가 상승만 노리는 사례가 누적돼 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농막 설치 후 주말 체류, 사실상 세컨드하우스처럼 활용하는 편법도 성행했다.

이번 조사에서 집중적으로 확인할 사항은 불법 임대, 무단 휴경, 농지 소유·거래·이용·전용 전반이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농지,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외지인이 취득한 농지, 실제 농업경영 여부가 불투명한 사례가 주요 타깃으로 꼽힌다. 개발 예정지나 산업단지 배후지 등 지가 상승 기대가 선반영된 지역 역시 중점 점검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투기 개연성이 높은 지점을 선별해 들여다보는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세제·금융·행정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발표된 ‘2026 부동산 시장 안정화 방안’과 보조를 맞춰 농지 거래에도 자금조달계획서 검증, 토지 이용 실태 점검, 이행강제금 부과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적용할 방침이다. 대통령의 “투기용 보유는 하나 마나 한 일로 만들겠다”는 발언은 보유세 강화와 처분 명령 실효성 확보까지 염두에 둔 메시지로 읽힌다.

제도 개선 방안도 함께 검토 중이다. 현재는 위법 적발 후 실제 처분 명령까지 최대 4~5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부는 절차를 단축해 처분 속도를 높이고, 투기 목적이 명확할 경우 유예 기간 없이 즉시 강제 처분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처분 의무가 발생하면 묘목을 심거나 형식적 경작을 하는 방식으로 단속을 피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모니터링 횟수를 늘리고 실경작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행 법규상 농업에 이용하지 않는 농지는 1년 이내 처분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자체장이 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다만 상속 농지, 8년 이상 농업에 종사한 후 중단한 경우, 주말·체험 영농 목적 등은 예외적으로 소유가 인정된다. 문제는 이 예외 조항을 악용한 편법 소유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복잡하다. 투기 억제라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정책 충격이 선량한 농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문제는 농지 가격 급락 가능성이다.

고령 농민 상당수는 농지를 담보로 한 농지연금에 의지해 노후를 버틴다. 연금 수령액은 공시지가와 감정평가액에 연동된다. 전수조사와 매각 압박으로 지가가 하락하면 담보 가치가 낮아지고, 이는 곧 월 수령액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평생 일군 땅이 마지막 안전망이었던 농민에게 자산 가치 하락은 생계 위협으로 직결된다.

금융권 파장도 배제할 수 없다. 농민들은 영농 자금 확보를 위해 농지를 담보로 대출을 이용한다. 거래가 위축되고 가격이 떨어지면 담보 비율 조정 요구나 추가 상환 압박이 현실화될 수 있다. 지역 금융기관의 건전성 관리 강화는 곧 농가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시장 기능 마비 우려도 제기된다. 강제 매각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질 경우 매수자는 관망하고 매물만 쌓이는 ‘거래 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인구 감소가 심각한 산간 지역은 실수요 기반 자체가 약하다. 투기 수요를 걷어낸 뒤 대체 수요를 마련하지 못하면 농지는 사실상 매매가 멈춘 ‘동결 자산’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농지 실태조사에서는 7722명이 적발됐고, 위반 면적은 여의도 3배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그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되는 만큼 상당수 위법 사례가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투기 목적 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재산권 침해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단속과 보호를 병행하는 정교한 접근을 주문한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나 도시개발 예정지 등 투기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강도 높게 점검하되, 생계형·자경 농지에 대해서는 차등 적용과 충분한 소명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이 매입해 청년·귀농인에게 장기 임대하는 농지은행 기능 강화 역시 병행 과제로 제시된다.

농촌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농지는 단순한 투자 상품이 아니다. 투기를 방치하면 귀농의 길은 더 좁아지고, 투기를 잡겠다며 시장을 급랭시키면 농가의 삶이 흔들린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정책 의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칼날이 진짜 투기 세력을 겨누는 데 그칠지, 아니면 선의의 농민까지 베어낼지는 향후 집행의 정밀도에 달려 있다.

/임창희 선임기자 lch860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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