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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추희가 여무는 집

친구네 집은 보물섬이다. 방문을 열 때마다 내가 처음 보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자개농은 언뜻 보면 무늬가 단순해 만들기 쉬워 보이나 나무에 그냥 자개를 붙여 볼록하게 완성하는 것과 다르게 나무에 미리 여러 모양으로 파내고 자개를 박아서 만든 수공이 많이 든 명품이다. 부엌 찬장에 12인조 양식기도 볼만했다. 그릇 모양도 특이하지만 12명의 재떨이까지 갖추어져 구성 자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나씩 꺼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30년 지기 친구 친정에 오랜만에 놀러 갔다. 외벽에 조그만 타일을 붙인 그 시절엔 잘 지었다고 소문이 났을 법한 이 층 양옥집이다. 거실에는 윗 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있어서, 홈드레스를 입은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우아하게 걸어 내려올 것만 같은 전형적인 부잣집이었다.방에는 내가 제일 궁금해한 물건이 놓였다. 창고 깊숙이 있던 것을 딸 친구가 보고 싶다는 말에 꺼내서 말끔하게 닦아 놓으셨다. 혜경이 아버지 딸 사랑은 예전부터 유별났다. 30년 전에도 같이 근무하던 유치원 앞까지 매일 태워다 주고 퇴근 시간에 맞춰 또 데리러 오셨다. 아버지와 데면데면한 나로서는 그런 모습이 무척 부러웠다. 딸의 말이라면 어디선가 달려오는 우주 소년 짱가처럼 든든한 아버지였다. 아니 아빠였다. 혜경인 그때도 지금도 아빠라 부른다.2층방 층고(層高)가 이렇게 낮았던가. 오래된 형광등이 한쪽 눈을 껌뻑거리자 ‘아빠~’ 하는 외마디에 금방 손봐주셨다.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침을 떼는 형광등. 그 불빛 아래 장 하나가 놓였다. 빠알간 색깔의 자태가 곱다 못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다. 반닫이 같기도 한데 두 짝의 문을 열면 변신로봇처럼 다른 모습이 된다. 재봉틀이었다. 발판을 밟아 재봉질을 하니 손으로 돌리는 앉은뱅이 보다 편한 물건이었다고 자랑을 하셨다.오른쪽 문짝을 여니 서랍이 네 개가 있다. 조그만 서랍 안에 까마득한 이 집의 옛날이야기가 가득했다. 첫 번째 서랍엔 재봉틀에 쓰이는 북과 실, 누군가의 옷을 만들다 남은 천 조각과 크기가 다른 단추들이 가득했다. 두 번째 서랍을 여니 재봉틀의 출생 증명서가 나왔다. ‘드레스 스윙 머신’ 이라고 영어로 써진 이름과 한자로 동양 미싱 주식회사에서 만들었다고 직인이 찍혔다. 뒷면에는 품질보증서 같기도 한 말들이 영어로 적혔다. 그 밑에 또 하나의 설명서가 있었다. KS 인증마크가 붙은 ‘하이콜드냉장고’에 관한 것이었다.김순희수필가다음 서랍엔 올림푸스 카메라 뚜껑이, 뽀빠이가 그려진 동그란 딱지 하나가 나왔다. 별이 일곱 개 있고 923765 숫자까지, 그때는 그 하나하나가 친구 딱지를 이기기 위해 다 쓸모가 있던 것들이었다. 아마 혜경이 동생의 소중한 기억이 담겨있을 추억의 기록이다.빨간 몸체에 하얀 자개를 박아 넣은 재봉틀이다. 누구네 집에서도 못 본 때깔이라 탐나는 물건이었다. 하도 이뻐서 눈을 못 떼는 나와 다르게 혜경인 관심도 없어 보였다. 집안 가득 오래된 물건이 가득해서 늘 보던 거라 그런 듯하다. 저 재봉틀로 포대기를 만들어 친구를 업었다며 그 시절 이야기를 한없이 들려주시는 어머니와 딸 친구가 궁금해하는 구석구석 열어 보여주시는 아버님의 그 손길이 따뜻해서 참 좋았다.한참을 집구경을 끝내고 나오자 늦자두 한 봉지를 건네신다. 추희였다. 몇 해 전 혜경이가 자두 하나를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고 앞뜰에 심은 자두나무가 올해 첫 열매를 거두었다고 담아 주셨다. 따님 주시지했더니, 옆에선 혜경이는 그날 내가 배가 고팠었는지 우연히 맛있게 먹었을 뿐 신맛이 나서 싫다고 손사래를 친다. 딸의 스쳐 지나는 모습도 놓치지 않고 나무를 키워 열매를 먹이려는 부모님의 사랑이 붉게 익어서 나에게까지 당도했다.오래된 물건들도 새것처럼 닦으며 사는 친구네 부모님이 저 이층집에 오래 머물길 기도했다. 주신 자두를 한 입 깨무니 달콤한 향이 입속 가득 퍼진다.

2020-09-06

의사를 다치게 하면 재물손괴죄?

박화진지킴랩 기업탐정본부장전 경북지방경찰청장“정부미였습니다.”, “??? 아! 예”퇴직 후 이전에 어떤 일을 했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답과 상대의 반응이다. 큰 장애 없이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의사소통이 이뤄진다.70년대 단군 이래 숙업이었던 식량자급의 기치를 내걸고 정부가 야심차게 개발한 다수확 품종 쌀, 통일벼라는 이름을 가진 작물이 있었다. 일반벼보다 수확량이 40% 더 많아서 정부에서 강권하다시피 재배하게 했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국민들의 식량난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정부에서 재배를 권장했기에 정부미라 불렸다. 절대 양은 늘었는데 질적인 문제까지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다. 찰기가 적어 맛이 떨어지고 볏짚도 사료용과 연료용 이외에는 큰 쓸모가 없었다고 한다. 배고픔 벗어나기엔 성공했지만 농민들의 재배 선호도는 낮았다. ‘정부미’는 기초수급자 및 재난 구호목적과 국공립시설 등에 제공되는 비축재다. 통일벼가 정부미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곡물 과잉 공급의 원흉이 되어 통일벼는 생을 마감했다.정부미는 공무원들을 부르는 또 다른 유품으로 살아남았다. 일반인보다 못하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는 공무원들의 자기 비하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공직자도 사람인데 정부의 비축 재물로 부르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공무원 스스로 정부미라고 부른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 그런 직업의 별칭에 대해 반감을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는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군림하려는 공무원에 대한 불만을 대리 해소시켜주는 말로써 다소 속 풀리는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떤 명분으로도 사람을 재물로 부르는 것은 천부인권의 지고지순한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사람이 먼저다’는 수사(修辭)가 넘쳐나는 시대다. 사람이 최우선이라는 말이다 어떤 것으로도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는 함의도 갖고 있다. 최근 정부 고위 공직자가 ‘의사는 공공재’라는 말을 했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울고 싶은 데 뺨 때린 격으로 의사들의 파업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앞으로 사직당국에서는 의사에게 상해를 입히면 재물손괴죄로 단죄해야 할 것 같다. 고위 공직자의 사람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어서 더욱 문제의 심각성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의 공공적 성격을 잘못 표현한 것이라고 특급 소방수가 투입됐지만 이미 반 이상 건물이 탄 뒤 출동한 모양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어휘선택은 파장효과를 감안하면 언제나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한다. 파리와 공통점을 가진 사람이 그들일 수 있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두 집단 모두 잘못하다가 신문지에 맞아 죽는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둘둘 말린 신문지에 맞아죽는 파리처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경솔한 말로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되면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을 맞이한다는 것이다.‘정부미는 역시 영양가 없는 거야!’라는 말에 ‘맞아! 우리는 정부 비축재지’라며 기분 좋게 맞장구치겠는가? 감정이 이성을 앞서게 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 이치다.“신중하자 정부미여!” 일찍 품절된 선배 정부미가 꼰대질 한번 해본다.

2020-09-06

코로나 그리고 자녀 양육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코로나가 확산되면서 교육기관이 문을 닫아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들이 감염병에 대한 공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감, 가족들과 부대끼면서 겪는 스트레스, 불규칙한 생활 등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WHO(세계보건기구)와 UNICEF는 코로나 상황에서 부모역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 몇 가지를 뽑아 본 지면에서 소개하고자 한다.먼저, 불안, 공포, 두려움, 걱정은 우리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이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혹시 아이들이 감염병을 두려워 하거나 걱정한다면 공감해주자.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들이 퇴행 행동을 보이더라도 부정적인 행동보다는 사소하더라도 잘한 행동에 초점을 두어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행동에 관심을 두고 칭찬한다면 놀랍게도 더 잘하려는 아이들의 노력을 보게 될 것이다.아이들이 코로나에 대해 질문을 할 때, 섣불리 불확실한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어른도 모르는 정보가 있음을 인정하고 함께 정보를 찾아보아야 한다. 온라인상에는 부정확한 정보가 많으며 오직 감염병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집에만 머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아이들이 SNS나 화상통화, 게임 등으로 친지와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경감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규칙적인 하루 일과가 필요하다. 일과를 계획할 때 아이들이 자신이 할 일을 선택하도록 하자. 손 씻기도 놀이처럼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 동안 손으로 얼굴을 자주 만지는 사람을 찾기나 노래 부르면서 손 씻기 등 방역을 놀이처럼 접근해 아이들 일상의 일부가 되도록 지원할 것을 권한다.코로나는 피부 색, 인종,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며 코로나 감염환자를 따돌리거나 증오하기 보다는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설명해 주자. 혹시 몸이 아파서 집에 머물거나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면 집에 머물거나 입원하는 것이 자신과 친구를 지킬 수 있는 안전한 방법임을 설명하고 안심시켜야 한다.무엇보다도,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부모도 한계를 가진 인간인지라 피곤하거나 예민해진 상황에서는 아이들을 즐겁게 대할 수 없다. 한적한 길에서 산책하거나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나누는 등 부모도 나름의 스트레스 대처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소리치거나 화낸다면 아이들은 이야기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큰 소리와 공포 분위기에 압도된다. 만일 여러분이 예민해진 상태라면 심호흡을 하고 5의 숫자를 세어보자. 마지막으로, 집이 좀 지저분해도, 아이들이 생각보다 게임을 많이 하여도, 하루 일과가 잘 지켜지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자신에게 말해 주자.

2020-09-06

‘이간질’과 ‘선동’ 사이

안재휘논설위원조선 초 황희(黃喜) 정승이 길을 가다가 검은 소와 흰 소를 몰고 밭을 매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보았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서 “검은 소와 흰 소 중 누가 더 일을 잘 합니까?”하고 물었다. 농부는 못 들은 체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황희가 또다시 묻자, 농부는 소를 쉬게 해놓고 귓속말로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굳이 귓속말로 하는 까닭을 물으니 농부는 “사람도 짐승도 자기 욕을 하면 기분이 나쁜 법입니다”라고 말했다.의사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정책 추진에 반발해 벌어진 의정(醫政)갈등이 정치권의 중재로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갈등의 한복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올린 간호사 격려 글에 대한 논란이 꼬리를 길게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속 좁은 ‘편 가르기’ 언어라는 비난이 빗발치자, 민주당 의원들이 번갈아 나서서 옹색한 반박을 펼쳤다. 다만 그 언급들의 논리가 하도 허술해서 막 내지르는 ‘충성 발언’ 정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문 대통령 글은 아무리 다시 읽어도 ‘순수한 격려’로 읽힐 여지가 없다. ‘의사들이 떠난 현장을 묵묵히 지키는’부터,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 ‘(폭염 당시 쓰러진 의료진)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대목에 이르기까지 이게 정말 한 나라의 대통령이 쓴 글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야릇하다. 많은 국민이 ‘참모’들의 편협한 정보가 또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고 있구나 하고 안타까이 생각했다.그런데 수많은 비판 댓글이 달리는 등 파장이 깊어지자,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달이 난 글을 작성한 사람이 대통령이 아니라는 변명이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든 대통령을 보호하려고 둘러댄 말인데, 그 말들이 이번엔 대통령을 그야말로 바보로 만들어 해명도 변명도 못 하도록 궁지에 몰아넣고 만 것이다. 그동안 번번이 이슈의 중심이 됐던 SNS 글들의 저자가 따로 있다는 얘기가 돼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직분의 엄중함과 과중한 업무를 생각한다면, 대통령의 SNS가 직접 작성됐느냐, 않았느냐는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한 변명 또한 대통령을 도와주는 말이 못된다. 고 의원은 한 방송에 나와서 대통령 메시지를 놓고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답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라며 “발신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고민정이 말한 대로 보아도 문 대통령의 SNS 글은 ‘갈라치기’ 메시지가 역력하다. 만약에 대통령의 메시지가 확증편향에 빠진 팬덤정치를 의식한, ‘선동’을 목표로 하는 ‘이간질’의 발로였다면 이는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는 들판의 소들에게조차 듣기 싫은 비교와 비난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고사(古事)의 교훈을 다시 떠올린다. 국민이 대통령에게서 듣고자 하는 말은, 모든 국민을 아우르는 진정 ‘대통령다운 말’이 아닐까 싶다.

2020-09-06

대법, 잇단 ‘코드’ 판결 논란…법치 혼란 걱정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에 대한 상고심에서 전교조 측 손을 들어준 것은 이제 우리 법조계에 ‘코드판결’이 일상화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수 정권을 호위하던 사법계를 진보 성향 법조인들이 장악하면서 그동안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법치’의 기준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사법부까지 이렇게, ‘옳고 그름’을 엄정히 가리는 기관이 아니라 ‘내 편, 네편’ 나눠 다투는 궤변 전쟁터가 되는 건 결코 안 될 일이다. 대법원은 “사실상 노조 해산이나 다름없는 법외노조 통보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한 것은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 제9조2항을 위헌적 조항이라고 판단하고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법외노조 통보’는 ‘법률유보사항’임에도 법률적 근거 없이 시행령에 근거해 통보한 조치가 위법하다는 논리를 동원한 것이다.이번 판결은 헌법재판소가 2015년 해직교사를 노조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원노조법 2조를 합헌으로 판단한 것과 대척점에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재는 당시 이 조항에 대해 ‘8대1’의 압도적인 표결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지난번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대법원 결정에서도 다수 대법관의 ‘무죄’ 판결문 논리보다도 ‘유죄’ 취지의 소수 의견이 훨씬 더 법률적 합리성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대법원의 판결문이 미리 정해진 결과에다가 법리를 꿰맞춘 인상을 주는 것은 큰 문제다. 이렇게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판결문마저 재판관의 성향분포에 따라 법률을 이현령비현령 방식의 독해에 종속시키는 것은 도무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1989년 참교육을 표방하고 출범한 전교조는 이제 순수한 교원노조와 거리가 멀다. 집단이기주의와 이념교육, 정치투쟁을 일삼는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전교조 합법화의 길이 열리면서 교육현장의 이념·정치 투쟁이 더 거세지지는 않을지 걱정이 깊다.

2020-09-06

코로나 2차 대유행 올가을이 최대 고비

코로나19가 지난 주말을 고비로 다소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400명을 돌파했던 전국 확진자수가 200명대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언제든 다시 확산세가 거세질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일 뿐이다. 도심집회 관련 ‘n차 감염’이 지속되고, 대구의 동충하초 설명회와 같은 소규모 집단 감염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정부가 5일부터 전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2주 연장하고, 수도권은 강화된 2.5단계 조치를 1주일 더 연장한 것은 이런 산발적 감염에 대한 우려 탓이다.지난달 27일부터 일별로 국내에서 발생한 신규 확진자수를 보면 441명→371명→323명→299명→248명→235명→267명→195명→198명→168명→167명 등으로 나타나 확산세가 한풀 였음이 완연하다. 하지만 100명대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 현재 진행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실천이 얼마나 잘되느냐에 따라 확산세를 잡을 수 있다.지금은 긴장의 끈을 놓기보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확실한 반전국면을 만들 때다. 그 고비가 가을철이다. 특히 추석명절을 앞둔 가을철 초입에 코로나를 잡지 못하면 추석명절 쇠기 등 국민이 받을 고통의 강도는 상상 이상이 될 수도 있다.가을철 문턱에 들어섰다. 기온과 습도가 낮아지면서 호흡기를 통한 바이러스가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또 추운 날씨로 실내 생활이 증가하고 인구가 밀집된 공간의 실내 환기가 어려워지면서 바이러스 전파가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더 큰 걱정은 독감이 유행할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와 독감은 증상이 매우 유사해 한꺼번에 유행할 경우 의료체계가 마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외국처럼 환자를 치료기관으로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자가치료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이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추석명절까지 3주 정도 남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세를 확실히 막지 못한다면 추석이후 우리가 맞게될 상황은 매우 암울하다. 지금 우리가 벌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노력이 코로나 2차 대유행을 막을 최대의 수단이 된다는 점 깊이 새겨야 한다. 보건당국은 물론 개개인의 방역 수칙 준수가 매우 엄중한 때다.

2020-09-06

민족 이동의 딜레마

추석은 설날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이다. 이 날은 전국에서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고향을 방문해 부모·형제들과 함께 명절 연휴를 보낸다. 그 해 추수한 햅쌀로 밥을 지어먹고 햇곡식으로 송편도 만든다. 사과, 밤 등 햇과일로 준비한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도 한다. 모처럼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만나 즐거움을 나누는 날이다.추석은 삼국시대 이래 내려온 우리 고유의 전통 명절이다. 연휴기간 고향을 찾는 귀성객만 어림잡아 수천만명에 이른다. 추석 당일 이동객만 700만∼80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이른바 민족의 대이동이 추석연휴 기간 동안 이뤄지는 것이다. 전국의 고속도로망은 극심한 교통정체 현상을 빚는 게 추석 명절 때의 우리 모습이다.코로나19가 난동을 부리면서 올해 추석 명절의 민족 대이동이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재확산으로 고향으로 갈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금 추석이 문제냐” “조상 모시다 내가 먼저 죽는다” 등 귀성과 관련한 부정적 의견이 다수 나돌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추석절 이동제한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정부도 추석 명절이 코로나 대확산의 분수령이 될까가 봐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민들에게 “방역을 최우선해 연휴 계획을 세워달라”고 당부했다. 추석절 이동제한이라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정말로 벌어질지도 모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덕담이 무색해질 지경에 놓인 것이다.하루 1천명대 확진자를 기록한 일본은 “추석귀향 자제”를 정부가 당부했다고 한다. 언텍트 시대의 민족 대이동이 딜레마에 빠졌다./우정구(논설위원)

2020-09-06

일본의 차기 정권에서도 정책 변화는 없을 듯

일본 헌정사상 최장기인 7년 8개월간 집권 중이던 아베 신조 총리가 최근 전격 사임하였다. 이에 따라 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 집권 자민당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외형적으로는 정권 교체처럼 보이지만 의원내각제인 관계로 사실상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간판 얼굴만 교체되는 셈이다. 9월 1일 열린 자민당 총무회에서는 전당대회 대신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 의원총회에서 신임 총재를 선출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상시국임을 고려하여 ‘정치 공백 회피’를 위해 당헌에 있는 ‘긴급 시에는 양원 총회에서 후임을 선임’한다는 조항을 내세워 당원투표를 생략하는 양원 총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자민당 총재는 12일간 선거 일정으로 국회의원 394명과 전국 당원 등 394명을 합한 788명이 투표하는 전당대회에서 선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비상시에는 7일 일정으로 국회의원 394명과 47개 지자체 대표 141명(지부별 3명)을 합한 535명이 전당대회를 대신하는 양원 의원총회에서 선출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9월 8일 신임 총재선거를 고시하고 14일 선거일에 투개표를 실시할 공산이 크다. 이때 1차 투표에서 과반수인 268표 이상 득표자가 나오면 즉시 신임 총재가 결정, 차기 총리 지명을 거쳐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게 되지만, 과반수득표에 성공하지 못하면 득표 1, 2위를 대상으로 2차 결선투표를 거쳐 진행하게 된다.9월 14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선거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3명이 경합에 나설 전망이다. 스가 장관은 아베 내각의 관방장관으로 지난해 5월 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에 맞추어 적용된 새로운 일본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면서 일반 국민에게 인지도가 상승한 데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을 유지하는데 안방 살림을 잘 수행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시다 회장은 2012년부터 5년간 제2차 아베 내각에서 외무장관을 역임한 적이 있는 등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지만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했다. 반면 이시바 전 간사장은 여론조사 결과 차기 총리 후보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자민당 내 대표적인 반 아베파로 알려져 의원들 사이에서 지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아베 총리의 비판자라는 이름이 붙은 이시바 전 간사장을 자민당 의원들이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 뽑는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그런데 아베 총리를 배출한 자민당 최대 계파인 호소다파(細田派, 98명)를 비롯하여 아소파(麻生派, 54명), 다케시타파(竹下派, 54명), 니카이파(二階派, 47명), 이시하라파(石原派, 11명)가 모두 스가 장관을 지지한다는 의향을 보였다. 이 숫자만 하더라도 264표인데 무파벌파 의원 가운데 20~30명 정도가 스가 장관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지자체 지부 대표들이 141표를 모두 다른 후보에게 몰아주더라도 차기 자민당 총재로 스가 장관이 선출되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사임한 지 불과 2~3일, 심지어 스가 장관이 총재직 출마 의사를 공식 표명한 9월 2일이 되기도 전에 사실상 차기 총재선거는 끝난 셈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는 스가 장관에 대한 사실상의 신임 투표인 모양새로 바뀌어버렸다. 경선에 나설 기시다와 이시바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파벌(기시다파 47명, 이시바파 11명)을 이끄는 계파 수장이지만 대다수 파벌이 스가 장관을 지지하고 나선 지금 상황에서는 맥이 빠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공식 선거 일정은 선거고시일인 8일 오전 세 진영의 대표가 각각 20명의 추천인 명단을 첨부하여 총재직 입후보자로 등록한 후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여 표심 몰이에 나서겠지만 그마저도 코로나19로 인해 인터넷 정견발표 등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두 후보는 아예 지자체 대표들의 표심을 잡아 1차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다는 전략이며, 일찌감치 스가 장관을 지지하고 나선 다른 계파에서는 차기 스가 내각에서 자신의 파벌을 요직에 앉히기 위한 물밑 교섭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자민당 지도부가 이처럼 서둘러 9월 8일 총재선거 고시, 14일 투개표를 통한 신임 총재의 선출, 16일 임시 국회를 소집하여 새 총리를 지명한 후 신임 내각을 출범시키는 빠듯한 그림을 그린 것은 새로운 거대 야당의 출범을 최대한 견제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자민당 총재선거 일정 사이에 있는 9월 15일에는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이 양당을 해체한 후 150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입헌민주당’으로 출범하는 창당총회가 예정되어 있다. 15일을 가운데 두고 14일에는 자민당의 신임 총재선출, 16일에는 새로운 내각 출범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어 새로운 거대 야당이 결집 출범한다는 뉴스를 아예 덮어버리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인 셈이다. 야당 측에서는 총리지명에 이어 신임 총리의 소신표명 연설과 각 당 대표와의 질의응답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자민당은 임시 국회회기를 18일까지로 짧게 잡아 국회 토론은 10월 하순 소집하게 될 다음 임시 국회로 미룬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아베 정권의 막이 내림에 따라 일본 국내의 일부 학자들은 아베 총리가 자신만만하게 내세웠던 GDP성장률 2%의 안정적 달성이라는 공약은 2014년 1/4분기부터 2020년 1/4분기까지 6년간 1.8%에 그쳤고, 아베 정권 8년 동안 소비세 인상 등으로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이 3.5%나 줄어드는 등 소비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재정지출은 엄청나게 팽창하였다며 아베의 정책은 실패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자신 있게 내세웠던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와 같은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차기 총리가 누가 되든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가 대폭 변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동안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라는 정책 기조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최대의 엔진은 일본은행에 의한 대규모 금융완화와 거액의 재정지출이었다. 스가 장관이 일본은행과의 관계는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이어갈 것이라 밝히고 있고, 나머지 두 후보도 일본은행에 의한 대규모 금융완화에 대해 모두 장기적으로는 개선해야 하겠지만 급하게 변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어 금융정책 자체가 급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차기 총리가 거의 확실시되는 스가 요시히데 장관 특유의 ‘스가노믹스’는 당분간 만나볼 수 없을 것 같다.한편 아베 총리가 최우선 정책의 하나로 꼽았었으나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 것 중 하나가 북한 관련 문제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등과 관련하여 스가 장관은 김정은 조선 노동당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 활로를 열겠다고 발언하였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도쿄와 평양에 상호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겠다는 비교적 참신한 방안을 내세웠다. 기시다 정무조사회장은 북한 문제에는 언급이 없었으나 과거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회담 경험을 살려 냉정하게 한일 간 외교적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이상을 종합해 보면 누가 아베 총리의 후임이 되든 한일 관계를 포함한 일본의 정치 경제 관련 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9-06

계절의 소리

김병래시조시인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각 계절마다 대표하는 소리가 다르다. 비나 바람 같은 자연현상에서 나는 소리도 있지만 주로 새나 벌레가 내는 소리가 계절에 대한 청각적 이미지를 이룬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봄에는 종달새소리가 나른하고 몽롱한 봄의 정취를 돋우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 보리밭 들길을 걸어가면 노고주리라고도 불리는 종달새가 하늘 높이 떠서 영롱한 방울소리를 내었다.개구리소리 자욱한 초여름 밤의 들판과 뻐꾸기소리 적막한 초여름 낮의 신록도 싱그럽고 그윽한 분위기에 젖게 하고, 한여름이 시작되는 칠월 초순부터는 매미소리가 뒤를 잇는다. 매미소리의 여름은 3악장으로 되어 있다. 1악장의 주선율은 유지매미 소리인데 음정의 높낮이가 없이 찌르르르…. 길게 울린다. 유지매미소리가 좀 단조롭게 들릴 즈음 참매미소리의 2악장이 이어진다. 맴맴맴…. 하고 운다고 매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바로 이 참매미소리 때문이다. 내 귀에는 미웅미웅미웅…. 으로 들리는데, 몸집은 유지매미보다 작지만 성량은 뒤지지 않는다. 여름이 끝날 무렵은 쓰르라미가 3악장으로 마무리를 한다. 몸집이 가장 작은 쓰르라미는 합주를 하듯 떼로 울어서 마지막 무더위를 쓸어낸다.처서 지나고 가을 기운이 감돌면 풀벌레소리가 귀에 뜨인다. 진작부터 여름 풀숲에서 여치와 베짱이가 울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아무래도 높푸른 하늘 아래 벼가 익고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피는 계절과 더 잘 어울린다. 여치와 베짱이는 다 같이 여치과(科) 곤충이고 종류도 많아서 구별이 쉽지 않은데, 베짱이는 ‘쓰이잇! 쩍! 쓰이잇! 쩍!’ 하고 우는 소리가 베를 짜는 소리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만추의 가을밤에는 귀뚜라미소리가 심금을 울린다. 귀뚜라미는 흔히 사람의 거쳐 가까이서 운다. 옛날 토담집에는 방안까지 들어와 살기도 했다. 사람의 기척이 나면 뚝, 그쳤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소리를 낸다. 잠 못 이루는 밤, 불을 끄고 누워 오랫동안 귀뚜라미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쓸쓸함이라든가 적막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그 밖에도 봄날의 산비둘기소리와 여름밤의 소쩍새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옛날에는 부엉이소리, 뜸부기소리도 한 몫을 했지만 종달새소리와 함께 지금은 거의 사라진 그리운 소리들이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나 자동차도 드물던 시절에는 온종일 들리느니 자연의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초가집 처마의 낙숫물소리, 가을바람에 낙엽 쓸리는 소리, 앙상한 나뭇가지를 스치는 겨울바람소리,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 모두가 우리 정서의 바탕이었던 소리들이다.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아름다운 음악소리도 좋지만, 계절에 따라 변하는 신천초목에 어우러지는 자연의 소리들이 더 깊숙이 정서와 감성에 와 닿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인공의 소음에 시달리려야 하는 도시인들일수록 기왕에 도심을 벗어나 나들이를 하는 걸음이면 자연의 경치 속에 깃들어 있는 온갖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 좋을 것이다. 자연의 미세한 소리까지 놓치지 않는 귀를 가진 사람은 감성과 정서가 늙거나 병들지 않는다.

2020-09-03

국민의 힘?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당명이 또 바뀐다. 또 생뚱맞은 낯선 이름 하나가 들린다. 수십년간을 겪었던 경험이다. 최근 미래통합당은 새 당명 ‘국민의힘’과 정강·정책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신학국당, 미래통합당, 그리고 국민의 힘. 외우기가 힘들 정도로 당명이 바뀐다.그건 여당도 마찬가지. 민주당, 민주통합당, 통합민주당, 새천년민주당, 평화민주당, 새정치 민주연합, 더불어 민주당. 아마 정부수립 후 만들어진 정당 이름은 100개는 족히 넘을 듯하다.당명이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정책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국회에서의 정책의 토론이 아닌 구태의연한 욱박지르기 모욕주기는 여전한데, 당명이 바뀐다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잘못이다. 국민의 힘이라면 지금까지 국민의 힘은 안중에도 없다가 이제 알게 된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국민의 힘이 아니라 정치인들의 힘에 의존하여 오다가 이제 뒤늦게 국민의 힘을 이용하고 싶어서일까? 정당 이름을 바꾸는 것이 정말 중요할까? 그 보다는 정당조직문화와 운영방식을 개선하고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틀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 이름을 바꾼다고 내용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국에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당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이해가 된다. 미국, 영국 등 정당의회주의 선진국가들에 비하여 한국에서는 정당들의 이름이 수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정치인들은 그런 정당들을 오고가는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보다 개인의 이익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당은 개개인 정치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일 뿐이다. 미국에는 2개의 주요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이 200년 가까이 미국 전통을 지켜왔다. 두 정당은 다양한 계층의 미국인으로부터 지지를 얻어 광범위한 정치적 견해를 수렴하고 있다.미국에서 정당의 뿌리는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의원이건 국민이건 미국에서 소속정당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건 유럽의회 정치의 상징 영국이나 의원내각제인 일본도 마찬가지이다.계산에 의해 이리 저리 정당을 옮기는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한 경우는 별로 없다. 정당 이름을 바꿔 크게 정치가 나아진 경우도 없다.정당 이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진정 국민을 위한 자세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순간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그리고 당선을 위해 정당을 만들고 해산하고 그리고 정당을 이리 저리 옮기는 이기적인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 정당이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성실하게 국민을 섬기고 법을 지키며 국가를 위하는 진정하고 올바른 자세이다.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이름을 바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정하여 반성하고,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자세가 필요하다.국민의 힘이라는 엉뚱한 또 하나의 정당이름을 보면서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필자같은 시니어들은 정당들 이름 외우기도 이제 벅차다. 요즘 시니어 인구의 비율이 증가한다고 하는데 시니어들이 외우기도 힘든 정당 이름 제발 그만 바꾸자.

2020-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