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삼월이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꽃샘바람이 있다. 봄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겨울을 밀어내니 물러나는 겨울이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여 차갑고 매서운 바람을 일으킨다하여 꽃샘바람이라 한다. 하지만 이 바람은 반드시 불어야 하는 자연의 순리이고 섭리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모든 것들이 봄이 오면 녹기 시작하고 잠자던 뿌리가 제일 먼저 깨어나 수분을 빨아들인다. 눈은 순을 틔워야 하는데 줄기와 가지가 아직 녹지 않고 얼어있어 공급로가 차단되니 꽃을 피우지 못한다. 수분을 줄기와 가지로 끌어올리려면 나무를 흔들어 삼투압 작용이 일어나게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람이 필요하다. 바람이 가지와 줄기를 흔들면 뿌리의 수분이 가지 끝마디까지 공급되고 눈은 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된다. 식물의 성장과 결실에는 반드시 꽃샘바람이 불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순환법칙이다.역사는 발생과 성장과 쇠퇴와 해체가 반복적으로 순환한다고 토인비가 말했다. 그 모든 과정에 도전의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역사발전이 있다고 했다. 헤겔도 역사는 변증법적 발전순환이라 하면서 正(정)이 있으면 反(반)의 도전이 있고 정과 반이 잘 융합하여 合(합)이 되는 반복순환을 통해 발전한다고 했다. 응전에 실패하거나 합에 도달하지 못하면 더 이상 역사는 나아가지 못하고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역사이든 인간역사이든 역사는 순환의 그 과정마다 물러남과 다가옴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따라 흥망성쇠가 결정되고 존재냐 비존재냐가 결정된다. 자연과 역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이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그 과정에 불어오는 바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따라 존재와 가치가 달라진다.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의해 파괴되자 에스겔은 그 상황을 마른 뼈들의 무덤으로 표현했다. 그는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한다. “내가 너희 속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너희가 살아날 것이다. 그 바람이 마른 뼈에 힘줄을 뻗치게 하고, 살을 입히고, 살갗으로 덮고,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되리라. 바람아 사방에서 불어라” 이스라엘은 그 바람을 맞고 되살아나서 이스라엘은 재건하였다.이해인 시인은 ‘꽃샘바람’이라는 시에 “꽃을 피우기 위해선 쌀쌀한 냉랭함도 꼭 필요한 것이라”했다. 그러기에 꽃샘바람은 시샘의 바람이 아니라 샘물의 바람이다. 순간 순간 우리에게 불어오는 꽃샘바람을 피하지 말고 온몸으로 맞아들일 때에 비로소 온 몸이 생명의 에너지로 꽃을 피우고, 이 사회가 활력이 넘치게 되고, 죽었던 모든 것이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바람아 사방에서 불어라!”
2021-03-17
장규열한동대 교수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저 변하는 게 아니라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모습이 뚜렷하다. 기술의 진보와 문명의 발달은 세월과 함께 가히 눈부시다 하리만큼 더 나은 방향으로 재촉하듯 움직여 간다. 디지털환경과 인공지능은 그 적용 범위를 날로 넓히며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낸다. 세상을 두고 떠나기가 아까울 만큼 앞으로 만나게 될 내일 세상이 궁금해진다. 분명한 것은 어제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물이 희귀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어 간다. 사람은 어떤가.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만큼 사람도 보다 선하고 좋은 모습을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우리가 목격하는 인간의 모습은 그리 좋아지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우리가 발견하는 사람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향기가 나기보다 오히려 부정적인 모습을 가지기 일쑤가 아닌가. 날마다 들려오는 정치권 뉴스는 나은 세상을 당겨오는 방법과 정책을 다루기보다 서로 흠집을 내고 헐뜯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 어느 가닥에도 시민을 위한 배려와 공감어린 고뇌는 보이지 않는다. 상대 후보의 약점에만 집중하고 끌어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시민의 삶을 숙고하고 도시의 내일을 신중하게 설계한 흔적이 도무지 없다. 도대체 무엇으로 세상을 바꾸고 어떻게 시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후보단일화와 세력대결에 마음을 쏟은 나머지 시민의 삶은 후보들의 관심 밖으로 한참 멀어져 있다. 선거를 거듭해도 나아지지 않는 정치풍토는 과연 시민의 투표로 바꿀 수 있을까.학교폭력과 아동학대는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어 그리 새로운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혐오범죄와 성범죄도 이 땅에서 사라질 줄 모른다. 기술은 나날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여 가는데 인성은 어찌하여 좀처럼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문명과 인성이 함께 발전해 갈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세상이 제아무리 발전하여 좋아진다 해도 사람들 간에 갈등과 반목, 폭력과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면, 그 모든 긍정의 에너지는 부정의 늪을 헤매고 말 것이 아닌가. 하드웨어가 발전하는 만큼 소프트파워가 균형있게 자리를 잡도록 사회적 관심과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 날이 갈수록 교육의 책임이 무겁고 인문학적 소양이 맡아야 할 자리가 넓지 않은가.기술과 문명의 발달만으로는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다. 겉으로만 그럴듯할 뿐 자칫 인간의 속성과 세상의 모습을 오히려 그르칠 확률마저 보인다. 기술에 대한 이해와 이웃을 생각하고 함께 호흡하는 공동체성을 길러야 한다. 나만 행복한 멋진 세상이 아니라 함께 누리는 즐거운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부유한 선진국을 향해 달려왔다면, 이제는 ‘착한 나라’를 만들 욕심도 부려야 한다. 예전의 어른들은 어째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을까. 오늘 우리는 ‘돈 잘 버는 사람이 되라’고만 가르치지 않는가. 인성도 기술과 함께 균형있게 길러야 한다. 사람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 16일 ‘시·도민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먹는 물 문제는 국민의 생명권과 직결된 문제다. 무엇보다 먼저 중앙정부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대구 취수원 문제를 지역간 갈등이라며 수수방관하지 말고 정부가 문제해결의 전면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안전한 취수원 확보문제가 대구시의 최대현안인데도 불구하고 표류를 거듭하고 있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명한 것이다. 권 시장이 이날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에 대해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줄 것을 주문한 것은 지금까지 대구시가 구미시·경북도와 셀 수 없을 정도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실패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취수원 이전에 대한 구미시민들의 반대여론은 강경하다. 대구시는 정부용역 결과 하루 30만t의 물을 해평취수장에서 공급해도 구미에 별 영향이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구미시민, 특히 해평면 주민들은 해평취수장의 물을 대구와 공동으로 사용할 경우 현재의 상수원 보호구역이 확대돼 재산권이 침해되고 수질규제가 강화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구미시도 당연히 취수원 공동사용은 구미시민 의견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번 권 시장의 호소문과 관련해서도 구미시 범시민반대추진위원회는 “구미시민 동의 없는 대구취수원의 구미 이전은 절대 안된다”고 못박았다.권 시장도 강조했지만 먹는 물 문제는 국민의 생명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당시 대구취수원 이전문제 해결을 약속해 놓고도 아직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태도로 봤을 때 여전히 해결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현장설명회 등의 방법을 통해 구미시민들의 입장을 충분히 경청하고, 해평취수원 공동사용으로 구미시민들이 입는 피해가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주기로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 해평면민을 포함한 구미시민들의 마음이 열릴 수 있다. 대구 취수원 이전 문제는 243만 대구시민들의 건강과 직결돼 있어 권 시장이 꼭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난 1991년 발생한 페놀사고에 이어, 매곡 취수장 낙동강 원수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이후 대구시민들의 수돗물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당의 반대로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던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은 그동안 권영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 국민의힘 대구·경북 의원들이 강력하게 처리를 요청해왔다.특히 국민의힘 김상훈(대구 서)·송언석(김천) 의원은 법안소위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 동시 통과를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4월 보궐선거를 의식한 국민의힘 부산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이 합심해 지난 달 19일 법안소위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만 통과시켰다.이 법안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29명 가운데 찬성 181명, 반대 33명, 기권 15명으로 통과했다. 이후 가덕도 신공항 건설사업은 순풍을 타고 있다. 지난 9일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국토교통부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 올 하반기 안에 사전 타당성 조사와 함께 전략환경영양평가, 환경영양평가 등 환경성 검토 작업을 거치게 될 예정이다. 가덕도 특별법이 국회에 계류중일 때는 여당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을 계속 논의하자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가덕도 특별법 통과 이후 여당은 통합신공항 특별법 논의에 큰 관심없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7일 교통법안소위원회를 열고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었으나 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대한 비난발언 때문에 파행되고 말았다. 게다가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코앞에 닥쳐 있어 그때까지는 국회 논의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그 이후에는 당대표선거, 대선후보 선정 등으로 눈코 뜰새없는 정치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국민의힘도 대구·경북통합신공항 특별법에 쏟아부을 전력이 절대부족하다. 다만 민주당 조응천·진성준 의원이‘TK 신공항은 민간 공항과 군 공항이 함께 이전하는 특수한 경우’라며 ‘일리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니 여당을 설득할 교두보로 활용하도록 정치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가덕도 신공항 건설 강행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대구·경북지역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TK정치권이 다시 한번 분발해주길 바란다.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는 전 세계 대부호들이 사후나 생전에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을 약속하는 운동을 말한다.이 기구의 목표는 전 세계 대부호들이 그들 순자산의 최소 절반 이상을 일생 동안이나 사후에 기부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 기부 서약이 가진 특징은 법률적인 계약이 아니라 도덕적 헌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강제성을 띤 기구가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또한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개인 또는 커플 서명자들이 왜 기부를 하기로 선택했는지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약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10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 워렌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서약하며 시작됐다.국내에서는 배달의 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 부부가 지난 달 219번째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더기빙플레지에 참여해 재산의 절반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의장은 이 서약을 통해 죽기 전까지 현재 주식가치만 약 11조원에 이르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게 된다. 김 의장은 사회적 기업이나 재단 설립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아픈 이들을 돕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나서고, 미래 교육시스템에 기여하는 등의 활동을 할 계획이다.일부 재벌가 구성원들이 탐욕스런 부의 독점과 갑질행태로 온 국민의 지탄을 받은 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이 아니던가. 볼썽 사나온 재벌가 행태와 달리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부를 쌓은 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더기빙플레지를 크게 환영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는 방증이자 증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김정은 체제 하의 노동당 8차 대회는 1월 평양에서 끝났다. 연이어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새로운 각료를 인준했다.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경제 5개년 계획의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自力更生)’원칙을 선포했다. 이 원칙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며 북한 선대 지도자들도 외쳤던 구호일 뿐이다. 김일성도 주체사상에서 경제의 ‘자립’을 강조했고, 김정일 역시 경제 강국 건설을 인민들의 자주적 역량에 두었다. 북한 경제가 외세에 의존치 않고 자력으로 살아나겠다는 포부는 좋지만 그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우선 북한 경제는 자력으로 소생하기 힘들 정도로 침체해 있다. 과거 어느 시기 북한 여러 곳곳을 돌아본 본 적이 있다. 경제의 토대인 사회 간접자본(SOC)은 어느 곳이나 보잘 것 없었다. 북한의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이고 비포장 도로에는 소달구지가 다녔다. 집단 농장의 옥수수는 메말라 버렸고, 공장 굴뚝에는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국내 총생산(GDP)은 세계 20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 지속되는 것 만해도 이상한 일이다. 북한에서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될 때 경제의 자력갱생은 사실상 어렵다.북한 당국은 이를 타파하려 대외 개방을 시도했다. 김정은 등장 이후 19개의 국가 경제 특구가 설치됐다. 함경도에서부터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해안을 따라 경제특구를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경제 특구에는 외국의 투자가 있어야 개발이 보장된다. 그러나 외국의 투자는 성사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도 투자할 여유가 없고 소수의 중국 자본이 라진 선봉에 투입되었을 뿐이다. 북한이 선포한 항금평 특구에도 중국의 투자는 없다. 한국 등 서방의 투자가 없는 북한 경제의 자력갱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그렇다고 북한이 자력으로 내수 경제를 일으킬 수도 없다. 북한 폐쇄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과감한 경제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김정은은 취임 후 집단 농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인의 가족 영농까지 허용하고 소토지의 개인 불하도 단행했다. 불 꺼진 국영 공장을 개인에게 임대하기도 했다. 북한의 농공업의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력과 인프라가 부족한 북한 땅에서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관개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북한에서 자연 재해는 엄청난 피해를 초래한다.북한 당국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개혁·개방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은 현재의 중앙 집권적 통제경제만으로 현상유지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로부터의 개혁·개방에는 성장과 체제 붕괴라는 모순적인 딜레마가 따른다. 한편 북한은 시장 경제의 확대에 따라 주민들의 의식도 크게 변하고 있다. 탈북 주민 3만5천여명은 이미 남한에 정착해 있다. 북한 당국은 소련의 개방·개혁 과정의 체제 붕괴 현상을 여실히 보았다. 이것이 김정은이 과감히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자력갱생은 하나의 선전 구호일 뿐이다.
이주형산자연중학교 교감봄꽃들이 겨울을 지낸 성적순으로 꽃 축포를 터트린다. 이때 성적은 성적 지상주의에 빠진 이 나라 학교의 해괴망측한 성적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자연은 모두가 1등이다. 매화도, 목련도 자신이 1등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봄꽃을 응원하는 봄비가 지난 들판은 말 그대로 봄꽃 잔치다. 큰봄까치꽃, 냉이꽃, 꽃다지 등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봄을 그린다. 그들이 있기에 봄은 다양한 생명으로 넘친다.자연이 생명의 원천이 되는 방법은 인정이다. 나와 서로를 인정하는 힘, 그것이 자연의 힘이다. 그 힘은 주입된 것이 아니라 시간 위에서 오롯이 혼자 터득한 것이다. 인정은 평가와 연결되며 평가의 방향을 내 안으로 돌린다. 그러기에 자연에는 보여주기 위한, 또 줄세우기식 평가는 없다. 평가의 결과는 진화다. 이런 평가가 자연을 무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만들었다.그럼 학교의 평가는 어떤가? 다음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성취평가제는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도입된 평가제로 서열 위주의 평가 방법을 지양하고 학생 개개인의 학업성취도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평가제도입니다.”성취평가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과연 성취평가제도는 목표를 달성했을까? 학생들은 서열 위주의 평가 지옥에서 벗어나 “글로벌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력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을까? 거친 욕밖에 안 나온다.“창의·인성교육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정 개편 및 수준별·맞춤형 교육 여건 조성과 함께 모든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최대한 발현시켜줄 수 있는 교수·학습과 평가제도의 확립이 긴요”이는 성취평가제도의 추진 배경이다. 이 글을 인용하다 중간에 끊었다. 왜냐면 교육부의 화려한 말 잔치에 속아 너무도 아름다운 청소년기를 잃어버린 학생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한 정부 정책에 대한 책임, 누군가는 져야 한다.”라는 글을 생각했다. 생각의 결론은 이 나라 정부는 책임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정부라는 것이다. “내 삶을 책임지는 사람 중심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이 또한 책임지지 못 할 말에 불과한 허언이었다. 무책임한 정부 허언(虛言)의 정점엔 땅 투기꾼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난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대표 거짓말은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강화, 혁신을 선도하는 미래인재 양성”이다. 모든 정책은 이상(理想)에 맞춰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쁜 정책은 없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다. 이상이 강할수록 현실과는 멀어진다. 평가 또한 마찬가지다.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 닫는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요즘이다. 추가모집으로도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교가 속출하고 있는 시점에 지금과 같은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나? 봄꽃 피기 전에 교육이 망하지 않으려면 학교를 거부하게 만드는 줄세우기식 시험부터 없애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평가의 공정성이 아니라 평가의 필요성이다.
정미영수필가대학 2학년 때였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들뜨는 어느 봄날, 단짝과 교정을 걷다가 초등학교 남자 동창생을 만났다. 재수를 하여 나보다 일 년 뒤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살랑거리는 봄바람 탓이었다. 동창생과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 한 올이 내 입술에 얹혔다. 그 순간 그가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치웠다. 허물없는 사이라 짜릿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단짝은 그 행동이 참 자상해 보였다고 했다.자상한 손길에서 애틋함을 느꼈을까. 단짝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꽃을 보면 선물하고 싶고, 차를 마시면 찻잔 너머로 미소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내 동창생은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사랑은 사치라고 했다. 그때 그는 갑작스럽게 불거진 부모님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워 했고, 군대 문제로도 고민하던 중이었다. 대학 새내기로서의 발랄함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얼굴이었다.그래도 나는 단짝의 사랑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어느 새 스며든 사랑은 온몸을 적셔 친구는 힘든 가슴앓이를 했다. 슬픈 시만 골라 읽고 떨어지는 꽃잎에도 눈물을 흘리는, 그 아픔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친구가 밤새워 쓴 편지를 전해주기도 하고, 일부러 동창생과 자리를 마련해 함께 밥을 먹었다.대학축제 기간이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쓸려 모두가 흥겨운 듯 보였는데 문득 친구가 바다 이야기를 했다. 밤바다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갈매기를 보면 가슴이 좀 트일 것 같다고 했다.무작정 부산행 열차를 타고 광안리로 갔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모래밭에 앉았다. 별 말 없이 앉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친구의 작은 몸집 어디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큰 눈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바다에 다녀온 뒤였다. 동창생을 만나면 때때로 모진 말들이 내 목까지 차올랐다. 네가 그렇게 잘 났냐는 둥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 벌 받는다는 둥…. 그러나 입 안에서 맴돌 뿐 내뱉지 못했다. 그도 소중한 내 친구였으므로.나는 둘 사이의 징검다리였다. 동창생은 친구인 내가 가운데 있어 단짝에게 매몰차게 거절 못했다. 단짝 또한 본심을 직접 전하지 않고 대부분 나를 통했다. 둘 사이의 연결이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음의 강을 사이에 두고 쉽게 건너지 못했다.어렸을 때 강에 드문드문 놓인 징검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반쯤 건넜는데 가운데 징검돌 두세 개가 없어서 난처했다. 무리를 해서 뛰기에는 돌 사이가 넓었다. 물에 빠질 것 같았다. 건너지 못하고 뒤돌아 나와 멀리 에둘러갔다. 길을 잇는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을 이어 주는 일임에랴. 그때 나는 징검다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양쪽을 연결하지 못하면 징검다리는 소용없다.얼마 전 어린 조카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었다. 북두칠성이 된 일곱 형제 이야기다. 홀어머니가 일곱 형제와 살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매일 밤 집을 나서 이웃집에 놀러갔다. 형제는 어머니가 차가운 강물을 건너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징검돌을 놓아 다리를 만들었다. 아들이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는 기도했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하늘의 별이 되게 해달라고. 일곱 아들은 나중에 별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북두칠성이라 했다.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연락이 뜸한 친구와 친구를 연결해 주고, 어쩌다 소원해진 가족과 가족을 손잡게 하고,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싶다. 물이 좀 깊어도 징검돌이 있으면 누구라도 건너볼만한 용기가 생긴다. 아쉬운 자리마다 든든하고 판판한 징검돌로 놓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 또한 밤하늘의 별빛을 닮을 수 있지 않을까.
봄은 소리 없이 온다. 겨우내 사납게 휘몰아치던 바람이 제풀에 지칠 즈음, 때를 노려 땅속에서 생명이 꿈틀거린다. 무포산 나무들도 하나씩 깨어나 물기를 빨아올린다. 청송군 피나무재의 자작나무 숲에는 벌써 봄이 와 있다.마음이 가고 소리가 나는 데로 걷다 보니 어느새 자작나무 숲에 들었다. 새하얀 수피를 찢고 나온 나뭇가지가 손을 내민다. 손가락 하나 정도의 굵기와 서너 개를 합쳐 놓은 굵기가 서로 어긋나게 자라고 있다. 찢어지고 해진 수피에 손을 대자 바스락거리며 껍질 하나가 떨어진다. 숲에는 생각하는 것도 소리로 들린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자작자작 소리가 들려온다.자작나무는 다른 나무와 경쟁하는 것도 싫은가보다. 그네들만 쭉쭉 뻗어 키를 자랑한다. 자작나무는 싹을 틔운 후 10년까지 1년에 1m 이상씩 자란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길게 늘어진 나뭇가지는 채찍으로 변해 경쟁하는 나무의 수관을 때린다. 그러면 주변의 나무는 머리 부분이 날아가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독불장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참 이기적이다. 그런데 자작나무는 어미나무의 도움을 받지 않고 홀로 제 키를 키운다. 나무껍질에 하얗게 파인 상처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햇빛을 좋아하는 자작나무는 다 자란 성목이 되면 그제야 밝은 그늘이 되어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저돌적인 자작나무는 짧은 생을 사는 것으로 그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지난 겨울의 추위도 견딘 자작나무는 그리 두꺼워 보이지 않는 새하얀 껍질로 잘도 견디었다. 껍질은 종이처럼 겹겹이 쌓여있다. 몸피를 두른 하얀색을 만지면 하얀 가루가 포르르 날려 이 마을 저 마을의 궁금한 소식을 알려 줄 것 같다. 겹겹이 두른 껍질에는 풍부한 기름 성분까지 보관하며 자작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하얀 껍질은 시인의 종이가 되어 고향의 골목을 서성이고 화가의 도화지가 되어 산을 그리고 강을 담기도 한다. 때로는 사랑을, 때로는 당부를, 때로는 다짐을 쓰는 것으로 쓰인다.발 앞에 떨어진 수피 한 조각을 들었다. 낡고 흐트러져 볼품이 없다. 비뚤비뚤 모양이 흐트러진 것은 삼십 년 전 기억의 한 조각과 마주한다. 결혼을 앞둔 며칠 전, 어머니는 내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까만 줄이 선명한 종이에 또박또박 눌러 쓴 편지는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이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아버지에게 무뚝뚝한 아내였고 딸에게도 살가운 엄마가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가 쓴 편지를 나는 잽싸게 한 번 읽고 금방 잊어버렸다. 콩깍지를 뒤집어쓴 딸은 제 갈 길이 바빠 편지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정을 찾지 못했다. 제대로 읽지 않았던 나는 지금껏 어머니의 사랑과 당부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결혼식 올리는 것을 ‘화촉(樺燭)을 밝힌다’라고 한다. 한자를 가만히 보면 화촉의 ‘樺’ 자는 자작나무이며 ‘燭’은 등불을 말한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초로 새롭게 출발하는 한 가정의 앞날을 밝힌다는 뜻이다. 또한 1천500년 전 신라 사람들이 그린 천마도도 자작나무의 껍질에 그린 것이고. 팔만대장경 판의 일부도 자작나무 껍질로 새겼다고 하니, 기록문화를 꽃피운 나무라 할 수 있다.자작나무는 추위에도 강하다. 영하 20∼30도의 혹한을, 새하얀 껍질 하나로 견딘다. 보온을 위해 껍질을 겹겹으로 만든다. 나무의 근원인 부름켜가 얼지 않도록 지켜가며 원통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견디다 수피 하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나무껍질은 광택이 나는 흰색이다. 종이같이 얇게 옆으로 벗겨져 옛날에는 종이 대용으로도 썼다고 한다. 이렇게 자작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껍질은 종이가 되어 앞서간 시인의 편지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시인의 생각을 깨우고 내일을 살아갈 시인의 무채색 글감이 될 것이다.이순혜 수필가백석 시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는 모든 게 자작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골 집의 대들보도 자작나무요. 기둥도. 문살도. 심지어 메밀국수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였다. 시인은 자작나무를 보며 시어를 다듬고 생각을 정리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청송군 피나무재에서 자작나무를 마주했는데, 자작나무처럼 자작자작 시를 읊는 시인이 될 수 있을까.피나무재를 떠나는 걸음에 함께 하는 것들이 좋다. 한 걸음 먼저 나선 봄바람이 마음의 온도를 데워주고, 춥다고 움츠렸던 몸이 숲에서 기지개를 켤 수 있게 해 주었다. 새하얀 몸통의 나무를 만나 나의 생을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오래전 잊어버렸던 어머니의 그리움 한 가닥 불러와 주었다. 나를 사람 되게 한다. 자작나무 숲이.
박창원수필가포항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금석문인 중성리신라비를 비롯한 국보 2점, 보물 7점, 중요민속자료(모포줄) 1점, 사적 2곳, 천연기념물 3곳, 국가명승(덕동) 1곳 등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다. 또 오어사대웅전을 비롯한 다수의 도지정 문화재가 있다.하지만 국가지정이든 도지정이든 무형문화재는 한 점도 없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문화유산이 하나도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무관심과 의지 부족 때문이다. 무형문화재란 말 그대로 무형의 문화재이기에 관심이 소홀한 사이에 사라지기 쉽다. 그러기에 소멸되기 전에 발굴하여 가치가 높은 것은 정책적으로 보존해야 한다.포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자산 중 무형문화재가 될 만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산간지방의 민속놀이인 지게상여놀이, 여성들의 줄다리기 놀이인 앉은줄다리기, 흥해지역의 농요, 여성민속놀이인 월월이청청이 그것이다. 죽장면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지게상여놀이는 옛날 가난한 산간 지방에서 행해지던 장례풍속이 놀이로 변한 사례다. 여러 개의 지게로 상여를 만들어 운구하는 풍습을 흉내 낸 놀이인데, 놀이의 유래나 방식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현재도 잘 전승되고 있어서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송라면 해안 지역에 지금도 전해오는 앉은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날 앉아서 줄을 당기는 민속놀이이다. 줄 모양이 게 모양이라는 점, 여성들만 참가한다는 점, 앉은 채 당긴다는 점, 이긴 쪽에서 비녀목을 메고 춤을 추면서 행진한다는 점에서 아주 독특한 민속놀이이다.들이 넓고 논농사가 발달한 흥해읍 지역의 농요도 주목할 만한 무형문화유산이다. 흥해농요는 모심는소리나 논매는소리를 비롯해 장르별로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전승하고 있는데, 최근에 흥해농요보존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전승노력을 펼치고 있는 점이 강점이다.월월이청청은 달밤에 여성들이 모여 즐기는 원무 형태의 달놀이로 남해안의 강강술래에 비견되는 동해안의 민속놀이이다. 포항에 2개 단체에서 전승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영덕의 월월이청청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포항의 월월이청청이 추가로 지정받기는 어렵게 됐다.무형문화재로 지정되려면 그 분야의 맥을 잇는 우수한 기능과 문화재적인 가치, 전승 노력 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용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과 고증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보존·전승을 위한 자체 노력이 필요하며, 학술 세미나 등을 통한 가치 입증이 뒤따라야 한다.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을 전승하고 있는 농어촌의 주민들이나 기능보유자들은 그러한 방법이나 절차를 잘 모른다. 행정 당국에서 숨어 있는 무형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전승노력을 지원함으로써 자칫 소멸될 수도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보존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가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 행정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 포항도 무형문화재를 가진 도시가 될 수 있다.
2021-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