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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힘 지지율 17%… TK에서만 여당에 앞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전국적으로 대구·경북(TK)에서만 민주당에 우세하면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4일 나왔다. 4개 여론조사기관(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이 지난 21~23일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지지 정당을 묻는 설문에 응답자 중 43%가 더불어민주당, 17%가 국민의힘을 꼽았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2020년 전국지표조사가 시작된 이래 사상 최저치이며, 대선 직전인 5월 말 31%로 정점을 찍은 후 두 달째 계속 하락하고 있다. 민심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에서는 민주당 39%, 국민의힘 11%로 지지율이 세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영남권인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민주당이 34%로 국민의힘(19%) 지지율을 압도했다. 다만, 보수텃밭으로 불리는 TK(민주당 19%·국민의힘 35%)지역 지지율만 국민의힘이 앞섰다. 연령별로는 전통적 지지층인 70대 이상에서도 국민의힘이 30%의 지지율을 기록해 민주당(37%)에 7%p 뒤졌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는 ‘신뢰한다’는 응답이 64%,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2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신뢰한다’는 응답이 96%,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5%였다. 이 대통령이 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있던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한 것에 대해서는 ‘잘한 일이다’라는 응답이 74%로 나타났다. 4개 조사기관은 “이진숙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등 인사 논란으로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지지율 상승세가 멈췄음에도 국민의힘이 그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은 대선 이후 당 혁신 방안을 두고 구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어 현재 민심 이반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번 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박형남 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07-24

밥상물가 위협하는 기후플레이션에 대응을

올 여름 일찍 찾아온 폭염과 폭우 등이 반복되면서 밥상 물가가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생산자 물가지수는 119.77로 전월 대비 0.1% 가 상승했다. 농산물은 1.5%, 축산물은 2.4%가 각각 올라 생산자 물가지수가 3개월만에 반등세로 돌아섰다. 통계청이 밝힌 6월 소비자 물가도 전년 동기보다 2.2%가 올랐다. 올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라면 등 가공식품 가격이 오르고 계절적으로 공급이 늘어 떨어져야 할 농산물 가격의 하락 폭이 줄어든 때문이라 한다. 문제는 반복되는 폭염과 폭우 등으로 농산물의 공급 차질이 우려되면서 가격도 크게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농림수산부에 의하면 지난주 전국에 걸쳐 내린 폭우로 농작물 피해 면적이 3만ha에 육박하고 있다. 축구장 면적으로 보면 4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가축도 닭, 돼지 등 모두 178만 마리가 폭우로 폐사했다. 채소류와 과일류 등 품목에 따라 농축산물의 생산지 가격 폭등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배춧값은 벌써 급등세를 나타내고 있다. 23일 기준 대구지역 배추 소매가격은 1포기 5827원으로 지난달보다 55%가 뛰었다. 기온변화에 민감한 깻잎과 시금치 등도 오르고, 수박이나 토마토 등 과일류도 오름세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날씨가 농작물 생산 감소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는 기후플레이션이 상시화될 것 같다는 전망이 일반화되고 있다. 폭우, 가뭄, 폭염 등의 극한 날씨가 농산물의 생산 차질로 연결되고 공급이 줄어든 농산물은 물가를 끌어 올리는 현상이 상시적으로 발생한다는 전망이다. 정부가 소비 진작을 위해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이번 주부터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물가가 치솟으면 정부가 의도한 경기회복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기후변동이 장바구니 물가를 위협하는 기후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발빠른 정책이 나와야 한다.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농업기술 개발이나 품종개발 등 구조적으로 대응할 다양한 연구가 서둘러져야 한다.

2025-07-24

‘포항·영덕참치’ 브랜드 생길 날 멀지 않았다

경북도는 지난 23일 포항과 영덕에 각각 대규모 참다랑어(참치) 급속 냉동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기후 변화로 이 지역 참다랑어 어획량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고부가가치화해 어민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다. 해당 시설은 포항 수협과 영덕 강구수협에 들어선다. 각각 참다랑어 500t과 1000t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이며 포항은 2026년, 영덕은 2029년 완공될 예정이다. 최근 동해 연안에는 수온 상승과 고등어, 청어 등 먹이 형성으로 과거 잡히지 않던 참다랑어가 정치망에 많이 포획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영덕 앞바다에서 참다랑어 1300마리가 한꺼번에 잡혀 화제가 됐었다. 지난 2020년 경북 동해안 참다랑어 어획량은 5t에 그쳤지만, 지난해 168t으로 늘었고 올해는 지난 22일 기준 322t으로 4년 만에 무려 64배 증가했다. 참다랑어는 바닷속을 쉬지 않고 헤엄치며 호흡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정치망 그물을 걷어 올리면 바로 죽는다. 상품성을 위해서는 신선도 확보가 관건이다. 최근 영덕에서 잡힌 참다랑어 중 193kg짜리는 700만 원에 낙찰됐지만, 100kg짜리는 18만 원에 거래된 적도 있다. 처리 방식과 보관 상태에 따라 시장 가격이 수십 배까지 차이 나는 경우가 많다. 신선도와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잡힌 직후 내장과 피를 제거한 뒤 영하 55~60도로 급속 냉동해야 한다. 현재 경북 동해안의 냉동시설은 대부분 영하 20도 수준의 일반 냉동고로 고급 어종 보관에는 한계가 있다. 경북도는 어민들을 대상으로 한 참다랑어 전처리기술 교육장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경북도는 냉동시설이 완공되면 가공된 참다랑어를 국내 시세보다 2~3배 높은 값에 일본으로 수출하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경북도는 정부에 참다랑어 쿼터량 추가 배정을 계속 요청하고 있다. 앞으로 포항과 영덕에서 대량 생산될 가능성이 있는 참다랑어 상품이 ‘포항참치’, ‘영덕참치’라는 브랜드로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이 되길 기대한다.

2025-07-24

이혼 후 배아이식을 결정한 엄마의 마음

배아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이루어진 수정란이다. 사전적 의미로 수정 후 8주까지의 수정란을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수정 후 2주 이내의 초기 수정란을 ‘배아’로, 그 이후의 단계는 ‘태아’라고 하며 배아와 태아를 구분한다. 배아와 태아를 구분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생명권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수정 후 언제부터 인정할 것인지 문제 되기 때문이다. 2004년 부산의 한 부부는 병원에서 인공수정으로 배아 개체 3개를 얻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부인의 몸에 착상됐고, 나머지 2개는 폐기되거나 생명공학 연구에 쓰일 처지가 되었다. 부부는 인공수정으로 힘들게 얻은 배아를 차마 실험실로 보낼 수 없어 “인공수정 배아를 인간이 아닌 세포 덩어리로 규정해 연구 도구로 취급하고, 보존기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한 생명윤리법은 기본권인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태아는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로 국가가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수정 후 2주 이내의 배아는 헌법상 생명권이 인정되는 독립된 생명체가 아니라고 하며 수정된 배아를 불임이나 질병 치료 연구에 이용하고 수정 뒤 5년이 지나면 폐기하도록 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조항은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했다. 배아와 태아의 구분을 수정 후 2주로 잡은 이유에 대해 헌재는 수정 후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 초기배아는 인간으로 볼 수 없는데 이 원시선이 수정 후 14일쯤 지나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정란의 원시선은 나중에 아기의 척추를 형성한다고 한다. 배우 이시영씨가 이혼 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인공수정 했던 배아를 이식해 임신한 것이 화제이다. 전 남편의 동의 없이 아이를 가진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가, 전 남편이 아이에 대해 부양의무를 지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인 것 같다. 배아를 생성할 땐 배아의 생성과 이식에 대한 대상자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하고 이 동의는 사후에 철회할 수 있지만, 아마 이시영씨 부부는 5년 전 생성해 보관 중이던 배아의 처리 문제에 대해 따로 생각하지 못하고 이혼을 했던 것 같다. 이혼 후 배아의 보관기간 만료가 임박했고 이시영씨는 혼자 이식을 결정하고 임신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생부가 인지하거나 아이가 생부에게 인지 청구를 하면 된다. 인지가 되면 아이와 친부 사이에선 부자 관계에서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다. 이를테면 양육비를 받을 수 있고 아빠는 아이를 면접 교섭할 수 있으며, 상속도 이루어진다. 아이 둘의 엄마인 필자는 이 사건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과연 이시영씨가 이 배아를 폐기되어도 어쩔 수 없는 세포 덩이로 인식할 수 있었을까? 보관기간이 만료되어 이식하지 않을 거면 배아를 폐기하겠다는 병원의 통보를 받았을 때 “이혼했으니 폐기해주세요”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모에겐 배아도 자식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수정 후 2주 이내의 배아는 생명권이 인정되는 독립된 생명체로 볼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사실 부모의 마음과는 조금 먼 곳에 있다. /김세라 변호사

2025-07-24

고스트 건

총기 사용이 허용되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 중의 하나가 고스트 건(Ghoast Gun)이다. 고스트 건은 일반 총과 달리 총기 제조 공장에서 합법적으로 생산된 총이 아니다. 일반인이 직접 제작한 불법 총기를 말한다. 인터넷에서 부품을 구입해 제조하기도 하고, 요즘은 3D 프린팅에 힘입어 초보자도 쉽게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고스트 건은 일련번호가 없다. 제조사를 추적할 수 없어 유령 총이라고도 한다. 주로 범죄에 사용되는데, 미국 총기범죄에 사용된 총의 약 30%가 고스트 건으로 밝혀졌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고스트 건 규제에 관한 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몇 년전 인천공항 경찰은 12정의 총기를 보관하고 있던 40대 남자를 붙잡았다. 이 남자는 해외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60여 차례 걸쳐 총기부품과 총기 관련 서적을 구입해 권총 7정과 소총 5정을 만들어 보관해 왔다고 한다. 총기 사용과 관련해 비교적 안전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통해서 누구나 사제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다. 지난 20일 인천에서 사제총기로 30대 아들을 살해한 60대 남성은 유튜브를 보고 총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인터넷 등에는 실제로 총기 만드는 방법 등이 상세히 소개되기도 하고 해외 포털에서도 제작 방법 등을 쉽게 접촉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서 보았듯이 사제 총기도 실제 총에 못지 않는 위력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불안하다. 사제 총기가 발붙이지 못할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4

부조금

장례 행사가 끝난 뒤 망자의 혼백을 평안하게 하도록 지내는 제사를 우리는 우제(虞祭)라고 하며 세 번 지내기에 삼우제라 한다. 그래서 우린 “삼우, 삼우”하는 것이다. 간혹 어떤 이는 ‘삼오’라고 말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경우다. 똑같이 헷갈리는 것이 ‘부조(扶助)’이다. 이것을 ‘부주’라고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부조”라고 고쳐주면 ‘알아서 들어라.’ 라는 핀잔만 돌아오기에 요즘은 그냥 알아서 듣는 편이다. 장례식장에 꽃을 보낸다면서 조화를 화환으로 이야기해도 그러려니 한다. 과거에는 봉투에 한문으로 부의(賻儀)라고 써달라고 부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 인쇄된 봉투가 비치되어 있고, 축의금과 조의금 구분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버려 부고장이나 청첩장에 ‘성의 보내는 곳’으로 입금하면 끝이다. 세상 살면서 유효기간이 없는 것이 딱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부조 명단과 액수이다. 이건 끝까지 간다. 완전히 ‘기부 앤 테이크’이다. 부조금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은 큰 재벌이거나 고관대작들이나 호기에서 하는 행위이고 대형할인점 할인쿠폰 지갑에 쟁기고 사는 서민은 그런 짓을 잘 하지 않는다. 문제는 부조가 다 빚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한 만큼 남도 하게 되고 내가 하지 않으면 남도 하지 않는다. 역으로 말하면 내가 부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받을 마음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했는데 상대방은 하지 않고 있으면 둘의 관계는 아주 묘해진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만큼 돈독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부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배신감마저 생기게 된다. 갑을 관계에 있는 거래 관계에선 큰일 치고 난 뒤 거래 끊어지는 경우가 제법 많다. 그래서 비록 갚아야 할 빚임에도 부조를 거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이 생각보다 뒤끝이 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물론 생뚱맞게 단체 문자 톡에 뜨는 부고장이나 청첩장은 예외이다. 고등학교 동창이라지만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무슨 문상을 가겠는가. 부고장은 이해가 간다만은 청첩은 또 다르다. 단체톡에 청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일이 청첩(請牒), 즉 손님으로 와서 축하를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야 가는 것이다. 자식들 결혼 시키는 나이이자 부모님 돌아가시는 나이엔 많이 바빠진다. 한 달에 부조금으로 나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특히 정년퇴직에 별반 돈벌이가 없는 이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몇 푼이라도 벌지 않고 놀러 다니기엔 상당한 지출 액수가 한동안 계속될 조짐이 있어 사람 구실하고 살기 위해선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무조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형님, 들어온 부조금을 형제자매간에 어떻게 배분했습니까?” 이젠 부조금 배분문제 말이 많은 모양이다. 갚아야 할 빚이기에 누구 앞으로 들어온 건지 배분 작업을 하는 것이다. 어떤 집안에선 남는 돈 전부를 집안 돈으로 묶어 공동경비로 했단다. “난 그냥 남는 것 전부 어머니 다 드렸어.” 배분하는 게 이상하게 추잡스럽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땐 장남이란 게 마음이 편하다. 따라준 동생들과 제수씨들에겐 고마울 뿐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7-24

가짜에 내기를 거는 사람들

일본의 문예비평가 아즈마 히로키는 “촉시적 평면에 대하여” 논한 바 있다. 여기서 ‘촉시적’이란 ‘촉각’과 ‘시각’이 결합된 복합적 감각을 의미하고, ‘촉시적 평면’은 터치패널을 뜻한다. 세계의 변화는 미디어의 변화로 감지되는데, 현대 사회는 바야흐로 터치패널의 시대라는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TV, 영화와 같은 과거의 스크린은 출력 전용이라 만질 수 없고 만져도 내용이 변하지 않으나, 터치패널은 표시와 입력의 두 기능이 모두 가능하여, 접촉을 통해 대상을 조작할 수 있다. 즉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것이 만연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 보이면서 만질 수도 있는 것에 익숙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 차이에 천착한다. 스크린에서 터치패널로의 이행은 사회의 구체적 변화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사회의 문제나 현안을 지각하는 방식이 바뀌어버렸다고 말한다. 가령 스크린의 시대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것(화면)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그 배후의 보이지 않는 힘(감독)을 파악하지 않으면 대상(작품)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의식이 있었지만, 터치패널의 시대에는 그 관계가 변했다는 것이다. 즉 ‘표층’의 배후에 ‘심층’이 있다거나, ‘가짜’ 너머에 ‘진짜’가 있다는 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대로 ‘가짜’를 ‘가짜’인 채로 만지고 조작하고 가공하여 그 조작 자체에서 쾌를 느끼는 시대이고, 심지어 ‘가짜’를 계속 만지다보면 언젠가 ‘진짜’에 도달한다고 믿는 시대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 현상을 예로 든다. 지식인들은 트럼프의 ‘가짜’ 이미지에 속지 말고 그 뒤편의 추악한 ‘진짜’ 욕망을 봐야한다고 했으나 이런 호소는 반대로 ‘가짜’면 어떠냐는 저항을 불러일으켰다고 말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가짜’와 ‘진짜’의 관계가 뒤틀린, 탈진실(Post-truth) 현상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도 어려운 현실로 ‘부정선거론(?)’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선거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선관위의 설명이나 사법부의 판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작은 의혹에 매달려 부풀리고, 사회에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걸면서 이를 받아주지 않는 현실을 자기 믿음의 근거로 다시 동원한다. 이들에게 진실이란 밝혀지거나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실 ‘부정선거론’의 실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를 밑천으로 자기의 세(勢)를 키우려는 정치 모리배들과 마치 ‘부정선거론’이 사회의 중요한 의제인 양 그들의 주장을 받아써 주는 언론이 문제라 보인다. 이들은 부정선거 운운이 가짜인 것을 알지만 모른 척 계속 만지고 다루고 접촉한다. 그 가공의 결과가 미칠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서는 무심한 채 정적 제거에만 혈안이다. 혹은 부정선거가 담론화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혼란으로부터 취할 정치적 이득이 있다고 믿는다. 가짜를 가짜인 채 계속 만지다 보면 거기서 일말의 진실에 도달할 거라는 사이비 소망의 출현을 어떻게 봐야 할까? 왜 이들은 사회를, 법을, 합리를, 정치를, 사람을 믿지 못하나? 이런 현상의 배후에 터치패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짜에 내기를 거는 사람들에 관해서는 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 같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7-24

안전한 여름, 우리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무더위, 그리고 그 속을 식혀주는 반가운 빗소리. 우리에겐 익숙한 여름 여정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후변화로 인해 국지성 폭우와 강풍 같은 이상기후가 잦아지며, 이 계절은 더 이상 평온한 휴식의 시간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장마철에는 침수와 누전, 냉방기기의 과도한 사용 등으로 인해 전기 화재의 위험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은 가정뿐만 아니라 여름휴가를 맞아 많은 인파가 몰리는 펜션, 호텔, 캠핑장 등 숙박시설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공간이 한순간의 부주의로 인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다중이용시설인 숙박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는 다수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철저한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제 지난해 8월, 부천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는 냉방기기의 전원선에서 시작되어 빠르게 객실로 번졌고, 이로 인해 무려 19명의 인명피해(사망 7명, 부상 12명)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는 냉방기기의 안전 점검과 함께, 기본적인 소방시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사례입니다. 의성소방서는 여름 피서철에 때맞춰 6월 30일부터 7월 31일까지 관내 숙박 및 휴양시설을 대상으로 집중 화재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현장 점검을 통해 시설 안전을 확인하고, 관계자들에게 화재 예방 수칙을 안내하는 등 사전 사고 예방에 힘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재 없는 안전한 여름을 위해서는 소방 당국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용객과 시설 관계인의 관심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용객들은 숙소에 도착했을 때 발신기나 비상구의 위치, 완강기 사용법 등을 미리 확인하고, 에어컨 등 냉방기기 사용 시에는 과부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시설 관계인 또한 소화기, 비상조명등, 감지기 등의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하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노후 전기기기나 전선의 상태도 수시로 확인해야 합니다. 민박이나 펜션 같은 소규모 숙소일지라도, 기본적인 소방시설은 반드시 갖춰야 합니다. 화재는 예고 없이 찾아오며, 한 번의 부주의와 사소한 무관심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 우리 모두가 한 번 더 점검하고, 한 번 더 살펴본다면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작은 실천이야말로 더 큰 불행을 막는 가장 확실한 예방책입니다. 안전한 여름, 우리의 관심과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2025-07-24

그 해 여름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로 시작하는 20여 년 전 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재생해서 그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해 여름, 텐트 안은 찜통 그 자체였다. 아스팔트가 진득진득하니 녹아내릴 무더위, 폭염이었다. 군용 텐트는 어디에서 났는지 노조위원장이 그곳에 누워있었다. 열흘을 넘기는 시점이 되자 그는 음료수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팔에 링거가 꽂히고 그는 쓰러진 채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누워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정오, 나뭇잎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매미 소리가 도심의 가로수에서 울어댔다. 노조 사무실에서는 위원장의 목숨이 위험하다. 싸움을 여기서 중단할 것인지 힘들더라도 버틸 것인지 노조 집행부가 머리를 맞대며 갑론을박을 펼쳤다. 하지만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노조 탄압과 임금동결이라는 큰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노조의 대항이었다. 답 없는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었다. 위원장을 제외한 집행부는 하루에 밥 한 끼만을 먹으며 일을 하며 버티고 있었다. 일을 하니 그 정도라도 먹어야 한다는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환자의 식사를 하루 세끼 챙기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며 일하다 보면 현기증으로 간혹 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 것을. 응급실 앞에서 관리직원을 만났다. 그는 곁 눈질을 하며 노조위원장 때문에 병원 상황이 안 좋다며 노조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어설프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려 그를 넘어뜨리고 주먹다짐을 했다. “노조위원장이 죽게 생겼는데 그 따위 소리를 하느냐, 노조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고 함부로 말하느냐” 라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조합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병원과 노조의 대립구조가 눈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끝장을 보아야했다. 여기서 지면 노조위원장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결론으로 나는 제대로 한 판 싸움을 시작했다. 열흘이 넘도록 병원 관리자가 나타나지 않다가 흥분한 노조원들의 상황을 보고받은 경영진에서 임금 테이블이 다시 만들어졌다. 다행히 노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동결은 풀렸고 노조는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리고 노조위원장의 단식투쟁도 당연히 끝으로 가고 있었다. 열이틀의 단식을 푸는 날, 부드러운 죽이라도 끓여주었어야 했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다. 그 빠짝 마른 창자에 들어간 것은 김치찌개와 밥이었다. 배가 고픈 그가 밥 한 그릇을 마저 비우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후 그는 건강 상태가 나빠져서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그래서 밥이라도 물을 넣고 끓여서 죽으로 먹었더라면 위장병으로 평생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을. 이후 그는 병원을 관두었고 본향인 대구로 가서 일자리를 옮겨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구나 똑같은 경우의 수는 없다. 나는 그가 되어보지 못했기에 그의 힘듦을 다 이해할 수도 없었다. 40도가 넘는 좁은 텐트 속에서 링거를 맞고 있던 그가 간혹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올 여름 폭염에 가로수는 축 쳐져있고 매미는 절규하듯이 목청을 높이고 있는데. 이미 고인이 된 그녀 정은임을 AI 기술로 재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20여 년을 뛰어넘은 지금의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잠시 눈을 감는다.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그녀를 그때는 몰랐다. 대부분의 사람이 잠든 시간이었던 그리고 서슬이 퍼렇던 그 시대 그 시절에도 자기의 목소리를 냈던 용기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자와 DJ에게 박수를 보낸다.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배문경 수필가

2025-07-23

칠포리 암각화

칠포리 암각화 소중한 것은 좀 숨어 있는 법이다 가치는 창대하나 존재는 소소하다 이처럼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돋을새김으로 바위에다 솜털처럼 마음을 박아넣는 것이다 사람 사는 방법에 권력은 무력하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져다 해석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별의 길을 알고 하늘의 뜻을 곱씹어도 당신을 사랑하는 일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존재가 곧 축복이니 말이다 그것이 별의 길이고 하늘의 뜻이다 무너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일이 도무지 고마운 일이라, 비록 기록되지 않아도 마음에 새기니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그런 것이다. … 비가 내리는데도 오래 걸으며 둘러보았다. 대체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제단이나 의식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해석을 한다. 어쨌든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의 나약함만 확인할 뿐이다. 그리고 권력의 냄새가 너무 진동한다. 내게는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 상상력의 동력을 하나 확보하는 오브제에 불과하다. 의미를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역사가에게나 문헌학자들, 금석학이나 향토사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의미일지는 모르나, 나는 모르겠다. 별의 길이나 알아 사람의 뜻을 챙겼으면 오죽 좋겠다. 비 내리는 들판은 축축했지만 처마 밑은 참 따스했다. 별의 행로의 끝인 사람의 집을 한 채 짓고 싶었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7-23

강선우 사퇴, 더 빨랐어야 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 민주당의 우군으로 분류돼온 진보 시민단체들, 여성단체, 결정적으로 다수 국민이 “안 된다”는 의견을 분명하게 전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이야기다. 장관은 조선시대로 치자면 판서(判書).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에 해당한다. 자신의 위로 왕과 3명의 정승이 있을 뿐인 최고위직 벼슬이다. 당연지사 빼어난 도덕성과 능력, 여기에 백성과 아랫사람에 대한 긍휼을 갖춘 인물이 앉아야 할 자리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인사만사(人事萬事)’다. 양질의 사람을 곁에 두고 써야 정권의 격이 올라간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2200년 전 중국으로 돌아가 보자. 진나라를 세운 시황제 정(政)에겐 총애하던 환관이 한 명 있었다. 조고(趙高)라는 자다. 그는 시황제의 입 속 혀처럼 굴었다. 헤헤거리며 왕의 뒤를 따라다녔고, 아부와 아첨으로 높은 벼슬을 얻었다. 조고의 권세는 시황제 사후까지 지속됐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 칭해도 어느 누구도 이에 맞서 “저건 말이 아니라 사슴”이라 대꾸하지 못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다. 이 간신배가 진나라를 망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다. 대통령선거 운동 기간엔 자신을 돕고, 단식을 할 때는 이부자리를 살폈으며, 자동차 옆 좌석에 앉아 함께 파안대소하던 사람을 매정하게 내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어찌 보면 대통령도 결국 사적인 정에 휘둘리는 인간이 아닌가. 천만다행으로 23일 강선우가 스스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성찰하며 살겠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만시지탄. 논란이 지속된 한 달간 자신은 상처투성이가 됐고, 후보로 지명한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됐으니. 사퇴가 더 빨랐어야 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23

‘어느 편이냐’를 물어야 하나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는 순간이 있다. 무슨 말을 꺼냈다간 “아, 저 사람은 그쪽이구나” 하는 낙인이 찍힐까 봐서다. 실제로 이런 질문을 이따금씩 마주친다. “당신은 어느 편이세요?” “진보세요, 보수세요?” 마치 당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면 먼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듯이. 처음엔 단순한 정치적 호기심이겠거니 생각한다. 사실 질문에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압박이 숨어있다. 어느 쪽 성향인지 밝혀야 대화가 이어지고 성향이 다르면 말조차 섞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같은 직장에서, 한 동네 커뮤니티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이 나와 같은 편인지’가 관계의 시작점이 되어버렸다. 건강한 민주사회가 감당해야 할 정치적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자체를 위축시키는 집단주의적 압박으로 이어진다. 갈등과 혐오가 일상의 언어 속에 침투했고, 사람들은 점점 ‘생각’을 드러내기보다 ‘입’을 닫는 쪽을 택한다.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이 말이 어느 편으로 오해받을까?’부터 계산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게 정상일까? 현상의 배경에는 한국사회의 ‘진영화’구조가 있다. 대선이 끝나면 승패와 관계없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이 아닌가. 이제는 대선 이후에도 진영 갈등은 오히려 격화된다. 여러 현안에 대한 입장도 자동적으로 진영에 따라 배열된다. 경제, 복지, 외교, 국방, 교육, 심지어 재난 대응에 대한 평가까지도 ‘그쪽이냐 아니면 이쪽이냐’로 나뉜다. 이념의 내용은 사라지고 태도와 감정만 남는다. 이념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는 가치판단의 체계다. 지금은 정작 어떤 정책을 지지하느냐보다 ‘누가 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진보정권이 추진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수 정권이 하면 무조건 지지하거나 그 반대로 움직이는 식이다. 정치적 판단이 아닌 정체성의 표지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같은 경향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말의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 특정사안에 대해 언급할 때 상대의 성향을 먼저 가늠하려 하지 말고,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가치관이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의 ‘편’을 파악하려 들기보다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도 어느 진영에 속한다는 생각을 벗어야 한다. 의견이 매번 한 편에만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생각에 일관성이 없다는 게 아니라, 삶이 단순하지 않기에 개인의 의견도 사뭇 복잡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언론도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 뉴스를 전할 때 단순한 ‘편 대 편’ 구도가 아닌, 이슈 그 자체의 맥락과 내용을 깊이 있게 전해야 한다. 토론의 장을 마련하되 논리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프레임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진영정치의 피로감은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과 언론 모두가 진영적 구도를 재생산하거나 소비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는 점도 돌아보아야 한다. ‘어느 편이냐’는 질문은 관계를 시작하는 문이 아니라 관계를 가르는 선이다. 그 선을 흐리게 만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생각을 편안하게 인정하는 곳에서 비로소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5-07-23

강은희 3선도전, 대구교육감 선거전 불붙나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이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3선 도전을 시사했다. 그는 지난 22일 열린 아시아포럼(대구경북 중견언론인 모임)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3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공교육 혁신의 여정을 중단없이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 교육감은 전국 17개 시도교육감 중 유일한 여성 재선교육감이다. 지난해 5월 전남 여수에서 열린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협의회장(임기 2년)에 선출됐다. 물리교사 출신인 강 교육감은 기업체 대표,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회장, 국회의원을 거쳤으며,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장관을 지냈다. 진영별 평가는 다르지만, 강 교육감은 전국적인 학교 폭력과 교권 침해 등 수많은 사건·사고 속에서도 무난하게 교육감직을 수행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초중등학교에 전국 최초로 ‘마음학기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며, ‘IB(국제 바칼로레아) 수업’ 확산에도 총력을 쏟고 있다. 마음학기제는 학생들의 심리정서적 변화가 가장 많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 시기를 대비해 직전 학년(초등 5학년, 중학 1학년 )을 대상으로 마음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IB 수업은 과학, 수학,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합해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수업방식이며, 국제적으로 공교육 정상화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강 교육감은 특히 초등학교 AI(인공지능) 교과서 도입을 주도해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국회가 민주당 주도로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격하시켰지만, 그는 “AI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디지털교과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감 선거는 지난 2007년부터 직선제로 치러졌지만, 정당 공천이 없기 때문에 보통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치러졌다. 이 때문에 ‘깜깜이선거’라는 말도 나온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강 교육감이 3선 도전을 일찌감치 밝힌 것은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2025-07-23

APEC D-100, 세계 무대에 오르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경북도는 APEC 정상회의 개최 100일을 앞둔 23일 “APEC 성공개최를 위한 회의장 착공 등 주요 인프라와 숙박, 문화 콘텐츠 등 준비 상황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경주화백컨벤션센터 내 정상회의장은 40%, 국제미디어센터는 6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또 국립경주박물관 내 마련될 만찬장은 신라금관 등 유산과 전통예술이 결합된 갈라 만찬 공간으로 조성 중에 있다고 했다. 경주는 인천과 제주를 제치고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APEC의 개최지로 결정되는 행운을 얻었다. 비록 기초자치단체일지라도 신라 천년의 고도로서 가장 한국적 문화와 역사를 세계인에게 보여줄 장소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경주로서는 이번 행사만큼 문화역사도시 경주를 세계에 알리고 이를 바탕으로 경주 발전을 도모할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렵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APEC 개최지는 생산유발효과만 1조5000억원에 달하고, 일자리가 2만개 이상 창출된다고 한다. 이런 파급 효과를 극대화 시켜가는 것이 APEC 행사를 준비하는 경북도와 경주시의 역할이다. 물론 행사를 주관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준비하고 가져갈 성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인 경북도가 APEC을 세일즈 경북의 장으로 삼고 글로벌 CEO 유치와 지역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겠다고 나선 것도 APEC의 경제적 가치를 활용하려는 의도이다. 특히 경주시는 APEC 개최와 관련해 도시 인프라가 개선되고 관광지로서 도시 면모가 크게 격상될 것이다. 이젠 포스트 APEC까지 생각하며 APEC을 준비하면 경주도 로마와 같은 국제적 역사 관광도시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APEC의 성공을 위해 앞으로 남은 100일 동안 반틈없는 행사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21개국 정상 등 2만명이 찾아오는 이번 기회야말로 경주를 세계무대에 올릴 절호의 찬스가 아니겠는가.

2025-07-23

오대산 상원사 관대걸이

697년 신라 효소왕 때였다. 망덕사에서 낙성회가 열려 왕이 친히 가서 공양하였다. 그때 비파암에서 왔다는 초라한 모습의 스님이 재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왕은 내키지 않았지만 말석에 앉히라고 명했다. 재가 끝나갈 즈음, 왕은 스님에게 놀리듯이 말했다. “돌아가서는 사람들에게 국왕이 친히 공양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하지 말라.”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왕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신 석가를 공양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스님은 몸을 솟구쳐 하늘로 날아 사라졌다. 왕은 놀랍고도 부끄럽고 두려워 스님이 간 쪽을 향해서 절했다. 그가 간 남산을 찾아보게 하니 바위 위에 지팡이와 바리때가 있었다. 스님이 원래 계셨다는 암자엔 석가사를 창건하고, 그의 자취가 없어진 곳엔 불무사를 지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쓴 일연은 이와 비슷한 예화를 인용했다. 삼장법사가 왕을 초대한 행사에 초라한 행색을 하고 갔을 때는 문지기가 막더니 좋은 옷을 빌려입고 가자 막지 않았다. 자리에 앉고 음식을 내어오자 법사는 음식을 옷에게 먹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내가 초라한 행색일 때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더니 이 옷을 입고 들어오자 이 자리를 허락하니 옷 덕분이 아니겠소. 그러니 옷에게 음식을 대접해야 마땅하지 않겠소.” 삼국유사에는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관음보살들이 몸을 바꾸어 인간에게 감응한 기적의 이야기가 매우 많다. ‘부처님을 몰라보는 어리석은 왕과 모습을 감춘 부처님 이야기’ 화소(話素)는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지난 일요일, 청계사 108기도성지순례로 오대산 상원사에 가서 이 이야기 화소를 다시 만났다. 신라왕이 아니라 조선의 왕 이야기였다. 조카인 단종을 죽인 세조는 꿈에 나타난 단종 모가 뱉은 침 자국마다 종기가 났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온천과 맑은 계곡을 찾았는데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고 상원사 물 맑은 계곡에서도 몸을 씻었다고 했다. 왕은 종기 가득한 등을 보이기 싫어, 신하들도 물리치고 혼자 몸을 씻었다. 마침 계곡에서 놀고 있는 동자승에게 등을 씻어달라 부탁하였다. 다 씻고 나서 세조는 동자승에게 “어디 가서 임금의 몸을 씻어 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라”고 말하자 동자승은 “어디 가서 문수보살이 직접 등을 씻어 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세조의 종기는 씻은 듯이 나았다. 현신한 문수동자에 감복한 세조는 화공을 불러, 기억을 더듬어 문수동자상을 그리게 하였고, 문수동자상을 조각하게 하였다. 이것이 상원사 문수전에 모셔져 있는 국보 목조문수동자좌상이라고 한다. 상원사 입구에는 세조가 목욕을 위해 의관을 벗어 걸쳐두었다는 “관대걸이”가 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세월의 이끼가 내려앉아 있다. 이야기가 역사로 만들어진 현장이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5만 진신이 머무는 성산이기도 하니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불심 깊은 자들에게는 숱한 기적이 재생산되는 산이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7-23

더운 날인데도 손발이 차요

손발은 늘 차갑고 가슴은 뜨겁고 답답하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소화도 잘 되지 않으며 조그마한 일에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병원에서 많은 검사를 해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본인은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이런 증상은 단순히 피로 누적이나 체질 문제로 보기보다는 화병과 자율신경계의 불균형, 이로 인한 체내 열 분포의 비정상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화병은 억눌린 감정이 해소되지 못하고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신체 증상으로 드러나는 상태다. 화병이 있는 사람은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오르는데 그 열이 체표로 발산되지 못하고 흉곽 내부에만 정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보일러가 지나가는 관이 막히면 한쪽은 뜨겁고 다른 쪽은 냉골이 되는 것처럼 가슴은 답답하고 열이 나지만 손발은 늘 차갑고 시리다. 이런 열의 정체는 교감신경계를 과도하게 항진시켜 말초혈관을 수축시키고 위장관 운동과 수면 리듬까지 무너뜨린다. 전신적으로는 자율신경 실조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단순한 냉증이나 열증이 아닌 속에 울체된 열과 이로 인해 말초로 흐르지 못하는 기혈의 정체로 본다. 심화가 흉중에 치밀고 스트레스로 인한 간열이 기혈순환을 막으면 몸속의 열은 위로 뜨고 기운은 아래로 가지 못한다. 그래서 가슴은 뜨겁고 답답하며 손발은 차가워지고 소화는 더디며 마음은 불안하고 잠은 깊이 들지 못한다. 이는 마음과 몸 내장과 신경이 서로 얽혀있는 복합적인 불균형 상태이며 반드시 전신적인 조율이 필요한 시점이다. 치료는 단순히 열을 내리거나 기를 보하거나 몸을 따뜻하게만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주고 기혈순환을 원활히 하며 자율신경의 교란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억울함과 분노가 중심이 된 화병에는 가미소요산이나 소시호탕 등 시호가 포함된 계열 처방들이 쓰이고 두근거림과 불면이 동반되면 감맥대조탕 천왕보심단 같은 심신안정 처방의 합방을 고려할 수 있다. 속열과 말초냉증이 동시에 있는 경우에는 가슴의 열을 내리는 황련이나 피부를 따뜻하게 하는 육계 등을 상황에 따라 병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이러한 복합 증상에 한약 처방과 더불어 약침이나 자율신경 조절 치료도 병행된다. 성상신경절 익구개신경절 대후두신경 같은 부위에 초음파 가이딩으로 정밀하게 약침을 시술하면 교감신경의 긴장을 낮추고 말초 혈류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한약과 더불어 시술하면 심장의 두근거림이나 가슴의 압박감을 줄이고 불면을 완화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증상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예민함 때문이 아니라 이는 몸과 마음의 연결고리가 실제로 깨지고 있다는 신호이며 전문적인 조절이 필요하다. 손발이 차가운 것도 가슴이 뜨거운 것도 잠을 못 자는 것도 모두 따로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축으로 연결된 흐름이다. 몸은 복잡한 듯 보이지만 흐름을 읽고 조율하면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화를 억누른 채 살아온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한약과 약침 그리고 자율신경의 회복은 그 흐름을 되돌리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7-23

말의 결, 마음의 결

나무를 만지다 보면 결이 느껴진다. 결을 따라 쓰다듬으면 부드럽지만 거슬러 만지면 손끝이 걸린다. 말도 그렇다. 결이 맞으면 대화는 잘 닦인 포장도로처럼 부드럽지만 결이 다르면 말끝마다 사각거린다. 요즘 나를 지치게 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녀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말을 정답이라 믿는다. 그녀의 말은 늘 선을 긋고 그 선 위에서만 옳고 그름을 가른다. 처음엔 설명도 했고, 우회해서도 말했고, 직진으로도 해보았으나 여러 각도의 내 노력이 무색할 만큼 그녀와의 대화는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녀와의 대화는 소통이 아니라 그녀의 확신을 확인하는 절차처럼 느껴졌다. ‘허수아비의 오류’에 빠진 그와의 대화는 나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앗아갔다. 거리를 두고 싶었다.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관계는 늘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내 말의 결도 거칠어졌다.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고 냉소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나를 지키려고 뱉어낸 말들이 나를 더 무겁게 만들고 나만의 틀에 가두어 헤어나오기 힘들게 만들었다. 잘 말하고 싶어 대화창 속에 만들어 낸 언어의 조합을 지우고 삭제하고 감정을 절제하고 최선을 다해 담담하게 보내도 그녀의 답은 가시가 백만 개쯤 붙은 날카로운 검이 되어 내게 돌아온다. 말이 거칠어질수록 내 안의 불안도 커졌다. 그녀와의 소통에는 너무 많은 틈이 벌어져 그 어떤 강력한 본드를 붙인다 한들 틈을 메우기는 힘들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진심이 아니라 방어였고 넘지 못할 벽을 넘는 일이었다. 잘못된 결을 풀어내야 할 의지조차 희미해졌고 이해 대신 비난만이, 신뢰 대신 의심만이 활어처럼 팔딱거렸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 내 말에 틈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 그들과의 대화는 정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날은 나보다 더 흥분해주고 어떤 날은 나보다 더 차분하고 어떤 날은 조용히 말을 놓아둔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는 말이 자라난다. 나도 조금씩 부드러운 결을 회복하게 된다. 말이란 결국 마음의 결이다. 서로 다른 결을 억지로 맞추려 애쓰기보다 다름을 인식하고도 멀어지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에 더 깊이 알아가고 있다. 꼭 잘 맞는 사람만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맞지 않아도 상처 주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의 배려와 마음의 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의 결을 따지지 않고 내 마음의 결을 맞춰주는 사람들은 여전히 주위에 많다. 무심코 흘리듯 내뱉은 하소연 하나를 기억하고 먼 길을 달려와 미역국 한 냄비와 갈비찜을 두고 가며 밥 잘 챙겨 먹어라 말을 건넨 사람,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내 표정의 그늘을 읽고 조용히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 내 이야기에 해답 대신 눈물을 건네며 함께 울어주는 사람, 그들은 말보다 마음을 먼저 건네는 이들이다. 그들의 말은 내 안에 스며들어 날카로워진 결을 다듬고 상처 난 마음의 결을 천천히 봉합한다. 나는 그런 이들 앞에서야 비로소 ‘말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서로의 결을 존중하고 아껴주는 이 관계들 속에서 나는 말보다 더 깊은 대화를 배운다. 대화의 결이 좋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비워내게 해준다. 내 말이 누군가의 쉼이 되어주기를, 내가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길 바라게 된다. 나의 말이 가까운 이들의 마음을 베지 않기를, 내가 꺼낸 말로 누군가가 결을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말은 결국 마음을 데우는 그릇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을 다치게 하는 칼날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으로 말을 쓸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관계는 언제나 뜻하지 않게 엇갈리고 말 한 줄에 멀어지기도 한다. 나의 입을 통해 던져진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을 때 무엇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해 본다. 나의 말이 누군가의 상처가 아니라 지친 하루의 등불이 되고 웃음이 되기를 다시 복기해 본다. 말의 결이 마음의 결임을 오늘도 새겨본다. /김경아 작가

2025-07-22

‘파친코’의 선자가 살았던 이카이노를 찾아서

2025년 4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는 세계 박람회가 열리고, 이를 기념하여 간사이 지역 곳곳에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평소에 볼 수 없는 귀한 전시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6월 9일부터 6월 12일까지 간사이 지역을 답사하기로 했는데요. 6월 9일 오후에 도톤보리 근처 작은 호텔에 짐을 푼 저는 우선 오사카의 이쿠노구(生野区)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이쿠노구는 과거 이카이노라 불리던 곳으로, 재일한인의 성지와도 같은 장소입니다.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이민진의 ‘파친코’(2017)에서 주인공 선자가 고향인 부산 영도를 떠나 일본에서 정착한 곳이 바로 오사카의 이카이노입니다. 이카이노(猪飼野, 돼지 기르는 곳)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고대부터 돼지를 기르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20세기 들어서는 재일한인들이 이 곳에서 돼지를 길렀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듯이, ‘파친코’에서는 이카이노에 도착한 선자가 이카이노는 동물 냄새가 “화장실 냄새보다도 더 지독하게” 나는 곳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격적으로 이카이노에 조선인들이 몰려든 것은 오사카가 ‘동양의 맨체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공업도시로 발전한 것과 관련됩니다. 1910년대 히라노강 굴착 공사가 시작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요에 맞춰 조선인 노동자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에 왔던 것입니다. 특히 제주도와 오사카 사이에 정기항로가 생기면서, 이곳에는 제주도 출신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폭증한 재일한인으로 인해, 1930년대 초에는 이미 이 지역에 ‘조선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1933년에 발행된 ‘아사히그라프’에는 ‘백의와 돼지머리로 가득한, 오사카의 명소 조선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입니다. ‘파친코’에서 남편이 투옥되며, 집안의 가장이 된 선자도 커다란 김치 항아리를 나무 수레에 싣고 이카이노의 노천시장에 가서 장사를 시작합니다. 과거 ‘조선시장’으로 불리던 상점가는 거리 정비를 거쳐, 오늘날의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현재 ‘코리아타운’은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하는 오사카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코리아 타운’으로 가기 위해 난바역에서 지하철을 탄 저는 쓰루하시역으로 향했는데요. 쓰루하시역 앞에도 재일한인의 자취는 강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쓰루하시 역의 개찰구를 나와 미로같은 골목에 들어서자, 한식 특유의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 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상표나 음식들 사진도 가득했는데요.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쓰루하시 ‘국제시장’이었던 겁니다. 1945년 패전 후 쓰루하시역 부근에는 암시장이 생겼고, 이곳에서 조선인 노점상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의 암시장이 모태가 되어 오늘날의 쓰루하시 ‘국제시장’이 형성된 것입니다. ‘국제시장’을 구경한 저는, 10분 정도 걸어 일본 내 최대 규모의 재일한인 마을이라는 ‘오사카 코리아타운’으로 향했는데요. ‘백제문’을 지나자 오색 문양으로 꾸며진 400미터 거리의 ‘오사카 코리아타운’ 거리가 펼쳐졌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한글 간판이 가득했고, ‘민속촌’이나 ‘광장시장’ 같은 낯익은 이름의 상호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한류의 인기를 반영해서인지 곳곳에 ‘케이(K)-컬쳐’ 관련 가게들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무엇보다도 ‘오사카 코리아타운’의 한복판에 있는 ‘오사카 코리아타운 역사자료관’이 유익했습니다. 2023년에 설립된 이 역사자료관은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재일한인과 코리아타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귀한 자료를 알뜰하게 모아 놓고 있었습니다. 크게 ‘인트로덕션’, ‘현재-1988년’, ‘1988년-1945년’, ‘1945년-고대’, ‘알면 더 재미있는 코리아타운’이라는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오랜 시간 꼼꼼하게 전시자료들을 살펴보니, 재일한인의 역사는 물론이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오랜 역사가 손에 잡힐듯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일한인의 성지와도 같은 이곳에는 민족교육을 행하던 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1923년 설립)와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1946년 설립)도 있었는데요. 특히 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는 2012년에 유네스코의 평화와 국제적 연대라는 이념을 실천하는 학교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스쿨’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학교는 학생 수의 감소 등으로 2021년 3월(오사카시립미유키모리소학교)과 2023년 3월(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에 각각 폐교된 상태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평일 오후여서인지,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한 ‘오사카 코리아타운’을 걸으며, 재일한인 앞에 펼쳐진 새로운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7-22

기후변화와 재난에 대비하여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정사정없는 괴물 같은 수마에 할퀴고 휩쓸려 무너진 상흔이 처참하기만 하다. 6월초부터 폭염으로 심상치 않던 날씨가 ‘극한폭우’의 가공스러운 물폭탄으로 국토 곳곳을 불과 몇일만에 무자비하게 초토화시키고 말았다.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고 산사태로 순식간에 삶터가 사라지는가 하면, 애지중지 가꾸고 키우던 농작물과 가축들은 흔적 자취조차 없어졌으니, 억장이 무너지는 실의와 비통함을 그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더욱이 경남 산청군은 지난 3월 장기간의 산불이 난 지역에 기록적인 ‘700mm 괴물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커져서 안타깝기만 하다. 예고된 장마나 태풍급의 영향도 아닌데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걷잡을 수 없는 이상기후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연재난의 위협과 경고에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수해현장을 보면서 하루하루 무탈하게 일상을 보내며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지켜간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이른바 기후변화는 자연현상의 한 부분으로 일정한 지역에서 시시각각 또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는 기상의 변화라 할 수 있다. 폭염, 폭우, 가뭄 등 극단적인 기상현상의 증가로 바람직하지 못한 기상이변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러한 기상이변은 인간활동이나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등으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지구온난화에서 비롯되며,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등을 초래해 인간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음산한 구름떼/회오리에 휘감겨//비바람 사정없이 마구마구 쏟아지고 휘몰아쳐/땅과 하늘이 할퀴고 소스라치니 골(谷)과 내(川)가 요동치고/강과 산이 술렁거려 패이고 깎이고 흔들리고 꺾이다가···./적시고 파고들어 불어나 넘쳐 둥둥 떠서 여지없이 휩쓸려 떠내려가는/과욕의 부유(浮遊)같고 오욕의 민낯 같은 잡동사니의 난무(亂舞)-//삼킬 듯 날름거리는/황토빛 하류의 혀”-拙시조 ‘하류(下流)’ 전문 시대가 녹록지않고 사회적인 분위기마저 어수선해지니 날씨마저 갈수록 돌변하는가. 온통 집어삼킬 듯 괴력을 보이며 산하를 어지럽게 휘젓어놓은 자연재난 앞에 속수무책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재난에 대비하고 위협에 대응하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거나 상시적인 피해가 재발되는 인재(人災)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습 침수나 홍수경보는 물론이고 산불이나 산사태 대응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 예측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단기적인 조치와 중장기적인 복원계획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산불과 산사태는 하나의 연쇄고리로 작용해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재해와 재난은 일상 속에 늘 도사리고 있다. 자칫 방심하거나 소홀한 틈을 타고 어김없이 파고드는 사고와 재난의 위험 앞에 늘 조심하고 안전한 마음을 가다듬는 자세와 교육ㆍ훈련을 통해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해가는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기상이변을 염두에 두며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이 다루지 않으며, 다각적인 방안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기후변화와 자연재난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비태세를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22

종교와 기업 혁신문화

말레이시아는 다종교, 다민족 국가로 이슬람교 중심의 다문화 사회이다. 이슬람교는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기업 문화와 경영 방식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 이슬람교는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의 종교이고 국교이다. 인구의 20% 중국계는 불교, 6% 인도계는 힌두교, 도교 및 기타로 구성된다. 종교의 자유 보장은 헌법상 명시되어 있고 자국민 우대 정책은 법조계, 고위 공직 등 사회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 군법보다 상위법이 종교법이고, 이슬람 종교의 영향으로 말레이 식당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고, 할라 의식을 거친 허락된 식당에서만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 기업에서 보면, 공장 건축 시 이슬람교 기도실이 설계에 있어야 허락되고,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한다. 이슬람의 가치관은 식품, 화장품, 금융 등 모든 산업에 할랄 인증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 또한, 하루 5회 기도 시간을 고려한 시간 운영계획이 필요하고, 8월 라마단 금식 기간에는 근무시간 조정, 낮 시간 회식, 행사 자제와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존중 등을 고려해야 한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민족 간 그리고 종교 간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고, 갈등을 피하고 공존을 지향하는 조직문화로 가야 한다. 또한, 현지 문화와 융합된 인사관리가 필요하다. 필자가 P사 말레이시아 2개 법인을 1년 7개월 간 컨설팅 할 때 일이다. 사무실은 중국계와 인도계가 주류를 이루고, 공간마다 자민족의 신을 모시는 신전과 법당이 있다. 생산직에 주류를 이루는 말레이계는 공장 일정 위치에 기도실이 있고 하루 근무 중에 5번의 기도와 금요일은 인근 큰 사원에 들러 기도를 한다. 우리 관점에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나 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삶의 문화다. 2개 법인 중 하나는 말레이계 중심의 생산 흐름이고, 1개는 네팔,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외국인 노동자가 주류를 이룬다. 2개 법인 인적 구성과 종교, 기업 상황의 조건은 확연히 큰 차이가 있다. 여기서 혁신을 심어가는 일은 융합과 수용성에서 적잖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모사의 혁신 방법을 종교와 문화, 인적 구성이 다른 해외 사업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성공하기 어렵다. 종교와 사회문화, 인적 구성원의 사고와 일하는 방식을 고려하여 현지에서 공감하는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실행력을 높여 가야 한다. 혁신 활동의 토양인 기업 문화의 근간이 되는 인사 및 조직문화의 전략이 필요하다. 다문화를 존중하는 조직 구조 설계를 위한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등 혼합 조직 구성이 필요하다. 음식과 일하는 사고, 습관이 달라서 융합이 어려운 민족과는 협력과 시너지 창출의 방향을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이슬람 라마단, 힌두 디왈리(Diwali·빛의 축제), 중국 춘절 등 종교의 문화를 고려한 휴무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기업에 혁신을 심어가는 일은 종합으로 봐야 한다. 종교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존중하는 조직 운영체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종교와 혁신 활동 흐름이 조화를 이룰 때 좋은 토양이 되어 성공적인 기업 혁신 문화로 간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22

충격의 기후 뉴노멀

작년 가을에는 금(金)사과 파동에 이어 금배추 파동이 일어났다. 배추 한통이 2만원까지 치솟았다. 배추 대신 양배추 김치가 식단에 등장했다. 배춧값이 폭등한 것은 작년 여름 전례없이 이어진 고온과 가을 들어 내린 집중 호우 때문이다. 토마토 값이 폭등하자 토마토가 없는 햄버거가 출시되는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올 여름에는 여름철 인기 과일 수박값이 3만원을 돌파하면서 소비자들을 놀라게 했다. 폭염과 장마로 작황이 부진한 탓이다. 한 때 대구는 사과 주산지로 명성을 날렸다. 대구 사과는 조용히 사라지고 지금은 청송 등 경북 북부지방이 사과 주산지로 바뀌었다. 그런데 기상학자들은 2100년 쯤에는 사과 재배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을 거란 예측을 내놓는다. 이런 현상들은 기상이변이 우리 일상을 바꾸는 한 단면이다. 과거의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희한한 세상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학자들은 뉴노멀이라 이름을 붙였다. 뉴노멀이란 새로운 질서를 뜻하는 말이다. 세상의 표준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매년 200mm의 폭우가 쏟아져도 이젠 그것이 바로 정상인 세상이다. 지난주 경남 산청지방에 내린 폭우로 13명의 사망·실종자가 생겼다. 1년에 내릴 비의 10%가 한 시간만에 쏟아졌다. 수백 년 만에 한번 올까 말까 한 폭우가 이젠 매년 찾아온다고 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5년 내 사상 최악의 더위가 올 것”이라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를 만들어 낸 인류에 대한 자연의 습격일까. 재앙에 가까운 기후 뉴노멀에 대응할 준비가 필요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7-22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 대구시가 앞장서야

대구시치과의사회는 지난 2014년 3월에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회를 발족시킨 바 있다. 10여 년 전부터 대구치과의사회가 중심이 돼 국립치의학연구원의 대구 유치 활동을 벌인 것은 대구가 치의학연구의 최적지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치의학연구원은 치의학 연구의 전반적 발전은 물론 전문인력 양성, 관련 산업의 활성화 등 치의학 분야의 종합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되는 곳이다. 정부가 지방에 연구원을 두고자 하는 이유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이다. 대구는 치의학 분야 연구와 교육의 중심지다. 치의학 관련 산업과 종사자도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다. 대구경북첨단의료 복합단지가 조성돼 치의학연구원이 들어서기에 적합하다. 풍부한 인력과 우수한 의료기반이 있는데 치의학연구원이 유치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입지 선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가운데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를 위해 부산과 광주, 충남 천안 등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치열한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각 도시마다 유치 전담팀 구성과 시민 서명 장부 작성 등 사활을 건 유치전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구시는 지난해 9월 국립치의학연구원 유치를 위함 포럼을 개최한 이후 한 번도 관련 행사는 고사하고 회의조차 열지 않고 있다.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단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직이 됐다. 대구시장이 공백인 것이 이유인지 모르나 대구시가 중대 사안을 두고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천안시는 대선공약이라는 이유로 공모 방식 없이 바로 지정해 달라는 정치권의 요구도 나오고 있다. 대선공약이라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수한 인프라와 풍부한 산업인력 등이 뒷받침되는 최적지에 연구원이 설립돼야 설립 취지와도 맞다. 대구시는 지금부터라도 지역 정치권과 힘을 모아 치의학연구원의 대구 유치에 전략적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지역민의 결집과 의지를 모으는 것도 중요한 유치 전략이다. 10여 년 공들여 온 국립치의학연구원의 대구 유치에 다시 한번 시민과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2025-07-22

TK신공항, 내년 토지보상 들어갈 수 있을까

지난 주말(18일)에는 대구시의회 의원들의 본회의 질의모습을 TV를 통해 시청했다. 새 정부 들어 대구시의원들이 최대현안으로 여기는 이슈가 무엇인지 궁금해서다. 예상대로 현재 표류 중인 TK신공항 건설 사업이 가장 민감한 현안으로 거론되는 듯했다. 군위군이 지역구인 박창석 의원은 이날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행정부시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 “TK신공항 건설이 사업방식 혼선, 재정 조달 불확실성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면서 “이제 논의단계를 넘어 실질적 착공 준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계획된 신공항 사업 로드맵대로라면 내년부터 대구시가 토지보상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 대한 질책이었다. 김 대행은 이에 대해 “아직 정치권, 예산 부서와 협의가 지연돼 자금 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못했다. 연말까지 자금 조달 계획이 확정되지 않으면 내년 토지 보상 관련 절차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불가피하게 신공항 개항 시기 지연도 예상된다”고 답변했다. 연내에 국회의 관련법안(신공항 특별법)처리, 이에따른 정부 예산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TK신공항 사업이 계속 불확실성 속에서 표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행은 민주당 육정미 의원(비례대표)이 “내년에 재원 조달 방안이 확정 안 되면 토지 보상 절차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냐”고 재차 확인하자, “국비가 먼저 확보되어야 보상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현재 TK신공항 사업의 전체 보상비(토지, 이주단지 조성)는 45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구시는 지난 정부에서 사업 첫 해(2026년) 들어갈 토지 보상비(공공토지비축사업비 2766억원)를 요청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투자자금 회수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시는 현재 TK신공항 사업을 위해 정부에 내년부터 5년간 11조5393억원의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해 둔 상태다. 그러나 이 기금을 받으려면 지원근거가 담긴 특별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설사 공자기금을 전액 지원하더라도 대구시가 갚을 역량이 없다는 것이다. 공자기금도 결국 대구시가 지방채를 발행해서 매입하는 부채이기 때문에, 일정기간이 지나면 갚아야 한다. 5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공자기금을 빌린다는 생각인데, 이자율을 3%로 잡더라도 이자만 3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30년까지는 이자만 갚게 되지만, 2031년부터 10년간은 원금과 이자를 같이 갚아야 한다. 대구시 재정상태로는 공항 건설 사업비 전액을 공자기금으로 조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해법은 이재명 정부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광주도심 군공항 이전사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TK신공항건설도 정부 도움을 받아 추진하는 것이다. 대구·광주 군공항 이전 사업은 정치권이 ‘쌍둥이 법안’을 발의했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이 지역 정치권과 대구시, 경북도는 이 해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22

민생쿠폰 지급, 골목상권 활기 찾는 계기 되길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이 그저께(21일)부터 시작됐다. 신청 첫날부터 대구·경북지역 주민센터와 은행 창구에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 큰 혼잡이 빚어졌다. 일부 카드사 앱은 마비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이번 지원금이 취지대로 민생을 회복시키고,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녹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21일 포항시 북구 장량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한 시민은 본지 기자에게 “아침 일찍 나와 번호표를 뽑았는데도 116명이 대기 중”이었다고 했고, 대구시 중구 남산4동 행정복지센터도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민생쿠폰을 신청하러 온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자였다. 민생쿠폰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직접 행정복지센터를 찾아온 듯했다. 일부는 신청 날짜를 출생 연도가 아닌 생년월일 끝자리로 착각해 잘못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대구의 경우, 소비쿠폰이 지역사랑상품권인 대구로페이 카드로만 지급돼 지류형(종이) 온누리상품권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던 시민들의 불만이 잇따랐다. 한 시민은 “시장과 골목상권에서 쓰려는데, 카드로만 줘서 당황스럽다. 단말기 없이 장사하시는 어르신들도 많은데, 종이 상품권으로 지급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이날부터 오는 9월 12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사용기한은 11월 30일까지다. 특히 소비쿠폰 사용처는 지역 민생경제 회복에 기여하고 지역 내 자영업자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주소지 관할 지방자치단체로 제한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꾸준히 시민들이 알아야 할 핵심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해 홍보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소비쿠폰 정책이 우리 주변의 자영업자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민생 회복의 출발점이 되고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시민들도 이번 소비쿠폰을 가급적 어려움을 겪는 우리 동네 가게, 전통시장에서 사용하여 돈이 지역 내에서 선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골목상권이 살아나고, 그 효과가 대구·경북 경제 전반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2025-07-22

정신 나간 공무원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지명이 철회됐다. 논문 표절로 제자를 곤경에 빠뜨리고, 자식을 수억 원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한 교육을 시킨 자가 ‘보편적 공교육’을 지향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수장 자리에 오른다면 개가 웃었을 것이다. 이진숙은 공교육 일반에 관한 상식조차 없었다. 이진숙을 불러 도덕성과 전문성을 검증한 청문회는 한 편의 조악한 코미디였다. 많은 국민이 실소와 한숨 속에서 그걸 지켜봤다. ‘대체 교육장관을 시킬 사람이 저렇게 없냐’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터. 청문회가 열린 그날. 코미디의 정점은 상식 밖의 쪽지 한 장이 찍었다. 교육부 공무원에 의해 이진숙에게 전달된 거기엔 ‘모르는 내용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곤란한 질문은 즉답을 피하며, 동문서답 하라’ 적혀있었다. 아연실색할 일이다. 알다시피 청문회는 국회의원은 호통치고, 공직 후보자는 급조한 변명이나 내놓는 ‘삼류 정치쇼’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공직 후보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공직 후보자는 국회의원이 아닌 국민을 향해 답변하는 자리가 청문회다. 엄정해야 할 그 현장에서 상식 밖의 쪽지를 교육부장관 후보자에게 써서 건넨 공무원은 제정신인가? 국민이 가소로운가? 그가 속이려했던 건 몇 명의 야당 국회의원이 아니다.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 모두를 기망(欺罔)하려 했다. 작지 않은 죄다. 반드시 작성자를 찾아내 책임을 묻는 후속 조치가 따라야 마땅하다. 그리고 하나 더 묻는다. 이진숙과는 또 다른 성격의 잡음을 일으켜 국민적 지탄과 공분을 야기한 강선우를 기어코 여성가족부장관에 앉히려는가? 대통령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21

우물 안 개구리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모르는 것처럼, ‘영남에 갇힌 국민의힘’은 민심을 모른다. ‘우물 밖 세상의 민심’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지 못하니 반성과 혁신은 언제나 말뿐이다. 최근 여론조사(한국갤럽, 7월 2주차)에 의하면 당의 지지율이 19%로 떨어졌고, 영남마저 민주당에 역전되었음(TK: 민주당 34%, 국민의힘 27%, PK: 민주당 36%, 국민의힘 27%)에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국민의힘은 어쩌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는가? 편협한 지식과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교만과 무지 때문이다. 극우세력과의 동행으로 우경화는 심화되었고, 편 가르기를 하면서 객관성을 잃고 진영정치의 노예가 되었다. 물론 당내에는 혁신을 주장하는 ‘소수의 합리적 보수’가 있지만, ‘다수의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왕따 당할 뿐이다. ‘열린 마음’으로 반성을 통해 혁신해야 했음에도 ‘닫힌 마음’으로 편협한 정치를 고집했으니 자업자득이다. 게다가 정치인의 소명은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것인데, 사익(私益)에 눈이 멀었으니 보수의 덕목인 ‘견리사의(見利思義)’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허구한 날 우물 안 개구리들의 권력싸움으로 당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당은 망해도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문제였다. 당에서 영남의 중진의원들에게 혈전(血戰)이 예상되는 수도권으로 선거구를 옮길 것을 요구하면 대부분 이를 거부하고 탈당하여 만만한 영남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대의(大義)를 위해 소아(小我)를 버릴 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중진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처럼 당은 존폐의 위기에 있는데 소속의원들은 여전히 우물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적 청산을 요구한 안철수 혁신위원장은 당 지도부의 거부로 사퇴하였고, 그 후임으로 지명된 윤희숙 혁신위원장의 쇄신 요구 역시 온갖 궤변으로 뭉개는데 여념이 없다. 오직 제 밥그릇 챙기는데 급급한 정당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국민은 당 해체 수준의 대대적 혁신을 주문하고 있는데, 대선이 끝난 지 이미 한 달 보름이 지나도 전혀 달라진 게 없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국민의힘이 우물 밖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고정관념을 버려야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이 바뀌어야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다. 고리타분한 사고를 가진 우물 안 개구리들과 과감히 절연해야 우물 밖의 분노한 민심을 받들 수 있다. ‘낡은 보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과감히 혁신할 때 비로소 우물 밖 세상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우물 밖 세상에서는 개방적 사고와 합리적 행동이 필수다. 보수 또는 진보라는 이념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문제’이다. 경직된 사고에 갇히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만, 개방성과 합리성을 겸비한 자유인은 결코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우물 밖으로 나와서 ‘세상은 넓고 변화는 빠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7-21

국힘 당권경쟁, 또 친윤·비윤 대결구도 되나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의힘 당권 레이스가 본격화됐다.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는 김 전 장관 이외에 조경태·안철수 의원, 양향자·장성민 전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장동혁 의원도 출마한다고 한다. 당권 주자로 거론됐던 나경원 의원은 이날 “당분간 국민의힘 재건을 위해 고민하겠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 주목되는 것은 당권 경쟁이 다자구도로 펼쳐질지, 비윤(윤석열)계와 친윤계 간 계파대결 구도로 압축될지 여부다. 김 전 장관은 최근 친윤 핵심인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의 입당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데 대해 “이미 당에 입당했고 입당 절차에 하자는 없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입당하는 사람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호를 개방하고 열린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고,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내놓은 인적쇄신안과 관련해선, “당사자가 자기를 변호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절차상의 정당성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분히 당 주류인 친윤계의 의중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 전 장관은 최근 강성 보수지지층이 몰려 있는 대구지역도 자주 찾았다. 반면, 당권도전 가능성이 있는 한동훈 전 대표는 최근 연이어 공개 발언을 통해 당내 극우 세력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20일에도 페이스북에 “대선 기간 김문수 후보 측에서 극우 정당 중 하나로 알려진 우리공화당과 국민의힘의 합당을 시도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극우화를 막아야 한다”는 글을 올리며, 김 전 장관 측을 겨냥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9일 안철수 의원과 비공개 오찬 회동을 가지기도 해 연대 가능성이 제기됐다. 두 사람은 “당의 극우화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이달 중순 유승민 전 의원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다음 달 22일 열린다. 한 달 남은 레이스 기간 중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서, 끝없이 추락하는 당 지지율을 반전시키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된다.

2025-07-21

TK신공항 개항 연기 가능성 언급한 대구시

대구경북의 최대 현안인 대구경북(TK) 신공항이 첫 삽도 뜨기전에 개항 연기 가능성이 나오는 등 차질이 우려된다. 지난 18일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 행정부시장은 대구시의회 임시회에 참석해 TK 신공항의 개항 연기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의 최대 현안으로 총력전을 펼쳐오던 신공항 사업이 재정 문제에 부딪혀 아직까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김 권한대행은 “계엄정국, 조기대선 등으로 정치권과 예산부서와의 협의가 지연돼 자금조달 계획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만약 연말까지 건설비 조달계획이 확정되지 못하면 내년에 예정된 토지보상과 기본설계의 지연이 불가피해 2030년 개항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권한대행은 그동안 신공항 사업의 정상적 추진을 위해 새정부 국정기획위원회 등을 찾아 TK신공항 사업의 국정과제 채택과 공공자금관리기금의 차입 등 정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TK신공항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 언급이 아직 없으며 공공자금 차입도 기재부의 난색 표명으로 사실상 TK신공항 사업은 정체된 상태다. 여당측 인사들은 이재명정부에서 “TK 홀대는 없다”고 밝히고 윤호중 행자부 장관후보도 신공항 사업을 챙기겠다고 말은 하고 있으나 새정부의 지역사업에 대한 관심은 미지근하다. 해양수산부 부산이전이나 대통령실이 광주군공항 이전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공식화 한 것 등과 비교하면 소외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역 정치권이 나서 신공항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촉구해야 하SK 정치권 조차 조용하다. 지역민의 실망감이 커져가는 분위기다. TK 신공항 건설 사업은 인구소멸과 지역경제 활력을 통해 지방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국가적 사업이다. 11조원의 사업비가 소요돼 지방자치단체가 단독으로 수행하기는 힘든 사업이다. 국가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욱이 대구는 시장이 없는 공백상태여서 정부와의 소통에도 한계가 있다. TK신공항 사업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밝혀져야 한다.

2025-07-21

베네수엘라로 가는 길

베네수엘라는 남아메리카 북단에 위치한 나라다. 국토의 면적은 한반도의 4배가 넘지만 인구는 2800만 정도다. 북쪽으로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가이아나, 남쪽으로 브라질, 서쪽으로 콜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정식 국가명은 베네스엘라볼리바르공화국.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수도는 카리카스이다. 한때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베네수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전락했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 천혜의 자원을 가진 나라가 어쩌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국민과 천문학적 인플레이션, 대규모 난민을 양산하는 최빈국으로 변했을까. 그 비극은 정치 지도자의 실정과 국민 다수의 잘못된 선택이 맞물린 결과다. 1999년 등장한 차베스는 반미 민족주의를 앞세우며 석유 수익으로 무상 복지와 빈민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무료의료, 무료교육, 식량배급으로 서민의 지지를 얻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권력을 강화해갔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석유수입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경제를 산업 기반이 아닌 석유 판매에만 의존하게 만들었다. 민간기업들을 국유화하며 자율성과 생산성을 무너뜨렸고, 환율을 통제하고 가격을 규제해 시장기능을 마비시켰다. 외환은 고갈되었고, 필수품은 사라졌다. 독립적 언론은 폐쇄되고 비판적 지식인은 탄압당했다. 차베스 사망 후 권력을 이어받은 마두로도 이 위기를 오히려 가속화시켰다. 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그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내는 오류를 반복했고, 그 결과 연간 인플레이션이 수십만 퍼센트를 기록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시장에는 생필품이 사라지고, 거리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 와중에 마두로 정권은 비판을 봉쇄하며 독재화의 길을 걸었다. 선거를 조작하고, 야당이 장악한 국회를 무력화하며 친정부 세력만으로 헌법을 고치는 ‘제헌의회’를 만들었다. 국가 경제는 군부와 권력층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부패는 일상화되었다. 이 모든 고통을 견디지 못한 수백만 명의 국민이 국외로 탈출했다. 남미 전역에 흩어진 베네수엘라 난민은 이미 700만 명을 넘었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독재자들의 실정만이 아니다. 차베스의 환상에 열광하고, 마두로의 거짓말을 방조했던 국민들의 선택 역시 몰락의 한 원인이었다. 포퓰리즘은 당장의 이익을 약속하며 다가오지만, 그 뒷면에는 국가 시스템의 붕괴와 자유의 상실이 도사리고 있었다. 차베스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이제 서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다”며 열광하던 군중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유권자, 눈앞의 이익보다 장기적 비전을 중시하는 국민이 있을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작동한다. 무책임한 정치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분별한 대중이다. 자유와 번영은 공짜가 아니다. 국가의 미래는 지도자의 역량뿐 아니라, 그 지도자를 선택하고 감시하는 국민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팔아먹을 자원조차 없는 한국의 경우, 잘못된 길을 가면 어떻게 되는지는 북한이 잘 보여주고 있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7-21

최고의 취미, 공부

헤르만 헤세는 1946년 자신의 저서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작중 배경인 ‘카스틸리안(Casastalian)’이라는 가상의 교육공동체에서 매년 벌어지는 최고 지성들의 게임인 유리알 유희는 ‘이성과 감성, 과학과 예술, 동양과 서양, 현실과 이상’이라는 이분법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궁극적 시도였다. 헤세는 유리알 유희에 대하여, ‘수 세기 동안 인간 정신의 모든 창조물들을 기호와 상징으로 추상화하고, 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고 조율하는 예술이다’라고 묘사했다. 헤세는 작품에서 유희의 구체적 방법을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묘사한다. 유리알 유희의 실질적인 게임의 규칙이나 실제 진행 방식은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는다. 유희가 상징하고자 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그 ‘정신’이기 때문이다. 헤세의 유리알 유희는 ‘지(知)적 유희’다. 지적 유희는 수학, 철학, 음악, 문학, 과학 등 모든 학문의 영역을 연결하고 상징하는 ‘놀이’다. 헤세는 ‘놀이야말로 인간 정신의 가장 숭고한 표현이다’라고 책에서 묘사한다. 카스틸리안의 유희는 놀이 치고는 너무 진지하다. ‘삶 전체를 건’ 놀이 임과 동시에 ‘유희자 자신의 존재를 묻는’ 놀이다. 헤세가 ‘유희’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공자는 학이편 첫 구절에서, ‘학이시습지불역열호아'라 하였다. 간단히 풀이 하자면, ‘공부는 즐겁다’이다. 여기서, 즐거움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공부의 목적이, ‘무언가 얻음’이 아니라, ‘즐거움’이라 선언한 대목이다. 무언가 얻으려는 사람에게는 노동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즐거움이다. 그런 연유로, 공부가 즐거움인 사람에게 학이편의 ‘열’은 ‘습(習)’과 함께하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은 많아도, 자신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은 없다’ 고 말했다. 공부가 즐거움이 되는 도리가 있다. 공자에겐 공부가 최고의 취미 활동인 셈이었다. 헤세의 유희와 공자의 공부가 다를 리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두 거성은 공부가 즐거움이라 하였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나 재밌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에겐 공부가 밥 벌이었다. 의무적으로 해야 했기에, 공부는 힘든 것이자 언젠가 마쳐야 하는 것이었다. 수 백년 동안 공자왈, 맹자왈 했어도 학이편 한 구절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의 사회는 공부가 즐겁다는 걸 가르쳐 주지 않았다. 늦었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하자. 뭐든 읽고 깨우치자. 공부하자. 최고의 취미 활동을 하자. 이 취미는 우주와 세계와 삶의 본질을 다루는 최고의 놀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울 만큼 재미가 있다. 헤세의 유희란, 얽매이지 않음이며,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다. 자유, 진리라는 거창한 말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지적 유희라는 취미 활동이 별거 있으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자신의 생각을 깨뜨려 가면 되는 것이다. 재미에 덤으로, 당신의 의식을 저 높은 곳까지 인도하여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걸어두는 일도 없을 것이다. /공봉학 변호사

202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