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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저속 노화시대 새로운 노인의 지평을 열다

대구 수성문화재단 용학도서관이 오는 25일부터 12월 23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지역의 중·장년층과 고령층을 대상으로 ‘2025 신노인 포럼’을 운영한다.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세대에게 노년은 더 이상 소극적 생애 단계가 아니다. 어떻게 늙을 것인가, 어떻게 활력 있는 후반생을 설계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 지금, 이번 포럼은 그 물음에 실천적 해답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기획으로 진행된다. 올해 ‘신노인 포럼’이 ‘저속노화’를 핵심 주제로 삼은 것은 시의적절하다. 의학·뇌과학·AI 헬스케어, 슬로우푸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강연을 통해 노화를 단순히 ‘늦추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질을 가꾸는 지혜’로 바라보게 하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다.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 석좌 교수의 ‘웰에이징, 노화를 디자인하다’를 시작으로, 권순용 교수의 ‘AI 스마트 의료시대’, 김희진 교수의 ‘느리게 나이 드는 기억력의 비밀’, 이덕철 교수의 ‘세포가 보내는 노화의 신호’, 신경원 소장의 ‘식치의 지혜로 만나는 저속노화’로 구성된 강연은 과학적 통찰과 삶의 철학을 함께 풀어낼 예정이다. 이번 ‘신노인 포럼’의 의미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선다. 노화를 불가피한 쇠퇴의 과정으로 보던 기존의 관점을 뛰어넘어, 더디게 늙으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디자인하려는 사회 인식의 전환이 그 중심에 있다. 지금 우리의 노년은 선택의 영역에 있다. 빠르게 늙는 사회가 아니라, 지혜롭게 늙는 사회로. 용학도서관의 ‘신노인 포럼’은 그 첫걸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포럼은 단순한 강의 프로그램을 넘어, 지역사회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현실 속에서 시민 스스로 자신의 노년을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공공교육의 장으로 의미가 있다. 용학도서관 관계자가 밝혔듯, 이는 지식 전달에 머물지 않고 주민의 삶의 방향성을 함께 모색하는 진정한 평생교육의 역할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인생 후반부를 풍요와 존엄으로 채우려는 지역 사회적 문화운동이라 할 만하다. 이번 포럼은 50대 이상 지역 주민 120명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수강 신청은 이달 19일부터 마감시까지 용학도서관 홈페이지 또는 도서관을 방문해 가능하다. 빠르게 다가오는 초고령 사회의 흐름 속에서, 삶의 후반기를 스스로 주도적으로 설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번 프로그램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문의 전화 (053)668-1722. /김윤숙 시민기자

2025-11-24

음주운전,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음주운전은 더 이상 ‘실수’나 ‘한 번의 잘못’으로 간주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음주운전 차량에 의해 외국인이 사망한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지닌 음주문화의 문제와 법적 대응의 한계를 다시 드러냈다. 특히 한국을 믿고 찾아온 외국인이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은 국제적 위상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이제 우리는 음주운전을 단순한 교통법규 위반이 아닌, 잠재적 살인행위로 다루는 강한 처벌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윤창호 법을 통해 음주측정 기준은 낮아졌고, 반복 음주 운전자에 대한 처벌도 무거워졌다. 그러나 현실의 참상은 처벌 강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깨운다. 법이 강화되어도 음주 운전자는 끊이지 않고, “걸릴 때만 불운”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 심지어 음주운전 적발 경험이 있음에도 또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매년 상당수 차지한다. 이번 외국인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음주운전을 보다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시점에 왔다. 법과 제도는 실제로 억제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가? 나아가 음주운전에 대한 시민 의식은 충분히 성숙해져 있는가? 음주운전은 범죄다. 그리고 범죄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처벌 받는다’ 수준의 인식을 넘어, “술을 마시면 절대 운전할 수 없다.”는 확고한 금지 규범이 법과 제도, 문화 차원에서 뿌리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누적 음주 전력자에 대한 가중 처벌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상습 음주운전자는 일반적 위험성을 넘어 사회적 위험 그 자체다. 2회 이상이면 운전면허 영구 취소를 원칙으로 하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인명 피해 발생 시 실형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다음은 차량에 시동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이는 선진국에서 이미 검증된 장치로, 음주 측정에 통과하지 못하면 차량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속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 중심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 전체의 음주 관행을 돌아봐야 한다. 술을 권하는 문화, “한 잔쯤은 괜찮다”는 음주문화가 유지되는 한 음주운전은 계속될 것이다. 직장과 조직에서의 회식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 한 잔쯤이 절대로 용납되는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이번 음주 운전자에 의한 외국인 사망 사건은 비극이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은 우리가 같은 사건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반복해 왔다는 사실이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누구의 생명도 음주운전의 희생양이 되어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성숙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관용의 시대를 마감하고, 단호함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음주운전자 처벌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책무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5-11-24

파크골프의 인기, 어디까지 이어질까

요즘 가장 빠르게 수요가 늘어나는 레저 종목 중 하나가 파크골프다. 이름 그대로 공원(park)과 골프(golf)가 결합된 스포츠로 1983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시작된 비교적 새로운 생활체육이다. 나무 채 하나와 플라스틱 공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고 신체적, 금전적 부담도 적어 특히 시니어 세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경기 운영 방식은 골프와 유사하다. 4인 1조로 구성해 티잉그라운드에서 홀을 향해 차례로 플레이하고, 18홀 기준 최저 타수를 기록한 사람이 승리한다. 다만 정규 골프가 금속제 14개 클럽을 사용하는 반면 파크골프는 단 하나의 나무 채를 사용하며 홀까지의 거리 역시 100m가 채 안 된다.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골프와 달리 파크골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파크골프가 시니어 세대의 ‘핵심 여가 스포츠’로 자리 잡은 이유는 걷는 시간 자체가 길어 유산소 운동 효과가 탁월하고, 공을 치는 타격 동작이 근력을 강화해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이 되며, 골프와 달리 공을 굴리는 방식이라 관절 부담이 적고 부상 위험이 낮다. 대사증후군, 당뇨병, 고혈압 관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노인성 의료비 절감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국 단위의 대규모 파크골프대회가 정례화 되며 단순 생활 체육을 넘어 ‘전문 스포츠’로서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 속에 지자체와 민간 협력으로 파크골프장 조성이 활발히 이뤄지며, 포항에는 곡강천 변과 형산강 변 두 곳을 포항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 중이고 오천에도 개장을 앞두고 있다. 그 중 곡강파크골프장을 찾아가 본다. 곡강파크골프장은 코로나 이후 회원관리 체계를 정비하면서 회원 수가 급증한다. 연 회원만 1200여 명, 월·일일 회원까지 더해 하루 이용객이 5~600명에 이른다.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기존 2부제에서 3부제 운영으로 전환했으며, 회원이 많아질수록 잔디관리 부담은 물론 주차난도 심각해 인근 마을의 민원까지 이어지는 실정이다. 이용객 증가에 따른 갈등도 적지 않다. 기존회원과 신규회원 간의 마찰, 젊은층 유입으로 인한 세대 간 충돌, 기본 규칙을 무시하는 일부 이용자 등 공동체 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불협화음이 문제로 떠오른다. 아직 규칙과 매뉴얼이 채 정립되기도 전, 이용자가 급격히 늘면서 무리한 플레이로 일사병, 저체온증 등 안전사고까지 발생해 이를 계기로 폭염, 한파, 폭우 예보 시 관리소 권한으로 휴장을 실시하는 등 안전규정을 대폭 강화하며 현재도 계속 안전 매뉴얼이 보완 중이다. 함께하는 공간에서 최소한의 배려와 안전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떤 좋은 시설도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 시설 확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이용자 간의 배려와 공동체 의식, 그리고 안전 수칙 준수라는 점이 새삼 강조된다. 연장된 수명을 병원에서 보내는 것은 무의미하다. 길어진 수명이 건강한 일상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값어치를 가진다. 맑은 공기와 늦가을 산산한 바람이 이는 곡강천 변에서 골프에 집중하는 시니어들의 표정에 활력이 가득하다. 운동이 주는 즐거움과 더불어 공동체와 교류하는 행복이 묻어난다. 지역사회가 함께 누리는 ‘모두의 운동’ 파크골프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생활 체육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파크골프의 인기는 당분간 식지 않을 듯하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20

렉처콘서트 ‘당신 곁의 클래식’를 관람하다

지난 14일 오후 5시 대구 비원뮤직홀에서 열린 렉처콘서트 ‘당신 곁의 클래식’을 관람했다. 이번 공연은 클래식을 보다 친숙하게 전하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KBS 대구 클래식 FM ‘아름다운 오후, 네 시입니다’를 진행하는 황진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다. 그는 공연 시작에서 “우리는 늘 누군가를 위해 살지만,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곳에 오신 분들은 바로 그 ‘나를 위한 시간’을 선택한 분들”이라며 관객들에게 잠시 일상을 멈추고 음악에 집중해 보길 권유했다. 첫 무대는 피아니스트 김명현이 리스트의 ‘사랑의 꿈 3번’으로 열었다. 섬세한 터치로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하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부드러운 선율은 하루의 피로를 녹이듯 공연장을 감쌌다. 이어 소프라노 정선경은 푸치니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열창했다. 황진 아나운서는 “푸치니는 1924년 세상을 떠났지만 1900년대 초반을 우리와 함께한 작곡가”라며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설명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테너 이지성은 베르디의 ‘여자의 마음’을 불렀다. 광고 음악으로 익숙한 곡이지만, 그의 음색은 새로운 해석으로 특별한 무대를 선사했다. 중반부는 첼로와 비브라폰의 다채로운 매력으로 채워졌다. 첫 번째로 연주된 바흐의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프렐류드’는 반주 없이 첼로만으로 진행되어 연주자 박성근의 활놀림과 호흡까지 생생히 전달되며, 악기의 질감과 온도를 체험케 했다. 이어 등장한 비브라폰은 클래식 무대에서 보기 드문 악기여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상준이 연주한 드뷔시의 ‘달빛’은 원곡의 몽환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비브라폰의 맑고 투명한 음색으로 색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후반부는 김동진의 ‘신아리랑’과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사’(간발의 차이)로 이어졌고, 현대적 편곡으로 재탄생한 익숙한 멜로디가 관객의 박수를 자아냈다. 마지막 무대는 바르셀라타의 ‘마리아 엘레나’와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로 꾸며졌으며, 피아노·첼로·반도네온·비브라폰이 조화를 이뤄 공연의 정점을 찍었다. 각 악기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풍성한 하모니를 선사했다. 공연 막바지에 황진 아나운서는 “연주자들의 이야기도 관객께 전하고 싶다”며 그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반도네오니스트 김종완은 “반도네온은 곡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솔직한 악기”라며 애정을 드러냈고, 첼리스트 박성근은 “첼로는 인간 목소리와 닮은 현악기로, 특히 가을 정서와 어울린다”고 설명해 공감을 자아냈다. 앙코르 곡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로 연주되었다. 전 출연자가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공연장을 훈훈한 분위기로 채웠다. 공연 후 연주자들은 직접 공연장 밖으로 나와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교감하는 시간을 가져,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혀주는 특별한 마무리를 선보였다. 대구 서구 원대동에 위치한 비원뮤직홀은 지역민들이 클래식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실내악, 독주회, 독창회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수준 높은 음악을 무료로 제공해 클래식 입문자부터 애호가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일상 속 위로와 영감을 얻고 싶다면 온라인 예매로 비원뮤직홀의 공연을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20

백색의 위로, 4.6km 숲길 끝에서 만난 영양 자작나무 숲

11월 9일, 남편과 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의 영양 자작나무숲에 다녀왔다. 아침상을 물린 후 영양 자작나무숲으로 가자는 그의 말에 꽁꽁 닫혀 있던 가슴이 번쩍 열렸다. 며칠간 집안일로 짓눌렸던 답답한 마음을 씻어낼 기회였다. 청송에서 영양 수비면 죽파리까지 60km, 한 시간이 넘는 거리다. 농사일도 모두 마친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길을 나섰다. 수비면으로 들어서는 초입부터 붉고 노란 단풍이 강렬하게 유혹했다. 눈부신 붉은 잎이 흔들리는 모습은 심장을 녹아내리게 할 만큼 아름다웠지만, 곧 만날 백색의 장관을 기대하며 아쉬운 감탄만 속으로 삼켰다. 굽이굽이 골짜기를 도는 길마다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는 가로수들이 가을의 절정을 노래했다. 자작나무 숲 안내센터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대형버스와 승용차로 만원이었다. 조금 걷다 보니 전기차 매표소가 나왔다. 차를 운행한다는 것은 숲까지의 거리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30분을 기다려야 탈 수 있는 차대신 걷기로 했다. 길은 넓고, 사람들의 발길로 잘 다져져 걷기 편안했다. 우람하게 죽죽 뻗은 소나무와 맑은 계곡물 소리, 바람에 스치는 잎새 소리에 취해 걸었다. 남편이 주변 소나무 군락 속에서 간간이 보이는 ‘진짜’ 자작나무를 알려주며 걷는 재미를 더했다. 시원하게 길만 낸 채, 어떤 인공적인 손길 없이 자연 그대로 보존된 숲의 풍모가 경이로웠다. 거대한 소나무와 자연스럽게 조화된 나무들의 모습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숲은 좀처럼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니 마침내 눈앞에 펼쳐 진 자작나무 세상,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수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모습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신선같이 흰 도포를 입고 머리는 노랗게 물들인 듯, 곧고 시원하게 뻗은 순백의 자작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4km가 넘는 거리를 힘겹게 걸어온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길고 긴 고행 끝에 마주한 황홀함 그 자체였다. 이 숲이 자연이 아닌, 인간의 장기 비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라웠다. 영양 자작나무숲은 산림청에서 1993년부터 30.6ha 규모로 30cm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30년 전, 미래를 내다본 산림청 담당자의 혜안이 오늘날 영양군을 대표하는 명품 관광자원을 탄생시킨 것이다. 단기 성과 위주의 축제나 임시방편적인 홍보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최근 지자체의 경향 속에서, 영양 자작나무 숲의 사례는 ‘계획적 규모의 자치 경제’와 길고 깊은 호흡으로 추진된 산림 정책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내려오는 발걸음은 거짓말처럼 가벼웠다. 순백의 자작나무 숲에서 좋은 기운을 받은 것일까. 온몸의 나쁜 기운이 말끔히 씻겨 나가고, 며칠간 우울했던 마음조차 홀가분해졌다. 숲의 매력에 흠뻑 빠져 계절마다 변모하는 풍경을 꼭 다시 보고 싶었다. 지금의 화려한 단풍도 좋지만, 연두의 봄, 청록의 여름, 그리고 눈 덮인 겨울 숲의 모습을 기대하며 다시 오리라 다짐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우리 마을 청송군 파천면 중평마을을 생각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을 가로수로 소나무나 백일홍, 벚나무 중에서 선택하여 바꿔 심으면 봄에는 꽃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우리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지금의 볼품없는 가로수를 정비하여, 장차 10년 후 아름답게 변모할 마을을 꿈꿔본다. 영양 자작나무 숲은 내게 치유를 선물했을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한 소박하지만 분명한 꿈까지 심어준 소중한 여정이었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20

“아침에도 저녁에도 브런치를”

오늘 저녁은 가볍게 먹기로 했다.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메뉴가 있어서 자주 가는 곳이 가까이 있다. 5시, 이른 시간이라 가게 앞에 주차할 곳도 널널했다. 들어서니 단골이라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연두색으로 입은 내 옷을 보고 눈이 환해진다며 웃으셨다. “브런치 두 개요.” ‘다나커피’를 2년 전에 지인에게서 소개받았다. 저녁을 먹자고 하면서 왜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냐고 물으니 가보면 안다고 했다. 실내는 의외로 넓어서 단체 손님도 가능하다. 그때도 브런치 두 개를 주문했다. 아침에도 브런치, 저녁에도 브런치다. 고를 것도 없어 편하다. 최근에 수프도 추가 가능하다. 삼각형의 큰 접시에 가득 무언가 담겼다. 1인 1접시를 받았다. 제일 눈에 들어온 것은 잘 익은 아보카도였다. 얇게 저며서 얌전히 양상추 위에 누웠다. 까만 올리브 두 개, 빨간 토마토 세 조각, 채 썬 파프리카도 여러 색깔 골고루 놓였다. 제철 과일이 때에 따라 달라지는데 오늘은 단감이다. 달걀도 어찌 이리 얇게 썰었을까, 렌틸콩과 병아리콩이 소복하게 양상추 밑에 숨었다. 삼각형 치즈와 적양배추가 색깔을 맞춘다. 따로 담은 수제 요거트 위에 바나나와 샤인머스켓이 송송, 견과류도 뿌렸다. 따끈한 통밀빵과 발라서 먹으라고 잼과 크림이 앙증맞은 숟가락과 함께다. 한 접시 가득 대접받는 기분이다. 주문할 때 커피와 허브티 중에 선택하라고 해서 잠을 못 자는 나는 허브티, 남편은 얼죽아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세트 메뉴다. 가볍게 먹자고 왔지만 푸짐한 한 상이다. 브런치는 아침과 점심을 합친 말로 ‘브렉퍼스트+런치’의 합성어로, 1895년 영국 잡지 기사에서 처음 제안된 용어다. 1895년 헌터스 위클리의 가이 베린저가 일요일 늦은 아침 식사를 설명하며 ‘브런치’를 제안했다. 1896년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실릴 만큼 오래 사용된 어휘다. 가톨릭의 공복재(예식 전 금식) 전통과 연결된 일요일 늦은 점심에서 유래했다는 설, 영국 귀족의 사냥 후 식사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1920~30년대 뉴욕의 늦은 아침 식사 습관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서구에서는 대개 샴페인이나 칵테일을 곁들여 늦은 아침에 먹는 식사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점’으로 불리며, 1990년대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맛난 브런치와 함께 나온 커피 향이 그윽하다. 사장님께 언제부터 카페를 시작했냐고 여쭈니 2009년부터였다고 했다. 커피에 빠져 더 맛있는 원두를 직접 찾아다니고, 원두도 누가 어떻게 로스팅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니 직접 도구를 만들기도 했단다. 2014년 GSC 커피 수입하는 곳에서 손으로 커피를 뽑는 대회인 수망 로스팅 대회를 열었다. 직접 개발한 도구를 들고 가서 우승했다며 상패를 보여주셨다. 카페 한쪽 벽 장식장에 반짝이는 상패가 놓였다. 상을 타니 드립 커피를 맛보려고 오는 손님도 늘고 곳곳에서 로스팅하는 방법을 배우겠다고 찾아왔다. 지금은 카페 옆 공방에서 상을 탄 남편분이 수업도 진행한다. 올해도 서울 코엑스에서 카페쇼가 열린다고 해서 참여한다고 즐거워했다. 2025년 서울 카페쇼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간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다. 19일과 20일은 비즈니스 데이로 일반 참관객들을 21일과 22일에 입장이 가능하다. 커피에 진심인 사장님이 만든 커피 한 잔과 브런치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포항시 북구 장성로 7-1, 장흥초등 삼거리에 자리한 다나커피(050-71410-4040)는 오전 10시-밤 10시까지 영업, 월요일 휴무이다. 새로 생긴 바비큐는 예약하고 가면 맛 볼 수 있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8

경주 아이들에게 APEC은 어떻게 기억될까?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관광도시였던 경주는 한동안 축제로 들썩였다. APEC이란 중요 행사를 앞두고 이곳저곳 수선도 해야 했으며 사람들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잦은 축제성 행사도 이뤄졌다. 조용함과는 거리가 먼 날들이었다. 특히 교통통제로 인한 피해가 컸다. 경주시는 넓은 행정구역 덕분에 해양도시, 산업도시 역할을 모두 품고 있지만 외부엔 관광도시란 이미지로 주로 알려져 있다.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 및 이동의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규모가 규모다 보니 시간도 길어졌다. 준비하는 사람들부터 시민들까지 많은 이들의 희생과 열정으로 이뤄진 행사였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이제 여유로운 뒤풀이를 즐기고 있다. 특히 APEC으로 준비된 몇몇 행사들은 아직도 엄청난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박물관은 평일 이른 아침부터 6개의 금관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이란 주제로 11월 2일부터 12월 14일까지 경주국립박물관 내 신라역사관에서 진행된다. 주말엔 엄두도 못 낼 정도다. 어떤 이는 역사적 현장을 기억에 담기 위해 어르신들 중 일부는 황금의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찾는다 했다. 금관 관련 굿즈상품도 인기다. 거기에 새롭게 재단장한 월지관도 열기에 한몫 하고 있다. 또한 한미 정상회담 및 한중 정상회담의 현장 또한 관람 가능하다. 공개 기간은 11월 6일부터 12월 28일까지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정상회담 당시 실제 사용된 집기들을 직접 둘러보며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저마다 의미 있는 이유들로 당분간 박물관 주자창은 만차 예약이다. 그리고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는 APEC 본회의장 및 라운지 및 기타 회의장을 11월 7일에서 9일까지 공개했다. 회차별 150명, 하루 12회로 11월 5일 자정부터 관람 예약이 시작되었다. 아이에게 기념이 될 만한 추억을 남기고자 낮 12시 정각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공연 예약에 비해 인원수가 넉넉하다고는 하나 마음을 놓을 수 없어 긴장감을 안고 대기했다. 그리고 낮 12시가 되자마자 바로 신청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원하는 시간대 예매가 가능했다. 당일 오후 아이 친구와 함께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공간이 넓기도 했거니와 정체될 만한 요소가 없다 보니 원래 예약 시간인 오후 4시가 되기 10분 전에 입장이 가능했다. 유달리 폭신한 레드카펫을 밟고 안으로 들어서자 회의장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제법 있었으나 트인 공간 덕에 서로 불편함 없이 관람이 가능했다. 인터넷 예매자 외에 현장 신청자들도 대기 없이 관람 가능해보였다. 회의장 입구에 들어서니 Republic of Korea란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포토존에서는 봉사자와 행사 담당자가 사진을 찍어줬다. 보통 다음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가족 중 한 명이 촬영을 해야 했는데 편하게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친절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문득 벌써 오래전 88올림픽이 기억났다. 학교와는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큰 도로에 성화 봉송자가 지나간다고 했다. 많지 않은 시골학교 전교생들은 손을 흔들기 위해 수업도 빠진 채 그곳을 찾았다. 생각지 못한 나들이에 신났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88올림픽이 그랬듯 이 아이들에겐 2025년 APEC이 유년의 추억이 될 것이다. 모두의 고생 덕분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8

수능을 추억하며

2026학년도 수능이 끝났다. 지난 12년간 열정으로 쏟아부은 시간이 수능과 함께 마침표를 찍은 날이다. 시험을 끝내고 어둑해진 교문을 나서는 수험생들은 두 팔을 들어 올리며 기쁨과 후련함을 맘껏 즐겼다. 아이를 맞은 부모들은 선물을 건네기도 하고 아이의 밝은 앞날을 기원하며 행복하기를 바랐다. 이제 학교 정문과 거리 곳곳에 수험생을 응원하는 ‘수능 대박’이라는 현수막 대신 거리의 상점들은 발 빠르게 ‘수험생 할인’ 광고를 내걸었다. 올해는 황금돼지 띠인 고3 수험생의 재학생 응시자 수가 전년 대비 9.1% 늘었고 N수생도 함께 늘어 지난 7년 만에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했다. 당연히 수능 한파는 없었다. 큰 아이가 내년 수능을 치러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 생각하니 올해 수능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까마득히 지나버린 시민기자의 수능도 추억해 본다. 정확히 30년 전이다. 수능은 시민기자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3년도에 학력고사 대신 처음 치러졌다. 미국식 수능인 SAT를 모델로 삼았다. 처음 수능은 8월과 11월 두 번 치러졌다. 새로 바뀐 입시의 첫 타자가 아니라서 좋다고 생각했고 8월 어느 날 시내엔 시험을 끝낸 수험생으로 와글와글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3년 차였던 1995년에 수능을 치렀다. 후배들의 커다란 응원 같은 것은 없었던 시절이다. 고등학교 때 자취를 했었기에 예비소집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시장에 가서 수능 날 먹을 점심으로 김밥을 미리 샀다. 그리고 수능일 아침 일찍 도착해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앉아 오늘 칠 시험을 그려보았다. 1995년 11월 수능은 날씨가 추웠다. 지금은 기후변화로 수능 한파가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땐 수능 전날까지 괜찮았던 날씨가 수능을 기점으로 추워졌기 때문이다. 교실에 정확히 몇 명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같은 반 친구 한 명과 같은 교실에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언어영역의 듣기 시험이 있었고 기억엔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온 아나운서의 목소리만이 고요와 긴장감의 교실을 가득 채웠다. 교실에는 고3 수험생뿐 아니라 사십 대 후반이나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그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도 앞줄에 앉아 함께 수능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많이 낯설어 보였다. 지금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고 학생들과 시험을 보는 그 자체가 어린 눈에 조금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점심 후의 3교시 탐구영역은 많이 어려웠다. 쉬운 1번 문제를 틀려서였을까. 시험의 결과는 모의고사 때보다 좋지 않았다. 창가를 뚫고 들어온 오후의 햇살에 살짝 멍해지기도 한 3교시였다. 다시 시험은 못 보았지만 탐구영역 결과가 아쉽기는 했다. 4교시 영어 시험은 마지막 5분을 남겨놓고 답안지를 2번이나 바꾸었다. 덜컥하는 마음이었는데 감독 선생님께서 시간 충분하니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말에 편한 마음으로 무사히 답안지를 작성했다. 선생님의 ‘괜찮아’라는 말은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덕분에 영어는 평소보다 결과가 잘 나와 기분 좋은 기억이 되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능을 치른다는 건 어쩌면 학생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또 앞으로 어떤 점수를 받던 이후의 이야기도 펼쳐질 것이다. 잘 보면 잘 본대로, 못 보면 못 본대로 결과를 잘 받아들여 자신에게 주어진 멋진 이야기를 계속 잘 써 내려가길 바란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8

사단법인 대구학회 4차 학술대회 열려

사단법인 대구학회(회장 권정태)는 지난 15일 오후 대구수성구 신매동 고산도서관에서 김천대학교 남상권 교수 사회로 ‘대구의 근대 문화와 역사’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대구학회 회원과 내빈으로 대구시의회 이재화 부의장, 수성구의회 황치모 운영위원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경북대 전자공학부 오철수 명예교수는 ‘해방공간에서의 대구사회의 변천’이란 주제로 대구의 근대 역사에 관하여 설명했다. 두 번째 연사로 나선 영남대 이동기 교수는 ‘대구의 근대교육 전개과정’이라는 주제로 발표했으며, 주로 ‘교남교육회’의 설립 시기의 사회적 배경, 설립 과정과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 좋은 반응을 받았다. 세 번째는 광복회 대구시지부 정인열 사무국장의 ‘일제강점기 대구형무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주제의 발표가 이어졌다. 일본인의 대구감옥 시작,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삼덕교회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대하여 소개하고 대구형무소의 설립 배경과 의미를 설명했다. 다음으로 권정태 회장은 ‘대구 사진계의 개척자인 최계복’에 대한 인물 설명과 그가 남긴 수십 개의 사진을 보며 시대상황 등을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나선 소설가 정만진 작가는 ‘상징과 인물로 본 근대 대구’라는 주제의 발표를 했다. 그는 근대의 시대 정신을 잘 담고 있는 상징물과 인물을 거론하며 그들을 기념할 기념관 건립을 주장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1-18

개망초

참으로 억울한 이름이다. 개망초라니. 이 순한 얼굴에 ‘개’자를 붙인 것도 모자라, ‘망할 망(亡)’ 자까지 덤으로 얹었다. 누가 봐도, 이건 꽃에게 붙이는 이름이라기보다 저주에 가깝다. 그런데 이게 우리 주변 어디에나 흔히 피어 있는 꽃이다. 도심 화단, 아스팔트 틈새, 고속도로 옆, 밭두렁···. 심지어 버려진 집 마당에서도 활짝 웃고 있다. 귀여운 얼굴에 노란 동그라미 하나 톡 찍힌 모습은 계란프라이를 닮았고, 티 없이 맑은 미소는 동네 꼬마가 “안녕하세요~” 하고 손 흔드는 듯하다. 이런 꽃을 두고 ‘개망초’라니. 누가 이름 짓다가 술김에 그랬는지, 참 짓궂기도 하다. 그 억울한 유래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아메리카에서 철도 침목에 실려 온 이 꽃. 한국 땅에 무단 입국한 건 맞지만, 처음부터 그런 비운의 이름을 달 생각은 없었을 거다. 그런데 철로를 따라 일제히 하얗게 피어나자 일본인들이 잔뜩 겁을 먹었다. “이거 조선이 살아나려고 그러나?”가 아니라, “조선이 망할 조짐이다!”라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망초(亡草)’가 되었고, ‘개’까지 덧붙여 ‘개망초’로 진급했다. 꽃으로는 처음일 거다. 무슨 중죄라도 진 양 이름을 달게 된 건. 젊은 시절, 강원도 인제 원통에서 군 복무를 했다. 낮에는 총 들고 뛰고, 밤엔 보초 서며 졸음을 쫓았다. 그러다 문득 초소 앞 언덕에 핀 개망초를 보곤 했다. 하얀 꽃들이 밤안개 속에 소금 뿌린 듯 깔려 있었다. 혼자 피었을 땐 눈에 띄지 않던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으니 제법 위엄도 있었다. 그 하얀 군락을 보며 가끔 나도 모르게 중얼댔다. “야, 너희도 잠 안 자냐?” 그런데 그런 애잔한 기억의 꽃이 ‘망조’라니. 일제가 이 꽃을 싫어한 이유는 아마도 뭉쳐 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개망초처럼 조선 사람들이 똘똘 뭉치면 자기들이 곤란하니까, ‘이 꽃 피면 망조’라고 겁부터 먹은 게 아닐까. 꽃에 주술적 의미를 씌운 것도 모자라, ‘개’ 자까지 붙여 기를 꺾으려 했던 것이다. 도무지 일제는 꽃 이름 하나 지을 때도 집요하고 옹졸했다. 그러나 “이제 이름 좀 바꿔줘야 하지 않겠나?” 망할 망(亡) 자 대신 바랄 망(望) 자로 바꾸면 어떨까? 그리고 그 앞에 ‘기쁠 희(喜)’ 자까지 얹어 ‘희망초(喜望草)’! 듣기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어딘가 힘이 솟는 이름이다. 개망초가 아니라 ‘희망초’라면, 길가에 피어 있어도 사람들 눈빛부터 달라질 것이다. 생각해보면, 개망초야말로 희망의 꽃이다. 화단에서 사치스럽게 가꿔지지도 않고, 비료 한 톨 못 받아도 꿋꿋하게 자란다. 아스팔트 틈바구니에서조차 굳센 생명력으로 꽃을 피운다. ‘개’ 소리 듣고도 주눅 들지 않고, ‘망조’란 이름 붙여도 매년 잊지 않고 돌아온다. 이런 꽃이야말로,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이름 때문에, 환경 때문에 주눅 들고 억울한 삶을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름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뿌리를 내린 태도가 진짜 그 사람이다. 개망초도 마찬가지다. 이름은 억울해도, 살아가는 모습은 당당하고 곧다. 그래서 올해는 화분 하나에 망초를 심고, 이름표를 붙여줄 생각이다. “희망초 – 기쁨을 바라는 꽃.” 보는 이마다 궁금해할 것이다. “이 꽃이 무슨 꽃이에요?” 그러면 나는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옛날엔 개망초였는데, 요즘은 희망초라고 불러요. 시대도 바뀌었잖아요?” /방종현 시민기자

2025-11-16

대구 달서은빛합창단, 인생의 선율로 감동을 노래하다

대구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관장 김진홍) 소속 달서은빛합창단(단장 최윤서)은 지난 13일 달서아트센터 청룡홀에서 제2회 정기공연을 열었다. 이날 공연에는 450여 명의 주민 등이 참석해 합창단의 노래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를 즐겼다. 달서은빛합창단은 2024년 5월 창단된 평균 연령 70세의 합창단이다. 하지만 노래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어느 청춘 못지않다. 남녀 혼성으로 구성된 50여 명의 단원들은 매주 복지관에 모여 노래 연습을 한다. 김우수 지휘자와 표혜창 부지휘자, 현두환 합창단 대표, 반주자 김효경, 트레이너 이성희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하모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졌다. 작년 11월 달서아트센터에서 첫 정기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데 이어, 올 5월에는 대구합창연합회가 주관한 ‘광복 80주년 기념 815합창대회’에 참가해 두류공원 팔공기념탑 앞에서 장엄한 합창을 선보였다. 815명의 합창단이 만들어낸 대규모 무대 속에서도 달서은빛합창단의 진심 어린 노랫소리는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또 지난달 3일, 월광수변공원에서 열린 박태준 기념음악회에서는 ‘고향의 봄’과 ‘그리운 금강산’ 등 서정적인 선율을 선보여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인생의 여정이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로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번 제2회 정기공연에서도 그 감동은 이어졌다. 무대에 오른 단원들은 흰 셔츠와 은빛 스카프를 매고, ‘청춘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사랑으로’ 등 다양한 곡을 선보였다. 각 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태훈 달서구청장은 축사를 통해 “음악과 노래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힘이 있다. 세월의 깊이와 인생의 이야기가 담긴 여러분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전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최윤서 단장은 인사말에서 “오늘 무대는 단원 한 분 한 분이 흘린 땀과 미소, 그리고 인생의 이야기가 모여 이룬 결실이다. 우리의 노래에는 젊은 날의 꿈과 지나온 세월에 대한 감사, 그리고 지금 함께 살아가는 사랑이 담겨 있다.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든 이 노래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따뜻한 울림으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진홍 관장은 “달서은빛합창단이 은빛 세대의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며 지역사회에 감동을 전하는 자랑스러운 합창단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했다. 은빛 세대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달서은빛합창단의 무대는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그것은 노래로 이어진 세대의 공감이자, 인생의 아름다움을 다시 노래하는 시간이었다. 무대를 마친 뒤에도 청룡홀 안에는 여운이 오래 남았다. 관객들은 “은빛의 목소리가 오히려 청춘처럼 빛났다”며 박수로 화답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1-16

독용산성, 시간의 벽을 오르다

맑은 가을 햇살 아래, 발걸음이 유적지를 향한다. 이런 날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역사의 자취를 더듬어보고 싶다. 성산가야, 혹은 벽진가야라 불리던 고대 왕국의 흔적을 따라, 이름만으로도 여운이 남는 독용산성(禿用山城)을 오른다. 산성은 경북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산 43번지에 자리한다. 금봉리 숲을 지나 오왕사를 거쳐 오르는 산길은 굽이굽이 이어진다. 어느새 독용산성 안내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야의 시간으로 들어서는 문턱이다. ‘독’(禿)은 ‘민둥’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예전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이었을지 모른다. 숲이 짙고, 돌길을 따라 걷다 보면 웅장한 누각이 눈앞에 나타난다. ‘관성루’라 새겨진 현판이 위엄을 더한다. 이곳이 독용산성의 동문이다. 독용산성은 포곡식 산성이다. 봉우리를 중심으로 여러 계곡을 따라 성벽이 둘려 있다. 둘레 7.7km, 면적 약 17만㎡로 영남 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다. 성안에는 물이 풍부해 장기전에 적합한 요새였으며, 축성 시기는 약 17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성벽은 화강암으로 쌓았다. 아래에는 큰 돌을,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채워 단단히 다졌다. 빈틈없는 구조 속에서 가야인의 노동과 지혜가 느껴진다. 복원된 동문과 일부 성곽 외에는 원형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장엄하다. 성에는 일곱 개의 포루와 아치형 동문, 수구문, 남소문이 있다. 성내에는 연못 네 곳과 우물 두 곳이 자리한다. 일제강점기 발굴 당시 군기고에서는 전투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중 쇠 창과 갑옷, 삼지창, 말안장은 당시 치열했던 옛 전장의 기운을 전한다. 임진왜란 때 피란민들이 왜적을 피해 이곳에 숨었다고 전해진다. 숙종 원년(1675년) 경상도 순찰사 정중휘가 4개월 동안 성을 개축했고, 1995년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해방 전후 성내에는 40여 호의 민가가 있었다. 1960년대 철거되었지만, 한때 이곳에도 삶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현재의 관성루는 1997년 성주군이 복원 사업을 추진하며 세운 것이다. 아치형 동문은 옛 돌과 새 돌의 색이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누각에 올라서면 성주의 산세가 수채화처럼 펼쳐지고, 뒤편에는 조선시대 선정비와 불망비가 가지런히 서 있다. 세월은 흔적을 지워도 정성은 돌에 남는다. 성곽 오른쪽 길을 따라 걷는다. 복원된 구간은 발걸음이 편하지만, 절벽 끝에 서면 아찔하다. 다리가 후들거려 평탄한 길로 우회한다. 성벽 옆으로 난 길은 돌에 스민 시간이 손끝에 닿는다. 민둥산일 줄 알았던 독용산은 지금 단풍으로 물든 숲이다. 가야의 흔적이 남은 이곳에서 한나절을 보내니 산이 품은 시간이 내 마음에도 내려앉는다. 성산가야의 백성들이 이 산성에 기대어 삶을 지켰던 간절한 마음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삶을 지켰고, 우리는 그 기억을 지켜야 한다. 전쟁 없는 세상, 평화로운 미래를 그리며 산길을 내려온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11-16

시니어 평생교육 15년 헌신 ‘진정한 교육자’

대구예술대 시니어아카데미 김태호 학장(78)은 교육을 천직으로 알고 2세 교육에 헌신하는 분이다. 늘 인자한 모습에 얼굴에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김 학장은 경북 의성이 고향이다. 대구교육대학교와 한국교원대학교를 졸업했다. 교사로 시작해 교감, 교장 등 일선 현장을 거쳤고, 장학사, 장학관, 교육장 등 교육행정 기관에서도 오랫동안 몸담았다. 2009년 고령교육장을 마지막으로 교육계를 떠난 후 그가 찾은 곳은 시니어 평생교육을 담당하는 사회 교육기관이다. 대구예술대 평생교육원 시니어아카데미 과정을 태동 때부터 참여해 15년째 무보수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관여하는 동안 매년 배출한 졸업생 수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른다. 이미 지역 내 시니어 교육기관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열정과 왕성한 교육열은 소문나 있다. 그가 야심차게 가꿔온 시니어아카데미는 쾌적한 강의실로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매번 새로운 강사들을 초빙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지역 내 시니어에게 인기가 높다. 매년 수요대학과 목요대학 각각 120명을 정원으로 학생을 모집한다. 교육과정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로 전국 유명 강사들의 교양교육과 신나는 가요 수업으로 진행한다. 특히 매월 1회 실시되는 현장학습은 전국 유명 지역을 답사하여 명승지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고 그 지역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배우기도 한다. 김 학장은 시니어 과정을 운영하면서 현직에서 교육자로서 체험한 교육적 신념을 교육과정에 많이 쏟아 =붓는다. 시니어 대학에 참가하는 대상이 55세 이상 남녀 시니어인 만큼 축제나 교육과정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비용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실천하고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운영한다. 오랜 교육 경험에서 나온 그만의 노하우다. 이 같은 소문으로 대구 지역 많은 시니어들이 찾아 온다. 그는 교육 목표를 ‘건강하며 존경받는 어르신 양성’에 둔다. 그래서 적당한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도록 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 행복해지도록 노력하자는 것을 가르친다. 신외무물(身外無物) 즉, 어떤 것보다 몸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항상 깨닫게 하고 내 행복을 위해서는 남에게 양보하는 삶을 역설한다. 김 학장은 자신의 인생 교훈을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대신했다. “흐르는 물은 이끼가 끼지 않고 최고의 선한 것은 물과 같다.=”라는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다고 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1-16

제2회 두류은빛 미로마을 축제 개최

대구 달서구 두류은빛복지관(관장 김진홍)은 12일 대구보건고등학교 남강관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회 두류은빛미로(美老)마을 축제를 개최했다. 두류1‧2동 고령친화복지 인프라 구축 및 커뮤니티 조성을 위한 사업으로 어르신과 청소년, 지역주민이 함께 어울리며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을 이루는 뜻깊은 마을 축제다. 축제를 위해 2024년부터 대구보건고등학교, 구남중학교, 대구달서시니어클럽, 달서구도시재생지원센터, 두류1·2동행정복지센터, 두류1·2동주민자치위원회, 두류파출소가 함께 협력하고 있다. 미로마을 축제는 어르신들만 즐기는 축제이기 보다 중학생, 고등학생, 노인, 그리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수 있는 축제다. 악기 연주, 춤, 수어, 시 낭송 등 예능발표회와 우리동네 가요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 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번 행사는 함께하는 사랑밭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으며 ‘두류은빛 미로마을 만들기’사업 세대친화 마을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다. 김진홍 관장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앞으로도 지역사회 내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세대통합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데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5-11-16

대구 달서구 “용산 꿈땅센터” 문 열어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종합사회복지관(관장 박순만)은 지난 5일 용산동 와룡로 용산중학교 앞 ‘용산꿈땅센터’ 개소식을 가졌다. ‘용산꿈땅센터’는 이름부터 야무지다. 이곳은 복지관 접근이 어려운 용산동 주민들을 위해 마련된 ‘찾아가는 복지 거점’이다. 지역 주민이 보다 가까운 곳에서 복지 서비스를 접할 수 있도록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센터 최민아 과장은 용산 땅에 새로운 꿈을 심는다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특히 용산초등학교와 용산중학교 인근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을 살려 지역 아동과 청소년의 사례관리, 교육복지 지원 중심 공간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방과 후 학생들이 안전하게 머물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중장년, 1인가구 등 지역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개소식에는 이태훈 달서구청장을 비롯해 구의원, 지역의 각급 기관단체 대표, 후원자 등이 참석해 센터의 출발을 축하했다. 센터 개소는 대구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1000만 원을 기탁해서 기반이 조성됐다. 박순만 관장은 이번 ‘용산꿈땅센터’는 복지관이 지역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한 첫 시도이자 아이들과 주민들이 함께 성장해 가는 지역 복지의 거점 공간이라며, 앞으로도 용산동 주민들의 복지 접근성을 높이고 꿈이 자라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1-16

아름다운 고궁의 가을

덕수궁 돌담길에도 가을이 깊었다. 돌담을 따라 흩날리는 처연하도록 고운 단풍에서도 고궁의 품격이 묻어난다. 가을을 즐기려는 북적이는 사람들. 그러나 아픈 역사를 품은 고궁의 가을빛은 고요하고 숙연하다. 돌담길의 정취에는 풍경만이 아니라 격동의 시대를 품은 역사의 숨결이 머문다. 열강들이 조선을 좌지우지하던 격변의 시절,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다. 아관파천 1년 뒤 1897년 고종은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해 대한제국의 성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황궁은 1904년 원인 모를 대화재로 주요 전각들이 소실되었고, 복원공사가 이루어졌으나 1907년 일본의 압박으로 고종황제는 폐위된다. 덕수궁은 애초 궁궐로 지어진 곳이 아니다.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사저로 그의 후손들이 거주하던 저택을,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불타자 선조가 귀환 후 임시 거처로 삼으니 이곳을 정릉동 행궁이라 불렀다. 이후 재건한 창덕궁으로 광해군이 옮겨가면서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이름을 남긴다. 그 후 270여 년간을 방치되어오다 고종에 의해 황궁으로 다시 사용된다. 그러나 1905년 중명전(重明殿)에서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1910년 한일병탄으로 우리나라는 주권을 잃는다. 일본은 한양의 모든 궁궐을 공원화 하였고 덕수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3분의 1로 축소된다. 덕수궁에서 가장 역사 깊은 전각은 석어당(昔御堂)과 즉조당(卽祚堂)이다. 이 두 건물이 애초 월산대군 후손이 거주하던 저택으로 선조가 임시 궁으로 사용하면서 덕수궁의 뿌리가 된다. 선조가 석어당에서 승하했고 선조를 이은 광해군과 인조의 즉위식이 즉조당에서 열린다. 인조가 경운궁 건물들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이 두 건물은 임진왜란의 아픔과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자 남겨둔다. 석어당은 유일한 중층 목조 전각으로 단청이 없다. 선조를 애도하고 임진왜란의 고난을 잊지 않기 위해 소박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자 함이다. 즉조당은 훗날 고종이 임시 정전(正殿)으로 삼는다. 주요전각들이 타버렸을 때도 최우선으로 복원해 고종이 직접 쓴 친필의 ‘卽阼堂’ 현판을 걸었다. 반면 돌로 지어진 서양식 궁궐 석조전(石造殿)은 부강한 나라를 꿈꾸었던 고종의 근대 의지가 담긴 건축물로 근대화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완공과 동시에 국권을 상실한다. 실록에 따르면, 즉위한 순종이 일본에 의해 창덕궁으로 옮겨 가면서 경운궁에 남은 아버지 고종의 덕(德)과 장수(壽)를 기리며 ‘덕수궁’이라 이름을 바친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야참으로 올린 식혜 한잔에 이씨 조선 500년 역사는 무너지고 있었다. 윤치호의 영문일기에 따르면 식혜를 바쳤던 궁녀 2명도 의문사 당한다. 고종의 죽음은 전국적인 항일정신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 상해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다. 고운 단풍 흩날리는 고궁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숨결이 서린 곳 이자 오늘의 대한민국이 태동한 역사의 무대이다. 나라의 운명을 함께 한 고종황제의 비극을 덕수궁이 품는다. 고종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던 함녕전의 처마 끝에 처연한 가을빛이 머물고 아름다운 돌담길 너머 쌓여가는 낙엽 위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다. 사람들은 가을빛 담은 고궁에서 깊어가는 가을을 자유롭게 즐긴다. 이 자유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3

앵기랑 바위처럼 합장한 가족···군위 아미산에서

주말 아침, 부드럽게 쏟아지던 가을 햇살이 창문을 두드렸다. “어디 좋은 곳으로 바람 쐬러 가자”는 엄마의 말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대구시 군위군의 아미산(峨嵋山). 아미산은 해발 737.9m로 그리 높지 않아 산책하듯 가볍게 등산하기 좋은 산이다. 군위의 들판을 지나 산 입구에 닿자 공기가 달라졌다. 도심의 묵직한 냄새 대신 흙과 나무의 향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산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았다. 누구라도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즐기기 좋은 등산로였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쬐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바닥에 부서졌다. 그 빛 위로 낙엽이 천천히 내려앉아 아름다운 빛깔을 자랑했다. 길가에 이름 모를 버섯들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동생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거 독버섯인가?” 하고 물었다. 동생의 말에 궁금해진 엄마가 버섯 사진을 찍어 검색해보니 매우 강력한 독버섯이란 정보가 나와 함께 웃음 지었다. 어쩐지, 이름 모를 채로 예쁜 버섯으로 남겨두는 편이 더 좋을 뻔했다. 조금 더 오르니 시야가 넓고 마을이 한 눈에 보였다. 건너편 풍력발전소도 눈에 잘 보였다. 그곳에서 아미산의 명물이라 불리는 앵기랑 바위의 모습이 잘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합장하는 애기 동자승 같아 앵기랑바위라고 불린다. 오래전 누군가의 소망이 그 바위에 스며든 듯, 차가운 바람에도 경건한 기운이 돌았다. 우리는 자연스레 그 앞에 그와 같은 모습으로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아름다웠다. 바위와 함께 합장한 엄마의 모습을 보니 마음속의 복잡한 생각과 걱정들이 다 날아가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미산은 크지 않아 짧은 산행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마음은 길게 머물렀다. 화려하지 않고, 특별히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지만, 마음을 편안히 품어주는 곳이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처럼 사람의 마음을 조용히 비춘다. 엄마는 아미산을 올라가며 어린 시절 친구들과 이야기했던 아미산에 대한 전설을 이야기해주었다. “아미산 동굴에 빠지면 압곡사 화장실로 나온다는 전설이 있었어.” 우리는 엄마의 말에 웃음 지으며 아미산을 올라갔다. 지금도 문득 그날의 햇살이 떠오른다. 합장의 바위 앞에서 셋이 나란히 웃던 모습이 아직도 그려진다. 아미산은 우리 가족의 사진 속에 머물러 있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3

대한어머니회 문경지회 회원들 아자개장터 감성 여행

단풍이 마지막 붉은빛을 뿜어내는 지난 9일. 문경시 가은읍에서는 전통 시장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감성 여행이 있었다. 문경이 고향인 윤보영 시인의 펜클럽을 주축으로 이뤄진 행사이다. 전국에서 500여 명의 참가자가 11대의 버스를 이용해 가은읍을 찾았다. ‘가은 아자개장터 감성 여행’이라는 테마로 이뤄진 행사였다. 전통 시장인 가은아자개장터 활성화를 위한 홍보와 체험, 문경의 아름다운 자연을 알리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아자개장터는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시장으로 매 4일과 9일에 열리는 전통 5일장이다. 대한어머니회 문경시지회(회장 오점숙) 회원들도 서둘러 가은 아자개장터를 찾았다. 현명하고 건강한 소비문화를 추구하는 소비자 운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어머니회의 취지에 따라 농산물과 지역 특산물을 두루 살펴보았다.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을 산지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전통 시장을 살리는 일은 가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문경을 찾는 관광객에게 전통 시장을 통해 싱싱한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도록 어머니의 마음으로 알려주고 함께했다. 문경의 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 홍보하는데에도 매진했다. 회원들도 시장을 돌며 직접 마늘과 생강을 배추 등을 구매하고 아자개장터의 명물인 연탄 모양을 그대로 살린 연탄빵도 구매해 시식했다. 이번 ‘가은 아자개장터 감성 여행’에는 ‘가은 아자개장터 디카시 공모전’도 함께 열린다. 총상금 300만원으로 문경시 가은읍 ‘가은아자개장터’에서 시장풍경과 간판 등을 담은 사진과 5행 이내의 시를 써서 응모하면 된다. 또 이날 행사에는 캘리그라피 체험과 시낭송, 아자개장터의 노래, 숟가락 난타와 가요대회 입상 가수의 가을 노래 등의 공연도 함께 하였다. 신현국 문경시장님이 자리하여 장터의 흥겨운 분위기를 북돋우는 노래를 직접 불러 분위기를 고취시키기도 했다. 대한어머니회 회원들도 함께 나가 우리 전통 시장의 친근함을 위해 함께 박자를 맞춰 흥을 돋우기도 했다. 아자개장터에는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먹거리 장터도 있다. 주막의 정취를 그대로 살린 디자인과 야외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전통 시장과 현대적 푸드존이 공존하는 복합형 공간이다. 회원들은 문경을 찾은 참여자들과 함께 아자개장터의 약돌장터국밥과 배추떡볶이, 문경국수, 부추전, 육전, 약돌족발 등을 맛보며 흥성이고 활력 넘치는 전통시장 분위기를 함께 체험했다. 도시와 농촌이 아자개장터에서 만난 즐겁고 흥성스러운 한마당 잔치였다. 깊고 그윽한 단풍의 향연이 펼쳐지는 봉암사 백운대까지의 단풍길 걷기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대한어머니회 문경지회는 앞으로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동참하고 아름다운 문경을 알리는 데에 계속 힘을 쏟을 계획이다. 지난 10월에는 ‘대한어머니회 쿠킹 클래스’를 열어 1인 가구 어르신을 위한 요리와 1인 청년 가구, 다문화가정의 참가자들에게 식생활 교육과 요리실습을 하여 크게 호응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조손가정돕기 김장 행사도 앞두고 있고 연말에는 후원자들을 위한 송년 후원의 밤도 준비되어 있다. ‘강력한 국가는 깨달은 어머니로부터, 요람을 흔드는 손이 세계를 흔든다’는 대한어머니회의 슬로건이다. 세상 어느 곳, 어느 일이든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깨인 어머니 정신으로 어디서나 빛을 발하는 대한어머니회 문경시지회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3

새 고속도로를 타고 참게추어탕을 먹으러 가다

포항에서 영덕까지 새 길이 뚫렸다. 19분이면 영덕에 도착한다. 2025년 11월 8일부터 달릴 수 있다 해서 우리도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밤새 가을비가 내린 뒤라 하늘은 가을가을 했다. 주말이라 우리처럼 새로 난 길을 경험하려고 나선 행렬이 가득했다. 동해를 끼고 달리는 아름다운 7번 국도, 신호가 많아서 속도를 내기 힘들었는데 고속도로는 단숨에 청하를 거쳐 포항, 영덕 경계를 지났다. 휴게소에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톨게이트였다. 우리의 목표는 ‘참게추어탕’이다. 고속도로에서 내리자마자 나오는 신호에서 우회전하면 오십천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동네가 나온다. 그 앞을 지나는 길이 오래전 영덕으로 가는 시외버스 길이다. 지금은 논밭 뷰의 시골길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여기에 과수원에 둘러싸인 ‘참게추어탕’ 집이 있다. 메뉴 이름이 가게 이름이다. 오래된 산장 같은 모양의 가게다. 실내는 단체 손님도 거뜬히 맞아도 될 정도로 넓은데 주말이라 조용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 개 드려요?” 메뉴가 간단하니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참게추어탕 하나와 미꾸라지 튀김 소(小)자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탕이 먼저 나왔다. 참게는 어디서 오냐고 하니, 앞에 흐르는 오십천에서 잡는다고 했다. 국물이 걸쭉하다. 함께 나온 반찬도 정갈하다. 마늘과 땡초 다진 것을 넣고 산초가루도 뿌렸다. 국물이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하다. 생선 비린내에 민감한 내 입맛에도 딱이다. 호록호록 먹다 보니 미꾸라지 튀김이 뒤이어 나왔다. 바삭하고 고소하다. 튀김도 비린 맛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 생선튀김에 손이 안 가는 편인데, 순식간에 몇 마리를 해치웠다. 소주 한 잔이 들어가자 남편은 어릴 적 참게 많이 잡고 놀았냐고 내게 물었다. 집 앞에 강물이 낙동강으로 바로 들어가던 동네에 살던 나는 은어, 골부리는 잡아도 참게는 기억에 없었다. 포항 장기에서 나고 자란 옆지기(남편)는 여름이면 늘 냇가에서 동네 친구들과 고기를 잡고, 그러다 가끔은 모포 가까이 까지 가서 참게를 잡았다고 했다. 동네를 멀리 돌아가던 냇물이 어느 해 태풍에 큰 물이 지나고 논밭과 냇가가 물진자리로 경계가 무너졌다. 불도저가 와서 새로 물길을 낼 때 휘돌던 물길을 짧게 새로 만들었다. 며칠 전까지 논이던 곳이 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니 참게가 살기 좋은 환경이 완성되었다. 근처에 시댁에서 농사짓던 논이 있었는데 논 가운데 큰 너럭바위가 떡 버티고 있었다고 했다. 사람의 힘으로 옮기기엔 힘든 크기였고, 일하다 잠시 새참을 먹으며 쉬기도 했다. 때마침 태풍이 지나 불도저가 들어와 물길도 사람길도 새로 낼 때 너럭바위도 논에서 치워달라고 했더니 밀어서 재방 속에 묻었다고 한다. 그 바위를 들어내니 밑에서 세숫대야만 한 참게가 나와 절구에 콩콩 찧어 국을 끓여 온 식구가 나눠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참게를 먹고 잘 자란 남편이 포항 시사를 쓰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포항 향토 연구를 오래 하신 분이 시댁 논 그 언저리에 고인돌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없다고 해서, 그 너럭바위가 고인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너럭바위 밑에서 오래 살았던 참게는 동해안 유입 하천에 사는 동남참게일지도. 경상북도 민물고기연구센터는 2017년, 2018년 영덕군 오십천과 울진군 왕피천에 어린 동남참게 25만 마리를 방류했다. 그해 6월 울진군 왕피천 하구에서 포획한 어미로부터 부화해 전갑폭 0.7㎝ 이상 성장한 치게다. 동남참게는 민물과 바다를 오가는 회유종으로, 바다에서 부화한 알은 총 6번의 유생 성장과정을 거쳐 어린 게의 형태를 보이는데, 강 하구의 기수지역을 따라 하천 중·상류로 이동해 어미까지 성장한다. 과거에는 큰 강 하구나 하천에서 쉽게 포획할 수 있었지만, 서식 환경오염, 하천 둑과 보 설치에 따른 이동 경로 차단 등으로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새 길이 나니 금방 달려가 맛난 참게추어탕을 먹을 수 있었고, 어린 시절로 훌쩍 달려갈 수도 있었다. (054)733-5621, 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영로 290 1층, 오전 8시~저녁 7시, 월요일은 휴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1

따끈한 어묵 국물이 그리운 계절

입동이 지났다. 겨울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더디게 온 가을이 빨리 달아나려고 한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붕어빵 포장마차가 돌아왔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쉽게 붕어빵 노점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다 옛말이다. 오죽하면 붕어빵 노점이 있는 동네를 ‘붕세권’이라 부를까. 심지어 붕어빵 노점을 공유한 붕어빵 지도 어플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용자들은 실시간 댓글을 통해 문 열고 닫는 시간, 가격과 맛 평가까지 공유하고 있으니 추억의 붕어빵을 먹기 위한 이들의 열성과 진심이 느껴진다. 우리 동네에도 붕어빵 노점이 반년 만에 돌아왔다. 단팥맛과 슈크림맛 두 가지로 승부를 보는데 가격은 3개 이천 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어묵은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묵은 붕어빵의 영혼의 단짝이다. 붕어빵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구원 투수로 나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바로 어묵이다. 꼬치에 꽂힌 납작 어묵과 둥근 어묵으로 추위를 녹이다 보면 어느새 빵틀에서 굽혀져 나오는 붕어빵과 만나게 된다. 만약 베테랑 붕어빵 장사꾼이라면 손님이 어묵을 충분히 먹을 시간을 준 다음 붕어빵을 담아줄 것이다. 예전에는 어묵 국물을 빨간 플라스틱 미니 바가지로 먹었다면 요즘은 종이컵을 사용한다. 친환경과는 거리가 있지만 좀 더 위생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간장도 개인용 앞접시에 덜어서 찍어 먹을 수 있게 준비되어 있으며 꼬맹이 손님에게는 먹기 쉽게 꼬지를 나무젓가락으로 교체해 주기까지 한다. 노점인 만큼 카드 결제는 불가하나 현금이 없어도 먹을 수 있다. 주인장의 계좌번호가 친절히 적혀 있으니까. 국물 맛은 주인장의 자존심이기도 한데, 무를 기본으로 때론 게, 파, 고추 등을 넣고 취향껏 뭉근하게 끓여 맛을 낸다. 굳이 어묵을 먹지 않아도 붕어빵 손님이 어묵 국물을 먹는 것은 암묵적 합의다. 하굣길의 학생과 퇴근길의 직장인,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와 한잔 걸친 취객의 발걸음을 모두 멈추게 하는 뜨끈한 국민 간식, 어묵의 계절이 도래했다. 이렇듯 세상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1

늘어나는 ‘로드킬’, 동물과 함께 잘 사는 길은···

해마다 로드킬(roadkill·동물 찻길 사고) 이 늘어나고 있다. 로드킬은 야생동물이 도로 가까이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에 부딪쳐 죽음을 맞이하는 사고다. 지금도 수없이 늘어나는 도로로 인해 로드킬이 일어나는 건 어쩌면 그다음 순서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운전을 크게 즐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늘 운전대를 잡고 산다. 아이가 있으니 반은 강제로 차를 몰고 있다. 늦은 밤 운전할 일이 생기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서야 할 때도 있다. 새로 도로가 생겨 조금이라도 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면 종종 차 바퀴에 물컹하고 뭔가 밟히는 일도 생기곤 한다. 바퀴로부터 전해지는 느낌이 좋지 않은데 알고 보니 이미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어느 동물의 사체였다. 로드킬이었다. 동물들이 말하는 길 위의 하소연이기도 했다. 로드킬 당한 동물이 안타깝지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잘 지내는 길은 없을까. 환경부의 로드킬 사고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2023년 5년간 21만7032마리의 동물이 도로 위에서 죽은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2020년엔 1만5000마리 대였던 로드킬이 2023년엔 7만9278건으로 4배를 훌쩍 넘겼다. 최근에는 차가 다니는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에서도 어렵지 않게 로드킬을 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도 천만 시대라고 하니 길거리 어디에서도 동물을 마주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만큼 로드킬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로드킬을 많이 당하고 있는 동물은 대부분이 고라니지만 이제는 국도나 산지로 이어진 길에서도 동물들이 로드킬을 당하고 있다. 개구리나 두꺼비 같은 작은 동물부터 수달, 노루, 사슴, 개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도시 생활의 편리를 위해 늘어나는 도로는 원래 동물들의 길이었다. 야생동물들은 먹이를 찾고 짝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길을 나선다. 자신들이 다니던 길에 도로가 생긴 줄 모르고 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희생당한다. 낮보다 운전자의 시야가 멀리까지 확보하기 어려운 야간에 많이 발생하고 있다. 봄과 가을철을 포함해 차량 이동이 많은 휴가철인 7~8월에도 그 수가 상당하다. 과속운전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포항 시민 이은정(42·북구 양덕동)씨는 “토요일 오후에 구룡포 가는 길에 로드킬 당한 동물을 봤다. 이 길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속도를 많이 내는 구간이라 평소에도 위험하다 느끼는 곳이다. 수거하러 오신 분들이 길을 건너는 것도 위험해 보였고 동물들도 가여웠다”라고 전했다. 로드킬이 과속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려면 운전속도를 줄이는 게 필요하다. 차량 속도를 줄이면 도로에 갑자기 나타나는 동물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차량으로 오거나 차량 불빛에 도로로 뛰어와도 쉽게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 로드킬 예방 대책으로 생태통로나 야생동물주의표지판을 설치하고 있지만 일반국도나 지방도로에서는 잘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동물을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중하는 인식이 로드킬과 같은 끔찍한 죽음을 겪지 않도록 하게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로드킬에는 신속한 뒤처리도 필요하다. 그래야 2차 사고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이 결국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잘 사는 길이 될 거라 여겨진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11

고산의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축제의 향연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고산구민운동장에서 열린 ‘2025 제7회 고산3동 고인돌 문화축제’가 주민 2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는 고산3동 고인돌문화축제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10개 협력단체가 후원하여 마련되었으며, 고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축제는 ‘고인돌, 고산의 시간을 잇다’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고산의 대표 문화유산인 고인돌을 모티프로 한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17여 개의 체험 부스에서는 종이 팩, 지갑 만들기, 양말목 꽃 키링 제작 등 친환경 체험이 진행돼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개막식은 마루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장엄하게 시작되었으며, 수성구 홍보대사 박규리의 축하 공연을 비롯해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졌다. 주민이 직접 참여한 장기자랑 무대에는 현장에서 접수한 12개 팀이 출연하여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며 축제의 흥을 더했다. 또한, 고인돌을 주제로 한 문화유산 전시 존은 고산의 풍부한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지역민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뜻깊은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이와 함께 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생들이 참여한 어린이 그림 전시회도 마련되어, 어린이들의 순수한 시선으로 담아낸 고산의 문화가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축제장을 찾은 한 방문객은 “다채로운 공연과 체험으로 온 가족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아이와 함께 고산의 소중한 문화를 배울 수 있어 보람되고 뜻있는 자리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선도 축제추진위원장은 “올해는 가족 단위 방문객의 참여가 늘어 축제의 의미가 더욱 깊었다”고 인사를 했다. 또 이정미 고산3동장은 “앞으로도 고산의 고인돌을 비롯한 지역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인돌 문화축제가 수성구를 대표하는 마을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축제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문화의 장으로서, 고산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고산의 문화유산이 주민의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그날까지, 고인돌 문화축제는 앞으로도 ‘고산의 시간’을 잇는 다리로서 그 역할을 이어갈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1-10

권상원 작가의 ‘대구의 오지 Ⅲ’ 성황리 종료

사진작가 권상원씨가 최근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대구의 오지Ⅲ’ 전시 개막식 및 출판회를 가졌다. 권 작가는 이날 도시개발과 함께 기억에서 사라지는 대구의 골목 현장을 소재로 한 작품 19점을 전시했다. 작가는 2016년 7월 사진집 ‘대구의 오지Ⅰ’을 출판했으며 그해 10월 대구시립중앙도서관 가온갤러리에서 작품 발표회를 하기도 했다. 같은 해 김광석 길의 갤러리 아르에서 열린 포토대구전시회에서도 대구의 오지 중에 동인아파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7년 4월에는 갤러리 안나(경북 칠곡군 가산면) 개관전 ‘사진파티’에 초대되어 ‘대구의 오지’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7월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대구의 오지 중에서 창을 소재로 한 ‘대구의 오지-창’을 발표한 바 있다 또 2019년 4월에는 안양문화재단의 주최로 국내 작가 20여 명과 해외 작가 20여 명으로 구성된 ‘공간 기억 전’에 초대되어 김중업 건축박물관 전시관에서 ‘대구의 오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9년 9월에는 사진집 ‘대구의 오지 Ⅱ’를 출판하고, 이듬해 2월 봉산문화회관에서 발표를 하였다. 2021년 우크라이나에 열린 제4회 한-우크라이나 현대예술전에도 초대되어 대구의 오지를 발표하였다. 권상원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도시 재개발과 함께 변화해가는 기억의 공간 대구의 골목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겠다”며 자신만의 포부를 보였다. 전시된 그의 사진 속에는 사진가 자신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은 물론이요 골목에서 삶을 영위하는 서민들의 정서와 땀 내음까지 배어있음을 느끼게 한다. 기억의 공간은 대구의 골목들이 도시 재개발로 인하여 하나 둘 소리 없이 사라지는 가운데 정든 삶터를 떠나는 원주민들의 안타까움과 아쉬움, 물질적 권력 앞에서 무력한 민중들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작가는 10여 년 전부터 오로지 대구의 골목만을 주시하며 관찰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진작가 권상원씨는 자비로 출판한 사진집을 대구광역시의 중요 공공도서관, 국회도서관을 비롯하여 광역자치단체의 대표도서관에도 무상 기증 비치하였다. 또 사진 전공학과가 있는 전국의 대학도서관과 대구 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중요 대학도서관에도 무상으로 기증 비치하였으며 사진전공학과의 교수들에게도 무상 배부했다. 이날 전시회 개막식에는 김종수 교수(토지사진가), 권정태 대구학회 회장, 박순국 전 매일신문 특파원, 윤국헌 교수, 황인모 황인모사진연구소 대표, 최덕순 전국문화사진초대작가회장이 참석하는 등 100여 명이 참석하여 그의 작품전을 축하했다. 사진전에 참석한 한 인사는 “대구의 골목길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이 후일 대구의 작은 역사로 남았으면 한다”고 작품 감상의 소감을 전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1-10

(톱)APEC 개최 도시 ‘경주’ 지명의 유래는

신라의 수도 경주는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개최를 계기로 한 번 더 세계적인 도시로 명성을 떨치게 돼 고무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상고시대 신라는 진한 12국 중 사로국이라 하였다. BC 57년 신라를 건국한 이후 992년간 56 왕조를 이어오면서 나라를 서라벌 또는 계림으로 불렀다. 진한 땅에는 예로부터 여섯 마을 육부촌(六部村)이 있었다. 촌장은 모두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는데, 제3대 노례왕이 즉위한 9년(132)에 육부촌의 명칭을 부(部)로 고치면서 여섯 촌장에게 월성을 본관으로 하여 각기 다른 성(姓)을 내린다. 예컨대, 알천 양산촌의 촌장은 알평이라고 했는데, 알천 양산촌을 급량부로 고치고 촌장 알평에게 내린 성이 월성 이씨다. 표암봉에는 박(瓢) 바위가 있고 알천 탄강 비석이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게다가 광석대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평을 목욕시킨 자리라며 바위로 만든 욕조가 있다. 그럴듯하게 만들었는지 그럴듯한 이야기인지 어쨌든 그 유적이 유존한다. 신라의 역사가 56 왕대에 이르는 문화유적은 불교 유적이 대세를 이룬다.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공인하고 최초로 흥륜사를 세우면서 번성한 까닭이다. 제23대 법흥왕 14년에 터를 닦고 동 왕 22년에 천경(天鏡) 숲을 베고 공사를 시작한 흥륜사는 서까래와 들보에 쓸 나무는 모두 이 숲에서 취했다. 927년 후백제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신라 제55대 경애왕을 자결하게 한 뒤 국보와 재물 등을 약탈하였다. 그리고는 왕의 이종 사촌 동생 김부(金傅)를 제56대 경순왕으로 세우고 물러갔다. 하지만 경순왕은 왕위에 오르고도 불행하게도 신라에선 마지막 왕이 되었다. 후백제의 잦은 침입과 지방호족들의 할거로 나라 기능은 마비돼가고 민심이 고려로 기울어져 갔다. 그러자 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를 고려에 귀부하기로 뜻을 밝히자 신하들과 큰아들 일(鎰)의 반대가 있었으나 이를 무릅쓰고 왕건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떠나게 되었다. 고려에 나라를 귀부(歸附)한 경순왕은 유화궁을 하사받고, 개경에 있으면서 경주를 식읍으로 하여 고향의 일에 관여하는 벼슬인 사심관으로 임명받았다. 지금의 경주라는 지명은 곧 고려 왕건이 처음 내린 지명이다. 개경에서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자녀 여럿을 두었다. 하지만 늘 고향 경주를 잊지 못해 그리워한 나머지 허약해지자 끝내 병을 얻어 귀부한 지 43년 후인 978년에 일생을 마감했다. 경주는 그 뒤로 승격하여 대도독부(大都督府)가 되었다가 성종 때 동경유수(東京留守)로 고치고, 영동도(嶺東道)에 예속하게 되었다. 현종 때 강등시켜 경주방어사(慶州防禦使)로 하고, 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고쳤다가 다시 동경유수로 하였다. 뒤에 동경 사람들이 신라가 다시 성한다는 말을 만들어 상주도·청주도·충주도·원주도에 격문을 전하고 낮추어 지경주사(知慶州事)로 하였으며, 관내의 주(州)·부(府)·군(郡)·현(縣)을 흡수시켜 안동과 상주에 나누어 예속시켰다. 고종 때 다시 유수로 고치고, 충렬왕 때 계림부로 고쳤다. 그러다가 조선 태종 조에 이르러 경주라는 옛 지명을 다시 쓰게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로써 신라는 경주·동경·안동·지경·계림 등 왕경이던 지명을 번갈아 쓰게 되었다. 이번 APEC 회의 개최를 계기로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찾은 경주, 그렇잖아도 이미 많은 세계인들이 찾은 그 경주라는 도시 이름의 유래를 보며 다시 한번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급부상하길 기대한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5-11-10

(시민기자 단상) 고구마

무더웠던 여름이 지루했지만 계절은 고장 난 벽시계가 아니었다. 해뜨기 전 아침엔 제법 쌀쌀해서 뒷동산 아침운동을 할 때 이젠 따뜻한 외투가 친구가 되었다. 아내는 운동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고구마를 쪄서 가방에 넣어준다. 어릴 적 고구마는 우리 간식이 아니라 밥 대신 먹는 주식에 가까웠다. 학교 갔다 오면 커다란 대바구니에 고구마를 삶아서 시렁에 올려놓으면 그걸 꺼내 먹는 일이 집에 와서 하는 첫 번째 일이었다. 요즘엔 고구마를 먹으면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고구마를 좋아하지만 어릴 적에는 속살이 하얗게 밤처럼 타박타박한 걸 좋아했다. 그래서 잘못 집으면 누군가 쪼개 보고 밤고구마가 아닌 걸 알고 다시 붙여놓은 것도 있다. 나 역시 몇 개를 쪼개 보고 밤고구마만 먹고 아닌 것은 다시 붙여 놓는다. 이제는 취향이 달라져서 손으로 만져보고 말랑말랑한 것만 골라 먹는다. 고구마를 생각하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어릴 적 겨울밤은 왜 그리도 길었는지 저녁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파 군고구마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 댁 굴뚝 옆 장작불 속에서 꺼낸 군고구마가 가장 맛있는 고구마다. 겉 모습은 검게 타 있었지만 속살은 노랗고 하얀 고구마가 달고 맛있다. 화롯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호호 입바람을 불어가며 고구마를 먹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고구마를 먹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손자를 위한 마음이었고 가족들의 소통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군고구마를 꺼낼 때마다 “조심해 뜨거워”하시며 두 손에 천을 덧대곤 하셨다. 어린 나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더 기대에 부풀었고 고구마 한입을 베어 물었을 때의 포근한 단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추운 겨울, 낡은 전기장판 위에서 고구마 하나 나눠 먹으며 보냈던 그 시간은 단순하지만 참 따뜻했다. 이제 내 나이도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진 지 오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릴 적 고구마가 그리워지는 것은 그때의 소박한 행복이 그리워진 탓이 아니겠나. 이제는 마트에서도 손쉽게 군고구마를 살 수 있고 전자레인지 버튼 하나로도 고구마를 익힐 수 있다. 하지만 그때 그 맛은 다시는 똑같이 되살릴 수 없다. 불 냄새와 함께 묻어있던 손때, 나눔, 그리고 기다림의 정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11-10

시니어들의 가을 나들이, 청송 주왕산을 찾아

지난달 30일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10월 현장학습날을 맞아 청송군을 다녀왔다. 가을을 타는 시니어들의 들뜬 모습에 부조라도 하듯 청명하고 따뜻한 날씨는 늦가을 정취를 더욱 잘 느끼게 했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재잘대는 학우들의 모습은 마치 소풍 나온 어린이처럼 들떠있었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파천면에 위치한 산소 카페 ‘청송 정원’이었다. 국내 가을 여행지로 손꼽히는 핫플레이스다. 모두가 부푼 꿈을 안고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차에서 내린 학우들은 모두가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수만 평 대지 위에 가득찬 백일홍은 죄다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며칠 전 내린 서리로 인해 아름답던 그 모습은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도시의 찌든 때를 잠시나마 힐링하려 했던 꿈이 물거품이 돼 모두가 아쉬워했다. 그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주위에 둘러싸인 산들이 온통 산불로 인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는 것이다. 매표소 옆에 마련된 조형물과 포토존을 찾아 반별로 삼삼오오 짝지어 사진을 찍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찾은 곳은 주왕산이다. 주왕산 역시 이맘때면 국내 최대 가을 단풍 여행지로 유명하지만, 올해는 늦게 물드는 탓인지 단풍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탁 트인 가을 날씨와 위풍당당하게 내려다보는 기암 봉우리가 학우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차에서 내려 일부는 대전사를 돌아보고 또다른 일행은 맑은 계곡물을 끼고 올라 기암 부근까지 다녀왔다. 그때 대전사 뒤로 보이는 기암 다섯 봉우리 중 한 곳 중심부에 빨간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페인트로 칠한 것 같았으나 무엇인지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모두가 내린 결론은 파란 담쟁이 넝쿨이 단풍으로 물든 것이라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주산지다. 물안개와 단풍으로 유명한 주산지는 사진 애호가를 비롯하여 수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하지만 물속에 잠긴 왕버들과 주위의 풍광을 보기 위해 모두 열심히 올라갔다. 여기도 역시 단풍은 보이지 않고 물에 잠긴 고목만 초췌한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단풍은 없지만 호수에 비친 왕버들 모습과 고즈넉한 분위기는 학우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오늘의 마지막 장소는 영천시 보현댐 출렁다리다. 어두움이 깔린 초저녁 거대한 출렁다리가 보였다. ‘영천 보현산댐 출렁다리’라는 글자가 쓰인 입간판에 조명이 들어오고 500여 미터의 긴 출렁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학우들은 포토존에 몰렸고 보현산 댐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수요대학 이복자 학우는 “비록 단풍은 볼 수 없었지만, 청명한 가을 날씨와 아름다운 청정 계곡과 주왕산 봉우리, 한 폭의 풍속화 같은 주산지, 별 모양을 형상화한 영천 보현산 댐 출렁다리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며 “좋은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1-09

자두·사과 복합 재배로 새 희망 키우는 ‘청송 낙원농장’

10월 말, 경북 청송군 파천면 중평마을의 낙원농장은 사과 농장으로 완벽히 변모해 있다. 3월에 심은 사과나무들이 계절이 가을로 깊어지는 지금, 풀을 베고 골을 정리하며 반듯하게 자란 나무 사이를 걷는 농부의 미소가 고요하게 퍼진다. 긴 농사 여정의 한 가운데서, 그는 2년 후 수확을 떠올리며 골을 정리하고 나무를 가다듬는다. 반면, 최근 몇 년 반복된 자두 농사의 실패는 그에게 깊은 상처였다. 15년 동안 자두 농사를 이어왔지만, 최근 3년간은 농비조차 건지기 어려울 만큼 수확이 저조했다. 그의 자두나무는 올해 3월 경북을 덮친 산불의 여파로 막 피려던 꽃망울이 말라버렸고, 긴 여름 내내 이어진 불볕더위에 열매가 성숙하기도 전 햇볕에 설익었다. 그나마 남은 열매도 해충 피해가 심했다. 8월 말, 수확을 앞두고 열매가 이르게 색을 띠자 농부는 올해도 자두 농사는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실제로 수확 결과는 더 참담했다. “만지는 것마다 성한 것이 없을 정도였다”라는 그의 말에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조금씩 벌레 먹은 자국이 남은 자두를 마주한 농부는 망연자실했고, 작년 9월 수확 10여 일 전부터 이상 징후를 감지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해 그는 응애라는 해충을 발견하고, 재빨리 주변 나무의 두 배수에 살충제를 쳤다. 일시적으로 해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응애는 순식간에 농장 전체로 번져버렸고, 잎은 녹색 상태로 말라버렸으며 열매는 익기 직전 성장을 멈췄다. 결국 농장 전체 수확을 포기했다. 그는 담당 기관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초제 친 것 아니냐”는 기술센터 직원의 질문을 듣는 등 제대로 귀 기울여 주는 곳은 없었다. 그 전년도에는 태풍과 지속된 비 때문에 잘 익은 자두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남은 자두조차 과육이 터져 폐기해야 했다. 가입한 재해보험도 기대했던 보상은 턱없이 부족해 “보험에 대한 불신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위기가 생활의 위협으로 다가오자 분산된 소득원 마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농부는 연이은 자두 수확 실패와 작년 병충해 여파로 ‘이 나무들이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품종을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3월 25일 청송을 휩쓴 산불에 자두나무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피해가 컸다. 중평마을의 낙원농장에도 자두나무의 30% 이상이 불에 탔지만, 그날 새로 심은 사과 묘목은 일부만 피해를 보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귀농 14년 차인 그는 말한다. “맞벌이하지 않았다면 시골에서 농사만으로 살기 어려웠다.” 농업소득은 단지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철저한 준비와 하늘의 도움까지 있어야 가능하다. 사과나무를 심어 자두와 사과 두 가지 품목으로 소득원을 분산하면 위기도 분산된다. 한가지가 안 되더라도 다른 하나가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사과나무 사이를 거닐며 상쾌한 바람을 맞는 그의 모습에서 단단한 결의를 본다. 그는 실패를 되새김하지 않고 새로 돛을 올린다. 올해는 실패했지만, 잘 크고 있는 사과나무를 보며 부농의 꿈을 품어본다. 그는 그렇게 다시 길을 걷는다. 사과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잎 사이로 햇살이 은은히 비치고, 농부는 그 틈새에서 내일을 꿈꾼다. 아마도 2년 후, 이 사과나무들이 실한 열매를 맺고 농부의 미소가 더 크게 번지리라. 청송의 가을이 깊어갈수록 낙원농장의 내일도 조금씩 그 빛을 더해가기를 기대해 본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6

묵은 서신들, 한국 근현대사의 소중한 사료(史料)

여든여덟 노모가 상자에서 낡은 종이뭉치를 주섬주섬 꺼낸다. 빛이 바래고 향이 묵은 수십 통의 편지들이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시집가던 날, 친지와 친구들이 써 준 축사, 시집간 딸이 그리워 보내 온 친정어머니 서신, 시집살이 힘들어도 덕으로 감내하라 일러주던 친정오빠의 단정한 필체, 그리고 신행을 앞둔 신부에게 보낸 새신랑의 애정 담긴 편지까지, 모두가 한 시대를 통째로 품은 시간의 기록이다. 축사와 편지를 쓴 이들은 어느새 고인이 되었지만 그들의 글은 여전히 남아 65년 세월을 친구 모친과 함께하며 그 곁을 지킨다. 살다보면 ‘살아낸다’는 노랫말이 와 닿을 때가 있다. 누구라도 여든여덟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한 편의 소설이 된다. 어른들이 놋그릇을 애지중지 감추는 것을 보며 자랐고 어딘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가던 동네 언니들, 보따리를 이고 진 피난민들이 마을과 집 마당으로 들이닥치던 것을 기억하는 어르신은 멀어진 세월을 회상하느라 이야기가 끝이 없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도 다시 봄은 오고 삶은 이어진다. 결혼은 어려운 시절에도 여전히 축복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도 며느리의 시집살이는 숙명처럼 여겨졌고, 지켜야 할 예법과 해야 할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사랑방 손님이 끊이지 않던 시절, 그래도 푸념 없이 성실히 살았다. 온화한 성품으로 음식과 수(刺繡) 놓기를 좋아하는 모친의 지난한 시절 속,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바로 이 묵은 서신들이다. 친정엄마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오라비의 글을 되새기며 시집살이 고됨을 감내한다. 가장 아끼는 것은 두루마리에 쓴 형부의 긴 축사다. ‘논 서마지기를 줘도 처제와 바꾸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던 시절, 시집가는 처제에게 쓴 애정이 절절한 축사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줄줄이 외우신다. 종종 꺼내보는 원본이 훼손될까 염려되어 그 긴 축사를 복사해 거실 벽에 기다랗게 붙여 드렸더니 “왜 여태 이 생각을 못했을까”시며 뒷짐을 지고 천천히 읽으시는 어르신 눈에는 젊은 날의 추억이 고요히 되살아난다. 서신들은 한자가 간간이 섞인 한글로 쓰였다. 일본어를 강요받던 시대를 벗어나 비로소 우리말과 글로 편지를 쓰는 흔흔함이 편지 곳곳에 묻어난다. 친정어머니 편지는 흘림이 심해 읽기가 다소 힘들고, 아직은 태양력보다 월력(음력)에 더 익숙했던지 서신에 기록된 날짜가 ‘단기’로 표기되어 있다. 한 장 한 장이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소중한 사료(史料)처럼 느껴진다. 긴 두루마리 축사들은 그 자체로 가사(歌辭)를 닮았다. ‘글’이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는 양반의 전유물이었지만 언문(한글)의 탄생으로 평민과 부녀자도 작가를 꿈꾸게 되고, 자연을 읊고 임금을 기리던 가사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상의 애환을 담은 산문시로 발전한다. 모친의 편지는 그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힘들었던 세월에도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모진 세월 견디신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며 그들의 삶은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오래된 서신 속에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한 세대가 품었던 사랑과 인내 그리고 인간의 품격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무엇이 한사람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가?’ 묵은 향 뿜어내는 어르신의 서신이 그 답을 조용히 일러준다. 사랑, 그리고 기억이다. 살아 온 날들은 흘러가도 편지는 남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6

남한강을 따라 엄마와 함께 그린 추억, 단양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아침, 엄마와 함께 단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며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윤곽이 점점 멀어지고, 산들이 가까워질수록 마음도 차분해졌다. 첫 목적지는 도담삼봉이었다. 남한강 위로 솟은 세 개의 바위 봉우리가 잔잔한 물 위로 비쳐 그려졌다. 그 풍경은 마치 동양화 한 점 같이 아름다웠다. 강 위로 유람선을 타고 경치를 즐기는 관광객들도 보였다. 우리는 강가를 따라 걸으며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걷다 보니 목이 말라 근처 카페에 들렀다. 엄마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더덕&마쥬스’를 골랐다. 한 모금 마시더니 “건강한 맛이지만 내 입맛은 아니야”라며 웃었다.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기억에 생생하게 남았다. 이후 만천하스카이워크로 향했다. 차를 타고 오르는 길에는 불빛이 은은한 터널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조명이 반짝이며 어두운 공간을 채웠고, 그 속을 통과할 때 마치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신비로웠다. 이런 기분 탓에 터널을 지나며 우리는 동시에 감탄했다. 터널을 벗어나니 단양의 산세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도착한 스카이워크는 생각보다 훨씬 높고 탁 트여 있었다. 발밑으로 남한강이 굽이치며 흐르고, 멀리 산들이 겹겹이 이어졌다. 한쪽에 노란 돌들이 눈에 띄어 관리 직원에게 물어보니 채석장이라고 했다. 자연과 산업의 흔적이 공존하는 풍경이 묘하게 인상 깊었다. 스카이워크를 내려온 뒤 우리는 장도길로 향했다. 강을 따라 난 둘레길은 조용했고, 햇살이 나무 사이로 흘러들었다. 강물 위를 지나가는 기차가 멀리서 보였다. 잔잔한 물결 위로 반사되는 철길의 그림자, 그리고 그 위를 천천히 지나가는 기차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장도길을 나오니 국화로 꾸며진 길이 보였다. 그리고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꽃과 하나 되어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흑마늘 갈비였다. 단양의 특산품답게 진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었다. 식당 창밖으로는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단양시장으로 향하니, 거리 곳곳이 활기로 가득했다. 흑마늘 빵, 흑마늘 닭강정 등 흑마늘을 활용한 음식들이 줄지어 있었고, 인기 있는 빵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따뜻한 빵을 받아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도 몇 가지를 사서 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시장을 벗어나자 맞은편으로 남한강이 펼쳐졌다. 밤이 내려앉은 강가에는 조명이 켜지며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풍차와 계단, 폭포, 물고기 조형물까지 빛으로 물든 장면은 낮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야경을 감상하고 단양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6

철학자 쉐프가 만드는 파스타

실크로드와 국수의 만남, ‘누들로드’라는 2008년에 방영된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국수가 우리 손에 온 길을 알았다. 한 알의 밀이 국수가 되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뒤에 감춰진 동서 문명 교류의 수수께끼를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면 요리를 가져왔다는 설이 널리 알려졌지만, 폴로 이전에도 이탈리아에 유사한 반죽 요리가 있었다는 반론이 있다. 포항에 파스타를 제대로 요리하는 집이 있다. ‘파스타 쉐프’, 이름부터 세프라 붙인 걸 보면 분명 사장님은 요리에 진심이다. 두호고등학교 앞에 있을 때부터 단골이 있을 정도로 맛집이었다. 하지만 외진 곳이라 포항에 놀러 온 사람들이 우연히 지나다 들어갈 수는 없었다. 최근 ‘스카이 워크’ 가는 길에 자리를 옮겨 실내도 조명도 새로 단장해서 오픈했다. 음식점이 리모델링하거나 이사, 또는 주인이 바뀌면 맛도 변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걱정을 하며 방문했다. 주말 늦은 점심시간이라 우리뿐이었다. 블루베리 피자와 트러플 크림 리조또를 시켰다. 여느 집에는 물을 종이컵에 주는데 이곳은 예쁜 유리잔이다. 우아한 목이 있는 유리잔, 오이 피클도 사장님이 직접 담가 새콤달콤 자극적이지 않다. 셀프 바에서 마음껏 더 가져다 먹어도 된다. 주문하기를 누르자마자 그때 오픈 주방에서 사장님이 요리를 시작했다. 우리 음식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콩콩콩 들렸다. 피자가 먼저 나왔다. 리코타, 모짜렐라 등 네 가지 치즈가 올라간 피자. 통밀로 직접 반죽하고 숙성한 뒤 만들어 화덕에서 구워 나왔다. 한 조각 떼어내니 쭈욱 늘어난다. 테두리 부분 꼬다리가 바삭하니 고소해 남길 수 없는 맛이다. 다른 집의 피자는 두 조각 이상 먹으면 손이 안 가는데, 둘이서 한판 다 석션했다. 리조또를 숟가락으로 덜어내니 긴 실처럼 치즈가 따라왔다.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했다. 맛이 변하지 않았다. 다 먹고 사장님께 들으니 트러플 크림 리조또는 예약해야만 먹을 수 있는 메뉴라고 했다. 오래 계속 볶아서 만들어야 하니, 손님이 많을 때는 만들기 힘들다 한다. 다행히 늦은 점심시간이라 가능했다고 하니, 가기 전에 예약하고 가면 좋겠다. ‘파스타 쉐프’의 음식이 마지막 한 입까지 느끼하지 않은 이유는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버진 올리브유란 화학적 방법이 아닌 올리브 열매를 으깨어 즙을 짜내 만든 기름, 즉 압착 올리브유를 말한다. 이 압착 올리브유 중에서 산도 0.8% 이하의 최상급 제품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라고 한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은 공복에 섭취하면 흡수율이 높아지고 소화를 돕는 데 효과적이며, 심혈관 건강과 항산화, 피부 및 두뇌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치즈도 최상의 품질만 고집한다. 이렇게 음식에 진심인 이유는 사장님이 요리를 정말 좋아하고 즐기며 한다고 했다. 자신이 정직하게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단골이 된 사람들이 늘어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건물 왼쪽 벽에 ‘화덕 수제 피자가 맛없으면 공짜’라고 크게 적혀 있다. 쉐프의 자신감과 철학이 담긴 글이다. 나라에 가슴 아픈 사건이 있거나 코로나가 번졌을 때 가게에 손님의 발길이 몇 달씩 끊겼다고 한다. 파스타와 피자는 사람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려울 때도 맛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최고의 재료를 고집하며 더 기본에 충실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음식점이 생겨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요즘, 13년 누들로드의 끝인 포항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사장님의 맛에 대한 뚝심이었다. 매주 월요일이 쉬는 날이지만, 빨간 월요일은 영업한다. 오전 11시 30분~오후 8시 30분, 브레이크 타임 오후 2시 40분~5시, 명절 연휴 영업한다. 주소 : 북구 해안로 441 (여남 스카이 워크 가는 길) 054-253-8686.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