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2021년 포항 지역경제의 방향성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다가오면 누구나 새해는 올해보다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각자의 본업이나 처지에 따라 바라는 형태도 좀 더 건강해졌으면, 월급이 올랐으면, 승진하였으면, 손님이 늘어났으면 하고 다르겠지만, 이들 모두의 올해가 지난해보다 좋아졌더라도 새해에는 그보다 더 좋아지기를 바랄 것이다. 이처럼 언제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향상심, 욕망, 책임감, 사명과 같이 어떻게 표현되더라도 그것을 에너지로 삼기에 인간사회는 언제나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인간사회에서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는 가계나 기업이 자신들이 바라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지난해보다 만족의 정도는 다를지라도 모두 긍정적인 신호를 나타낸다면 당연히 그 경제주체가 자리한 공간 지리적인 범위를 형성하는 특정 지역의 실물경제도 성장 또는 발전하게 된다. 지난 하반기에 포항에는 많은 긍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포항이라는 도시의 미래 가치를 좀 더 높게 평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포항의 실물경제를 바로 회복시키는 효과까지는 발휘하지 못하였다. 준공된 사업은 정상 가동되어야 하고, 착공된 사업은 준공된 이후에야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2020년 포항 지역경제는 주력산업인 철강 부문이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의 여파로 부진한 가운데 여타 지자체도 겪었을 코로나19에 따른 악영향까지 함께 겪었다. 당연히 포항시 지역내총생산(GRDP)의 실질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렇다면 2021년은 어떨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올해 포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였던 만큼 이로 인한 기저효과에 힘입어 별다른 큰 충격이 없는 한 플러스 성장률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내년의 포항경제가 플러스의 실질경제성장률을 달성한다고 해서 일반적인 성장기에 나타나는 경제효과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지역 경제가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경우에는 지역 내 생산과 고용, 그리고 수출이 같이 늘어나 기업의 수익이 확대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근로자의 급여나 상여금이 올라 늘어난 가계소득을 기반으로 지역 내 소비가 촉진되며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는 지역경제의 역내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된다. 하지만 2021년 포항 지역 경제가 플러스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는 속내에는 그저 올해 반년 넘게 휴업상태가 계속된 곳이면 내년에는 그 기간이 그 절반 정도로 짧아질 가능성, 올해 공장가동률이 40%에도 미치지 못했다면 50% 수준까지는 올라가게 됨으로써 전년 대비 플러스의 수치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예측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기상도로 비유해본다면 올해 포항경제의 기상도는 흐린 상황에 비가 내려 우산을 쓰더라도 바람 때문에 몸이 다소 젖는 아주 궂은 날씨였다. 내년에는 상시 비가 내리지 않는 구름이 낀 날씨가 기본이겠지만, 불안감에 우산은 들고 다니더라도 간혹 구름 사이로 햇볕을 받는 날이 있을지 아니면 갤 듯하다가 구름이 계속 있을지를 나름대로 예측해보고자 한다.포항 지역은 생산부터 출하 소비로 이어지는 자율적인 순환 메커니즘을 갖추지 못하고 대부분 철강을 중심으로 소재 부문에 특화되어 있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어 포항 지역 경제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부의 여건부터 볼 필요가 있다.2020년 올해 세계 경제는 거의 모든 나라가 코로나19로 인해 역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국외를 불문하고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제한되어 호텔, 음식업과 같은 관광 관련 서비스산업이 큰 타격을 입는 가운데 제조공장의 가동률 저하로 고용이 감소하고 투자가 위축되는 한편 소비까지 침체되는 전방위적인 부진으로 대부분 역성장의 늪에 빠져버렸다. 물론 대륙별, 나라별로 종교나 사회적 관습이 모두 달라 코로나19 확진자의 증가 형태나 속도에도 차이가 있어 나라별로 역성장의 내용과 질에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내년의 회복 속도와 형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이상을 고려할 때 2021년 세계 경제는 적어도 어느 정도 백신의 효과가 작동하고 새로운 형태로 전염병이 진화하지 않는 한 올해 역성장을 기록하였던 거의 모든 국가의 성장률은 나란히 역성장에서 벗어나 플러스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기저효과 때문이다. 다만 나라별로는 자신들이 처한 특수요인이나 지금까지 수년간 이어졌던 각국의 정책 기조가 앞으로도 여전히 경기 회복의 정도에도 차이를 나타낼 것은 분명하다.먼저 미국경제는 올해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롭게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이끄는 민주당 정권의 출범이 확실시되나 연방의회의 최종 의석수까지 결정되어 정부 기능이 정상 작동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모양이다. 따라서 민주당 정권의 주요 정책들이 행정력에서 힘을 발휘하고 경제산업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시작하는 시점은 빨라도 2/4분기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물론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에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전제하에. 다만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그간의 미국 우선주의와 미국 국내생산을 유도하는 정책, 그리고 통상정책에서 중국과 치열한 대립 구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로 지역경제도 브렉시트 문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관광 유관산업의 비중이 높은 나라들이 많아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인해 여타 산업들도 예년 수준을 회복하는 정도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이 지역의 통상정책도 미국의 정책 기조와 동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경제는 제14차 5개년계획(2021~2025년)의 첫해를 맞이하는 만큼 그동안 강조해왔던 내수확대를 통한 국내외 순환경제의 상호 촉진을 통한 발전 모델을 더욱 강화하면서 미국과의 대립 구도에서는 추호도 양보하지 않는 강경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우리나라 경제는 양국 간 무역전쟁의 영향권에 놓인 어려운 상황이 내년에도 여전히 계속될 것으로 각오해야 할 것 같다.이상과 같은 2021년 세계 경제의 흐름은 결국 각자도생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히 국제 경제여건은 올해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더라도 산업별로는 큰 분기점을 맞이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2021년은 코로나19와 그 이후가 병존하는 준 코로나 이후(semi-post corona)의 원년이 되기 쉽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비접촉, 온택트와 같은 키워드를 어느 산업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성장세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험적인 첫해가 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2021년 포항경제가 올해의 역성장에 기반한 반사효과 이상으로 경기 회복을 이루려면 각 산업 부문의 경제주체들이 모두 이러한 변화에 순응해 나가야만 한다. 먼저 유통부문에서는 시민들이 온라인 거래와 택배 활용에 대한 편리함을 맛본 점을 고려하여 최대한 비슷한 업종, 상점끼리라도 온라인화를 추진하여야만 한다. 1차 산품인 농산물, 축산물, 수산물의 생산업자들도 전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전화 주문이나 택배 서비스를 확장해야 할 것이며, 전통시장도 온라인, 오프라인 모든 채널에서 소단위 포장과 일정 금액 이상은 택배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특히 올해 발표되었던 굵직한 주요 정책과 사업들이 모두 계획대로 추진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2-20

2020년 포항시의 주가 동향

주식시장에서 주식 가격은 투자가들이 그 종목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오르내린다. 특정 기업의 미래가치가 반영된 주식 가격 즉 주가가 저평가되었다고 보는 투자가는 사고, 주가가 고평가된 데다 미래 성장동력도 부족하다 느낀 투자자는 판다. 주가의 변동은 그러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주가는 검은색으로 표시된 전일 종가에서 오르면 빨간색, 내리면 파란색으로 표시된다.기업들처럼 각 지역이나 도시가 그 지역의 지속가능성, 미래에 대한 기대, 현실 경제 등을 재료로 주식시장의 한 종목으로 거래된다고 가정해보자. 2019년 종가를 기준으로 출발하였던 포항시 주가는 2020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과연 빨간색일까, 아니면 파란색일까. 개인적인 시각으로 올해의 포항시 주가에 대한 동향을 월 단위로 짚어 보았다.1월 초 포항시 주가는 좋은 조짐을 보이며 상승 출발하였다. 9일 포항의 규제 자유 특구에서 GS건설의 ‘배터리 리사이클링 제조시설’에 대한 투자 협약식이 대통령까지 참석하며 열렸기 때문이다. 연초의 희소식에 포항시 주가는 빨간색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지난 연말 국회에서 통과된 포항지진 특별법의 시행령이 마련되는 대로 시민에 대한 피해 보상과 흥해지역을 중심으로 도시개발사업이 본격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포항시 미래가치에 호재로 작용했기 때문이다.그런데 2월이 되자 포항시 주가는 예기치 않은 충격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19일 포항 최초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는 데다,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거의 모든 지역 내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이 빠르게 위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3월 들어서는 11일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에 대한 ‘세계적인 대유행(pandemic)’을 선언하고, 국내에서는 방역 마스크 부족 사태로 5부제 판매가 시행되었다. 포항에도 재택근무와 근로시간 조정과 같은 코로나19의 영향이 산업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포항시 주가는 다시 하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항시가 자체 마스크생산공장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나타내고, 리튬 이차전지 소재 생산기업인 에코프로지이엠이 24일 영일만 제1산업단지에 제1공장을 준공하면서 앞으로 5년간 총 3천억 원을 투자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포항시 주가의 하락세는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4월에는 코로나19에 대한 긴급대책으로 포항시가 지역 소상공인부터 학계, 금융기관, 기업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기로 하는 노력도 심리 안정에 도움을 주어 2월 이후의 포항시 주가도 추가 하락하지 않고 박스권을 유지하면서 조정기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5월이 되자 코로나19 사태가 조기 종식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지역 내 음식 숙박업과 소상공인, 전통시장을 불문하고 비대면, 비접촉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실물경제 관련 지표들이 크게 나빠져 포항시 주가는 지지선 아래로 다시 하락하였다. 게다가 지역에서 추진하던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유치까지 실패하자 포항시 주가는 계속 파란색을 보였다.6월부터는 포항철강산업단지를 비롯한 지역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본격적으로 심해지기 시작한 데다 시민들도 비대면 비접촉에 적응하여 대부분 생필품을 온라인이나 택배로 주문함에 따라 오프라인 중심으로 운영하던 지역 소상공인의 매출이 크게 하락하여 심지어는 휴폐업하는 곳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포항시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반면 포항지진 이후 하락 경향이 이어지던 지역 부동산경기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부동산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도권 투기 세력이 포항 지역까지 갭투자에 나서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의 하락 폭이 컸던 만큼 특정 매매 물건을 제외하고는 예년 수준의 시세 회복에 그쳐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까지 가시화되지는 못하였다. 이에 따라 포항시 주가도 부동산 경기회복이라는 재료만으로는 상승세로 전환하지 못하였다.7월 들어서도 포항의 부동산경기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시작한 중앙상가의 영일만 친구 야시장이 재가동되지 못하는 등 여전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실물경제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다만 오랫동안 막혀있던 포항공항의 하늘길이 진에어의 취항으로 열리면서 포항시 주가의 추가 하락을 막은 것은 다행이었다.매년 8월이면 포항 어촌마을과 해수욕장, 주변 상권에서 특수를 기대했었으나 올해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아 거의 개점 휴업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포항시 주가도 여름철인 6월 이후 8월까지 하락 경향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반등 재료도 없어 여전히 바닥권에서 횡보하였다.9월 들어서자 바로 찾아온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두 태풍으로 인해 어촌마을은 물론 시내 곳곳의 건물 외벽, 공장에 큰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포항시 주가는 다시 급락하였다. 하지만 지진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지진피해 보상에 대한 신청이 접수되기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도 조금은 풀리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영일만항 국제 크루즈 부두의 완공을 계기로 포항과 일본, 러시아를 오가는 정기 국제카페리 노선이 정식 개설됨에 따라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크게 높아졌다. 이에 따라 월초 일시 하락하였던 포항시 주가는 중순 이후 호재가 이어지는데 힘입어 올해 처음으로 상승 마감하며 빨간색을 나타내었다.10월에는 포항시 주가를 움직일 만한 큰 재료가 없었으나 문화의 달을 맞이하여 지역 내 다양한 문화 관련 단체, 기관들이 포럼, 연주회 등 문화행사를 비대면, 온라인중계 등의 방식으로 활발히 개최하면서 미래 문화도시 포항에 대한 기대감을 높임에 따라 포항시 주가도 폭은 크지 않더라도 9월 상승세를 이어 빨간색으로 마감하였다.11월이 되자 포항시 주가는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5일 송도동과 항구동을 연결하는 ‘동빈대교’의 기공식, 13일 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에서 국내 최초의 ‘그린 백신 실증지원센터’의 기공식에 이어 18일에는 영일만 제4 일반산업단지에서 (주)에코프로이엠 이차전지 양극재 공장의 착공식이 열렸다. 이처럼 포항시 미래가치를 높이는 희소식이 연이어 전해지자 연초 이후 하락하였던 포항시 주가는 단숨에 연초 기준가격을 넘어 본격적인 상승 장세를 타기 시작하였다.12월이 되어서도 포항여객선터미널과 환호공원 사이를 자동순환식 왕복 모노 케이블카가 오가는 이른바 ‘해상케이블카’의 설치가 추진된다는 소식, 철강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기술개발사업의 본격화 소식, 대규모 연어 스마트양식 산업단지 조성과 같은 희소식이 잇달아 전해졌다. 이 소식들이 앞으로 포항시의 미래가치에 호재로 나타나면서 포항시 주가는 큰 폭의 상승세를 보여 결국 지난해 종가보다 상승한 빨간색으로 연말 장을 마감하였다.이상의 포항시 주가 흐름은 개인적인 견해지만 포항의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인구도 투자도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할 때 시민을 포함한 이해당사자에게 중장기적인 사업을 착실하게 보여줄수록 포항의 지속가능성과 더불어 포항의 미래가치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 내년에는 올해 사업들이 계획대로 추진되고 포항의 실물경제도 큰 폭의 회복세를 보이기를 기대한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2-13

역사의 현장 포항공항의 잠재력

1994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매년 12월 7일을 ‘국제 민간 항공의 날’로 제정하였다. 지구촌에 있는 여러 나라의 교역량이 늘어나면서 일부 여객선이나 대륙횡단 열차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 여객 이동이 항공기로 이루어져 민간 항공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국제여객이 급증하면서 1988년 2월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하였지만 최근 경영악화로 매각 위기에 놓였다. 대형항공사의 경영위기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국내 국제를 불문하고 최소한의 항공서비스만 제공함으로써 요금을 낮춘 저가 항공사(LLC)들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코로나19와 같은 예기치 않았던 충격으로 경영악화가 가속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이처럼 항공사들의 치열한 경쟁과 맞물려 공항도 함께 영향을 받고 있고 그와 더불어 각 지역 공항 주변 산업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포항공항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포항공항에서 여객이 감소하고 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한 최초의 충격은 신경주역에서 KTX가 개통된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포항과 경주 일원의 주민들은 수도권으로 이동할 때 비행기보다는 KTX를 선호하게 되었다. 물론 당시 항공사가 제공하는 비행편 시간대도 새벽 출발 저녁 도착과 같이 당일로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올 정도로 편리한 시간대가 아니었던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신경주역 개통 이후 공항 이용객과 화물 감소율은 그 직전보다 월평균 30%에서 40% 정도씩 감소 추세를 보였다. 당연히 공항 주변의 마트 등 지역 상권의 매출도 비슷한 비율로 감소하여 주변 상권에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 KTX포항 노선이 개통되었어도 포항공항의 승객감소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단지 KTX신경주역을 이용하던 포항 시민들이 KTX포항역으로 옮겨갔을 뿐이다.이처럼 포항공항이 어려워진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하지만 국내 여러 공항 가운데 포항공항만큼 대한민국에 큰 업적을 남긴 역사적 이야기를 지닌 공항은 없다. 포항공항을 굳이 ‘공항’이라는 본연의 목적으로만 보지 않고 공간지리 자체가 지닌 역사를 좀 더 알려 탑승객이 아닌 일반 관광객들이 역사관광의 현장으로 찾아오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 포항공항이 지닌 역사적 스토리텔링은 포항만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무형자산이기 때문이다.포항에 공항(비행장)이 들어선 지도 77년이 된다. 비행장 건설 논의는 1935년 10월 9일 열렸던 포항읍 발전좌담회에서도 있었지만 정작 영일군 오천면 일월동에 비행장이 건설된 것은 1943년 9월이다. 당시 포항에는 수산물 수출 무역선이 드나들던 무역항이 있었고 포항역에서는 서울, 만주까지 물류가 이동할 수 있었다. 자동차로도 만주까지 연결되던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일본군이 포항에 비행장을 건설한 것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포항비행장 다시 말해 포항공항은 건설한 지 불과 2년 동안만 일본군의 관리하에 있었고 바로 미군으로 통제권이 넘어간다. 1945년 8월 15일 일본군이 항복한 이후 미군이 포항공항을 실제 접수한 날은 9월 8일이다. 이날 미군에 의해 일본군의 무장도 해제되었다. 미군이 비행장을 접수하였을 때 미군의 포항공항 식별부호는 케이쓰리(K-3)였고 위치도 포항동(POHANG-DONG, KOREA)으로 표기되었다. 전쟁 무렵에는 이미 포항시로 승격한 상태였지만, 미군이 일본에서 받은 군사지도가 1927년에 측도한 것이었고 게다가 일본군들이 영문이나 일본어를 로마자로 표기하여 미군에 넘겨줄 때 포항을 ‘포항동(pohang-dong)’이라 적었기 때문이다.6·25전쟁이 일어난 직후 김포와 수원비행장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하면서 미 제5공군이 안전하게 쓸 수 있었던 공항은 대구, 수영, 포항 세 군데뿐이었고 그마저도 제트전투기가 이용할 수 있으려면 별도 공사가 필요하였다. 마침 7월 10일 도일 제독이 기획한 한반도 최초 미군 상륙작전인 ‘포항상륙작전(Blueheart Operation)’을 맥아더 원수가 승인하게 된다. 그날 밤 즉시 미 제802 항공공병대대 A중대가 일본 오키나와에서 수륙양용함(LST)을 타고 영일만에 도착하여 장비 하역과 동시에 공사에 착수하였다. 7월 13일 4천500피트의 기존 활주로에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임시 활주로용 철판(PSP; Pierced Steel Plank) 포장 공사를 완료하고 7월 15일까지는 노반 정비까지 모두 완료하였다. 이에 따라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7월 18일 새벽 포항상륙작전도 성공함으로써 중부 전선 방어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이때는 미군 전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곳은 포항공항뿐이었다.포항공항은 6·25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이 전쟁에서 유엔공군이 활약한 곳이 포항공항이었기 때문이다. 1950년 8월 12일자 뉴욕타임즈(NYT)는 1면 기사 표제를 “미국 지원군 포항공항에 도착(U.S. AID REACHES POHANG AIR BASE)”이라 붙였다. 미 제5공군은 7월 30일 시점 제트 전투기 F-80을 626기, F-51을 264기 보유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일본 후쿠오카나 포항공항에서 출격하였다. 근접지원 출격 비행 대수는 7월 한 달간 4천436기, 8월 7천28기, 9월 6천219기였다. 미 극동공군은 7월부터 한 달 동안 포항공항의 전투기 F-80을 최신형인 F-51로 교체하였다. 북한군 제5사단을 막기 위해 포항공항의 미 제40 전투 요격대대 소속 F-51 전투기들은 매일 30~40회 출격하며 국군 제3사단을 항공지원하였다. 물론 포항공항에는 미군 비행기만 작전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1950년 10월 12일부터 11월 18일까지는 호주왕실공군(RAAF; Royal Australian Airforce) 소속 제77 비행대대가 포항공항에서 유엔군과 국군의 북진 작전 지원을 위한 항공지원을 맡기도 했다. 포항공항은 어느 지방공항이라도 명함을 내밀 수 없는 대한민국 영토수호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공항이었고, 6·25전쟁 당시 한반도 하늘을 지배한 유엔 공군의 보금자리였다. 사람이었다면 무공훈장을 수차례 받았을 영예로운 공항인 것이다.지금 포항공항 이용객이 줄어 항공사들이 취항을 꺼린다는 이야기에 간혹 포항에 공항이 굳이 필요하냐는 지적까지 나오곤 한다. 단지 민간 항공의 경제성만 따진다면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포항공항은 수많은 지방공항의 하나가 아니다. 설령 항공기의 이착륙이 전혀 없는 텅 빈 공항이 되더라도 포항공항 자체는 나라가 존재하는 한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의 하늘을 책임졌던 역사의 장소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비행기의 발착이 줄어들어 공항운영이 힘들어진다면 아예 공항 어딘가에 포항공항 역사관을 만들어 탑승객이 아닌 일반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공항 활성화 방안도 검토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일례로 6·25 전쟁 당시 참전하였던 호주 왕실 공군을 초청하여 그들이 포항에서 체류하면서 나라를 수호해준 것을 감사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선배 조종사들이 출격하였던 70년 전의 모습을 재현하는 기념 에어쇼를 매년 개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획도 포항공항만 가능한 일이다. 일반인들까지 참여하여 당시를 회상하는 역사관광을 포항-호주 간 정기교류 관광프로그램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2-06

포항 이민자를 반갑게 맞이하자

사람의 국제 이동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유엔 국제이주기구(IOM·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는 ‘이민’을 ‘자발적으로 본래의 거주지를 벗어나 국경을 넘거나 한 국내에서 이주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같은 이민이라도 분쟁, 박해와 같은 비자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자기 나라를 떠나 이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따로 ‘난민’이라 부르기도 한다. 3년 전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위험지역에서 벗어나 체육관으로 주거를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도 일종의 ‘난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국내 피난민’이었다고 할 수 있다.1990년 이후 지금까지 30년간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살아왔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국적을 바꾸며 이동한 국제 이민은 약 1.78배 늘어났다. 1990년 시점에 세계 147개국에 걸쳐 이민한 사람은 모두 1억5천199만5천30명이었지만 2019년 기준으로는 199개국으로 이민한 사람이 무려 2억7천22만4천650명까지 부풀었다. 세계에서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990년 시점에 4만3천250명의 이민을 받아들여 197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137위에 그쳤다.하지만 2000년에는 83위, 최근 2019년 시점에는 45위까지 국가순위가 올라갔고 이민자도 116만3천660명으로 100만 명 시대를 맞이하였다. 국제 이민 국가순위에서 미국은 지난 30년간 한 번도 세계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2019년 현재 미국 이민자는 5천66만1천150명이다. 2020년 현재 통계청이 추계한 우리나라 인구가 약 5천178만 명이니까 거의 우리나라 총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셈이다.국제이주기구의 이민에 대한 정의를 따른다면 우리나라 국내 지역 간 이주도 이민에 해당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어느 지역으로 이민이 일어나고 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민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점차 가속화되는 실정이다. 주민등록 기준 서울특별시 인구는 2018년 10월 978만4천112명에서 2020년 10월까지 9만4천953명이 줄었지만, 경기도 인구는 같은 기간 중 35만5천392명이 늘어나 2020년 10월 현재 1천340만615명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거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서울과 경기로 몰려들고 있다.모든 것이 수도권 쏠림 현상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포항시 인구도 과거 1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던 환상은 사라지고 이제는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시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다른 지방들도 비슷한 처지라고 해서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동안 살고 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민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녀의 학업을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서, 은퇴한 이후 지금까지 고생했던 지역을 아예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게다가 포항에서는 ‘지진’이라는 재해를 겪었기에 아무리 ‘인재’였다고 해도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아예 주거지 자체를 옮기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지난 2년간 과연 포항에는 어떠한 인구변화가 있었을까. 좀 더 상세한 분석을 위해 읍면동별 주민등록 인구변화를 살펴보았다. 포항시 총인구는 2018년 10월 51만401명에서 2020년 10월 50만3천456명으로 6천945명이 줄었다.하지만 남구와 북구로 나누어 보니 지난 2년간 남구는 8천676명이 줄어든 반면 북구는 1천731명이 늘어났다. 포항시 인구의 순 유출이 남구에서 일어났다는 이야기다.더 자세하게 살펴보니 남구의 동(洞) 지역에서는 지난 2년간 3천893명이 줄었고, 읍면(邑面) 지역에서는 4천783명이 줄었다. 인구가 늘어난 북구는 마찬가지로 동 지역에서는 4천356명이 줄었으나 읍면 지역에서는 6천87명이 늘었다. 인구가 증가한 북구의 경우 동 지역에서는 우창동과 두호동 두 곳만이 각각 563명, 1천237명이 늘어났고, 읍면 지역에서는 오직 흥해읍만 인구가 무려 7천2명이 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남구에서 줄고 북구에서 늘어난 최대의 원인은 초곡지구 등 흥해읍을 중심으로 조성된 신규 아파트단지 때문으로 남구의 읍면지역과 동 지역에서 시민들이 활발하게 지역 내 이주를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인구가 줄어든 남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감소를 보인 곳은 연일읍으로 1천958명이 줄었고, 동 지역에서는 상대동으로 1천 615명이 줄었다. 이는 단순히 총 주민등록 인구수의 절대적인 수치 변화만 본 결과기 때문에 절대적인 읍면동별 인구변화 증감률을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남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감소율을 보인 곳은 청림동인데 지난 10월 인구에서 2년 전인 2018년 10월과 대비하면 무려 12.5%가 줄었다. 다음이 제철동으로 이와 비슷한 수준인 11.4%의 감소율을 보였다. 남구에서 인구변화 비율이 가장 낮았던 곳은 동해면으로 2년간 불과 6명만 감소하였다. 인구가 늘어난 북구 흥해읍의 경우에는 2년 전보다 20.8%나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북구에서 가장 인구이동이 없었던 곳은 장량동으로 총 7만2천 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감소한 인구는 151명에 그쳤다.이와 같은 결과로 볼 때 결국 포항시 인구가 감소한 최대의 원인은 지역 전체로 정년은퇴가 계속되는 가운데 철강산업의 장기 침체로 실직한 산업인력들이 주로 거주하던 청림동과 제철동 지역의 주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민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포항지역 내 이주가 활발해진 최대 원인은 흥해지역의 지진복구와 도시재개발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 새로운 아파트단지 조성에 따른 읍면 지역에서 도심에 근접성이 좋은 외곽 지역으로 주거를 이전하는 수요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이처럼 국내 지역 간 이민이 활발하다는 것은 달리 말한다면 포항시 인구가 일시 늘어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자녀 교육하기 좋은 교육도시, 일자리가 넘쳐나는 활발한 산업도시, 은퇴해서 생활하기에는 최고인 정주 여건을 가진 도시와 같은 수많은 인구 유인을 계속 제공하지 못하는 순간 포항을 떠나는 이민 수요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는 포항시가 인구 유인 정책, 유출 억제 정책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입소문은 정책을 능가하는 최고의 광고다. 그리고 최고의 정주 여건이란 달리 있지 않다. 얼마나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그들과 섞일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 포항은 여타 대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강한 편이다. 지역색에는 장단점이 같이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합칠 때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고향을 떠나 들어오게 된 이민자의 두려운 눈으로 보면 너무 높은 진입장벽으로 여기는 약점일 수도 있다. 포항이 새로 유입되는 주민들만 붙잡아도 모든 문제는 해소된다. 포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 입에서 살기 좋은 동네, 새로운 주민을 아주 편하게 받아들이는 곳, 여기 출신이 아니라도 쉽게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 넘쳐난다면, 인구감소 시대, 지방소멸 시대와 같은 말은 포항과는 전혀 무관한 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1-29

‘과메기의 날’을 만들자

얼마 전 젓가락 같은 과자를 들고 다니는 사람부터 거의 장대 같은 과자를 직접 만들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던 ‘빼빼로의 날’이라는 11월 11일이 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과 직접 기다란 과자를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부모나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 어떤 것이 좋을지 가게 앞에서 심각하게 고르는 학생, 젊은 직장인들이 아니라면 이날이 무슨 날인지를 기억하고 매출로 연결하려고 신경을 쓰는 곳은 아마도 편의점이나 마트를 경영하는 사람 정도였을 것이다.하지만 중국은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원래부터 달과 날이 겹치는 중일(重日)을 귀하게 여기고 양수인 1월, 3월, 5월, 7월, 9월에는 각각 1일, 3일, 5일, 7일, 9일이 양수(陽數)로 겹치는 날이어서 명절처럼 지내기도 한다. 그동안 11월의 중일은 큰 의미가 없었으나 1이 싱글을 뜻하는 숫자이기도 하고 무려 4개나 겹치기에 중국의 한 대학생이 이성 친구가 있는 이들이 기념하는 ‘밸런타인데이’에 대항하는 뜻으로 ‘독신의 날’ 또는 ‘독신자의 날’로 부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착안하여 비즈니스로 연결한 곳이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이었다. 알리바바그룹은 이날을 ‘온라인쇼핑의 날’로 삼고 판매행사를 기획하였다. 그러자 중국의 다른 대형 쇼핑플랫폼들까지 이벤트에 동참하여 이제는 중국의 대표적인 소비행사인 ‘솽스이(雙11· Double 11)’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는 2009년에 시작한 ‘솽스이’가 11번째다. 그동안 중국 소비자들은 이날 0시부터 12일 0시까지 이루어지는 이벤트에 대비하여 미리 사고 싶은 물건들을 상거래사이트의 ‘쇼핑카트’에 담아두었다가 이벤트가 개시와 동시에 가장 먼저 클릭하여 구매하는 경쟁 심리까지 생겨났다. 실시간으로 이 이벤트를 중계하는 곳도 생겨나 주목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11월 11일 오전 0시부터 개막한 ‘솽스이’에서 알리바바그룹의 쇼핑사이트인 티엔마오(天猫·Tmall)가 원화 환산(1위안 169원 기준) 약 1조6천900억 원에 이르는 100억 위안의 거래액을 기록하는 데는 96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작년보다 29초가 빨라졌다. 이 이벤트에서 티엔마오가 12일 오전 0시에 폐막하기까지 24시간 동안의 거래액은 무려 2천684억 위안(약 45조3천596억 원)이었다. 중국 상무부가 14일 발표한 11월 1일부터 11일까지 중국 온라인소매판매액은 사상 최대인 8천700억 위안(약 147조300억 원)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7%가 증가한 수치다. 11일 동안 하루 평균 13조3천553억 원어치의 매출을 기록한 셈이다.이와 같은 세계적인 판매전에 각국이 손을 놓고 있을 리 만무하다. 이날 알리바바가 달성한 거래액은 일본 최대 상거래사이트인 라쿠텐(697D天)의 1년 매출액보다 많다. 일본 교토 통신에 따르면 알리바바 플랫폼에서 솽스이 행사 개시 1시간 만에 1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록한 곳으로는 중국업체 외에 애플, 나이키 등 미국기업, 파나소닉이나 시세이도와 같은 일본기업도 있다고 한다. 특히 올해 중국의 솽스이 이벤트에서 매출 규모가 10억 위안(약 1천690억 원)을 넘긴 기업은 15개사였는데 거기에 일본 유니클로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 솽스이 이벤트에 일본기업들은 일찍부터 참여해왔다. 솽스이에서 팔린 외국 브랜드 매출액 순위에서 일본이 4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는데 가오(花王)의 일용품, 시세이도의 화장품, 야만의 미용기기는 특히 중국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식품저장 용기 회사가 이곳에서 큰 매출을 일으킨 적도 있다.전자상거래로 유명한 아마존도 중국의 왕성한 구매력을 그냥 두지는 않았다. 올해 솽스이에 참여한 곳은 아마존 미국 외에 영국, 일본, 독일이 특별 코너를 만들어 인기 있는 국제브랜드 60여 개 이상 품목을 특별할인하는 행사를 하기도 하였다.중국의 온라인상거래 이벤트이기는 하나 말 그대로 온라인세상에 넘지 못할 국경은 없다. 이 엄청난 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솽스이에 전 세계 기업들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해에는 총 25만 개에 이르는 브랜드를 가지고 500만 개의 업체가 티엔마오에 진출하였다. 올해 처음 진출한 해외브랜드만 2천600개가 넘는다. 38만 개에 이르는 중국 지방기업들도 이번 행사를 통해 판로를 새로 개척하였으며, 이번 이벤트에서 팔린 물품을 유럽 각국으로 배달하기 위해 참여한 중국 택배회사만해도 400만 개가 넘는다고 하니 입이 절로 벌어질 뿐이다. 그동안 세계의 공장이었던 중국이 세계의 시장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는 오래되었지만 명실공히 세계의 시장 중국의 구매력을 이번 행사에서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포항에는 신선한 농수산물이 많고 제법 명성이 있는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해외는 별개로 치더라도 국내 소비자들에게 온라인상거래를 통해 꾸준히 팔 수 있는 최종제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특정 시기에 생산되는 농산물, 수산물 등이고 이것을 2차, 3차로 가공하여 연중 판매하고 맛볼 수 있는 식품으로 고부가가치화한 상품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 솽스이의 판매실적을 그냥 보고만 있자니 속만 아프다. 우리도 무슨 수라도 내어야만 한다. 싫든 좋든 이제 11월 11일은 세계적인 이벤트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베트남에서도 중국의 ‘독신자의 날’을 적극 비즈니스로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 야후쇼핑에서는 11월 11일에 ‘좋은 쇼핑의 날 캠페인’을 하고 있고 라쿠텐에서는 아예 ‘독신의 날’로 한정시킨 대규모 판매촉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어떠한 것도 지나치는 법이 없다. 조금이라도 특이하거나 내세울 만한 것은 모두 비즈니스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11월 11일을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 11월 11일은 공식 기념일로는 ‘보행자의 날’, ‘농업인의 날’이다. 하지만 이것을 기억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빼빼로 데이’라는 말도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적어도 ‘독신자의 날’을 탄생시킨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면 포항에서도 이날을 새로운 ‘날’로 삼을 수 있지는 않을까 싶다. 꽁치든 청어든 반을 갈라 내장을 훑어내고 깔끔하게 나란히 늘어트려 덕장에서 기름이 빠질 때까지 얼렸다 녹이면 쫀득하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건강식품인 ‘과메기’로 탄생한다. 11월 11일이라는 숫자에서 과메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고 우길 수 있지 않겠는가. 포항에서는 다소 무리가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11월 11일을 ‘과메기의 날’로 정하였으면 한다. 앞으로 매년 11월 11일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빼빼로’를 직접 만들거나 사서 선물하면서 즐거운 ‘빼빼로 데이’를 즐기더라도, 소비자들은 ‘과메기’를 대대적으로 판매하는 포항만의 ‘과메기의 날’로 활성화하였으면 좋겠다. 이와 같은 숫자를 이용한 판매촉진은 과메기 외에도 있을 수 있다. 포항이 자랑하는 돌문어도 날짜를 잡을 수 있다. 문어의 다리는 8개다. 8월 8일이라면 ‘팔팔한 문어’를 먹는 ‘문어의 날’로 삼기 좋다. 오징어의 다리는 10개다. 중국의 쌍십절(10월 10일)은 다소 정치색이 있지만 우리는 ‘울릉도 오징어의 날’로 삼아도 좋다./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1-22

미국 신정권 출범이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선거전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상원과 하원에서도 민주당이 압승하는 ‘블루 웨이브(blue wave)’를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예상외 접전으로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은 확실한 듯 보이나, 민주당이 아직 상원까지 확실하게 과반수를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내년 1월 5일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 선거에서 민주당이 2석을 확보하면 연방 상원에서 50대 50의 동석을 이룰 수 있으므로 기회는 남아 있다. 그리되면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맡아 결정권을 가지게 되니까 사실상 민주당이 과반을 이루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진영에서 지난 11일 부정선거가 횡행한다며 미시간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 선거결과를 둘러싼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데 있다. 또 조지아주 주무장관은 모든 투표용지를 수작업으로 재집계할 것을 결정하고 11월 20일 기한 내에 마치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는 어느 후보든지 패배를 인정해야만 결과가 확정된다. 그러는 동안 미국 정치의 공백기가 길어지고 사회불안이 높아지면 잠깐이나마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우려마저 있다. 게다가 신정권이 추가 경제대책을 내더라도 사실상 내년 취임식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도 불안요인이다. 미국 경제가 지난 2분기 31.4%의 역성장률을 기록하였다가 3분기에는 73년 만의 최고치인 33.1%라는 성장률을 보였지만 이는 2분기의 골이 깊었던 기저효과에다 약 3조 달러 규모의 경기 자극 효과가 더해진 결과여서 4분기와 내년 1분기는 다시 낮은 성장률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미국에서 신정권 출범 이후 주요 정책 방향에 따라 크든 작든 포항경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바이든 정권이 출범한다고 가정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정책과 조금이라도 바뀔 여지가 있는 사안을 미리 짚어 봄으로써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먼저, 미국의 재정 금융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당 바이든 씨는 ‘블루 웨이브’를 이룬다는 전제하에 법인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와 함께 인프라 투자, 육아와 교육, 건강관리, 사회보장 급부에 이르는 막대한 세출 집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 연방예산위원회(CRFB)의 계산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의 정책이 집행된다면 앞으로 10년 동안 증세액은 4.3조 달러, 세출 확대는 9.9조 달러에 이른다. 차액 5.6조 달러 만큼의 재정적자가 확대될 수밖에 없고 금융완화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바이 아메리칸’,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주장했었기에 인프라 투자확대가 포항경제에 미칠 효과를 다소 제약되더라도 일단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두 번째, 중국과 서로 관세 제재를 주고받는 무역전쟁의 범위와 정도는 낮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지만 즉각 휴전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씨가 비록 중국에 대한 제재 관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민주당 내에 중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 정책전환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쉽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내세운 세계 각국과 무역 관세나 무역정책 자체를 인질로 삼는 일종의 경제 내셔널리즘, 탈글로벌화 정책은 조금씩 완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겠지만 관세정책을 대신할만한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정책전환에는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미국과 중국의 현재 상황은 당분간 현상 유지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와중에 철강 쿼터 제한과 같은 유탄을 맞은 포항경제에는 다소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는 있겠으나 즉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영향은 중립적이라 생각한다.세 번째, 신정권 출범에 따라 종전과 분위기가 바뀔 분야는 북한에 대한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의 개인적 친근관계까지 이야기되던 훈풍은 아마도 사라질 것이다. 오히려 북한 핵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인 압박카드를 다시 꺼낼 확률이 높아졌다. 다만 미국이 강경노선을 채택하여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개선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최근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미국 신정권 출범으로 한국의 일본에 대한 강경 자세가 완화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하였다. 한술 더 떠 그렇게 되면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나 관광산업에 경제효과를 기대하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조치를 먼저 풀면서 대화를 요청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미국의 압력을 받아 손을 내미는 것은 ‘노 저팬’을 부르짖고 있는 국민 정서를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은 그동안 남북 경제협력을 추진하던 산업, 기업체는 물론 일본과의 관계개선까지 얽혀 있다는 점에서 당장 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신정권 출범 이후 북한과 경제협력을 위한 철도현대화와 같은 주요 인프라 투자사업에 개입할 틈이 지금까지 보다는 훨씬 좁혀지기 쉽다는 점에서 포항경제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마지막으로 가장 확실하게 트럼프 대통령과 반대 방향으로 전환될 분야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정책대응일 것이다. 민주당이 지구온난화대책을 강력하게 미는 데는 이 정책이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 최근 원자력 발전소를 많이 건설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석탄 화력발전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아 이산화탄소(CO2)배출량이 많다. 중국경제가 성장할수록 탄소 배출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보니 삭감목표 부과가 중국 성장을 억제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중국을 겨냥한 이산화탄소 배출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지구온난화정책이 미치는 효과는 결국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에 또 다른 유탄으로 작용하기 쉽다. 이미 미국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민주당 지지세력이 많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 9월 23일 2035년부터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신차판매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앞으로 15년. 사실 그리 시간이 많지도 않다. 미국 정책에 따라 전기차로 이행하는 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국내 완성차업계는 물론 경주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와 소재를 제공하는 포항의 철강업체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전기차로 이행되는 속도가 빨라지면 포항이 추진하는 배터리산업은 반대로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 효과가 상쇄될 수 있다면 중립적인 영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결론적으로 미국의 신정권 출범 이후에도 경제 내셔널리즘과 같은 정책성향은 계속되기 쉽다. 앞서 짚어 본 4개 사안 가운데 포항경제에 미칠 영향이 중립적인 것이 둘, 긍정과 부정이 각 하나씩이긴 하나 길게 보면 저울은 부정적 영향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크다. 포항은 지금 추진하는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육성에 힘쓰면서 이와 동시에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과 연구개발에 더욱 노력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응책이란 있을 수 없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1-15

더 추운 겨울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올해는 코로나19에 태풍까지 겹쳐 제조업부터 음식점, 호텔, 마트, 학원, 전통시장에 이르기까지 업태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사업체가 여름인데도 추위를 느꼈다. 그러는 동안 절기도 겨울에 들어섰음을 알렸다.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 어촌마을이 가장 활기를 띠는 계절은 겨울이다. 올여름 시내 상가들이 추위를 느꼈다면 어촌마을은 이번 겨울에 혹독한 추위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겨울철 대목을 누리겠다는 느슨한 마음보다는 일단 이번 겨울 가장 피해를 덜 보고 넘기겠다는 다짐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닷가 마을에서야 늘 수산물이 생산되나 유독 겨울철에 들어서면 활기가 넘치고 돈을 번다는 기대감도 부풀어 오른다. 겨울만 영업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대게와 과메기의 계절인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겨울맞이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비대면, 비접촉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도 그동안 지역 어촌에서 해왔던 방식이 그대로 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점검해야만 한다. 특히 과메기와 같은 수산 가공식품이라면 제조공정과 유통과정을 거쳐 다른 지역 소비자에게 택배로 배달되는 모든 단계에서 의심의 눈빛으로 살피는 소비자가 어떠한 불만도 내세울 틈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적어도 다음 몇 가지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 하나라도 개선해 나갔으면 한다.첫째, 안전한 식품임을 고객의 눈으로 확신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몇 년 전 꽁치, 고등어와 같은 등 푸른 생선의 최고 어장이었던 동일본 앞바다에서 일어난 후쿠시마원전 방사능누출 사고 이후부터는 바다 생물을 먹었을 때 안전한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많이 높아졌다. 포항 구룡포에서 꽁치와 청어로 만든 과메기의 식품안전도 평가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재료인 꽁치, 청어가 어디서 잡혔는지, 수입한 것이면 대만산, 중국산과 같은 고기잡이배의 국적은 물론 어느 해역에서 잡은 것인지도 명확하게 밝히는 원산지표시 방법도 스스로 고안해낼 필요가 있다. 아예 원재료상태나 과메기 포장 직전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하여 아예 포장지에 표시하는 것도 ‘구룡포과메기’라는 지역 브랜드를 전국구 명품으로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노력은 앞으로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지역 특산물만이 가지는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몇 년 내 일본이 방사능 오염물질을 바다로 버리고 나면 먹을거리로서의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 시각은 크게 달라지기 쉬워 이에 대한 사전 대응을 위해서도 신중하게 추진하였으면 한다.둘째, 지역 호텔, 전통시장, 동네 가게 모두 추운 여름을 보낸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자신의 집을 떠나 움직이는 유동인구가 준 탓이다. 당연히 이번 겨울도 예전처럼 관광방문객이 포항을 찾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구룡포는 더욱 특별한 지난해를 겪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특정 방송프로그램 덕분에 잠깐 생겼던 특수였음을 깨닫는다면 올해 구룡포 상권에 다가올 골은 더욱 깊어질 수도 있다.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는 물량이라면 지난해가 아닌 지지난해 정도를 염두에 두면서 모든 일을 점검했으면 한다.셋째, 찾아오는 손님이 줄더라도 예년 수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전화로 주문하고, 카드결제나 계좌입금이 가능한 결제수단, 택배로 안전하게 과메기나 대게를 보낼 수 있는 배달 채널은 갖추어야만 한다. 문제는 전화로 주문할 정도로 충성도 높은 단골이 많으면 몰라도 지금까지 편안히 앉아서 어쩌다 찾는 손님들만 상대해온 음식점이나 판매점이라면 더욱 문제다. 자기 가게가 다루는 수산물이나 요리의 특징을 알리는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과 같은 많은 사이버 홍보에도 나설 필요가 있다.넷째, 지금 위기는 유독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만 겪는 것이 아님을 생각해야만 한다. 더구나 포항 과메기와 구룡포, 영덕, 울진 등에서 잡히는 대게처럼 경북 동해안 지역은 다른 어촌 지역보다 겨울에 손님이 많았던 점을 생각하면 유독 이번 겨울이 더 추울 수도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만 한다. 그러하기에 손님들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시스템도 조금씩 갖출 필요가 있다. 당장이야 어렵겠지만 지금 일본 일부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듯이 앞으로는 시외버스나 고속버스에 2인석 좌석에는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좌석 사이에 칸막이를 설치하는 지자체가 나올지도 모른다. 포항 시내버스 가운데 구룡포행 버스만이라도 관광객을 위해 이러한 조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처럼 경북 동해안 시, 군마다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 어울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지자체만이 아니라 관련 업종 관계자들이 모두 협력하여 이 지역을 찾는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대게, 과메기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도록 유혹하는 정책들을 고안해 낼 필요가 있다.마지막으로 수산물은 업계 종사자조차 사진이나 영상만으로 품질과 상태를 알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만 한다. 손님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상하다 여기더라도 대면, 접촉 상황에서는 간단한 설명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이나 영상만 보고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고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요즘은 온라인, 소셜미디어 시대다. 아주 작은 문제라도 고객들은 참지 않고 이러한 사실을 마음껏 유포한다. 지역 특산물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앞으로 대게, 과메기와 같이 지역 이름을 내세운 특산물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과정에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관리체계와 식품인증을 받아 둠으로써 무조건 믿고 살 수 있는 지역 특산물이라는 평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적어도 개인이 힘들면 조합이라도 과메기의 원재료 입수부터 제조, 포장과정, 대게의 손질과 상태, 요리과정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여주고 이왕이면 해설까지 붙여 고객의 신뢰를 높이는 방안들을 계속 궁리해야만 한다. 이왕이면 택배 유통과정에서도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특급배송 채널을 만드는 한편 압축 비닐 진공포장과 같은 수산물의 위생과 안전, 오염 방지를 위한 수단도 갖추어 나가야만 한다.앞서 언급한 내용은 다른 지역이나 식품업계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코로나19에 따른 피해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긴 어려워도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오히려 다가오는 이 겨울에 과메기의 고향, 대게의 산지라는 자부심으로 제조부터 유통,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전 과정에 걸쳐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최고의 안전한 수산 식품이라는 평판을 만드는 디딤돌로 삼았으면 한다. 언제나 믿고 전화로 주문만 하면 받을 수 있는 특산물.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느껴 전화하면 언제든지 반품을 받아주는 자신감 넘치는 지역 수산업체와 유통업계. 철저한 공정관리와 포장, 여러 인증마크와 수치가 포장지에 박힌 안전한 먹을거리로 증명된 식품.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닌 소비자가 다른 이에게 말할 정도의 지역 특산물이 되었으면 한다. 분명 지금보다 더 추운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소비자의 눈으로 점검하는 꼼꼼함이야말로 이번 겨울 추위를 견디는 최고의 난방책일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1-08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를 보는 눈

11월 3일 미국에서 제46대 대통령선거와 더불어 상원과 하원 의원선거, 주요 주지사선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높은 가운데,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상원과 하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한다면 최소한 앞으로 2년간은 민주당의 색채가 짙은 과감한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거나, 민주당 정권이 탄생하더라도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앞으로 대내외 정책의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역 업계도 이번 미국 선거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미국발 정책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인 참정권, 다시 말해 투표할 수 있는 시민권을 가졌다고 해서 한 나라의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직접 개입할 틈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저 자기 생각과 대체로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고 착각한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의 공약을 보고 한 표 찍는 것으로 지금보다는 내 입맛에 가까워지기를 막연히 바랄 뿐이다. 하지만 일단 선거가 끝난 다음부터는 소득, 고용, 소비, 교육과 같은 개인과 가정에 직접 연결되는 모든 영역에서 즉시 영향이 나타난다. 싫든 좋든 그러한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다시 새롭게 그 나라의 정계 구도가 재편되기 전까지는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평생 자기가 원했던 정치인을 뽑고 예상대로 국가 정책이 집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행운을 얻는 시민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중요한 선거인데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매번 선거철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의 영향을 받거나 분위기에 휩싸여 순간적으로 지지 대상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때에 따라서는 투표를 하지 않거나, 반대로 한 번도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까지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한다.이번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그런 모습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선거결과 미국 정계가 앞으로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동안 불거진 인종차별 문제, 민주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총기 보유 규제가 강화되리라는 전망과 겹치면서 미국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심지어 아예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올해 생전 처음으로 총을 산 사람만 500만 명을 넘겼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대선은 코로나19의 대책으로 우편투표가 많이 늘어나 평소보다 선거결과가 집계되는 시일이 늦어지기 쉬워 개표결과를 의심하는 사태까지 일어날 위험도 있어 안심하기 힘든 상황이다. 11월 3일에 이루어지는 대통령선거를 8일 앞둔 시점인 10월 26일까지 사전투표를 마친 유권자가 6천만 명을 넘겼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미국 선거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마이클 맥도날드 정치학 교수는 이번 선거의 예상 투표자는 총 유권자의 65% 수준인 약 1억5천만 명에 달해 1908년 대선 이래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였다. 당시 남부에 지지 기반을 둔 민주당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후보가 17개 주에서 승리하였으나, 공화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후보가 북부를 중심으로 29개 주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제2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적이 있다. 이번 선거가 당시처럼 미국 유권자에게 높은 관심을 받으며 예측불허의 승부가 예상된다고는 하나 정치 관련 전문기관 대다수는 그때와는 달리 조 바이든 후보를 낸 민주당이 승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이번 선거는 마침 대통령선거에 더해 상원과 하원 선거, 일부 주지사선거까지 겹쳐 더욱 열기가 높다. 당연히 이번 선거결과는 우리나라도 정치,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발표된 지지율 분석결과를 종합해보면 일단 대통령선거에서는 조 바이든 후보가 신임 대통령으로 당선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다른 선거에서는 과연 어떠한 결과로 예측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11월 3일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연방 하원과 상원의 선거결과는 내년 1월 20일 취임할 제46대 미국 대통령의 정책운영에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하원 선거는 과연 어떻게 될까. 현재 미국 하원의 전체 의석수는 435개다. 하원 의석은 각 지역 인구수에 비례 배정되는데 의석이 1개인 주는 7개 주(알래스카, 몬태나, 델라웨어, 노스다코다, 사우스 다코다, 버몬트, 와이오밍), 20개가 넘는 주는 4개 주(캘리포니아 53개, 텍사스 36개, 플로리다 27개, 뉴욕 27개)다. 하원 임기는 2년이기 때문에 모든 의석이 이번 선거에서 새로 결정된다. 선거 직전인 현재 의석 분포는 결원이 있어 민주당 232개, 공화당 197개지만 이번에도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 전문채널 538은 민주당 239석, 공화당 196석으로 예측하였다.만약 상원까지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새로 출범할 민주당 정권의 주요 정책들은 아무런 걸림돌도 없이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되기 쉽다. 마치 버락 오바마 제1기 정권의 전반기(2009년부터 2010년)처럼 대담한 정책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공화당이 지금처럼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면 바이든 정권이 탄생하더라도 의회에서 발목이 잡혀 획기적인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거나 집행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이렇듯 관심이 높은 미국 상원 의석수는 인구수와 상관없이 50개 주마다 상원의원 2명이 배정되기 때문에 총 의석수는 100개뿐이다. 상원 임기는 6년인데 2년마다 전체 의석의 3분의 1씩 교체하기 위한 선거를 한다. 올해 상원 의석 가운데 선거대상 주는 34개지만 조지아주에는 결원에 따른 보궐선거 1개가 있어 새로 선출되는 의석수는 35개다. 지금의 35개 의석 분포는 공화당 23개, 민주당 12개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우세하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현재 전체 상원 의석 분포는 공화당 53개, 민주당 45개, 무소속 2개지만 무소속 의원이 민주당과 투표 행동을 같이하고 있어 공화당 53개와 사실상의 민주당 47개로 의석 차는 6개다. 하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2021년 1월 3일 개회되는 상원에서 민주당이 현재 의석에서 3석만 늘리면 사실상 과반수를 차지하게 된다. 상원의장을 부대통령이 겸직하기 때문이다. 만약 공화당 정권이 이어진다면 상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려면 의석을 4개 늘려야만 한다. 미묘한 상황이지만, 10월 22일 현재 주요 예측기관들의 11월 3일 선거를 하는 34개 주에 대한 분석결과는 민주당이 현직 상원의원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12개 주 가운데 재선에 불리하다고 예상되는 주는 3개 주(알라바마, 미시건, 미네소타)뿐이다. 반면, 공화당의 경우에는 현직 23명 가운데 낙선이 우려되는 주가 8개 주(아리조나, 콜로라도, 조지아(보궐선거 포함 2명), 아이오와, 메인,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9명에 이른다. 공화당 의원이 의석을 잃을 것이라 예상하는 의석수가 민주당보다 3배나 많다. 전문 예측기관들은 선거결과 상원 의석 예상분포를 민주당 52~53개, 공화당 47~48개로 보면서 민주당이 상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만약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으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고, 상원과 하원에서도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적어도 2년 동안은 민주당 색채가 강한 대내외 정책을 비교적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상원과 하원에서 예측대로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게 되거나, 반대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상원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탈환하지 못하게 된다면 미국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기 쉽다. 앞으로 지역 업계는 이번 미국의 선거결과에 대해 지금까지 이상으로 세세하게 살펴 경영전략을 조정해 나가야만 미국발 정책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1-01

이제는 ‘저축’이 아닌 ‘금융’도 생각해보자

달력에는 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로서 뜻있는 ‘날’이 많다. 생소한 날도 적지 않은데 ‘금융의 날’도 그중 하나일 것 같다. 옛날 ‘저축의 날’이 개명한 것이다. 10월 마지막 화요일로 지정된 이 날의 유래는 196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증권의 날’과 ‘보험의 날’까지 흡수하면서 ‘저축의 날’이 되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저축’과 ‘금융’이 의미하는 뜻은 크게 다르다. 지금도 신흥국들은 과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하도록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국민 저축이 늘어나면 그 자금으로 산업을 육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외국에 차관을 얻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자율성장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도 예전에는 ‘저축은 국력’이라는 표어까지 내걸었다. 저축 유도를 위해 근로자 재산형성저축이나 주택마련 적금과 같은 상품도 있었다. 그때는 ‘저축’만으로 재산형성이나 주택마련이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저축’으로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시대가 되었다. ‘저축’이 아닌 ‘투자’라는 개념이 들어가는 ‘금융의 날’로 이름이 바뀐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주택, 아파트, 토지와 같은 ‘실물’자산에 대한 욕구가 높다. 가계의 자산구성도 예금, 보험, 증권과 같은 금융자산보다는 실물자산 비중이 훨씬 높다. 미국 등 선진국과는 정반대다. 문제는 아무리 실물자산을 원하더라도 옛날과는 여건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삼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축’과 ‘대출’을 끼면 내 집 마련의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길이 끊어졌다. 더구나 ‘저축’에 상극인 ‘저금리’까지 함께 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를 특정하는 다양한 사회 용어 가운데 가슴 아프게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세대’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3포세대’라는 말이 연애, 결혼, 자녀를 의미한다고 할 때 만 하더라도 설마? 했었지만, 지금의 N포세대는 3포세대에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를 더한 7포 세대를 뛰어넘어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이러한 현실에서 새삼 ‘금융의 날’이 달리 느껴진다. 청년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돈’ 때문일 것이다. N포에서 7포로 5포로, 그리고 5포에서 3포로 줄여나가려면 역시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 문제만도 아닐 것이겠지만. 그러한 의미에서 확률적으로 서민이든 N포세대든 돈을 모으는 ‘저축’이 이를 해결할 수 없다면 돈을 불리는 ‘금융’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최소한 희망이 있는 ‘금융’을 지금부터라도 눈여겨보고 쥐 꼬리 만한 ‘돈’이라도 불려 나간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N포에서 ‘1포’를 조금씩 빼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덕담 중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누가 말해도 누구에게 들어도 즐겁다. 그러나 실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하늘이 점지한 사람만 부자가 된다고 믿는 선민의식에 빠진 부자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수 대에 걸쳐 내려온 부자 가문이 아닌 한 정답은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지식, 그리고 열정, 끈기와 더불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절제가 있다면 부자가 될 최소한의 ‘기회’는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외국의 한 국제투자가가 세계의 부유층이 ‘금융’에 대한 투자나 매매에 활용하고 있는 공통분모를 책으로 펴냈다. 제목도 ‘세계의 부자가 실천하는 돈 늘리는 법’이다.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책의 줄거리는 그동안 국내에서 나온 금융투자와 관련한 책들이 이야기하는 ‘비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첫 번째 규칙은 최대한 정보를 모으라는 것이다. 증권이라는 금융상품을 예로 들어 보자. 주식이라는 것은 미래에 그 주식을 발행하고 있는 기업의 가치를 시장에서 예측하여 오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사고, 떨어진다고 본 사람은 판다. 그 모든 판단은 결국 예측에서 나오며, 그 예측은 판단의 근거가 되는 지식이나 정보에서 나온다. 당연히 ‘금융’을 통해 자신의 돈을 불리려는 사람은 자신이 거래하려는 대상의 기업, 그 기업이 속한 업종, 그 업종이 속한 산업에 대해 전망, 세계적인 움직임을 공부하고 정보를 모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신문, 뉴스, 잡지의 경제면을 많이 읽자.두 번째 규칙은 절대 다른 사람 이야기만 듣고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거래의 당사자는 ‘자신’이다. 자기가 부자가 될지 말지를 결정할 중대한 판단을 누군가가 ‘하다더라’라는 말에만 따르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어로 된 약자투성이의 금융상품이나 펀드를 설명하는 사람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러한 금융투자상품들을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권유한다고 그저 믿고 ‘묻지마 투자’를 해서는 절대로 ‘돈’을 불릴 수는 없다.세 번째 규칙은 투자대상이나 상품을 선정할 때 단 하나에 ‘올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돈인데 이것을 나누고 쪼개고 하는 ‘분산투자’가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그마저 줄어들게 만드는 ‘위험’만은 분산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분산투자라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위험분산’이기도 하다. 돌다리를 두드린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공부하고 자기가 결정한 거래라도 ‘혹시’, ‘어쩌면’이라는 생각에서 두 개, 세 개로 나눈다면 ‘돈’을 많이 늘리지는 못해도 적어도 가진 ‘돈’을 단번에 잃어버리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다.네 번째 규칙은 자신이 거래할 때는 납득할 만한 자신만의 이유, 원칙을 정해두고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주식을 산다면 어떻게 움직이면 팔겠다. 이 주식은 이런 이유로 가격이 오를 것이므로 산다는 ‘이유’를 적어두면,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알고, 떨어졌을 때는 미리 정한 가격에 무조건 손해를 보더라도 팔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어쩌면 금방 다시 오를 거야’라며 자기를 속이는 일도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법칙이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공부하고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정한 ‘원칙’을 인공지능처럼 지켜서 거래하는 사람과 ‘혹시’라는 ‘기대’로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어기는 사람이 싸우는 ‘주식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누가 승리할지는 뻔하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부자나 돈을 불리겠다는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마지막 다섯 번째 규칙은 사고팔 때 단번에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투자가의 ‘위험’을 줄이는 원칙이기도 하다. 자신이 모은 지식, 정보를 이용하여 정해둔 매입가격까지 많이 하락하여 매입 시점이 되었더라도 투자 금액의 3분의 1만큼만 사고 가진 모든 돈을 단번에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혹시라도 자신의 판단이 틀려 가격이 추가로 내려가더라도 가진 돈의 3분의 1을, 또 내려가면 나머지를 살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출 수도 있고, 여의치 않을 때는 추가 매입은 포기하고 최소한의 손해로 그칠 수 있게 된다. 이는 팔 때도 마찬가지다.쉽지는 않다. 하지만 ‘금융의 날’을 맞이하여 적어도 손에 든 ‘돈’을 ‘금융’으로 불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한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0-25

지역 뷰티 업계의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며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용실, 미용실, 피부관리실, 성형외과와 같은 뷰티 관련 업계도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서 이들 업체의 매출은 대부분 지난해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부진하였다. 그동안 대면, 접촉, 오프라인이 중심을 이루었던 많은 업종과 사업체들이 비대면, 비접촉,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하였지만 이 뷰티 관련 업계가 직접 사람을 만나야 하고, 손으로 피부를 접촉해야 하는 특성으로 인해 온라인 매출방식으로 우회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역 뷰티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앞으로의 사업 전망을 비관하여 아예 사업을 접겠다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그동안 피해가 컸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계속 부진하리라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다. 뷰티 관련 사업체들 대부분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재빨리 새로운 흐름에 맞추어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적극적인 자세로 새로운 성장을 꿈꾸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뷰티 산업의 미래가 어떠한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하면 지금까지 이상으로 지역 뷰티 관련 업계의 전망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첫째, 비대면, 비접촉이 일상화되고 재택근무, 원격근무 형태가 수 주일, 수개월에 걸쳐 계속되면서 미용성형 수술(surgical)이나 시술(nonsurgical)에 대한 잠재수요가 예상치도 않게 빠르게 촉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용성형 수술이나 시술에 관심이 있던 잠재수요가 비대면, 비접촉과 더불어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회복에 걸리는 1~2주일 정도 되는 미용성형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늘어났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이나 시술을 받아 마스크를 쓰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지 않는 것도 큰 매력이라 여긴 것이다. 장기간 서로 만나지 못하는 동안 자신의 콤플렉스를 쥐도 새도 모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수술이나 시술 희망자들에게는 엄청난 유혹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서울의 한 미용성형사이트와 더불어 중국의 업체까지 일본 시장에 진출하기도 하였다.둘째, 요즈음 부쩍 페이스북, 유튜브, 브이로그 등 다양한 형태의 소셜미디어를 활용하여 만난 적도 없는 불특정 독자들과 자신이 만든 동영상 콘텐츠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들 수 있다. 그동안 뭔가 특출나거나 유명세를 지닌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이 세계에 일반인들이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취미, 관심사에 대해 다루는 동영상을 개인이나 기업, 단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더라도 지역적 한계를 벗어난 디지털 세상에서는 생각 외로 많은 독자와 쉽게 만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활동으로 광고 수입까지 생기는 사례까지 알려지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셜미디어를 제작하려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기기제작 업체들도 호황을 맞이하고 있기도 하다. 콘텐츠로는 음식 조리와 같은 가사분야, 다양한 전문분야의 교육, 재산을 불리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재테크, 음악 감상이나 여행지 소개 등은 물론 문학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영상 콘텐츠 제작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와 같은 현상은 뷰티 관련 업계에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셋째, 온라인 학습 분야에서 나타날 변화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다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남성이면 예쁜 여성에게, 여성이면 잘생긴 남성에게 일단 한 표를 던지기 마련이다. 과거 오프라인 시대에는 빼어난 미남, 미녀가 아니더라도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만 있으면 온몸을 활용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주도하여 수강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유명강사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 그와 같은 교육현장도 디지털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얼굴만 잘생긴 남성, 여성으로 다소 현장 강의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소심한 강사라도 평가를 뒤엎을 기회가 왔다. 수강생들이 쳐다보기만 하면 떨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도 자신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이 오히려 떨지도 않고 카메라 앞에서는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녹화로 강의할 수 있게 된 사람도 생겨날 수 있다. 이와 같은 온라인형 강사가 이제는 예전처럼 현장형 강사보다 수강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도 생겨났다. 이처럼 교육이나 학습 분야에서 달리진 상황은 새롭게 치장하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할 상황을 맞이한 이들을 대상으로 뷰티 관련 업계가 나설 기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앞의 첫 번째는 코로나19 기간에만 가능한 일시적인 수요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현상은 계속 뷰티 관련 업계에 새로운 시장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 영상매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특정 계층뿐이었다. 영상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얼굴을 내보이는 사람의 숫자도 적었다. 어쩌다 손님으로 초대받아 출연하는 일반인이나 방송 매체를 간혹 이용하여 얼굴을 비추는 정치인 등은 예외였다. 이들을 제외하면 앵커, 아나운서, 진행자, 리포터와 같이 방송사에 소속된 방송인이거나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 영화배우, 가수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계열에 종사하는 연예인뿐이었다. 방송인과 연예인이 텔레비전이나 스크린에 나오기까지 이들을 꾸미고 가꾸는 뷰티 관련 종사자들도 많았다. 예를 들어 출연자의 옷차림이 유행패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전담해서 준비해주는 코디네이터부터 얼굴 피부와 화장을 담당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머리 모양과 형태를 책임지는 헤어디자이너, 심지어는 외모의 근본까지 손을 대는 성형외과 의사까지 방송인과 연예인들의 외모를 주로 책임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방송인,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간단하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음껏 얼굴을 내보이며 취미생활, 자신의 전문분야 등을 소개하고 심지어는 교육하는 채널을 운영하면서 수익까지 올리는 시대가 되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지금까지 연예인, 방송인 만을 책임져 왔던 뷰티 관련 업계의 전문가들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 것이다.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가 공개한 최근 국제서베이결과보고서(2018년)에 따르면 글로벌 성형수술 건수 상위 10개국은 미국, 브라질, 중국, 일본, 한국, 인도, 러시아, 멕시코, 이탈리아, 독일 순이었다. 포항을 감싼 환동해권의 중국, 일본, 러시아가 모두 세계 10위권에 들어있다. 한중일러 4개국의 연간 성형수술은 9천793건이었다. 수술 단가를 100만 원이라 가정해도 연간 약 100억 원이다. 미용성형 시술이 수술보다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시장규모는 커진다. 지역 뷰티 관련 업계가 협력하여 뷰티메디컬투어상품을 개발할 만하다. 게다가 이들 3개국 관광객들이 카페리나 크루즈선을 타고 포항을 찾기 전에 미리 온라인으로 사전상담과 접수를 마칠 수 있는 서비스를 갖춘다면 금상첨화다. 앞으로 지역 뷰티 업계의 새로운 도전을 기대한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0-18

앞으로 지역 유통업계가 나아갈 길

기세를 숙일 줄 모른 무서운 역병, 코로나19가 이제는 한 달도 남지 않은 미국 대통령선거까지 개입할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까지 감염됨에 따라 이후 아주 특별한 사건이 미국 정계를 뒤흔들지 않는 한 바이든 후보 진영이 승리할 것이라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세계 각국의 정치계만이 아니라 산업,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코로나19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있는 지금(with 코로나)까지 일어난 변화는 앞으로(post 코로나)도 계속 이어질 여지는 매우 크다.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며 그 영향은 전 지역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상공인들이 주로 종사하고 있는 소매유통점들은 그 변화의 태풍 한가운데에서 방향감각을 잃은 채 넋을 놓고 있다.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소매유통업계의 처음부터 끝까지 당연시하였던 개념들마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소매유통업이라면 제조업체나 도매상에서 구매한 물품을 자기점포에 진열하면 끝이었다. 소비자들은 직접 가게까지 발품을 팔아 찾아와 진열된 물건을 직접 만져 살펴보거나 입어보고, 신어보며, 때로는 맛보기까지 한 후 그 물건 중에서 선택하여 구매하는 거래만 경험해왔다. 이것이 달라졌다. 소매유통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익숙했던 오프라인구매에서 비대면, 비접촉의 온라인구매로 거래형태가 반강제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전국이든 지역이든 일정 지역 범위에 있는 유통시장의 거래 규모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오프라인 소매유통점 매출은 바닥으로, 온라인 유통점의 매출은 천정으로 향하고 있다. 소매유통점이 가졌던 매출액이 온라인 유통으로 이전되는 거래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유통시장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부진에 빠진 지역 소매유통업계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과연 예전 수준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소매유통업계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먼저, 소비자의 거래행태는 종전보다 많이 다양해질 것이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생필품부터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지역 가게, 시장, 마트에서만 구매해왔다. 명품과 같이 해당 지역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아닌 한.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 새로운 거래 수단을 학습하였다. 집에서 전화나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택배로 쉽게 배달된다는 신세계를 충분히 맛본 것이다. 택배의 편리함, 굳이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야 하는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집에 앉아 다른 시간을 만들 수 있고 온라인이나 카드로 결제하고 배달되는 간편함을 적어도 6개월 이상 누려왔다. 이들이 새로 익힌 이 소비행위는 특별한 전환점이 생기지 않는 한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 오프라인 소매유통업자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소비자의 진화다.또 하나, 유통시장에서의 권력도 점차 소매유통점(판매자)에서 소비자(구매자)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지역 소매유통점은 일종의 제조업체 판매대리점으로서 그동안 공급자 중심 유통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당 지역 소비자의 기호와 취향에 철저하게 맞춘 물건들로 채우지 않는 한 게을러진 손님들을 가게로 찾아오게 만들기는 어려워졌다. 예전처럼 있는 것에서 사가라는 판매대리점의 입장을 빨리 버리고, 소비자를 대신해서 물건을 구매하는 가게로 탈바꿈하여야만 생존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끝으로 앞의 두 사실을 생각하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갖춘 혼합형 소매유통점, 그리고 소비자 기호와 선호를 반영한 구매 대행을 위해 빅데이터 분석까지 동원하여 치밀하게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춘 소매유통점을 중심으로 지역 유통업계는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통시장이라고 해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앞으로 소매유통점의 진정한 경쟁자는 주변의 상가나 옆 가게가 아닌 인터넷에 존재하는 온라인 유통점들이다. 소비자의 구매력, 지갑 속에 있는 돈은 무제한이 아니다. 생활에 쓸 수 있거나 사용하는 돈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거래방식에서 어느 한쪽을 이용하면 당연히 다른 거래방식에 이용할 수 있는 자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이 지역 소상공인들 가게가 어려워진 이유다.이처럼 오프라인 소비가 온라인소비로 이동하는 현상은 일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일본 주요 소매유통업종의 온라인시장은 급성장하였다. 주류 및 음식료품은 8.9%, 가구 및 잡화는 8.5%, 가전 및 컴퓨터기기는 7.5%가 커졌다. 경제성장률이 낮은 일본임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성장세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업종들이 모두 오프라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가구 및 잡화, 가전 등은 온라인 유통시장에 30~40%나 이미 진출한 상태였는데도 이러한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일본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의 소매유통업계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을 것이라 짐작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지금까지 언급한 것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지역 유통업계도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이든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동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지역 소매유통업계가 나아갈 길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첫째, 인구사회의 구조변화를 꼭 생각해야만 한다. 과거 인구가 확장되던 시기에는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소매유통업계가 가져다주는 대로 감사하며 받을 수밖에 없는 공급자 우선 시장이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소비자는 새로운 공급자도 만나보았다. 앞으로 지역 유통업자는 철저하게 지역민 취향을 만족시키는 구매대행자를 자처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둘째, 온라인거래 기반을 마련하기 힘들면 전화로 주문받고 배달해주는 서비스라도 갖추어야만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거래 모두 되는 소매유통점으로 변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역 소비자들이 동네 점포가 변화할 때까지 느긋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셋째, 앞으로 상대할 소비자 고객계층을 최대한 좁혀나가야 한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라는 현상을 뼈에 새겨야만 한다. 지방 도시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금 구도심에 신장개업하고 있는 소매유통점들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인구가 유출되고 있는 20대, 30대 연령층이 선호하는 상품군, 온라인거래로도 구매하고 있는 상품군을 다루는 유통점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온라인거래로도 규격, 크기를 선택하여 충분히 살 수 있는 물품들을 취급하는 대리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사실 지방 도시에서 이와 같은 품목을 취급하는 유통점들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진전되고 있는 지역의 소비시장을 생각하면 불리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신장개업하는 유통점들은 최소한 인구가 늘어나는 60대 이상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이었으면 한다.지역 소상공인들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이 어려움은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 믿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지금 시대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진화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단지 시기와 속도를 좀 더 일찍 당겼을 뿐임을 명심해야만 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10-11

포항이 국제항로의 MVP가 되려면

가끔 차가운 컨테이너 화물차량만 오가며 삭막함마저 풍기던 영일만항이 조만간 사람들이 북적이는 국제항만다운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지난 9월 11일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두원상선이 포항을 모항으로 하는 국제카페리선(Eastern Dream호)을 투입하여 러시아와 일본을 오가는 정기 항로를 개시한 때문이다. 앞으로 부두 주변 상가에서 ‘안녕하세요’라는 목소리에 곤니치와(일본어)나 즈드랏스부이쪠(러시아어), 니하오(중국어) 등이 뒤섞여 시끌벅적한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비록 국가항만 기본계획이 수립된 지 11년 만이기는 하지만, 조만간 국제크루즈 여객부두와 국제여객터미널도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운항을 시작한 국제카페리선은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문제 등을 고려하여 연말까지는 화물만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코로나19 문제가 서서히 수습됨에 따라 영일만항은 화물과 승객을 모두 수용하게 될 이 국제카페리 항로를 통해 물동량도 착실히 늘어날 것이다.포항을 기점으로 운항을 개시한 국제카페리선의 행선지는 러시아어로 동방을 지배 내지는 정복한다는 뜻을 지닌 부동항 블라디보스톡(Vladivostok)과 일본 서해안 북쪽에 위치한 교토부(京都府)의 관문으로 러일전쟁 당시 일본 전함들이 드나들던 군항이기도 했던 마이즈루(舞鶴)다. 포항-블라디보스톡-마이즈루가 삼각형을 이루는 이 국제항로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 국제카페리선은 포항을 주 2회, 러시아와 일본을 주 1회씩 운항할 예정이며, 매주 토요일은 포항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출항하며 매주 수요일은 포항에서 일본 마이즈루로 출항한다.지금 이 항로에 투입된 국제카페리선은 항차당 최대 여객 480명, 컨테이너 130개(TEU), 자동차 250대, 중장비 50대 정도가 최대치다. 하지만, 향후 이 노선이 활성화되면 투입선박이 늘어날 수도, 보다 대형 선박으로 교체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 항로도 상황에 따라서는 러시아와의 공동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중국 지린성 훈춘(吉林省琿春)과 북한 나진항까지 연결되는 때가 오게 된다면 삼각형의 항로는 오각형을 이루며 그야말로 포항의 별(star)이 될 수도 있다.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한일 간 항로다. 사실 2011년 당시 처음 일본의 마이즈루시와 정기 항로 개설과 관련한 협상테이블에 나섰을 때도 크루즈를 기대하던 일본 측과 달리 필자는 당장 화물과 승객 모두를 조금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카페리에 더 관심이 갔었다. 한일관계를 차치하더라도 당장 일본 서해안지역과 포항 간 국제크루즈선을 채울 정도의 관광 수요가 있을 것으로 상정하는 것은 무리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실무적 관점에서는 화물과 승객을 함께 수용하면서 조금씩 저변을 확충해 나갈 수 있는 카페리항로가 더욱 효율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이 노선의 관광수요가 결코 작다고 보기도 어렵다. 당시 일본 교토부와 마이즈루시가 계획하고 있던 크루즈상품의 주제는 ‘밀레니엄 시티 투어’였다. 이는 포항이 경주를, 마이즈루가 교토를 배후에 두고 있는데 착안한 것이다. 때마침 영일만항과 마이즈루항은 각국 정부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환동해거점항만, 환일본해거점항만으로 지정받았다. 특히 이번에 개설된 포항-블라디보스톡-마이즈루를 잇는 국제카페리항로는 일본에서 극동러시아를 정기운항하는 유일한 페리항로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그렇기에 2012년 2월 이후 현재까지 3선에 성공한 다다미 료조(多3005見良三) 마이즈루시장은 지난 17일 포항발 국제카페리선 이스턴드림호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간사이(關西)경제권의 일본 측 게이트웨이를 지향’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날 마이니찌신문은 다다미 시장이 이강덕 포항시장과의 온라인 회담에서 포항과 마이즈루 간 화물 집중을 위한 정기 정보교환체제 구축, 관광세미나 개최, 국제페리를 이용한 청소년교류 3가지를 제안하였으며 이 시장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보도하였다.이번 국제카페리항로의 출범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포항에서 블라디보스톡과 마이즈루를 연결하는 국제카페리의 MVP(Maizuru-Vladivostok-Pohang) 노선이 국제항로 가운데 그야말로 최우수노선(MVP: Most Valuable Player)이 되려면 포항도 러시아, 일본에 뒤지지 않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음 몇 가지 사안을 제안한다.첫째, 코로나19로 지금 당장이야 연말까지는 여객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미봉책을 세웠다. 하지만 앞으로 코로나19가 수습되더라도 지금 세계 각국이 철저하게 마련하고 있는 선박과 부두 등에 대한 검역과 방역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유사한 수준의 대책은 구축해 둘 필요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카페리선인 만큼 컨테이너부두와 여객부두, 여객부두와 여객터미널 등에서의 물자와 사람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선박과 화물, 그리고 승객 모두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철저한 방역 대책과 시설을 정비하고 점검해두어야만 한다. 이것이 전제되어야만 포항에 도착한 외국인 관광객을 시내 식당, 숙박업소 등에서 안심하고 환영할 수 있고 또 이 항로를 통해 일본이나 러시아로 여행을 가려는 국내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둘째, 포항과 마이즈루 사이의 노선은 경주와 교토라는 두 나라의 천년고도를 배후에 두고 있는 만큼 양 지역 관광객의 교차 방문과 관련 학자들의 학술교류를 정례화된 프로그램으로 만들 여지가 충분하다. 따라서 포항시는 경주시와 함께 카페리 노선을 통한 영일만항의 물동량 창출과 경주 관광객 유치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야만 한다. 영일만항은 포항에 있지만 작게는 대구 경북 크게는 우리나라 전체를 시장으로 하는 동해의 관문으로 성장, 정착시킨다는 보다 넓은 범위의 전략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셋째, 이번 국제카페리 항로 개설을 계기로 러시아와 일본의 관광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소비기반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마련해 나가야만 한다. 일례로 숙박 기능을 갖춘 온천시설을 마련하여 북방지역 러시아와 중국 동북 3성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아울러 영일만항에 기항하는 선박의 승무원들이 휴식할 수 있는 호텔 및 위락시설 등도 필요하다. 이왕이면 흥해지역 재건, KTX역세권 개발 등과 연계시켜 시너지효과를 도모하였으면 한다. 가능하다면 일본 교토부의 유명 호텔, 음식점 등의 포항 현지법인 유치도 병행하였으면 좋겠다.넷째, 영일만항에 도착한 국제 여객들이 근거리에서 쇼핑하고 휴식하고 즐길 수 있는 시설, 영일만항에 기항한 다양한 선박들이 필요로 하는 식품 등 주요 보급물자를 공급할 수 있는 보급기지 등도 최대한 빠르게 확충할 필요가 있다. 냉동냉장전용 컨테이너를 수용할 수 있는 영일만항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마지막으로 외국인 승객, 선원이 영일만항에서 포항, 경주 시내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정기 셔틀버스의 운행,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택시 기사의 확보 또는 육성, 러시아 루블화와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을 편리하게 교환할 수 있는 환전센터의 설치 등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은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로 국제관광객들이 본격적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이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적기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10-04

이제는 ‘환울릉(Ulleung Rim)’ 시대다

동해(East Sea) 명칭에 대한 한일 간 외교전쟁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는 일본해(Japan Sea 또는 Sea of Japan)로 표기되고 있던 동해의 명칭을 최소한 일본해와 나란히 병행 표시되도록 국제외교무대에서 첨예한 각축전을 벌여왔다. 한반도 동쪽의 해역, 동해가 국제기구가 발행하는 지도에 일본해로 표기되기 시작한 것은 1928년부터다.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가 그해 발간한 각국 해도에서 해양의 명칭과 경계의 기준이 되는 ‘대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Special Publication No. 23), 초판’에서 동해를 일본해(Japan Sea)로 표기한 때문이다. 초판 발행 당시는 일제강점기였기에 한반도와 일본 본토 사이의 해역명칭을 IHO가 일본해로 표기한 것에 대해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었다. 이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제3판(1953년)이 발행될 때는 6·25전쟁이 겨우 휴전되어 초토화된 국토재건에 여념이 없었던 때였기에 동해 명칭에 신경 쓸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대한민국이 비록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국제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1991년 9월 국제연합(UN)에 가입한 이후부터다. UN 동시 가입을 이루었던 남북한은 이듬해 개최된 제6회 국제연합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하였다. 적어도 동해에 관한 한 남북한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이후 정부는 물론 사이버 외교사절단인 반크 (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등 뜻있는 민간단체들까지 가세한 한일 간 외교전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1999년 시점에는 세계의 주요기관, 지도제작회사, 출판사 등이 발간하는 세계 지도에서 동해/일본해로 해역을 병행 표시하고 있던 비율은 불과 3% 정도였다. 하지만 이 같은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2년 시점에는 세계 지도 가운데 동해를 일본해와 나란히 표기한 지도 비율이 30% 수준까지 높아졌다.일본도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각국이 우리 주장을 받아들여 동해로 단독 표기하거나 일본해와 동해를 함께 표기할 것을 결정할 때마다 정치, 경제, 외교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반박하며 원상복구를 종용하였다. 일본 외교부 등 중앙정부, 지자체 등은 물론 미쓰이물산전략연구소 등 대기업 산하 민간연구소들도 연구보고서 등에 교묘하게 지도를 넣으면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2014년 10월 도쿄 무사시노시(武藏野市) 시립중학교에서 일본해(동해)로 병행 표기한 지도가 배포한 사회과목 교재에 실린 적이 있었다. 당시 도쿄도와 무사시노시교육위원회는 전례가 없고, 학습지도요령의 취지에 어긋난 부적절한 교재라며 학교 측에 바로잡으라고 강요하였다. 이에 따라 지도가 들어간 교재는 다시 교체되었고 담당 교사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2017년 8월에는 니가타현 묘코시(新潟770C妙高市)가 발행한 한국어판 관광안내책자(17쪽 지도부분)에 동해로 표기된 것을 발견하자 이미 인쇄된 5천 부를 전량 회수하여 폐기하고 일본해로 수정한 책자를 재인쇄한 사례도 있다.이처럼 한일 양국이 수십 년에 걸쳐 동해에 대한 명칭과 표기에 대한 외교전쟁의 최종 결과는 오는 11월경 어떤 형태로건 결착을 보게 될 것 같다. 최근 IHO 사무국장은 현행 제3판(1953년 간행) 개정과 관련하여 ‘바다를 고유의 숫자로 식별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한국과 일본에 제안하였다고 밝혔다. 디지털화 시대에는 문자로 된 이름보다도 숫자가 지리정보시스템의 활용에도 유용하기 때문에 모든 바다 해역에 고유 숫자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 경우에는 동해도 일본해도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 안건은 IHO 가맹국에 이미 회람된 상태이며 11월 총회에서 대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안(제4판)이 의결될 예정인데 가맹국들의 의견도 대체로 긍정적이어서 통과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가 일본과 동해 명칭을 둘러싼 외교전쟁을 치르는 동안 국내 각계에서는 해양과 ‘환동해(East Sea Rim)’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반도에서 동해안을 접하고 있는 강원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등을 중심으로 ‘환동해’, ‘환동해경제권’이라는 말은 일반화된 지 오래다. 환동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행정조직, 주요 금융기관의 지역본부, 학계나 주요 단체가 개최하는 주요 포럼이나 국제심포지엄 등에 이르기까지 ‘환동해’라는 용어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일본에서는 ‘환일본해’지만.이와 같은 시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그동안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환동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더욱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오는 11월 IHO 총회 결과 사무국의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어 바다와 해양에 대한 명칭이 문자가 아닌 숫자로 표기될 것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결과를 아직 모르는 상태이고, 어쩌면 숫자로 표기되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한 과도기적인 모습을 띨 수도 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미래에는 동해와 일본해 모두 사용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동해에 대해 우리나라, 경북도, 포항이나 울릉군이 주도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높아진 것만은 틀림없다. 러시아(극동연방 관구), 중국(동북 3성), 북한(동해안), 우리나라(동해안)와 일본(서해안) 전역에 접하는 해양의 중심에 유일한 한국령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울릉지역이다. 우리는 바로 이 울릉군이 북동아시아의 해양 중심지에 있다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금까지 이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지금부터 마련해 나가야만 한다. 국제 사회에서 그 어떤 지역이나 국가라고 하더라도 명칭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부동의 명칭은 ‘환동해’도 ‘환일본해’도 아닌 ‘환울릉’이다. 울릉군을 중심축으로 삼은 주변 해역과 주변 경제블록을 논의할 때 그 어느 국가라고 하더라도 이 명칭에 대해서만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울릉군은 한반도 가장 동쪽 국경 최전선에 있고 동해 해역의 유일한 거점이기에 미래 환울릉경제권시대의 중심지로 부상할 전망은 밝다. 당장 단체, 포럼 등이 사용하는 ‘환동해’ 명칭을 ‘환울릉’으로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동해가 숫자로 표기된다면 앞으로 국제행사에서 ‘환동해’는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환울릉’이라는 용어를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울릉군은 그저 경북도 23개 시군 중 하나가 아니다. 동해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대표하는 ‘국제적 도서’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가능하다면 ‘특별군’으로 승격시켜 우리나라의 미래 ‘환울릉’시대의 거점으로 손색이 없도록 지금 추진 중인 공항, 항만시설도 국제수준으로 격상시켜 확충, 정비해 나가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미래 해양강국을 지향한다면 미래의 해양영토, 해양주권의 교두보인 울릉지역에 대한 전략부터 새로 구상해야만 할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27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우선 과제

이제야 포항이 국제 항만도시라고 하는 말에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만 해졌다. 한 나라나 지역이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려면 반드시 출입구를 가져야만 한다. 하늘길을 이용하는 공항이든, 육로를 이용하는 국경이든 내국인과 외국인이 접점을 가지고 드나들 수 있는 곳 말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와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창구를 가지지 못하면 그 나라나 지역이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마주하고 있어 여느 내륙 국가처럼 국경을 접점으로 하는 국제관문은 사실상 막혀있다. 지금 외국과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하거나 내국인의 해외여행과 외국인의 국내 관광이 가능한 것은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은 국제항만을 가지고 있다. 3개 항으로 이루어진 포항항 가운데 신항은 국제벌크항만, 영일만항은 국제컨테이너항만이다. 이번에 완공된 국제 크루즈 여객부두로 인해 포항항은 국제 벌크화물과 국제 컨테이너 화물 그리고 국제여객 모두 다루는 완전체의 국제항만으로 재탄생하였다. 명실공히 국제 항만도시 포항이라는 자격증이 이제야 완비된 셈이다. 여기에 하늘길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특별전세기를 통해 세계 어디라도 움직일 수 있다. 실제 외국을 오간 사례도 있다. 이번에 포항을 모항으로 삼고 러시아와 일본 서해안지역을 오가는 국제 카페리호가 취항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이를 통해 포항의 국제화물과 국제여객이 넘나들며 항만물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동시 부진에 빠지면서 국제물동량도 자연 격감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그동안 높은 성장세를 보여왔던 국제크루즈산업의 피해는 매우 컸다. 국제해운업계가 이처럼 심각한 불경기를 맞이하면서 상위권의 국제여객선사들까지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중고여객선의 가격은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포항의 국제 크루즈 여객부두가 완공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앞으로는 전망이 밝다고 단언할 만한 확신도 없다. 주식투자가라면 누구나 발가락 끝에서 사서 머리카락 끝에서 팔아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시장 상황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가들은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고 조언한다. 국제정치, 국제경제의 역학관계도 주식시장만큼이나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국제 해운업계가 지금 불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 회복세를 보여 급반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 무역이 차단되어 국제물동량이 바닥을 보이고 국제해운업계가 불황의 늪에 빠진 상태에서 국제 카페리 노선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모험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일본을 오가는 여객과 화물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카페리의 유용성을 고려하면 지금이 무릎 단계인 최적의 타이밍일 수도 있다. 국제 해운업계가 어려운 만큼 포항발 국제카페리 노선의 시장진입 허들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항만, 공항, 철도 등 인프라 투자는 불경기에 추진할수록 비용 대비 성과가 높아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불황기에 각국이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포항항이 국제 항만도시에 어울리는 적합한 기능을 발휘하여 도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2개의 교육기반만은 서둘렀으면 한다.첫 번째 과제는 포항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기반하여 주변 국가와의 경제적 문제를 전략적으로 접근 가능한 지경학(地經學·geoeconomics)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다. 국제관계는 과거와 달리 정치, 경제, 외교 등 어느 특정 분야만 다루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외교부를 외교통상부로 개편한 것도 이와 같은 지경학에 기반한 국가전략의 흐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분쟁을 군사 행동이라는 물리적 수단으로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정치적 문제나 전략을 기반으로 경제적 수단을 이용하는 국가전략이 일반화되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다양한 경제적 제재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지경학적 전략에 기반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학, 정치학, 지리학이 통합된 학문인 지경학은 그동안 경제외교를 지탱해왔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경학인 셈이다. 포항이 앞으로 국제 항만도시로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생존하려면 폭넓은 시야와 통찰력을 갖출 수 있는 지경학적 소양을 지닌 젊은 인재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아닌 포항지역에 특화된 지경학적 지식을 갖춘 인재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항의 대학 내에 지경학과를 신설하거나 단일 교양과목의 형태라도 개설하여 국제정치 경제적 감각이 배인 청년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반을 서둘러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두 번째 과제는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주요 분야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다국어가 가능한 외국 청년인재의 유인과 수용을 위한 기반 마련이다. 일종의 교육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하다. 포항항이 환동해 거점항만으로 지정된 것은 포항이 지닌 지정학적 위상 때문이다. 포항은 국제컨테이너부두, 국제벌크화물부두, 국제여객부두 모두를 갖춘 동해안 유일의 국제항만도시다. 바다를 격해 중국만 상대하는 서해안의 국제항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포항은 울릉도 독도라는 동해안 최동단의 국경 도서를 끌어안으면서 위로는 북한,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 극동연방 관구를 두고 있다. 우로는 일본의 서해안지역을 상대하며 남으로는 미국, 동남아까지 연결된다. 환동해 내지 환울릉지역을 아우르는 포항은 태생부터 다국적을 상대하는 국제 항만도시인 셈이다. 이러한 전략적 위상을 지닌 항만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포항시가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가에 따라 포항이 지닌 지정학적 장점을 살려 경제적으로도 유의미한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이 문제는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 포항 스스로 환동해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한다. 러시아, 일본, 중국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교포 2세들을 선점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포항국제아카데미(가칭)와 같은 교육프로그램의 개설을 제안한다. 학력 인정까지는 불필요하다. 그저 우수한 청년 교포들을 끌어들여 포항에 정착시키고 해양으로 나아갈 포항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포항은 앞으로 포항항을 거점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환동해권으로 경제영토를 확장해 나가야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포항에 필요한 교육기반은 앞서 언급한 딱 2개의 교육기반뿐이다. 국제적 감각을 지니면서 포항의 미래전략을 세울 청년 인재의 양성, 즉시 활용 가능한 환동해권 4개국 언어에 능통한 외국 국적 청년 교포를 산업인력으로 유인, 수용할 그릇이다. 포항의 인재는 자체적으로 수급해야만 한다. 다가올 환동해경제권 시대에 포항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포항을 등에 지고 활약할 청년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구상은 단지 졸업 후 포항을 떠날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국제학교의 설립 문제보다 더 시급한 최우선 과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20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

최근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강력한 두 개의 태풍이 경북 동해안 지역을 강타하며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울릉도는 방파제가 유실되고 차량과 선박이 파손되었으며 도로도 유실되었다. 포항을 비롯한 경주, 영덕, 울진 등지도 집중호우로 한 해 농작물이 추석을 앞두고 쓰러지고 심지어 어디에 있던 것인지도 모르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버젓이 남의 논밭에 자리를 잡기도 하였다. 코로나19로 어렵던 시기를 보내고 있던 소상공인의 가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돈을 들여 세워두었던 입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건물 외벽에 전기장치까지 달아 두었던 세로형 간판은 구겨지고 떨어졌다. 어느 모델의 옥상 간판도 넘어졌지만 옥상 안쪽으로 넘어져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다. 아는 지인이 경영하는 철강공장도 지붕이 구겨지고 훼손되었지만, 그 옆 공장의 지붕은 아예 이번 태풍이 뜯어갔다고 한다.포항시 등 지역 공무원들은 불어난 강물로 오염된 산책로에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부러진 가로수를 처리하는 등 불철주야 고생하였다. 그동안 공무원들의 일 처리에 불만이 있던 시민들도 이번에는 박수를 보냈다. 코로나19사태가 확대된 이후부터 최근 태풍 피해 복구 등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올해만큼은 공무원들이 모두 월급 값 이상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본다. 이번 재해는 특히 아주 가끔 나타나는 초대형 태풍이었기에 아무리 사전에 철저하게 단속하고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힘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을 이겨왔기에 피해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이처럼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이후부터는 복구가 최대 현안이 된다. 하지만 태풍이라는 자연재해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그때마다 지금처럼 강풍으로 훼손되는 주요 대상이 늘 같다는 것이 문제다. 간판이다. 그동안 상인들은 자기 가게 홍보를 위해 어느 한 곳이 돌출형이나 세로형 간판을 만들면, 그 옆 가게는 그보다 더 크고 더 화려한 간판으로 대응해왔다. 입간판이나 돌출간판, 세로형 간판 등은 오래전부터 도시미관을 해치고, 자동차 운전자들의 시각을 어지럽게 하며, 보행자에게는 불편을 주는 대상이었다.약 16년 전인 2004년 당시 건설교통부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던 경기도 화성과 판교지역의 건축주나 건물사용자가 건물에 간판을 함부로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최근 두 도시를 가보지 않아 지금의 모습은 모르지만, 그때 정부가 내세운 기준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신도시 건축물 간판 경관제도’라는 이 정책은 무질서하고 원색적인 건물 간판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교통사고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기존 도시보다는 신도시 건설 단계부터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여겨 시행했던 것 같다. 당시 계획으로는 업소당 가로형 간판 1개만 허용하고 세로형 간판은 설치를 금지하며 돌출형 간판은 4층 이상 건물에서 통일된 형태로 설치할 때만 허용하였다. 또 가로형 간판의 경우 3층 이하에는 위층과 아래층 사이 폭 이내에서만, 그리고 4층 이상에는 건축물 상단과 측면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하며, 간판의 색채는 주변 건물이나 간판과 어울리지 않는 순도 높은 원색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문자도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체 사용을 억제하는 상당히 강력한 방침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강한 의지로 규제하더라도 언제나 그 틈새는 있기 마련이다. 상인들도 자신의 가게가 생존하고 더욱 번창하려면 더욱 기발하고 크며 화려한 간판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지금에 이르렀다.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간판(看板)’이라는 존재와 용어 자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의 거래는 시장이 중심이었고, 그곳에서 거래를 위해 모인 상인들은 호객하거나 자신의 거래목적을 위해 장터를 돌아다니다 적당한 상인을 발견하고 거래하거나 거간꾼을 통해 매매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이후 상인이 자신의 가게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가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이 상회 등 회사조직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물론 유사한 기능은 있었다. 주요 건물에는 간판이라는 용어가 아닌 현판이나 편액 등이 걸렸다. 때로는 나무판자에 붓글씨를 써서 대문 근처에 걸어두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도입한 간판과 유사한 기능을 가지면서 지금의 네온사인과 같이 밤에도 빛나는 초롱을 걸던 곳도 있었다. 깊은 밤중 산길을 밝혀주는 지금의 여인숙 기능을 함께 하였던 주막의 등불이었다.이처럼 간판이라는 존재는 근대 이후든 이전이든 그 가게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용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파는 곳인지 알려주는 용도 등에 일차적 목적이 있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멀리서라도 자신의 가게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용도로 오랫동안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때마다 다시 그림이나 글자를 새로 쓰던 아날로그 간판은 순식간에 글씨를 바꿀 수 있는 디지털 간판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누구나 지닌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위치 기능을 이용하여 가게 이름부터 주변 맛집 검색 등을 통해 정확하게 해당 지점까지 지도로 안내해주고 있다. 굳이 입간판, 돌출간판, 세로형간판 등 온갖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간판이 없어 가게나 어떤 업체를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대형 건물에 입주한 기업이나 점포도 굳이 머리를 치켜들어 빌딩 바깥의 간판을 보고 몇 층에 있는지 찾을 필요도 없다. 건물 로비에 들어가면 네모난 아주 작은 크기의 판에 각층별로 입주한 업체나 가게를 깨알같이 써서 안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간판이다.우리는 간판의 크기와 모양을 생각하기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제아무리 간판이 화려하고, 네온사인을 두르고 원색적인 글자로 손님을 유혹한다고 하더라도 가게의 성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유통점이라면 그 점포에 진열된 상품들의 품질이나 상태가 양호하고 다양성이 갖추어져 있고, 접객하는 종업원의 친절도가 고객의 재방문을 결정한다. 음식점이라면 아무리 수시로 실내 장식을 바꾸고 온갖 진귀한 진열품으로 가게 분위기를 화려하게 꾸미더라도, 정작 그 가게의 정체성인 음식점으로서 음식이 맛없거나 청결하지 않고 손님들이 불편하면 소용이 없다.이번에 마이삭과 하이선이라는 초대형 태풍이 연속으로 강타하면서 지역 곳곳에 있는 많은 사업체의 간판을 부수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당장 망가진 간판부터 새로 만들기 전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였으면 한다. 또다시 지금처럼 태풍이 와서 강풍으로 날아갈 세로형 간판이나, 입간판, 돌출형 간판을 굳이 돈을 들여 마련해야만 할지를.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강력한 태풍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동안 도시미관을 헤친다는 지적이 있었던 간판이라면 더더욱 이번 기회에 깔끔한 작은 디자인으로 만들어, 스스로 우리는 간판보다는 내용이 충실한, 간판이 없어도 경쟁력이 높은 가게임을 자랑해보면 어떨까. 명함에 금박을 입혔다고 그 사람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시기다. 시간이 흐르면 녹슬고 태풍 때마다 날아갈까 노심초사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업의 성패는 간판보다는 내용에 있음을 잊지 말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9-13

일본의 차기 정권에서도 정책 변화는 없을 듯

일본 헌정사상 최장기인 7년 8개월간 집권 중이던 아베 신조 총리가 최근 전격 사임하였다. 이에 따라 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 집권 자민당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외형적으로는 정권 교체처럼 보이지만 의원내각제인 관계로 사실상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간판 얼굴만 교체되는 셈이다. 9월 1일 열린 자민당 총무회에서는 전당대회 대신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 의원총회에서 신임 총재를 선출한다는 방침을 굳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상시국임을 고려하여 ‘정치 공백 회피’를 위해 당헌에 있는 ‘긴급 시에는 양원 총회에서 후임을 선임’한다는 조항을 내세워 당원투표를 생략하는 양원 총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자민당 총재는 12일간 선거 일정으로 국회의원 394명과 전국 당원 등 394명을 합한 788명이 투표하는 전당대회에서 선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비상시에는 7일 일정으로 국회의원 394명과 47개 지자체 대표 141명(지부별 3명)을 합한 535명이 전당대회를 대신하는 양원 의원총회에서 선출하게 된다. 현재로서는 9월 8일 신임 총재선거를 고시하고 14일 선거일에 투개표를 실시할 공산이 크다. 이때 1차 투표에서 과반수인 268표 이상 득표자가 나오면 즉시 신임 총재가 결정, 차기 총리 지명을 거쳐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게 되지만, 과반수득표에 성공하지 못하면 득표 1, 2위를 대상으로 2차 결선투표를 거쳐 진행하게 된다.9월 14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선거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3명이 경합에 나설 전망이다. 스가 장관은 아베 내각의 관방장관으로 지난해 5월 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에 맞추어 적용된 새로운 일본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발표하면서 일반 국민에게 인지도가 상승한 데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을 유지하는데 안방 살림을 잘 수행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시다 회장은 2012년부터 5년간 제2차 아베 내각에서 외무장관을 역임한 적이 있는 등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 손색이 없다는 평이지만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했다. 반면 이시바 전 간사장은 여론조사 결과 차기 총리 후보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자민당 내 대표적인 반 아베파로 알려져 의원들 사이에서 지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아베 총리의 비판자라는 이름이 붙은 이시바 전 간사장을 자민당 의원들이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 뽑는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그런데 아베 총리를 배출한 자민당 최대 계파인 호소다파(細田派, 98명)를 비롯하여 아소파(麻生派, 54명), 다케시타파(竹下派, 54명), 니카이파(二階派, 47명), 이시하라파(石原派, 11명)가 모두 스가 장관을 지지한다는 의향을 보였다. 이 숫자만 하더라도 264표인데 무파벌파 의원 가운데 20~30명 정도가 스가 장관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지자체 지부 대표들이 141표를 모두 다른 후보에게 몰아주더라도 차기 자민당 총재로 스가 장관이 선출되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사임한 지 불과 2~3일, 심지어 스가 장관이 총재직 출마 의사를 공식 표명한 9월 2일이 되기도 전에 사실상 차기 총재선거는 끝난 셈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는 스가 장관에 대한 사실상의 신임 투표인 모양새로 바뀌어버렸다. 경선에 나설 기시다와 이시바 두 사람 모두 자신의 파벌(기시다파 47명, 이시바파 11명)을 이끄는 계파 수장이지만 대다수 파벌이 스가 장관을 지지하고 나선 지금 상황에서는 맥이 빠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공식 선거 일정은 선거고시일인 8일 오전 세 진영의 대표가 각각 20명의 추천인 명단을 첨부하여 총재직 입후보자로 등록한 후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여 표심 몰이에 나서겠지만 그마저도 코로나19로 인해 인터넷 정견발표 등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두 후보는 아예 지자체 대표들의 표심을 잡아 1차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다는 전략이며, 일찌감치 스가 장관을 지지하고 나선 다른 계파에서는 차기 스가 내각에서 자신의 파벌을 요직에 앉히기 위한 물밑 교섭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다.자민당 지도부가 이처럼 서둘러 9월 8일 총재선거 고시, 14일 투개표를 통한 신임 총재의 선출, 16일 임시 국회를 소집하여 새 총리를 지명한 후 신임 내각을 출범시키는 빠듯한 그림을 그린 것은 새로운 거대 야당의 출범을 최대한 견제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자민당 총재선거 일정 사이에 있는 9월 15일에는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이 양당을 해체한 후 150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입헌민주당’으로 출범하는 창당총회가 예정되어 있다. 15일을 가운데 두고 14일에는 자민당의 신임 총재선출, 16일에는 새로운 내각 출범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어 새로운 거대 야당이 결집 출범한다는 뉴스를 아예 덮어버리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인 셈이다. 야당 측에서는 총리지명에 이어 신임 총리의 소신표명 연설과 각 당 대표와의 질의응답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자민당은 임시 국회회기를 18일까지로 짧게 잡아 국회 토론은 10월 하순 소집하게 될 다음 임시 국회로 미룬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아베 정권의 막이 내림에 따라 일본 국내의 일부 학자들은 아베 총리가 자신만만하게 내세웠던 GDP성장률 2%의 안정적 달성이라는 공약은 2014년 1/4분기부터 2020년 1/4분기까지 6년간 1.8%에 그쳤고, 아베 정권 8년 동안 소비세 인상 등으로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이 3.5%나 줄어드는 등 소비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재정지출은 엄청나게 팽창하였다며 아베의 정책은 실패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자신 있게 내세웠던 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와 같은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차기 총리가 누가 되든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가 대폭 변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동안 아베 총리가 아베노믹스라는 정책 기조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게 해준 최대의 엔진은 일본은행에 의한 대규모 금융완화와 거액의 재정지출이었다. 스가 장관이 일본은행과의 관계는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이어갈 것이라 밝히고 있고, 나머지 두 후보도 일본은행에 의한 대규모 금융완화에 대해 모두 장기적으로는 개선해야 하겠지만 급하게 변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어 금융정책 자체가 급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차기 총리가 거의 확실시되는 스가 요시히데 장관 특유의 ‘스가노믹스’는 당분간 만나볼 수 없을 것 같다.한편 아베 총리가 최우선 정책의 하나로 꼽았었으나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한 것 중 하나가 북한 관련 문제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등과 관련하여 스가 장관은 김정은 조선 노동당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 활로를 열겠다고 발언하였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도쿄와 평양에 상호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겠다는 비교적 참신한 방안을 내세웠다. 기시다 정무조사회장은 북한 문제에는 언급이 없었으나 과거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회담 경험을 살려 냉정하게 한일 간 외교적 대화를 시도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이상을 종합해 보면 누가 아베 총리의 후임이 되든 한일 관계를 포함한 일본의 정치 경제 관련 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9-06

미국 정권의 향방과 지역의 대응전략

최근 미국 정계가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는 11월 3일 치뤄질 제46대 미국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부통령을 지냈던 조 바이든(Joe Biden)씨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공화당 측 후보는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공화당 전당대회 이전부터 미국 연방정부 직원의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해치법(Hatch Act) 위반 논란이 있었는데도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남편을 지지하는 연설을 강행하였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중동 순방 출장 중인 가운데 영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였다. 뉴욕타임스지는 현직 국무장관의 특정 정당 지지연설은 7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며, 이는 국무부 내규에도 어긋난다고 보도하였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서 승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앞으로 미국 정계에 어떠한 변수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여론조사결과 등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을 것만은 분명하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면서 백악관의 초기대응 미흡, 이로 인한 미국경제의 급격한 감속과 실업률 급증 등이 얽히면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전국 여론조사결과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미국 대선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고 알려진 접전지역에서조차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우세를 나타내고 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각 여론조사회사의 질, 시기적 근접성, 조사 수를 고려하여 평균한 데이터를 발표하는 미국의 정치분석 전문매체인 파이브서티에잇(538.com)에 따르면 8월 13일 현재 2020년 46대 미국 대선의 최대접전 지역인 6개 주(미시간, 팬실베니아, 위스콘신, 플로리다, 아리조나, 노스캐롤라이나) 모두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6개 주는 사실 지난 2016년 대통령선거 당시 트럼프 후보가 모두 우세를 차지하였던 지역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전국 집계치에서 현직 트럼프 대통령은 42.4%의 지지율에 그쳤지만 바이든 후보는 51.0%의 지지를 받으며 8.5포인트나 앞섰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그 이후 조금씩 추격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전하지는 못한 상태다.하지만 지난 2016년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에서 뒤졌던 트럼프 대통령을 역전시켰던 ‘감춰진 트럼프지지자(hidden Trump voter)’가 이번에도 활약할 수는 있겠지만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져 역전시킬 정도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접전지역이었던 라스트벨트로 불리는 디트로이트나 클리블랜드 등 자동차와 철강산업 중심 지역에서 트럼프 후보가 경기 부양을 통한 고용개선을 주장하며 역전 득표에 성공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를 개정하고, 중국, 한국 등에 대한 철강 관세를 인상하며 ‘관세맨’으로 불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정계에 몸담은 사람이 아닌 한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궁금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현 미국 대통령이 던진 관세 폭탄으로 큰 피해를 겪고 있는 포항의 철강업계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미국 대선 결과 대통령이 바뀐다면 과연 포항지역 산업에는 어떠한 영향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무역정책의 기조는 사실상 민주당 강경파의 무역정책 기조와 흐름이 거의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급격하게 감속한 미국경제의 조기 회복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현행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쉽다. 정책수단이야 관세보다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경제블록을 통한 간접적인 보호무역을 따를 수도 있겠지만.대통령선거와 같이 치뤄질 미국 통상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연방의회의 선거결과에 따른 영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시점에서는 민주당의 압승이 예측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세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미국의 통상정책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누르고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제46대 대통령으로 바뀌거나, 연방의회에서 민주당이 절대적인 의석을 차지한다고 해서 포항의 철강업계가 지금의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절로 벗어나게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의 통상정책에서 중국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큰 차이가 없어, 중국산 철강제품에 적용하는 강력한 제재조치의 여파는 고스란히 포항 철강업계에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결론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바뀌든, 연방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든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가격경쟁력만을 무기로 내세워서는 미국의 장벽을 넘기 어려운 현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역 철강업계가 미국 시장에 침투하여 생존하려면 신제품, 신기술 등 고부가가치의 품질경쟁력을 내세운 제품, 그것도 세계적인 수준이 아닌 세계 유일의 철강제품이어야만 전천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능할 일도 있다. 지역 철강업계가 노릴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국내시장이며, 이 또한 지금까지와는 획기적인 전략전환이 필요하다.우선, 암묵적으로 국산 강재를 이용하는 광범위한 비관세장벽을 관련 업계가 함께 높여야만 한다. 저성장 기조에도 건설, 투자는 이루어진다. 문제는 빌딩, 아파트, 공장, 도로 등 인프라구축 등에 원가절감 등을 이유로 중국산 등 저가의 수입제품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등에서는 최대한 자국 철강을 위해 표준품셈, 주요 설계기준 등 보이지 않는 내부규칙을 이용하여 자국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교묘하게 장벽을 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각국 모두 대문을 잠그는 데 우리만 열어두는 것은 어리석다. 국내산업의 쌀인 철강이 정상 작동하여야만 여타 기계, 금속, 자동차 등도 상호 간에 동반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역 철강업계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서야만 한다.그리고 철강과 수요산업 간 전략적 제휴도 시급하다. 그동안 철강업계는 철강재를 만들어 놓기만 하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전방수요업계가 자신에게 적합하게 다시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하지만 독점적 공급자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 손이 가는 고가의 국산 철강재를 사용할 수요자는 없다. 이제는 장사꾼처럼 고객이 어디에, 무슨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지까지 알아서 입에 떠먹여 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아가 그들의 신제품에 적합한 소재를 맞춤 제공하여 두 업체가 함께 번영을 추구하는 전략적 연대를 확대해야만 한다.앞으로도 세계의 정치지도는 바뀔 것이고 그 변화의 결과는 고스란히 우리의 수출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포항 철강업계가 앞으로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외충격에서도 흡수 가능한 내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국내 수요 산업과의 끈끈하고 질긴 공급망의 치밀한 연결을 이어나가야만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30

앞이 막막할 땐 맨몸운동이라도 하자

최근 세계 경제에 대한 회복 기대감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세계 경제를 부진의 늪에 빠트린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회복이 기대한 만큼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이유까지 모두 전염병 탓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유럽 등을 중심으로 각국이 내세운 보호무역주의는 철강, 자동차 등 기간산업에 주목했었고, 제재방식도 관세부과나 수입물량 통제 등 무역상대국이 상호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나름 이성적인 조치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미국과 영국 간에는 영국산 몰트위스키에 대한 수입 관세부과 문제로 영국의 몰트위스키 업계가 고사 위기에 몰리면서 영국 정계와 재계는 미국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양상도 지금까지와 같은 관세 등의 조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홍콩의 국가보안법 제정 등과도 얽혀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모르게 됐다. 중국에서 스마트폰 등을 제조하는 화웨이에 이어 다른 중국기업까지 미국이 손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5초짜리 짧은 동영상을 제작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SNS) 틱톡(TikTok)을 운영하는 중국의 바이트댄스사에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4일 미국 사업을 90일 이내에 매각하라는 공식 명령을 발동했다. 화웨이가 미국에 정치적 공세로 대항한 것과 달리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바이트댄스사에 대한 중국인의 평판도 가라앉고 있다. 반면 화웨이의 경우 미국에 대항하는 자국 기업이라며 오히려 국내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는 등 올해 2/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 대수는 삼성을 처음으로 제치며 세계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이제는 기업 간 경제전쟁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판단에 기업의 생사가 갈리는 정치와 경제가 혼합된 하이브리드형 무역전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세계는 이처럼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인 의사결정들이 유례없이 만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비전통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경제 정상화에 노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비전통적인 경기대책보다는 여전히 비정상적인 국익 우선주의로 인한 경제차단 효과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든다.올해 전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에 투입한 자금은 무려 20조 달러(약 2경 3천64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20%에 상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그리고 비전통적인 재정, 통화정책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비전통적 수단인 양적 완화 정책의 의도는 한 지역이나 국가에 자금을 무제한 공급해 일정 수위가 넘게 되면 그 자금이 마치 댐에서 흘러넘쳐 흐르듯이 각 경제주체 전체로 파급되는 낙수효과에 있다. 이와 같은 낙수효과는 때로는 특정 국가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와 국제무역을 통해 이어지는 다른 나라까지도 경기 자극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각국이 동시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자금이 투입됐는데도 각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데는 다른 것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내수보다는 해외시장이 주 무대인 제조기업체들이 많다. 해외시장으로 이어지는 나라와 나라 간 연결된 다리 자체가 끊어진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낙수효과에 기대 물이 흐르듯이 순환되는 효과가 국제무역에서 이뤄지지 못함은 당연하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만들 돈이 부족하다면 몰라도 물건 자체를 만들어도 그 판로가 막혀있는 상황에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순환은 이뤄지기 힘들다. 상대방이 문을 꼭꼭 닫아걸고 있기 때문이다.앞으로도 이러한 현실이 쉽게 타개될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의 회복 시기는 예상보다 더욱 지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자칫하면 지역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 모두 그 유명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모하비(Mojave) 사막에 있다. 지난 8월 16일 오후 이 ‘죽음의 계곡’에서 측정된 섭씨 54.4℃는 전 세계의 관측 사상 최고 온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물론 이 ‘죽음의 계곡’에서는 이미 1913년 섭씨 56.7℃가 관측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 기상학자들은 당시 관측자가 실수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여하튼 이 죽음의 계곡이 그만큼 인간에게 위협적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기술창업이나 벤처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해 성공적으로 시장까지 진출하는 동안 넘어야 할 두 개의 난관에 비유하기도 한다. 기술 씨앗을 이용하여 제품을 개발하고, 시제품을 제작하여 사업화하기까지 약 5년에서 7년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사이에 자금이 고갈되는 ‘죽음의 계곡’을 만나 무너지는 기업이 그만큼 많음을 의미한다. 어찌어찌 살아남더라도 이번에는 ‘다윈의 바다(Darwinian Sea)’라는 무시무시한 포식자들이 즐비한 냉혹한 시장이 기다리고 있다. 송사리에 불과한 중소벤처기업이 약육강식의 세계시장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것은 무척 험난하기에 이를 두 개의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의 계곡’이나 ‘다윈의 바다’가 벤처나 기술창업 기업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로 인해 지금 지역 내 대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은 물론 직장을 잃은 가계까지 모두 각자 나름의 ‘죽음의 계곡’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들 뉴노멀이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올 것이므로 이에 대비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코로나19가 먼저 종식된 이후의 이야기다. 게다가 올해만 하더라도 9월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 10월 미국 외환보고서 발표,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의 하나인 5중전회가 예정돼 있다. 또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선거, 12월에는 일본의 헌법개정, EU 정상회담 등 세계 각국의 중요정책이 결정될 굵직한 정치 일정이 즐비해 어떠한 기상천외한 정치적 판단이 세계 자유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비이성적, 비정상적인 조치들을 탄생시킬지 우려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죽음의 계곡’에 갇혀 비가 오기만 기다려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이 ‘죽음의 계곡’을 어찌어찌 건너더라도 새로운 비대면 비접촉 시대를 맞이하여 또 다른 위험인 ‘다윈의 바다’와 부딪칠 위험도 염두에 둬야만 한다.어떠한 위기에도 기회는 있겠지만 기다리는 것만으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언제나 기회는 준비한 자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들은 헬스장을 가지 못할 때 맨몸운동이라도 하며 체력을 기른다고 한다. 경제회복 속도가 늦어지는 동안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코로나19 이전에도 분명 자기 기업, 상점 등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약점을 보완하며 체력강화나 체질 개선에 힘쓸 때다. 경제회복이 언제 될지 앞이 막막한 이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맨몸운동이라도 하자.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8-23

지역 문화예술과 전통공예를 살리자

최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코로나19의 백신 개발에 나섰으나 일단은 러시아가 한발 먼저 내디딘 모습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이 백신이 공인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주요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듯이 과연 러시아 의료산업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백신 개발임을 증명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국익을 우선한 또 다른 웃음거리의 하나로 끝날 것인지도 함께. 이와 별개로 세계 각국의 정책당국자들은 여전히 자국의 경제회복과 고용 창출에 모든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어떤 국가나 지역이든지 모든 분야에 걸쳐 총체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되면 지원대상에서 가장 뒷전에 놓이는 분야가 있다.어쩌면 아예 머리에서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음악, 전통공예, 미술, 역사나 국학연구, 문학 등 해당 국가나 지역의 정신문화와 연관성이 깊은 문화예술, 인문분야다. 일반적으로는 의식주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서야 국악이나 판소리와 같은 민족 예술 공연에 눈을 돌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향토사 등 인문분야를 살펴보게 되며, 전통공예나 현대 작가들의 미술작품 전시회를 둘러보며 소장 욕구를 키우기 마련이다. 현대 물질문명 사회에서 정신문화가 밀리는 것은 그만큼 삶의 여유를 찾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당연히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국가 경제 전반의 위기상황에서는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문화예술 분야가 큰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국가나 가계가 부유하더라도 문화예술, 인문분야에 대한 수요는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체질적으로 문화예술의 소비는 사람들이 모여, 접촉하고, 대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인데 비대면, 비접촉과 더불어 이동 자체가 제한되는 이번 사태는 문화예술인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실제 일본의 전통문화예술계는 최근 그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본 전국에서 전통공예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367개 사업체 가운데 지난 4월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0% 이상 줄어든 업소가 56%에 이르며, 이들 중 약 40%는 폐업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그동안 이들 대부분이 백화점, 특급호텔 등의 유통망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 더욱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된다. 매출 수입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지속되면 경영악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 전통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 대부분이 고령이고 후계자가 부족하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들은 독자적인 판매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경제회복이 지연되면 결국 폐업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사실 우리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당장 포항지역만 하더라도 그동안 자생적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젊은 문화예술인들이었지만 후계자를 키울 정도의 여력은 없어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만 있다. 국악, 수묵화, 전통공예, 판소리 등을 이어가고 있는 지역의 문화예술인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들도 허다하다. 지역 문화예술인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은 앞서 언급한 일본의 사례보다 더욱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더구나 소수이긴 하겠지만 지역의 전통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과 애향심만으로 스스로 호구지책을 마련하면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후계자 후보들은 거의 중도에 포기할 생각을 심각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포항시가 문화예술교육 거점으로 선정된 것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들에게 작용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포항시가 진정한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지원, 특정 기업의 메세나 활동, 일부 관계자의 기부 행위만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문화예술은 돈으로 사면 생산공장이 돌아가면서 활성화되는 물질문명이 아니라, 정신문화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 경기가 좋고 성장 단계에서 가계의 소득이 지속 증가하던 시기에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문제점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경제 성장 단계에서는 축적된 재산을 이용하여 고미술품부터 전통 회화, 전통공예품은 물론 현대 작가의 작품을 불문하고 일종의 투자 등의 목적으로 관련 소비가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도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국악이나 판소리 공연의 관람부터 전통도예가의 작품이나 현대 화가 미술작품의 전시회관람, 작품구매 등 다양한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위기에 닥치면 상황은 급변한다. 문화예술의 소비자 가운데 허영이나 과시 목적의 소비계층이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다. 기업이나 단체의 메세나 활동을 위한 예산도 경제위기에서는 축소 내지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평소 지역의 정신문화나 인문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뜻있는 애호가인들 도리가 없다. 당장 생계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이러한 현상이 한꺼번에 몰리면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생각지도 않던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이번 위기를 계기로 지역 문화예술계도 고령화의 진전, 후계자 부족,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유통부문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일 것이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자체나 단체에서 지역 문화예술인을 보호하여 지역 고유의 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연예술, 전통공예품, 회화나 조각 등의 소비자와 공급자를 중개할 수 있는 ‘시장’ 예를 들어 온라인중개사이트를 구축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공연이면 공연기관의 포스터나 안내, 전시회면 전시회를 개최하는 미술관의 홍보만이 유일한 시민과의 소통 채널이다. 문화예술인 자신들도 그동안 스스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전통공예작품이나 예술작품을 오직 오프라인의 전시회를 통해 직접 구매자와 대화하고 교류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생산하는 공연예술이나 전통공예, 문화예술 서비스는 미술관, 공연장 등과 같은 ‘공간적 장소’를 통해서만 가능한 수준 높고 차원이 다른 예술이라는 자존감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실제 고미술품이나 골동품과 같은 문화재급의 예술작품들도 카탈로그나 화상을 통해 수십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금액이 경매로 거래되기도 한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작품을 온라인 전시하고 택배 배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문화예술작품이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판매되어야만 수준 높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며, 택배로 주문 판매되는 작품이라고 해서 문화예술작품의 품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문화예술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편하게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포항이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행정기관의 지원만 바라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시민 한 사람당 단돈 천 원이라도 들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의 작품 하나를 소장하기로 하자. 비대면 시대인만큼 자기 동네부터 살펴보자. 커피숍에서 모인 시민들이 자신이 최근 구매한 작품이나 만나본 지역 문화예술인의 작품세계를 거침없이 이야기하게 되는 순간 포항은 진정한 문화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17

중고물품 거래시장의 성장조건

최근 세계적으로 온라인 중고품 거래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유럽과 같이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앞섰던 지역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보유하고 있던 오래된 물건 이른바 ‘중고물품’들이 지역마다 자연스레 생겨난 벼룩시장(flea market) 등에서 거래된 지 오래다. 그런 관계로 이들 지역 주민들은 오프라인 장터를 통해 남들이 입었던 헌 옷, 헌 가방이라고 꺼리기 보다는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물품을 누군가가 다시 소중하게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벼룩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의 거래 당사자를 만나 각자 물품에 담긴 에피소드를 말하거나 듣는 즐거운 힐링의 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성을 지니면서 명물이 된 벼룩시장은 유럽을 관광하는 여행객에게는 일부러 찾아가는 관광명소로 변화하기도 하였다.반면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그와는 다소 다른 흐름을 탔다. 두 나라 모두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당시에는 국가 경제와 가계 경제가 동반 성장을 이루었다. 그 성장기의 주역이었던 베이비 붐 세대들은 가계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집, 새로운 자동차, 새로운 가구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다. 가계의 자산축적이 증가함에 따라 모두가 좀 더 좋은 새로운 주택, 신형 자동차, 신형 가전 등을 마련하는 것이 중산층에 진입하였음을 인증하는 것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일본과 우리나라 모두 비슷한 사회현상을 겪는 과정에서 중고주택, 중고자동차, 중고가구 등의 거래도 점차 활성화되었지만 유럽에 비하면 그 역사가 길지는 않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신변잡화 등 개인들이 사용하였던 중고물품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의 체질전환이 주된 요인이다. 고도성장기의 일본과 우리나라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를 경험하였다. 국가나 지역 경제가 고도성장하는 단계에서는 과거 수요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기존 공급처의 생산시설이 완전가동상태라도 미처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금과 달리 청년사회였고, 인구도 증가하는 사회였기에 신혼 가정, 출산에 따른 새로운 육아 환경이 필요한 양육가정 등이 증가하면서 각종 신혼살림 수요와 주택 수요, 그리고 자녀와 함께 이동하기 위한 큰 자동차의 필요성 등 신규 수요가 계속 창출되는 선순환을 일으켰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 일본과 우리나라 모두 과거처럼 상대적 후진성을 무기로 선진국들이 닦아놓은 길을 이용하는 따라잡기만으로 성장이 가능하였던 시기는 지났다. 과거보다 더욱 많은 연구개발투자를 하더라도 신기술, 신제품의 이익을 회수할 수 있는 유효기간은 중국, 베트남 등 신흥개도국의 따라잡기로 인해 계속 단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인구사회구조도 고령화되고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상속시장도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과거 부모세대가 애지중지하면서 볼 때마다 과거의 추억을 연상시켜주었던 감성의 중고물품들이 그 자녀세대들의 눈에는 그저 오래된, 쓸모없는, 부모들 시대의 아날로그형 옛날물건에 불과하고 지금은 더욱 새롭고 좋은 디지털시대이기에 그저 생활공간만 차지하는 불필요한 물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자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유럽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중고품 거래시장이 자연스레 형성되기 시작한 셈이다. 게다가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전국은 물론 전 세계로도 연결되는 인터넷 시대여서 중고품 거래시장이 온라인세상으로 진입하면서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중국에서도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프라인의 벼룩시장보다는 바이두(百度) 등을 통해 중고물품거래 플랫폼을 검색하는 주목도가 급상승하고 관련 사이트의 거래량도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 경제도 고도성장기에서 중저속 성장기로 이행하는 이른바 ‘신창타이(新常態, new normal)’를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2019년도 중국 중고전자상거래 발전보고’에 따르면 현재 온라인 중고품 거래의 주요 이용자는 18세부터 34세의 청년층이고, 그 가운데 31.0%가 독신이며, 남녀 구성비는 4:6으로 고른 분포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고시장 이용자 관찰보고’에서는 중국인의 중고품 거래 수용도가 최근 2년간 급성장하였는데 응답자 70% 이상이 주 1~2회는 중고품 거래를 한다고 응답하였고 90%는 향후 1년 이내에 중고품 거래예정이라 응답하였다. 최근 인민일보 인터넷판에서는 이와 같은 온라인 중고물품거래시장을 통해 개인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단순히 물건의 판매만이 아니라 그 거래를 계기로 새로운 동호회 활동이나 취미활동에 유용한 자료나 물품들을 주고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일본에서는 2018년 개인과 개인 간의 중고품 거래를 온라인에서 할 수 있도록 시장을 제공하는 플랫폼인 메르카리(mercari)가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기업공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신주발행일 첫날 메르카리의 주가는 77%나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6천878억 엔(약 7조 7천465억 원)을 넘어섰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에는 100년 이내의 물건이라 하더라도 앤티크(antique)로 분류하며 귀중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골동시장을 제외한 미국의 개인 간 중고물품 거래시장의 규모는 무려 약 337조 8천84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에서 시계, 가방과 같은 고가의 중고 명품전문 사이트인 더리얼리얼(therealreal.com)은 상장 첫날 주가가 44.5%나 상승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시장투자가들도 온라인 중고품 거래시장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와는 다소 다른 것이 유감이다. 정보통신기술의 선진국답게 인터넷을 통한 거래사이트가 출범한 역사는 짧지 않다. 중고 자동차, 중고 서적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온라인중고거래 사이트가 태어나고 또 사라졌다. 포털이나 옥션 등이 운영하는 중고거래사이트까지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태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제는 중고물품거래에서 해당 플랫폼들이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 사례처럼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정도로 높은 신뢰성과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중고거래 그중에서도 직접 물품을 보지 않고 화면이나 동영상만을 보고 판매자가 설명한 그대로의 물품이 제대로 배달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에는 시기상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 코로나19에 따른 영향은 온라인 중고거래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대면, 비접촉에서도 믿을 수 있는 상호 신뢰성부터 확보해야만 한다. 단지 사이트 운영자가 회원가입 과정을 통해 개인 대 개인의 거래플랫폼을 제공할 뿐 거래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선언을 공시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소한의 신뢰성을 갖춘 온라인거래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이용자도 감내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거래 당사자 모두 실명인증부터 불공정 거래가 발생하면 해당 사이트에서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전 보증금 예치제도, 거래조건과 무관한 구매자의 거래 취소에 대해서는 노쇼 페널티와 유사한 벌과금부여 등 플랫폼운영자들이 책임지고 오프라인거래시장에서 가능한 부분들을 최대한 확충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