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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항경제와 포스코의 상생 조건

지난달 21일 포스코가 2/4분기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기업활동의 결과가 적자라는 것은 큰일이지만 그것이 과연 특별한 일시적 충격으로 인한 현상인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앞으로도 지속성을 가질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당연히 이에 따라 포항 광양 등 포스코가 자리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적자를 기록하였다는 소식에 포항시민들이 걱정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포스코가 그 정도의 적자로 그친 것은 선방한 셈이다. 이번 적자는 분명 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로 인한 일시적 요인이라 할 수 있겠지만, 글로벌 철강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더 크다. 이번에 글로벌 철강회사들이 다각적으로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기록한 데는 크게 3가지 요인 때문이다.첫째, 코로나19가 전 세계의 문제로 확대되기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그에 따른 영향에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과 ‘셧다운’의 영향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요침체로 국제무역의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조선, 자동차 등 물류 관련 수요가 크게 타격을 입은데다 불확실성 증대로 인한 투자 부진은 건설업과 기계 등 제조업까지 이어지면서 철강산업의 4대 전방산업에 대한 수요부진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영향이 가장 컸다. 둘째, 전 세계 조강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철강업계가 국제간 협의 등으로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대한 감산 방침을 암묵적으로 지켜왔었으나,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격화되면서 경기 감속을 우려한 중국의 내수부양정책에 힘입어 자제해왔던 과잉생산의 고삐가 풀렸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급과잉은 필연적으로 중국 국내 강재 시장의 경쟁을 가열시키면서 철강재 시황을 악화시키고 이것이 국제철강재 가격을 하락시키는 도미노 현상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생산량과 매출량을 기록하더라도 손안으로 들어오는 매출액 자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포스코가 수년 전 많은 수익을 내었던 것과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셋째, 두 번째 요인과도 관련이 깊은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철강회사들이 생산물량을 감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생산을 재개하기 시작함에 따라 소요되는 철광석 등 원자재 수요로 인해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따른 국제철강재 시황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철광석 등을 이용하여 철강을 생산하는 고로업체는 생산량과 수출량 등 모든 조건이 같은 상황이라도 매출액은 줄고 생산원가는 올라가기 때문에 당연히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포스코의 이번 적자는 이처럼 수요부진, 공급과잉 그리고 원가상승이라는 3중고를 겪는 글로벌 철강사들의 공통적인 경영악화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철강회사 최고경영자의 능력이나 경영전략 등이 영향을 미치는 기업 내부요인과는 전혀 무관한 외부요인 또는 세계철강업계가 지닌 고질적인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포스코가 이번 2/4분기에 기록한 영업이익 적자 규모는 1천85억 원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적자는 글로벌 철강사와 비교하면 오히려 자랑할만한 실적이다. 일본의 글로벌 대형 철강 3사는 본격적인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이 나타나지도 않았던 2019년도 3월 말 결산에서 모두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적자 규모는 각각 일본제철(신일철주금이 2019년 4월 상호 변경)은 4천315억엔(약 4조8천112억 원), JFE는 1천977억엔(약 2조2천044억 원), 고베제강은 680억엔(약 7천582억 원)이었다. 물론 기업 규모 등 체급 차이가 있기는 하나 세계 조강생산 5위인 포스코의 체급이 작지는 않다. 지금처럼 전 세계 철강업계가 3중고를 겪는 상황에서 포스코가 글로벌 철강사보다 상대적으로 경영성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증거다.다만 그렇다고 해서 포항이나 광양과 같은 포스코가 자리한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포항지역 경제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철강업이며, 이 철강업과 연동되는 운수업, 건설업 등이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업계가 어려운 원인이 조선, 자동차, 건설, 기계제조 등의 수요 감속으로 인한 것인데 지역 철강업의 부진은 다시 지역 건설, 운수 등의 부진으로 파급되기 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포스코는 글로벌 회사이므로 그 적자의 여파가 세계적으로 분산될 수 있지만, 포항시의 입장에서는 최대의 어쩌면 유일한 경제 엔진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그 영향의 정도를 최대한 낮출 필요가 있다.문제는 앞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 성공적으로 개발되고 모든 경제활동이 정상화된다고 하더라도 철강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여건까지 빠르게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이번 적자의 3대 원흉인 수요부진, 공급과잉, 원가상승 가운데 자동차, 운수, 건설 등의 수요가 다소 개선되더라도 중국발 공급과잉에 따른 매출액 감소요인과 철광석 가격 등 원가상승문제는 과거 사례를 볼 때 단기간에 정상화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전 세계 조강생산량은 연간 약 20억 톤에 근접하는데 이중 절반 수준인 약 10억 톤을 중국 철강업계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 국내의 경기부양, 미중간 무역전쟁 등 다양한 여건이 중국 철강회사들의 생산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때문에, 중국 현지에서 벌어지는 활발한 생산활동에 따른 철광석 등 원자재 수요로 인한 원가상승요인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거기에 과잉생산으로 인한 중국 국내 강재 가격의 하락은 국제철강재 시황을 계속 악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국제유가하락에 따른 셰일오일 등 유정용 강관에 대한 수요를 포함한 세계 전체의 철강 수요도 완만하게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국의 국내 철강 수요가 활력을 보일수록 중국 국내 철강업계의 생산과잉 현상은 이어지기 쉽고, 반대로 중국 국내 철강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이들이 과거처럼 또다시 저가의 덤핑물량을 세계수출시장에 쏟아내며 철강재 시황을 악화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 국내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수요부진에 따른 국내 철강생산량에 대한 조절을 위해 일본 철강사들도 자체적인 감산에 나서고 있다. 일본제철은 지난 4월부터 전국 15기 고로 중 6기를 일시가동 중단(조업정지 포함)하기로 결정하였다. JFE도 2024년 3월 말까지 총 3기를 일시가동 중단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이들 3사는 내년 3월 말 결산기에도 흑자 전환이 어려울 전망이다.그동안 포항경제는 포스코와 동고동락 해왔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건 포스코에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포스코를 평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진정한 지역기업과 지역경제의 상생은 일방통행만으로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때로는 손잡고 때로는 각자의 발걸음이 보장되어야만 상생이 시작될 수 있다. 포항경제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언제든지 예기치 않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어떠한 외부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지역 내 모든 경제주체가 포스코와 무관하게 각자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갖추게 된다면 그때부터 비로소 지역 경제와 포스코의 진정한 상생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8-02

일본의 고투(Go To) 캠페인을 보면서

최근 일본이 들썩이고 있다.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8월 상순경부터 실시하려던 ‘~하러 가기(Go To) 캠페인(이하 ‘캠페인’)’을 오히려 지난 22일부터 앞당겨 강행했기 때문이다. 이번 캠페인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회복 대책의 일환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예정됐던 도쿄올림픽의 연기와 국내 감염자 증가로 큰 타격을 입은 여행, 운수, 숙박 및 이벤트 관련 업종에 대한 수요 환기가 주요 목적이다.이 캠페인은 크게 ‘여행 가기(go to travel)’, ‘먹으러 가기(go to eat)’, ‘(행사나 축제 등) 이벤트 가기(go to event)’의 세 사업으로 구성된다.처음에는 이 세 사업을 동시 추진하려 했으나 여러 문제가 얽히고 여행업계의 요청도 있어 ‘여행가기’부터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 캠페인을 통해 일본 국내 유동인구의 흐름을 만들어 관광, 운수업, 음식업, 이벤트업, 엔터테인먼트업 등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피폐해진 각 지역의 경제를 다시 살려보겠다는 의도다.8월 상순께부터 시행 예정이던 이 캠페인을 앞당긴 것도 올림픽 연기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 정부는 올해만 한시적으로 도쿄올림픽 개막에 맞춰 7월 23일부터 이어지는 4일 연휴를 만들었다. 7월 셋째 주 월요일(7월 20일)인 ‘바다의 날’을 올해만 7월 23일로 옮긴 다음 1964년 도쿄올림픽 개막일(10월 10일)을 기념해 제정된 ‘체육의 날’(10월 둘째 주 월요일)도 올해 올림픽 개막일(7월 24일)로 옮기며 ‘스포츠의 날’로 이름까지 바꿨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도쿄올림픽이 연기되면서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 연휴만 남았다. 7월 24일 개막됐을 도쿄올림픽 개막일을 포함한 연휴를 이용할 계획이었던 국내 여행수요를 활용할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일본 정부도 이번 캠페인의 여행비보조 대상 지역에서 도쿄를 긴급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를 제외하는 결정 직전까지 1주일 동안 도쿄의 누적 확진자가 무려 1천216명으로 치솟아 전국 각 지자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일본 정부가 이번 캠페인을 위해 마련한 추경예산은 1조6천794억 엔(원화 환산 약 18조7천253억 원 상당)에 달한다. 그중 약 1조1천억 엔은 여행금액의 최대 절반 상당액을 지원하는 ‘여행 가기’에, 나머지 예산은 여행지 음식점 식사비의 20% 상당액을 지원하는 ‘먹으러 가기’와 각종 이벤트 등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한 비용의 20%를 지원하는 ‘이벤트 가기’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여행가기’를 제외한 두 개 사업은 민간 위탁기관을 공모(또는 공모 예정)하여 시행할 예정이다. 당장은 22일부터 출발하는 국내 여행객에게 여행비용 반액을 지원하는 사업부터 예산이 집행될 예정이다. 1인당 1박 2만 엔을 상한(당일치기 여행은 최대 1만 엔)으로 지원액의 70%는 여행 대금 할인에, 30%는 여행지에서 지역 특산품이나 선물 구입 등 여행 동안에만 사용 가능한 ‘지역공통상품권’으로 충당된다. 지역공통 상품권은 준비 기간이 필요하여 9월 이후에나 지급할 수 있어 그때까지는 여행 대금 할인 지원금 혜택만 받을 수 있다. 이번 캠페인에는 1인당 숙박횟수나 이용횟수에 제한이 없다. 한편 JR동일본도 이러한 분위기에 맞추어 8월 20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모든 방면에서 출발하는 신칸센과 일부 특급열차에 대해 인터넷 예매가격의 50%를 할인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이 캠페인에 대한 대국민 설문 조사 결과 이 캠페인에 대한 인지도는 응답자의 29.1%에 불과했다. 그만큼 정부 정책의 결정과 시행이 빨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용을 설명한 후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87.5%에 달했다. 하반기에 여러 번 여행을 생각한다는 응답도 78.6%였으며 최대 절반을 지원받는다면 평소 하지 못했던 고급호텔 등을 이용하는 호화여행을 하고 싶다는 답변도 많았다. 이용횟수가 무제한이고 장기체류형 여행자에게 반액을 지원해준다는 이 캠페인에 대해 일본인들의 국내 여행수요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문제는 지금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고 감염경로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일본에서 이번 캠페인이 오히려 감염자의 전국 확산을 부채질할 위험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벌써 도쿄에 거주하는 시민 중에는 일단 도쿄를 벗어난 외곽에서 출발해 도쿄를 거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여행계획을 세워 우회적으로 이 캠페인의 혜택을 보겠다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캠페인 지원대상 지역에서 도쿄가 제외됐다고 도쿄 거주민이 얌전하게 도쿄 내에서만 머물고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이에 대해 일본 정부도 무대책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이 캠페인에 참가하려는 숙박사업자에게는 접수 데스크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숙박객 전원에게 체온을 검사토록 하며, 목욕탕이나 식당 등 공용시설에서는 입장 인원과 이용시간을 제한하며, 뷔페식당의 식사는 원칙적으로 개별제공하도록 하는 감염확산 방지대책을 의무화하였다. 당연,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업소는 숙박 보조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22일부터 앞당겨 시행하게 되면서 숙박업소 등에서는 자신들이 지원대상 업소인지를 묻는 고객들에게 확실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혼란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도쿄에서 발착하는 여행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방침만으로 각 지역으로 감염이 확대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정부가 너무 낙관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비난하거나, 도쿄시민들 일부는 모두가 똑같이 세금을 내고 있는데 도쿄 거주민에게만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여행횟수나 숙박일수에 제한이 없어 선착순형태로 예산이 소진될 때까지만 캠페인이 유효할 가능성도 크다. 어쩌면 뒤늦게 여행을 계획한 사람들이 무리하게 호화로운 장기체류 여행에 나섰다가 예산 부족으로 지원받지 못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일본만이 아니라 각국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사실 정책의 효과는 조기에 증명할 수도 없다. 그러하기에 정책입안자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그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영향을 충분히 검토한 다음 시행하게 된다. 하지만 어떠한 정책도 최우선 기준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록 다운’된 것도 결국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아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절대 명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본의 캠페인은 경제에 좀 더 무게감을 둔 느낌이다. 사실 스페인이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후 적극적으로 록다운에 나서지 않은 것도 경제를 우선한 위험한 발상이었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고 경제도 역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였다.경북도나 포항시 등 지자체들도 경제회복을 위한 정책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일본의 실험적인 캠페인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시민들의 안전, 생명,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절대 명제만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어떠한 것을 ‘~하자’라며 내모는 정책이 아니라 ‘~어떨까?’를 물어보면서 비록 느리더라도 모두가 안전한 정책을 우선하였으면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7-26

솔로 경제(Solo Economy)가 돌파구다

현대 산업사회는 지금까지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로 발전해왔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각 산업에서 생산시스템은 자동화되고 대량유통과 소비를 담당하는 백화점, 마트 등도 규모의 대형화를 경쟁하는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처럼 대량화나 자동화로 비용을 절감하거나 효율성을 증대하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오직 혁신과 창의를 기반으로 새로운 소재, 기술, 제품을 내어놓아야만 한 발자국 앞서 나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과거에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표준화되고 다 같이 비슷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이제는 개성적이고 다양성이 보장되며 조금이라도 남과 다른 소수를 선호하며 작지만 강한 것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유독 경제부문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도 아니다. 인구사회구조도 인간의 수명이 점차 연장되는 한편 저출산이 일반화되면서 무조건 남녀가 흔히 ‘결혼적령기’를 맞이하면 어떻게든 결혼을 하고, 결혼한 부부라면 아이가 있어야만 했으며, 노부모를 모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던 시대는 교과서에나 실리는 상황이 되었다. 은퇴 이후 ‘황혼이혼’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하지 않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현상이 1인 세대 또는 1인 가구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총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있는데도 총 세대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세대수의 증가는 결혼으로 인한 분가도 있겠지만 청년, 고령자를 불문하고 1인 세대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최대 원인이다.이처럼 1인 가구 속칭 ‘싱글족’이 증가하는 것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인구 대국인 중국의 경우에는 내년쯤이면 1인 가구가 1억 명에 근접한 9천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국의 총인구(약 14억4천만 명) 대비 1인 가구 비율은 약 6.4% 정도에 불과하나, 이 수치는 우리나라 인구 전체의 2배가 넘는다. 중국의 1인 가구의 존재감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다. 일본도 현재 총 5천300만 가구 가운데 3분의 1이 1인 가구로 파악되고 있으며 2035년경에는 이 비율이 40%에 달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현재 총 2천34만 가구 가운데 1인 가구는 약 30.3%에 해당하는 616만 가구로 추계되고 있다. 경북도는 전국 평균보다도 높아 전체 110만 가구 중 37만 가구가 1인 가구로 약 33.4%를 기록하고 있다.이처럼 세계적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됨에 따른 인구구조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 외에도 소득 격차가 확대되는 등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결혼연령이 점차 늦어지는 만혼율의 증가, 과거와 같은 백년해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정도로 증가하는 이혼율 등 인구요인 외적인 요소를 꼽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1인 가구의 증가 요인은 대체로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인간이 장수하게 되면서 1인 생활의 확률이 높아졌다. 1인 생활자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가 된 경우가 많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리츠메이칸 초빙교수는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이 장수할수록 홀로되기 쉬우며,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마지막에는 혼자가 된다면서 고령자가 1인 생활을 어떻게 실용적으로 해낼 것이며, 어떻게 체면을 차리고 우아함을 유지할까를 다루기도 하였다.둘째, 다양한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상호 인정되면서 홀로 생활하는 것이 전혀 특이하지 않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적령기에 혼자 생활하고 있는 ‘노총각, 노처녀’가 큰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사별하여 홀로 생활하는 ‘일편단심’의 고령자에게도 그것을 그대로 보지 않고 ‘홀아비, 과부’와 같은 표현으로 무언가 부족한 사람인 양 치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혼자만의 생활을 전혀 꺼리지 않는 이들을 과거에는 ‘독신주의자’라는 별칭이 있었을 정도로 특이한 취급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셋째, 과거와 달리 홀로 지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시장이 존재하고 서비스가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 뉴욕대 교수는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와 혼자 살기의 매력’이라는 저서에서 솔로 경제(solo economy)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과거와 달리 시장에서는 발 빠르게 1인 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는 다양한 제품, 서비스가 출시된 지 오래다. 1인용 밥솥과 같은 주방 도구, 싱글족 대상 보험상품, 편의점과 마트에서 제공하는 간편하고 다양한 1인 가구용 식료품, 작지만 혼자 지내기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 원룸 등 주거공간의 다양화 등이 솔로 경제를 지탱해주고 있다.포항의 최근 흐름도 이와 비슷하다. 포항시 인구가 감소하는 데도 가구 수 자체는 늘어났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분양 세대수는 포항시 전 가구 수를 넘은 지 오래다. 물론 그 차이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수도권 등의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다른 지역 거주 투자가들이 그동안 큰 폭 하락하였던 포항지역 아파트를 매집하여 단기간 내 높은 수익을 노리는 갭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일부 요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 내에서 최근 수년간 쏟아진 은퇴 인력들이 자녀들 명의로 아파트를 마련해주기 위해 분가시킨 영향도 적지 않다. 포항지역 소비경제가 빠르게 회복하지 못하는 데는 그동안의 부동산 가격 하락 등에 따른 역자산효과와 더불어 몇 년 전 가장 높은 시세를 보였던 부동산 구매에 큰돈이 묶여 있는 데다 이처럼 자녀를 위한 자금 집행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이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최근 포항의 인구감소가 두드러지고 있는 데는 20∼30대 인구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주민등록을 부모의 거주지에 두었던 자녀들에게 아파트청약자격을 갖추도록 수도권으로 주소를 이전하여 1인 세대로 분가시키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앞으로 포항경제 전반에 걸친 주요 산업이나 다양한 업종의 소상공인들이 이 ‘솔로 경제’ 시대에 얼마나 순응해 나가는가에 따라 회복의 속도도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여 비대면 비접촉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리모델링을 생각하는 지역의 식당, 호텔 등은 절대적으로 이 흐름에 순응해야만 한다. 지역 농수산물 유통, 가공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굳이 포항, 경북이라는 좁은 지역적 영역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영일만항의 주요 노선에도 솔로 경제는 있다. 1억 명 가까운 중국의 솔로 시장은 보너스다. 포항의 모든 업태와 업종이 지역은 물론 외국시장까지 염두에 둔 1인용 먹거리를 생산, 유통하고 수출까지 하였으면 한다. 포항경제가 회복하기 위해서는 솔로 경제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7-19

포항의 인공지능에 팔, 다리도 달아주자

코로나 시대(with corona)와 그 이후 다가올 뉴노멀(post corona)에 대비하여 주요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화, 온라인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5G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예상외의 속도를 나타내고 있다.실례로 그동안 안면인식 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스웨덴의 비지쥐 테크놀로지(Visage Technologies)사가 기존의 안면인식(face tracking) 기술을 기반으로 화상 속 얼굴의 감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인공지능기술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은 화상 속에 나타난 얼굴을 구성하는 눈이 전하는 감정, 코와 입술 주변의 움직임에서 추출 가능한 감정 등을 종합하여 인간의 7가지 감정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화면에 수치로 나타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감정분석 인공지능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판단하는 핵심 데이터는 얼굴을 구성하는 눈과 코 주변, 입술과 턱 라인의 움직임이다.그동안 안면인식 기술로 수집한 감정 데이터를 활용하여 화상의 얼굴에서 추출되는 7가지 감정 즉 행복(Happiness), 슬픔(Sadness), 분노(Anger), 공포(Fear), 혐오(Disgust), 놀람(Surprise), 중립(Neutral)을 실시간으로 수치화해 화면에 보여주는 기술이다. 물론 인간의 감정이 중립을 제외한 6개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실제 비즈니스나 복잡한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하면서 이루어지는 화상 대화에서 이 기술이 큰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음성만으로 분석하는 기술에서는 평안, 분노, 기쁨, 슬픔이라는 4가지 감정만을 나타내고 있어 아쉽다. 앞으로는 화상의 감정분석기술에 음성분석을 통합한 복합적인 감정분석이 가능한 인공지능 기술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비대면 비접촉이 주류로 자리매김하려면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하지만 적어도 음성 전화나 문자 이메일보다는 영상통화와 화상회의, 동영상 자료 등이 더욱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직접 대면하는 의사소통에 비해 작은 크기의 영상화면에서 상대측의 감정을 이해하는 비대면 방식이 훨씬 비효율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와 같은 감정분석 인공지능기술은 앞으로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가령 직접적인 대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하고 인식할 때 자신의 감정변화가 심하면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무딘 남성들은 여성으로부터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눈빛이나 표정만으로 감정을 왜 알아차리지 못하냐며 혼이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에 따라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포착하여 인간보다도 더욱 객관적이고도 냉철하게 상대방의 감정변화를 수치화하여 알려주는 이 인공지능 기술은 많은 분야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앞으로 중요한 비즈니스와 관련한 고객대응 콜센터는 영상전화센터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고객의 불만을 접수하거나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중요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라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 상대방이 구체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영상이 보여주는 상대의 얼굴이 나타내는 분노 수치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함께 맞장구치며 상대방에 공감해줌으로써 분노를 가라앉힐 수도 있다. 슬픈 상태라면 단지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거나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도 있다. 앞으로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활약할 기술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기술이 탄생하더라도 역시 그 핵심은 얼마나 기계적인 분석시스템이 인공지능기술을 통해 융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만큼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의 확장성은 매우 크다는 이야기다.그러한 의미에서 지난 7월 1일 포항공과대학(postech)에서 인공지능대학원과 인공지능연구원을 출범시킨 것은 시대적 흐름에 100% 동기화되는 최적의 사건이다. 사실 포항은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인공지능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상당히 알려졌지만, 2005년 국내 최초로 포항에 지능로봇연구소가 들어설 때만 해도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은 그리 높지 않았다.당시 국내에서는 로봇이라고 하면 자동차 등과 같은 대량생산시스템에 적용되는 산업용 로봇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환경 속에서 출범한 포항의 지능로봇연구소는 우리나라 초기의 지능형 서비스 로봇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해왔다. 산불감시로봇, 의료보조로봇, 견마로봇 등 다양한 지능형 로봇들을 연구 개발하고 생산, 실용화하였다. 그러한 성과로 설립 7년 후인 2012년에는 우리나라 6대 국책로봇연구기관의 하나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으로 재탄생하였다. 포항의 KIRO는 국내 유일의 실용로봇 전문생산기술연구소로서 수중안전로봇과 같은 국가 로봇산업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포항이 2007년경 ‘로봇시티 포항’을 선포했던 것도 단순한 구호는 아니었던 셈이다. 미래의 지능로봇이 더욱 정확하게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어하는 것이 인공지능이다. 그런 까닭에 로봇의 두뇌를 담당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자들을 배출하기 위한 인공지능대학원이 포항에 설립된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인공지능대학원과 KIRO가 적극 협업하여 포항의 로봇산업 발전에도 큰 시너지를 발휘하였으면 한다.사실 이번에 출범한 인공지능대학원에 기대하는 것은 따로 있다. 사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이 특정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만 한다. 지금 포항경제가 어려운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 철강산업의 생태계가 완전체로 조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일종의 소재다. 이 소재를 활용하여 기계산업이 형성되고 또 그 기계들의 조립, 연계로 자동차, 조선, 중장비 등 최종재로 탄생하는 것이다. 포항이 이러한 순환과정을 모두 아우르는 진정한 철강 생태계를 갖추고 있었다면 외부충격이 발생하였을 때 포항경제가 받는 침체의 강도는 지금보다 훨씬 완화될 것이다. 이처럼 포항이 과거 미처 인식하지 못하였던 경험들을 이제는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앞으로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비대면, 비접촉을 중심으로 다양한 부문에 걸쳐 기술이 진전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인공지능이 특히 큰 역할을 할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을 굳이 산업생태계에 비추어 본다면 이 또한 일종의 소재에 해당할 뿐이다. 인공지능이라는 두뇌(소재)를 이용하여 그것에서 파생될 완성형의 최종적인 모습은 의료진단기기가 될 수도, 화상회의시스템이 될 수도, 국가재난예보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따라서 인공지능기술이라는 소재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공지능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최종형태가 무엇이든 사람의 눈과 코를 대신할 초정밀 카메라와 센서를 갖추고 보다 정확한 정보데이터를 수집해야만 제대로 된 인공지능이 활약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포항은 앞으로 인공지능대학원을 기반으로 그와 연계되는 각종 센서기술의 연구와 생산, 초정밀 카메라와 같은 정밀기계, 로봇의 내구성을 보장할 특수금속 소재와 정확한 관절 기능을 제어할 로봇공학 등 다양한 파생, 동반 기술들도 함께 연구하고 생산할 수 있는 복합적인 인공지능 기반 산업도 함께 키워야만 한다. 머리만이 아니라 팔, 다리도 필요하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7-12

포스트 홍콩이 싱가포르가 되듯이

그동안 시끄러웠던 홍콩이 마침내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지난 6월 3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전국인민대표회의(제13기 전인대) 상무위원회 제20회 회의에서 출석한 162명의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국가안전유지법(中華人民共和56FD香港特別行政533A56FD家安全維持法, 이하 홍콩안전법)’을 가결하였기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49호 주석령에 서명한 직후 공표된 이 홍콩안전법은 7월 1일 0시부터 시행되었다. 무려 150여 년 동안의 영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중국으로 반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역사적인 1984년 영국과 중국간 합의 당시 반환 이후 최소 50년간은 기존의 사법, 금융, 경찰, 관세 제도를 유지하기로 함에 따라 ‘1국 2제도’를 탄생시켰던 홍콩이었지만 1997년 7월 1일 반환일로부터 불과 23년 만에 그 약속이 깨어지면서 홍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유일한 홍콩 선출위원인 탄 야오쫑(譚耀宗)은 30일 회의 종료 직후 홍콩 공영방송(RTHK)과의 인터뷰에서 홍콩안전법에는 ‘사형’이 없다고 함으로써 종신형이 최고형임을 알렸지만 그때까지 금고 10년형이 최고로 알려지던 것보다는 처벌 수위가 대폭 강화된 모습이다. 법안은 홍콩에서 국가 분열이나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세와 협력하여 국가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핵심은 치안 유지를 담당할 ‘국가안전유지공서’의 신설이다. 일부 외신에서는 홍콩안전법이 조기에 성립된 것은 당장 오는 9월 6일로 예정된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를 대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홍콩특별행정구 구위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18개구 중 17개구를 차지하였으나 앞으로 이 홍콩안전법 조항을 악용 내지는 확대해석할 경우 범민주 진영 인사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출마자 심의과정에서 걸러져 아예 선거 참여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홍콩안전법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 간 대립도 점차 가열되고 있다. 이 법이 가결되기 하루 전인 6월 29일 미국 정부는 기밀기술의 홍콩 수출을 억제하는 조치를 발표하였다. 미국은 1992년 ‘1국 2제도’를 전제로 홍콩에 관세·투자·무역 등에 대한 ‘특별지위’를 부여하는 ‘홍콩 정책법’(Hong Kong Policy Act)을 도입, 시행해 왔다. 하지만 이 법이 폐기될 경우 홍콩은 중국 본토와 같이 품목에 따라 대미수출에 최고 25%의 징벌 관세를 부담해야만 한다. 윌버 로스(Wilbur Louis Ross Jr.)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수출 허가 예외 등 홍콩에 부여했던 특혜 규정이 중단”되었으며 “특별대우를 없애는 추가 조치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홍콩안전법으로 중국의 홍콩 지배가 강화될 경우 홍콩으로 수출되는 미국 기술이 중국군이나 국가안전부로 흘러 들어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홍콩에 관계되는 중국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비자발급 제한 조치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 자오 리지엔(趙立堅) 대변인은 6월 29일 정례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중국은 홍콩지구의 문제에서 악랄한 행동을 취한 미국인에게 비자발급을 제한할 것을 결정’하였다고 밝히며 맞섰다.이처럼 국제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홍콩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특별한 지역으로 기억되었던 곳이다. 1842년 ‘난징조약’을 계기로 영국 총독의 지배를 받았던 식민도시였지만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홍콩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1954년 고 금사향이 발표하였던 히트곡 ‘홍콩아가씨’는 6·25전쟁으로 상처를 입었던 많은 국민의 가슴속 아픔을 감싸준 경쾌한 치유의 노래였다. 1960-70년대까지도 비교적 부유층 여성들에게 홍콩은 그야말로 선진 도시였고, 쇼핑의 천국이었으며, 새로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환상의 도시였다. 여성만이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지금의 50대 남성들은 홍콩 영화의 전성기와 함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소룡의 당산대형, 정무문, 용쟁호투 등 무협 액션 영화를 필두로, 1980년대에는 성룡의 취권 등이,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홍콩느와르의 상징과도 같은 영웅본색 등 홍콩 영화가 국내 극장가를 휩쓸었다. 한때 홍콩은 우리나라와 대만, 싱가포르까지 합쳐 아시아의 4마리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국 반환 이후 우리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져가게 된 것도 사실이다.한편 홍콩의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제44차 유엔 인권이사회의 화상 연설에서 “홍콩 안전법은 법을 위반한 극소수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며 홍콩 거주 압도적 다수의 생명과 재산, 기본권, 자유는 보호될 것”이라고 강조하였지만 이미 국제 금융 자본시장의 흐름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과거 홍콩이 아시아의 국제 금융 허브로서 명성을 날린 것은 국제사회에서 영국령으로서 호주, 캐나다 등과 같은 선진국 지위를 부여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다. 50년간은 현행 체제가 유지될 것이라던 국제적 인식이 무너지면서 오랫동안 아시아지역 금융의 허브 역할을 수행했던 홍콩의 지위가 동반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포스트 홍콩의 지위가 싱가포르로 옮겨지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지역 사업거점의 본부를 홍콩에 두고 있었던 구미기업들이 그 기능을 싱가포르로 이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3일 발표한 설문 조사결과에서도 홍콩에서 사업 중인 미국기업 가운데 홍콩 안전법에 대해 어느 정도 우려가 30%, 매우 우려가 53.3%로 나타났다. 특히 조사대상 기업의 30% 정도는 홍콩에서 자본이나 자산, 사업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것을 검토한다고 답변하였다. 포스트 홍콩으로 싱가포르가 부상하는 데는 법인세율이 17%, 개인 소득세율이 최고 22%에 불과한 과세제도도 장점인 데다 중국어와 영어가 모두 능통한 사업환경 때문이다. 실제 6월 5일 싱가포르금융통화청(MAS)이 발표한 4월말 은행 비거주자의 예금 잔액은 전년 동월 대비 44%가 증가한 620억 싱가포르달러를 기록하였다. 이는 1991년 이후 최대 증가액이다. 싱가포르 민간은행의 외화예금도 대폭 증가하였다. 자본 유입의 진원지는 아마도 홍콩일 것이다. 이러한 자금 흐름에는 미국 등 구미기업만이 아니라 그동안 중국 본토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홍콩에 자본이나 자산을 두고 관리하고 있던 중국 부유층도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개인금융 회사인 크레디 스위스, UBS 등은 물론 헤지펀드 등도 홍콩 안전법 성립을 계기로 지난 수 개월간 활동거점을 싱가포르로 옮기면서 인재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포스트 홍콩으로 싱가포르가 부상하게 된 것은 즉각적인 어떠한 정책을 내세우거나 시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평소에 그와 같은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항도 미래지향적으로 조기에 지진 특별법을 기반으로 지역의 재생, 복구, 재건에 힘써 새로운 정주 환경을 만들고, 기업의 투자와 활동에 친화적이며, 외국인들이 큰 어려움이 없이 시내를 활보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국제 항만도시에 어울리는 기반을 꾸준히 정비해나갈 필요가 있다. 어떠한 사건이, 어떠한 충격으로 인해 포스트 홍콩의 대안으로 싱가포르가 부상되는 것처럼, 포스트 주거지의 대안으로 포항이 급부상하더라도 큰 무리 없이 인구나 기업을 수용할 수 있도록./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7-05

지역 호텔숙박업계의 브이(V)자 회복을 바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아직은 종식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외로부터의 입국자로 인한 확진자를 제외한다면 조금씩 진정되고 있는 모습이다. 단지 록다운 상태에서 기업 간 거래를 포함한 실물 수요가 제약되었던 분야라면 이후 완전한 브이(V)자 회복까지는 장담하기 힘들겠지만 엘(L)자 회복과 같이 수요 자체가 낮아진 상황이 계속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당연히 업태나 업종에 따라 회복되는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지만 그중에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분야도 분명히 있다. 그동안 교류하고 있던 다양한 모임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즐거움을 누리던 사람일수록 지금과 같이 속칭 혼밥, 혼술을 하며 홀로 지내야 했던 고통은 컸을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그동안 자유롭게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관광이나 여행이 취미였던 사람들이라면 작용과 반작용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브이자 회복의 형태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여행객과 관광객이 증가함에 따라 여행사, 호텔, 숙박업소 등의 업황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다.이미 지난 5월 중국에서는 노동절의 5일 연휴를 맞이하여 국내 여행 건수가 1억1천500만 건으로 올라갔다. 우리나라 주요 항공사의 국내편 운항도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베트남과 태국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별로 완화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에 이르러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태국, 홍콩 등과 같이 비교적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기 시작한 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호텔업계에서는 이에 대비하기 위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기고 있던 것들을 전면 재검토하여 본격적인 코로나19 이후에 다가올 뉴노멀 시대에 적합한 호텔 서비스로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 80개국에 영업망을 두고 있는 세계적인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업체인 미국의 존스랭라살(JLL·Jones Lang LaSalle)은 최근 서비스 분야의 최전선에 있는 호텔업계가 판데믹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발 빠른 진화를 시작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갑갑증을 겪던 여행자, 관광객들이 조금씩 몸을 들썩이기 시작한 시점에 맞추어 아시아지역 호텔업계들도 발 빠르게 서비스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고, 뉴노멀 시대에 어울리는 호텔로 진화하기 위해 호텔설계까지도 바꾸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존스랭라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호텔들의 공통적인 변화 사례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안전조치를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 프런트와 뷔페 등과 같이 여러 숙박객이 밀집되기 쉬운 서비스 분야에는 투명한 아크릴수지를 이용한 칸막이를 설치하는 한편 호텔 바에서의 좌석 거리를 1미터 이상 간격을 두도록 조정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뷔페식당에서는 손님들의 이동 경로 등과 연관되는 메뉴의 재배치, 비접촉을 보장하는 메뉴의 구성, 식당 테이블 등의 배치 조정 등 최대한 숙박객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특히 존스랭라살은 앞으로 호텔업계에서는 손님들 간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혼잡한 시간대에는 화물용 승강기를 손님용 승강기로 증편시킨다거나 클럽 라운지 면적의 확장, 그리고 주요 행사용 공간은 대형보다는 소규모 단체용으로 조정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아예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가구, 표면 소재 등도 청소나 소독이 손쉬운 코르크 등과 같은 항균성 소재를 선호하게 될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게다가 일일이 호텔 직원들과 대화가 필요했던 서비스부문에는 키오스크와 같이 셀프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바뀔 것으로 보았다. 실제 코로나19 경증환자가 투숙하였던 일본 도쿄의 호텔에서는 객실에 격리된 환자에 대한 룸서비스 제공 등에는 인형 로봇, 사람의 출입이 제한되는 구역에서는 청소 로봇 등을 도입하였다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앞으로는 로봇은 물론 스마트소독 화장실, 객실 소독용 세균 감지 자외선 스캔 등 다양한 첨단기술의 도입도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이러한 움직임은 경북 지역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급호텔이 밀집된 경주 보문단지, 여름철이면 성수기를 맞이하는 울릉도는 물론이고 해수욕장과 연동되는 울진에서 영덕, 포항, 경주로 이어지는 경북 동해안 바닷가의 해수욕장과 연동성이 높은 상인들도 최대한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그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호텔업계는 가장 간절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던 지난 1월 중순 이후부터 최근까지 지역의 모든 업종에서 피해가 발생하였다. 그중에서도 호텔업계는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경북 동해안 지역 특급호텔의 지난 3월 신용카드매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98.4%, 기타 호텔은 마이너스 77.6%, 일반숙박업소는 마이너스 49.5%, 콘도도 마이너스 48.6%를 기록하며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뿐 아니라 호텔의 숙박객이 줄어들면서 호텔 로비를 비롯한 호텔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뷔페, 레스토랑, 명품취급점 등 대표적인 입주업체들도 비슷한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그렇다면, 지금 지역의 호텔 숙박업계는 앞으로 관광객이 늘어나게 되면 저절로 당연히 브이자 회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답은 누구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조기에 움직이기 시작한 관광객들이 글로벌 호텔업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를 시도한 새로운 서비스와 비교하기 시작한다면 지역 업체들이 기대하고 있는 만큼의 회복속도는 의외로 보이지 못할 우려도 있다. 회복속도는 그동안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있던 지역 호텔, 숙박, 관광 관련 업소들이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다른 호텔업계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호응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어쩌면 기존의 경영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호텔 입구에서는 온도측정기를 설치하고, 호텔 객실에는 소독제나 일회용 마스크 정도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가진 여행객, 관광객들이 적어도 과거와 같이 코로나19 이전의 행동 양식과 생각으로 지역의 호텔, 숙박, 음식점 등을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경북 지역 관광산업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지역에 방문객이 많이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기에 앞서 선행해야 할 과제를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이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지역 호텔에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철저한 방역과 검역체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염두에 둔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지, 다른 지역 호텔만큼의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형 호텔 서비스가 있는지 등이 재방문율을 높이는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 호텔 객실이 들어차기만을 기다리기 전에 최근 특급호텔들의 진화에 주목하여 최대한 안전조치와 선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모든 서비스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 준비가 끝난 이후에야 비로소 브이자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6-28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생존하기 위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소비자의 비대면, 비접촉에 대한 수요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될 것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이러한 소비자 행동의 결과는 우리나라는 물론 주요국에서도 대형 유통소매업체들의 매출 하락으로 뚜렷하게 증명되기 시작하였다. 실제 미국의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3월 마이너스 25.1%에서 4월 마이너스 47.0%로, 의류(apparel) 업체는 3월 마이너스 49.8%에서 4월 마이너스 89.3%로 하락 폭이 확대되고 있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패션업체인 에이치앤엠(HM)은 지난 3월 이후 약 2개월간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마이너스 57%를 기록하였다. 일본의 백화점 매출도 3월 마이너스 33.4%에서 4월 마이너스 72.8%를, 의류 분야는 3월 마이너스 22.7%에서 4월 마이너스 53.6%로 확대되는 등 전 세계의 소매업종이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만큼 그동안 사람이 밀집되고 있던 백화점,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입어보고 만지게 되는 의류와 같은 소매업종일수록 비대면, 비접촉시대로 이행되는 과정에 있는 지금 시기에는 직접적인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유통소매점들이 그동안 온라인쇼핑몰과 택배 서비스로 연결되는 전자상거래에 무관심했던 것도 아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5년간 일본의 편의점업체 세븐앤아이는 총매출액 대비 전자상거래를 통한 매출비율이 0.9%에서 2.7%로 늘었고, 미국의 월마트는 2.3%에서 6.8%로, 코스트코는 4.0%에서 7.0%로 늘어났다. 또 미국의 가전유통업체 베스트바이(Best Buy)는 10.1%에서 20.3%로, 영국의 식품마트 세인스베리(Sainsbury’s)는 5.1%에서 14.8%로 대부분의 소매유통업체는 온라인 쇼핑 거래 비중을 상당히 큰 폭으로 확대해왔다. 이들의 온라인거래 강화는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조준하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한다.더구나 이들 대형 소매점들은 최근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그동안 추진 중이던 디지털화, 온라인화에 더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더욱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 눈에 뜨이는 것은 역시 관점 내지는 시각의 변화다. 지금까지 소매점들은 최대한 고객들이 물건을 찾기 위해 점포를 몇 차례나 둘러보게 만드는 등 고객의 점포 내 체류 시간을 늘려 매출을 극대화하는 상품 진열방식 등 다양한 전략을 채용하여왔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이 원하는 비대면 비접촉과 더불어 점포 내 체류 시간을 줄이려는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많이 찾는 생필품들을 점포 내 최단 이동 거리에서 선택하여 점포 체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상품배열을 조정하고 있다. 일부 점포에서는 스마트폰 앱으로 고객이 물품을 즉각 찾을 수 있는 안내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특정 점포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대와 한적한 시간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등장한 신규 서비스로는 소비자가 방문 전 미리 온라인으로 선택한 물품을 점포 외부 로커(locker)에 넣어두면 해당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인증한 후 로커를 열어 물품을 직접 인수하는 방식이다. 점포의 종업원과는 아예 비대면 비접촉이 실현되는 셈이다. 그리고 고객이 물품을 손수레(cart)에 담아오면 종업원이 바코드만 인식시킨 후 계산은 고객이 무인 결제하는 방식도 도입하고 있다.게다가 이들 소매점 업체의 수익확보를 위한 경영전략도 다각화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지금 백화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유사한 방식을 채용하여 해당 소매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주요 제품의 진열 장소를 해당 제품 제조업체에 맡겨 제조업체가 자사 제품을 직접 홍보하는 부스로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방식의 채용으로 제조업체는 자사 제품의 홍보와 장점을 고객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를 얻고, 해당 소매점 경영자는 제품이 판매되지 않더라도 일정 공간을 대여해 주는 것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어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어느 소매점에서는 가게 안에 다양한 센서 등 전자기기를 설치하여 두고 고객들이 어느 제품에 관심을 두는지, 어떤 제품을 만져보는지, 그 체류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수료를 받고 해당 제조업체에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게 별도의 대화나 설문 조사 등이 없더라도 고객 행동이 시사하는 정보를 해당 제조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매점은 새로운 수익원을 얻는 뉴노멀의 비즈니스가 탄생하고 있다.포항과 같은 지방 도시는 대체로 전국 유통망을 지닌 대형 소매점이 아닌 한 소상공인들이 경영하는 소매점이 주축을 이룬다. 아무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두가 지금까지 없었던 온라인상거래를 즉시 도입하거나 스마트폰 앱을 통한 대고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처럼 세계적인 소매점들이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생존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는 모습만큼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에서 충분히 아이디어를 짜낸다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예를 들어 전통시장에서 배달서비스를 하기 어렵다면,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미리 전화로 주문을 받아주고 손님은 주문한 물건을 확인한 후 바로 계산하여 가져갈 수 있는 장치만 마련해도 시장 내 체류 시간의 단축과 최대한의 비접촉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생각 같아서는 시장상인회에서 손님이 시장에 방문하기 전에 필요한 수량, 물건, 가격대 등을 알려주면 상인회가 책임지고 하자 없는 물건을 모두 마련하여 두고 고객이 물건과 가격을 확인한 다음 한꺼번에 계산하고 장보기를 끝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고객의 시간 절약, 시장의 새로운 매출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골목상권에서도 조금은 유사한 아이디어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당장 온라인매출이나 배달서비스가 어렵다면, 적어도 미리 전화로 주문을 받은 물품을 상자에 담아두기만 해도 주변 소비자들은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좁은 가게 안에서 다른 손님들과 어깨를 부딪칠 필요도 없이 주문해둔 내용을 확인한 후 계산해서 물건을 가져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비대면 비접촉시대에는 장보기 대행서비스가 다시 인기를 끌지도 모른다.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변화에 대해 개인, 중소기업, 소상공인 모두 각자의 영역에 수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우리 모두 비대면, 비접촉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아예 눈을 감아버리면 생존은 보장되지 않는다. 특히 고객과 만나고 접촉해야 하는 소매 분야일수록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든 적응해야만 한다. 앞으로 지역의 소상공인, 전통시장 등 각 경제주체가 지속 가능한 생존에 성공하려면 과거부터 수없이 겪어왔던 많은 외부 충격에서도 큰 탈 없었던 점만을 믿어서는 아니 된다. 지금까지 고수했던 모든 방식이 더는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접촉, 대면 시대의 경험을 모두 지운 백지상태에서 받아들여야만 할 것, 바꾸어야만 할 것, 버려야만 할 것, 끝까지 고수해야 할 것 등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 때가 왔다. 그리고 때로는 단순한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위기를 극복할 수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6-21

불확실성 시대에 확실한 것부터 해결하자

지난 4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1월 전망치보다 낮춘 마이너스 3.0%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약 2달 정도가 지난 6월 8일 세계은행(World Bank Group)은 세계경제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에서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5.2%로 예측하였다. 미국과 일본 모두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 6.1%로, 유로지역은 마이너스 9.1%로 예측하는 등 선진국은 약 마이너스 7%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는 한편, 중국(+1.0% 성장)을 포함한 신흥개발도상국도 마이너스 2.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경기후퇴로 보이는 이러한 무차별적인 역성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각 지역 간, 지역 내 물류 이동이나 수급이 차단된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무역 규모가 13.4% 감소할 것으로 보았다. 신흥개발도상국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지난 6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문제는 세계은행 보고서의 예측이 정확한 것인지를 떠나 적어도 전망을 위한 전제 조건 즉 기본 시나리오가 대부분 올해 중반 또는 다소 지연되는 시점에 코로나19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 가정하고 있어 크게 낙관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다만,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밝혔듯이 코로나19로 인한 각 지역이나 나라별로 겪을 경제적 영향의 정도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역시 제일 심각하게 코로나19의 피해가 컸던 지역이나 나라일수록 경제적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제무역, 관광, 1차 산품 수출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영향이 클 것이다. 해외로부터의 자금조달 의존도가 높은 지역도 마찬가지다. 다들 자국 경제의 회복에 자금을 투입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기에 해외로부터 자금 조달 의존도가 높은 곳은 높은 국제금리를 감내하거나 아예 상환독촉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얼마나 자율적인 경제순환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달린 셈이다. 그러하기에 이번 세계은행이 전망한 것과 다른 결과가 초래된다면 바로 이 외부요인으로부터의 충격에 대한 내성이나 메커니즘이 각 나라나 지역마다 다른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그만큼 지금의 전망치조차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야기다.경북 동해안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의 최근 조사결과에서도 지역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느끼고 있다. 당연히 과감한 투자나 어떠한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하물며 대기업과 달리 정세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안테나도 없는 지역 대다수 중소기업은 오직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저 시간이 흘러 사태가 종식되고 기존 거래처들과 거래를 재개하여 자사의 공장이나 영업점이 정상화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기업의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신의 손으로 일구어왔던 공장, 가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나 또 언제나 가능하지도 않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 최적기일 수도 있다. 다시 경제 활동이 정상화되는 순간부터는 또다시 중소기업 경영자의 뇌리에는 당장 공장 가동문제에 매달릴 것이기에 정말 해결해야 할 확실한 문제는 다시 봉합될 가능성이 크다. 다름 아닌 후계자 문제다.전 세계 어느 나라나 지역에서도 중소기업들은 후계자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미국과 같은 서양에서는 기업 간 흡수합병이나 외부로부터 경영자를 초빙하는 경영 방식이 동양보다는 활발한 관계로 해당 기업을 처음 만들었거나 육성한 개인이나 가문이 바뀌더라도 기업 자체의 존속 확률이 동양보다는 높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비교적 ‘뿌리’나 ‘전통’을 중시하는 ‘피의 계승’ 경향이 기업에도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결과가 재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면서 불법 승계니 뭐니 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그 누구라도 자신이 피땀을 흘려 청춘을 바쳐 이룩한 기업을 자기 자식이나 친족이 아닌 제3자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탓할 수는 없다.일례로 어느 중소기업 경영자가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기술이나 공법 등을 이용하여 독보적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면 그 비밀은 함부로 전수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종업원이 지닌 암묵지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오랜 세월 동안 포항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유명 음식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지역 중소기업의 업종 중에서도 그나마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지고 있는 분야는 역시 중소제조업체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중에서도 포스코가 포항에 자리 잡은 이후부터 자수성가하여 지역에서 독자적인 영업망을 구축하고 기술력만으로 버티고 생존해온 중소제조업체가 이 문제를 안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때부터 출발하여 성장해온 기업이라면 20세에 창업하였더라도 이미 70세 고령일 것이다. 다행히도 친족이나 자식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2세 경영 심지어는 3세 경영으로 진입한 기업도 없진 않을 것이다. 다만 2세, 3세가 경영권을 인수하여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대개가 충분히 먹고 살 만하고 경영자 스스로 기름때를 손에 묻히지 않아도 되는 기업일 것이다.하지만 종업원 10명 이내의 기업으로서 그동안 기술력으로 때로는 종업원들과 일치단결하여 지금까지 생존해온 중소기업이라면 과연 그 경영자의 2세도 기꺼이 부모의 가업을 계승하려는 마음으로 스스로 손에 기름때를 묻히려는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이들 중소기업을 경영해온 부모의 희망, 자식의 야망 등이 융합되어 2세들 대부분은 진작에 대구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여 공업과는 무관한 상업이나 공무원 등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기 쉽다. 그러하기에 이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어쩌면 나이가 더 들어 기력이 쇠퇴하면 그냥 공장문을 닫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서양과 같이 비록 자신이 이룩해온 공장이지만 누구라도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해당 공장, 해당 기업을 제대로 살려 끌고 가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전혀 다른 타인이라도 기업의 후계자로 삼아 물려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진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중소기업 가운데 한두 기업이 고령화 문제로 공장문을 닫는다면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 중소기업의 입장이 이와 유사한 후계자 단절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면 이는 기업문제가 아니라 포항이라는 도시 자체의 문제가 된다. 우리가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것은 그들이 지역의 고용생태계를 형성하고 그 종사자들은 시민이자 소비자, 학부모, 납세자, 유권자로서 지역의 정치, 경제, 행정,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이들이 후계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폐업하게 된다면 지역의 고용창출력은 물론 과거 수십 년간 축적해온 지역의 기술력, 지역의 잠재성장력, 지역의 경영자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불확실성이 크다고 해서 잠자코 있을 때가 아니다. 이때야말로 냉정하게 자신이 몸담은 중소기업의 후계자 문제, 기업의 지속성 확보문제 등 보다 확실한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6-14

소중한 포항의 6월 역사를 살리자

작년까지 매년 6월이 되면 그 전 달부터 매우 바쁜 일정을 보냈었다. 이는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은행이 1950년 6월 12일 창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매년 6월에는 창립기념 지역경제 세미나를 개최하여왔다. 하지만 올해에는 다소 느낌이 다른 6월을 맞이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각 기관들도 행사를 취소 내지는 연기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밀집되어 함께 호흡하는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과도 배치되기 때문이다.그런데 6월은 한국은행만 기념하는 날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포항시민들에게도 6월 12일은 매우 특별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시민의 날’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1962년 6월 12일 포항항이 국제무역항으로서 지정된 것과도 관련된다. 국제무역항으로의 지정은 포항시민들이 오랫동안 고대하였던 것이기에 당시 포항시에서 이날을 ‘시민의 날’로 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의미에서 포항항이 외국과의 무역선이 오갈 수 있게 개항한 것은 이미 100년 전인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지정항으로서 일본과의 교역을 개시한 때부터다. 해방된 이후 포항시가 적극적으로 지정항 선정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었지만 의외로 국제무역항 지정은 생각보다 늦어졌다.또 6월 12일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포항의 대표적인 축제인 ‘국제불빛축제’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다른 지역에서 벌이는 것은 ‘불꽃축제’인데 왜 포항은 ‘불빛축제’라고 할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필자도 처음에는 잘못 적은 것이라 여겼었다. 2004년 포스코가 포항시민의 날을 기념하여 영일만을 상징하는 ‘빛’과 제철소의 용광로를 상징하는 ‘불’을 주제로 불꽃 쇼를 기획한 것이 지금까지 ‘불빛’ 축제로 이어져 온 것이다.내친김에 일제 강점기 시절까지 거슬러 과연 6월에는 포항에 어떠한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을지를 조사해 보았다. 다양한 단체가 있지만 6월과 관련이 깊은 곳으로는 포항우체국을 제일 먼저 꼽고 싶다. 포항에 우체국이 들어서게 된 것은 1905년 6월 9일 연일에 ‘임시우체소’가 설치된 것이 최초다. 그리고 4년 뒤인 1909년 6월 1일에는 포항의 연일 우편취급소에서 처음으로 전신업무를 개시하면서 이름도 ‘포항우편전신사무취급소’로 개칭되었다. 포항우체국과 6월은 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포항시민들의 우체국 사랑도 남달랐던 것 같다. 6·25전쟁 기간 동안 폭격으로 파괴되었던 포항우체국(지금의 중앙동 우체국)을 재건하기 위해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던 1952년 4월 포항시민들은 1천만 원의 성금을 모아 당시 체신국에 포항의 우체국과 통신 시설을 재건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여 결국 성사시켰다.이외에 6월에 벌어졌던 사건들은 수없이 많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한국통감부 시절인 1908년 6월 11일에는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영구지배할 목적으로 동해안에 대한 해류조사를 위해 영일만 동쪽 15리 해상(위도 36.8도, 경도 129.45도)에서 위치를 기록한 병 10개를 처음으로 바다에 투입하기도 하였다. 이후 해류조사는 계속되어 1922년 종합보고서가 간행되기도 하였는데 그만큼 영일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이미 그들은 알았던 것 같다. 110년 전인 1910년 6월 10일에는 지금의 청하초등학교 전신인 사립 천일학교가 개교하기도 하였다. 포항의 교육열이 최근 높아진 것이 아니다. 교통 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사건들이 있었다. 1919년 6월 25일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학산역이 영업을 개시한 날이며, 1945년 6월 10일에는 포항과 부산진 간 동해남부선 철도가 개통되어 영업을 개시하기도 하였다. 그에 앞서 1924년 6월에는 포항과 구룡포 간, 포항과 영덕 간 자동차 여객노선이 정기 운행을 개시하기도 하였다.한편, 1920년 6월 10일에는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서거하면서 학생조직을 중심으로 6·10만세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달 30일에는 박문찬 목사가 흥해 예수교 예배당에서 흥해청년회를 발족시킨 후 본격적인 애국 계몽운동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1924년 6월 4일에는 포항청년단이 창립되었으며, 1933년 6월 4일에는 포항체육회 주관으로 당시 남빈동에 있었던 공설운동장에서 포항시민 대운동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지난해 3·1만세운동은 10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80년 전인 1940년 6월에는 조선총독부가 우리 민족의 뿌리를 흔들고 전쟁에 필요한 많은 조선인을 강제동원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던 ‘창씨개명’을 집요하게 추진하였던 달이기도 하다.하지만 올해 포항에서 맞는 6월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사실 6월 첫 주가 되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6일 현충일은 국기를 조기로 거는 날 정도로 여겼다. 정부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삼은 것은 6·25전쟁으로 인한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의 호국ㆍ보훈의식, 애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크게 통감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올해의 6월은 조금 달라졌다. 지난 수개월 동안 6·25전쟁 기간 동안 포항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와 희생들에 대한 사료와 기록들을 모아 다른 세 사람과 함께 포항의 6·25전쟁사(포항 6·25)를 집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료수집을 위해 지금도 생존해 계신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노병의 눈물과 생생한 육성 증언을 통해 지금까지 지식으로만 존재하였던 6·25전쟁이 심장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여전히 한반도는 국제법상으로는 평화지대가 아닌 전쟁이 일시 휴전상태인 채로 70년이 지났다. 올해의 6월은 그런 달이다. 특히 포항시의 경우에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한두 달 만에 대한민국의 마지막 영토를 수호해야 하는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의 보루로서 형산강을 남북으로 두고 북한군과 대치하면서 형산강 이북에는 공중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인해 교회 건물 하나 외에는 모두 사라져 버리는 엄청난 희생을 겪었다. 그러하기에 포항인들에게 6월은 단순히 현충일이 있는 달이 아니라 지금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고 고통을 느끼기에 가급적 6월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분들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우리 후손들은 역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만 한다.포항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다. 아예 산 이름조차 ‘탑산’이라 바꾸어 부를 정도로 6·25 전쟁과 관련한 전적비, 충혼비, 충혼탑들이 들어서 있는 도시인 것이다. 포항시민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이 당시의 흔적들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는데 그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포항만이 가진 소중한 유적이고 유산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전국의 지자체마다 온갖 산책로를 만들며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풍광이 좋은 길이거나 둘레길일 뿐이다. 전국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길의 하나일 뿐이다. 6·25전쟁에서 낙동강 방어선의 최후의 보루였고, 다시 북진하는 대반격의 출발지였기에 ‘혈산강(血山江)’이라 불렸던 형산강은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 포항시민들이 자부할 수 있는 증거들이 탑산을 비롯한 도시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다. 포항은 당당하게 다크투어리즘으로 보상받을 자격이 있다. 이러한 유적들을 서로 연결하여 탐방하고 생각하며 호국 영령을 기릴 수 있는 그 ‘길’이야말로 어느 지자체도 따라 할 수 없는 포항 고유의 ‘길’일 것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5-31

인고의 계절을 함께 나누며 견디자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8만 명을 넘어섰다. 이번 사태로 3천300만 명이 실업보험급여를 신청하였고 4월 실업률은 14.7%를 기록하였다. 이는 공장에서 감염이 발생하거나 소비자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망이 단절되는 등 다양한 사유로 미국 생산활동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4월 광공업생산은 전월보다 11.2%가 감소하였는데 이는 통계를 시작한 1919년 이후 101년 만의 최대 낙폭이다. 철강이 20.4%가 감소하는 등 전 업종이 타격을 입었지만 그중 자동차는 무려 71.7%나 감소하였다. 미국의 생산활동 전반을 파악할 수 있는 제조업 설비가동률은 61.1%에 그쳤다. 이는 1948년 통계작성 이래 72년 만의 최저수준이다. 앞으로 미국 생산활동은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한 규제조치가 5월 이후 단계적으로 완화될 경우 조금씩 회복은 될 것이다. 하지만 안전한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되고 충분한 물량이 생산되어 팬데믹이 종식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결국, 상당 기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경제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생산, 고용, 소비의 회복도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공산이다.미국만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가 비슷한 상황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급증한 실업이 먼저 소비를 냉각시키고, 기업의 매출과 수익성이 격감하면서 이와 연동되는 금융시장에서 해당 기업 주가가 하락함에 따른 금융 경색이 다시 이와 관련된 다양한 균형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의 영향이 미국의 생산통계에서도 나타났듯이 20세기 전반의 대공황수준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금융부문의 위기는 재정출동 등을 통해 시장이 안정화되면 그때까지 전혀 문제가 없던 실물경제가 곧바로 정상화 단계를 밟아 위기를 수습시켰던 당시 상황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당장 실물경제에서 촉발된 실업이 수요증발을 일으키고 생산이 정체되면서 원활하게 흐르던 자금을 경색시키고 금융시스템까지 영향을 미쳐 신용을 경직시키고 다시 그것이 실물경제를 냉각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는 위기인 것이다.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누구나 V자 회복을 기도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제2, 제3의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금 열기 시작한 문을 또 닫았다가 여는 것을 반복할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강력한 백신이 등장하여 이번 전염병 사태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는 한 지금 전 세계 정부가 V자 회복을 위해 엄청난 돈을 뿌리고는 있으나 이 사태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거의 동시에 재택근무와 공장, 사업장의 조업 정지 조치가 이루어지게 되면 경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도 앞날이 불투명한 이유는 현재 과연 어느 나라, 어느 산업이 심신미약에 걸린 세계 경제를 이끌고 나갈 엔진이 될 것인지 모른다는 데 있다.당장 미국만 하더라도 공장 가동부터 시급한 실정이다. 중국도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례로 중국의 경우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는 동안 해당 노선 주변국에 대한 대출액이 약 1천3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여기에서도 문제 발생의 소지가 없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부티는 중국에 대한 채무가 GDP 대비 80% 수준에 이르며, 에티오피아는 20%, 파키스탄은 7%, 남아프리카공화국은 4% 등 작은 규모는 아니다. 지난번 G20에서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하여 가난한 나라들의 채무상환을 2020년 말까지 연기시켜 주기로 조정하였지만, 당시 중국은 일대일로와 관련한 채무상환은 그 조치에서 빠지길 원했다. 그만큼 중국도 사정이 만만치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일본이나 유럽이 대체 엔진이 될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다. 신흥국인 터키,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도 달러화 표시 민간채무의 원리금 상환이 늦춰지는 상황이다. 이번 코로나 위기로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인 몸살을 앓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중국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미국에 대해 이미 지난번 일시적이나마 휴전에 합의하였던 미중 무역전쟁의 불씨를 다시 지피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굳이 미국에 양보할 필요가 없었다는 강경파가 이번 사태로 힘을 얻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양국 간에 무역전쟁이 재개된다면 그 영향권에 놓일 우리로서는 한순간도 방심할 틈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올해 11월 재선을 목표로 101년 만의 최대 하락 폭을 기록한 자국의 생산 특히 자동차, 철강 등의 회복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발동할 수도 있다. 미국의 생산활동을 재개시켜 실업률을 낮추고 공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처방전은 수입 자동차, 수입 철강 등에 대한 방화벽 설치다. 이미 지난 수년간 관세장벽, 쿼터 물량축소 등으로 힘들었던 우리 지역의 수출시장은 미국이 나서고 유럽 등지가 뒤따른다면 더욱 그 문이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그동안 인내해왔지만, 이제부터는 그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인내를 감수해야만 할지도 모른다.포항경제는 철강으로 시작해서 철강으로 끝난다. 포항경제를 끌고 갈 엔진은 철강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최근 지역 철강 대기업이 감산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부에서는 대기업이 그러면 지역경제에는 큰일이니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지역 기업들은 위기경영 아니 전시경영체제에 돌입해야만 한다. 아직은 여력이 있다고 방심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인고의 시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미래의 도약을 위해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감량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힘써야만 한다. 지역 대기업은 해외의 정치 경제 정세에 대한 정보수집도 가능할 것이기에 사실 큰 걱정은 없다. 문제는 해외시장까지 살필 수 없어 자기 주변만 보게 되는 지역 중소기업이다. 혹시라도 중소기업 경영자들 가운데, 우리나라가 안정화된 것만 보고 곧 예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 낙관할까 걱정이다.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무작정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행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이라고 일자리가 넘치지는 않는다. 잘못하면 부모의 경제적 부담만 높여 정작 필요할 때 손을 벌릴 수 있는 자신의 기반마저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집에서 자기계발에 정진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비상사태에서는 인내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런 때일수록 노사 간 대화와 소통은 큰 힘을 발휘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여 정부 정책, 금융 행태, 기업 행동, 소비 수요, 노동 수급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역의 경제주체 모두 주시해야만 한다.결국, 가장 중요한 점은 지역 전체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나부터 양보하려는 생각, 옆집이 죽고 나만 살아났을 때와 옆집도 겨우 나도 겨우 살아났을 때 지역 전체의 이익은 후자가 크다는 점을 서로 믿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마치 6·25 전쟁 직후 폐허가 된 포항이 다시 일어났을 때처럼 우리 모두 앞은 불투명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옆 사람, 옆 기업과 손잡고 같이 걸으면 불안감은 나눌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인고의 계절을 함께 하며 나누고, 견디자./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5-24

가게 문을 다시 열기 전에

이제야 약간이지만 도시가 깨어나 몸을 뒤틀기 시작하는 듯하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마스크를 한 사람들의 표정도 다소 풀린 것 같다. 생활방역체계로 이행한 이후 거리에 사람이 조금 늘어난 것도 같고, 택시기사님 목소리에도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 다만, 일찌감치 승강기에 비치한 손 소독제를 없앤 곳이 있고,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좁은 승강기에서 통화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에는 눈살을 찌푸리기보다는 걱정부터 앞선다.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국민을 믿고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한 것이지, 우리나라가 코로나19라는 무서운 전염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님을 모두 마음속에 새겨두어야만 한다. 전문가들은 당장 내년이라도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여하튼 포항 지역에서도 코로나19 이후의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많은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안도하여 안일하게 지금까지 닫아두었던 가게 문을 그저 열기만 해서는 V자 회복이 아닌 L자 회복에 그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만에 하나 코로나19가 아닌 또 다른 전염병-20, 전염병-21이 발생한다면 지금처럼 가게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상황만 반복할 가능성도 크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정부가 있는 자금 없는 자금을 끌어모아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재정자금을 투입할지는 미지수다. 상황에 따라서는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주 국부적인 어쩌면 국내 한정 나아가 특정 지역에만 한정한 전염병이 있을 수도 있다. 일례로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피해지역이나 대상이 좁혀지겠지만 여전히 전통시장, 골목 정육점, 관련 식육을 취급하는 식당과 마트 매출은 떨어질 것이고, 해당 지역 방역을 위한 출입통제로 관광 관련 업종도 피해에서 벗어날 수는 없게 될 것이다.결국, 어떠한 위기 그중에서도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게 되는 전염병과 관련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소비자의 행동 패턴은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게 나타날 것이다. 당연히 위기 발생과 그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될 소상공인들은 이번 코로나19사태에서 보여주었던 방식을 답습하기 쉽다. 이와 같은 위기와 대응과정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변화를 바란다고 해서 굳이 새로운 획기적인 어떠한 경영방침이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는 않다. 단지 신뢰를 쌓는 것뿐이다. 가게와 손님 간의 신뢰. 평소 자신의 가게를 찾아오던 손님들이 이번 코로나19사태로 발길을 끊었다면, 그렇지 않은 가게도 분명히 있었다. 가게 매출이 급감한 원인을 무조건 세계적인 코로나19 때문이라며 외부에서만 범인을 찾지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 1%라도 일부 원인이 자신의 가게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였으면 한다. 단골손님들이 굳이 말하진 않았으나 평소 자신의 가게가 비위생적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출입구가 너무 좁아 드나들 때 손님들과 부딪치기 쉽다고 여겨 이번 사태에 아예 발길을 끊었을 수도 있다. 다른 가게는 평소에도 전화 주문이 가능하여 집으로 배달해준 다음 배달원이 지참한 카드결제기로 결제하고 있었기에 이번 사태로 가게 문을 닫은 상태에서도 일부 매출이 있었던 반면, 자기 가게는 신용카드의 사용도, 배달도 불가능하였기에 가게 문을 닫아 피해가 더욱 컸었을 수도 있지는 않았나 근본부터 생각해보아야만 한다.최근 정부는 적어도 1가구당 40만 원 정도의 소비 여력을 만들어 주었다. 일정 지역 범위 내에서만 쓸 수 있고 사용기한도 정해진 특별조치다. 분명히 가게 문을 연다면 이번에 소비자 지갑에 들어간 돈 중 다소 얼마라도 거래해 왔던 인근 소비자를 통해 가게 매출이 일어날 가능성은 생겨났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을 무작정 바라고 가게 문을 연다고 해서 지금 비상시국 전환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경기회복 조치에 따른 수혜가 자기 가게까지 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은 사태가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며, 소비자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사회적 거리 두기와 위생, 최대한의 비접촉, 비대면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게 문을 열기 전에 어떻게 해야만 할까.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다음과 같이 일부 방향성만큼은 받아들여 앞으로 펼쳐질 비대면, 비접촉의 시대에도 가게를 지켜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을 더욱 굳건하게 다져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첫째, 그동안 카드수수료가 들고, 당장 현금화하기 어렵다는 등 여러 이유로 오직 현금결제만을 선호하였던 가게라면 최소한 고객이 신용카드 정도는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정부지원금만 하더라도 현금 지급 대상이 많지 않고 상품권보다는 오히려 신용카드, 체크카드, 선불카드 등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소비자 대부분은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정부지원금을 사용하기 쉬운데 자기 가게만이 현금결제를 고수한다면 가게 문을 열지 않은 것과 별다른 차이가 생겨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 가게도 온라인 판매망을 갖춘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러려면 돈도, 시간도 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일정 금액 이상을 산 고객에게는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는 쉽게 도입할 수 있다. 현대 소비자에게 택배, 배달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지금은 ‘신뢰’하는 가게에 전화로 ‘회’까지 주문하여 배달받아 먹고 있는 시대다. 하물며 썩지 않는 공산품을 취급하는 가게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종전까지 찾아가야만 하던 가게에서 전화로 배달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다시 위기가 오더라도 가게가 입는 피해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 셋째, 음식점이라면 더욱 앞으로의 변화를 수용할 태세를 갖추어야만 한다. 철저하게 자기 가게의 특성에 맞추어 서비스를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 음식점은 상시 방역합니다’라고 적어둘 필요도 있다. 가능하다면 테이블마다 칸막이는 물론이고 아예 자리를 한 방향으로만 배치하는 방법도 좋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투명 안면 마스크를 주방은 물론 홀서빙 직원들까지 착용을 의무화해야만 할 것이다. 손님들은 일일이 주인에게 지적하지 않는다. 안가면 그뿐이다. 앞으로 음식점의 성패는 이처럼 적어도 가시적인 위생 수준의 확보가 매출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각자의 수저가 모두 넘나드는 전골류를 서비스하는 가게라면 1인당 뚝배기로 배식하는 방법도 필요할지 모른다. 예전에는 고급음식점이나 직원들에게 모자를 쓰도록 했다면 이제는 골목 식당도 그래야만 살아남는 시대가 왔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넷째, 전통시장에서는 여전히 모든 손님이 한 번씩은 만져보고 일일이 필요한 무게만큼 저울에 달아야만 전체 가격을 알게 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작은 분량별로 미리 분리 또는 포장해두고, 가격도 킬로그램당이 아니라 소량으로 구분해둔 분량별 가격을 표시해둔 곳일수록 손님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옛날처럼 주인과 흥정하고 일일이 가격이나 원산지를 물어야만 하는 곳일수록 비대면 비접촉시대에는 살아남기 힘들다. 신용카드가맹점임을 밝힌 가게일수록 생존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택배까지 된다면 금상첨화다.이상과 같은 가게의 변화는 시청공무원이나 시민들이 도와주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가게의 흥망성쇠를 책임지는 가게 주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5-17

진정한 경제효과에 더욱 주목하자

최근 차세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둘러싸고 전국이 들썩였다. 물론 포항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예선 탈락에 그쳤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 ‘선정조건 자체부터 불리’ 등 탈락에 따른 자조적인 탄식과 더불어 과학자와 정치가의 시각차를 다루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개인적인 경제적 관점에서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낙심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굳이 포항이 우리나라 모든 과학 분야의 기초연구 기반인 가속기라는 하드웨어를 하나 더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가속기가 들어서더라도 여전히 포항은 3세대 원형(방사광)과 4세대 선형(XFEL)가속기를 보유한 국내 최고의 가속기 집적지다. 경주의 양성자가속기까지 가세한다면 포항 경주 지역은 세계적인 가속기클러스터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포항시를 비롯해 지역 각계가 이번 차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유치에 정성을 쏟은 것은 국가과학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순수한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이 가속기 건설에 따른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라는 ‘경제’에 더 주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속기 건설에 따른 경제효과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측면의 경제효과가 있다. 우선 가속기 건설에 필요한 장치의 제작과 설계, 기술 등을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매출이 바로 공급 측면에서 파급되는 경제효과다. 그리고 수요측면에서는 바이오, 의료, 건설, 생활, 철강, 소재금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원형에서 가속하며 튀어나오는 빛(방사광)이건, 직선에서 가속하여 X선 자유전자 레이저(XFEL) 빔이건 가속기를 가동하여 나오는 빛의 투과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하여 산업에 접합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경제효과가 있다. 가속기 건설의 경제효과가 여타 다른 사업에 비해 크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는 대체로 공급 또는 수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경향이 크지만 가속기는 양 측면에서 경제효과가 광범위하게 파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가속기가 국가기초과학기술의 발전에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것은 보너스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6조7천억 원의 경제효과는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전혀 부풀려진 수치는 아니다.그렇다면 그동안 포항이 심혈을 기울여 유치하여 건설, 가동하고 있는 3세대 원형가속기와 4세대 선형가속기를 통해 과연 당시 기대만큼 어느 정도 경제효과를 거두었을지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대규모 국책건설사업의 유치에 공을 들이지만 기간시설의 건설과정에서 고스란히 경제효과를 지역이 누리려면 반드시 전제가 뒤따른다. 일단 2016년 가동을 시작한 축구장 50배 면적에 국내에서 길이가 가장 긴 1.1킬로미터에 이르는 단층 건물로 만들어진 이른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살펴보자. 과연 그렇게 넓은 면적과 수 백억원의 자금을 제공한 포항에서 지역 건설업체나 철강업체가 가속기 건설에 어느 정도 참여하고 지역산 철강재가 어느 정도 투입되었을까. 아마도 생각만큼 그 비율은 높지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경 필자는 ‘포항의 가속기클러스터사업 추진현황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요지는 간단하다. 이 가속기 건설 당시 주요 장치를 신규개발하고 국산화하였던 업체들이 손 놓고 있지 않도록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여 소형화, 국산화, 고기능화를 추진하라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국내의 주요 병원에서 사용하는 의료용 가속기 대부분이 수입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제공 가능한 의료용 가속기의 국산화 추진 등을 통해 공급 측면에서의 경제효과를 확대하기 위한 가속기 생태계를 조성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이 기업들이 성장해왔다면 다른 지역에 가속기가 건설되더라도 최신 기술력과 가속기 건설 경험을 지닌 이들이 당연히 참여하게 될 것이고, 포항에 부가가치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있다.수요측면이야말로 가장 기대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포항의 가속기를 이용하여 보다 가시적으로 지역 내에 혁신적인 기술이나 신제품을 개발하여 창업한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특허와 연구성과는 적지 않았다. 수천 편에 이르는 연구논문 중에는 네이처지의 표지를 장식한 것이 있을 정도로 높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가속기가 우리나라 과학발전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정작 포항경제를 윤택하게 할 신제품의 개발과 창업이 이루어져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은 아직 알고 있는 것이 없다.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어떠한 국책사업을 유치하려 하였을 때 외형적인 경제효과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총 건설금액이 아무리 크더라도 지역업체가 참여하지 못하면 그저 공사하는 동안 먼지만 날아오고 지역의 아름다운 산만 없어지고 환경만 훼손시킬 뿐이다. 진정한 경제효과는 사업비의 다과에 있지 않다. 사업 시행에 과연 우리 지역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지부터 계산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역량이 부족하다면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역량을 키우거나 역량이 되는 업체를 조건부로 끌어들인 다음에 유치하는 꼼수도 필요하다. 지역경제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국책사업은 과감하게 포기할 필요도 있다. 이번 가속기 유치문제도 비슷한 사례다. 주요 언론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에 동참하여 자괴감에 빠져 마치 포항이 버려진 양 침울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다시 한번 국가 기초과학발전에 포항이 이바지하겠다고 손을 들었지만 다른 지역에 양보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오히려 이미 포항은 아름다운 강산을 희생하면서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통해 국가 기초과학발전에 넘칠 만큼 이바지해 왔다고 자부해도 좋다. 단지 그것을 이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한 기업들 가운데 포항에 소재한 기업이 많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여러 가속기를 한곳에 모아두면 분명 시너지효과는 있다. 연구원들이 멀리까지 발품을 팔 필요도 없고, 협업하는데도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가속기 기반 연구가 24시간 가속기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지역에 있더라도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데다, 온라인 화상회의도 있어 연구 활동에 제약은 그리 크지 않다. 그보다는 가속기 기반 연구가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의 창업으로 연결될 것인지다. 또 지역에서 성공한 기업을 모델로 국내외에서 우수 인재들이 모여들어 가속기 기반의 신약, 신기술, 신제품을 연구 개발할 것인지다. 이들이 포항에 뿌리를 내려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지가 가장 중요하다. 솔직히 국가 기초과학기술의 진보는 중요하나 굳이 포항이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만이다. 가속기가 어디에 건설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속기 기반의 연구 결과가 얼마나 지역경제에 이바지할 것인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미 포항이 보유하고 있는 3세대, 4세대 가속기를 기반으로 지역의 청년, 과학자, 연구원들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잘 보살필 필요가 있다. 그들이 포항에서 창업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혁신형, 기술형, 고부가가치형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진정한 경제효과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5-10

포항경제의 조기 회복 가능성

지난 4월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WEO)을 발표하면서 1월 시점 전망치를 대폭 낮추었다. IMF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봉쇄(Great Lockdown)’가 확대되어 세계 경제가 마이너스성장하면서 내년까지 세계 GDP에서 9조 달러가 증발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는 기타 고피너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밝힌 것처럼 일본과 독일 양국의 GDP를 합한 큰 규모다. 그만큼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클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IMF는 기본 시나리오에서 세계 경제가 2/4분기까지는 심각하더라도 후반기부터는 점차 회복할 것으로 전제하면서도 지난 1월 전망 당시 상정하였던 세계 경제의 성장경로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상대적으로 하락 폭이 크지 않다고 전망한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1.2%로 보는 등 선진국, 개도국 모두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내리면서 올해 세계 경제는 -3.0%의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에 더하여 IMF는 기본 시나리오 외에 3개의 리스크 시나리오도 함께 제시하였다. 첫째, 기본 시나리오보다 감염사태 수습 기간이 50% 더 길어질 경우. 둘째, 내년에도 감염이 재발하여 올해 수준의 약 2/3 정도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셋째, 앞의 두 개 위험이 모두 발생하는 경우다. 그만큼 코로나19의 감염 확산 방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일반적인 과거의 충격과 달리 노동 공급 감소와 사업장 폐쇄 등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 생산성 하락 등의 연쇄효과로 인해 전염병 발생지역의 산업 활동과 소매업, 고정자산 투자 등 실물 경제가 빠르게 무너지는 것을 경계하였다.이상을 고려할 때 IMF가 전망에서 채용한 기본 시나리오가 그대로 적중되더라도 올해 2/4분기까지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으며 하반기 이후에나 회복 조짐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의 수석경제해설가 마틴 울프는 ‘지금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The world economy is now collapsing)’라는 4월 15일 자 칼럼에서 IMF가 ‘대봉쇄’라고 했으나 ‘대차단(Great shutdown)’이라 보아야 하며 봉쇄로 세계 경제가 하락한 것이 아니라며 IMF의 전망이 낙관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물자의 적극적인 국제 교류의 중요성과 함께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와 같은 물류 흐름을 차단하는 행위가 세계 경제 회복을 저해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그의 말대로 IMF의 전망이 낙관적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성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포항경제는 더 정도가 심할 것임은 분명하다.게다가 IMF의 예측대로라면 글로벌금융위기 당시보다 그 진폭이 크고 회복속도는 더 느려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포항경제도 당연히 주요 지표는 마이너스였다. 포항경제의 주력인 철강산업만 보더라도 피해가 컸다. 당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2009년 연간 조강생산량은 전년 대비 3.9%가 감소하였다. 철강 공단의 생산액과 수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13.5%, 8.8% 감소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철강(제1차금속) 부분만 추출하여 살펴보면 하락 폭이 더 컸다. 철강 공단의 제1차 금속부문 생산액과 수출액은 전년 대비 각각 17.3%, 21.7%가 감소하였다. 당시 포항시 전체 수출액은 23.8%나 감소하였다. 이외에도 지역 건설과 운수업 등과 연관성이 높은 투자지표인 건축허가에서는 상업용과 공업용 건축 허가면적이 2008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전체 허가면적이 전년 대비 22.0% 감소를 기록하였다. 결국, 올해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성장률을 기록하는 동안 포항경제의 3대 천왕인 철강, 운수, 건설 등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내지는 그 이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따라서 포항경제가 정상적인 성장경로로 최대한 빨리 회복하여 주력 기반산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지역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재정자금을 투입하여 전국적으로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대책과는 별개의 지역 독자적인 방책이 있어야 한다. 포항경제가 지금의 위기를 조기에 극복해 나가려면 다양한 사업을 광범위하게 펼쳐놓고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왔던 종전방식과 달리 굵직한 몇 개 사업을 선택하고 거기에 모든 역량을 일시에 쏟아부어야만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공황에 버금가는 지금의 위기상황에서는 미래의 신성장동력보다는 당장 지역 기반산업이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만 한다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따라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포항의 경제대책에서 최우선순위는 지진복구사업이어야만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지역 경제의 다양한 분야가 과거와 달리 위축되었던 최대원인은 포항지진이었다. 그동안 포항지진의 원인 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이 지연되면서 커졌던 불확실성이 지역 경제주체의 소비, 투자심리를 하락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지난해 말 포항지진 관련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지진 특별법에서는 다양한 부분을 다루겠지만,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부 예산을 배정받아 집행할 수 있는 복구 재건사업이다. 지역에 자금이 풀리고, 지역기업이 참여하여 제대로 경제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분야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고 복구 재건사업을 추진할 때도 사업의 추진 방침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사전에 설정해 두어야만 한다. 반드시 지역기업, 그중에서도 철강 공단에서 생산하는 철강 자재를 듬뿍 사용하는 건축물 등의 설계와 시공을 채택하고,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진복구 재건사업을 일괄적인 단일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사업주에게는 경제성과 효율성은 높겠지만 최대한 소규모 단위사업으로 분리하였으면 한다. 사업 전체 조감도는 당연히 한 장의 청사진에 담아야겠지만, 공사 시행 구간과 단계를 최소 단위로 분리하여 지역 건설업체들이 건설 도급순위 등의 규모나 실적에 밀려 해당 사업에서 원천 배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주력 기반산업인 철강, 건설, 운수가 아예 독과점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특혜를 주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지역경제의 조기 회복은 더욱 빨라질 수 있다.지금은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시의회나 도의회에서도 한시적인 제한을 두더라도 지역업체에 우선권을 주는 특별조례를 제정하여 이를 뒷받침해 주었으면 한다. 다른 지역이라면 없는 사업이라도 만들어야 할 이때 포항에는 당연히 해야 할 복구사업, 재건사업 등 현안 사업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방역 관계로 즉각적인 건설사업 착수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태가 종식되는 즉시 복구 재건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둘 필요는 있다. 최대한 많은 철강, 건설, 운수업종의 지역업체들이 밤낮없이 지진복구, 재건사업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사전준비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이들 3대 업종의 지역업체들이 지역 내 사업에 참여하여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피해가 컸던 지역 소상공인, 골목상권 등의 경기는 지난 수십 년간 그래왔듯이 저절로 생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의외로 포항경제는 빠르게 회복할지도 모른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26

디자이너가 활약할 때가 왔다

정치, 문화, 경제 등 어떠한 분야라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큰 외부충격이 없는 한 스스로 진화하여 변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간혹 혜안을 지닌 석학들이 사전 경고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소수의견으로 치부되어 무시되기 쉽다. 때로는 다수파에 의해 비난받기도 한다. 그러다 실제 위기상황이 발생하여 그 여파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온갖 전문가들이 나타나 호들갑을 떨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게 된다. 과거 90년대 초 일본 부동산 버블의 붕괴, 2000년대 초 디지털혁명의 도래, 10여 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모두 그랬다. 분야마다 충격의 크기나 범위가 어떤지에 따라 해당 분야에서 발생하는 변화의 폭도 찻잔 속의 태풍처럼 가라앉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판이 만들어지는 대변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때마다 막연히 늑장을 부리던 기업이나 특정 직업군은 사라졌으며,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적응한 기업이나 특정 직업군이 탄생하기도 하였다. 패러다임의 변화다.이번 코로나19사태로 최근 일본 누리꾼들은 우리나라를 부러워하기도 질시하기도 한다. 적극적인 방역대책과 검사 실시,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감염자 이동 경로의 확인과 공개로 확산을 차단하고,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마스크의 5부제 판매로 사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사례들이 대상이다. 일본의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에 살고있는 일본인이 ‘이 시기에 한국에 있어서 좋았다’라는 인터뷰를 소개하며 한국을 배워야 한다며 일본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판한다. 또 다른 일부 언론에서는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개인 모바일 위치정보를 공개하거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감시체제와 수많은 CCTV가 존재하는 통제국가여서 가능한 성과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였다. 외형적인 특정한 사안만으로 쉽사리 평가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종전이 아닌 전쟁 중 휴전상태에 있는 특수한 상황에 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우리나라가 통제국가라 하더라도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데이터가 디지털화되고, 모바일 앱을 개발할 실력자들이 무수히 양성되어 있고, 높은 수준의 인터넷보급망과 모바일보급률이 갖추어져 있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자정부가 일정 수준에 달하여 있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하였던 일이다. 바로 그러한 성과야말로 우리나라가 갖춘 사회적, 정보통신 기반과 국민의 단합된 행동력 덕분이다. 어떠한 큰 충격이 왔을 때 이것을 극복하거나 타파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위기 극복이나 대책의 효과도 달라진다. 같은 충격을 받고 대응수단을 알고 있더라도 그 기반이 적기에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최근 정부는 비대면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로 하였다. 물론 전혀 새로운 산업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비대면 서비스 시대에 살고 있고, 활용하고 있다. 모바일뱅킹으로 자녀들에게 용돈을 입금하는 행위도 비대면 서비스다. 이번 전염병으로 인해 외출 자제와 재택근무가 늘어나 CATV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홈쇼핑으로 물건을 주문한 것도 모두 비대면 서비스다. 하지만 정부가 육성하려는 비대면 서비스는 이미 활성화되어있는 이러한 분야보다는 전형적인 오프라인 분야를 온라인으로 전환하거나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면 서비스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일종의 우회경로를 만드는 기반의 구축일 수도 있고,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효과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비대면 서비스 분야는 물론 소비자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이 대상일 것이다. 다만, 해당 분야의 기업에 기반이 구축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새로운 비대면 서비스에 적응하는 기간과 효과는 달라질 것이다. 기업의 내부 경영에도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은 적용될 것이다. 직원들을 물리적인 특정 장소에 모아두고 특정사안을 전달하던 경영자는 자사의 인트라넷을 통해 전국에 산재한 직원들에게 동영상으로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이미 대기업이라면 시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다.다양한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해야 하는 제조업체들은 이번 코로나19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미 인터넷쇼핑몰을 직접 운영하고 있던 대기업이면 몰라도 중소제조업체와 소상공인들 대부분은 위기에 빠졌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모두 자체 유통망이 없기 때문이다. 골목상권이라고 하는 소상공인들은 말 그대로 골목이라는 공간 지리적인 제약에 묶여있다. 그 골목으로 찾아오는 유동인구의 움직임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아예 사람들의 출입과 이동이 제한되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그야말로 무인도에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하기에 비대면 서비스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위기 탈출의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대기업보다 부족한 부분이라면 특히 인력 부족, 자사 제품을 알릴 판촉, 광고수단의 제약일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비대면 서비스를 육성시킨다고 해도 문제다. 중소제조업체들 대부분은 사장과 직원들이 함께 만든 제품을 유통대행업체에 납품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공장 한구석에 비대면 서비스 육성 지원자금을 빌려 새로운 컴퓨터 서버를 들이고 관리직원을 채용하여 직판한다고 해서 들인 비용만큼 수익이 확보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사실 진정한 강소기업, 성공한 소상공인은 이러한 수단과는 큰 상관이 없다. 대량생산체제가 아닌 한 대기업과의 가격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다. 자사만의 기술력과 품질을 갖춘 제품군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품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 소상공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력한계, 광고비용 제약으로 유통대행점에 거의 원가로 납품하기 급급하였던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에게 비대면 서비스 분야의 진출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세상에는 저비용으로 활용 가능한 수많은 소셜네트워크가 넘쳐나기 때문에 비교적 저비용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활성화할 수도 있다.그러나 비대면 서비스에서 정작 유의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디자인이다. 현대 소비자들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싫어한다. 물건을 고를 때도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이 채워진 제품설명서는 아예 뜯지도 않는다. 제품디자인이 예쁘거나, 해당 제품의 장점을 직관적으로 시각화된 한두 줄의 설명만으로 충분하다.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링크나 동영상 속에 담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진의 축소판인 엄지손톱(Thumbnail)이 선택의 핵심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는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하더라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한눈에 알 수 있는 직관적인 화면 한 장, 한 줄의 제품 설명은 전혀 차원이 다른 분야다. 아주 특별한 예외를 빼면 사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품 사이에 기술력과 기능의 차이는 생각만큼 크지 않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제품가격이 비싼 이유는 제품의 성능보다는 대기업 이름 즉 브랜드의 힘과 편리한 A/S 정도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대기업의 브랜드 힘에 대항할 유일한 수단은 디자인의 힘뿐이다. 앞으로 비대면 서비스산업이 전 분야에서 성장해 나가려면 국가나 지역은 물론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모두 디자인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제 디자이너가 활약할 때가 왔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19

자신의 가족부터 살펴보자

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키고 있는 코로나19로 각 국가 지역에서 주민들의 외출, 이동을 제한하는 기간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지난 4월 5일 안토니오 쿠데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적으로 가정내 폭력(DV·domestic violence)이 급증하고 있다며 각국 정부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하였다. 신형 전염병 대책으로 외출이 제한되는 가운데 여성에 대한 가정내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에 대한 구제와 가정내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유엔에 따르면 외출이 금지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1주일 동안 가정내 폭력 건수가 30% 이상 증가하였다고 한다. 한편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트위터 트렌드에서는 코로나이혼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원격근무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생활환경이 급변하여 상대방에 대한 스트레스를 느끼거나 가치관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싸움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충동적으로 이혼으로 발전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가장 밀접하고 서로 이해하며 보듬어야 할 부부 사이가 오히려 벌어지게 된 셈이다. 이는 유엔이 지적한 가정내 폭력과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이러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졌던 일상생활의 리듬이 사실상 강제적으로 무너지고 깨어졌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단체 등의 주요 행사가 취소, 연기되는 한편 직장인의 재택, 원격근무 등이 확대되면서 종전과 다른 생활 리듬을 갖게 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적지 않게 쌓이고 있다. 평소에 직장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던 가장이 익숙치 않던 재택근무 환경과 원활하지 않은 업무처리에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때로는 육아, 청소, 가사노동 등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생활 근육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에 따른 스트레스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학생들은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 나누던 학교생활을 보내지 못한지 제법 시일이 지나 학습 리듬이 망가지기 직전이다. 게다가 학교에서야 선생님보다 학생들 숫자가 많아 각자에 대한 간섭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온종일 집에 있는 동안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모두 부모님의 감시망에 포착되어 일일이 지적까지 받게 되자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그러나 가족 구성원 가운데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대상은 단연코 주부일 것이다. 평상시라면 아침 밥상만 제대로 준비하고 나면 자녀들은 학교나 유치원에서 급식을 먹고 일정 시간 동안 자신과 떨어지기에 일상적인 가사만 마치면 사실상 소중한 자기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저녁도 대부분 남편은 직장에서 회식, 야근, 친구 모임 등으로 자체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들과 간단한 식사로 대체하면 되었다. 편안하게 커피 한잔하면서 가계부를 정리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감정을 이입하면서 주부의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상황이 백팔십도 바뀌었다. 대낮의 고요한 일상이 사라진 것이다. 아침, 점심, 저녁까지 온 가족이 모두 집안에서 지내는 기일이 길어지자 당장 메뉴 구성하는 데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가족들도 며칠 정도는 도왔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가사노동은 주부의 몫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자녀들은 공부를 핑계로 방으로 사라지고, 가장은 모처럼 편안한 시간이라며 거실 소파에서 리모컨만 잡고 있다가 밥때가 되면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메뉴를 찾는다. 평소 과묵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던 가장의 발언도 늘어난다. 집안의 가구 배치부터 자녀의 생활 태도, 주부에 대한 반찬 투정까지 눈에 거슬린다고 일일이 늘어놓기 시작하면 가족 구성원 모두 스트레스가 차오르기 마련이다.이처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축적되는 것은 가족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시간 자체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지면서 구성원 모두의 생활 리듬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라면 역시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나 조기에 개발되어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뿐일 것이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회복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가족마다 다른 구성원과 다른 사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불화나 가정내 폭력 등의 문제는 가족 스스로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 대화가 부족하였던 가족들이라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예전보다 더욱 화목해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흔히 자동차운전만큼은 가족이 아닌 다른사람에게 배우라고 하듯이 온종일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즐거운 대화만으로 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아무리 시간이 나더라도 가족 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쌓여 있던 마음속의 이야기를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그리고 부부간에 나누는데 한 달 이상 이어지기도 어렵다. 결국은 평소 같으면 다양한 시간상의 제약으로 빠르게 봉합되었을 화제가 끝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해와 다툼이 일어나고, 그것이 새로운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그 불씨를 태우는 원료로 작용하면서 가정내 폭력이나 코로나이혼과 같은 결말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족은 자신이 청소년이건 가장이건 주부건 그 위치를 떠나 무엇보다도 최우선 보호하고 감싸주어야 할 대상이다.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자신이 느끼는 짜증과 스트레스를 가정내 폭력이나 코로나이혼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로 이끄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코로나19로 재택 시간이 늘어나도 생활 관련 소비지출이 바뀔 일은 크게 없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사는 대신 온라인쇼핑몰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택배로 받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지역 주민들의 소비지출에서 나타난 현상은 가족의 위기상황보다는 화목으로 이어지는 방향이어서 기대감을 주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이다. 포항 등 경북동해안 지역 주민들은 지난 1∼2월 중 예년과 달리 악기점과 케이블TV에 대한 지출을 크게 늘렸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재택 시간을 활용하여 가족들과 영화, 드라마를 함께 시청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그 누구라고 그동안 시간이 부족하다는 문제로 소홀히 했던 악기를 다루는 취미생활도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번 재택 시간 동안 가족들과 집에서 영화를 시청하거나 가족의 악기 연주에 즐거워하는 시간은 어쩌면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모두 평생에 한 번 정도로 주어진 시간일 수도 있다. 학생은 졸업 후 부모를 떠나 취업과 결혼까지 하고 나면 명절 때 몇 시간 정도 외에는 지금처럼 부모들과 함께할 시간은 만들지 못한다. 가장이 은퇴할 무렵에는 자녀들이 부모 곁을 떠나기에 지금과 같은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은 꿈도 못 꿀 것이다. 주부가 가족의 세끼 식탁을 차리는 시간도 생각만큼 길지 않다. 사실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지금 주어진 재택 시간은 지겹고 남는 시간이 아니라 매우 귀중하게 아껴야 할 시간이다. 그 귀중한 시간을 스트레스로 인해 정작 자신의 가정을 위기에 빠트리지 않고 가족을 살펴보며 최고의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쉬운 문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4-12

디지털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경쟁력

세계적인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자유로운 이동, 외출의 제한, 대규모 행사의 취소나 연기 등 조치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는 가계, 기업 각자 나름대로 지금의 환경에서 자신의 활동을 지속하려는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얼마 전 로이터는 ‘코로나가 만연되면서 온라인화하는 세계의 일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 상하이에서 자택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는 초등학생, 미국 미시건주에서 온라인원격진료를 시작한 의사, 홍콩에서 실시간 채널로 미사를 주재하는 가톨릭 신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온라인으로 댄스 레슨을 시작한 안무가, 베네주엘라 카르카스에서 친구들과 오랫동안 지속했던 아유회를 자택 컴퓨터를 통해 온라인 피크닉으로 대체한 주부 등을 소개하였다. 활동이 제한된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세계는 온라인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진화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주주총회를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기업까지 등장하였다. 각 경제주체는 그저 곤란하다는 것에서 벗어나 각자 나름의 생존을 위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모든 경제활동에서 이와 같은 디지털화나 온라인화가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아날로그에 맞추어 형성되었던 기존의 법적 제도적 기반이 그 속도를 실시간으로 뒤따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변화가 4차 산업 혁명과 맞물리면서 제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졌다.그렇다면 경북지역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 그동안 경북지역의 문제 내지는 한계로 지적되었던 것은 저출산 고령화였다. 23개 시군 모두 농어촌지역에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고 기력이 쇠약한 고령의 어르신들만 남아있는 것이 문제라는 시각이었다. 심지어 구미, 포항 등 주력 산업도시의 부진으로 인구마저 감소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지역의 한계나 약점을 가진 상황에서 디지털시대로 변화하는 최근의 시대적 흐름을 어떻게 헤쳐나가면서 생존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과제는 만만치만은 않다. 하지만 경북의 문제로 지적된 부분들이 어쩌면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는 새로운 장점이자 지역 경쟁력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는 지역 나름대로 최근의 변화에 차근차근 적응해 나가기 위한 정책을 궁리하고 마음가짐도 다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용이나 노동력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물리적 노동력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어 근력이 쇠하고 움직임이 느려지는 고령자는 그저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여왔다.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당연한 진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 100세 시대로 불리는 지금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암묵지 등의 지적자산을 지닌 고급인재들이 단지 청년들과 같은 기력을 쓰지 못하고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다고 무시하는 것은 엄청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디지털 온라인 시대에는 앞으로 어르신들이 활약할 시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순수하게 인간의 육체적 능력으로만 판단하던 시각에서 탈피하여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력을 갖춘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며 그 영역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우리는 그동안 인간의 체력적 신체적 여건만으로 고령자들의 고용을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드론, 로봇, 기타 디지털기기가 인간의 체력적 신체적 분야를 담당하고 어르신들은 이러한 기계나 디지털 온라인 도구를 활용하여 자신의 전문지식을 청년들보다 더욱 유효하게 발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의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게다가 세상 사람들과 굳이 육체적 요구조건만으로 비교되며 소외되었던 장애판정을 받은 분들도 자신의 신체적 약점은 이러한 디지털 도구에 맡기고 자신만의 전문콘텐츠를 온라인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활용하는 경제활동도 확대될 수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좀 더 구체적으로 각 경제활동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야를 상상해보기로 하자. 대부분이 농어촌지역인 경북에서 특히 농림어업분야는 소중한 경제영역이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그동안 부진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바뀔 수도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나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라도 논밭의 상황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저 집안에서 농사용 로봇이나 드론을 띄워 화상으로 살펴본 다음 논에 물을 대려면 온라인 농업통제시스템을 통해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버튼만 클릭하면 되는 디지털 농업을 실현하면 된다. 지금의 고령자는 과거 60세 이상의 어르신과 달리 386세대로 컴퓨터 온라인에 일찍 노출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교육서비스 분야는 사이버대학원까지 등장하였을 정도로 비교적 빨리 디지털화가 진행되었다. 다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이 특정 재난, 재해로 인해 출석이 어려운 상황에 놓인 농어촌의 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시스템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 초중고에서 원격강의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교사들은 수업을 진행하되 특정 사유로 출석하지 못한 학생들은 본인인증을 거쳐 온라인으로 함께 수업을 받고 이메일로 숙제를 제출하거나 학교홈페이지에 접속하여 같은 시간대에 시험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행정은 어떠할까. 우리나라의 전자정부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정부의 공공입찰, 행정복지센터의 주요 민원서류발급 등은 전자화된 지 오래되었다. 이제 좀 더 영역을 넓혀 주요 인허가분야도 필요서류를 전자파일로 접수하고 부족한 부분이나 상세한 질의 사항이 있다면 굳이 생업에 바쁜 민원인이 공무원을 대면하지 않아도 일이 진전될 수 있는 시대가 예상된다. 유통 등의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가게 주변의 주민들은 해당 소상공인의 가게 아이콘을 눌러 필요한 물건을 골라 주문하되 직접 몇 시에 가지러 갈 것인지 아니면 배달을 요청할 것인지만 결정하면 될 것이다. 아무리 현관문을 나서 5분 정도만 걸으면 찾을 수 있는 가게라 하더라도 주민 자신은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지 않은 집 앞의 가게 대신 서울, 대구 등의 지역에서 운영하는 온라인쇼핑에서 주문하여 택배로 받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결국, 소상공인들도 디지털화에 동참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건설부동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요 건설공사장의 인력충원 담당자는 일일이 사람을 수배할 필요도 없이 그날 필요한 기능공, 인력요건 등을 온라인시스템에 게시하면 되고, 노무자들도 공사판을 찾아다니기거나 인력사무소에서 하염없이 대기할 필요도 없이 시스템에 신청한 후 나중에 핸드폰으로 알려주는 공사장소로 찾아가기면 하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토목건설업자라면 비바람이 불건 덥거나 춥건 아랑곳하지 않고 설계대로 프로그램된 건설 로봇에 맡겨 공사 기일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나 위기는 또 다른 기회와 함께 찾아왔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경북지역의 영원한 약점은 분명 아니다. 단지 나이 문제만으로 현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전문인력들은 지역에서 충분히 파악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둘 필요가 있다. 전문지식을 지닌 고령자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지역의 미래가 달려있다. 경북지역의 약점이었던 높은 고령화율이 다가오는 디지털 온라인시대에는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4-05

지역의 경제대책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세계 경제도 위기상황에 빠지고 있다. 이에 대한 공동 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 3월 26일 세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가 개최되었다. G20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각국의 관련 대책을 통해 세계 경제에 5조 달러를 공급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번에 G20이 세계 경제 지원을 위해 공급하기로 한 5조 달러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세계 경제를 지지하기 위해 공급하였던 금액과 거의 같은 규모다. 그만큼 이번 코로나19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거나 그 이상의 타격을 세계 경제에 입히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날 화상회의를 개최한 G20정상들은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제무역에서 불필요한 간섭을 회피함과 동시에 세계보건기구(WHO) 등과 함께 생명보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건강대책을 실시하고 자금을 공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공동성명에서 공통의 위협에 대해 공동전선을 펼칠 것이며 이번 대책의 대상이 매우 명확하게 좁혀지고 투명성이 높은 데다 일시적 조치라는 점에서 5조 달러 규모의 재정정책, 경제대책, 보증제도를 더한 대규모의 재정을 집행하기로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은행이 이날 금융사에게 사상 처음 무제한의 유동성 공급을 결정하였다.세계와 국내의 주요 정책당국이 이처럼 코로나19에 대한 전방위적인 대책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포항, 구미 등 핵심 산업도시와 농수축산업이 대부분인 군지역을 아우르고 있는 경북도는 과연 어떠한 정책을 별도로 시행하여야 할까. 국가가 아닌 이상 지자체가 동원 가능한 재정 여력에 한계도 있을 것이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지원대책을 지역에서 실제 시행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19의 경우에는 대구 경북지역에서 더욱 피해가 컸던 점도 맞물리면서 이와 같은 재난이나 위기상황에 지방공무원들은 방역과 진단만으로도 이미 녹초가 된 상황이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경제대책이다. 지역민이 이 지역을 근간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물론 재해와 재난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전 시민, 군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적인 정책을 먼저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보건위생 등을 통한 무차별적인 방역과 통제와 같은 정책이 그것이다. 문제는 지역 전체의 경제 상황을 놓고 보면 세부업종별로는 타격을 입은 업종이 있다면 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하기에 경제정책의 방향도 어떠한 분야를 먼저 챙겨야만 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좀 더 생각해보면 이번 코로나19 쇼크로 인해 일시적인 이동의 제한이나 불편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위축된 곳, 아예 방역을 강화하기 위해 집단집객시설 등을 폐쇄함으로써 강제적으로 대상 업종의 경제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된 곳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1인당, 1가구당, 1개 업소당, 1개 군당과 같이 똑같은 기준단위로 공평하게 예산을 배분 또는 집행하는 것이 행정상으로는 편할지 모르지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경제적 관점에서는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경제를 지탱하는 요소는 무수히 많기에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도 회피해야 마땅하지만, 일반적인 경제순환은 기업의 생산 활동을 통해 나온 제품이 유통을 거쳐 소비자가 최종 소비함으로써 순환되는 것이다. 이때의 공통분모는 오직 하나 가계다. 생산공장의 근로자, 유통산업의 종사자 모두 최종수요를 뒷받침하는 가계소비자다. 결국, 가계 수요의 근원은 소득이고 그 소득의 근원은 고용에 있다. 미국이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 괜히 고용 관련 지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아니다.코로나19로 인해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타격을 입은 것은 확실하지만, 실제 눈에는 도소매 유통 등의 매출 하락이 가장 직관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보다 근본적인 경제활동의 그리고 소비를 책임지는 가계의 주인인 가장을 고용하는 생산을 담당하는 제조업체의 중요성을 잊게 하는 외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경북지역의 경우에는 저출산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전되고 있다. 게다가 대규모 고용을 책임져 왔던 구미의 전자통신산업과 포항의 철강산업 그리고 경주의 자동차부품제조업 등이 다양한 이유로 인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손쉽게 고용상황을 볼 수 있는 지표의 하나인 구직급여 신청자 수를 살펴보면 더욱 확실하다. 2016년 말 시점의 경북지역 구직급여 신청자 수는 9천946명으로 당시 전국의 21만5천675명의 4.61%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물론 그 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전국과 경북 모두 구직급여를 신청하는 사람은 모두 증가하였다. 문제는 지난 3년간 구직급여 신청자 수가 전국은 22.81%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경북도는 무려 34.45%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2017년 말과 비교한 최근 2년간 증가율에서는 전국이 30.20%를 기록하였으나 경북도는 무려 40.21%가 증가하여 2019년 말 현재 구직급여를 신청한 실업자는 1만3천372명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전국 대비 비중도 5.05%로 3년 전 4%대 중반에서 5%대를 넘어섰다. 이와 같은 상황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결국 일자리를 찾아 경북도를 떠나는 인구이동의 한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결론적으로 현재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지역 차원의 경제대책에서 최고의 우선순위는 고용에 두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구미산업공단이나 포항철강공단, 경주외동공단 등 각 지역에서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제조업 분야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고용을 유지하며 지역경제에서 최소한의 소득원을 공급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지역경제는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순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 지금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유통부문의 매출 하락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경제라는 시각에서 보면 매우 일시적인 쇼크에 불과하다. 의식주를 담당하는 이들의 경제활동에 일시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의 제약하에서 반드시 전방위적으로 누구나 차별하지 않고 집행해야만 하는 방역, 통제 등을 위한 지출이 아닌 한, 그들에 대한 지원은 국가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긴급자금지원 대책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적어도 지역경제의 수요원인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실직하는 사태가 확대되면 소상공인의 매출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지역경제의 근간이 무너질 위험이 있다. 지역 경제대책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다.사실 구미, 포항, 경주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지리적으로 다소 격리되어 있어 지역민들이 그 영향의 정도를 파악하기 힘든 공단지역 제조업체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에 따른 피해와 영향에 대해 지자체 당국에서는 철저하게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실태를 신속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용유지가 어려워 구조조정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까지 몰린 기업이 있다면 최대한의 지원대책을 특별히 마련하여 가장 조기에 지원해야만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3-29

지역경제의 조기 건강회복과 장수를 위한 행동 강령

지난 3월 16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IMF공식 블로그를 통해 코로나19 관련 대응 방안을 발표하였다. ‘건강한 세계 경제를 위해 필요한 정책 행동(Policy Action for a Healthy Global Economy)’이라는 제목의 이 블로그에서는 코로나19가 공중위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처하려면 검역이나 사회적 거리 전략(자주적인 격리)이 올바른 처방전이긴 하나 세계 경제를 보호하려면 그와 정반대되는 일도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전염병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단축을 위해 연락상태를 유지하면서 긴밀하게 조정해 나가는 것이 최고이며, 각국 정부에게도 지금까지 이상으로 많은 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동안이라도 경기를 개선하고 세계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국가 간 협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3대 정책 행동을 제안하였다. 첫째, 장기적인 경제적 손실 예방을 위해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적인 재정 지출을 주문하였다. 각국 정부가 유급병가 확대, 표적화된 조세 부담 경감조치 등을 계속 확대하여 위기에 빠진 기업에 효과가 파급되도록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 선진국 중앙은행은 금융완화와 실물경제로 이어지는 신용 흐름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수요를 뒷받침하여 경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금융정책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투자가들이 과거 자금 유출 사례 중 최대규모인 약 420억 달러의 자금을 신흥시장국에서 철수하였다는 국제금융협회(IIF)의 조사 결과도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는 은행들이 자본 유동성 버퍼 이용 등 현행 규제에 대한 유연성을 발휘하여 위험에 노출된 차주에게 융자조건을 다시 협정할 것을 장려하는 등 규제 완화를 다루었다. 그러면서 이 3대 정책 행동은 모두 협력적이고도 동시에 추진해야만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결국,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요지는 각국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상호 협조하여 재정금융정책을 총동원하였듯이 이번에도 규제완화조치까지 포함한 세 가지 정책 행동을 모두 동원해야만 코로나19로 손상을 입은 세계 경제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진단인 셈이다. 매우 타당하면서도 당연한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려울 수도 있다. 각국 모두 자국민의 생명보호와 안전 확보를 위해 방역과 진단, 전염병 확산 방지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러한 자국 우선 보호조치 과정에서 상호 협조는커녕 국가 간 불편한 감정마저 생겨나는 상황이다. 따라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국가 간 자본 흐름에 관한 정책 공조가 원활해지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크며,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의 혼란도 당분간 계속될 공산이 크다.사실, IMF가 권장한 것처럼 세계 경제나 우리 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거시적인 정책 대안들이 아무리 유효한 정책이라도 포항과 같이 공간 지리적으로 크지 않은 지역 단위까지 실질적인 효과가 파급되기까지는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국가 차원의 정책 행동은 어느 지역이나 균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그 나라의 경제산업구조와 금융 시스템 등을 거치고 지역별 특징이 맞물리면서 조금씩 정책 효과는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에 IMF가 발표한 3대 정책 행동도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추진 중인 정책이기도 하다. 중앙정부와 한국은행이 실시하고 있는 재정 지출 확대와 금리 인하 등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도 물론 포항 지역경제에 유효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IMF의 제안과 관련한 지역 차원의 별도의 정책 행동은 그리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재정 등 지역 자체의 여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아무리 작은 규모의 단위여도 포항 지역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한 나라의 구성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그저 크기나 종류,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포항을 둘러싸고 있는 대구 경북지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건강에 이상 신호를 나타내고 있는 기업, 상공업자, 서비스 유통업체 등 지역 소재 기업의 건강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 기업보다는 부실한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간단히 감기처럼 약이나 주사 한번 맞고 일어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므로 더욱 세심하게 심한 몸살이나 중병에 걸렸다가 회복하는 상태임을 고려한 보다 장기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 지병을 지닌 사람이 이번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에 쉽게 노출되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지금 긴급 금융 지원 등 단기 처방에 힘입어 건강을 회복한 것으로 착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또 다른 위기상황이 다가오더라도 버틸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추어 지속 가능한 경제 체질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장기처방전을 마련하고 이에 충실한 회복과정을 밟을 필요가 있다.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동안 각 기업, 단체 등이 마련하여 시행한 자구책 가운데 의외의 효과를 발휘한 부분도 있었다. 일례로 그동안 의구심을 가졌던 재택근무제도가 의외로 나쁘지 않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 무서운 전염병이라도 개인별 방역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등 각자가 방심하지 않고 철저하게 방역프로토콜만 지켜도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도 확인하였기에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 사스, 메르스 등 그동안 수많은 전염병이 있었지만 크게 보건위생에 대한 경각심은 가지지 않았던 시민들에게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앞으로는 철저한 보건위생의 생활화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확실한 경계감을 모두에게 주었다는 점 등이다. 이처럼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깨닫고 체화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포항경제가 어떠한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경제가 건강을 조기에 회복하고 장수할 수 있는 포항지역의 자율적인 행동 강령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첫째,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지금까지 각 경제 주체들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는 감염확산 방지 노력은 당연히 계속되어야 한다. 둘째,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아예 영업을 중단한 영업소는 철저한 방역 후 안내문과 함께 영업을 재개하여야 한다. 그리고 매출도 신통치 않았던 차에 이번 기회에 당분간 쉬겠다고 마음먹은 골목상권의 소상공인들이라면 폐업할 생각이 아닌 한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 의식과 행동의 변화는 순식간에 바뀐다. 좀 더 폐업이나 영업을 중단한 시일이 지나게 되면 소비자의 행동 선택이 이루어지는 기억에서 아예 삭제되기 쉬우며, 소비자가 다시 그곳을 떠올려 찾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음식점, 카페 등 요식업소들은 당장 이번 사태가 공식 종료선언을 하더라도 주방은 물론 종업원 모두에게 투명위생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야만 한다. 이는 포항 관광산업의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넷째, 전통시장 상인회는 지금부터 1~2인용 소형 포장제, 정찰제, 지역산 표시제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인터넷, 모바일 쇼핑과 택배서비스를 마련해야만 한다. 당연히 이 쇼핑몰에서 지역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

2020-03-22

위기의 사후 대책과 선제 대응

불과 몇 개월 뒤면 열릴 일본 도쿄올림픽의 개최가 코로나19 사태로 불투명해졌다. 취소 또는 연기 여부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아닌 세계보건기구(WHO)의 손에 달린 듯하다. 토마스 바흐(Thomas Bach) IOC 위원장은 지난 2월 14일과 27일 두 차례 모두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이긴 하나 7월 24일 개최 예정인 도쿄올림픽이 예정대로 개최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3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WHO에서는 코로나19를 ‘세계적 대유행(pandemic)’으로 선언하였다. 3월 13일 오전 2시 현재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 발생 국가는 116개국, 확진자는 13만1천460명, 사망자는 4천923명에 달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동안 잠잠하였던 아프리카 전역에서도 감염자가 발생하였고 북부 아프리카에서는 사망자도 나왔다. 결국,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3월 13일 독일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준비는 계속한다면서도 도쿄올림픽 개최를 WHO가 중지할 것을 권고한다면 이에 따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거기에 3월 13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리오 버라드커(Leo Varadkar) 아일랜드 총리와의 회담 직전 인터뷰에서 ‘도쿄올림픽 개최를 1년 연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아베 총리에게 권유하지는 않겠다’면서도 ‘관객이 없는 경기장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는 이 발언에 대한 비난 여론도 적지 않다. IOC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거둬들인 총수입 약 5조9천억 원 가운데 약 80퍼센트에 가까운 4조7천억 원 정도가 미국 NBC 방송국의 중계권 수수료라며 관객이 없으면 방송국 즉, 미국의 수입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라며 꼬집었다. IOC는 WHO의 권고에 따른다고 하기는 하였으나 일본올림픽위원회(JOC) 아니 일본 정부의 최종적인 판단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소비세율 인상과 같은 악재에 코로나19사태로 일본 국내 스포츠 경기들이 연기되면서 경제적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과연 일본 정부가 재빨리 올림픽 개최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그러면 우리의 입장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만일 WHO가 올림픽 개최를 중지 내지는 연기할 것을 권고하고 IOC가 받아들인다면 각국은 이에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JOC나 일본 정부가 끝까지 강행한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어쩌면 도쿄올림픽은 그대로 개최하되 올림픽 참가 여부는 각국이 스스로 결정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리고 문제는 또 있다. 현재 일본이 코로나19사태를 빌미로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사태가 수습되고 오히려 일본이 확산 경향을 계속 보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여전히 다른 국가에서는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선수단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고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할 것인가. 이번 코로나19사태가 일으킨 도쿄올림픽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그동안 우리는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슬기롭게 사태를 수습하며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동안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들은 형태나 방식, 그 규모에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과정은 거의 같았다. 어느 지역에서 화재, 폭발, 태풍, 지진 등과 같은 인재, 천재를 불문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재난지역을 선포한다. 그리고 재해의 조기 복구와 정상화를 위해 특별예산을 편성하고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 대책도 마련한다. 각종 세금의 납부 기한을 연기해주거나 특별 재정자금을 편성하여 이자 부담을 경감시키는 등 금융지원도 뒤따른다. 이번 코로나19사태도 이와 비슷한 위기 대책의 수습 과정이 그대로 적용되었다.하지만 당장 다가온 총선 문제, 수개월 뒤로 다가온 일본 도쿄올림픽과 관련한 논의는 아직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지금은 국가의 모든 힘을 코로나19사태의 예방과 방역, 마스크 5부제 실시 등과 같이 사태 수습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당장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의 취소 또는 연기와 관련한 문제는 한일 양국 간에 얽혀있는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매우 민감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사실 올림픽의 취소 또는 연기로 인한 경제적 악영향은 일본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선수단과 관광객 등은 올림픽 기간동안 참가를 위해 여행사, 항공 티켓, 호텔 등 숙박업소의 예약에 이르는 모든 준비는 이미 완료한 상태일 것이다. 만일 일본 정부가 차일피일 미루다가 개최 시기에 임박해서 중단 또는 연기 결정을 하게 된다면 경제적 손실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선수단이나 관련 단체, 선수 가족과 일반 관광객 등이 예약 일정에 가까운 시점에 취소할 경우 과연 현지 일본의 사업체가 아무런 페널티도 받지 않고 사전 지급한 예약금이나 선결제한 대금을 환급해 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올림픽 특수에 대비하여 수년간 설비투자를 진행한 사업체 중에는 예약자금을 이미 사용하여 환급 처리 과정에서 파산하는 곳이 생길 수도 있다.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미리 검토해둘 필요가 있다. 도쿄올림픽의 중단 내지는 연기가 WHO나 IOC 등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특히 각국의 의사결정에 따라 결정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충분한 검토와 협상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물론 JOC나 일본 정부가 한국의 참가 여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성공적인 도쿄올림픽을 위해 최대한 많은 나라의 참가를 바랄 것이다. 앞으로 상황 변화에 예의주시하면서 올림픽 문제를 경색된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도모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앞으로도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던 제2의 코로나19와 같은 또 다른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강력한 전염병이 다시 발생할 경우를 염두에 둔 대책, 포항지진과 같은 재해,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의 환경 속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경우 등 새로운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가 필요해지는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은 분명하다.하지만 적어도 지금 포항에는 이처럼 다가올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 가능한 두 가지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바이오신약과 로봇 관련 연구개발이다. 어쩌면 좀 더 빨리 바이오신약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시작하였다면 이번 코로나19사태에 포항에서 개발된 백신이나 치료제 등이 활약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포항은 국내 6대 로봇 연구기관이면서 국내 최고의 실용 로봇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가지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방역, 감염자 발견과 진단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지능형 로봇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어렵더라도 앞으로의 새로운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인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이나 지금과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였을 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활약할 수 있는 로봇이 포항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포항산 로봇이 진단한 감염자를 조기에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포항산 바이오신약과 함께./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3-15

어둠에 잠긴 포항관광업의 새로운 도전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기업부터 소상공인 심지어 일반 시민들까지도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업의 생산제품을 대구 경북지역 생산품이라고 받지 않겠다고 하는 타 지역업체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주요 유통업자들은 물류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은 불편을 느끼며, 퇴근길에 눈에 뜨이는 약국마다 공적이냐 사적이냐, 대형이냐 중형이냐를 불문하고 방역 마스크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생겨난 습관적 행동이 되어버렸다. 지역 내 사람의 이동 자체가 적어지다 보니 어느새 포항이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며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었던 지역 관광업계의 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적어도 관광업계는 중후장대한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여타 산업보다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담은 프로그램을 장착하듯 소프트웨어적인 대응이 원활하다는 장점이 있다.실제 글로벌 관광사업(tourism)은 항상 변신에 성공해왔다. 지구촌 어디를 가더라도 해당 국가나 지역마다 문화적 기반과 풍습, 종교사상, 그리고 인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것을 사업으로 하는 관광사업은 그 자체로서 다양성을 지닌다. 그래서 관광객이 특정 이벤트에 참가하게 되면 지금까지 자신이 오감으로 경험한 적 없는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먹고,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감동하고 만족하는 것이다. 굳이 돈을 들이거나 관광상품을 찾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다. 그저 일상 생활공간과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효과는 나타난다. 모처럼 산을 오르거나 바다를 찾기만 해도 현대인들은 가슴이 트이며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관광사업은 우리 주변에서 함께 숨 쉬고 존재하고 있는 밀착형 산업의 하나다.그동안 관광사업은 해당 여행상품을 소비하는 주체의 소득수준, 여행 형태, 선호 주제 등에 따라 온갖 신기하고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며 성장해왔다. 청소년들의 수학여행, 직장인이나 공무원의 산업체 견학, 갓 결혼한 청춘남녀의 신혼여행, 이제 모든 것을 내려 두고 젊을 때 일하느라 미루고 미루었던 은퇴 여행 등 관광 목적과 종류는 무한하다. 이동수단이 어떤가에 따라 도보여행, 배낭여행, 자전거여행, 자동차여행 등은 물론 최근에는 크루즈여행까지도 유행하고 있다. 관광 여행상품이 내세우는 주제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수려한 경치를 찾아 우르르 몰려다니며 구경만 하던 ‘보는’ 관광에서 이제는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관광으로 변신한 지도 꽤 된다. 심지어 최근에는 아예 호텔 객실에서만 휴식하는 ‘호캉스’라는 것까지 생겨났다.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은 점차 온천 등지에서 식도락과 함께 힐링, 웰빙 등을 추구하는 웰니스(wellness) 관광을 추구하고 있다. 관광사업의 주제가 계속 변신해 오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이러한 관광사업의 빠른 흐름 속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주제가 주목받고 있다.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암흑의 관광이나 어두운 관광 정도가 되겠지만, 결국 밝고 즐거운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핵심이 있다. 그동안 우리가 관광이라고 하면 어떠한 즐거운 기념일, 축하할만한 일이 있을 때, 직장인이라면 포상을 받았을 때 주로 여행상품권을 받기도 하였다. 그만큼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관광이라면 즐겁고 좋은 것을 보고 느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다크투어리즘은 재해나 전쟁과 같이 인간의 슬픔, 죽음, 절망 등을 강제로 떠올리게 하는 역사의 현장을 내세운다. 그것을 통해 평소 잊고 있던 대형 재난과 재해를 경계하고, 전쟁이 주는 잔혹함과 슬픈 희생을 되새기며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정숙하고 숙연한 교육적인 관광이다.가장 유명한 다크투어리즘이라면 역시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과거 나치가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해 운영하였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수용소라고 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수용소에는 철로를 통해 죽음으로 향한다는 ‘죽음의 문’, 벽에 세워두고 유대인을 총살하였던 ‘죽음의 벽’과 함께 당시 유대인들의 수용소 내부와 유품 등이 전시되어 매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 46분과 9시 3분에 보스턴 로건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민항기가 각각 뉴욕의 109층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였다. 9·11테러 사건이다. 이 테러는 전 세계를 경악시키고 이후 테러단체와의 기나긴 전쟁을 부르기도 하였다. 무너진 두 건물 자리의 흔적인 그라운드제로에는 지금도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날의 긴박했고 참혹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9·11메모리얼플라자에는 피해자의 이름이 들어간 위령비인 2개의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온갖 난관을 헤치고 독립한 미국을 상징하는 104층의 세계무역센터(one world trade center)는 미국 독립연도인 1776피트(약 541미터)로 세워졌다. 이 건물 전망대의 관람문의 전화번호의 끝자리도 1776번이다. 지난해 5월 미국의 유명 TV 채널에서 방영된 5부작의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이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는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를 다루고 있다. 체르노빌원전은 지금도 반경 30킬로미터 이내는 출입 금지 지역이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전사고 25주년인 2011년부터는 일부를 외부 관광객에게 개방하기 시작하여 매년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는 연간 7만2천명의 관광객이 다녀갔고 지난해에는 TV드라마의 유행에 힘입어 약 30% 정도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체르노빌원전 주변을 관광지로 더욱 개발한다는 대통령령에 서명하였다. 이처럼 각국이나 지역에서는 어두웠던 역사의 현장마저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심지어 일본마저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후쿠시마원전 지역을 이번 도쿄올림픽 개최 기간에 맞추어 개방한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그런 의미에서 포항은 피해자였거나, 사고를 내었던 당사자들이 관광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어둠보다는 더욱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스스로 피를 흘리며 대한민국을 수호한 현장과 관련 기념물들을 도시 곳곳에 수없이 간직하고 있다. 매년 6월에만 군인단체나 국가유공자들이 찾아오는 포항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포항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하였던 한국전쟁 당시 기계 안강, 비학산, 형산강 전투 등 낙동강 방어선의 최고 격전지였다.포항은 명실상부한 충절, 호국 도시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보다 2개월이나 일찍 성공적으로 끝냈던 미 제1기병사단의 포항상륙작전, 포항출신 학도병 수백 명이 산화하였던 기계 안강전투, 소티재 전투, 삿갓봉고지(93고지, 일명 천마산) 전투 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침 2020년은 6·25 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국내외 관광객들이 한국전쟁 최후의 보루였던 포항을 찾아 포항지구전투전적비,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전몰학도충혼탑 등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전쟁의 참혹함과 호국정신을 되새기는 포항만이 가능한 어둠의 관광(dark tourism)을 상품화하여 지금 어둠에 잠긴 지역 관광업계가 활성화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으면 한다./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2020-03-08